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 the only S-class summon RAW novel - Chapter 252
나 혼자 S급 소환수 252화
데몰리션 (2)
꿈뻑꿈뻑.
‘뭐지?’
유리아가 눈을 깜빡였다.
‘분명, 바알과 마스터가 부딪히려 했는데.’
그 순간.
공간 전체가 멈춰버렸다.
그 강력했던 악마들도.
눈을 부릅뜨고 있는 천사들도.
심지어 전투 여파에 휘날리던 잔해마저 말이다.
마치 고정된 사진 속에 혼자 들어와 있는 것처럼 느껴지는 이질감.
누군가 마법이라도 부린 걸까?
도저히 이해할 수가 없는 상황이었다.
“후우……. 뭐야, 이게.”
자연스럽게 한숨이 나왔다.
앞으로 나오는 뿌연 입김만이 이 적막한 세상 속의 유일한 변화였다.
‘잠깐?’
유리아는 그 순간, 묘한 기시감을 느꼈다.
입김?
세상이 멈췄는데?
그녀가 고개를 갸웃했다.
그 대악마도, 심지어 진도윤마저 멈춰 있는데.
왜 자신만 움직일 수 있는 거지? 어떻게?
“유리아.”
“어? 뭐야!”
갑자기 들려오는 목소리에 그녀가 고개를 휙- 돌렸다.
놀라움 반, 그리고 반가움 반이었다.
이런 끔찍한 세상 속에 혼자 남게 되면 어쩌나 슬며시 걱정하려던 찰나였기 때문.
“제프리? 그리고 유아린도 있네?”
“네.”
“세상이 멈췄다. 내 소환수도 전부.”
“근데 우리만 움직일 수 있는 것 같아요. 딱 우리 셋만.”
유아린과 제프리가 번갈아 가며 대꾸해 왔다.
그들 역시 놀란 눈치였다.
하긴, 이 상황에 놀라지 않을 사람이 있을까?
굳이 한 사람 꼽자면, 저기 굳어 있는 마스터 정도나 되어야 태연하겠지.
“근데 왜, 우리만…….”
미간을 찌푸린 유리아가 진도윤을 향해 다가가려 할 찰나였다.
“유리아. 멈춰라.”
제프리가 만류했다.
“왜?”
“일단 상황 파악부터 하지. 함정이나 저주일 가능성도 있어.”
“아, 섣불리 움직이지 말란 거지?”
유리아가 뒷걸음치자, 제프리가 고개를 끄덕였다.
미궁에서도 수많은 환각류 함정을 겪어왔다.
그때도, 무작정 나서는 것보다는 어디 한 곳에서 충분히 상의한 후 움직였었지.
그들은 널찍해 보이는 자리 한 곳을 찾자, 유리아가 입을 열었다.
“제프리, 뭐 아는 거라도 있는 거야?”
“네비로스가 말했었지.”
그가 쪼그려 앉았다.
“해결책이 없는 저주나 함정은 없다고.”
“오오, 그래서?”
“뭘 그래서냐. 네비로스도 없는데. 이제부터 찾아봐야지.”
“……뭐야, 너도 모른다는 거잖아?”
유리아가 눈매를 좁혔다.
그러자 계속해서 볼을 꼬집고 있던 유아린이 입을 열었다.
“계속 통증이 느껴지는 것 보니, 꿈은 아닌 거 같아요.”
“후, 난 너희가 과연 실재하는 존재인지도 의심스럽거든?”
혹시나 자신 혼자 이미 죽어서 환상을 보고 있는 건 아닌지.
아니면, 이 또한 저주의 일종 아닌지.
별의별 생각이 다 들기 시작했다.
유리아는 주변을 바라봤다.
문득, 다시금 비현실적인 상황임을 자각했다.
각자 흉포한 모습으로 공간을 꽉꽉 채우고 있는 10악마와.
그 주변으로 창, 칼 등의 무기를 힘주어 질러내는 천사들의 악 지르는 모습.
그 소란스러울 것 같은 광경에 반해, 바람 소리조차 들리지 않는 적막함까지.
“…….”
잠깐의 침묵이 흘렀다.
그렇게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우선.”
제프리가 어렵사리 말을 꺼냈다.
“딱 10분만 기다려 보고, 아무 이상 없으면 조사 시작해 보자.”
“조사?”
“응. 저 멈춰 있는 것들을 건들면 어떻게 되는지, 아니, 그전에 건들 수 있는지. 우리 말고 또 움직일 수 있는 사람이 있는지, 등등…….”
도대체 무슨 상황인지는 모르겠지만.
가만히 있을 순 없었다.
뭐라도 해야지.
“음…… 오케이.”
유리아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 * *
그 시각.
“으음……?”
진도윤은 시커멓게 변한 주변 환경을 보며 침음성을 냈다.
앞으로도 뒤로도, 새카만 어둠이라 어느 것도 볼 수 없는 상황.
“뭐야, 엘!”
미간을 찌푸린 진도윤이 엘라임을 불렀다.
그러나 돌아오는 대답은 없다.
감응력에도 변화가 없다.
끌어올리려 해봐야 피시식! 하며 김새는 소리만 날 뿐.
“피닉스? 데몰? 둠? 소울?”
나머지 넷도 마찬가지였다.
“뭐야, 결국 뒈진 건가?”
진도윤으로서는 꽤 합리적인 판단이었다.
분명, 마지막 기억이.
눈빛에 살기 담은 노야가 자신을 공격하는 모습이었으니까.
‘하아…….’
그가 속으로 한숨을 내쉬었다.
지금 느끼는 감정은 뭐랄까.
분노나 허탈 같은 것보다는, 음…….
솔직히 아무런 생각이 없었다.
평소 자신의 목숨을 끔찍하게 아끼는 스타일이 아니기도 했고.
뭐, 그런 스타일이었다면.
애초에 서머너 마스터가 되지도 못했겠지.
‘그나저나.’
진도윤이 다시 주변을 둘러봤다.
역시나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
사후세계의 모습은 이런 걸까?
악마들은 ‘영혼’이라는 형태로 변했다 망령화하던데.
은근히 차갑게 다가오는 공기와 서늘한 무언가가 느껴질…….
‘무언가?’
그때였다.
어두운 환경에 적응한 그의 동공이 최대치로 확장됐고.
미세하게 남아 있는 빛 사이로 무언가 꿈틀거리는 게 느껴졌다.
‘저게 뭐지?’
진도윤은 눈에 힘을 주고 그곳을 바라봤다.
꿈틀거리는 곳이 한 곳이 아니다.
위에도, 아래도, 우측에도, 좌측에도.
무언가가 전부 움찔거리고 있었다.
“……이건.”
진도윤은 모처럼 느껴지는 강렬한 기시감에 정신을 바짝 차렸다.
무언가 친숙하면서도 익숙한 존재가 이 공간 전부를 꽉 채우고 있는 느낌.
그리고 그곳으로 뿜어져 나오는 막대한 위압감.
그오오오오…….
곳곳에서 들려오기 시작하는 기운이 뭉치고 찢기는 소리.
어둠이 도래한 곳, 꽁꽁 묶여 있던 그것.
“허…….”
그는 눈앞의 존재가 무엇인지 왠지 모르게 짐작이 갔다.
그렇다.
세상이 시커먼 게 아니라.
시커먼 게 세상을 가득 채우고 있는 거였다.
스르륵! 펑! 펑!
주변에서 느껴지는 기파 하나하나가 10악마 따위는 우습게 날려버릴 수 있을 법한 내력을 품고 있었다.
진도윤의 주먹에 서서히 힘이 들어갔다.
이전에 만났던.
심지어 그 대악마, 바알보다도 더 위협적인 녀석.
진도윤은 놓을 것 같은 정신을 간신히 붙들었다.
차원이 다른 존재.
천계와 마계, 그리고 신들까지 두려워하던 녀석.
자신이 쓰던 파괴룡의 잔재 따위가 아닌, 그 모든 것을 합쳐놓은 본체.
‘그렇구나……. 이 녀석이.’
그는 전율했다.
그 누구를 만나도 주눅 들지 않았던 서머너 마스터마저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파괴룡, 데몰리션.
마치 ‘파괴’를 위해 존재하는 것만 같은 자.
-이제야 알아차렸는가.
오랜만에 듣는 목소리였다.
최후의 미궁에서, 수천 합을 나누고 나서 들었던 그 목소리.
“너느…… 크윽!”
하지만, 진도윤은 제대로 대꾸조차 할 수 없었다.
식도에서 시뻘건 피가 역류했다.
‘존재’를 인식하자마자, 큰 타격을 입을 정도로 무지막지한 존재인 것이다.
이런 걸 잠깐이나마 봉인하려 했던 가이아가 위대해 보일 정도?
진도윤은 통증을 참아내며 생각했다.
‘뀨웅이, 그 녀석은?’
어디로 간 건가.
사라진 건가?
만약 데몰리션이 본체일 수 있다면, 그 녀석이길 바랐는데.
만날 뀨웅거리던 녀석이.
이제는 어마어마한 존재가 돼서 위협적인 목소리까지 내고 있으니, 무언가 기분이 묘했다.
-흐음, 그렇군. 그렇게 된 건가……?
녀석이 혼자 중얼거렸다.
어딘가에 있을 파괴룡의 시선이 진도윤의 온몸을 짓누르고 있었지만.
그것에 분명, 악의는 없었다.
다시 한번, 쿨럭! 진홍색 핏물이 입속에서 터져 나왔다.
‘하, 이거…… 진짜 센 놈이었네.’
결국, 진도윤은 온 힘을 다해 고함을 질렀다.
“야, 이 빌어먹을 녀석아! 힘 좀 억제해 봐! 이러다 죽겠어!”
-음?
쿠구구구…….
순간, 무언가 엄청난 것이 움직이는 소리가 들렸다.
그 움직임에도 온몸이 쪼그라들어 버릴 것 같은 엄청난 ‘중력’이 느껴졌다.
진도윤의 솜털이 곤두섰다.
왜, 함부로 ‘녀석’이라 불러서 그런가?
고작 몸에 들러붙은 한낱 미물이 신도 두려워하는 존재에게 막말해서?
‘뭐.’
어차피 저 녀석이 죽이겠다고 마음먹는 순간 자신은 끝이다.
굳이 비위 맞추겠다고 조심스레 말할 필욘 없었다.
그럴 성격도 안 됐고.
-그런가?
하지만 진도윤의 추측은 틀렸다.
방금 움직임은 그저, 데몰리션이 고개를 갸웃- 한 것일 뿐.
-그럴 수도 있겠군. 미안하다.
쿠구구구…….
다시 한번 고개를 끄덕인 데몰리션이 기운을 조심스레 갈무리했다.
파아앗!
검은 무언가가 터져 나옴과 동시에.
터질 듯한 압박감이 한순간에 약해졌다.
“후우, 하아, 후우…….”
진도윤의 입에서 거친 숨이 흘러나왔다.
역시 숨 막히는 순간에 제일 맛있는 건 산소다.
파앗!
동시에 세상이 다시 한번 뒤바뀌었다.
그를 감싸고 있던 거대한 ‘무언가’가 사라지고 나타난 것은 바로.
우주.
광의의 우주가 아닌 협의의 우주였다.
수많은 별들이 존재하는 지구 대기권 바깥의 검은 공간.
물론, 지구는 보이지 않았다.
신기하게 숨도 쉴 수 있었고.
없어진 압력으로 몸이 터지거나 하지도 않았다.
“뭐야, 이건.”
그뿐이 아니었다.
배경은 우주인 주제에 중력도 존재했다.
마치 밟고 있는 땅에서 시야만 우주로 변한 것처럼.
스르륵.
이윽고, 눈살을 찌푸리는 진도윤 앞으로 어떤 ‘존재’가 다가왔다.
흠칫! 놀란 진도윤이 고개를 돌리자, ‘뀨웅’이의 모습을 한 작은 데몰리션이 보였다.
-반갑다, 인간.
“데몰리션?”
-그게 너희가 부르는 내 이름이었지. 파괴라는 뜻인가?
“응, 가이아가 그렇게 부르던데?”
쿨럭!
진도윤이 난장판 된 속을 간신히 다스리며 대꾸했다.
처음 녀석을 만났을 때, 시스템이 녀석을 데몰리션이라 소개했으니.
가이아가 정해준 것도 맞는 말 아니겠는가?
-파괴……. 그렇다면 맞을 수도 있겠지.
녀석의 목소리는 무언가 소름 끼쳤다.
마치 하나가 아닌 여럿이 말하는 느낌.
진도윤은 동요했다.
그는 서머너 마스터, 누구보다 소환수를 아끼는 남자다.
비록 짧은 인연이었지만, ‘데몰리션’ 역시 그의 소중한 소환수 중 하나니까.
녀석의 존재가 저 거대한 고깃덩이의 한 톨 점으로 섞인 거라면?
그래서 영원히 찾을 수 없게 된다면?
‘그럼 좀 슬플 것 같은데.’
무서운 침묵이 찾아왔다.
하지만, 이내 다시 마음을 정리했다.
지금은 우선 벌어진 문제부터 해결해야 할 때.
순간, 멈춰 있던 그의 머리 회로가 빠르게 돌아가기 시작했다.
바알이 자신을 공격하려 할 때, 갑자기 세상이 멈췄고.
그 공간에서 자신은 데몰리션을 만났다?
게다가 데몰리션은 만렙을 채우고 6성(★★★★★★)화를 진행하던 상태였으니.
‘그렇다면…….’
답은 하나다.
가이아가 걱정하던 봉인된 데몰리션의 본체 속 안으로 들어와 있다는 것.
그것 말고는 도저히 답을 찾을 수 없었다.
하지만, 진도윤은 모른다는 듯 너스레를 떨며 물었다.
“그나저나 어떻게 된 거야? 넌 누구고, 난 왜 갑자기 여기 나타난 거지?”
물론, 실제로 궁금하기도 한 사실이었다.
-……그전에 내 소개부터 하지.
작은 파괴룡이 적응 안 되는 목소리로 눈을 번쩍였다.
-나는 우주 곳곳에 뿌려진 수많은 파괴의 잔재들의 총합체. 파괴룡 데몰리션은 이곳 차원에서의 이름일 뿐.
“이곳…… 차원?”
-나는 빛조차 파괴하는 존재, 너희 인류는 나를 ‘블랙홀’이라 부른다.
“……블랙홀?”
이게 무슨 귀신 씻나락 까먹는 소리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