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 the only genius film director RAW novel - Chapter (89)
나 혼자 천재 영화감독-89화(89/276)
고상우는 며칠간 제대로 잠들 수 없었다.
두근거림, 불안함, 설렘.
경찬현 감독이 이준성을 설득한다고 말한 지도 벌써 며칠이 지났다.
혹여나 설득하지 못했을 거란 불안감.
동시에 너무 큰 탓에 부끄러워 숨기고 있던 자신의 꿈을 알아준 사람이 경찬현 감독이라는 설렘.
온갖 감정들이 뒤섞여 잠들려고 했다가도 다시 눈이 번쩍 뜨였다.
“오빠 많이 피곤해요?”
스케줄 때문에 운전하고 있는 고상우를 보며 곽연지가 물었다.
곽연지는 고상우의 눈 밑에 있는, 전에는 없던 시커먼 그림자가 괜히 불안했다.
졸지 않으려고 눈을 부릅뜬 그가 안쓰러웠다.
“어……? 아냐. 괜찮아.”
“어휴, 저기 갓길에 세워봐요.”
“아냐, 진짜 괜찮아.”
“이제야 간신히 떴는데 오빠 졸음운전으로 죽고 싶지 않거든요?”
고상우는 곽연지의 말에 멋쩍게 웃으며 갓길에 차를 세웠다.
그들은 서로 자리를 바꾸며 곽연지가 운전했다.
그녀는 핸들을 한 손으로 잡으며 능숙하게 갓길에서 도로로 다시 들어가며 물었다.
“오빠, 뭐 힘든 거 있어요? 요즘 바쁘긴 했어도 너무 피곤해하는 거 같은데.”
“아, 아무것도 아냐.”
곽연지는 빨간불로 바뀐 신호등 앞에서 차를 멈추곤 고상우의 얼굴을 제대로 살폈다.
그녀는 커다란 눈으로 약간은 홀쭉해진 거 같은 고상우의 볼을 보며 놀랐다.
“무슨 일 없으면 어디 아픈 거 아니에요? 찬현 선배 만나고 온 후로 사람이 망가졌어. 살도 빠지고. 밥은 먹고 다녀요?”
“살 빠진 건 좋은데? 요즘 운동하고 있거든.”
“웬일이래? 내가 그렇게 운동 좀 하라고 할 땐 남자는 좀 퉁퉁해야 한다더니?”
곽연지의 말에 고상우는 실실 웃으며 대답했다.
“경 감독이랑 준성이 때문에. 나랑 동갑인데 프랑스에서까지 열심히 운동했다는 거 보니까. 나도 왠지 해야 할 거 같아서.”
“그거…… 아, 아니다.”
곽연지는 경찬현이 촬영감독 박진수의 손아귀에서 벗어나지 못했다는 걸 알고 있었다.
시사회 전날 피트니스 센터는 경찬현이 죽어가는 소리로 가득했으니까.
그리고 박진수에게 제발 살려달라고 외치던 것도…….
하지만 알려주면 안 될 것 같아 그녀는 이내 말을 흐렸다.
고상우는 그걸 눈치채지 못했는지 잠시 무슨 생각을 하는 듯 조용히 있다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연지야.”
“네?”
“너 계약 기간 이제 푸름이랑 5개월 남았잖아.”
“그죠?”
푸름 엔터테인먼트.
곽연지는 이 기획사에 꽤 오랜 기간 몸담고 있었다.
처음 왔을 때만 해도, 매니저들을 붙여주며 스타급 대우를 해줬지만 해가 갈수록 사라지는 그녀의 입지에 유일하게 남은 매니저는 고상우 한 명.
그래서 곽연지는 유난히 고상우에게 고마움을 느꼈다.
끝까지 희망을 놓지 않은 채 항상 잘 될 거라고 토닥여준 유일한 사람이었으니까.
“다른 데로 갈 거야?”
“그러지 않을까요? 지원 빵빵하고 일 잘해주는 데로!”
곽연지는 고상우의 눈치를 살짝 보며 말했다.
“그래, 그게 맞지. 어디든 푸름보다는 훨씬 나을 거야.”
고상우의 말에, 곽연지는 인상을 찌푸리며 말했다.
“아니, 좀 서운하네……? 잡아야 하는 거 아니에요?”
“어?”
“아니, 매니저가 스타들 잡는 건 직업 정신 아닌가? 저 이제 스타 배우예요! 잡는 척이라도 해야지!”
곽연지가 장난스러운 눈빛으로 고상우를 바라보자, 고상우는 미안하다는 듯 어색한 미소를 지었다.
“잡을 면목이 없지. 푸름이 너한테 해준 게 뭐가 있다고.”
곽연지가 <자월>의 주연 배우로 발탁됐을 때.
푸름 엔터 쪽에선 무슨 생각이었는지 아무런 기사도 내질 않았다.
오히려 성현 제작사 마케팅팀 쪽에서 열심히 홍보했을 뿐, 푸름 엔터는 곽연지에 대한 공격에 대해 어떤 반응도 보이질 않았다.
고상우는 푸름 엔터 사장에게 찾아가 봤지만 돌아오는 대답은 잔인했다.
‘이제 그년 떠 봤자, 우리 회사에 득 될 게 없어. 곧 나갈 배우한테 그렇게 공들이지 마. 하…… 혜윰 엔터한테 밉보일 짓이나 하다니. 경찬현인가? 걔, 뭐 영화 두 개 운으로 뜬 거 아냐? 이서빈이 있는데, 곽연지를 왜?’
오히려 곽연지를 평가절하하며 비아냥거렸던 사장.
계약 기간도 얼마 남지 않았기에, 푸름 엔터는 적극적으로 무언갈 할 생각조차 없어 보였다.
아무리 돈이 되지 않는 일은 하지 않는다는 게 이 바닥의 섭리라지만, 고상우는 그런 상황 자체가 너무 역겨웠다.
하지만 이건 약과로, 뜬 이후가 더 가관이었다.
약점까지 잡아가며 어떻게든 재계약을 따내라던 사장의 모습은 구역질이 올라올 정도로 강한 악취를 풍겼다.
“회사가 해준 게 없긴 해도, 오빠 붙여준 것만으로도 저한텐 행운이에요. 오빠 덕분에 <자월> 역할 맡아서 스타 된 거니까요.”
곽연지는 배시시 웃으며 운전대를 손가락으로 톡톡 치며 말했다.
그러자 고상우는 걱정스럽다는 듯 곽연지를 바라봤다.
“근데 누가 스타래? 벌써 그러면…….”
“오늘 소주 광고까지 찍으면 스타죠! 원래 제일 핫한 스타들만 찍는 거잖아요.”
“벌써 그러면…….”
“장난도 못 치나? 오빠는 매사에 너무 진지한 게 문제라니까.”
띠리링-.
갑자기 울리는 벨소리에 고상우는 몸을 뒤적거리며 핸드폰을 찾았다. 그리고 오른쪽 주머니 깊은 곳에 박혀있던 핸드폰을 꺼냈다.
떠 있는 이름은 경찬현 감독.
그걸 보자마자, 고상우는 옆에 있는 곽연지를 한번 흘깃 봤다.
“안 받아요?”
“어……?”
“뭐, 아! 여자친구라도 생긴 건가? 부끄러워서 그러죠? 에이, 우리가 알고 지낸 게…….”
“잠깐만…….”
고상우는 잠시 고민을 하다가, 전화를 받았다.
어차피 곽연지는 푸름 엔터를 떠날 사람이니까.
“네. 경찬현 감독님.”
운전하던 곽연지는 의외의 이름에 깜짝 놀랐는지, 몸을 움찔거렸다.
-네. 지금 통화 괜찮으신가요?
“네. 괜찮습니다.”
-준성이 설득했고요, 같이 새로운 기획사 만들 준비하면 될 거 같네요.
수화기 너머로 들리는 말에 고상우는 옆에 있는 곽연지를 바라봤다.
곽연지는 경찬현의 말이 들리지 않는 듯, 무슨 통화를 하는지 궁금해 죽으려고 하는 눈치였다.
“하하…… 좋네요.”
-네. 상우 씨가 말한 미래. 함께 그려보죠.
고상우는 마치 앞에 경찬현이 있는 듯 고개를 꾸벅 숙이며 말했다.
“네, 감독님. 정말…… 감사합니다. 어떻게든 꼭, 성공해 보이겠습니다.”
경찬현과 몇 마디를 더 나눈 후 전화를 끊자, 옆에 있던 곽연지는 대체 무슨 이야기를 한 건지 감도 잡히지 않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
“뭐예요?”
“어…… 나 기획사 사장 된대…….”
곽연지는 방금 자기가 무슨 말을 들었는지 모르겠다는 듯 고상우를 빤히 쳐다봤다.
“저 방금 잘 들은 거 맞아요? 기획사 사장이요? 푸름 같은 기획사?”
“응.”
“갑자기요?”
“어…… 그렇게 됐네.”
고상우는 곽연지에게 경찬현과 했던 이야기들에 대해서 말했다.
배우, 아이돌 등 모든 분야를 다루는 기획사.
해외 진출을 목적으로 대한민국을 세상에 널리 알리겠다는 목적으로 세워진 기획사.
하지만 그걸 들은 곽연지는 인상을 살짝 찌푸리며 이해가 되지 않는다는 듯 말했다.
“그게 말이 돼요……? 아니, 그런 게 목적인 엔터가…… 우리나라에 지금 있긴 해요? 미국 진출이 목적이라니…….”
“해낼 거야. 꼭. 어떻게든. 경찬현 감독님이 날 믿어준 만큼, 꼭!”
고상우가 두 주먹을 불끈 쥐고 있는 모습을 보며, 곽연지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광신도 납셨네…….”
하지만 그녀 역시도 경찬현을 믿는 사람 중 한 명.
칸에 가는 버스에서 했던 말이 기억났는지 그녀는 피식 웃었다.
그녀가 웃는 걸 보며 고상우는 함께 웃다가, 곽연지를 보며 진지한 표정을 지었다.
“근데 너 혹시…….”
“말을 하려면 끝까지 해요.”
고상우가 말을 흐리자, 곽연지는 기대하는 듯한 어투로 말했다.
“아직 만들어지진 않았지만, 우리 엔터랑 계약할 생각 있어? 푸름 엔터 대표 놈이랑은 차원이 다르게 대우해줄게. 딱 네 계약 기간 만료 전까진 만들어질 거 같은데.”
“어제까지만 해도 대표님이더니, 벌써 놈이에요?”
곽연지의 말에 고상우는 멋쩍게 웃다가도 곽연지를 보며 확신했다.
곽연지 정도라면 지금 위치보단 훨씬 높게 올라갈 수 있다고.
고상우의 눈엔, 곽연지는 어마어마한 잠재력을 가지고 있는 배우였다.
그래서 희망의 끈을 놓지 못했던 거고.
하지만 이런 이야기를 대표에게 해봤자 아무런 의미가 없었다.
말단 매니저였으니까.
대부분의 사람들이 자신을 바라보는 눈빛은 그 이상 이하도 아니었다.
경찬현을 제외하곤.
“푸름이 너한테 아무것도 안 해준 거. 내가 다 해줄게. 계약 끝나면 바로 옮기자.”
“근데 그럼 이제 오빠가 아니라 대표님이라고 불러야 하나……?”
“대표님은 무슨…….”
“에이, 대표가 위엄이 있어야지! 이 순두부 같은 인간이 잘 할 수 있으려나?”
곽연지는 흐뭇한 미소를 지으며 고상우를 쳐다봤다.
순두부라는 말을 하긴 했다만, 그녀는 알고 있었다.
고상우가 겉은 부드러워도 속은 단단한 전형적인 외유내강의 인간이라는 걸.
“여하튼, 축하해요. 고 대표님.”
***
며칠 후.
준성이와 고상우 그리고 나는 성현 제작사에 모여 새로 만들 기획사에 대해 토론했다.
준성이는 고상우의 ‘문화에 대한 열변’을 직접 듣고 나선 완전히 설득된 듯 보였다.
“원래 그렇게 말을 잘했냐……?”
준성이는 고상우가 말을 할 때마다, 고개를 끄덕이며 완전히 말도 되지 않는 꿈은 아니라고 말했다.
그 결과, 소속사의 이름은 ‘GO 엔터테인먼트’.
준성이가 격렬하게 반대하긴 했다만, 나는 고상우의 손을 들어줬다.
2:1로 새로운 기획사의 이름은 내가 알던 고상우의 소속사로 정해졌다.
“저…… 연지 있잖아요. 새로 만들 소속사랑 계약해도 되겠죠? 푸름 엔터랑 곧 계약이 끝나거든요…….”
“그럼요. 저희야 환영이죠.”
준식이 형은 이미 이야기를 모두 끝내놓은 상태고, 곽연지까지 들어온다면 홍보 측면에서 사람들에게 많이 알려질 수 있을 거다.
이런 생각을 하다가 고상우는 내가 꽤 어려웠는 듯 눈치를 보는 게 신경이 조금 쓰였다.
“아, 근데 이제 저희 말 놓을까요? 준성이랑 상우 씨랑 친구니까. 저랑도 친구처럼 지내는 게 좋을 것 같은데.”
“맞아. 말들 놔. 어차피 이제 오래들 볼 사인데, 어쩌면 평생 볼 사업파트너 아니냐.”
준성이의 말에 고상우는 멋쩍은 듯 미소를 지으며 뒤통수만 긁었다.
“불편하시면 나중에…….”
“아, 아닙니다. 하하, 놓으시죠.”
“그러자. 상우야.”
“……어…… 그래, 상현아…….”
고상우는 소심하게 내 이름 정도만 말하곤 입을 꾹 닫았다.
자신의 포부를 말할 땐 눈이 빛났지만, 그 이외엔 거의 조용한 사람 같았다.
‘GO 엔터테인먼트’.
이제야 한 걸음 뗐을 뿐. 앞으로 어떤 일이 일어날진 아무도 모른다.
하지만 단 한 가지는 확신할 수 있었다.
세계적인 한류 열풍을 최소 10년 이상은 앞당겼다는 것.
이런 생각에 흐뭇하게 웃고 있었는데, 고상우가 뭔가 망설이듯 말했다.
“아…… 그리고 나 곧 개명할 거 같아.”
“으, 응? 개명?”
준성이가 고상우를 보며 물었다.
“응…… 돌아가신 할아버지가 어머니 꿈에 나왔다네. 하하…….”
“그래서 뭐로 바꾸는데?”
“고진훈. 하하…… 이제부터 진훈이라고 불러줘.”
드디어 내가 알고 있던, 대한민국 문화의 한 축을 담당한 사람의 이름이 들려왔다.
한류 덕분에 CNN에서 인터뷰까지 나왔던 바로 그 고진훈!
그 이름이 들리자 입가엔 절로 미소가 번졌다.
“야, 개명은 쟤가 하는데, 왜 얘가 웃냐……?”
“이름 이상해……?”
고진훈은 불안한 듯 나를 쳐다보며 물었다.
“너무 좋은 이름이라 그래. 진훈아! 앞으로 친하게 지내자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