I'm the only genius film director RAW novel - Chapter (184)
나 혼자 천재 영화감독-184화(184/276)
뉴욕 맨하탄을 연상케 하는 LA 해변 인근 도시.
맨하탄 비치에 있는 마일스의 거처.
높은 벽 때문에 안은 하나도 보이질 않았고.
칙칙한 색깔 탓인지 이 건물 안에 마일스 잭이라는 슈퍼스타가 있을 거란 생각은 할 수조차 없었다.
“마일스 잭 이미지와는 어울리지 않는 집이네요.”
제임스는 씁쓸한 표정으로 운전하며 말했다.
그리고 그의 집 대문 앞에 도착하자 양복을 빼입은 사람들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제임스 씨. 경찬현 씨. 맞습니까?”
그의 굵은 목소리로 건네는 질문에 제임스는 고개를 끄덕였다.
“네.”
“들어가신 이후, 일단 소지품 검사부터 할 겁니다. 먼저 무기가 될 수 있는 건 여기 두고 가주세요.”
경호원의 말에 제임스는 입맛을 다시며 품속에 있던 권총을 꺼냈다.
“이게 다입니다. 저는 차 안에서 대기할 거고. 이분만 내부로 들어갈 거고요.”
“네. 알겠습니다.”
삐익-.
기계 신호음에 문이 천천히 열렸다.
제임스는 조심스레 운전하며 그 문턱을 넘었고, 주차장에 차를 대며 내게 말했다.
“잘하실 거라 믿어요.”
제임스는 밝게 웃으며 내 어깨를 토닥였다.
“잘해야죠. 여기 달린 입이 한두 개가 아니니까요.”
차에서 내린 후.
문 앞에서 기다리고 있는 또 다른 경호원이 내 몸을 수색했다.
공항에서 수색하는 것과는 비교도 되지 않을 정도로 빡빡한 과정.
그 과정을 다 끝마치고 나서야, 집 안으로 들어갈 수 있었다.
“후…….”
그의 전성기 시절로 보여지는 사진들로 꾸며진 현관.
하지만 그 속에선 쓸쓸함이 느껴졌다.
내가 잠시 멍하게 있자, 앞에 있던 경호원이 말했다.
“따라오시죠.”
“네.”
경호원의 안내에 따라 끝이 없어 보이는 복도를 한참을 걸어갔다.
그리고 어떤 방 앞에 멈춘 후 경호원은 조심스럽게 문을 두드렸다.
똑똑.
“마일스 씨. 경찬현 감독입니다.”
“아, 네. 들어오세요.”
안에선 TV 속에서나 듣던 목소리가 울렸고.
경호원이 문을 열어주기 전, 깊게 숨을 들이마셨다.
“들어가시죠.”
“아, 아. 네.”
방 안에 들어가자, 민낯의 스타가 나를 보며 미소를 보였다.
“반가워요. 경찬현 감독님.”
백반증 때문에 얼룩덜룩한 피부.
하지만 그런 병 따위에 지지 않는 듯 마일스의 밝은 미소는 여전히 멋지고 화려했다.
“아, 네. 반갑습니다. 마일스 씨…….”
이곳에 도착하기 전.
분명 어떻게 대화를 풀어나갈지 며칠을 고민했지만.
머릿속에 뿌연 안개라도 낀 듯 모든 게 다 사라질 것만 같았다.
“서 있지 마시고, 여기 앉으세요. 마실 거 드릴까요?”
“네. 물 한잔이면 충분합니다.”
내 대답에 마일스는 미소를 지으며 전화기를 들고 말했다.
“방에 오렌지 주스랑 물 한병 가져다줄래요? 네, 고마워요.”
마일스는 전화기를 내려놓고 나를 바라봤다.
“요즘 힘들다는 소식은 들었어요.”
“아, 혹여나…… 제가…….”
인종차별주의자라는 소문에 대해 먼저 말하려 했지만, 마일스는 고개를 저었다.
“저는 신문을 믿지 않아요. 그들은 사실을 파는 게 아니라, 돈이 되는 이야기를 파는 사람들이잖아요?”
“감사합니다. 마일스 씨.”
“뭘 이런 걸로요. 괜찮아요.”
그는 따스한 눈빛으로 나를 바라봤다.
“Xcape from the system. 그리고 가사까지. 영화감독이라서 그러신가? 사람 마음 흔들 줄 잘 아시네요. 그 가사 아니었으면 이 만남도 없을 뻔했는데 말이에요.”
“통해서 정말 다행이네요.”
내 대답에 마일스는 입을 가리며 조심스럽게 웃음소리를 냈다.
“그래서, 당신이 원하는 바가 뭐예요? 그 가사처럼. 남이 방해하고 있지만, 당신의 삶에서 이루고 싶은 게 있을 거 같은데.”
[왜 난 뜻대로 살 수 없는 거지? 이건 내 삶이고 당신들을 위해 사는 게 아닌데도.]Xcape의 가사.
마일스의 인생이 녹아있는 그 가사에 나는 조심스럽게 답했다.
“마일스 씨가 음악계를 뒤집어 놓은 것처럼. 저는 영화계를 뒤집어 놓고 싶습니다.”
“네?”
마일스는 내 말에 부끄러운 듯 얼굴이 살짝 상기됐다.
어디에선가 보았던 기사처럼.
마일스는 확실히 무대에서와는 다른 사람이었다.
무대에서의 화려함과 당당함에 반비례하듯, 무대 밑에서의 그는 부드러움과 겸손함이 돋보였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지금은 누군가의 모함으로 위험에 빠졌고요. 마일스 씨가 저를 믿어주시듯, 다른 사람들이 저를 믿어준다면 고마운 일이겠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아서요.”
“…….”
마일스는 고개를 끄덕이며 나를 안쓰럽게 쳐다봤다.
“하지만 제가 할 수 있는 건…… 지금 당장은…….”
“단 한마디면 될 겁니다. 제 영화에 인종차별의 여지는 없다는 식으로…… 물론 첫 만남부터 이런 부탁을 하는 게. 정말 염치없는 짓이라는 거 잘 알고 있습니다.”
마일스 입장에선 불쾌할 일이다.
난데없이 처음 보는 인간의 부탁.
어쩌면 예전에 그의 명예와 돈만 보고 그에게 달라붙었던 쓰레기들처럼 보일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해봤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마일스 말고는 답이 나오질 않았다.
“미안해요. 정말요.”
마일스는 눈을 꽉 감은 채 주먹을 쥐고 대답했다.
“내가 해줄 수 있는 건 없어요.”
“…….”
마일스는 안타까운 듯한 표정을 지으며 말을 이었다.
“핑계로 보일지 몰라요. 하지만, 이제야 무죄 판결을 받고 조금이나마 잠잠해진 상황이에요. 지금 경찬현 감독과 관련된 논란으로 세상에 나선다면…… 다시 언론에 의해 저는 짓밟힐 거예요. 그들의 글자 하나하나에 다시 저라는 사람은 무너질 거라고요.”
그의 눈가가 파르르 떨렸다.
눈물을 참고 있는 건지. 분노를 참고 있는 건지.
알 수 없었지만, 어떤 감정을 참고 있다는 것만은 분명했다.
“그리고 저는 지금 컴백 준비 중이기도 하고요. 나는 그저 마일스가 아니에요. 지금 내 일에 달린 많은 사람들. 그 사람들까지 생각한다면…….”
‘컴백……?’
그의 말에 며칠간 고려하지 않았던 생각이 불쑥 떠올랐다.
마일스의 완벽주의 때문에 컴백 무대를 준비를 오랜 시간에 걸쳐서 하지만.
그 모든 준비는 물거품이 됐었다.
‘의료 사고였어.’
지금 마일스가 원하는 건 논란이 잠식되고, 다시 화려하게 팝스타로서 복귀하는 것.
이걸 내가 도울 수 있다면?
마일스에게 일어난 사고도 막을 수 있다면……?
이런 생각에 나는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마일스 씨. 지금 당신은 거울 속 당신과 시작할 생각이 없나요?”
***
마일스는 자신의 노래 가사를 인용한 경찬현의 말에 의아한 듯 되물었다.
“뭐라고요……?”
“변화를 만들고, 그 모든 것들을 옳게 만들겠다는 그 다짐. 세상을 더 나은 곳으로 만들겠다는 그 다짐 말이에요. 지금 당신을 보면 그 다짐을 잃어버린 것 같은데요.”
마일스는 경찬현의 말에 화조차 나지 않았다.
틀린 말이 아니었으니까.
세상을 위해 노력해도, 세상은 그를 그대로 바라봐주지 않았다.
오해하고, 자기들 멋대로 해석하고.
마일스라는 한 인간을 괴물로 만들기 급급했던 그 모든 루머들.
그 루머 때문에 음악을 시작했을 때의 다짐은 점차 의미가 지워져 갔다.
‘지금 내가 뭘 위해 음악을 하는 거지……?’
음악을 통해 얻을 수 있는 명예와 부는 남부럽지 않을 정도로 얻을 수 있었다.
꿈꿀 수도 없던 돈과 인기.
세상이 자신 때문에 바뀌긴 했지만, 그렇다고 해서 처음 꿈꿨던 세상이 만들어지진 않았다.
‘모두가 행복한 세상. 그런 세상이 만들어지는 건 애초에 불가능한 게 아니었을까.’
마일스는 젊었을 적 꿈꿔왔던 세상을 다시 떠올리자, 씁쓸한 미소가 지어졌다.
“저는 당신처럼 역사에 이름을 남길 정도의 사람은 되지 못할 겁니다. 당신은 당신이 아닌, 세상을 위해 움직였으니까요.”
“아…….”
경찬현의 말에 마일스는 입술을 꽉 깨물었다.
수많은 인간 군상을 봐온 마일스에게 입에 발린 거짓과 진심을 구분하는 것 정도는 쉬운 일.
경찬현의 행동과 말에선 쓰레기들의 냄새는 나지 않았다.
“당신이 세상의 꼭대기에 있을 때. 그 압박감에도 버틸 수 있었던 건 당신의 다짐 아니었나요. 저도 지금 그런 다짐으로 이 자리까지 찾아온 겁니다.”
“…….”
“저는 지금 동양인 감독으로서 할리우드에 도전장을 내민 사람입니다. 하지만 지금 영화는 거짓 논란 때문에 개봉하지 못하고. 지금 창고에 처박힐 위험에 처해 있어요.”
방으로 처음 들어왔을 때의 경찬현과는 다른 느낌.
처음엔 분명 떨고 있는 소년 같은 모습이었지만, 지금은 달랐다.
절박한 한 사내가 보이자 마일스도 점차 마음이 흔들렸다.
“하, 이런…….”
마일스는 이마를 부여잡은 채 한숨을 내뱉은 후, 흐뭇한 미소로 경찬현을 바라봤다.
그러자 경찬현은 다시 소년과 같은 모습으로 돌아갔다.
“일단, 더 생각할 시간을 주실 수 있겠어요?”
“네. 물론입니다.”
“아, 그리고 혹시 실례가 되지 않는다면 제가 그 논란이 된 영화를 먼저 봐도 괜찮을까요?”
마일스의 질문에 경찬현은 고개를 연신 끄덕이며 말했다.
“네. 물론이죠! 혹시 <스페이스 베가본드>라는 제 작품도 보셨나요?”
“아…… 제가 사실 영화를 본 지는 좀 돼서…….”
“분명 좋아하실 겁니다. 분명히요!”
경찬현은 잔뜩 상기된 표정으로 이야기하자, 마일스는 참았던 웃음이 터져 나왔다.
자신이 어렸을 적 프로듀서에게 자신의 노래를 어필했던 모습.
그 간절하고 귀여운 모습에 터진 웃음이었지만, 경찬현은 왜 웃는지 이해가 가지 않는 듯 어리둥절한 표정이었다.
‘얼마 만에 이렇게 웃는 건지.’
“하아…… 네. 알겠어요. 꼭 볼 테니까. 결정되면 연락드릴게요.”
“아, 그리고…….”
경찬현은 아직 할 말이 남았는지 조심스럽게 말을 이었다.
“마일스 씨를 도울 일이 제게도 있을 겁니다.”
“……?”
뜬금없는 경찬현의 말에 마일스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물었다.
“뭐죠, 그게?”
“이 일만 해결되고 나면, 어떻게든 마일스 씨를 도울 겁니다. 진심을 다해서요.”
경찬현이 무엇을 돕는다곤 정확히 이야기하지 않았지만, 마일스는 알 수 있었다.
그의 눈빛에서 느껴지는 연민에 마일스는 환히 웃으며 고개를 끄덕이며 답했다.
“알겠어요.”
***
제임스는 경찬현이 건물 밖으로 나오는 것을 바라봤다.
창백하게 질린 듯한 얼굴에 살짝 후들거리는 듯한 다리.
힘겹게 차로 다가오는 그를 보며 어떤 위로를 전해야 할지 생각했다.
“괜찮아요……?”
“네? 그럼요. 괜찮죠.”
“잘 된 거예요?”
제임스의 물음에 경찬현은 조수석에 앉아 깊게 한숨을 내뱉었다.
“잘 모르겠지만, 일단은 긍정적인 거 같기도 하고…… 일단은 영화를 먼저 보기로 했어요.”
“그럼 된 거 아녜요? 그 영화에 문제가 없다는 걸 알기만 하면 되는 거잖아요.”
제임스의 말에 경찬현은 실없이 웃으며 대답했다.
“생각보다 여러 문제가 많이 쌓여있어서요. 애초에 생기지 않았다면 좋았을 문제들이요.”
“흠…… 어렵네요.”
무슨 말인지 모르겠다는 듯 제임스가 턱을 괴며 생각하자, 경찬현은 바람 빠진 풍선처럼 몸을 축 늘어트렸다.
“일단 음악이나 들으면서 가죠. 시끄러운 걸로. 정신없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