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 the only genius film director RAW novel - Chapter (52)
나 혼자 천재 영화감독-52화(52/276)
준성이의 목소리가 뭔가 이상했다. 밤 11시에 울적한 목소리의 이준성이라니?
나는 급히 옷을 입은 후에 준성이를 만나러 갔고, 포장마차에서 만난 준성이는 이미 눈이 반쯤 간 상태였다.
소주 2병은 비워진 상태였고, 한 병은 이제 막 시작한 듯 보였다.
“뭐야? 혼자 이렇게 먹었냐?”
“앉아.”
준성이의 표정이 그렇게 좋진 않았다. 이렇게까지 어두운 표정은 오랜만이었다.
“뭔 일인데. 차였냐? 그래서 지지리 궁상떠는 거냐?”
내 질문에 준성이는 말없이 웃었다.
“천하의 이준성이 차였다고 혼자 깡소주 까고 있을 남자로 보이냐?”
“응.”
내 대답에 이준성은 눈을 치켜떴다.
“아니거든?”
“그럼?”
내 물음에 준성이는 말없이 다시 잔을 채웠다. 나는 준성이가 든 소주병을 뺏어 들었다.
“아! 줘.”
“작작 마시고 그냥 말을 해. 답답하게 하지 말고.”
“근데 오늘 짠돌이가 무슨 거금을 썼냐?”
“말 한 번만 더 돌리면 간다?”
내 말에 준성이는 나를 보며 미소 지었다.
“방금 고등학교 때 친구들을 만났거든?”
“근데?”
“왜 얘들이 다 목적이 있는 관계가 됐지? 아니지. 목적 없는 인간이 어딨어. 그래. 목적이야 있을 수 있어. 그렇고말고.”
준성이는 많이 취했는지 침까지 잔뜩 튀겨가며 열변을 토했다.
“왜 다들 쓰레기가 된 거지? 아닌가? 원래 쓰레기들인가? 그럼 나도 쓰레기였던 건가? 지금은? 너 내가 쓰레기로 보이냐”
준성이는 검지로 자신을 가리키며 내게 물었다.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모르겠지만…… 꽤 힘든 일이었던 것 같다.
“부자 친구들이라도 만나고 오셨나?”
“쓰읍…… 그래. 돈 많은 놈들이랑 비싼 양주 까 잡수고 왔다.”
“근데 왜 나랑은 소주 까먹냐? 좀 서운한데?”
내 말에 준성이는 갑자기 자리에서 일어났다.
“아, 씨. 그럼 양주 까먹으러 가든가.”
“장난이야. 많이 취하셨네. 이 대표. 앉아. 좀. 내가 미안해. 사과할게.”
준성이는 내 사과에 피식 웃더니 소주를 따르며 방금까지 무슨 일이 있었는지 설명했다.
다른 놈들이 했던 말들. 군대를 다녀왔다는 거로 족쇄를 달았다느니, 아르바이트한 게 웃기다느니…….
그 이야기를 듣고 나는 아무런 감정도 들지 않았다.
연예인 병역 비리야 시대를 불문하고 터지는 사건이니까.
지금도 있고, 10년 후에도 터지고 20년 후에도 터질 문제다.
그리고 연예인들도 그렇게 쉽게 빼는데 돈 많은 집안 자제들이야 군대 빼는 건 누워서 떡 먹기 같은 문제고.
준성이가 정말 특이한 경우였다.
스무 살까지 손에 물 한번 안 묻혀본 놈이 집에서 뛰쳐나와 패스트푸드점 알바부터 시작하며 돈을 꾸역꾸역 모았다.
거기서 모은 돈으로 자취 비용이랑 식비를 해결했으니…….
그래서인지 준성이는 요즘도 햄버거만 보면 자동으로 인상을 찌푸렸다. 자기가 만든 불고기버거를 탑으로 쌓으면 달까지 갈 거라는 말을 하면서…….
그리고 자기 입으로 지껄이는 통에 사실인지 확인을 할 순 없었지만, 군대에서도 자기를 안 이뻐하는 사람들이 없었다며 자신의 군 생활의 재밌는 이야기 풀어내는 놈이었다.
종종 군대 후임들 만나서 밥 사주는 거 보면 틀린 말은 아닌 거 같았다.
“근데 그걸 참았냐?”
“그럼 술병이라도 깰 걸 그랬나?”
“그건 기본이고 그걸로 대가리를 내려찍었어야지.”
내 말에 준성이는 몸까지 떨어가며 크게 웃었다.
“근데 그 말 듣고 제일 화가 났던 게 뭔지 아냐?”
“뭔데.”
“내가 진짜 잘못 살아온 게 아닌가 싶더라. 그 찰나에 딱 그런 생각이 들더라고. 그냥…….”
준성이는 깊은 한숨을 내쉰 후에 내가 따른 소주를 한 번에 비워냈다.
“내가 맞는 거지? 나 잘 살아 온 거 맞지? 저 새끼들 말처럼 인생 낭비한 거 아니지?”
준성이가 내게 빈 잔을 가리키며 말했다.
평소라면 주지 않았겠지만 저런 말을 하는데 무시하는 것도 좀 그랬다.
하는 수 없이 따라주는 수밖에…….
나는 대답 없이 술만 따랐다.
그리고 잔에 술이 채워지자마자, 준성이는 바로 들이켰다.
“예대 안 갔으면 몸은 편했겠지. 그래도 예대 가서! 너도 만나고! <밤>, <무욕> 같은 영화들도 만들고! 내가 예대 안 가 봤어 봐. 그럼 군대도 안 가고 아르바이트도 안 했겠지. 그런데 그럼 지금 성현 제작사가 지금 이 위치에 있을 수 있었겠냐는 거야! 어! 그래, 안 그래? 대한민국! 신기록을 누가 세웠냐 이거야!”
준성이는 자리에서 일어나 내 옆에 앉아 어깨동무하며 말했다.
“너랑 나잖아! 응? 그렇지?”
“오늘 솔로몬이 여기 계셨네. 아주 다 맞는 말만 하셔.”
준성이는 많이 취한 탓에 횡설수설했고, 자기가 한 말은 중요하지 않고 내가 긍정했다는 것에 오늘따라 유난히 크게 반응했다.
“그래! 인마! 내가 너라는 인재를 알아보고! 투자도 받아주고! 영화 제작자가 뭐 하는지도 모르는 놈들이랑 무슨 영화 얘기를 하겠다고…… 에휴…….”
준성이는 이제 지쳤는지 말을 하다가 끝을 흐렸다. 그러다 눈을 아예 감았다.
그리고 혼자 웅얼거리기 시작했다.
그렇게 얼마 지나지 않아…….
퍽!
고개를 상에 처박았다. 그러면서도 입은 계속 움직였다.
“근데…… 그놈들 한 방 먹일 방법 없나…… 하…… 내가 당하고만은 못 사는데…… 흐응…….”
준성이는 아예 정신을 잃은 것처럼 보였다.
나는 그런 준성이를 쿡쿡 찌르며 확인했다.
“야. 제발. 정신 차려.”
“흐엉. 건드리지 마…… 세요. 저 아무것도 없어…… 요…….”
“하…… 또?”
나는 한숨을 내쉬며 준성이를 들쳐 메고 택시로 옮겼다.
은근히 싸늘해진 날씨 탓에 준성이의 무게는 더 무거웠다.
우리 집으로 간신히 옮긴 후에야 나는 숨을 돌렸다.
땅바닥에 내팽개쳐진 준성이는 코까지 골아가며 깊은 잠에 빠진 듯 보였다.
내 인생에 있어서 고마운 놈이기도 하지만, 생각해보면 대단한 놈이다.
실없이 농담이나 치는 것만 좋아하는 놈처럼 보여도 속은 깊다.
돌이켜 생각해보면…… 재벌을 까대는 영화가 한창 유행이었을 때 나는 준성이를 생각했었다.
굳이 재벌이라고 해서 매체에 나오는 것처럼 부정적이고 범죄만 저지르는 재벌만 있는 게 아니라는 믿음을 준 것도 이놈이었다.
그래서 단순히 일반화를 시키면 안 된다고 말했다가 나보고 돈도 없는 놈이 재벌 편이나 드냐고 따지던 사람들도 있었다.
‘돈도 없는 놈이 어디 돈 있고 권력 있는 놈들 편을 들고 있어?’
이런 답도 없는 흑백논리를 다시 생각해보니 피식 웃음이 새어 나왔다.
앞에서 거하게 코를 골고 있는 준성이의 모습도 그 웃음에 한몫했다.
준성이는 누가 봐도 재벌 집 자식이라기보다는 동네 오락실에 보일 거 같은 동네 백수형 꼴이었으니까.
크허어엉- 피휴웅-.
탱크가 지나가는 듯한 준성이의 코골이 소리에 잠이 싹 달아났다.
***
다음 날 준성이는 바닥에서 눈을 떴다. 그리고 머리를 부여잡으며 내게 물었다.
“뭐냐……? 나 왜 여기 있냐?”
“어제 한풀이 들어주느라 지쳤거든?”
“한풀이? 기억 하나도 안 나는데.”
“병원 좀 가봐. 무슨 코골이가…… 너 죽는 줄 알았다. 갑자기 커헉! 그래가지고.”
준성이는 바닥에서 흐느적거리다가 내 침대 위로 올라왔다.
“오버는…… 나 어제 뭐라고 했냐?”
“완전 뭐 방언 터져서 별 헛소리 다 하던데?”
준성이는 내 옆에 엎드려 어깨동무하며 말했다.
“어제 형님이 좀 힘든 일이 있었어. 그래도 충신이 있어 다행이지. 허허.”
“입 냄새나 꺼져.”
내가 준성이를 발로 밀어버리자 준성이는 침대에서 굴러떨어졌다.
퍽!
“악!”
준성이는 외마디 비명과 함께 바닥을 구르다가 멈춘 채 피식 웃었다.
“웃어?”
“그냥 과거는…… 과거로 묻자. 사람이 지금을 살아야지. 과거에 살면 안 돼.”
“얼씨구? 아침 댓바람부터 무슨 헛소리를…….”
준성이는 내 말을 못 들은 체하며 핸드폰을 꺼내며 중얼거렸다.
“어제 만난 새끼들 번호부터 지워야겠다. 내가 두 번 다시 그놈들 만나나 봐라. 죽어서도 안 만날 놈들이야.”
“걔네 돈 많으면 투자자로 끌어오면 되잖아?”
“이 새끼들 돈은 줘도 안 받아. 차라리 빚을 내서 하고 말지. 부모 잘 만난 게 무슨 유세라고…….”
준성이는 내 눈치를 보며 말을 하다 말았다.
“눈치를 왜 보냐? 부모님 잘 만난 건 축복이지. 너는 그걸 잘 이용한 거고. 그놈들처럼 쓰레기같이 이용하진 않았잖아. 그게 네 자의든 타의든.”
“내가 집에서 안 나왔어도 그랬을까?”
“가정법이 세상에서 제일 미련한 거야. 근본적으로 따져보자. 네가 안 태어났어도 그랬겠냐? 그럼 애초에 태어나질 말지 그랬냐?”
내 헛소리에 준성이는 크게 웃어대며 핸드폰을 두드렸다.
“간만에 후임들한테나 연락 돌려야겠다. 맛있는 거 사줘야지.”
“나는?”
“너는 돈 많잖아. 베풀면서 살아.”
준성이의 말에 장난스레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다 부질없다. 어젯밤에 자려는데 누가 연락을 해서…… 강남을 갔다가…….”
“나중에 사줄 테니까. 닥치세요.”
“네!”
***
이준성은 경찬현의 집에서 밥을 대충 먹고 다시 사무실로 돌아갔다.
사무실에 앉아 다시 일을 처리하던 중 모르는 번호로 전화가 왔다.
조준의 번호도 아니었기에, 이준성은 아무런 생각 없이 전화를 일단 받았다.
“성현 제작사 대표 이준성입니다. 전화 받았…….”
-어, 준성아. 나 상우인데!
이준성은 번호를 확인한 후에 한숨을 내쉬었다.
“돈 안 갚아도 되니까 나한테 연락하지 마.”
-그…… 나도 정말 염치없는 건 알지만…….
“알면 끊어.”
툭-.
이준성은 전화를 끊은 뒤 머리를 책상에 여러 번 쿵쿵 박았다.
그러자 밖에서 직원이 걱정스러운 목소리로 물었다.
“대표님. 괜찮으세요? 무슨 일 있으신 거 아니죠?”
“아. 네. 괜찮습니다.”
이준성은 머리가 터지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즐거웠다고 생각했던 10대 시절이 모두 부정당하는 느낌.
몸에 벌레들이 기어 다니는 듯한 께름칙한 느낌이었다.
띠링-.
문자 알림음에 이준성은 핸드폰을 열어봤다.
[준성아. 나 지금 배우 매니저로 있거든. 근데 지금 내가 담당하고 있는 배우가 있는데. 경찬현 감독님 다음 영화에 혹시 오디션이라도 봐주게 해주면 안 될까? 이게 정말 염치없는 행동이라는 건 알아. 하지만…….]그 문자 메시지를 본 이준성의 눈 밑이 파르르 떨렸다.
“지금 나랑 장난치는 것도 아니고. 이젠 로비를 하고 자빠졌네. 무슨 돈 갚아준 사람한테 로비를 해? 제정신인가?”
이준성은 핸드폰의 전원을 꺼버렸다.
“적어도 양심이라는 건 있어야 할 거 아냐…….”
고상우.
고등학교 시절 항상 당당했던 게 부러웠던 놈이다.
머리도 좋아서 뭘 해도 잘할 것 같았던 놈이 갑자기 저런 모습으로 나타난 것도 화가 났다.
왜 저 모습에 화가 나는지 이유도 모르겠지만 꼴도 보기 싫었다.
“됐다. 이제 그냥 연락 안 받아. 지금 할 것도 많은데 다음 영화는 개뿔…….”
이준성은 핸드폰을 멀리 치워버린 후에 연말에 열릴 청풍 영화제에 출품된 작품 목록들을 살폈다.
“<우리 두목님>, <조폭 삼 형제>……?”
대부분 <밤>이 개봉한 이후에 쏟아져 나오던 아류작들이 대부분이었다.
가볍게 상 정도는 쉽게 딸 수 있다는 생각에 이준성은 머리를 비웠다.
옛 친구들 따위는 신경 쓰지 않고 오로지 상에만 집중할 생각으로 잠시 눈을 감았다.
그러다가 이준성은 다시 청풍 영화제에 다룬 신문을 살폈다.
[태산 그룹, 청풍 영화제 후원 전담. 강현석 회장. 우리나라 영화 산업에 힘을 실어야…….]“이런 미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