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 the only genius film director RAW novel - Chapter (82)
나 혼자 천재 영화감독-82화(82/276)
다음 날
좀 나아지는가 싶었더니, 진수 형과의 운동 덕분에 몸은 더 심각해졌다.
“후…….”
나는 삐그덕거리는 몸을 일으켰다.
오늘은 특히나 관객들과 기자들에게 잘 보여야 한다는 생각으로 머리까지 제대로 손질했다.
그리고 거울을 보며 나비 넥타이도 한번 정리한 후 준성이를 향해 물었다.
“괜찮냐?”
“어으…… 난 괜찮아. 어젠 그렇게 안 마셨어. 첫날이…….”
“아니. 나 보기에 괜찮냐고.”
준성이는 내 모습을 보더니, 고개를 끄덕이며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웠다.
“응. 괜찮네. 오늘은 좀 봐줄 만해.”
그는 아직도 취기가 좀 있는지 멍한 눈으로 나를 보며 말했다.
준성이는 필름 마켓에서 아무도 관심이 없다며 프랑스에 온 김에 와인이나 거덜 내보겠다는 심산으로 와인에 빠져 살았다.
“근데 와인 마시러 온 거냐, 영화 팔러 온 거냐?”
“사람들이 관심을 가져야 영화를 팔든가 말든가 하지. 인마. 대한민국이 어딨는지도 모르는 놈들이 대부분이야. 우리 부스엔 잘 오지도 않는다고.”
준성이는 머리를 부여잡으며 간신히 몸을 일으켰다.
“오늘 시사회 날이지?”
“그래. 좀 움직여라.”
“오늘부터 좀 바빠졌으면 좋겠네.”
준성이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턱시도를 챙겨 입었다.
“게스트 비짓(guest visit)은 자신 있냐?”
“당연하지.”
영화 상영 시 감독이나 영화 관계자들이 방문해서 영화에 대해 설명하는 시간, 그리고 관객들과 질의응답을 하는 무대를 말했다.
“연지랑 준식이 형도 자신 있겠지?”
“그것도 당연한 거고.”
준성이는 내 자신감이 마음에 들었는지 실실 웃으며 어깨동무를 하려다가, 신음을 내뱉었다.
“아직도 알이 안 빠졌어…….”
“난 어제 한 번 더 해서 죽을 거 같거든……?”
우리는 투닥거리며 1층 로비로 향했다.
이번에도 제작진들과 로비에서 모인 후 드뷔시 상영관으로 향했다.
타국에서 보이는 <자월>의 포스터에 왠지 모를 뿌듯한 감정이 샘솟았다.
레드카펫에서의 포토타임이 있긴 했지만, 여전히 우리에겐 관심이 없어 보였다.
레드카펫 옆에서 대기 중이던 기자 중 한 명이 심사위원들이 몰려오는 것을 확인하며 소리쳤다.
“어, 저기 체스터 씨다!”
상영관 앞에 나타난 심사위원장.
금빛 머리와 깔끔한 핏으로 떨어지는 양복.
서양인이라 그런지 긴 다리로 성큼성큼 걸어오는 모습에 왠지 압도되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그리고 그는 누구를 찾고 있는지 두리번거렸고, 그를 따라온 심사위원들의 모습이 뒤에 보였다.
“체스터 씨! 이번 황금 종려상은 누가 받을까요?”
“그딴 거 물어볼 거면 꺼져. 댁이 진짜 기자라면 좀 창의적인 질문을 던져.”
영어였지만, 누가 들어도 욕지거리를 붓고 있다는 건 알 수 있을 만한 어감이었다.
“저 사람 깡패냐? 유명한 평론가 아냐?”
“유명한 평론가긴 한데…….”
성격이 워낙 더러워서 마음에 들지 않는 게 있다면 가루가 될 때까지 까는 걸로 유명한 작자였다.
그래서 그런지 왠지 마주치고 싶지 않았지만, 그는 왠지 나를 향해 다가오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그리고 그 예감은 틀리지 않았다.
체스터 베이커가 내 앞에 서서 나를 바라보며 말했다.
“당신이 카이웡 츠안 하이언 감독이요?”
카이웡 츠안 하이언?
대체 무슨 이름인가 싶었지만, 나는 정확히 내 이름을 한 글자 또박또박 말했다.
“아뇨. 전 경찬현인데요.”
“어……?”
그는 당황한 듯 스펠링을 하나하나 읊었고, 그가 말한 이상한 이름이 나를 가리킨다는 걸 깨닫고 환하게 웃으며 말했다.
“아, 당신이구만! 내가 당신을 얼마나 찾았는데. 이 사람아! 뭐, 심사위원장이니까, 여기선 그냥 상투적으로 인사만 하자고. 나중에 시상식 끝나고 술이나 한잔하지. 자네 뭐 술 좋아하나? 내가 특별히 준비해두지.”
“네……?”
“영어 잘못하나? 술, 술 좋아하냐고?”
한국식 영어에 대해서 뭐라고 설명해야 할까.
빌어먹을 주입식 교육.
리스닝만 했지, 토킹은 안 해봤다고!
내가 잠시 멍하게 있는 걸 준성이가 보고 다가오며 대화를 낚아챘다.
“술 좋아하죠! 이 친구가 영어로 말하는 게에 좀 약합니다.”
“하하! 그거 나름 매력이구먼. 그래, 뭐 영화 찍는 사람이 영화만 잘 찍으면 됐지. 영어가 뭐가 중요하다고.”
“하하…….”
내가 어색하게 뒤통수를 긁고 있자, 체스터는 엄숙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봤다.
“<뱀>, <무요크>.”
내게 얼굴을 들이밀며 어색한 한국어 발음으로 내 영화를 말했다.
“오…….”
부정확하긴 했지만, 어느 정도 알아들을 수준의 발음에 웃음이 나왔다.
“더럽게 재밌더라고! 당신 천재야. 아으, 내가 심사위원장만 아니었으면…… 여하튼 시상식 끝나고 바로 돌아갈 생각하지 마. 알겠지? 내가 이번 영화 <즈아 웨올>? 도 기대하고 있어!”
“오, 오케이!”
거대한 풍채로 체스터는 내게 악수를 청했고, 나는 잔뜩 알이 배긴 팔을 간신히 들어 그와 손을 맞잡았다. 신음이 나오는 것을 간신히 참으며 이를 악물고 괜찮은 척했다.
체스터와의 인사를 마친 후 우린 드뷔시 극장으로 들어섰다.
우리나라와 비교도 되지 않는 상영관의 크기에 압도되는 느낌.
1,000명이 들어갈 수 있는 상영관의 스크린은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거대했다.
“후…….”
“선배도 긴장돼요?”
옆에 앉아있던 곽연지도 잔뜩 상기된 얼굴로 물었다.
“평가받는 자리라고 생각하니까, 좀 떨린다. 후…….”
“저도요. 후…….”
옆에 있던 준식이 형은 희한하게도 미소를 짓고 있었다.
“형, 정신 차려. 우리 GV도 해야 한다고!”
“하하. 사람들이 좋아할 거야. 찬현이 영화니까! 하하!”
정신을 놓고 있었던 거구나…….
준식이 형이 멍하게 있는 것을 보자, 나도 더욱 긴장됐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극장 안의 불이 꺼지고, 상영이 시작됐다.
***
체스터는 경찬현과 인사를 마치고, 드뷔시 상영관 안으로 들어섰다.
“저 친구, 아주 재밌는 놈 같지 않아?”
“예?”
옆에 있는 다른 심사위원이 체스터에게 되물었다.
“심사위원장 앞에서 대놓고 저렇게 인상을 찌푸릴 만한 놈이 얼마나 있겠나? 하하, 저 친구 더 마음에 들어.”
“하하…….”
“기죽지 않고, 하하, 내가 악수하면서도 힘을 강하게 주더군. 이를 악물고 말이야. 할리우드에도 저런 강단 있는 놈이 있으면 내가 어떻게든 띄워줄 텐데. 쯧.”
옆에 있는 심사위원은 체스터의 말에 인상을 찌푸렸다.
“그건 무례한 거 아닌가요?”
“무례라…… 저건 무례한 게 아니야.”
“네?”
“강단이 있다는 표현에 더 가깝지. 저놈 깡 좀 보라고! 주눅 들지 않고, 인상까지 찌푸리면서 너희 입을 쩍 벌려줄 영화가 시작될 테니, 기대하라는 저 자신감! 자네한텐 안 보이나?”
옆에 있던 심사위원은 체스터의 말에 고개를 좌우로 저었다.
“안 보이면 어쩔 수 없고. 쯧. 자네 사람을 볼 줄 모르는구먼.”
체스터는 장난스러운 미소를 지으며 손바닥을 비볐다.
“얼마나 재밌는 코스 요리가 나올지. 기대되는구먼.”
얼마 지나지 않아 불이 꺼졌다.
그 동시에 체스터는 제대로 된 자막과 함께 <자월>을 감상했다.
살아 숨 쉬는 듯한 곽연지의 연기에 한 번 홀렸다가도, 이내 나오는 박준식의 연기에 체스터는 인상이 절로 찌푸려졌다.
몇 주 전 봤던 <무욕>에서 나온 주연과 같은 사람인지 아닌지 정확하게 알 순 없었다.
분위기가 완전히 달랐으니까.
대체 무슨 방법을 썼길래 저런 연기를 보여준 거지.
저 정도로 연기 스펙트럼이 넓은 사람은 할리우드에도 얼마 되지 않을 텐데…….
그리고 마지막 하이라이트.
곽연지가 박준식의 약점을 잡고 흔드는 장면은 연기, 연출, 구도. 흠잡을 게 하나도 없었다.
주위에 있는 관객들의 표정을 한번 훑어볼 시간도 없었다.
체스터는 눈을 스크린에 고정하며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두 손을 부여잡으며 관람하자 긴장감 때문인지 손에선 땀이 배어 나왔다.
“와…….”
하이라이트 장면이 끝나자, 옆에 있던 심사위원이 나지막이 감탄을 내뱉었다.
그 감탄을 들은 체스터는 심사위원을 보며 밝은 미소를 지었다.
자신의 눈이 틀리지 않았다는 것에 대한 안도감 덕분과 오래간만에 좋은 비평을 쓸 수 있겠다는 즐거움.
이것만으로도 그의 입가에는 미소가 번졌다.
[당신 대체 뭐 때문에 이렇게까지 했던 거야?] [굳이 말해줘야 하나?]곽연지의 대사를 마지막으로 영화는 막을 내렸고, 동시에 불이 켜졌다.
“재밌지만…… 마냥 가볍지만은 않아. 새롭고 짜릿해.”
“당신 말이 맞네요…… 체스터 씨. 이건 경쟁 부문 감이었어요.”
옆에 있던 심사위원이 체스터를 향해 속삭였다.
“그렇지? 나중에 <무요크>랑 <뱀>도 구해서 보라고. 그 영화도 재밌으니까. 이제 일어나서 저 감독한테 박수나 보내주자고. 이런 영화를 봤는데 고맙다는 마음 정도는 표현해야 하지 않겠나?”
체스터는 심사위원과 몇 마디 나눈 후, 이미 기립박수를 하고 있던 사람들과 같은 마음으로 경찬현의 영화에 박수를 보냈다.
“저기 일어나고 있는 사람이 하이언 감독이죠?”
“어……? 응. 근데 발음이 그게 아닌가 봐. 켱이라고 하던데?”
“켱?”
“응. 켱 감독이라고 부르자고.”
경찬현은 자신을 향해 쏟아지는 박수에도 환한 미소를 보여주질 않았다.
“저놈은 웃지도 않는구먼. 흐흐…….”
“엄청난 자신감이에요.”
옆에 있던 배우들은 환한 미소를 보여주며 주위를 향해 고개 숙이기 바빠 보였지만, 고개를 빳빳이 세운 상태로 주위를 둘러보는 경찬현의 모습은 마치 당연한 반응이라는 듯 느껴졌다.
***
영화가 막을 내리자마자 우레처럼 쏟아지는 박수.
내 영화에 대한 감사함에 대한 표시에 감격했지만, 목이 뻐근한 탓에 주위를 둘러보는 것조차 힘이 들었다.
하지만 그들의 박수 소리는 내 심장박동을 더욱 거세게 만들었다.
이런 감정은 처음이라 그런지 표정을 어떻게 지어야 하는지 몰랐다.
기립박수는 거의 10분 넘게 진행됐다.
“선배, 선배 말이 맞았어요…….”
“역시 찬현이 영화라니까!”
옆에 있던 곽연지와 준식이 형은 우리를 향해 박수를 보내고 있는 관객들을 향해 고개를 숙였다.
나도 그들과 함께하고 싶었지만, 고개를 숙이기엔 목이 너무 뻐근했다.
박수 소리가 잦아들고, 우리는 스크린 앞에 단상으로 올라서기 위해 자리를 옮기기 위해 천천히 움직였다.
그러자 몇몇 영화 관계자들의 말이 들렸다.
“저 사람 어디에서 왔다고? 지금 당장 저기 제작사 연락해! 배급권 우리가 따와야 한다고!”
“필름 마켓에 있는 인원들한테 연락해! 얼른! 숭하이언 제작사? 여하튼 빨리! 찾아내라고! 동양인이라니까!”
“빨리! 우리가 먼저 낚아야 해! 저 영화 배급은 우리가 맡아야 한다고!”
이런 말들을 뒤로 한 채, 나는 예상해온 것들을 머릿속으로 되뇌었다.
가벼운 질문부터 무거운 질문까지.
철저하게 준비해온 탓인지 삐그덕 거리는 몸을 제외하곤 모든 게 좋게 느껴졌다.
앞에 마련된 단상에 앉자마자, 앞에 있던 관객들은 호기심에 가득 찬 듯한 눈빛으로 우리를 쳐다봤다.
그 눈빛이 부담스러워지려던 찰나, 진행 요원이 마이크를 건넸다.
옆에 있는 통역사는 내 말을 기다렸고, 나는 그렇게 힘겹게 첫 마디를 내뱉었다.
“반갑습니다. 여러분. 대한민국에서 온 영화감독 경찬현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