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 the only genius film director RAW novel - Chapter (190)
나 혼자 천재 영화감독-190화(190/276)
“그렇게 합시다. 오늘은 여기까지 합시다. 투표는 다음에 하도록 하고.”
박치우의 말에 심사위원들은 모두 고개를 끄덕이며 수긍했다.
이미 심사한 지 3시간이 넘은 탓에 심사위원들은 모두 지친 상황.
그 상황에서도 박치우는 상황을 자기에게 유리하게 돌아갈 수 있도록 머리를 굴렸다.
‘투표로? 하, 멍청한 자식.’
심사위원들.
배우든, 감독이든, 평론가든.
박치우와 알고 지낸 지 적게는 몇 년, 길게는 수십 년이 된 사람들.
경찬현의 자충수에 박치우는 밝은 미소를 보이며 말했다.
“역시 미국에 있다가 온 사람이라 그런가? 참 합리적이야.”
“미국이라고 합리적인 건 아닌데요.”
“크흠.”
한마디도 그냥 넘어가지 않는 경찬현에 박치우가 불쾌한 듯 표정을 짓자, 심사위원들은 이 자리가 불편한 듯 말을 아꼈다.
“그럼 다음 심사 때 다시 보는 걸로 하시죠. 오늘 다들 고생 많으셨습니다.”
***
잠시 후.
박치우는 심사를 마치자마자, 친하게 지내던 심사위원들을 술자리로 불러 모았다.
물론 경찬현과 노영훈은 없는 술자리.
이제야 박치우는 본색을 드러내는 듯 신경질적으로 말했다.
“이전 청풍 영화제. 그때 복수라도 하려는 건가. 그 자식…….”
심지어 노영훈과 대사라도 짜 맞춰 온 듯.
사람 열받게 하는 말만 족족 골라 하는 경찬현에 박치우는 이를 악물었다.
“선배님, 하하. 노여움을 푸시지요. 그래도 그놈 덕분에 청풍 영화제 떨어진 위상이 좀 올라가지 않겠습니까.”
“위상이 올라가긴 뭘 올라가나. 아직 그놈 영화 미국 성적도 제대로 안 나왔잖아.”
박치우의 말에 옆에 있던 후배 한 명은 어색한 미소를 보이며 말했다.
“그래도 투표로 하자는 것 보면. 경찬현 감독도 선배님 말대로 하자는 거 아니겠습니까. 하하. 투표로 이기진 못할 테니까요. 경찬현이 선배님 위상을 모를 리 없잖습니까?”
박치우는 인상을 잔뜩 찌푸리며 소주를 한잔 들이켰다.
앞에 있던 다른 심사위원들 역시 그 타이밍에 맞춰 급하게 소주잔을 털어놓고, 옆에 있던 후배는 급히 박치우의 잔을 채웠다.
“내가 이래서 요즘 젊은 놈들이 싫어. 여태까지 우리가 지켜온 가치들. 그런 것들에 대한 존중이 없다고. 미국물 먹은 미꾸라지가 한국 영화계에 어딜 감히…….”
박치우의 이마에 깊은 주름이 생기자, 옆에 있던 다른 심사위원들은 억지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그러게 말입니다. 선배님. 영화적으로 보나, 뭐로 보나 <시퍼런 봄>이 훨씬 나았는데 말입니다.”
“맞습니다. <삶은 계란>은 그냥 삼류 코미디였습니다. 그런 삼류 코미디가 어딜 감히…… 하하.”
박치우는 듣고 싶었던 이야기가 들리자 이제야 흐뭇한 미소를 지으며 잔을 한번 더 들이켰다.
<시퍼런 봄>의 감독은 박치우의 제자.
자기 제자에게 상을 준다는 건 결국 자신의 명성에도 도움이 되는 일.
또한 <삶은 계란>을 만든 류진석이라는 감독은 듣도 보도 못한 출신도 알 수 없는 감독.
그런 감독에게 상을 준다는 건 상을 낭비하는 것과 다를 바 없다.
“그래. 맞아. 하하, 마시자고! 크으.”
***
같은 시각.
노영훈 감독과 함께 찾은 식당에서 막걸리와 제육을 시켰다.
시뻘건 색이 매력적인 제육에 침이 절로 넘어갔다.
“먼저 잔부터 들까?”
“하하, 좋습니다.”
투박한 양은 막걸리잔에 뽀얀 막걸리로 가득 채운 후 시원하게 들이켰다.
달콤한 청량감 이후 이어지는 걸쭉한 끝맛.
그 끝맛을 매콤한 제육으로 감싸주면 입 안에선 완벽한 합주가 펼쳐졌다.
입가에 절로 지어지는 미소.
노영훈 감독은 그런 경찬현을 흐뭇하게 바라보며 말했다.
“영광이야. 경 감독.”
“에이, 영광은요. 너무 띄워주지 마세요. 선배님. 하하.”
“너무 띄워주다니, 아직 한참은 남았구먼. 오늘 박치우 표정 못 봤나? 자네 없었으면 훨씬 더 설치고도 남았을 양반이야.”
박치우.
트렌드 세터 상을 단상에 두고 내려왔을 때 그 무리에게 들었던 비난들.
경찬현은 그 기억에 피식 웃음이 나왔다.
“고마워. 경 감독.”
“저야, 뭐 선배님한테 은혜 갚는 거죠. 뭐 대단한 걸 했다고요. 하하.”
“흠, 근데 말이야.”
노영훈은 궁금하다는 듯한 표정을 지으며 경찬현을 향해 물었다.
“특별상에 그렇게까지 노력하는 게 뭔가? 최우수 작품상도 아니고…… 뭐, 물론 그 상이 중요하지 않다는 건 아냐. 근데 박치우한테 그렇게 대놓고 반기를 들 정도냐는 거지.”
“선배님은 예전에 영화제에서 왜 제 편을 들어주셨나요?”
경찬현의 물음에 노영훈은 제육을 자기 앞 그릇에 덜며 대답했다.
“그거야 자네 작품이 재밌었으니까.”
“저도 그래요.”
류진석 감독.
<삶은 계란>을 만든 감독이자, 훗날 좋은 평가를 받는 감독.
하지만 그가 좋은 평가를 받는 데까진 꽤 오랜 시간이 걸렸다.
‘영화판은 실력보단 학벌주의와 인맥.’
하지만 류진석은 고졸.
간판이야 어느 곳에서든 중요하지만.
특히나 허영심에 가득한 인간들이 모여있는 곳에서 간판은 유난히 더 큰 영향력을 발휘하기 마련.
“흠…….”
노영훈은 <삶은 계란>을 보며 특별한 감정은 들지 않았다.
경찬현의 <무욕>을 보았을 때만큼의 큰 충격도 없을뿐더러, 구태여 박치우와 갈등을 빚을 만큼의 가치 있는 작품이라고 느껴지지 않았다.
‘나도 나이를 먹은 건가.’
이제 이순(耳順)을 넘긴 나이.
새로운 게 낯선 나이가 되자, 펼쳐질 것보다 뒤에 놓인 것에 집착하게 되는 자기 모습에 노영훈은 깊게 한숨을 내쉬었다.
-<디텍티브 그레이져>가 미국에서도 연일 흥행 중이라는 소식입니다. 미국 박스오피스 1위를 달성하며 한국인 감독의 저력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현재 한미일 동시 개봉에 KMD 그룹의 주가는 나날이 치솟고 있는 상황에서…….
TV에서 들려오는 이야기.
그 이야기가 자기 앞에서 소박하게 제육을 먹으며 웃고 있는 사람에 대한 이야기라는 것에 기시감이 들었다.
“그래, 자네 말이 맞겠지.”
“네?”
“<삶은 계란> 말이야. 나에게 보이지 않는 무언가가 자네 눈에는 보이는 거라 믿겠네.”
노영훈은 오물오물 입을 움직이는 경찬현을 보며 짐짓 진지한 표정으로 말했다.
“그런데 말이야. 투표로 하는 건 자네에게 오히려 손해일 텐데. 괜찮겠나?”
“물론이죠.”
“박치우 그 인간. 영화판에 인맥으로 기생하는 양반이야. 심사위원들 대부분도 박치우 쪽 사람이고. 부끄럽지만 나한테 그 정도의 힘은 없어.”
외길인생을 살아왔다는 것에 부끄러움은 없었지만.
지금 당장 경찬현에게 도움이 될 수 없다는 생각에 노영훈은 깊게 한숨을 내쉬었다.
“괜찮습니다. 선배님. 정치로 엮인 사이는 명성에 의해 쉽게 무너지기 마련이거든요.”
“응?”
“가만히 있어도 될 겁니다.”
“…….”
태연한 경찬현의 태도.
노영훈은 경찬현의 태도에 대한 근거를 쉽게 찾을 수 있었다.
-경찬현 감독은 이제 서른을 갓 넘긴 감독입니다. 앞으로 그가 어떤 일을 만들어낼지. 그의 앞에 어떤 일이 펼쳐질지. 또한 한국 영화계에 어떤 영향력을 미칠지. 궁금해지는 밤입니다.
경찬현의 달라진 위상.
<디텍티브 그레이져>는 지금 미국에서도 흥행하고 있는 건 물론, 한국에서 개봉한 외화에서도 압도적인 흥행을 기록하는 중.
그렇다면…….
띠링-.
타이밍 좋게 울리는 경찬현의 핸드폰.
그가 환히 웃으며 말했다.
“벌써 낚였네요. 저 잠시 통화 좀. 아 같이 들으시죠. 이건 같이 듣는 게 낫겠어요.”
“응? 뭐 그렇다면야.”
“잠시만요. 이제 연기를 좀 해줘야 해서…….”
경찬현은 잠시 눈을 감고 뭔가에 집중하는 듯하다가 목을 풀었다.
“크흠, 아, 예. 여보세요?”
-아, 경 감독! 하하. 그래, 오늘 반가웠는데 따로 이야기도 많이 나누질 못해서 말이야.
전화 상대는 박치우의 오른팔이라 불리는 김희진.
박치우 사단의 핵심 멤버 중 한 명의 전화에 노영훈은 눈을 휘둥그레 뜨며 경찬현을 바라봤다.
하지만 경찬현은 여태까지 볼 수 없던 거들먹거리는 듯한 웃음을 지으며 대답했다.
“어휴, 선배님. 뭐, 기회야 많은데요.”
-그래, 오늘 박치우 선배님 때문에 좀 그랬지? 그…… 박치우 선배님이 좀 그래. 알지?
“아, 예. 어휴, 알죠. 알죠. 그럼요. 하하, 다 뜻이 있으셔서 그런 거겠지요.”
-그래. 자네가 속이 넓어서 참 다행이야. 그래, 지금 뭐하나?
“<삶은 계란>을 다시 한번 보고 있었습니다. 투표에 앞서서 한번 더 보는 게 나을 테니까요.”
뻔뻔한 경찬현의 거짓말에 노영훈은 간신히 웃음을 참았다.
-흐…… 대단하구먼. 그래, 다름이 아니고…… 다음에 한번 술자리나 갖자고. 오늘은 좀 그랬으니까 말이야.
김희진의 말에 경찬현은 피식 웃음소리를 냈다.
“아, 예. 그러시죠. 근데 그…… 박치우 선배님께서 좀 불편해하시지 않겠어요?”
-뭐?
“저를 별로 좋아하시질 않는 거 같아서…….”
-에이. 이 사람아. 선배님은 따로 빼고 우리끼리 한잔하자는 거지.
김희진의 말에 경찬현은 짐짓 궁금한 목소리로 물었다.
“투표는 어떻게 하실 생각이세요?”
-어? 아, 투표. 하하. 이 사람아, 원래 투표는 비밀로 해야지.
“아, 그렇죠. 투표 결과가 이미 정해져 있지 않을까 해서요.”
-하하, 아냐. 우리 그…… 하하. 아닐세. 이 사람아.
“네. 믿고 있겠습니다.”
-……그, 그래. 알겠네. 하하. 그럼 다음에 꼭 보는 거야?
김희진과의 대화를 마치고, 경찬현은 피식 웃으며 다시 이전의 모습으로 돌아왔다.
“자네, 연기에도 꽤 소질이 있네?”
“과찬이십니다.”
경찬현은 환하게 웃으며 노영훈과 잔을 나눴다.
그러곤 자신의 핸드폰을 바라보며 말했다.
“제 주변에도 모기들이 좀 끓기 시작하네요.”
“그 모기들을 이용할 생각이고?”
노영훈의 말에 경찬현은 피식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네. 어울려 주는 척만 해도 눈알을 뒤집고 달려들 테니까요.”
“하하, 참…… 웃기는 상황이구먼.”
몇 년 전만 해도.
한국 영화계에서 묻힐 뻔한 감독.
그 감독은 이제 완전히 다른 위상을 가지고 한국에 돌아왔다.
‘다행이야. 경 감독은 확실히 힘을 어디에 써야 하는지 아는 사람이라서.’
힘 자체는 나쁜 것이 아니다.
중요한 건 힘을 가진 사람이 어떤 사람이냐는 것.
하지만 노영훈 앞에 있는 감독에게선 그 힘을 악의적으로 이용할 만한 기운은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그래, 자네 더 먹고 싶은 것 더 먹어. 오늘은 내가 사지.”
“에? 아닙니다. 선배님. 제가 살게요. 이것도 거의 제가 먹었는데요.”
“됐어. 자네 같은 사람이랑 밥 먹은 게 나한테도 큰 배움이야. 그 배움 값으로 치자고.”
“네? 제가 가르쳐드린 게 뭐가…….”
노영훈은 장난스레 인상을 찌푸리며 경찬현을 향해 쏘아붙였다.
“부끄럽게 그런 걸 계속 물을 텐가? 이 친구가 미국물 먹더니…….”
“아…… 그럼 저 두부김치 하나만…….”
“그래. 뭐든 시켜. 하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