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 the only S-class summon RAW novel - Chapter 253
나 혼자 S급 소환수 253화
데몰리션 (3)
블랙홀.
진도윤이 알고 있는 블랙홀은 단순했다.
엄청난 중력으로 빛을 포함한 주변의 모든 것을 빨아들인다는 천체.
정확히는 기억나지 않지만, 그도 과거엔 고등 교육을 받은 적이 있다.
기본적인 것 정도는 알았다.
‘근데…….’
저 파괴룡이 어떻게 ‘블랙홀’이라는 거지?
블랙홀이 주변에 있다면.
이미 지구는 기다란 엿가락 모양으로 변한 채 빨려 들어가야 정상 아닌가?
아, 그래서 가이아가 무서워했던 건가?
가이아가 곧 ‘지구’라 했었으니까.
-혼란스럽겠지.
작은 뀨웅이가 씩 웃으며 말했다.
역시, 언제 들어도 적응되지 않는 목소리와 표정이었다.
-내 파편의 일부 중 하나가 그대를 굉장히 좋아하더군. 하나는 뭐, 그럭저럭이긴 하다만.
“일부 중 하나라면……?”
-그대와 잠깐동안 함께했던 ‘파괴룡, 데몰리션’ 말이다.
“아…….”
-녀석은 그대에게 기회를 주길 원하고 있지. 나 또한 나쁘지 않다고 생각한다. 빌어먹을 가이아의 간섭으로 마지막 파괴가 미뤄지고 있었는데, 그대 덕에 봉인이 풀렸거든.
“…….”
진도윤이 영문을 모르겠단 표정으로 쳐다봤다.
한 가지 확실한 건, 저 녀석이 자신에게 호의를 가지고 있다는 것.
그 호감을 느낀 진도윤이 과감히 물었다.
“파괴라니, 역시 지구를 파괴하는 게 결국 네 목적인 거냐?”
그의 도움을 바라는 마음이 없다는 건 거짓말이다.
다만, 도와준다고 하더라도.
결국 녀석의 목표가 지구의 멸망이라면.
아무런 의미가 없다.
10악마를 죽이면 뭐 하는가.
저 녀석이 콧바람만 불면, 지구는 날아가고 말 텐데.
그런 진도윤의 마음을 읽었을까.
눈앞의 존재가 설명을 시작했다.
-그대여, 세상 모든 항성과 행성에는 숙명이란 것이 있다.
숙명(宿命).
정해진 운명.
즉, 만들어질 때부터 정해진 수명이 있다는 뜻이었다.
-가이아는 늙었다. 그녀가 인지할 수 있는 신이 된 건 언제일지 몰라도, 너희 인간들의 기준으로 46억 년이면 나름 살 만큼 살았지.
“46억 년…….”
끔찍한 시간이었다.
미궁에 갇혀 있던 시간이 무색할 정도로 긴.
-가이아를 다시 재탄생시키고 싶어 하는 우주의 의지로 인해, 난 기어코 이곳까지 왔다. 그리고.
촤르륵!
데몰리션이 발톱을 펼치자.
우주가 4등분, 8등분, 16등분, 32등분…….
무한히 갈라지기 시작했다.
동시에, 등분으로 갈라진 곳마다 지구가 하나씩 생겨났다.
마치, 다중우주(Multiverse)를 표현하기라도 하듯.
그리고 그곳에 있는 지구 대다수는 이미 푸른색을 잃은 상태였다.
어떤 건, 박살 난 채 가루가 되어 있었고-
또 어떤 건 시뻘겋게 불타고 있었다.
-수많은 차원의 지구가 몰살되었지. 단 하나, 이곳을 제외하고 말이다.
“…….”
진도윤은 그 모습에 할 말을 잃었다.
본인이 볼 수 없는 차원을 3차원의 형태로 가시화한 것 같긴 한데…….
너무 갑작스러운 정보였다.
「일 년 안에, 삼계(三界)는 필히 무너질 것이다.」
문득, 가브리엘의 예언이 떠오르는 건 왜일까?
진도윤은 말이 없었다.
다만, 멍하니 지구를 바라볼 뿐이었다.
어쩌면 그것으로 대답이 되었을지도 모른다.
‘답이 없다’라는 대답이.
녀석은 이미 말했다.
마지막 파괴가 미뤄지고 있었는데, 마침내 봉인이 풀렸다고.
아마, 가이아가 우려하던 것도 이런 내용이겠지.
‘하지만, 이건 답이 없어도 너무 없잖아?’
세상에, 블랙홀이라니.
의욕조차 생기지 않는다.
너무 빠른 포기 아니냐고?
여기 이 자리에 서서, 저 광활하고 드넓은 우주를 바라보면 그런 생각이 절로 들게 된다.
저 수많은 별 하나하나, 어떤 것에 비교해도 자신은 먼지 한 톨보다 못한 존재일 텐데.
무슨 의지가 생기겠는가.
-가이아는 욕심을 부렸어. 수많은 시행착오를 통해 간신히 만들어낸 피조물, 인류에 애착을 가진 거지. 뭐, 그럴 만도 해. 그녀의 나이에 비하면 인류는 완전히 어린 수준이니까.
“모성애 같은 건가?”
-그럴 수도. 어쨌든. 그것도 이제 막 피운 문명에 날개가 달리려 하는 시기에 죽음이 찾아왔으니……. 헛생각을 품을 만도 했지.
“…….”
진도윤은 다시 입을 꾹 닫았다.
그러나 눈앞 존재가 하는 말은 충분히 이해했다.
결국.
지구는 멸망할 운명이었다는 이야기.
‘한마디로 자연사(自然死)라는 건데…….’
별수 있는가?
늙어서 죽는 건, 인간도 매한가지 아니던가.
그게 이 거대한 우주의 법칙이라는데.
진도윤은 살짝 우습다고 생각했다.
여태껏, 동료들을 구하고.
악의 축인 프리덤과 싸우고 했던 게, 다 애들 장난 같아 보일 지경이었다.
인생무상(人生無常).
그는 처음으로 인생의 덧없음을 맛봤다.
“후우.”
전신에 힘이 빠지는 걸 느끼며, 진도윤은 고요히 우주를 둘러다 보았다.
끝없이 나열된 지구 중, 오직 하나 푸르게 빛나는 지구가 보인다.
아름다운 우리의 고향.
-조금 전 했던 말. 기억나나?
“……어떤 거?”
-기회를 주겠다는 말.
“기회……?”
진도윤이 복잡한 감정이 실린 눈빛으로 데몰리션을 쳐다봤다.
어차피 부술 거라면서 무슨 기회를 주겠다는 거지?
“뭘, 어떻게 하라는 건데?”
-들어봐라. 인간. 그대는 가이아의 힘을 이어받았다. 즉, ‘신’이 될 수 있는 조건을 어느 정도 만족했다는 소리. 늙은 ‘신’의 비루한 생명력을 네 젊은 영혼으로 대체할 수만 있다면…… 우주의 법칙을 비껴가는 것도 불가능한 것만은 아니겠지.
진도윤은 데몰리션이 무슨 이야기를 하는지 눈치챘다.
데몰리션의 설명은 오랫동안 계속되었고, 그는 그 이야기를 한마디도 놓치지 않기 위해 두 눈을 부릅떴다.
-난 우주의 의지를 따를 뿐. 지구의 운명 따위는 어떻게 되든 상관없다.
-진정한 ‘지구’의 주인이 되는 길은 굉장히 어렵고 험할 거다.
-애초에 ‘인간’의 정신력은 영겁의 시간을 버틸 수 있도록 설계되지 않았으니까.
‘신’이 되는 길.
무시무시한 파괴룡이 준 기회는 바로 자신의 희생이었다.
가이아는 늙었으니 네가 대체하라!
그렇지 않으면 우주의 법칙에 따라 지구를 파괴하겠다!
딱 이 말인데…….
“후, 미치겠군.”
진도윤이 한숨을 푹 내쉬었다.
실패하고 말고를 떠나.
방법이 이것 하나밖에 없으면, 도전할 수밖에 없지 않겠는가?
이 우주에 비하면 한없이 어린 100대의 나이지만.
그 삶 동안 진도윤이 자신할 것이 딱 하나 있다면.
그것은 해보지도 않고 포기한 적이 없다는 것.
“시련인가?”
-그렇게 생각하면 한결 편하겠지.
“그 시련 동안, 세상은 어떻게 되는데?”
-고차원에서의 시간은 그저 중력의 왜곡일 뿐. 너희 지구는 현재 ‘시간이 흐르지 않는 곳’에 위치한 상태다. 내가 그리 만들었지.
“왜?”
-말했잖느냐. ‘파괴룡, 데몰리션’이 기회를 주고 싶어 한다고.
“…….”
뀨웅거리던 녀석.
그 녀석도 본인한테 정이 들었던 건가?
“만약, 내가 실패하면?”
-지구는 그대로 폐기되겠지.
“……좋아, 인지했어.”
고민은 짧았다.
가볍게 다짐한 그는 서서히 눈을 감았다.
그러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해보겠다는 제스처.
-역시, 그대답군.
데몰리션이 흥미롭다는 듯 씩- 웃었다.
-나는 분명 말했다. 어려운 길이 될 거라고.
“말해 뭐해. 이미 결정했어.”
-좋다.
그렇게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파앗!
시커먼 어둠이 먹물처럼 시야를 어지럽혔다.
* * *
“음?”
진도윤의 시야 속에 어둠이 찾아왔다.
덧없이 펼쳐진 별들도, 작은 데몰리션의 모습도.
그의 눈앞에서 사라진 지 오래.
캄캄해서 보이지 않는 게 아니었다.
그저 아무것도 없는 완전한 무(無)의 상태였다.
“여기서. 뭐, 어쩌라는 거지?”
본판의 데몰리션은 굉장히 불친절했다.
시련이면 어떤 시련인지, 알려주고나 던져 놓지.
아, 이것도 시련의 일환인 건가?
“……엘? 둠?”
본능적으로 소환수들을 불러보지만, 역시나 응답이 없다.
그래도 바닥에 발이 닿고, 걸어 나간다는 ‘촉각’은 있다.
자신이 하는 말이 들리는 것 보니 ‘청각’도 있을 테고.
후웅! 후웅!
팔을 휘둘러 봤다.
그 소리 역시 들린다.
숨이 쉬어지는 것 보니 대기도 있다는 소리다.
“걸어볼까?”
가만히 있어 봐야 답이 나오진 않는 법.
진도윤은 천천히 걷기 시작했다.
눈을 감고 걷는 기분이라 당연히 공포감이 스멀스멀 올라왔지만.
굳이 신경 쓰지 않았다.
그 또한 시련이라 생각하면서.
* * *
끝없는 암흑.
시간이 얼마나 흘렀는지도 모르겠다.
설마, 태초의 우주가 이런 모습이었을까?
왜, ‘빅뱅’이란 것이 터지기 전 상태 있지 않은가.
진도윤은 그동안 이곳저곳 걸어도 다녀 보고.
바닥을 헤집어도 보고.
운동하던 것처럼 질주하기도 해봤다.
하지만 그 어디에도 빛은 없었다.
‘아, 설마.’
데몰리션, 아니, 블랙홀이 빛까지 다 빨아먹어서 아무것도 안 보이는 건가?
라는 생각도 해봤지만, 그렇다고 뒤바뀌는 건 없다.
“야! 데몰리션!”
“파괴룡!”
“뀨웅아!”
걸으면서 수없이 불러봐도 답은 들려오지 않았다.
철저한 고립.
진도윤은 그제야 데몰리션이 했던 말 중 한 문구가 생각났다.
[애초에 ‘인간’의 정신력은 영겁의 시간을 버틸 수 있도록 설계되지 않았다.]‘설마…….’
진도윤의 두 눈이 좁아졌다.
여기서 무한정 버티라는 건가?
정신력이 고갈되지 않도록?
그게 바로 ‘신’이 되는 시험인가?
문득, 진도윤은 외로울 것만 같았다.
* * *
한 달? 두 달?
아니면, 반년? 일 년?
얼마나 지났는지, 알 수 있는 방도가 없다.
매번 초시계를 셀 수도 없는 노릇이고, 아무것도 없는 공간에서 날짜를 정밀 측정하기란 불가능하니까.
‘하여튼.’
굉장히 많은 시간이 흘렀다는 건 알 수 있었다.
왜냐.
진짜 미쳐 버릴 것 같았으니까.
아무것도 없는 우주에 혼자 버려진 느낌.
혹시 데몰리션의 장난이 아닐까?
시공간의 틈에 버려두고 도망간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 만큼.
진도윤에게는 오랜만에 맛보는 ‘공포’였다.
인간은 사회적인 동물이다.
절대 혼자 살아갈 수 없도록 설계되었다.
그렇기에 ‘외로움’이라는 감정 또한 어쩔 수 없이 느꼈다.
‘오, 이 방법……. 고문으로도 괜찮겠는데? 나중에 소울이한테 알려줘야겠다.’
물론, 그는 최대한 긍정적이고 밝게(?) 생각하려고 노력하는 중이었지만.
“…….”
바닥에 누운 채, 콩닥거리는 심장 소리를 들으며.
진도윤은 상황을 정리했다.
‘우선, 배고픔이나 갈증 같은 건 없어.’
인간이라면 어쩔 수 없는 생리 현상이 없었다.
아마, ‘영혼’의 상태이거나 하겠지.
‘다음은 무슨 수를 써도 이곳에 나갈 수 없다는 것.’
사실, 진도윤은 이 과정을 포기하려 했었다.
조금 버티다, 무슨 부귀영화를 누리겠다고 이런 짓을 할까 생각이 든 것이다.
“야야! 데몰리션 항복할게!”
“항복한다고!”
“나와봐!”
“퀘스트 취소!”
그러나 별 지랄을 다 해도 녀석은 나오질 않았다.
‘신’이 되는 과정 또한 취소할 수 없었다.
한 방향으로 죽어라 뛰어도 닿는 게 없을 만큼, 광활한 공간이었으니까.
‘끝’이 어딘지 가늠할 수 없는 공간.
이곳의 크기가 만약 우주와 같다면?
그냥 나가는 건 포기하는 게 나을 거다.
그 밖으로 나가기 전에 정신력이 마모되고 말 테니까.
“제기랄.”
결국, 진도윤이 할 수 있는 건 하나밖에 없었다.
자리에 앉는 것.
그리고, 기다리는 것.
“X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