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 the only genius film director RAW novel - Chapter (27)
나 혼자 천재 영화감독-27화(27/276)
“뭐. 감이지. 왠지 그럴 거 같더라고.”
“뭐?”
“백진철. 그 새끼 깡패 출신이잖아. 우리도 정보는 있다고.”
김하은은 땅에 떨어진 담배를 발로 비빈 후, 우리가 사 온 담배 포장지를 이빨로 뜯었다. 그런 뒤 담배 한 개비를 내게 건넸다.
“피냐?”
“끊었다니까.”
“부럽네.”
김은하는 다시 담배를 입에 물고, 불을 붙인 뒤 물었다.
“그래서 어떻게 할 생각인데?”
“더 필름 H 팔다리를 자를 거거든.”
“백진철. 그 새끼 나름 철저해. 기자들 약점들도 다 잡고 있다고.”
“괜찮아. 알아.”
“뭐……?”
덤덤하게 말하는 내 모습에 김은하는 당황한 듯 어색하게 웃었다.
“지금 괜찮다고 말한 거야? 지금 뉴스에 네 얘기밖에 안 들려.”
“너랑 해결하면 될 문제야.”
“뭐?”
“영화 계속하고 싶지 않아?”
내 질문에 김은하는 한숨을 푹 내쉬었다.
“안 할 거야. 카악, 퉤! 더러워서 안 해.”
김은하는 거하게 침까지 뱉어가며, 말했다.
“영화? 내가 만든 건 영화가 아니야. 쓰레기지. 재활용도 안 되는 쓰레기.”
그녀는 잠시 먼 곳을 바라보는 듯하다가 영화를 찍으면서 있었던 일들을 얘기하기 시작했다.
이미 다 알고 있는 내용이었다. 나는 그저 고개를 끄덕였고, 준성이는 인상을 찌푸리며 화를 냈다.
“아니. 무슨 그런 벌레 새끼들이 다 있어? 각본까지 손을 댔다고?”
“그럼 그런 삼류 코미디 영화를 내가 만들고 싶었겠니? 가족 영화니 뭐니. 하도 지껄여 대서 수정한 거지. 그래서 나도 안 되겠다 싶어서 때려쳤는데…….”
김은하는 이런 이야기를 남에게 하는 게 처음인 듯 목이 메어 보였다.
“그, 돈이라는 게 내 발목을 잡더라.”
내 과거와 판박이였다.
하나부터 열까지. 너무나도 똑같은 수법. 그 수법을 당한 사람으로서 이가 갈리는 건 어쩔 수 없었다.
내가 주먹을 강하게 쥐고 있는 것을 보곤 김은하는 피식 웃었다.
“당한 건 난데. 왜 네가 화를 그렇게 내냐. 얼굴도 잘 모르던 놈이.”
“동기잖아.”
“퍽이나? 지나가면 인사도 안 했으면서.”
“너도 안 했으니까 그랬겠지. 인사 안 한 건 원래 쌍방 책임인 거 몰라?”
내 대답에 김은하는 환하게 웃었다.
“한국예대 미친개라며. 그럼 한번 짖어보기라도 해야지 않겠냐?”
“미친개? 이제 옛말이다.”
김은하는 옛 별명이 그리운지, ‘미친개’라는 말을 몇 번 더 읊조린 뒤 말을 이었다.
“이젠 물지도 못하면 짖지도 못하겠다. 하도 개 같은 일을 당해서.”
“그럼 같이 물면 되겠네.”
“같이?”
내 말에 준성이와 김은하는 동시에 고개를 내 쪽으로 돌렸다.
“일단. 좀 들어가서 얘기하자. 덥다.”
“잠깐. 숙녀 집에 이렇게 들어오는 건 좀 아니지. 야만인들아.”
김은하는 얼굴을 붉히며 인상을 찌푸렸다. 나는 그 모습을 보며 한숨을 내쉰 뒤 말을 이었다.
“그럼 씻고 내려와.”
김은하는 자신의 모습을 한번 내려다본 뒤 조그맣게 욕을 했다.
“앞에 좋은 카페 있던데? 거기서 기다린다.”
“오케이.”
김은하는 담배를 까먹지 않고 품에 안은 채 집으로 달려 들어갔다. 그러자 준성이는 내 어깨에 팔을 올리며 말했다.
“이야. 결국 됐네.”
“이제 백진철 팔다리 잘라야지. 대가리는 마지막에 메인 디쉬로.”
“식인종이냐? 뭔 징그러운 소리를 하고 있어.”
단번에 백진철의 목을 베어내는 건 불가능이다.
그놈 뒤에 뭐가 있는진 모르지만. 2022년엔 백진철은 더 잘나갔다.
연예기획사도 세우고, 연예계에선
꽤 먹혀주는 인사였다.
확실해진 다음에 노리는 게 좋다. 한 번에 끝내려다 오히려 잘못될 수도 있으니까.
우리는 김은하에게 말해둔 카페에 먼저 도착했다.
그리고 30분 정도 기다리니, 김은하가 그나마 사람 같은 모습을 한 채 카페 문을 열고 들어왔다.
“그래서 세부 계획은 어떻게 되는데.”
“정면 돌파.”
“뭐?”
“기자회견 바로 열 거야. 네가 도와주기만 한다면.”
이런 논란에 휘말린다고 해서, 잠적해버린다면 논란은 사실이 되어 버린다.
그리고 논란이 사그라들 때까지 기다리는 데는 수많은 시간이 걸리는 법.
<밤> 문제도 있으니, 소문이 대중의 관심에서 벗어날 때까지 기다릴 수도 없다. 부딪치는 수밖에.
“얘 말 믿어. 얘가 말하는 대로만 가면 뭐든 잘 되더라. 물론 상식을 좀 벗어나긴 한 거긴 하지만.”
준성이는 김은하에게 진중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준성이의 말이 맞긴 했다. 내 전략은 2001년에는 비상식적이다.
이때는 대중 매체에 얼굴이 알려진 사람들, 예를 들면 연예인들이 이런 논란에 휘말리면 잠적하는 것이 상식이었으니까.
그 논란이 사실이든, 아니든 그게 중요한 게 아니었다.
그저 소문이 사라지는 게 제일 급선무였다.
“우린 잘못한 거 없잖아. 그럼 들이박아야지. 미친개처럼.”
“들이박고는 싶지만…… 하아…….”
김은하는 말을 하려다 한숨을 내쉬었다.
“가족 걱정 때문에 그런 거지?”
“너 혹시 뭐 나 꿰뚫어 보고 있냐? 어떻게 그렇게 다 알아?”
“얘 부업이 돗자리 펴는 일이거든.”
“진짜 신기(神氣) 같은 거라도 있는 거야?”
김은하가 진지한 표정으로 인상까지 찌푸리며 내게 물었다.
팍!
“악! 왜 때려!”
나는 준성이의 뒤통수를 휘갈겼다.
“미친놈아. 진짜 같잖아. 그냥 농담이야. 근데 감은 좋으니까. 믿어봐. 잘 될 거니까.”
***
백진철은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책상 위에 쌓여 있는 다음 시나리오들을 살폈다.
제작비가 얼마 들지 않으면서 돈은 최대한 뽑아먹을 수 있을 법한 영화.
백진철에게 필요한 영화는 그런 것들이었다.
한창 시나리오를 찾아보던 중, 직원 중 하나가 급하게 뛰쳐 올라온 듯 숨을 헐떡이며 말했다.
“형님, 아니! 사장님. 지금. 지금! 경찬현 그 새끼가…… 허억. 허억.”
“뭐. 왜? 경찬현 그 여우 새끼가 왜?”
“뉴스 채널 좀 봐 주십쇼. 지금 기자회견을 한답니다.”
“뭐? 썅. 그게 무슨 개소리야?”
백진철은 한창 성인 영화가 나오던 채널을 돌렸다. 그리고 화면에선 같이 있어선 안 되는 두 남녀가 보였다.
-한국연예. 김기준 기자입니다. 최근 흘러나오는 소문들이 거짓이라는 말씀이시죠?
-네. 무책임한 어떤 기자 덕분에 뭐, 이니셜로 기사를 쓰긴 했다만. 누가 봐도 저를 이야기하는 것 같더군요. 그래서 피해자로 지목된 김은하 감독과 직접 기자회견을 열기로 했습니다.
-그럼 그간 김은하 씨는 어디 계셨던 거죠?
기자의 질문에 김은하도 마이크 앞에서 잔뜩 긴장한 듯 보였지만, 한마디 한마디 또박또박 읽어 내려갔다.
-스트레스를 너무 받아 집에 있던 겁니다. 저와 경찬현 감독은 학생 때 아무런 관계도 없었을뿐더러, 아는 사이도 아니었습니다.
김은하는 마이크 앞에서 숨을 고르는 것처럼 보였다.
-지금 악의적인 기사들로 저와 경찬현 감독을 괴롭히는 걸 멈춰주십시오.
-김은하 씨를 괴롭히는 기사라면, 최근 백진철 사장의 인터뷰를 말씀하시는 것일 텐데요. 그럼 <시골처녀 상경하다!>라는 영화의 흥행 참패에 있어 김은하 감독의 잘못은 일절 없다는 건가요?
-그건…….
TV 속 김은하는 기자의 질문에 대답을 망설이는 것처럼 보였다.
“그래. 닥쳐. 이년아. 가족 생각해야지. 그리고, 애초부터 영화는 네년 때문에 망했잖아!”
백진철은 TV 속 김은하의 망설이는 모습을 보며 의자에 앉아 담배에 불을 붙였다.
하지만 기대했던 것과는 달리 대답하는 건 경찬현이었다.
-네. 김은하 감독의 잘못은 없습니다. 저와 이준성 프로듀서가 공동 설립한 성현 제작사에서 증명하겠습니다.
경찬현의 말에 플래시가 무수히 터지기 시작했다.
-증명하겠다는 건 정확히 무슨 말씀이십니까?
-저희가 직접 제작하고 투자해서 보여드리겠다는 겁니다. 김은하 감독의 능력을요.
-그렇게까지 김은하 감독에게 신경 써주는 이유는 뭡니까?
-저는 김은하 감독의 능력을 인정합니다. 대학 시절부터 김은하 감독의 독립 영화들은 꽤 유명했으니까요.
-단순히 그런 이유만으로 그런 지원을 하신다는 말씀이신 겁니까?
-제작사는 자원봉사자가 아닙니다. 투자할 가치가 있는 상품이기에 만들어 보이겠다는 거죠.
백진철은 책상 위에 있던 재떨이를 TV를 향해 집어 던졌다.
그러자 TV는 깨져 지지직거리는 소리와 함께 꺼졌다.
“이런 썅! 대체, 저 연놈들이 쌍으로 나를 물 먹여? 김은하는 집 밖으로 안 나온다며!”
“그게…… 저희가 단단히 경고했는데…….”
“저기 기자회견에 우리가 돈 먹인 새끼들 갔어?”
“연락해보니, 안 갔다고 했습니다…….”
“뭐? 아니…… 대체 그 새끼들은 하는 게 뭐야! 나만 일하냐? 돈을 먹였으면 먹인 만큼은 해야 하는 게 세상의 이치 아냐?”
쾅!
백진철은 분에 이기지 못한 듯 책상을 주먹으로 내려찍었다.
“김은하. 가족 찾아내. 지금 당장. 빨리! 내가 한 말은 지키는 놈이거든? 연장질하는 새끼들 불러! 입 무거운 새끼들로. 지금 당장!”
“네! 사장님!”
“하…… 썅!”
백진철은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대중 매체에서 욕을 먹은 사람들은 대부분 잠적하기 마련이다.
하지만 경찬현. 이놈은 뭔가 다르다.
논란을 일으키는 기사가 떴으면 일단 입을 닫고 잠시 잠적하는 게 맞다. 근데 이렇게 바로 대응할 깡이 있다고?
김은하도 마찬가지다.
가족으로 협박하는 건 안 먹힌 적이 없었다.
아무리 당당해 보이던 놈들도 가족을 가지고 협박하면 자동으로 무릎을 꿇고 머리를 땅에 박았다.
그런데, 만만해 보이는 20대 중반 애새끼들한테 안 통한다고? 이게?
***
기자회견을 마친 후, 며칠 뒤.
오해는 예상대로 바로 풀리진 않았다.
하지만 연일 뉴스와 신문에서 내 기자회견에 대해 다뤄준 적에 차츰차츰 여론에 변화가 생기기 시작했다.
언론 공작이라는 역경을 딛는 이야기. 이런 이야기가 추가돼서 그런지 사람들은 경찬현이라는 인간에 대해 궁금해하기 시작했다.
이젠 이후 계획이 더 중요해졌다. 백진철의 팔다리를 자르는 계획.
이제 이 계획만 성공하게 된다면 더이상 언론에 휘둘리지 않을 수 있다.
그 계획을 짜기 위해 나와 준성이 그리고 김은하까지. 우리는 카페에 모였다.
“근데 너희는 투자를 어떻게 그렇게 쉽게 받았냐?”
“쉽게 받았다…… 고?”
준성이가 인상을 찌푸리며 되물었고, 나는 그런 준성이를 보며 피식 웃은 뒤 말했다.
“얘 아빠가 이정호 회장이야.”
내 말에 준성이는 인상을 찌푸렸다.
“미친놈아. 그걸 그렇게 쉽게 말해주면 어떻게 해?”
“며칠 전엔 혈연으로 이겨 먹으려고 했던 놈이?”
“그건 그거고…….”
김은하는 우리 둘의 대화에 크게 웃었다.
김은하도 이준성이 대기업 회장의 아들이라는 게 그다지 뭐 크게 개의치 않아 하는 듯한 모습이었다.
“근데 이준성은 경찬현 집에 얹혀살면서 알바만 한다고 들었는데?
“그건 맞아. 얘가 뭐, 영화에 미쳐서 집에서 쫓겨났었대. 연락도 최근에 6년 만에 한 거고.”
“찬현이 덕에 한 거지. 근데 내기로 아버지한테 250만 관객 수 달성을 걸었거든. 영화 계속하는 거로.”
준성의 말에 김은하는 인상을 찌푸렸다.
“그 공약 250만이. 내기 250만이었어? 너 진짜 미쳤구나? 250만이 그렇게 쉬워 보이든?”
“아버지 귀 열게 하려면 그 방법밖엔 없었어. 그리고 더 필름 H만 아니었으면 승승장구했을 거라고. 요즘에 좀 떨어져서 그렇지.”
“햐. 내가 미친개가 아니라, 너희가 미친놈들이었네. 나는 미쳤다는 거에 축도 못 낀다. 정신 나간 놈들아.”
김은하에게서 며칠 전 우울했던 모습은 볼 수 없었다.
우리가 조금 편해졌는지 우리에게도 말이 많아졌다.
“근데 그러면 그냥 KMD에 부탁해서 언론 플레이 다 박살 내면 되는 거 아냐?”
“이 새끼가 싫대. 자기 아빠 손 빌리는 건 죽어도 싫다고 징징댔다고. 그럼 애초부터 투자를 받질 말던가.”
“인마. 투자는 투자고, 그렇게 이용하는 건 싫다는 거지.”
준성이는 며칠 전까지 초조했던 놈이 맞는지, 내게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대신 KMD 팔기는 해도 된댔다?”
“아버지 귀에만 안 들어가면 돼.”
“닭 잡는 데 소 잡는 칼 쥔 척만 하자고. 닭 잡는다는 소문이 거기까지 퍼지진 않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