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 the only genius film director RAW novel - Chapter (29)
나 혼자 천재 영화감독-29화(29/276)
우리는 <밤> 제작진들과의 회식을 위해 강남에서 제일 비싸다는 소고기 집을 통째로 빌렸다.
제작진들에게는 전화를 돌리며 회식에 초대했다.
[부담 없이 <밤>을 축하하는 자리이니, 가족분들도 데려오세요!]제작팀 수보다 훨씬 많은 사람들이 소고기 집을 찾았다. 커다란 소고기 가게에 사람들이 가득 찼고, 알아서 자리를 나눠 앉았다.
내 앞에 앉은 건 역시나 이준성.
준성이는 소고기가 나오자마자 연극 톤으로 소고기와 대화하기 시작했다.
“너의 마블링은 나를 설레게 해!”
“미친놈아. 정신 차려.”
집은 부자였지만, 6년간 밥보다 패스트 푸드를 더 처먹은 준성이의 눈에선 광기가 보였다.
물론 준성이뿐만 아니라 대부분의 사람들의 눈에선 광기가 흘러나왔다.
치이익-.
뜨거워진 불판에 소고기를 올리자마자, 들리는 아름다운 소리.
이 소리에 나도 침이 꼴깍 넘어갔다.
“야. 소고기는 덜 익혀도 돼. 빨리 잘라.”
나는 준성이의 말에 피식 웃으며 가위를 들고 고기를 잘랐다.`
그러자 주위에 있던 제작진들도 가위를 들고 한 점 한 점 고기를 자르기 시작했다.
핏기가 조금 사라지자마자, 준성이가 입에 처넣었다.
“미친놈아. 아직 덜 익었어.”
“웰던 모르냐? 소고기는 원래 웰던이야.”
“방금 건 웰던이 아니라, 방금 도축한 소였어. 심폐소생술 하면 살아날 수준이라고. 미친놈아.”
“그럼 육회지.”
“푸학.”
준성이와 투닥거리며 주위를 둘러보자, 다들 환하게 웃으며 소고기를 먹고 있었다.
뭔가 후련하면서도 탁 트인 느낌.
이게 사람 사는 거라는 생각에 자연스레 웃음이 나왔다.
“뭘 웃어. 인마. 너도 처먹어. 이제 내가 구울 테니까.”
준성이의 말에 나도 고기를 한 점 집어 소금장에 살짝 찍은 뒤 입에 넣었다.
천국의 맛과 천상의 향.
적당한 질감. 부드러움과 질김이 밀당하며 내 혓바닥을 놓아주지 않는다.
씹으면 씹을수록 올라오는 소의 육향. 내 입에 있으면서도 코로도 함께 맛보는 듯한 기분.
“우와…….”
탄성이 절로 나왔다.
“야야. 촌스러우니까. 소리 좀 작게 내라.”
“연극 톤으로 소고기랑 얘기한 놈이?”
“컨셉이지. 인마.”
“나도 컨셉이야.”
“방금 그게 컨셉이면 넌 배우를 해야 돼. 아, 술. 술도 먹어야지.”
준성이는 직원에게 술을 시켰고, 아이들이 있는 자리를 제외하곤 다들 술을 따른 뒤 무언가를 기다리는 듯 보였다.
“건배사 없나요? 감독님! 건배사 해주세요!”
“경 감독! 건배사 인터뷰 때처럼 부탁해요~!”
준성이는 내 앞에서 무릎을 꿇으며 말했다.
“경 감독! 건배사를 부탁드리오!”
그런 준성이의 모습에 사람들은 크게 웃었고, 나도 피식 웃으며 잔을 준성이에게 보여줬다.
“잔 채워 봐라!”
“예이! 당연합죠!”
잔은 천천히 가득 채워졌고, 나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다들 잔 채우셨죠!”
“예!”
“어, 이런 게 처음이라 좀 어색한 건 양해 부탁드리고요.”
“벌써 밑밥 깔기냐! 재미없다아아악!”
준성이는 바로 앞에서 얼굴이 시뻘게질 정도로 크게 소리쳤다.
“벌써 취한 분이 계시네요. 누가 이분 좀 치워주세요.”
“안 돼액!”
사람들은 준성이를 보고 크게 웃으며 한마디씩 거들었다.
“인터뷰 때처럼 눈에 힘 팍 주고!”
“촬영장 때의 반 정도만 해요!”
나는 뒤통수를 긁적이며 천천히 입을 뗐다.
“한국 최초. 100만 관객. 그리고 200만. 그리고 250만까지. 이런 대기록을 세울 수 있었던 건 모두 여러분들과 함께해서 그런 거 아닐까요?”
“오오~~.”
“로맨틱하다. 오오~~.”
사람들의 호응이 끝날 때까지 나를 보고 있는 제작팀 한 명 한 명을 천천히 바라봤다.
그리고 호응이 끝나고, 다시 말을 이었다.
“오늘 밤은 우리 겁니다. 오늘 밤이 가기 전에 시원하게! <밤>을 위하여!”
“위하여!”
“아, 그리고 고기 포장해가실 분들은 말씀하세요! 선물입니다! 오늘은 돈 걱정 따윈 접어두자고요!”
“오오오오!!”
사람들의 호응은 건배사를 끝날 때보다 고기를 포장해가도 된다는 것에 훨씬 컸다.
***
집에 어떻게 왔는진 모르겠지만, 눈을 떠보니 익숙한 천장이 눈에 들어왔다.
“흐하. 히히히.”
누가 보면 정신 나간 사람처럼 보이겠지만, 계속 웃음이 나왔다.
정말 꿈이 아니라는 것과 해냈다는 것. 이 두 가지만으로도 웃음은 끊기질 않았다.
소고기 전문점에서 스텝들은 대부분 했던 이야기.
“진짜 말도 안 되는 거라고 생각했거든? 250만? 근데 되네.”
“그러게 진짜 250만을 넘길 줄이야…….”
뭐, 나중에야 천만 영화들도 많이 나와서 그렇지. 지금 이때 250만은 꽤 큰 숫자다.
강제규 감독의 <쉬리>도 없고, 봉준호 감독, 박찬욱 감독, 류승완 감독 등 쟁쟁한 감독들이 나와야 할 타이밍에 그들이 모두 사라졌으니까.
<쉬리> 개봉 당시에도 사람들이 백오십만을 넘길까 넘기지 않을까로 내기를 했을 정도니까.
그런 영화들이 없는 탓에 250만은 지금 이 사람들에겐 꽤 놀라운 수치로 보이겠지.
대한민국 영화 중 최초로 백만을 넘긴 <서편제>도 없는 세상에서 250만이니까.
똑똑.
“찬현아. 괜찮아? 무슨 일 있어? 웃는 거니, 우는 거니?”
엄마의 걱정스러워하는 듯한 목소리에 나는 몸을 벌떡 일으켜 세웠다.
“괜찮아요! 하핫! 금방 나갈게요!”
앞으로가 중요하다. 일단 이사부터 해야겠지……?
이제 KMD 지하가 아니라 지상으로 올라갈 때다.
***
[<밤>. 250만. 기적이라고 볼 수밖에 없는 이유.]KMD 그룹 이정호 회장은 앞에 쌓인 신문들을 보며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결국엔 해냈구먼.”
이정호는 앞에 전화기에 있는 버튼을 누른 뒤 말했다.
“윤 비서.”
-네. 회장님.
“들어와 봐.”
똑똑.
노크가 울린 뒤. 들어오는 사내의 깔끔한 포마드 머리와 정장 차림은 한 치의 흐트러짐도 허락하지 않을 것처럼 보였다.
“자네. <밤> 봤나?”
“예. 봤습니다.”
“괜찮았나?”
“제가 본 영화 중엔 제일 좋았습니다.”
“그래?”
이정호는 흐뭇한 표정을 지으며 기사들을 윤 비서에게 보여줬다.
“경찬현이라는 친구 말이야. 꽤 머리가 돌아가는 것 같던데.”
“네. 사람들의 이목을 어떻게 하면 끌 수 있는지. 확실히 아는 분 같았습니다.”
“그래. 사업을 해도 잘할 친구 같더군.”
사업의 기초 중 하나는 사람들에게 기업의 존재를 알게 하는 것.
그래서 TV 광고에 목숨 거는 기업들이 있는 거고.
경찬현은 자신을 기업처럼 다룰 줄 아는 인간이다.
영화로 대부분 명성을 얻는 건 배우. 하지만 <밤>은 다르다.
물론 김승훈, 이정우라는 배우들도 몸값이 오르고 유명해지긴 했다만, 라이징 스타가 얼굴을 더 많이 알리는 것과 얼굴이 알려지지도 않은 감독이 유명해지는 건 차원이 다른 문제다.
“맞습니다. 회장님.”
“조만간, 준성이와 경 감독. 이렇게 자리 좀 잡지.”
“그럼 이제……. 아드님을…….”
윤 비서가 질문을 망설이자, 이정호는 고개를 끄덕였다.
“한국 최초라는 말을 넘어, 당분간 깨지지도 않을 기록을 만들었는데. 인정할 건 해야겠지.”
***
우리는 KMD 지하를 벗어나, KMD 본사가 있는 강남에 싸게 나온 건물로 자리를 옮겼다.
많이 낡은 탓에 손 볼 곳은 많았지만 그래도 ‘성현 제작사’의 보금자리로는 안성맞춤인 공간이었다.
“영화사가 충무로에 있어야지. 무슨 강남이야.”
“KMD 가까이 있는 게 낫지. 인마. 후광 효과 몰라?”
“쯧…… 다음 영화에 투자해줄지, 안 해줄지도 모르는데?”
“사업하시는 분이 황금알 낳는 거위 배를 가르겠냐?”
“그건 그래.”
충무로. 아직까진 그곳에 영화관도 많고, 제작사들이 몰려있기에 대한민국 영화의 메카라고 인정받는다.
하지만 10년 안에 바뀐다.
서울 곳곳에 대형 영화관이 들어서는 순간 충무로는 박살 나기 시작할 테니까.
차라리 강남이 낫지. 심지어 KMD랑 가까우면 더 좋은 거고.
준성이와 나는 사람들을 불러 내부 청소를 시작했다.
수북하게 쌓인 먼지들을 치우고, 이전에 쓰던 사람들이 남기고 간 물건들을 버리자 꽤 사무실 같은 모습이 드러났다.
“이건 어디에 걸어 둘까? 제일 잘 보이는 데가 낫겠지?”
준성이가 <밤>의 포스터를 들고 내게 물었다.
“저기 왼쪽에 붙여서 걸어. 영화 찍어내면 자리도 없을 거니까.”
“이 벽면은 다 영화 포스터로 채우자고.”
“당연하지.”
당당하게 한 자리를 차지한 <밤> 포스터는 꽤 있어 보였다.
포스터에서 비장한 표정을 짓고 있는 김승훈과 이정우.
이들은 <밤> 덕분에 라이징 스타를 벗어났다.
그들의 얼굴은 어떤 채널이든 항상 TV에 나왔다. 시청률이 좀 나온다는 프로그램은 빠짐없이 그들을 섭외했다.
덕분에 그들은 대한민국을 강타한 배우 듀오라는 이름으로 영화 계약이 끊임없이 들어온다는 소문도 들렸다.
“다음 영화, 김승훈 씨가 껴달라고 했다며. 벌써 계약 쏟아지는 거 같던데?”
“아직 시나리오는 나오지도 않았잖아. 뭐…… 아직 찍을 영화는 많지만.”
“그래? 뭐 아이디어 뱅크냐?”
“당연하지. 근데 좀 시간 좀 두고 하자. 할 게 많아. 성현 제작사 직원들도 구해야 하고, 나 영화관도 손 좀 봐야 돼.”
“영화관?”
“응.”
영화관 리모델링. 아가페 영화관은 전형적인 구식 영화관이었다.
의자들은 삐걱대고, 영사기도 오래되어 화면이 툭툭 끊길 때도 있었다.
이것만 문제가 아니다.
서비스? 같은 가격인데 자리가 없어 입석으로 관람해야 하는 일도 빈번했다.
아버지가 약주를 한잔 걸치신 후, 내게 하신 말씀.
-<밤> 때문에 입석 자리도 매진이야! 이건 처음 있는 일이라고! 찬현아! 역시 내 아들! 자랑스럽다!
그 좁아터진 영화관에 입석까지 매진이면, 그건 영화를 관람하는 게 아니라 고문에 더 가깝다.
이런 환경 덕에 개인 영화관들이 망해가는 속도는 점점 빨라졌다.
우리 집 영화관도 포함해서.
“뭐, 일단 알겠어. 그나저나 오늘 알지?”
“회장님?”
“응. 시간 거의 다 됐다. 출발하자. 청소는 나중에 마무리하자고.”
나와 준성이는 몇 블록 떨어진 KMD 본사 건물로 들어갔다.
1층에서부터 우리를 마중 나온 사람의 안내에 따라 우린 회장실로 들어갔다.
똑똑.
“들어와.”
문을 열고 들어온 우리의 모습에 이정호 회장은 꽤 환하게 웃었다.
“왔구먼. 자리에 앉지.”
앞에 놓인 고급 소파에 앉자, 소파가 내 몸에 감기는 듯 편안한 착석감이 일품이었다.
“그래. 약속은 지켰어. 축하한다. 준성아. 그리고 경 감독도 축하하고.”
“감사합니다!”
나와 준성이는 고개를 꾸벅 숙였다.
“이번 영화 수익이 꽤 되던데. 경 감독 말대로 배당금도 두둑하게 챙겼고 말이야.”
“네. 축하드립니다. 회장님.”
“다 자네들 덕인데. 뭘. 처음엔 말도 안 되는 꿈같은 일이라고 생각했는데 말이지…… 이걸 정말 성공할 줄이야…….”
이정호는 구석에 꽤 많이 쌓여 있는 신문들을 보며 흐뭇하게 미소를 지었다.
“뭐 논란도 많았는데. 내 손을 빌리지 않은 건 준성이 의견이었나?”
나는 아무 말도 없이 가만히 있었고, 준성이가 먼저 입을 열었다.
“예. 회장님.”
“짜식. 그 정도는 도와줄 수 있었을 텐데. 뭐 그렇게 급하지 않았던 게냐?”
“KMD에 손을 벌리고 싶진 않았습니다. 저희가 알아서 처리하고 싶기도 했고요.”
“백진철이. 그놈은 뭐 어떻게 할 생각이냐.”
예상치 못한 질문에 준성이는 티가 나지 않게 탁자 밑으로 내 허벅지를 꼬집었다.
“아. 네. 백진철 말씀이십니까?”
“그래. 더 필름 H 사장 놈. 나도 좀 알아봤거든. 내가 투자한 영화에 누가 수작질을 부리는지.”
“제 생각으론, 아직 때가 아닌 거 같습니다.”
이정호 회장은 내 대답이 꽤 흥미로운 듯 내 쪽으로 몸을 살짝 기울였다.
“뭐. 더 큰 걸 노리겠다는 건가?”
“그놈은 스스로 죄를 키울 놈이라고 생각합니다.”
“정보가 있나? 그놈 꽤 철두철미한 놈이라 쉽진 않을 텐데? 뒤에 다른 기업들도 있는 거로 알고 있는데 말이지.”
“저도 쉬운 놈은 아닙니다.”
꽤 당돌한 대답이라고 느꼈는지, 이정호 회장은 크게 웃음을 터트렸다.
“마음에 드네. 기다릴 줄 아는 사람이 성공하는 법이지.”
이정호 회장의 말에 우리는 가볍게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 잠시 뒤, 이정호 회장은 준성이를 보며 무언가 할 말이 있어 보였다.
“준성아. 집에 다시 들어와야지.”
“네?”
“네 엄마가 매일 네 이야기만 해서 귀가 아프니 그냥 좀 들어와. 고집 피울 생각하지 말고.”
준성이의 눈시울이 붉어졌다.
그와 동시에 준성이는 주먹을 꽉 쥐며 말했다.
“네. 아버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