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 the only genius film director RAW novel - Chapter (210)
나 혼자 천재 영화감독-210화(210/276)
미국.
성현 KMD 픽처스.
이준성은 미팅을 마치고 타이밍 좋게 온 경찬현의 전화에 핸드폰을 들었다.
“한국 어때? 좀 오래 있으니 좋냐?”
-좋지. 신토불이라고 모르냐?
“올 때 너희 어머니 김치 좀 가져와. 그 김치에 삼겹살 살살 싸서 먹고 싶다.”
헛소리로 인사를 나누다, 경찬현은 갑자기 목소리를 깔며 말했다.
-그, <스페이스 베가본드> 제작비 부족한 건 없냐?
“속편이 기준이야, 아님 5부작 기준이냐?”
-5부작.
“미친놈아, 아직 각본도 안 나온 걸 내가 무슨 수로 알아?”
-사실 점점 스케일도 키울 거라서 이번 작품 제작비가 얼마였지?
경찬현의 말에 이준성은 피식 웃으며 대답했다.
“9천만 달러. 근데 잠깐만 스케일을 더 키운다고?”
-응. 당연한 거잖아. 그래서 지금 월트 쪽에서 연락 왔어. 공동 투자해준다고. 한번 만나자던데?
“월트 쪽에서? 진짜?”
-어. 근데 좀 수상하긴 한데…….
“수상해? 뭐가?”
-여러 가지로.
“세상에 수상할 것도 많다.”
말은 그렇게 했지만 이준성도 조금은 찝찝했다.
월트는 저번에 <스페이스 베가본드> 구매 건으로 경찬현에게 한번 모욕을 당한 적도 있다.
그런데 갑작스러운 투자라니.
게다가 연락 상대가 경찬현이라는 점도 이상했다.
이준성에게 먼저 연락이 오는 게 먼저거나, 아니면 중간 연락책을 통해서 성현 KMD 픽처스에 통보하는 게 훨씬 합리적인 상황.
굳이 경찬현에게 먼저 연락했다는 것에서도 이준성은 의구심을 느꼈다.
하지만 과정이 어떻게 됐든 월트 쪽에서 자금을 끌어준다면 일은 더없이 쉬워질 것이다.
경찬현의 말대로 5부작으로 진행하게 된다면 분명 예상했던 금액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큰 금액이 필요한 건 뻔한 상황이었다.
“그래. 일단 만나 봐. 이상하긴 하지만…… 일단 긍정적으로 보자고. 그러다 계약서 이상하면 투자 안 받으면 그만이지.”
-음. 알겠어. 끊는다?
“김치. 잊지 말고…….”
툭-.
“매정한 놈.”
이준성은 피식 웃고 전화기를 내려놓고 다시 일에 집중했다.
***
같은 시각.
월트 코리아.
임지훈 대표는 월트 코리아로부터 내려온 사항을 처음엔 이해할 수 없었다.
본사에서 이렇게 공격적으로 어떤 사람을 데려오라고 한 적은 처음이기도 하거니와, 이렇게 파격적인 조건으로 감독을 대우하는 것도 처음 있는 일.
‘밥 아리거가 경찬현이 어지간히 마음에 들었나 보군.’
임지훈은 일단 급한 대로 경찬현과의 약속은 잡아뒀다.
그를 어떤 식으로 설득할지에 대한 방법은 간단했다.
경찬현이 돈에 낚이지 않는다는 건 여러 차례 증명이 된 상황.
이런 상황에서 쓸 방법은 간단하고도 명료했다.
‘정치질.’
지금 당장 KMD 그룹 이사회에서는 볼멘소리가 나오고 있는 상황.
경찬현은 말도 되지 않는 월트의 5억 달러 제안을 대차게 거절했기에 이정호 회장을 제외한 이사회 쪽에선 이미 무지몽매한 놈으로 낙인찍힌 상황이었다.
이런 상황에서 움직일 수 있는 가장 좋은 인물은 아마도…….
‘이창호.’
이정호 회장의 친동생이자 그룹의 부회장.
이정호의 아들 이준성은 KMD 그룹에 관심이 없어 보였기에, 이정호 회장의 사후 당연히 그 권력이 자신의 손에 들어올 거라 기대하고 있던 그 인간을 건드려볼 생각이었다.
‘그의 입장에선 이준성이든 경찬현이든 둘 다 눈엣가시일 테니…….’
그룹을 떠날 줄로만 알았던 조카의 화려한 귀환. 그리고 그걸 돕는 경찬현.
어쩌면 이창호를 조금만 자극해도 자기 멋대로 먼저 움직여줄지도 몰랐다.
‘이정호를 제외한 KMD 이사회 그 등신들은 자기들이 무엇을 손에 쥐고 있는지 모른다.’
경찬현과 이준성은 그야말로 한국의 대표 영화 제작사를 만든 장본인들.
하지만 그들이 어떤 일을 했는지 KMD 그룹의 이사회들은 제대로 알지 못하는 듯.
그저 5억 달러에만 눈이 돌아있는 상황이었기에 임지훈에겐 호재였다.
무능력한 지도부 밑에 유능한 부하.
그리고 그 유능한 부하는 그 무능력한 지도부에 질려 떠나가는 그림.
고리타분하지만, 고전에서부터 이어온 확실한 클리셰에 임지훈은 이창호 부회장 쪽 연락처를 수소문했다.
***
다음 날.
임지훈은 이창호 부회장과 쉽게 만날 수 있었다.
경찬현과 이준성에 대한 이야기로 넌지시 떡밥을 던지자마자 바로 걸려 올라온 그의 모습에 임지훈은 본심을 숨긴 채 사람 좋은 미소를 보였다.
“그래. 반갑구먼.”
“영광입니다. 이창호 부회장님. 부회장님의 높은 명성은 건너 건너 많이 들었습니다. 하하.”
“영광은 무슨. 됐네. 이 사람 참…… 하하.”
이창호는 기분 좋은 미소를 보이며 자리에 앉았다.
“그래, 쯧. 경찬현과 이준성에 대한 이야기라고?”
서론도 없이 훅 치고 들어오는 이창호의 말에
“네. 부회장님. 이준성 그 친구가 좀 그렇죠? KMD 그룹 쪽엔 관심도 없던 거 같더니…….”
임지훈의 말에 이창호는 고개를 끄덕였다.
“하…… 영화 하러 집 나갔던 놈이. 쯧…… 나이가 드시더니 형님도 너무 유해졌어. 그런 자식을 왜 다시 거둔 건지 원…… 지금 당장 신규 사업이 급한데 말이야. 영화에나 신경을 쓰라고 하시니 쯧.”
임지훈의 예상대로 이창호는 이미 KMD의 영화 사업에도 불만이 많아 보였다.
“그러게 말입니다. 성현 KMD 픽처스에서 돈을 끌어와도 모자랄망정…….”
“내 말이! 쯧. 조카 놈이지만, 어렸을 때부터 자기 멋대로 하는 꼴에 예뻐 보인 적이 없어. 그 조카 년은 또 얼마나 싸가지가 없는지 원. 작은아버지에 대한 존중이 없어요. 빌어먹을 연놈들 같으니.”
이창호는 그간 쌓인 게 많았는지 먼저 술술 이야기를 풀어냈다.
임지훈은 그의 모습을 보며 단번에 파악할 수 있었다.
‘KMD 그룹 차지 못하는 걸 괜한 데서 신경질이나 부리고 앉아있네.’
확실히 소문대로 능력은 떨어지지만, 욕심은 많은 그런 인간처럼 보였다.
그래서 오히려 경찬현, 이준성에 대한 이야기로 솔깃한 반응을 보였던 건지도 모른다.
“그러면 제 제안을 한번 들어보시겠습니까?”
“그래, 내 그걸 들어보려 온 거야.”
“사실 성현 KMD 픽처스는 경찬현 감독만 없으면 알아서 사라질 겁니다. 경찬현만 없으면 이준성 대표는 아무것도 아니라는 거죠.”
임지훈의 말에 이창호는 솔깃한 듯 눈썹을 치켜올렸다.
“그게 진짜인가?”
“네. 이준성 대표는 사업가로서의 기질을 발휘할 뿐이죠. 곧 경찬현이라는 하인을 부리는 주인인 겁니다.”
임지훈의 간드러지는 목소리에 이창호는 흐뭇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그렇다면…… 주인과 하인 사이를 멀어지게 만들어라?”
“맞습니다. 하하. 역시 훌륭하십니다. 그렇게 되면 이준성은 그저 하인 없이 주인 행세를 해야 하는 바지사장일 뿐이죠.”
“그럼 내가 어떻게 하면 되겠나?”
“오해를 만드는 걸로 시작하는 게 좋겠죠.”
“오해라……?”
임지훈의 혓바닥 놀림에 이창호는 점점 스며들 듯 그의 말에 빠져들었다.
***
며칠 후.
이창호 부회장은 경찬현이 있는 성현 KMD 픽처스 한국 지부를 찾았다.
‘빌어먹을 놈이 돈 벌었다고 생색내긴.’
미국 본사 건물도 꽤 화려했지만, 한국 지부 역시도 화려하게 꾸며놓은 건 마찬가지였다.
건물로 들어가자마자 기다렸다는 듯 비서는 허리를 숙인 후 환한 미소를 보이며 이창호를 향해 인사했다.
“안녕하십니까. 부회장님.”
“카악, 퉤. 안녕은 씨…… 장난치나.”
“네……?”
“부회장을 대표가 직접 맞이 안 해? 경찬현 그 자식이 뭐 되나?”
이창호의 말에 비서는 당황한 듯 눈을 껌뻑였다.
“대표님은 방금까지 MILM에 계시다가…….”
“요즘 애들은 압존법을 모르나? 내 앞에서 대표님?”
“죄, 죄송합니다. 그, 그게…….”
“쯧. 닥치고 안내나 해. 기분 더러워지려고 하니까.”
이창호가 귀찮다는 듯 손짓하자 비서는 숨을 죽인 채 앞장섰다.
그리고 대표실 앞에서 이창호는 문을 걷어차며 안으로 들어갔다.
쾅-!
그 소리에 경찬현은 당황한 듯 눈을 크게 뜨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아, 안녕하십니까, 부회장님.”
“안녕은 무슨. 지금 안녕하게 생겼어? 너 뭐냐?”
예상치도 못한 이창호의 반응에 경찬현은 눈살을 찌푸리며 이창호를 쳐다봤다.
“이 새끼 눈깔 봐라. 하, 주인도 못 알아보고 물어버릴 개자식 눈깔이네.”
“…….”
경찬현은 아무 말 없이 이창호를 한번 훑었다.
이정호 회장과는 전혀 다른 비주얼.
같은 핏줄이라곤 전혀 믿어지지 않는 그의 모습과 태도.
하지만 이정호 회장의 동생이자, 이준성의 작은아버지이기에 경찬현은 한 수 접고 이를 악물었다.
“무슨 일 때문에 그러시는 겁니까?”
“하, 그걸 몰라서 묻는 건가? 형님은 이런 놈이 뭐가 예쁘다고. 등신같이 어리바리해 보이는구먼. 영화 그깟 게 뭐라고 이렇게 신경을 써주는 건지.”
“…….”
“너는 이 새끼야. 부회장이 회사로 찾아왔으면 정문 앞에서 대가리를 박고 기다리는 것도 아니고. 대표실에서 뻗대고 앉아있어? 참나. KMD 그룹이 우습냐?”
이창호는 수행 직원들에게 귀찮다는 듯 손짓하자 그들은 조심스럽게 문을 닫고 밖으로 나갔다.
그리고 이창호는 담배를 입에 물며 경찬현에게 고갯짓했다.
“아…… 제가 라이터가 없습니다.”
“뭐?”
“담배를 끊은 지 좀 돼서요.”
“이런 씨…… 야! 상철아!”
이창호의 외침에 수행 요원 중 한 명이 급히 달려들어 온 후 담뱃불을 붙였다.
그리고 깊게 연기를 내뱉으며 경찬현을 바라봤다.
“그런 싹퉁머리로 여기까지 오니까 좋냐? KMD 자본이나 쪽쪽 빨아먹으면서 올라온 기생충 같은 새끼야.”
“제가 숫자는 잘 모르지만, 그건 틀린 말씀 같은데요.”
“뭐?”
“<스페이스 베가본드>로 이정호 회장님께 큰 도움을 받긴 했지만, 그 이상의 매출도 냈고. 성현 KMD 픽처스에서 개봉한 영화만 해도 오히려 저희 돈이 KMD 그룹 쪽으로 들어가고 있다고 생각됩니다.”
경찬현의 대답에 이창호는 어이가 없다는 듯 웃어 보였다.
“뭐라는 거냐? 그깟 영화 덕분에 KMD 그룹이 도움이라도 받은 것처럼 말하네?”
“그렇다고 저희가 도움만 받은 건 아니라는 겁니다.”
“하…… 나 이 새끼가 따박따박 말대답은…….”
경찬현은 선을 넘지 않는 것에 집중하며 최대한 이창호를 상대했다.
쓰레기 같은 인간일지라도 명색이 KMD 그룹의 부회장.
“그래서 여기 왜 오신 겁니까?”
자꾸 말만 빙빙 돌리는 이창호를 향해 경찬현이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
“너 그 정도 해 처먹었으면 그만 나가라.”
“…….”
“아무리 너네 제작사가 KMD로부터 독립적이다 뭐다 해도. KMD 이름을 달고 있는 한…….”
“그건 회장님과 협의가 이미 끝난 일인데요. 저희는…….”
“이사회는? 이래서 무식한 새끼들이랑 말을 섞기 싫다니까. 형이 네 뒤 봐주니까, 뭐 된 거 같지?”
이창호의 말에 경찬현은 관심 없다는 듯 대답했다.
“네.”
“뭐? 이 새끼가…….”
“할 말 다 하셨으면 나가시죠.”
시큰둥한 경찬현의 표정에 이창호는 인상을 찌푸렸다.
당최 무슨 생각을 하는 건지 알 수 없는 표정에 이창호는 한 번 더 깊게 담배를 빨았다.
“카악- 퉤.”
이창호는 가래침을 바닥에 뱉자 경찬현의 눈 밑이 살짝 떨려왔다.
“KMD에서 좋은 말로 할 때 나가는 게 좋을 거야. 안 그러면 결과는 어떻게 될지 네 상상에 맡기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