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 the only S-class summon RAW novel - Chapter 122
나 혼자 S급 소환수 122화
둠 나이트 (4)
“마침내…… 오는가……?”
평야 위에 서 있는 한 존재가 조용히 읊조렸다.
붉은 갑주를 입고 있는 존재.
웬만한 악마들은 감히 쳐다도 보지 못할 기운을 내뿜고 있는 그는 다름 아닌 크림슨 나이트였다.
그리고 그의 주변에는 수만의 악마들이 빽빽이 차 있었다.
“다가오는 놈들의 기운이 느껴진다. 다들 전열을 갖추고 대비하라.”
크림슨 나이트의 명령에 악마들이 무기를 들고 포효했다.
가지각색의 흉포한 악마들.
3m를 훌쩍 넘기는 거구도 있었고, 팔이 여러 개 달린 괴물도 있었다.
그들은 호기롭게 전투를 준비했지만, 내심 긴장한 기색도 역력했다.
“둠 나이트……. 저번에 싸워봤지만 무시하지 못할 강자다.”
“그래도 우린 수가 많으니까. 이길 수 있을 거야.”
“곧 타르라크에 유례없는 대전쟁이 벌어지겠군.”
“클클, 심심했는데 그것도 나쁘지 않지.”
악마들은 기운을 끌어올린 채로 전방을 응시했다.
미증유의 강대한 파동이 다가오고 있는 그곳을.
“…….”
크림슨 나이트는 인상을 찌푸렸다.
지난번 혈투가 떠올랐기 때문이었다.
자신은 분명 놈에게 밀렸다.
주변의 악마들이 도와줬기에 망정이지, 1:1로 붙었다면 분명히 자신이 패배했을 거다.
‘오랫동안 타르라크를 지배하면서 본 적 없던 검술…….’
크림슨 나이트는 직감했다.
이번 전투에서 녀석을 잡지 못한다면, 동부 지역의 패자(覇者)가 바뀔 거라는 사실을.
“비겁한 방법을 써서라도…… 어떻게 이기기만 한다면…….”
녀석을 따르는 모든 악마들이 다시 자신에게로 넘어올 것이다.
“어차피 전쟁은 물량 싸움이야.”
자신이 밀린다고 해도.
전체 병력이 우세하면 결국은 자신의 승리 아니겠는가.
그러한 결과를 바란 크림슨 나이트는 놈이 다가오기만을 기다렸다.
그렇게 짧은 시간이 흐르고, 하늘이 더욱 붉어질 무렵.
“드디어…….”
눈앞에 둠 나이트의 대군단이 도착했다.
최전방에 선 녀석의 모습과 그 뒤를 따르는 수천의 악마들이 보였다.
“크큭, 역시 수적으로는 우리가 우세하군.”
문득, 크림슨 나이트의 떨림이 멈췄다.
가없이 불안했던 마음도.
혹시나 했던 생각도.
막상 녀석의 자그마한 군단을 맞이하니, 눈 녹듯 사라졌다.
오히려 묘한 흥분감이 몸을 뒤덮었다.
‘이제 싸워야 할 때.’
크림슨 나이트의 턱이 천천히 올라갔다.
이내 눈빛이 섬뜩하게 변함과 동시에 입이 벌어졌다.
“악마들이여…….”
“키아아!”
“키에에에!”
그의 말에 악마들이 단체로 울부짖었다.
전 병력이 콧김을 뿜으며 달려나갈 준비를 했다.
“타르라크에 혼란을 가져온 자들을 처단하라!”
크림슨 나이트의 거친 외침과 함께, 악마들이 빠르게 질주하기 시작했다.
* * *
“와, 장난 없는데?”
달려드는 악마들을 보며 진도윤이 가장 먼저 꺼낸 말이었다.
직접 눈으로 보는 녀석들의 모습은.
둠 나이트가 기억으로 전해줬던 것과는 차원이 달랐다.
산전수전 다 겪었던 진도윤이 보기에도 살이 떨리는데, 일행들은 어떠할까.
“……이걸 뚫고 크림슨 나이트를 잡는 게 우리 임무였죠?”
“거의…… 불가능에 가까운 임무였던 것 같습니다.”
고작 소수의 데스나이트를 잡는 실력으로 저 대군단을 격파한다는 건 확실히 무리였다.
하지만 지금은…….
이곳의 최강자 반열에 들어선 둠 나이트가 있다.
“후우…… 둠.”
진도윤의 말에 녀석이 검을 들며 전방을 응시한다.
“넌, 나만 믿고 크림슨 나이트만 상대해. 나머지는 내가 맡을 테니까.”
“…….”
고개를 끄덕이며 크림슨 나이트 진영을 맞이할 준비를 하는 둠.
녀석의 눈빛에는 주인에 대한 무조건적인 신뢰가 있었다.
솔직히 저 끔찍한 수의 병력을 밑도 끝도 없이 책임져 준다는데, 그 누가 제정신으로 믿을 수 있을까.
하지만, 둠은 묵묵히 땅을 박찼다.
자신의 주인은 절대 없는 말을 하는 서머너가 아니었으니까.
“키에에에!”
“크아아!”
둠 나이트가 달려나가자, 그를 따르는 악마들도 함께 내달렸다.
수적 열세에 기가 죽을 법한데도, 그들은 싸움을 마다하지 않았다.
과연 둠을 따르는 악마다웠다.
“좋아.”
그 모습을 본 진도윤이 품에서 정령왕의 돌을 꺼내 들었다.
이제부터 쇼 타임이다.
“유아린.”
“넵!”
“준비됐지?”
유아린이 던전에서 도움 되는 가장 큰 이유.
그것은 그녀가 지닌 이프리트에 있다.
“물론이죠.”
그녀가 당차게 대답했다.
“그럼 어디 제대로 놀아보자고.”
정령계 역시 마계와 비슷하다.
그리고 정령계에 있는 최상급 정령들 역시 이곳 악마들 못지않게 강력하다.
진도윤은 끓어오르는 투지와 함께, 돌에 감응력을 냅다 퍼부었다.
쿠궁!
그 순간, 공간이 뒤흔들리기 시작했다.
“음……?”
엄청난 기운의 유동에 크림슨 나이트의 고개가 기울어질 찰나.
불과 물의 기운이 공간을 스멀스멀 장악하기 시작했다.
[띠링!] [정령왕의 돌을 사용합니다.] [30분 동안 현세에 정령계를 소환합니다.] [앞으로 한 달 동안 사용이 제한됩니다.]“아아아…….”
과연, 정령왕의 돌.
엄청난 기운에 피부가 저릿저릿해 오기 시작했다.
[모든 정령들이 돌의 주인을 따릅니다.]쩌저저적!
그 순간, 허공이 찢어지며 차원의 틈이 드러났다.
동시에, 수많은 불과 물의 정령들이 튀어나오기 시작했다.
“진도유운! 저번에 당한 수모, 돌려주면 되는 거지?”
“끼루루루!”
엘라임도, 피닉스도.
본연의 힘을 되찾았는지 자신감 어린 표정을 지었다.
“…….”
진도윤은 이를 악물고 버텼다.
정령계를 다루는 데는 막대한 집중력을 필요로 하기 때문이다.
“다들 공격해! 알지? 30분 안에 끝내야 하는 거!”
“웅! 맡겨만 주라고!”
진도윤의 외침에 정령 군단 역시 둠 나이트의 대열에 합류했다.
쿠구구구…….
땅이 뒤흔들렸다.
서로가 서로를 향해 달려나가는 질주.
그리고 이윽고-
콰아아아앙!
대지가 요동치고 수만의 스킬들이 뒤섞이는 총력전이 시작됐다.
불이 타오르고 땅이 뒤집히는 그야말로 장관에 가까운 풍경.
서로서로 물어뜯고 찢었으며, 눈앞에 보이는 상대를 파괴했다.
“으라차차!”
엘라임이 막대한 물의 기운을 운용해 사방에 뿌렸다.
촤르르륵!
날카로운 물줄기들이 갈퀴처럼 뻗어 나가 악마들의 포를 뜬다.
“터져라!”
동시에, 달라붙은 물들이 일제히 폭발한다.
크림슨 나이트 진영의 악마들이 정신없이 피하려 했지만, 그녀의 공격은 빠르면서도 정밀했다.
“나도 보여줘야겠군.”
이프리트 역시 미소 지으며, 오래간만에 돌아온 폭발적인 힘을 흩뿌렸다.
화르르륵!
거대한 염화의 파도가 눈앞에 보이는 모든 악마들을 시커멓게 태워버렸다.
“…….”
그런 정령들의 활약을 바라보던 크림슨 나이트는 가슴이 철렁했다.
“이게…… 무슨.”
분명 조금 전까지만 해도 자신의 승리를 점쳤었는데.
갑자기 이게 무슨 일이란 말인가?
“저것들은 다 뭐야?”
마계에서는 본 적 없는 존재들.
그들 하나하나가 자신의 악마들과 비슷한 힘을 내뿜고 있었다.
그는 본능적으로 느꼈다.
전쟁의 판도가 뒤바뀌었음을.
‘이렇게 양측의 전력이 비슷해진다면…….’
자신과 둠 나이트의 싸움으로 승부가 결정될 것이다.
하지만 대책 없이 싸우면 놈의 검술에 당할 게 자명한 일.
무언가 그렇다 할 방법을 마련해야 했다.
그러나 전쟁 중에 그런 시간이 있을 리 만무했다.
“허업!”
크림슨 나이트는 기겁했다.
어느덧 다가온 둠 나이트가 그를 향해 검을 휘둘러 왔기 때문이었다.
채앵!
크림슨 나이트는 보이지 않을 정도로 빠르게 다가오는 검을 다급하게 쳐냈다.
챙챙챙! 챙! 채앵!
그러나 둠 나이트는 쉴 새 없이 맹공을 퍼부었다.
저번에 당했던 설움을 갚아주기라도 하듯.
“이런 미친 괴물 같은!”
크림슨 나이트가 입을 쩍 벌리며 욕설을 내뱉었다.
동시에 두려움이 스멀스멀 몰려오기 시작했다.
이미 마음으로 패배를 인정하고 있었기에, 둠의 공격이 더욱 부담으로 다가오는 것이다.
‘제기랄, 아직 방법을 찾지 못했는데…….’
별다른 방법이 떠오르지 않았다.
지금 할 수 있는 건 그저 검술로 맞상대하는 것뿐.
“어떤 수를 썼는지는 모르겠지만…… 그리 쉽지만은 않을 거다.”
파바바바박!
두 강력한 존재의 사이에서 공기 터지는 소리가 연달아 울려 퍼졌다.
불과 10초라는 시간 동안.
무려 수백 번의 검로와 수 싸움이 오갔다.
주변에 있던 악마들은 그들이 어떻게 싸우고 있는지도 보지 못할 정도.
“과연! 크림슨 나이트다!”
“둠 나이트와 호각을 다투고 있어!”
“우리도 싸우자!”
주변 악마들은 그들이 제법 비슷하게 싸우고 있다 느꼈지만.
정작 크림슨 나이트는 죽을 맛이었다.
‘상대가 왜 둠 나이트라 불리는지 알 것 같군.’
싸우면 싸울수록 점점 수렁에 빠져드는 기분.
그야말로 살아 있는 지옥을 맛보는 느낌이었다.
“도대체 어떤 검술이기에…….”
나름 경지에 도달했다고 하는 자신을 이렇게 몰아붙일 수 있는 걸까?
검과 검이 부딪힐수록 크림슨 나이트는 힘겨워지는 것을 느꼈다.
그렇게 수십 합을 더 겨뤘을까.
‘음?’
크림슨 나이트의 시야에 둠의 빈틈이 보였다.
정신없이 당하던 와중에 보이는 희망의 끈.
‘실수인가?’
기회다 싶은 그는 둠의 목을 노리고 검을 내리그었다.
서걱!
무언가 베이는 감각에 크림슨 나이트는 속으로 환호를 내질렀다.
자신의 공격이 마침내 성공한 것이다.
둠 나이트가 아무리 강력하다 해도 이렇듯 치명타를 터뜨리면 승산은 자신에게 온다.
원래 전투란 선빵을 먹이는 사람이 유리한 법이니까.
“크큭, 멍청한 놈. 방심했구나.”
차오르는 희열감에 입꼬리를 말아 올리는 찰나.
푸욱!
자신의 목을 파고드는 차가운 검날의 감각이 느껴졌다.
“으응?”
무슨 일인지 알아채지도 못할 찰나.
하늘이 빙글빙글 돌기 시작했다.
툭!
떨어지는 느낌과 함께 차가운 바닥과 자신의 얼굴이 닿는다.
‘아아……?’
잠깐 넋 놓고 있는 순간, 그는 깨달을 수 있었다.
자신의 목과 신체가 분리되었음을.
녀석의 빈틈은 속임수였고, 결국 당한 것이 자신이라는 것을.
‘이런…….’
그는 믿을 수가 없었다.
동부 지역을 다스렸던 자신이 고작 저런 한 수에 당했다니.
평소 이런 허무한 결과를 당할 거라고는 상상조차 하지 않았었다.
‘내가…… 정말 졌다고?’
패한 원인을 분석하거나 억울해할 시간조차 없었다.
스르륵!
먼저 보였던 시야가 캄캄해졌고-
자신의 혼이 하늘로 치솟으며 소멸하는 것도 느껴졌으니까.
“…….”
철그렁!
떨어진 크림슨 나이트의 붉은 갑주를 둠 나이트는 싸늘하게 응시했다.
그러고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고작 이 정도 실력으로 패자라 불렸다니, 우스웠기 때문이었다.
어쨌든 적의 수장이 잡혔으니, 싸움은 끝.
지이잉!
둠 나이트가 검을 번쩍 들었다.
이 전쟁의 마무리를 짓기 위해서였다.
스걱! 서걱!
둠 나이트는 힘차게 내달리며 남은 크림슨 나이트 진영의 악마들을 썰어나가기 시작했다.
동부 평야, 타르라크의 주인이 완전히 뒤바뀌는 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