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 the only genius film director RAW novel - Chapter (242)
나 혼자 천재 영화감독-243화(243/276)
끝없이 쏟아지는 좀비들.
그리고 자신을 향해 울부짖고 있는 동료들.
끝없이 반복되는 그 악몽 속에서 그레이엄은 꿈에서 깼다.
소리조차 지를 수 없었던 그 공포.
마치 누군가 목을 비틀고 있는 듯한 느낌에 그레이엄은 인상을 찌푸리며 옆에 있던 물을 바라봤다.
“물…….”
얼마 남지도 않은 식수와 식량.
그레이엄은 거의 비어있는 물병을 보며 신경질적으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벽면에 붙어있는 신문들엔 좀비의 등장 이후 세상이 어떻게 변해왔는가에 대해 적혀있었다.
[급속도로 환경 변화…… 북극 빙하가 녹아내려…….] [북극에서 새로운 발견을 한 과학자들 이상 반응…….]이런 뉴스부터 시작해서 점차 세상이 이상하게 변해갔다는 것.
그걸 마치 일과처럼 쭉 훑어본 그레이엄은 인상을 찌푸린 채 지팡이를 짚고 밖으로 나섰다.
“그레이엄 씨!”
생존자 거주지에 새로 편입된 지 얼마 지나지 않은 저스틴.
그는 다급한 표정으로 그레이엄을 불러 세웠다.
그레이엄은 탐탁지 않게 그를 쳐다보며 신경질적으로 물었다.
“왜.”
“지금…… 생존자 거주지 주변에 그들이 몰려들고 있어요…….”
저스틴의 겁먹은 표정에 그레이엄은 인상을 찌푸리며 말했다.
“개소리.”
“아니에요. 진짜라고요!”
“헛거를 봤겠지. 꺼져. 여기 온 지 얼마나 됐다고 벌써 분위기 해치려 들지 말라고.”
그들의 대화가 마무리돼 갈 때쯤.
경찬현이 큰 소리로 외쳤다.
“컷! 좋습니다.”
경찬현의 목소리가 울리자 글렌은 다시 천진난만한 미소를 보였다.
하지만 유진 캐리는 여전히 인상을 찌푸린 채 생존자 거주지를 훑었다.
“힘들진 않으세요? 정말 대단하신 거 같아요.”
글렌이 뒤에서 물었다.
그러자 유진 캐리는 인상을 찌푸리며 말했다.
“뭐가?”
“그렇게 몰입해서 연기하는 거요.”
“하, 웃기는군. 더 힘든 게 뭔지 알려줘?”
유진 캐리는 글렌을 노려보며 말했다.
“내 앞에선 다들 그래. 좋은 연기 잘 봤다고. 다들 가식적인 미소를 띠며 마치 나를 대단한 사람처럼 만들지. 근데 말이야…… 그 속은 아주 시커멓지.”
유진 캐리의 말에 글렌은 당황한 듯 고개를 갸웃거렸다.
“뒤에 가선, 그냥 얼굴로만 웃길 줄 아는 삼류 배우로 취급하더군. 연기력은 없이 껍데기 때문에 뜬 배우. 그렇게 평가하던 사람들이 넘쳐 나. 그래서 난 증명하려 이런 연기를 하는 거야.”
누군가에게 증명하기 위함에 연기해야 한다는 것.
<엠티드 바디>에서 유진 캐리의 목적은 그랬다.
그렇기에 그레이엄에 항상 몰입해있는 게 정신적으로 너무나 힘든 일이었지만, 어떻게든 버텨내야 했다.
“그러니까, 그렇게 실실 웃으며 대화나 할 생각 있으면 꺼져. 너랑 나는 이 영화에서 갈 길이 다르니까.”
차갑디차가운 유진 캐리의 말에 글렌은 멋쩍게 뒤통수를 긁적였다.
글렌의 입장에선 겪어보지 못한 일.
쉽사리 이해할 수 없는 일이었다.
무명 배우에겐 일단 이름을 알리는 게 우선.
하지만 이름이 알려진 이후엔 어떤 식의 행보를 이어 나가야 하는진 알 수 없었다.
“흠…….”
글렌은 유진 캐리의 멀어지는 뒷모습을 멍하니 바라봤다.
엄청난 짐을 지고 있는 듯한, 무거운 그의 뒷모습.
다른 영화와는 전혀 다른 그의 모습에 글렌은 깊게 숨을 내쉬었다.
***
며칠 후.
유진 캐리는 호화로운 집을 내버려 두고, 낡은 모텔 방에 묵었다.
그레이엄의 감정을 한껏 더 이해해 보기 위한 고립.
하지만 그 고립은 쉽지 않았다.
내면을 갉아먹는 벌레가 꿈틀대는 기분.
점차 인간성을 잃어가는 듯한 느낌에 유진 캐리는 잠시 그레이엄에서 벗어날 생각으로 잠시 밖으로 나섰다.
“후…….”
뭐가 그리 바쁜지, 낡은 모텔엔 몇몇 사람들이 옹기종기 모여 수다를 떨고 있었다.
잠시 마음속에 사라진 인간성을 조금이라도 되찾기 위해, 유진 캐리는 억지로 미소를 보이며 그들에게 다가갔다.
“안녕하세요?”
유진 캐리가 인사를 건네자 그 주위에 있던 사람들이 숙덕였다.
그러곤 한 남자가 대표하듯 조심스럽게 유진 캐리를 향해 물었다.
“유진 캐리 맞죠?”
“에이, 말이 되는 소리를 해. 이 사람아. 유진 캐리가 이런 데 왜 있어?”
“그러니까 말이야. 술 덜 깼어? 닮은 사람이겠지.”
그들의 말에 유진 캐리는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요. 유진 캐리. 하하.”
“거봐. 다들 장님도 아니고…… 쯧. 딱 봐도 유진 캐리구먼.”
그들에게 술 냄새와 땀에 찌든 냄새가 훅 끼쳐왔다.
어렸을 적 그렇게 싫어했던 가난의 냄새가 코로 들어오자, 유진 캐리는 간신히 인상이 찌푸려지는 것을 참았다.
“그래서 여긴 왜 왔수? 댁같이 돈도 많은 양반이. 체험이라도 하러 온 겨?”
“아…… 그건…….”
“이봐. 뭘 그런 걸 물어? 돈 많은 양반들 생각은 이해하려 들면 안 돼. 우리 같은 사람들은 머리가 쪼개진다고.”
그 무리 중 한 명의 말에 그들은 시시덕거리기 시작했다.
그 모습에 유진 캐리도 그레이엄이라는 캐릭터를 버려두고 웃자, 말을 꺼낸 사내가 유진 캐리를 보며 말했다.
“돈 많으면 뭐 해. 이런 데서 사는데. 우리 같은 놈들이랑 낄낄거리기나 하고.”
“그러게 말이야. 한 번 그 표정이나 좀 지어줘 봐. 우리도 한번 웃겨 줬잖아.”
그 말에 유진 캐리는 멋쩍게 웃으며 손을 저었다.
“하하, 지금 당장은 좀…….”
그가 출연한 제일 유명한 영화에 나오는 그 표정.
눈썹이 꿈틀거리고 입은 뒤틀린 그 표정은 한동안 유진 캐리의 전매특허였다.
하지만 언제부턴가 사람들은 유진 캐리를 보면 그 표정 이야기밖에 하지 않았고, 자신의 연기 이야기는 뒷전이었다.
그래서 그를 스타의 반열로 올려준 표정이었지만, 동시에 그를 배우가 아닌 단순한 개그맨으로 만드는 표정이기도 했다.
“왜? 뭐, 우리한테 보여주긴 아까워?”
“아뇨…… 그런 건 아니고요…….”
“쯧, 더럽게 비싸게 구네.”
시비를 틀 듯이 말하던 그 사내가 짜증 섞인 목소리로 투덜대자, 유진 캐리는 사람 좋은 미소를 보였다.
하지만 그 미소에 침을 뱉듯, 그 사내는 한껏 짜증을 내며 말했다.
“웃음이나 파는 게 뭐 어려운 일이라고, 저딴 식으로 비싸게 굴어. 뭐 누가 보면 알 파치노 정도 되는 대배우 정도 되는 줄 알겠네. 유진 캐리 주제에.”
그 사내의 말이 유진 캐리의 신경을 긁었다.
그의 입가에 퍼져 있던 사람 좋은 미소는 순식간에 사라졌고, 약간의 분노가 비쳤다.
“뭐라고?”
유진 캐리의 차가운 되물음.
그의 처음 들어보는 목소리에 모여있던 사람들은 순식간에 얼어붙었다.
방금까지 높은 톤으로 실실거리던 유진 캐리에게선 예측할 수 없는 목소리가 퍼지자, 말을 꺼낸 사내도 눈알을 굴렸다.
하지만 이내 그도 지기 싫었는지 약간 겁먹은 목소리로 유진 캐리를 향해 말을 덧붙였다.
“부자면 가난뱅이 말도 안 들리나? 다시 말해 줘?”
“아니, 아냐…….”
유진 캐리는 깊게 한 번 심호흡을 내뱉었다.
몇 주간 거의 그레이엄으로 살았기 때문인지, 이건 단순한 분노가 아니었다.
“이 빌어먹을 새끼가.”
“뭐?”
“내가 네 담당 어릿광대라도 되는 줄 아나 본데. 닥쳐.”
누군가 핸드폰을 들고 찍고 있었음에도, 유진 캐리는 흥분한 탓에 그런 것 따위는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하지만 유진 캐리를 향해 말을 쏘아붙인 사내는 지금 이 상황을 찍고 있다는 것을 알았기에 유진 캐리를 더욱 자극했다.
“이 새끼가 뭐라는 거야? 이젠 그 표정 연기도 제대로 못 하나 봐? 늙어서 얼굴 근육이 퇴화하기라도 했나?”
그 사내의 말에 유진 캐리는 점차 마음속에 자리 잡은 그레이엄이 튀어나오려 했다.
무시 받기 싫어하는, 독단적이면서도 잔인한 그 캐릭터가 온전히 유진 캐리와 한 몸이 된 듯.
유진 캐리는 옆에 비어있던 술병의 주둥이를 잡고 입에 털어 넣었다.
쨍그랑-.
“어……?”
이미 눈이 뒤집어져 있는 유진 캐리는 깨진 술병의 주둥이를 잡은 채 그를 노려봤다.
“방금 뭐라고 했냐?”
그러자 그 사내는 떨리는 동공으로 카메라를 바라봤다.
“야! 이거 찍고 있어. 이 새끼야…… 배우 인생 끝나기 싫으면…….”
“배우 인생?”
유진 캐리는 정신 나간 사람 같이 웃으며 그 사내를 바라봤다.
그러곤 그 사내가 입고 있는 더러운 옷 위로 살짝 손을 올리며 말했다.
“끝나면 끝나는 거지. 대신 벌레도 한 마리 데리고 가는 것도 겸사겸사 괜찮겠지.”
그 사내는 유진 캐리의 눈을 마주치자, 절로 몸이 굳었다.
방금 그가 내뱉은 말은 단순한 허세가 아니었다.
살벌한 살기가 느껴지는 그의 행동과 말에 그 사내는 무릎을 꿇었다.
“거기까지 하시죠.”
누군가의 목소리.
엄청난 덩치를 자랑하는 그 거구의 사내는 조심스럽게 유진 캐리를 향해 다가가 깨진 술병을 낚아채며 말했다.
“네가 뭔데 하라 마라…….”
유진 캐리가 잔뜩 화난 목소리로 말하자 그 사내가 대답했다.
“경찬현 감독님이 보냈습니다.”
“뭐……?”
“혹시나 이런 일이 생길지도 모르니, 유진 캐리 씨를 지켜봐달라고 했거든요.”
“경찬현이……?”
그 사내는 제임스.
경찬현의 자질구레한 일들을 모두 담당하고 있던 제임스는 씁쓸한 미소를 보이며 말했다.
“이런 일이 생길 줄은 몰랐는데, 쯧. 경찬현 감독이 부탁할 때만 하더라도 굳이 이렇게 해야 하나 싶었는데 말이죠. 일단 거기 핸드폰들 모두 주시겠어요?”
제임스의 말에 그 장면을 모두 담은 사람들은 급히 핸드폰을 숨겼다.
하지만 이미 모두 확인을 끝낸 그는 그들에게 다가가 핸드폰을 뺏은 후 모두 박살 냈다.
“이게 대체 무슨 짓입니까? 아니, 핸드폰을 그렇게……”
“이봐요! 그건 내 전 재산이나 마찬가지라고!”
제임스는 그들에게 다가가 방금 박살 낸 핸드폰보다 훨씬 가격을 쳐준 돈이 담긴 봉투를 그들에게 건넸다.
“이거면 방금 제가 부순 핸드폰보다 훨씬 좋은 걸로 살 수 있을 겁니다. 이걸로 합의 보시죠?”
봉투를 확인한 사람들은 제임스의 꿈틀거리는 팔뚝을 한번 힐끗 보곤,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곤 구경거리가 끝났다고 생각한 사람들은 모두 흩어졌고, 유진 캐리는 힘이 빠진 듯 자리에 털썩 주저앉았다.
“하하…….”
그러곤 유진 캐리는 허탈한 웃음소리를 내뱉었다.
방금 자기가 뭘 한 건지, 제대로 판단할 수 없는 감정.
이 순간에 갑자기 글렌의 물음이 생각났다.
-힘들진 않으세요?
이 말이 떠오르자, 유진 캐리는 잠시 멍하니 노을을 바라봤다.
그러곤 옆에 자리를 지키고 있던 제임스에게 물었다.
“경찬현 감독님이 시켰다고요?”
“네. 일상적인 생활에서까지 몰입하는 극단적인 메소드 연기를 하다 보면 스스로 잡아먹을 때도 있다고 하더군요. 뭐, 저는 잘 모르겠지만요.”
제임스는 담배를 입에 물고 불을 붙이며 말을 이었다.
“괜한 걱정인가 싶었는데, 오늘만 봐도 큰일 날 뻔했네요.”
“그러게요…….”
자신도 모르는 사이.
그레이엄이라는 존재는 유진 캐리에게 있어 점차 커지고 있었다.
그리고 그 위험성이 증명되듯, 오늘 만일 제임스가 없었다면 어떤 일이 일어날지 생각하자, 유진 캐리는 몸을 파르르 떨었다.
“다행이네요…… 다행이야.”
“경찬현 감독님에게 전화나 한 통 해보세요. 물론 보고는 다 해놓은 상태지만요.”
제임스는 싱긋 웃으며 유진 캐리의 등을 토닥이며 자리를 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