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 the only genius film director RAW novel - Chapter (79)
나 혼자 천재 영화감독-79화(79/276)
체스터는 받아 온 비디오를 하나하나 확인했다.
다행히도 카이웅 츠안 하이언의 영화도 있었다.
<뱀>, <무요크>.
“흠. <즈아 웨울> 보다는 읽기 쉽구먼.”
체스터는 칸 영화제에 출품한 영화감독의 영화를 보기에 앞서 대한민국 영화제에서 최우수상을 받았다는 <우리 두목님>을 먼저 봤다.
자막은 해적판이라 그런지 제대로 되어있지 않았지만, 연출은 꽤 괜찮았다.
하지만 스토리는 난해했다.
대체 왜 즐거운 분위기를 유지하다가 마지막에 눈물을 짜내려는 건지 체스터는 이해할 수 없었다.
“이딴 스토리로 최우수 작품상이라니…… 기대가 되진 않는다만.”
체스터는 혀를 끌끌 차다가, 먼지가 잔뜩 쌓여있는 경찬현의 영화를 재생할지 잠시 머뭇거렸다.
“그래도 한번 봐볼까…… 칸 영화제에 출품할 자신이 있다면 패기는 있는 놈 같으니까.”
시간은 오후 10시.
평소라면 씻고 잘 준비에 들 시간이었지만 체스터는 비디오 플레이어에 경찬현의 <밤>을 먼저 넣었다.
재미없으면 단번에 꺼버릴 생각으로 재생시켰지만, 체스터는 그럴 수 없었다.
“뭐야…… 이놈, 물건인데?”
2시간은 금방 가버렸고, 시계는 12시를 가리키고 있었다.
“최우수상 받은 것보다 훨씬 낫잖아……?”
<우리 두목님>과 마찬가지로 자막 상태는 그리 좋진 않았다. 하지만 <우리 두목님>보다 훨씬 자연스러운 연출.
어쩌면 할리우드 스타 감독들보다 훨씬 더 나은 연출처럼 느껴졌다.
자막 상태에 아쉬움이 느껴질 정도로 체스터는 그 영화에 흥미를 느꼈다.
그는 자막이 좀 제대로 된 상태면 이 영화를 제대로 볼 수 있을 거라는 생각에 핸드폰에 저장된 번호를 확인한 후, 한 동양인 친구에게 전화를 걸었다.
“야, 주위에 한국어 아는 사람 있냐?”
– 한국어?
“응. 주위에 알만한 사람이 너밖에 없어.”
– 난 일본계 미국인이야. 인종차별주의자야. 동양 나라들이 서로 친할 거 같냐?
“안 친해? 뭐…… 엄청 친해보이던데? 2002년 월드컵도 공동 개최했잖아?”
-어휴…… 독일이랑 프랑스랑 친하디? 그건 그냥 비즈니스 관계고. 너랑 나처럼.
체스터는 친구의 말에 웃음을 터트렸다.
-근데 한인타운에 몇 명 알고 지내긴 하는데…….
“한인타운에 카이웅 감독이라고 아는 사람 많으려나?”
-카이웅?
“이따가 스펠링 불러줄게. 이렇게 읽는 게 맞는지도 모르겠어.”
-일단 알겠어. 근데 그 사람은 왜?
“그 감독 영화 대사가 좀 필요할 거 같아서. 해적판을 샀는데 자막이 좀 쓰레기야.”
-돈만 잘 주면 어렵진 않지.
“그럼 내가 문자로 보낼 영화 대사 해석본들 좀 보내줘 봐. 돈은 후하게 주지.”
체스터는 전화를 끊으려던 찰나, 친구가 갑자기 물었다.
-근데 그 한국 영화는 왜? 칸에 한국 영화라도 출품됐냐?
“응. 근데 엄청 재밌는데?”
-한국 영화가?
“어.”
-그 나라 영화 진짜 별론데. 의외라서.
“아냐. 나중에 이거 들고 갈 테니까. 너도 한번 봐봐. 이건 미쳤어. 혁신적이라고.”
장난스럽게 말하던 체스터는 몇 마디를 더 이어 가다 전화를 끊었다.
“궁금한데…… 더 확실히 알고 싶단 말이지…….”
경찬현의 다른 영화, <무욕>의 표지에 있는 박준식과 눈이 마주쳤다.
“이건 무슨 내용인 거지……?”
***
성현 제작사에 출근하자마자 본 준성이의 표정은 밝지 않았다.
김수린 감독의 인터뷰.
그 인터뷰로 영화계가 들썩였다.
[지금 뭐 어떤 감독이 칸 영화제에 출품했다고 하잖아요? 그거 굉장히 잘못된 방식의 마케팅입니다. 일종의 사대주의죠. 물론 해외에서 상도 받아오고 그러면 좋죠. 그게 안 좋을 리가 있겠습니까? 근데 현실을 보자는 겁니다. 우리나라는 해외 영화제에 출품 자체가 된 적이 없잖아요. 시도한 것뿐인데, 마치 출품되고 초청이라도 된 것처럼 말하는 그의 모습에 구역질이 납니다.]이 인터뷰를 다룬 수많은 신문 기사들이 우리들의 원대한 계획을 비난했다.
[성현 제작사, 국민들을 우롱한 마케팅?] [경찬현 신작. 칸 영화제에 출품 시도. 사대주의를 이용해 관람객을 현혹한 것.]“그냥 기사만 짧게 내달라고 한 건데…… 이걸 이딴 식으로 몰아갈 줄이야…… 완전히 약아빠진 놈들이야. 우리 의도를 사대주의를 이용한 마케팅으로 만들어?”
준성이는 상황이 이렇게 될 줄은 생각지도 못했다는 듯 한숨을 내쉬었다.
“미안하다…….”
“그게 네 잘못이냐? 쟤네가 이상한 거지. 같은 영화판에 있으면서 저딴 식으로 비난을 해? 저러니까 한국 영화에 발전이 없지.”
“…….”
“쟤네는 시도해 볼 용기도 없으니까 뒤에서 저런 정치질이나 하는 거잖아. 뭘 이런 거로 미안해하냐?”
김수린 감독?
전생에선 이름조차 못 들어봤던 감독이다.
그가 만들었던 <우리 두목님>이 최우수 작품상을 받았다기에 보긴 봤지만. 정말 재미없는 영화였다.
저급한 코미디에 끝은 신파.
한국 영화의 클리셰 중 하나를 그대로 따라 하며, 마지막에는 눈물을 쥐어 짜내려고 발악이라도 하는 듯 느껴질 정도였다.
하지만 연출 능력은 괜찮았다. 스토리의 퀄리티가 떨어지는 게 문제였던 거지.
“초청됐다는 연락은 언제까지 오는 거냐?”
시무룩해져 있던 준성이의 표정은 더욱 안 좋아졌다.
“이번 주까지…….”
“…….”
저런 인터뷰가 나오고 사람들에게 이목이 끌린 이상.
진짜 초청받지 못하면 저런 식으로 매도될 수도 있다.
관객들에게 우리가 어떤 의도로 칸 영화제에 <자월>을 출품했는지는 중요한 게 아니다.
만약 실패한다면 김수린 감독이 짜놓은 사대주의 프레임대로 흘러갈 게 뻔했다.
그럼 자연스레 우리 영화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이 커질 거고…….
“진짜 안 되면 어떻게 하냐…… 찬현아. 김수린 선…… 아니. 저딴 건 선배도 아냐. 그놈이 한 말이 사실처럼 보일 수도 있는 거라고. 우리 이미지는 완전히 망가지고…….”
“기다려 봐. 아직 시간 좀 있잖아.”
태산 영화사, 김수린 감독의 신작 개봉은 이제 2주 앞으로 다가왔고, 우리는 아직 정해진 게 없다.
지금 당장 아무것도 할 수 있는 건 없었다. 단지 기다리는 것뿐.
하지만 우리의 상황과는 반대로 태산 영화사의 마케팅은 공격적이었다.
이서빈은 국민 토크쇼 <그대의 밤>에 출연하며 이번에 그녀가 출연한 영화에 대한 기대감을 잔뜩 올려놨고, <그녀를 사랑해줘요>의 출연진들은 영화 홍보를 위해 브라운관에 끊임없이 나왔다.
이런 상황을 생각하니, 내 손에도 자연스레 땀이 솟아올랐다.
***
“카이웅 츠안 하이언 영화. 경쟁부문으로 초청하죠.”
심사를 시작한 직후, 체스터의 갑작스러운 선언에 선정 위원단들은 모두 당황한 듯 눈만 껌뻑였다.
“아니, 듣도 보도 못한 나라에, 듣도 보도 못한 감독이잖아요! 차라리 중국 영화나 일본 영화를 한 편 더 추가하는 거로 하죠.”
한 심사위원의 말에 체스터는 인상을 찌푸렸다.
“내가 하이언 감독 장편 영화들을 다 봤는데…….”
체스터는 심사위원들의 표정을 하나하나 살피며 말을 끌었다.
“애매한 경쟁부문 영화들하고 수준이 달라요. 그 나라에서 제일 유명한 영화제 심사기준이 어떤 식으로 굴러가는 건지는 모르겠다만, 제일 좋은 상을 받은 것보다 그 영화들이 훨씬 좋았어요. <뱀>, <무요크>. 이 두 영화 때문에 내가 며칠 동안 잠도 못 잤다니까? 대사가 이상해서, 한인타운에 있는 사람들한테 팩스까지 받아가면서 봤다고!”
체스터의 말에 앉아 있던 심사위원들이 수군거렸다.
“경쟁부문 영화 20편은 모두 정해졌잖습니까? 그리고 이미 경쟁부문 심사 다 끝났고요. 그럼 하나를 빼고 하이언이라는 사람 영화를 넣자는 겁니까?”
“그렇게 할 가치가 있으니까. 당신들도 그걸 봐야 내 말이 무슨 말인지 알 텐데…….”
체스터의 말에 심사위원들은 인상을 찌푸렸다.
그러자 다툼 사이에 한 중년 배우가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주목할 만한 시선’ 부문으로 초대하는 게 낫지 않겠어요? 그 사람 나이가 어떻게 되는데요?”
“29살.”
체스터가 대답하자, 체스터의 의견에 한껏 열을 올리던 영화감독 브라이언이 말했다.
“그래도 이번엔 그냥 좋게좋게 비경쟁 부문으로만 초청하는 게 나을 겁니다. 칸 영화제에 위상이 있죠! 잘 모르는 나라 출신에, 아무도 몰랐던 감독 아닙니까? 자국에서도 인정받지 못하는 감독을 굳이 칸에서 인정해줄 필요가 있겠습니까?”
체스터는 브라이언 감독의 말에 인상을 찌푸렸다.
“위상은 개뿔.”
“뭐요?”
“턱시도에 드레스 같은 것만 입으면 뭐 위상 있는 건가? 영화가 좋아야지. 보여주기식 위상만으론 돼지 목에 진주 목걸이 수준 아닌가?”
“지금 칸 영화제 초청 심사위원단장 주둥아리에서 그게 나올 소립니까!”
체스터는 붉어진 얼굴로 손가락질까지 하며 소리까지 브라이언 감독을 향해 여유로운 미소를 보였다.
“웃어? 지금 웃음이 나와……?”
“일단 진정 좀 하시죠.”
체스터의 말에 열을 올리던 브라이언은 당황한 표정으로 자리에 앉았다.
브라이언은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자신이 알던 체스터라면 여기서 서로 욕을 날리며, 싸웠어야 했지만, 그는 무슨 이유인지 아무런 반응도 보이지 않고 웃어넘겼으니까.
그래서인지 브라이언만 바보가 된 듯한 분위기가 연출됐다.
“그럼, ‘주목할 시선’ 부문으로 초청합시다. 그 정도면 다들 찬성하시는 거죠?”
체스터는 정중하게 심사위원들을 향해 묻자, 심사위원들은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브라이언은 이제야 체스터의 농간에 빠졌다는 것을 알곤 이를 갈았다.
“브라이언 감독님. 괜찮으신 거죠? 하하, 뭐 머리에서 곧 김이라도 모락모락 피어오를 거 같은데?”
“…….”
체스터가 장난스레 묻자, 브라이언은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잠깐 좀 쉽시다. 우리 브라이언 감독님이 흥분을 좀 많이 하셨네. 하하.”
“…….”
브라이언은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밖으로 나갔다.
그러자 브라이언의 뒤를 따라 몇몇이 따라 나왔다.
“저 여우 놈이…… 애초부터 주목할만한 시선에 초청할 생각이었어…….”
브라이언은 담배를 입에 물고, 멀리서 얻을 걸 다 얻어냈다는 듯 환하게 웃고 있는 체스터를 노려봤다.
그러자 체스터도 자신을 보고 있다는 것을 알아챘는지 능글맞게 웃으며 손을 흔들었다.
브라이언도 그에 맞춰 미소짓는 척하며 옆에 있는 심사위원에게 말했다.
“하이언? 이름도 처음 들어보는 무슨 개뼈다귀 같은 놈이…….”
브라이언이 말하자, 옆에 있던 다른 심사위원이 걱정스럽다는 듯 말했다.
“하지만 체스터 평론가가 저렇게 극찬하는 영화는 정말 오랜만이지 않습니까?”
“저놈 감 떨어진 거 몰라? 지금 심사위원장에 올라간 것도 옛날에 잘 쓴 비평 덕분이야. 요즘엔 그런 글도 못 쓰는 한물간 놈이라고.”
브라이언은 체스터의 결정을 이해할 수 없었다.
작년에 개봉한 자신의 영화는 칸 영화제에서 초청조차 받지 못했다.
그리고 소문에 따르면 체스터의 입김이 제일 강했다고 들었다.
그런데 뜬금없이 처음 들어보는 감독을 초청한다니…….
“하이언? 그놈 영화는 특히 신경 써서 봐야겠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