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 the only genius film director RAW novel - Chapter (56)
나 혼자 천재 영화감독-56화(56/276)
뒤풀이가 끝나고 집에 들어오자마자 부모님과 상현이는 나를 걱정스레 쳐다봤다.
나는 환하게 웃으며 일단 부모님을 안았다.
“괜찮은 거 맞니?”
어머니의 말에 나는 웃으며 상현이도 강하게 껴안았다.
“괜찮죠. 제 주변에 부모님도 있고, 상현이도 있고 좋은 사람이 얼마나 많은데요. 그깟 상이 뭐가 중요하다고요.”
“그래도 거기에 상을 두고 온 건…….”
“그게 사연이 길어요. 하하.”
아버지는 내 머리를 쓰다듬으며 말했다.
“그래. 네가 그렇게까지 말한다면…… 우리가 모르는 일이 있겠지. 고생했다. 아들.”
“하하…….”
나는 내 방에 홀로 누워 천장을 바라봤다.
나라고 화가 안 나는 건 아니다. 하지만 내가 화를 낼 필요도 없을 정도로 나보다 더 화를 내주는 내 주변 사람들 덕에 기분이 좋아졌다.
‘그 쉐끼들! 다 족쳐버릴 영화 만들어!’
김은하의 분노에 찬 말부터.
‘찬현아. 난 너 믿는다. 천만 영화 만들 수 있어. 넌 좀 달라.’
진수 형의 격려.
‘천만은 좀 아닌 거 같긴 한데…… 또 네 말이니까 한번 믿어봐?’
준성이의 의심 섞인 믿음까지.
이런 위로되는 말에 웃음이 새어 나왔다.
그리고 술이 좀 깨니 머리가 살짝 아파 왔다. 천만 영화라…….
2023년에도 천만을 돌파한 영화는 외국 영화를 제외하면 20편.
지금 CG 기술로는 만들 수 없는 영화들이 태반이었다.
그나마 만들 수 있는 건 통쾌함이 잔뜩 들어간 쉽게 볼 수 있는 팝콘 무비.
“흠…….”
드라마든 영화든. 부정적인 세력으로 대표되는 재벌을 부수는 건 사람들에게 통쾌함을 주기 마련이다.
그럼…… 이걸 잘 녹여봐……?
***
다음 날.
대동영화제 조직위원장 강준모는 앞에 놓인 신문들을 보며 인상을 찌푸렸다.
[경찬현 감독. 트렌드 세터 상 수상. 대동 영화제 공정성 논란…….] [대한민국 영화계를 뒤흔들어 놓은 경찬현 감독. 사실상 무관?] [경찬현. 트로피를 버리다.]기사 밑으로는 트렌드 세터 상 트로피가 덩그러니 놓인 단상을 찍은 사진이었다.
마치 경찬현의 편을 들기 위해 발버둥 치는 듯한 모습에 강준모는 그 기사가 적힌 신문들을 쓰레기통에 처박았다.
“KMD 쪽에서도 기사 좀 뿌리나 보네. 아주 정의로운 척은 다 하더니…… 결국 언론에 돈 좀 썼네?”
쓰레기통에 처박힌 기사들과는 반대로 태산 그룹 쪽 자본이 어느 정도 들어간 신문사에서 나온 기사들은 경찬현의 작품에는 일절 관심도 없는 듯 영화제에서 상을 받은 작품들을 치켜세웠다.
[<우리 두목님> 6관왕 쾌거! 대한민국의 영화사를 새로 쓰다!] [김수린 감독. 그저 좋은 배우들과 제작진들 덕분…….] [대동 영화제의 주인공은 <우리 두목님>의 김수린 감독!]그리고 경찬현에 대한 비난 기사도 중간중간 보였다.
“하. 그 정신 나간 놈. 기사나 더 터트리자고. 상 안 줬다고 염병 떨까 봐 뭐라도 줬더니 상을 그딴 식으로 버리고 내려와?”
앞에 있던 강준모의 비서는 미소를 지으며 강준모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맞습니다. 대표님. 그거 완전 정신 나간 놈 아닙니까? 어떻게 상을 거기 위에다가 두고 오는……,”
강준모는 영화제를 떠나던 이준성과 경찬현의 모습을 떠올리며 이를 갈았다.
기분이 나쁘다는 듯 떠나는 게 아닌, 더러운 곳에 있지 않겠다는 듯 미소를 지으며 시상식장 밖으로 빠져나가는 그들의 모습은 당당함을 넘어 오히려 기분이 좋아 보였다.
그들의 기분이 좋아 보이는 만큼 강준모의 기분은 더러워졌다.
분명 한 방 먹였다고 생각했지만, 제대로 유효타가 들어간 것 같지 않아 강준모는 도리어 기분이 찜찜해졌다.
“이럴 땐 원래 찰진 노예 새끼를 불러서 뺨이라도 휘갈겨야 하는데…….”
고상우는 재밌는 장난감 중 하나였다.
옛 친구라고 부르면 좋다고 실실 웃다가 뺨이라도 갈기면 화가 나 보였지만 그렇다고 어디에 말을 할 데도 없는 놈이었다.
하지만 그런 놈을 너무나도 쉽게 풀어준 게 아쉬웠다.
이준성. 못 본 사이에 같잖은 정의감이라도 생겼는지…….
고등학교 때부터 마음에 들지 않던 놈이 더 마음에 들지 않았다.
“쯧…….”
“이제 퓨처필름 스튜디오 인수 작업 들어가겠습니다. 그리고 차기작은 <우리 두목님> 김수린 감독으로 하겠습니다.”
비서의 말에 강준모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그놈한테 바로 다음 영화 기획 들어가라고 해. 다음 영화에서 경찬현 영화 못 이기면 바로 잘라버릴 거라고 하고.”
“예! 대표님!”
***
며칠 뒤 나는 김승훈과 이정우와의 약속에 술자리를 나갔다.
영화제가 끝난 다음 날 바로 김승훈에게 연락이 왔었다.
‘경 감독! 진짜 완전 멋있었어! 한잔하면서 얘기 나누자고!’
술이 메인인지, 아니면 칭찬이 메인인지 모를 듯한 말투를 다시 생각하니 헛웃음이 나왔다.
김은하의 영화 마무리 작업에 준성이는 또 눈코 뜰 새 없이 바빠진 탓에 나와 김승훈 이정우만 술자리를 가졌다.
방으로 된 술집의 문을 열자, 후광이라도 달린 듯 얼굴이 빛나는 남자 두 명이 나를 반겼다.
“어! 경 감독! 왔어?”
“네. 어휴, 정우 형. 오랜만이에요.”
“그래.”
김승훈과 이정우는 아직도 똑같았다.
김승훈은 차갑게 생겼지만 호쾌한 성격이었고, 이정우는 밝은 성격 같았지만 차가운 성격이었다.
그리고 그걸 대변하듯 이정우의 대답은 짧았다.
우리는 인사치레로 잔을 몇 번 나누며 근황 이야기를 시작했고, 서로에 대해 칭찬을 몇 마디 더 하다가 김승훈이 인상을 살짝 찌푸린 채 물었다.
“대동 영화제 일은 좀 괜찮아?”
“에이. 아무렇지도 않아요. 그게 뭐 중요한 상이라고요.”
“마인드가 다르네. 나 같으면 좀 기대했을 것 같은데.”
“<무욕> 정말 재밌게 봤는데 말이지…… 심사위원 놈들은 영화를 뭐로 보는 건지 원.”
“그러게. 이해가 안 갔어.”
김승훈과 이정우는 뭔가 숨기는 듯 어색한 말투로 대화했다.
칭찬에서 뭔가를 숨기려는 듯 말투뿐만 아니라 그들의 표정도 어색했다.
“형들…… 뭐 숨기는 거 있죠?”
내 질문에 김승훈이 호쾌하게 웃었다.
“야…… 역시 귀신은 속여도 경 감독은 못 숨기지.”
“그래서 내가 말했잖아. 그냥 처음부터 말하라고.”
“너무 폐 끼치는 것 같아서…… 경 감독 좀 취하게 한 다음에 말하려고 했지.”
나를 앞에 두고 그 둘은 그간 더 많이 친해진 듯 나에게 들리지 않을 정도로 속삭이며 자기들만의 작전을 세우는 듯 보였다.
“숨기지 말고. 뭔데요?”
“그게 말이지…….”
“그냥 말해! 어차피 끝났어.”
김승훈이 뜸 들이자, 옆에 있던 이정우는 인상을 찌푸리며 톡 쏘아붙였다.
“오늘 누구 한 명이 더 올 거야.”
“네? 누가요?”
“그…… 너랑 서로 아는 사이라고는 하는데…… 하…… 걔 매니저랑 나랑 좀 친했거든. 그래서 어떻게든 자기가 담당한 배우랑 너랑 좀 연결점을 만들어주고 싶다고 하도 졸라대는 탓에…….”
김승훈은 가만히 두면 서론만 내내 풀어댈 것 같아 잘라내고 다시 물었다.
“그러니까. 이름이 뭔데요?”
“곽연지.”
“네……?”
이 이름을 다시 들을 수 있을 거라곤 생각도 하지 못했다.
대학교를 졸업한 이후 연락을 한번 한 적도 없고 소문도 제대로 못 들었다.
하지만 역시나 내가 알던 것과 같이 그녀는 그다지 영화판에서 활약하고 있지 않았다.
연기력의 부재.
아역 배우 출신임에도 그녀는 제대로 된 대사도 받지 못하고 항상 연기력 논란에 휩싸였던 배우였다.
그리고 전생의 나와 졸업작품 <푸른달>을 찍었을 때만 생각하면…… 같이 작업하고 싶은 사람도 아니었다.
“너랑 별로 사이가 좋진 않다고 하더라고…… 너한테는 정말 미안하지만…… 그 매니저한테 빚진 게 좀 있어서…….”
“괜찮아요. 뭘 그런 걸 숨기고 그래요.”
“그래. 뭐 가볍게 술 한잔하는 거니까…… 하하. 고맙다. 찬현아.”
김승훈은 미안면서도 머쓱한 듯 뒤통수를 긁었고, 이정우는 그를 한심하게 쳐다봤다.
“근데 옛날에 무슨 일이 있던 건데?”
“아, 뭐 별거 없어요. 2년 전 졸업작품 때 곽연지 말고 다른 여배우 캐스팅했었거든요.”
“2년 전 곽연지? 그때 곽연지를 안 썼다고?”
김승훈은 눈이 휘둥그레진 상태로 나를 쳐다봤다.
“그때 곽연지면 예쁜 거로 떠가지고 한창 화장품 광고부터 핸드포 광고까지 휩쓸 던 때잖아? 그런데 걔를 안 쓰고 누굴 썼었지? 그 영화 봤었는데…….”
“김효선이라는 배우 있어요. 지금은 연극에서 실력 쌓고 있는 친구요.”
<밀실 속 여인> 주인공이었던 김효선은 단편 영화와 독립 영화를 주로 출연하면서도 연극까지 열심히 하며 자신의 연기력을 다듬고 있었다.
하지만 그때에 인연이 남아 지금도 내 생일이나 특별한 일이 있으면 한 번씩 전화가 오곤 했다.
“이름도 모르겠는데…… 그때 곽연지면…… 자존심 좀 상했겠네.”
“네. 좀 많이 상해 보이더라고요.”
김승훈은 잔을 들며 나를 대단한 사람 쳐다보듯 바라봤다.
“확실히 너는 달라. 쉬운 길을 선택하는 법이 없는 약간 나사 빠진 멋있는 놈이야. <무욕> 주연도 박준식 씨? 그 사람도 진짜 대단한 사람이고.”
“예…… 하하.”
“뭐 하여튼 나도 빚 때문에 부른 거니까…… 다시 한번 사과……,”
“에이. 그냥 이거 사는 거로 끝내요. 하루 종일 사과만 하다가 끝나겠네.”
띠리링-.
김승훈의 전화가 울렸다.
“왔나보다. 나 잠깐 나갔다 올게.”
“네.”
김승훈이 다시 돌아올 땐 곽연지와 함께였다.
2년 만에 본 그녀는 역시나 아름다웠다.
뚜렷하면서도 시원한 이목구비부터 살짝 웨이브 섞인 머릿결. 그리고 갈색빛이 도는 눈동자.
그 눈은 목석같은 남자도 쉽게 넘어갈 듯한 분위기를 풍겼다.
“선배님. 안녕하세요. 완전 오랜만이에요!”
곽연지의 하이톤 목소리가 귀를 찔렀다.
돌이켜 생각해보니, 회귀 전 곽연지와 가장 많이 싸운 이유도 목소리 때문이었다.
사람들은 콧소리를 섞어가며 아양 떠는 여자 캐릭터를 좋아했다.
그래서 그런지 곽연지는 어렸을 때부터 콧소리로 발성을 한 탓에 연기를 할 때도 콧소리를 내며 사람들의 몰입을 모두 박살 내 버렸다.
그래서 <푸른달> 때도 콧소리를 빼느라 꽤 오랜 시간이 들었다가…… 결국엔 완전히 빼버리지 못했었던 거로 기억한다.
“아…… 응. 오랜만이다.”
“저 어제 영화제 봤어요. 완전 멋있던데요? 상을 아예 두고 내려오다니! 완전 대박!”
그녀는 누가 봐도 억지스러울 정도로 밝은 척을 했다.
내 기억 속의 곽연지가 원래 이런 사람이 아니라 그런 건지 그녀의 모습에서 괴리감이 느껴졌다.
“어…… 그래. 고마워.”
“자. 건배할까?”
김승훈은 내 어색한 미소를 보며 미안한 표정을 지으며 조심스레 물었다.
“아…… 네. 하하.”
곽연지도 잔에 술을 채웠다.
“너 술 못 마시지 않아?”
내 물음에 곽연지는 커다란 눈을 깜빡거렸다.
“아닌데요? 짠!”
아닌데…… 내 기억에 얘가 뒤풀이에서 술 못 마신다고 콜라 마시는 걸 본 것만 한두 번이 아닌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