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 the only genius film director RAW novel - Chapter (66)
나 혼자 천재 영화감독-66화(66/276)
최종 오디션장에 가기 위해 나와 준성이는 준비한 후에 성현 제작사에서 출발했다.
“내일 아빠랑 밥 먹는 거 안 잊었지?”
준성이는 이정호 회장이 공개 오디션에 관심이 큰 듯 아침 먹을 때마다 물어본다는 말을 덧붙였다.
“그 정도로 관심 있으시냐?”
“응. 왜 그런지는 모르겠는데. 자기한테 결과 제일 먼저 알려달라고 맨날 그런다니까? 간만에 네 얼굴도 좀 보고.”
준성이가 옆에 앉아 과자를 뜯으며 말했다.
얇은 감자 칩을 5겹씩 입에 욱여넣고는 으적으적 씹었지만, 신기하게도 부스러기는 떨어지질 않았다.
“어휴, 근데 지원자들 긴장 엄청 했겠다, 그치? 괜히 나도 긴장되네.”
“네가 긴장이 왜 되냐?”
“몰라. 나도. 감정 이입이라도 되나 봐.”
“감수성이 넘치다 못해 쏟아지겠네.”
오디션장 근처에 도착하자 사람들로 북적이기 시작했다.
대부분 나이가 어려 보이는 젊은 사람들이었다.
“사람들이 뭐 이리 많아?”
“전주현, 이서빈, 손예빈 팬만 해도 이 정도면 적은 거지.”
준성이는 별로 놀랍지도 않다는 듯 사람들을 쳐다보며 말했다.
팻말까지 든 채 열성적으로 응원하는 사람들을 보자, 졸업작품 오디션이 생각났다.
그때는 곽연지를 보겠다며 사람들이 모였었는데…… 이번엔 곽연지를 응원하는 팻말은 보이질 않았다.
우리는 사람들을 뚫고 간신히 주차한 후에 오디션을 보는 건물로 들어갔다.
나와 준성이를 보며 소리치는 팬들도 보였다.
“이서빈! 파이팅! 사랑해요!”
“국민요정 전주현! 팬이에요!”
“경찬현! 손예빈 뽑아라! 눈알이 있으면 손예빈 뽑아!”
팬들의 울부짖음을 뒤로 하고 건물로 들어가자, 오디션 대기자석에 앉아 있는 곽연지와 김정민이 눈에 들어왔다.
나머지 배우들은 아직 도착하지 않은 건지 세 자리는 비워진 상태였다.
나와 준성이는 심사위원석으로 자리를 옮겼고, 준식이 형은 미리 와서 앉아 있다가 우리를 보고 자리에서 일어섰다.
“형은 점점 멋있어지네?”
준성이의 넉살에 준식이 형은 웃으며 말했다.
“응? 고마워.”
준식이 형은 재벌 같은 느낌을 주고 싶었는지 핏이 깔끔한 양복을 입고 왔다.
그 덕분에 확실히 영화 속에 나올 재벌 배역과 찰떡처럼 보였다.
“형이 봤을 땐 누가 제일 나아? 형은 직접 연기도 같이 해봤으니까.”
준성이가 물어보자, 준식이 형은 턱을 괴며 잠시 고민했다.
“이서빈 씨가 제일 나은 것 같아. 연기력도 그렇고…… 첫인상도 그렇고. 서글서글한 편 같더라고. 촬영장 분위기도 중요하잖아? 특히 찬현이 촬영장이니까.”
“그치? 거봐. 나도 이서빈 쪽이야.”
“곽연지는 어때?”
내 질문에 준식이 형은 한숨을 푹 내쉬었다.
“너무 어려워. 정확하게 판단을 못 하겠어. 연기력은 괜찮아 보이지만…… 네가 말한 목소리는 그렇게 짧은 시간으로 해결될 문제가 아니니까.”
“그렇긴 하지.”
우리가 몇 마디 더 나누자, 진행요원이 말했다.
“배우들 모두 준비됐다고 합니다.”
“그럼 시작하죠.”
내 말에 진행요원은 밖으로 나갔고, 얼마 지나지 않아 이서빈이 들어왔다.
이서빈은 들어오자마자 허리를 숙이며 밝게 인사했다.
“안녕하십니까! 잘 부탁드립니다! 이서빈입니다!”
“예. 먼저 질문 몇 가지 드리고 연기 보겠습니다.”
“네! 감독님!”
이서빈은 한껏 웃으며 사람 좋은 미소와 함께 대답했다.
“좋은 연기란 뭐라고 생각하세요?”
내 질문에 이서빈은 마치 준비라도 했다는 듯 생각하는 시간도 없이 말했다.
“좋은 연기란, 사람들에게 실제로 있는 사람처럼 느끼는 게 하는 겁니다. 마치 영화 속에 있는 인물이 아니라 실제로 주변에 있을 사람인 것처럼 느껴지는 거요.”
“스스로 그런 연기가 가능하다고 생각하는 거고요?”
“네. 자신 있습니다.”
이서빈은 스스로 괜찮은 대답을 했다고 생각하는지 미소와 함께 대답했다.
내 질문은 이 정도로 끝났고, 준성이와 준식이 형이 몇 가지 질문을 더 하며 질문을 끝냈다.
“그럼 이제 지정 연기 볼까요?”
“네!”
준식이 형은 심사위원석에서 일어나 앞으로 나갔다.
그는 이미 재벌 역할에 빙의한 듯 갑작스레 차갑고 냉소적인 느낌으로 순식간에 변하며 대사를 내뱉었다.
“너, 스스로 뭔가 됐다고 생각하는 거냐? 갑자기 정의로운 기자? 하, 참나.”
“정의롭다니, 그런 한심한 말도 할 줄 알아?”
“그럼 네가 하는 건 뭔데?”
“복수.”
이 대사를 시작으로 이서빈과 준식이 형은 연기 대결이라도 하듯 꽤 치열한 기 싸움을 보여줬다.
이소희 역할을 이서빈에게 줘도 될 정도로 꽤 자연스레 녹아든 느낌이었다.
영상으로 봤을 때보다 훨씬 나았다.
잘 다듬기만 한다면…… 정말 괜찮은 영화가 나올 수 있겠다는 확신이 들 정도였다.
지정 연기가 끝나자, 준식이 형은 숨을 깊게 내쉬었다.
그리고 이서빈은 다시 환한 미소를 지으며 나와 준성이를 쳐다봤다.
“잘 봤습니다. 괜찮네요.”
“감사합니다! 잘할 자신 있습니다. 꼭! 부탁드려요! 감독님!”
“네.”
이서빈이 나가자, 준성이는 호들갑을 떨며 말했다.
“준식이 형이랑 호흡을 맞춘 덕분인가? 엄청 잘하는데?”
“에이. 내 덕분이라니. 그냥 잘하는 배우 같아.”
“진짜 그렇네. 확실히 배역에 잘 어울려. 훨씬 늘었어.”
***
곽연지는 자신을 제외한 4개의 좌석이 하나씩 비워질 때마다 숨통이 조여오는 듯한 기분이었다.
옆에서 아무리 잘될 거라고 말하는 고상우의 말은 귀에 들어오지도 않았다.
경찬현에게 다시 심사를 받는다는 기억 때문일까, 며칠간 미친 듯 연습해서 만들었던 목소리도 까먹을 정도였다.
“후…… 아. 아.”
배에 힘을 꽉 주며 코로 빠져나가는 소리를 뱃심으로 내려 했지만, 연습만큼 좋은 목소리가 나오지 않았다.
곽연지는 가방 속에서 굴러다니던 물통을 만지작거렸다.
만에 하나, 정말 만에 하나를 위해 챙겨온 비장의 무기였다.
“아, 아.”
곽연지는 마지막 순서. 4번째 지원자가 들어간 지 얼마 지나지 않았다.
아직 시간도 있으니까…… 그녀는 가방 속에 물통을 챙겨 몰래 화장실을 갔다.
그리고 그곳에서 마주치고 싶지 않던 얼굴을 또 보게 되었다.
“언니?”
이서빈의 목소리에 곽연지는 인상을 찌푸렸다.
“나 완전 잘 본 거 같아. 헤헤. 언니는 아직 차례 아닌가?”
“넌 화장실에 사니? 혹시 뭐 화장실에서 나 기다리기라도 한 거야? 오디션 끝난 지 한참 되지 않았나?”
곽연지는 극한의 긴장 때문인지 오히려 먼저 짜증을 내며 말했다.
“왜 이래, 언니? 내가 누굴 기다려? 하.”
“그럼 뭐. 속이 많이 안 좋니? 화장실에 올 때마다 보니까, 우연인지 필연인지 모르겠네.”
곽연지의 말에 이서빈은 인상을 찌푸렸다.
그리고 이내 눈을 부릅뜨며 곽연지를 향해 쏘아붙였다.
“언니. 언니는 내 상대가 안 돼. 아직도 현실 파악이 덜 됐어? 언니는 이제 끝물이야. 뭐 잘하려고 했으면 3년 전부터 열심히 했어야지. 한창 어리고 예쁠 때부터.”
“…….”
“언니가 내 경쟁자라고 생각해? 경쟁? 그건 비슷한 사람끼리나 하는 거지. 언니는 나보다 한참 밑이야. 내 위치에선 언니는 보이지도 않는다고.”
이서빈은 할 말을 다 했는지 다시 착한 배우의 표정을 지으며 화장실 밖으로 나갔다.
곽연지는 거울을 바라보며 인상을 찌푸렸다.
그리고 이내 옆에 있는 물통에 담긴 술을 들이켰다.
썼다. 너무나도 썼다.
누가 보면 미친 짓처럼 보이겠지만 지금 당장에 할 수 있는 건 이런 미친 짓을 제외하곤 없었다.
“후…….”
곽연지는 가글로 입을 한번 헹군 후 다시 거울을 바라보며 말했다.
“너. 잘될 거야.”
***
앞선 4명의 지원자 오디션이 끝나고 마지막으로 남은 건 곽연지였다.
이서빈 이후에 오디션을 본 지원자들은 심사를 보는 게 무의미할 정도였다.
이서빈을 제외한 다른 배우들은 준식이 형의 기에 눌려 자신의 역량을 제대로 펼치지도 못한 채 오디션장을 떠나야만 했다.
준식이 형은 실망한 채로 나가는 배우들을 보며 뒤통수를 벅벅 긁었다.
“내가 너무 무섭게 하나……?”
“아냐. 그 정도로 해야지. 촬영 때는 그것보다 무섭게 할 텐데. 뭐.”
“그렇지?”
“응. 더 몰아붙일 수 있으면 더 몰아붙여.”
우리끼리 잠시 사담을 나누고 있는 사이, 진행요원이 들어와 말했다.
“곽연지 씨 준비됐습니다.”
“네. 들어오라고 하세요.”
마지막 지원자는 곽연지.
그녀가 오디션장에 들어서자, 미묘한 냄새가 코를 찔렀다.
향수 냄새 같기도 하고…….
“안녕하세요. 곽연지입니다.”
대체 무슨 냄새일까 싶어 고개를 갸웃거리고 있던 차에, 그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 목소리에는 콧소리가 완전히 빠져 있었다.
물론 기대하긴 했지만, 이렇게 짧은 시간에 해낼 수 있다는 게 놀라웠다.
“어…… 예. 목소리가 많이 좋아졌네요.”
“네. 감사합니다.”
“지정 연기 시작 전에 질문 좀 몇 가지 할게요. 먼저…… 우리가 곽연지 씨를 선택해야 할 이유가 있을까요?”
곽연지는 내 질문에 팔짱을 낀 채 잠시 고민하는 듯하다가 옆에 덩그러니 놓인 의자를 바라봤다.
“앉으셔도 됩니다.”
내 말에 그녀는 신경질적으로 의자를 끌어왔다.
“저는 좋은 배우는 아니에요. 물론, 다들 아시겠지만요.”
“…….”
그녀는 마치 이미 연기를 시작한 듯 다리를 꼬며 말했다.
“하지만 이 역할에서는 달라요. 이소희 역할은 그 누구보다 잘할 수 있어요. 마치 제 예전 모습을 보는 것 같았으니까요.”
“네…….”
곽연지는 질문을 몇 개 더 받고 지정 연기를 시작하려 준비했다.
준식이 형이 앞으로 나가자마자, 연기가 시작하지도 않았음에도 곽연지는 준식이 형을 노려봤다.
준식이 형도 그녀를 노려보며 분위기는 순식간에 얼어붙었다.
“네가 그렇게 해서, 뭐 대한민국이 깨끗해져? 왜 그렇게까지 하는 건데.”
“대한민국이 깨끗해지든, 말든. 내 알 바 아냐.”
“뭐……?”
“그냥 네가 철저하게 망하길 바랄 뿐이야. 희망 따위는 남지 않은 완전히 처절한 네 모습을 보고 싶을 뿐이라고.”
곽연지의 연기에 준식이 형은 살짝 흔들리다가도, 다시 감정을 열심히 잡으며 대사를 던졌다.
잠시 후 지정 연기가 끝났다.
나와 준성이는 둘이 거의 넋을 놓은 상태였다.
그들은 연기가 끝났음에도 아직 감정의 앙금이 남아있어 보였다.
“어…… 잘 봤습니다. 네.”
“네, 감사합니다.”
곽연지는 아직도 이소희라는 배역에서 빠져나오지 못한 듯 인상을 찌푸리며 대답했다.
“네…… 수고하셨고, 결과는 이번 주 안으로 갈 겁니다.”
곽연지는 인사도 하지 않고 자리를 떴다.
그녀가 밖으로 나가자마자 준식이 형은 당황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봤다.
“곽연지 씨…… 뭐야? 전에 소속사 찾아갔을 때랑 완전 다른 목소리고, 연기력은 늘었다는 말이 어울리지 않을 정도야. 완전 다른 사람인데?”
“그러게, 1차랑 2차 때랑은 확실히 달라…….”
준성이와 준식이 형의 말에 나는 고개만 끄덕였다.
사람이 달라졌다. 목소리가 달라지면서 그 역할에 더 몰입이라도 한 건지…….
거의 준식이 형을 압도할 정도로 엄청난 에너지를 뿜어대며 오디션장을 지배했다.
“와…… 이 정도만 해도…… 대박이야. 대박. 진짜.”
“생각지도 못하게…… 오늘처럼만 연기하면 좋을 텐데…… 오늘 컨디션이 너무 좋았던 거 아냐? 평소에도 저렇게 할 수 있을까?”
준성이의 의문에도 어느 정도 공감은 갔다.
오디션에서는 거의 신내림이라도 받은 듯 연기했으니까.
하지만 촬영장에서도 저런 연기를 보여줄 수 있다면…….
“근데 좀 이상한 냄새 나지 않았어? 향수 냄새랑 섞여서 그런데 술 냄새 같기도 하고…….”
준식이 형의 말에 준성이는 인상을 찌푸렸다.
“엥? 설마 오디션 장에 술을 먹고 들어 왔겠어……?”
그들의 대화에 나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술 마시고 들어온 게 맞을 테니까.
그게 아니고서야 그 짧은 시간 안에 목소리를 완전히 바꾸는 건 말이 안 된다.
“넌 무슨 냄새 안 났냐?”
잠시 고민하던 찰나 준성이가 내게 물었다.
“뭐…… 무슨 냄새? 난…… 잘 모르겠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