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 the only genius film director RAW novel - Chapter (51)
나 혼자 천재 영화감독-51화(51/276)
이준성은 사무실에서 김은하의 영화 제작 일지를 살폈다.
경찬현의 도움 전후로 촬영 속도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빨라졌다.
“이 정도면 진짜 마법사 아냐? 이게 말이 되나?”
김은하에게는 경찬현이 박진수를 붙여줬다는 말을 들었을 땐, 그게 무슨 효과가 있을까 싶었다.
하지만 막상 눈으로 직접 그 효과를 보니 당황스러웠다.
“대단하다. 대단해.”
졸업작품을 만들 때만 해도 이런 식의 천재성은 보이질 않았다.
물론 영화감독으로서의 천재성은 있었지만, 영화판에서 일어나는 정치질까지도 쉽게 처리하다니.
경찬현을 처음 봤을 때만 해도 사회성 떨어지는 괴짜로만 봤는데…….
아니다. 2년 전이다. 그때까지만 해도 괴짜가 맞았다. 하지만 졸업작품을 만들 때부터 갑자기 바뀐 거지.
강산도 10년이면 변한다는데 6년 만에 그렇게 사람이 확 변할 거면…… 적어도 무슨 사건이라도 있어야지.
그냥 자고 깨니 다음날에 완전히 사람이 달라져 있었다.
“흠…….”
물론 좋은 면으로만 바뀌어서 할 말은 없었다.
동업자로서는 오히려 좋았다.
하지만 노영훈 감독의 칼럼 때문에 식겁한 적도 있었다.
갑자기 또 예술성을 운운하기에 나는 이전의 경찬현으로 돌아갈까 걱정이 됐다.
경찬현의 예술성에는 원래 상업성 따위는 없었으니까.
이준성의 눈에는 고리타분한 미장센과 예술병에 걸린 듯한 주제 의식. 그게 경찬현의 원래의 예술성이었다.
그래서 말리려다가도 앓아누울 지경이길래 그냥 한번 시원하게 실패하고 빠르게 <밤> 같은 영화로 복구시켜놓으라고 할 생각이었다만…….
그 영화마저도 흥행을 성공시켰다.
“뭔가 좋은데…… 걸리는 게 있단 말이지…… 이 정도로 천재였다고? 천재인 건 알았는데 급이 다른데……?”
이준성이 의심을 하던 중 전화가 울렸다.
띠리링-.
어렸을 적 친하게 지냈던 친구의 이름이 보였다. 조준.
이준성이 예대를 들어가기 전까지만 친했던 친구다.
예대를 들어간 이후론 아버지의 지원이 모두 끊긴 마당에 누군가에게 연락하기도 꺼려졌다.
그러던 중 최근 다시 연락된 친구였다.
“여보세요?”
-이준성! 오늘 약속 잊은 거 아니지? 오랜만에 보는데 까먹었으면 섭섭해?
이준성은 전화를 받으며 시계를 봤다. 몇 주 전에 잡은 약속이었다.
“아! 안 잊었지!”
-장소는 어딘지 알지?
“응. 시간 맞춰 갈게.”
-그래. 너 보려고 백진이도 오고, 준모도 온대. 우리도 오랜만에 모이는 거야.
“하하, 그래. 고맙다.”
-늦지 않게 오고.
툭-,
이준성은 일을 마무리한 후 성현 제작사를 떠나 약속 장소로 향했다.
다행히 약속 장소도 강남 주변이라 제때 도착할 수 있었다.
이대훈이 있던 곳과 비슷한 분위기의 술집에 발을 들이자, 이준성을 기다렸다는 듯 정장을 입은 거대한 사내가 자리를 안내했다.
가장 으슥한 방으로 안내하고 문을 열고 들어가자 상 위에는 비싼 양주들과 얼음들이 눈에 들어왔다.
그리고 오랜만에 보는 얼굴이 보였다.
“어이구! 이준성! 이야, 오랜만이네. 하나도 안 변했네. 햐. 새끼. 고등학교 때랑 똑같이 생겼어?”
가장 먼저 반기는 건 연락이 왔던 조준이었다.
“하하, 너도 똑같네.”
“연락도 끊고 서운할 뻔했어? 그러다가 갑자기 영화 제작자라니? KMD 그룹 이정호 회장의 장남이? 하하!”
이준성은 자리에 털썩 앉아 눈앞에 있는 강준모와 손백진을 쳐다봤다.
고등학교 동문 4명. 다들 날고 긴다는 집안의 자식들이었다.
“영화감독은 알겠는데, 제작자는 뭐냐?”
“정확하게 뭐 한다고 말 못 해. 영화 관련된 전반적으로 업무가 워낙 많아서. 영화 경영인이라고 보면 돼.”
그러자 강준모는 피식 웃으며 질문을 던졌다.
“최근 제작한 영화는 뭔데?”
“<무욕>.”
“어…… 나 그거 이름 들어봤는데…….”
“그거 뭐지…… 그 아저씨 나오는 영화잖아. 보진 않았는데…….”
“난 예쁜 여주인공 나오는 거 아니면 안 봐.”
강준모는 술을 다 따른 후 잔을 건넸다.
“근데 네 이름보다 감독이 더 유명한 거 같던데? 제작자라는 게 결국 감독 시다 아니냐?”
“야. 오랜만에 봐놓고 왜 시비야.”
조준은 강준모의 어깨를 툭 치며 눈치를 준 후에 술을 이준성에게 건넸다.
“자, 오랜만인데 짠 먼저 하자고! 짠!”
쨍-.
술잔이 부딪치는 소리가 침묵을 메워줬다.
이준성은 오랜만에 본 친구들이 낯설었다. 하지만 그건 이준성만의 기분은 아닐 거라고 확신했다.
“뭐 하고 지냈었냐? 거의 스무 살부터 연락을 안 했으니…… 이게 8년 만인가?”
“그냥 뭐…… 잘살았지. 대학교 다니면서 아르바이트하고…… 군대 갔다 오고…….”
“군대? 군대를 갔다고?”
제일 놀라며 반응한 건 조준이었다.
주위에 있던 놈들은 웃음을 참는 듯 보였지만 새어 나오는 비웃음 소리는 이준성의 귀를 찌르고 있었다.
“요즘은 연예인들도 빼는데? 해병대 간다고 난리 피다가 이중국적 이용해서 미국으로 도망간 놈도 있는데, 네가 군대를 다녀왔다고? KMD 그룹 회장 아들이?”
조준의 말에 주위에 있던 놈들은 이제 대놓고 웃기 시작했다.
“군대는 다녀온 게 자랑 아냐? 왜 웃는 거냐?”
“족쇄를 부술 능력이 있다는 걸 증명한 거니까.”
“뭐……?”
“2년. 그거 족쇄야. 등신아. 2년 동안 뭘 할 수 있는지 알아? 술을 먹어도 몇백 병은 더 먹고, 여자를 만나도 수백 명은 더 만나. 여행을 가도 수백 개의 나라는 돌 수 있는 시간이고.”
이준성은 강준모의 말에 이가 갈렸다.
그는 이런 상황을 예상조차 하지 못했다. 그저 옛 친구들을 다시 만난다는 설렘으로 찾아왔지만, 그들은 생각과는 완전히 달라져 있었다.
아니, 어쩌면 원래 이런 놈들이었을지도 모른다.
과거 이준성 자신도 이런 사람이었을 수도 있다는 생각에 인상이 찌푸려졌다.
강준모의 말이 끝나자, 조준이 어색하게 웃으며 입을 열었다.
“그냥 다른 얘기 하자. 너무 심각해진다. 오랜만에 만났는데 뭐 그렇게 얼굴을 붉히고 그래.”
“그래. 새끼들아. 오랜만에 만났는데 뭘 그런 진지한 얘기를 해?”
조준은 이준성의 잔에 술을 더 부으며 웃었다.
“내 맘 알지? 나는 그 군대 다녀온 거 대단하다고 생각해. 게다가 너랑 똑같이 군대 갔던 상우도 곧 온대.”
“상우? 고상우?”
“응. 마침 걔 여기 주변에서 일한다더라. 이거 먹고 풀어. 너무 신경 쓰지 말고.”
이준성이 묻자, 조준은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강준모는 고상우라는 말에 웃으며 물었다.
“그 새끼가 여기 올 그게 되나? 모르겠네?”
“뭐……?”
“IMF 때 고상우네 망한 건 아냐?”
“……아니, 몰랐는데…….”
“근데 좋다고, ‘상우? 고상우?’ 이 지랄. 하하.”
강준모의 웃음 사이로 문이 두드리는 소리가 방을 울렸다.
똑똑-.
문이 열리고, 많이 지쳐 보이는 한 남자가 들어왔다. 나름 정갈하게 입고 온다고 차려입고 왔지만, 옷에는 잔뜩 보풀이 일어났다. 그리고 그의 구두는 낡고 낡아 색깔도 많이 바래 보였다.
“하하…… 안녕? 이야, 준성이 너는 하나도 안 변했다.”
“어…….”
고상우가 자리에 앉으려는 순간, 강준모가 앞에 있던 과일을 고상우를 향해 집어 던졌다.
“어딜 그냥 앉아. 인마. 나한테 제대로 인사 안 해?”
“으,응. 하하.”
고상우는 강준모에게 큰절을 올리며 말했다.
“강준모 님! 소인 고상우가 인사 올립니다!”
이준성은 그 상황을 이해할 수가 없었다.
대체…… 이게 뭔가 싶었다.
분명 고등학교 때까지만 해도 서로 좋은 친구들이었는데 대체 뭐가 이들을 이렇게 만든 건지 알 수 없었다.
“그래. 그래야지.”
“이게 뭐냐……?”
이준성의 말에 강준모는 더 크게 웃으며 말했다.
“아, 너는 오랜만이라 모르겠구나? 저 새끼 나한테 돈 빌려 갔어. 그거 갚을 때까진 쟤가 내 노예고.”
“우리 친구 아니었냐?”
이준성의 물음에 강준모는 한심하다는 듯 이준성을 바라보며 말했다.
“주종 관계랑 친구는 결이 다른 문제지. 새끼야. 너도 아르바이트하면서 느꼈을 거 아냐. 주종 관계라는 거. 이것도 그거라고 보면 돼.”
“……”
“저 새끼도 군대 다녀왔다더라. 뭐 여기서 향우회라도 하시든가? 서로 족쇄 자랑이라도 좀 하지 그래?”
고상우는 어색하게나마 웃으며 이준성을 쳐다봤다.
그의 눈만 봐도 하고 싶은 말이 많아 보였다.
하지만 이준성은 더욱이 역겨워진 분위기에 더 이상 이곳에 남아 있고 싶지 않았다.
“그냥 갈게. 이제 연락하지 마라.”
이준성이 자리에서 일어나자 조준이 말했다.
“야, 너 때문에 모인 건데……?”
“꺼져.”
이준성은 문을 발로 쾅 찬 후 방으로 나선 후에야 고상우 생각이 났다.
“이씨…….”
그는 다시 문을 열고 들어가 무릎을 꿇은 상태로 있는 고상우를 일으켜 세웠다.
그걸 보고 강준모가 말했다.
“뭐하냐? 고상우 보니까 아르바이트할 때 기억이 새록새록 나?”
“부모 잘 만난 덕에 노예까지 부리냐? 얘가 얼마 빌렸는데?”
“3,000.”
이준성은 그 가격에 피식 웃으며 대답했다.
“야. 계좌 보내놔. 내가 보내줄 테니까. 상우 데리고 간다.”
“그러시든가.”
강준모의 말을 뒤로 한 채 이준성은 고상우를 데리고 술집을 나섰다.
“고맙다…… 준성아.”
“너는 그 꼴 당할 걸 알면서…… 하…… 돈이 문제지.”
고상우도 이곳에 오고 싶어서 온 건 아닐 것이다.
이런 생각에 이준성은 한숨을 내쉬었다.
“그거 안 갚아줘도 돼. 그냥 다시 내려가서…….”
“기다려 봐.”
이준성은 주변에 은행을 찾은 뒤 보내놓은 계좌로 입금했다.
앞에서 고상우가 손톱을 뜯으며 기다리고 있는 모습에 이준성은 괜히 마음이 안 좋아졌다.
“다 갚았거든? 그러니까…… 앞으로 여기 오지도 말고. 저런 새끼들이랑은 연 끊어. 괜히 또 돈 빌리지 말고. 이게 무슨 꼴이냐…….”
“내가 나중에 꼭…….”
“그런 말 하지 마. 됐어. 그냥 강준모 저 새끼가, 자기 아버지 돈으로 깝치는 거 꼴 보기 싫어서 갚은 거니까. 하…… 그냥…… 가라. 어. 그냥…… 하…….”
이준성은 옛 친구들이 이딴 모습으로 마지막 기억이 되는 걸 원하지 않았다. 상우도 그랬다. 그렇게 당당하던 놈이 이렇게 안쓰러운 모습으로 나타날지 몰랐다.
차라리 이 자리에 오지 않는 게 더 마음이 편했을 것 같다는 후회도 남았다.
차라리 고등학교 때 기억이 마지막이었다면…….
“우리끼리 한잔하는 건…….”
“아냐. 그냥 가. 나 볼 사람 있어.”
이준성의 말에 그는 고맙다는 말을 연신 하며 자리를 떴다.
이준성은 점점 멀어지는 고상우의 모습에 핸드폰을 들었다.
그리고 그나마 연락할 만한 놈은…… 경찬현밖에 없었다.
그리고 아무 생각 없이 발신 번호를 누르자 신호음이 채 한번을 울리기 전에 경찬현은 바로 전화를 받았다.
-뭐야?
“뭔 5분 대기조야? 내 전화 기다렸냐?”
-뭐래? 지금 딱 누워서 자려는데 전화 와서 그래. 빨리 말해. 자게.
“잘 거냐?”
-오늘 거금 써서 마음 쓰리니까. 잠으로 잊을 거거든? 끊는다.
“나도 오늘 거금 썼거든? 아…… 아니다. 됐다. 그냥 자라.”
-뭐냐?
이준성은 경찬현의 반응에 잠시 말이 없었다.
– 뭔데? 빨리 말을 하든가. 뭐 술 마실 친구 필요하냐?
“모르겠다. 인생이 참…….”
-자려는데 갑자기 인생론을 펼치고 그러냐? 뭔 일…… 아니다. 잠깐만.
핸드폰 너머로 잠시 부스럭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어디야. 지금 출발할 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