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 the only genius film director RAW novel - Chapter (227)
나 혼자 천재 영화감독-228화(228/276)
다음 날.
전날 밤 오랜만에 위장에 거의 술을 쏟아붓듯 마시며 준성이의 이야기를 들었다.
-이게 숨기려고 숨긴 게 아니고. 어쩌다 보니 말할 타이밍을 놓친 거야. 그건 진짜 미안하다.
이미 만난 지는 꽤 오래된 상황.
생각해보니, 미국에 있을 때도 한국에 유난히 자주 왔다갔다 했던 것, 이 역시도 연애의 일환이었던 듯싶다는 생각이 머리에 스쳤다.
“끙…….”
준성이도 과음 때문에 힘들었는지 신음을 내뱉으며 몸을 비비적거렸다.
생각해보면 이전 삶에서 준성이는 김은하가 아닌 다른 이와 결혼했었다.
그 결혼 생활이 어땠는지는 모르지만, 그 결혼식엔 찾아갈 수 없었고.
이번 생은 당당하게 찾아갈 수 있다는 생각에 피식 웃음이 나왔다.
“야, 일어나.”
“어……? 몇 신데?”
잠긴 목소리로 눈을 뜨지도 않은 채 준성이가 물었다.
“2시. 이제 슬슬 준비해야지.”
“아직 좀 남은 거 아니냐……? 뭐 이리 일찍…….”
“씻고. 깔끔하게 좀 차려입어야지.”
“끄으…… 알겠어.”
준성이의 결혼식도 놀랍긴 했지만, 지금 당장 중요한 건 골든 글로브 시상식.
필립은 심사하는 동안 어떤 영화사하고도 연락해서는 안 된다는 원칙을 앞세워 공정한 심사를 진행하려 했다.
“어떻게 되려나…….”
***
그날 저녁.
우리는 준비를 끝마친 후 바로 힐튼 호텔로 향했다.
HFPA의 부패와 더불어 인종차별 스캔들, 그리고 로빈슨 버크의 성추행 사건에 의해 많은 우려가 있었지만, 필립과 체스터가 HFPA 개선을 광고하며 열심히 활동한 덕분에 그 논란들은 비교적 빠르게 그 논란들은 잠식됐다.
“이야…… 저기 보이냐? 존 뎁! 미쳤다. 미쳤어! 와, 안젤리나까지! 대박…….”
옆에 따라오던 준성이는 호들갑을 떨며 시끄럽게 떠들어 댔다.
“진짜 성공하긴 했다. 그치?”
“아직 멀었어.”
“쯧. 욕심만 늘었어?”
준성이는 혀를 차며 물을 한잔 들이켰다.
그리고 골든 글로브를 찾은 많은 영화인들과 인사를 나눴다.
톱스타 배우들이라 불릴 배우들이 먼저 앞다투며 내게 다가오는 것을 보곤, 준성이는 당황한 듯한 눈치로 내게 물었다.
“뭐, 뭐냐? 미친…… 이게 무슨 일이래…… 잘 부탁한다니……?”
준성이가 눈을 크게 뜨며 묻자, 옆에 앉아있던 톰 브라이언이 가벼운 미소를 보이며 대답했다.
“경찬현 감독님 신작에 관심 있어 하는 톱배우들이 엄청 많아졌어요.”
“그럼 지금 인사를 나눈 게……?”
“일종의 어필이죠. 차기작에 불러달라는.”
브라이언이 말을 끝내기가 무섭게 준성이는 혀를 내두르며 말했다.
“이야…… 잘 컸네. 경찬현이. 저런 배우들이 먼저 어필하는 감독이라니…… 차기작 준비한다는 소식도 없는데 벌써들 저러고 있는 거야?”
“뭐, 그냥 인사치레지. 그렇게까진…….”
내 말에 브라이언은 고개를 저었다.
“에이, 대표님. 방금 인사 나눈 배우들, 어디 가면 함부로 머리도 안 숙이는 배우들이에요. 그런 배우들이 순한 양이 된 건데요?”
“하하…….”
내가 멋쩍게 미소를 보이자, 준성이는 피식 웃으며 내 어깨를 툭툭 건드렸다.
“아주 스타 감독이야. 아주?”
“뭐래.”
“하, 부끄러워하긴.”
“닥쳐. 진행자 올라왔다.”
제68회 골든 글로브의 진행자는 스탠딩 코미디로 유명한 릭 베이스.
주변 사람들은 웃음을 터트렸지만, 우리나라 감성과는 좀 거리가 있는 그의 말에 어색한 미소만 나왔다.
-그간 골든 글로브에서 벌어졌던 일들. 이제는 말할 수 없는 그 이름의 주인이 생각나네요. 하하. 하마터면 올해 골든 글로브 역사가 끊길 뻔했지만, 누군가의 도움으로 결국 이렇게 행사가 진행되는군요. 올해 일이 하나 줄을 줄 알았는데…… 고마워요. 하하!
릭 베이스는 앞에서 능숙하게 진행했고, 얼마 지나지 않아 최고의 영화 부문 상을 발표하는 배우가 자리에 나왔다.
그 배우는 유진 캐리.
그는 등장과 동시에 무수한 갈채를 받으며 마이크 앞에 섰다.
-신사 숙녀 여러분. 안녕하세요. 전 오늘 여러분들께 영화 제작 부분의 골든 글로브 수상을 발표하기 위해 이 자리에 섰습니다. 그게…….
유진 캐리는 입맛을 다시며 씁쓸한 듯 허공을 바라봤다.
-오늘 제가 할 일의 전부죠. 노미네이트 된 게 없어서 하하! 나만큼 마음 편한 사람도 없을걸요!
캐리는 입꼬리를 올리며 자조적인 표정으로 말을 이었다.
-약간 분위기나 띄우며 뭐, 시답잖은 농담이나 하다가 발표하면 되겠죠! 하하!
엄숙한 시상식에서도 자조적인 듯한 뉘앙스로 사람들에게 웃음을 주는 유진 캐리의 모습에 나도 모르게 입가에 미소가 번졌다.
“확실히 유진 캐리는 다르다. 뭔가 동서양을 관통한 듯한 개그랄까?”
“그럼. 유진 캐리인데…… 다르지. 한참은 다르지.”
옆에서 준성이도 피식거리며 내게 말했다.
유진 캐리는 한참을 분위기를 휘어잡고 사람들의 웃음을 이끌어내고 난 후에야 노미네이트 된 작품을 소개했다.
-올해는 참 재밌는 작품들이 쏟아져나왔어요. 더불어 해가 가면 갈수록 재밌는 작품들이 쏟아져나오는 거 같기도 하고요. 누가 무슨 마법이라도 부리는 거 같달까요?
유진 캐리는 한참 뜸을 들이며 스탠딩 코미디를 이어 가다가 품에서 종이봉투를 꺼냈다.
-자자…… 푸념은 여기까지 하도록 하고요! 이제 발표해야겠죠? 흠…… 보자…….
캐리가 봉투를 열고 능글맞은 미소를 지으며 주변을 훑었다.
그러곤 마이크에 대고 크게 외쳤다.
-성현 KMD 픽처스! <스페이스 베가본드 2>! 축하드립니다! 저도 이거 정말 재밌게 봤거든요!
“와! 대박!”
동시에 옆에 준성이의 외침.
제작자로서 받은 상에 잠시 눈을 껌뻑였다.
“야, 정신 차리고 얼른 나가. 네가 받아야지. 제작자가 받는 건데.”
준성이가 내 등을 툭 치자 몸이 자동으로 벌떡 세워졌다.
-저기 경찬현 대표님이 몸이 굳었나 봅니다! 아니, 여러분들 박수 소리가 너무 작아서 그런 걸까요!?
앞에서 유진 캐리가 능글맞은 멘트를 치자, 박수가 더욱 커졌다.
“하하…….”
천천히 단상으로 올라갔다.
그러자 옆에서 많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축하드려요!”
“엄청나네. 동양인이 골든 글로브 단상에 오르는 것도 최초 아냐?”
“이제 경찬현 대표가 그 시작이겠지. 앞으론 흔치 않은 일이 될 거 같은데.”
기분 좋은 이야기들.
그리고 스크린이나 TV 속에서나 봤던 슈퍼스타들의 박수갈채를 받으며 단상에 올라가자 붕 뜨는 듯한 기분에 입가에 절로 미소가 번졌다.
“축하해요. 경찬현 감독님.”
단상에 올라가자마자, 유진 캐리는 내게 상을 건네며 기분 좋은 미소를 보였다.
“가, 감사합니다…….”
“대화를 좀 나누고 싶은데, 여긴 사담 나누는 곳은 아니니…… 나중에 뵙죠. 나누고 싶은 이야기도 많거든요.”
“아…… 네. 하하. 너무 좋습니다.”
내 대답에 유진 캐리는 특유의 눈썹 놀림, 마치 눈썹 근육이라도 따로 있는 듯 능글맞게 움직이는 그의 눈썹에 웃음이 터졌다.
“그럼 좋은 소감 부탁드립니다.”
“아, 네.”
내 손에 쥐어진 골든 글로브.
영롱한 황금색 지구본의 모습에 차가운 금속 촉감.
그리고 영화인들의 박수갈채까지.
비현실적이라고 느껴질 정도의 상황에 힘겹게 말을 시작했다.
“일단 감사합니다. 한국 시상식에선 이런 자리에 서면 항상 누군가에게 감사만 하고 끝나거든요. 막상 이 자리에 서니 누구 이름을 꺼내야 할지도 모르겠네요. 뭐…… 일단 모두에게 감사합니다. 이 자리를 빛내주고 있는 여러분들에게도요.”
내 말에 앞에선 더욱 큰 박수갈채가 들려왔다.
어느 정도 긴장이 풀리자, 마음도 조금 편해졌고 덕분에 잠시 여유를 가질 수 있었다.
“일단 <스페이스 베가본드 2>는, 수없이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인생을 걸어가며 만든 영화입니다. 대충 만든 건 하나도 없죠. 단적으로, 라이트 세이버 효과음을 만드는 데도 몇 주가 걸린 수준이니까요.”
영화를 대충 만들어서는 안 된다는 것.
당연하지만, 수많은 영화 제작사들이 대충 넘기는 것을 꼬집자, 몇몇 거물급 인사들의 표정이 굳어졌다.
하지만 신경 쓸 건 아니었다.
지금 성현 KMD 픽처스는 공들여 만든 영화로 세상에 인정받은 것과 다름없었으니까.
심지어 최초로 동양인이 골든 글로브 시상식장 단상에서 상을 쥐고 있다는 것.
그것만으로도 내게 자격은 충분했으니까.
“저희 성현 KMD 픽처스는 항상 이렇게 영화를 만들 겁니다. 단지 이름값에 기대어 대충 만드는 일 없이, 한 컷 한 컷 소중히 만들 겁니다. 그리고 <스페이스 베가본드 2> 성적만 봐도 관객들은 그런 영화를 기다리고 있다는 걸 알 수 있죠.”
그간 배우의 이름값에 기대 대충 만든 영화.
시나리오에는 돈 안 들이고 대충 유명한 배우들만 캐스팅한 후 만들어낸 짜투리 영화.
당최 목적을 알 수 없는 쓰레기 영화.
그런 영화들은 사라져야만 했기에 나는 더욱 강조하며 말을 이었다.
“영화를 단순히 돈벌이용으로 보지 말아주셨으면 좋겠습니다. 물론 영화로 돈을 버는 건 맞지만, 단순히 그런 돈벌이 수단으로서 저급한 영화는 사라져야 할 겁니다. 더 이상 그런 영화는 돈도 되지 않을 테니까요.”
일종의 경고 같은 조언에 시상식장의 분위기는 반으로 쪼개졌다.
내 뜻에 동참한 듯한 영화인들의 엄청난 환호도 들려왔지만, 그와 달리 고위 관계자들의 테이블에선 차가운 분위기가 느껴졌다.
몇몇은 죽일 듯이 나를 노려봤고, 대놓고 어이가 없다는 듯 팔짱을 끼고 바라보는 사람도 있었다.
‘될 대로 되라지.’
“이 상을 주신 분들께 다시 한번 감사 인사를 전합니다. 감사합니다!”
마지막 말을 한 후 단상으로 내려왔다.
자리로 돌아오자, 준성이는 연신 고개를 저은 후 이마를 짚었다.
“왜? 나 뭐 잘못했냐?”
내 물음에 준성이는 인상을 찌푸리며 말했다.
“당연하지! 엄청나게 큰 잘못을 했지!”
“뭐?”
내 되물음에 준성이는 울상을 지으며 대답했다.
“어떻게 내 이름도 말 안 하냐? 서운하네.”
“하…… 참나.”
“골든 글로브에 퍼진 내 이름 기대했는데…….”
“다시 올라가서 네 결혼 축하라도 해줄까?”
“그건 아니고…… 그거 했다간 은하한테 맞아 죽을 거 같은데.”
준성이는 어이가 없다는 듯 실소를 터트렸다. 그러곤 주변을 의식한 듯 조심스럽게 말했다.
“근데 저기서 말한 거 괜히 적 만드는 거 아니냐? 꽤 민감한 이야기잖냐. 영화 대충 만들지 말라고 일침 날리는 건 좀…….”
“하고 싶은 말 하는 거지.”
“그거 알지? 벼는 익을수록 고개를 숙인다고. 빳빳하게 고개 들다가 괜히 주변에 적이라도 생길까 봐서 그래.”
준성이는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나를 쳐다봤다.
주변에 적이 생기는 것을 고려하지 않은 건 아니었다.
주위 거대 제작사들, 동시에 배우들까지.
하지만 최근 월트 픽처스에서도 새로운 작품에 꽤 공을 들이고 있다는 소식이 들려왔고.
거대 제작사들도 단순히 스낵 무비 그 이상을 추구하고 있다는 소식까지 들려온 마당에 겁먹을 필요는 없었다.
“괜찮아.”
“뭐…… 그래. 로빈슨 버크도 날려버린 사람인데. 알아서 하겠지. 쯧, 어쩌면 저 인간들이 널 피할지도 모르겠다. 정신 나간 놈이라고.”
준성이는 나를 흐뭇하게 보다가 내 앞에 있던 골든 글로브 상을 낚아챘다.
그러곤 자기 핸드폰을 내게 건넸다.
“멋들어지는 사진이나 한 장 박아줘.”
“그걸 왜 네가 들고 찍냐?”
“전 성현 KMD 픽처스 대표의 한이라도 풀게. 좀 찍어 봐.”
“하, 정신 나간 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