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 the only genius film director RAW novel - Chapter (193)
나 혼자 천재 영화감독-193화(193/276)
“시사회장이요?”
“네.”
“무슨 일을 말씀하시는 건지…….”
그녀는 주위를 돌아보며 조심스럽게 내 귀에만 들릴 정도로 속삭였다.
“에밀 듀크랑 당신 사이에 무슨 일이 있지 않았나요? 당신에게 생긴 일들. 그걸 단순히 우연으로만 보고 있는 건 아니겠죠?”
그러고 나서 그녀는 조심스럽게 주위를 훑었다.
그녀 자신이 내뱉은 말에 겁이라도 먹은 듯.
방금까지만 해도 태연했던 그녀의 눈동자가 약간 떨려왔다.
“지금 겁나요?”
“전혀요.”
그녀는 대답하면서도 약간 떨리는 손을 숨겼다.
그녀의 미소가 이젠 여유를 가장한 가면이라는 게 확실해졌다.
“그럼 에…… 커헙”
그녀는 빠르게 내 입을 손으로 막았다.
“이름 말하지 마요. 주위에 보는 눈도 많고, 듣는 귀도 많으니까. 여기 있는 사람들 대부분이 그 인간 편이에요.”
“…….”
“그걸 모르고 여기에 온 건 아니겠죠?”
그녀는 어이가 없다는 듯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며 웃어 보였다.
“알고 있긴 하지만. 어쩔 수 없었습니다.”
하지만 그녀에 대한 의심이 사라진 건 아니었다.
만약 에밀 듀크에 대한 좋지 않은 감정이 있었다면 직접 우리 제작사로 찾아오면 될 것을.
굳이 이런 자리에서 우연을 가장한 척하며 만날 필요가 있는 건지…….
“아이, 잠깐만요! 아니, 이건 아니지!”
갑작스러운 소란.
익숙한 목소리에 그쪽을 쳐다보자 큰 덩치의 사내들에 의해 준성이가 끌려 나왔다.
“저분이 이준성 대표님이시죠?”
“하…… 네. 잠시만요.”
나는 일단 빠르게 움직이며 그들 앞을 가로막았다.
“무슨 일입니까?”
“찬현아! 이게…….”
“조용히 해봐. 무슨 일인데 이딴 식으로 대접하는 거냐고요.”
그러자 준성이의 팔을 잡고 있던 한 사내가 인상을 찌푸리며 말했다.
“이준성 대표님께서 2층에서 소란을 좀 일으키셔서요.”
“네?”
“아니, 나 아니라고!”
“이렇게 조용히 처리해주는 것만으로도 감사히 여기시죠.”
주위에서 쏟아지는 시선들에 나는 푹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그다지 조용하게 처리한 것 같진 않은데요. 알아서 나가죠. 그 손 떼세요.”
“지금 당장 나가주신다면야…….”
준성이는 미안한 눈빛으로 나를 쳐다봤고,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힘없이 이야기했다.
“가자. 이 모질아.”
준성이를 향해 짜증 난 듯한 목소리로 쏘아붙이자, 그 뒤에 있던 사내들은 비웃듯 우리를 바라봤다.
그 사이 뒤에 있던 매디슨에게 눈짓으로 문을 가리켰고, 그녀가 고개를 흔드는 것까지 확인했다.
샤토 마몽 밖으로 나오자마자, 준성이는 툴툴거렸다.
“아니, 나 그냥 조용히 주변만 살피고 있었는데…… 나 진짜 아무 짓도 안 했어! 근데…….”
“알아. 인마.”
“하…….”
준성이는 망연자실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봤다.
“계획 완전히 뒤틀린 거 같은데…… 괜찮아? 괜히 나 때문에…….”
준성이가 말하는 사이 뒤에선 약속했던 매디슨이 나타났다.
“어……? 매디슨 레인? 아니, 으엥?”
“안녕하세요?”
그녀의 밝은 인사에 준성이는 눈이 휘둥그레진 채 나를 바라봤다.
“이게 무슨 일이야? 뭐, 뭔데? 대체?”
“일단 자리부터 옮기죠. 밖에서 할 이야기는 아닌 거 같으니까요.”
“예. 그러시죠. 근데 우리 옷차림이 어디 밖에서 돌아다닐 법한 옷들은 아니라…….”
매디슨은 화려한 빨간색 드레스. 그리고 나와 준성이는 검은색 턱시도.
어디 싸구려 술집과는 거리가 먼 옷차림.
그리고 매디슨은 유명 배우였기에 함부로 돌아다니기도 애매했다.
여기 오는 길만 해도 카메라를 들고 있는 파파라치들이 심심치 않게 보였으니.
이럴 때 그나마 괜찮은 한 곳이 떠올랐다.
“그럼 성현 제작사로 가죠.”
내 말에 둘은 고개를 끄덕인 후 택시를 잡고 자리를 옮겼다.
***
성현 KMD 픽처스.
경비를 제외한 직원들은 대부분 퇴근한 텅텅 비어있는 건물.
준성이가 경비들을 먹을 것으로 현혹한 후, 나와 매디슨은 재빠르게 대표실로 올라갔다.
“뷰가 좋네요. 여기.”
그녀는 통유리 너머로 보이는 할리우드 전경에 미소를 보이며 말했다.
나는 내 손목을 감싼 시계를 준성이의 책상 위에 제일 먼저 내려놓은 후 그녀에게 말했다.
“앉으시죠. 시간을 많이 드리진 않을 겁니다.”
“네?”
일부러 의심 가득한 듯한 뉘앙스를 풍겨야만 했다.
아직 매디슨이 확실히 어떤 목적으로 내게 접근했는지 그 이유를 몰랐으니까.
“너무하네. 나랑 시간 같이 보내고 싶어서 돈 쓰려는 남자들이 한 트럭인데.”
“전 별로 관심 없어요. 지금 당장 중요한 건 따로 있으니까요.”
예쁜 건 예쁜 거고. 일은 일이었다.
지금 당장 중요한 건 따로 있었기에 그녀의 외모를 애써 무시하며 무관심한 듯 말했다.
“에밀 듀크에 대해선 얼마나 알고 있는 거죠?”
내 물음에 그녀는 피식 웃으며 대답했다.
“잘 알죠. 작년까지만 해도 작업을 같이했으니까요.”
“근데 굳이 저한테 이렇게 접근한 이유는요? 직접 제작사로 찾아오셨어도 됐을 텐데요.”
그러자 그녀는 인상을 찌푸렸다.
“여배우가 직접 영화제작사에 연락이라도 하라고요? 그것도 에밀 듀크와 친한 여배우가? 그런 소문은 쉽게 퍼져나가기 마련이죠. 차라리 혼잡한 파티에서 이렇게 사라지는 게 더 자연스러울지 모르죠. 이 대표님이 가드한테 잡혀주신 바람에 더 자연스럽게 된 거고요.”
“그럼 제가 파티에 갈 거란 건 알았다는 거네요?”
“네. 그 정도의 얄팍한 정보는 가지고 있어야 할리우드에서 살아남죠.”
그녀는 비아냥거리듯 고개를 까딱이며 자신의 파우치에서 담배를 꺼냈다.
“담배 괜찮을까요?”
“아뇨. 금연 중이거든요.”
매몰찬 대답에 매디슨은 아쉽다는 듯 입맛을 다셨다.
“이전 출연작까지만 해도 에밀 듀크가 제작한 작품에서 주연이셨죠?”
“네. 그 빌어먹을 개자식. 아무리 흥행 영화 제작자라지만 쓰레기 같은 인간이죠.”
그녀는 여태껏 쌓인 게 많은 듯 한풀이를 이었다.
에밀 듀크가 제작을 맡기로 했던 그녀의 차기작 <블루 컴페티션>은 완전히 엎어졌다.
그 이유는 다름 아닌 그저 에밀 듀크의 변심.
하지만 그의 변심에는 역겨운 이유가 숨겨져 있었다.
“이제 이쯤 하면 진지한 대화 한번 나눌 때가 되지 않았냐라고 하더군요.”
“그건…….”
“네. 앞에 신분 상승의 고속도로가 펼쳐질 타이밍이었죠. 근데 그 길로 가면…… 아마도 빠져나올 수 없겠다 싶어 피했어요.”
매디슨은 씁쓸하게 웃으며 말을 이었다.
“그래서 영화는 엎어졌고. 저나 그 영화 각본까지 모두 써놓은 감독은 물먹은 거죠. 빌어먹을 새끼.”
할리우드 유명 제작자들의 횡포는 원래 유명했다.
영화감독들이 마음에 안 들면 온갖 핑계를 대며 영화 제작을 막는 것은 물론.
제작진들을 자기 입맛대로 바꾸며 영화감독들을 괴롭히는 둥.
온갖 패악질을 부릴 수 있는 위치였기에 힘없는 영화감독들은 그저 그들의 행동에 당해야만 했다.
그리고 그런 패악질에 시달렸던 한국인 감독도 역시나 있었다.
봉준호 감독.
그는 <설국열차> 편집권을 가지고 제작자와 마찰을 빚었다.
가위손이라는 별명을 가진 그 제작자는 개연성을 무시한 채 20분가량을 잘라버리려고 했지만, 봉준호는 이를 거절했다.
이에 자존심이 상했는지 그 쓰레기 같은 제작자는 아직 극장에 걸려 잘 상영하고 있는 영화를 VOD로 풀어버렸다.
‘말 그대로 쓰레기가 따로 없지.’
기 싸움 때문에 손해도 감수하는 쓰레기.
그런 자식들이 넘쳐나는 곳에서 준성이는 빛과 같은 존재였다.
이준성이 없었다면 지금처럼 편하게 영화를 만들 수 있을 리는 없었을 테니까.
“그런 쓰레기 자식이 나와서 TV에 나와서 하는 이야기. 그런 것들이 다 거짓이라고 말해봤자 할리우드 절반이 한통속이니 어디 통할 데도 없겠더라고요.”
“그러다 그나마 제일 들어줄 만한 사람들이 우리인 거고요?”
“‘적의 적은 친구다.’라는 말 있잖아요? 서로 그 쓰레기한테 찍힌 거 같은데요.”
그녀는 생긋 웃으며 나를 바라봤지만, 생각보다 얻은 것이 별로 없다는 생각에 나는 웃을 수 없었다.
‘어떻게 해야 할까…….’
“일단 당신과 함께 그 영화 작업을 하려 했다던 그 감독은 어떻게 됐나요?”
“톰 브라이언이요?”
톰 브라이언.
꽤 봐줄 만한 영화를 만들어낸 감독.
하지만 에밀 듀크 같은 작자에게 찍혀버렸으니 일을 구하기도 힘들어졌을 게 뻔했다.
분명 인맥으로 어떻게든 다신 영화판에 발 못 붙이도록 찍어누르고 있을 테니까.
“요즘은 뭐 별반 다른 소식 없더군요. 저 때문에 영화가 엎어졌는데…… 그 감독도 제 편을 들어준다고 그에게 덤벼들다가 된통 깨졌죠…….”
매디슨은 깊게 한숨을 내쉬며 말을 이었다.
“에밀 듀크가 쓰레기긴 해도 돈 끌어오는 능력이든, 영화 흥행시키는 능력 하나는 끝내주니까요. 그게 로비 같은 불순한 방법일지라도 말이죠. 그래서 영화감독 하나쯤 매장해버리는 건 그에게 쉬운 일이에요. 다들 그 눈치 보기만 바쁘니…….”
그녀의 이야기에 마일스 잭에게 들었던 이야기가 머리를 스쳤다.
-혼자 세상을 바꿀 순 없어요. 주변에 뜻을 함께하는 사람들이 있어야 가능한 일이에요.
생각해보면, 영화판도 마찬가지였다.
내가 아무리 노력해도 그런 쓰레기들이 넘쳐나는 한 아무것도 바뀌지 않을 게 뻔했다.
감독들보다 제작자들의 입김이 강한 이상, 영화감독이 하고 싶은 건 제대로 하지도 못할 테니까.
그리고 에밀 듀크를 쫓아내는 일도 결국 영화판을 위한 일.
그 방법에 어떤 게 있을지 잠시 고민했다.
‘지금 에밀 듀크의 명성에 흠만 가게 한다면…….’
스타 제작자.
그의 안목에 문제가 생겼음을 증명할 만한 좋은 방법은 그가 버린 작품을 만들어 보이는 것.
이걸 흥행시키고, 그 이야기를 필립을 통해 부풀린다면 할리우드에서 에밀 듀크의 입지는 줄어들 것이었다.
‘지금 당장 에밀 듀크가 빌어먹을 쓰레기라는 걸 밝혀봤자, 그의 세력에 의해 묻힐 게 뻔해. 그럼 그의 뒷배가 에밀 듀크의 능력을 의심하게 만들어야겠지.’
이게 성공한다면, 분명 에밀 듀크는 할리우드에서 지금과 같은 입지를 잃게 될 것이었다.
겸사겸사 그의 명성을 성현 제작사에서 가져오는 건 덤이었고.
[에밀 듀크가 엎은 영화. KMD 성현 픽처스에서 개봉.]이런 식으로 에밀 듀크를 공격하는 마케팅을 한 후, 흥행에 성공할 수 있다면.
그것보다 좋은 공격은 없다.
그리고 그러다 보면 에밀 듀크의 밑에서 온갖 고충을 겪던 감독들이 하나둘 이쪽으로 오게 될지도 모른다.
‘영화감독을 모두 잃은 영화 제작자라…….’
에밀 듀크라는 인물에게 있어 어울리는 최후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일단 톰 브라이언을 좀 만나봐야겠네요.”
“네? 왜요?”
“에밀 듀크의 명성에 흠이 가게 할만한 방법이 생각났거든요.”
내 말에 매디슨은 인상을 찌푸리며 어이가 없다는 듯 웃었다.
“그게 뭔데요?”
“사람들이 에밀 듀크의 능력을 의심하게 만드는 거죠.”
“그럼 지금 에밀 듀크가 엎은 톰 브라이언의 영화를 제작하겠다는…….”
끼익-.
매디슨이 눈을 휘둥그레 뜨며 물으려는 찰나 대표실의 문이 열렸다.
“지금 어디까지 이야기했어요?”
미소를 지으며 나타나는 준성이.
“네. 쟤가 저래 봬도 에밀 듀크보다 낫거든요. 생긴 건 별로지만.”
“뭐? 무슨 얘기야 그게?”
준성이는 이해할 수 없다는 듯한 표정을 보였고, 매디슨은 우리 둘을 보며 환히 웃어 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