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 the only S-class summon RAW novel - Chapter 87
나 혼자 S급 소환수 87화
황금 계단 (1)
털보네 매장으로 가는 길.
조수석에 앉아 있는 유아린이 계속 멀뚱멀뚱 쳐다봤다.
“얼굴 뚫어지겠다. 뭐, 할 말 있어?”
“아니……. 그냥.”
“왜, 말해봐.”
“그냥 이렇게 바로 나와도 되는 거예요? 무리하셨을 텐데……. 의사가 엄청나게 당부했었잖아요. 아직 내부가 다 나은 게 아니라고. 적어도 일주일은 쉬어야 한다고 했는데.”
퇴원 절차는 생각보다 간단했다.
하긴, 감응력 폭주 상태라 집에서 요양하겠다는데 의사가 무슨 권리로 막을까.
“이 정도야 문제없지. 미궁 땐 이것보다 더 심한 상태로 싸우곤 했었어.”
“……그건 던전일 때잖아요.”
“쓰읍, 자꾸 잔소리할래?”
“안 할게요.”
세상에, 잔소리하는 얼음 공주라니.
진도윤은 나름 신선한 느낌을 받았다.
초면일 때만 해도 차가운 기운을 폴폴 풍기던 그녀가 이제는 걱정까지 한다.
성격이 변했나 싶었지만, 그건 또 아니었다.
불과 몇 시간 전.
충고하는 의사들에게는 대꾸조차 안 하고 고개만 끄덕거리던 그녀였으니까.
“그나저나 도대체 어떻게 고친 거예요?”
“뭘?”
“감응력 폭주요…….”
“으음……. 그게 복잡하면서도 간단한데…….”
진도윤이 손가락으로 운전대를 두들기며 고민했다.
이걸 밝혀야 하나, 말아야 하나.
그러나 고민은 짧았다.
그녀는 이제 확실한 믿음을 가진 동료.
목적이 같은 그녀에게 굳이 숨길 이유는 없었다.
“후우……. 어디 가서 얘기하면 안 된다.”
“그럼요. 꽤 고급 정보일 텐데. 그런 거 말하고 다니다 프리덤 귀에 들어가면 어쩌려고요. 큰일 나죠.”
“뭐든지 프리덤이랑 연결하는구나?”
“그리고 사실 어디다 말할 곳도 없어요.”
하긴, 애초에 대화가 없는 거로 유명한 얼음 공주니까.
진도윤은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그녀에게 말해줬다.
“스킬이야.”
“……스킬이요?”
유아린이 그게 무슨 소리냐는 듯 고개를 갸웃했다.
“응, 감응력 210이 되니까 하나 주더라고. 서머너 전용 스킬.”
“……?”
잠깐 이해 못 했다는 듯, 고개를 꺾은 그녀가 곧이어 입이 떡 벌어졌다.
감응력 210, 서머너 전용 스킬.
둘 다 그녀의 상식 밖 현상이었기 때문이었다.
“감응력이 210…… 이시라고요?”
믿기지 않는지, 유아린이 되물었다.
그러나 이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그녀가 아는 서머너 마스터는 그런 거로 빈말을 하지 않는다.
“감응력의 활용이 무궁무진해지고 있어. 그러니까 너도 최대한 빨리 올려둬.”
“아무리 그래도 210은…….”
“여기 개척자가 있잖아.”
“개척자요……?”
“원래 길을 닦는 데는 오래 걸리는 법이거든. 나는 길을 닦으며 개척하느라 좀 돌아갔다지만, 너는 그게 아니잖아.”
최후의 미궁에서는 많은 시행착오가 있었다.
잘못된 길을 가기도 했으며, 감응력을 올리기 위한 헛수고로 시간을 많이 잡아먹기도 했다.
“그럼…….”
“그래, 너는 편하게 도로를 달리기만 하면 되는 거야. 프리덤을 잡을 때까지. 그리고…….”
말을 하던 그의 분위기가 갑자기 가라앉았다.
감응력 때문에 잠깐 잊고 있었던 것이 기억났기 때문이었다.
부아아앙!
막히지 않는 도로.
과거 유준태가 선물했던 스포츠카의 배기음이 쩌렁쩌렁하게 울려 퍼졌다.
“빛의 성녀, 그분을 구하실 때까지요?”
진도윤의 뒷말을 대신해 주는 유아린이었다.
* * *
“혀, 형님? 벌써 퇴원하신 겁니까? 헐, 유아린 씨도?”
매장에 들어선 그들을 본 털보의 첫 마디였다.
소식을 듣긴 했지만, 정말로 나올 줄은 몰랐다는 모습의 털보.
진도윤이 피식 웃으며 대꾸했다.
“다들 어디 갔어? 연락들 안 되던데.”
“아……. 그게.”
아직도 믿기지 않는지, 얼을 타던 털보가 서둘러 답했다.
“협회장 통제에 따라 다들 던전에 들어간 상태입니다.”
“던전?”
진도윤이 놀랐다.
그 고생한 지 얼마나 됐다고 벌써 던전이란 말인가.
“네, 저만 빼고요.”
“뭐야, 너는 왜 빼는데?”
“생각해 보니, 저는 전투에 그다지 도움이 안 되더라고요. 그냥 기본적인 훈련만 진행하고 본업에 충실하기로 했습니다.”
“……본업이라. 영감이 그렇게 하라디?”
“네, 형님. 업무가 많이 밀려 있기도 하고……. 사실, 제가 리스트릭트에 좋은 물품들 공급하면 그게 전투에 도움 되는 거 아니겠습니까?”
“뭐, 그렇긴 하지.”
틀린 말은 아니었다.
과연 영감 짬밥은 어디 안 간다.
조직이 어떻게 움직여야 효율적인지 직감으로 아는 거다.
“그래도 훈련 게을리하지 마라. 위기 상황에서 목숨을 보전하는 건 결국 자기 자신의 힘이야.”
“물론입죠, 형님!”
“그래서 다들 어디 갔는데?”
“그건 저도 잘 모릅니다. 제프리 형님 주도로 난이도 높은 곳을 다니는 거 같은데……. 다들 각오가 장난 아닙니다.”
“각오라…….”
“이번에 꽤 충격받았거든요. 프리덤이 생각하던 것보다 더 위험하다는 것도 알았고.”
진도윤도 인정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놈들이 정령왕의 돌을 가지고 있었다니.
그리고 그게 고작 일개 간부라니.
본체는 과연 어떠할까.
그리고 어디에 숨어 있을까.
“후, 나도 더 성장해야지…….”
진도윤은 반성했다.
아직 발전해야 할 방법들이 넘쳤고 얻을 경험치도 많았다.
아직도 소환수들이 3성을 못 벗어나고 있었으니까.
“아, 그리고 제프리 형님이 전해달라 하셨습니다.”
“제프리가?”
“네, 먼저 잭 폴탄의 위치는 김제하랑 같이 찾고 있다 했으니 너무 걱정하지 말라 하셨고…….”
잭 폴탄의 이야기가 나오자 유아린의 표정이 굳었다.
다시 차가운 분위기가 폴폴 흐른다.
그 모습을 보며 잠깐 목을 축인 털보가 다시 말을 이었다.
“잠깐 동안 따로 움직이자고 합니다.”
“따로?”
“자신은 리스트릭트 멤버들을 키우는 데 전념하겠다. 그러니 마스터와 유아린은 걸림돌 없이 성장해라. 이렇게 말했습니다.”
털보가 제프리의 유창한 영어를 흉내 내며 말했다.
“……그래? 뭐, 제프리가 그러자면 이유가 있겠지.”
오묘한 표정을 지은 진도윤이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어차피 소환수들을 키우긴 해야 했다.
그들을 데리고 가는 것보다는 그게 훨씬 빨랐다.
소파에 앉아 잠시 쉬고 있자 털보가 다시 다가왔다.
그의 손엔 무언가가 들려 있었다.
“아, 그리고. 이건 협회장이 전해달라 했습니다.”
“그게 뭔데.”
“타국에서 의뢰가 들어왔답니다. 비인기 던전이라 해결하기엔 좋을 것 같다고…….”
“그래? 줘봐.”
털보에게 받아 든 종이에는 무언가가 빼곡하게 적혀 있었다.
천천히 활자를 읽어나가던 진도윤의 눈빛이 점점 차분하게 가라앉았다.
* * *
「각국 협회 던전 지원 요청」
종이 맨 서두에 있던 글자였다.
요컨대 내용은 간단했다.
대충 홍콩에 공략 불가 판단을 받은 던전이 나왔는데, 지원이 필요하다는 말.
“와, 이 영감탱이!”
진도윤이 어이없다는 듯 헛웃음을 흘렸다.
“걱정할 땐 언제고……. 나았다고 하자마자 이런 걸 나한테 보내네?”
그러나 기분 나쁜 표정은 아니었다.
어떤 던전에 가서 경험치를 뽑아먹어야 하나 고민하고 있었으니까.
“그래도 최후의 미궁 때처럼 서슬 퍼런 기운을 뿜어내는 곳은 아니랍니다.”
“흠……. 그래?”
“만약 가신다고 하면 형님과 유아린 씨. 두 자리를 비워주겠다고도 하셨습니다.”
지원 인원은 총 다섯이었다.
세 명은 이미 커뮤니티에서 지원을 받은 듯했다.
지원 조건은 A급 서머너 이상.
“근데 나랑 유아린은 아직 감응력 폭주 풀린 거 모를 텐데?”
감응력 폭주 상태라는 것은 이미 온 매스컴에 알려졌다.
진도윤은 그것을 굳이 제지하지도 수정하지도 않았다.
프리덤이 그렇게 알고 있는 게 더 좋을 테니까.
“그럴 줄 알고 이미 ‘무명’(無名)으로 신청 넣어 뒀답니다.”
“크, 또 가면 쓰고 해결해 달라 이 말이구먼?”
세계 협회 쪽의 파견 요청이 있을 때.
각 국가는 서머너의 정보를 숨기기 위해, 가면을 쓰고 지원 가기도 한다.
유준태는 교묘하게 그것을 이용했다.
‘사실 기회이긴 하지.’
이미 감응력 폭주로 알려진 마당에, 국내에서 던전을 돌 수는 없을 테니까.
차라리 신상을 숨기고 해외에 있는 비인기 던전들을 해결하는 게 낫다.
“오케이. 난 접수한다. 유아린, 너는 어때?”
“오빠가 가면 저도 가죠.”
쿨하게 고개를 끄덕이는 그녀.
“공략 불가 판단을 받았던 던전이래. 위험할 수도 있어.”
“오히려 전 더 좋은데요?”
“역시 그렇지?”
“네.”
위험하다는 것은 더 빠른 성장이 가능하다는 말도 된다.
복수에 목마른 그녀에게는 최고의 선택이었다.
* * *
중국 남해안에 있는 홍콩은 먹거리와 야경으로 유명한 중국의 특별행정구다.
특히 홍콩에서 가장 높은 산, 빅토리아 피크에서 바라보는 시내 야경은 보는 이들의 가슴을 설레게 한다.
“예전에 왔을 땐, 사람 엄청 많았었는데.”
웬 후드와 마스크를 쓴 남자 한 명이 피크 트램에서 내리며 말했다.
피크 트램은 도드래처럼 오르락내리락하는 관광 기구.
“와보신 적이 있어요?”
“물론, 홍콩도 꽤 던전이 자주 출몰하는 곳이거든.”
남자 옆에는 같은 패션으로 얼굴을 꽁꽁 숨긴 여성도 있었다.
후드와 마스크로도 그 미모를 숨길 수 없는지, 후광이 비추는 여성.
그들은 홍콩 협회에 지원 온 진도윤과 유아린이었다.
“와, 야경이 끝내주긴 하네요.”
“아무래도 던전 때문에 관광지가 닫혔나 봐. 나도 이렇게 여유롭게 보는 건 처음인데.”
던전은 산꼭대기에 자리 잡고 있었다.
이곳, 트램 종착역에서 북서쪽으로 500m 거리.
확실히 그곳에서 끈적하고 불길한 기운이 느껴졌다.
딱 봐도 A급 던전의 기운이었다.
‘공략 불가 판정을 받은 고난이도의 던전.’
그러나 그들이 던전에 안 가고 이곳에 기다리고 있는 이유는 분명했다.
이곳 종착역에서 한국 협회 멤버들과 미팅이 있기 때문이었다.
드르르륵!
잠깐 기다리자, 내려갔던 트램이 다시 도착했다.
그곳에서 세 한국인이 추가로 내렸다.
남자 둘과 여자 한 명으로 이루어진 팀이었다.
그들 중 한 남자가 찐득한 미소를 지으며 다가왔다.
“혹시, 한국 협회에 무명으로 지원한 두 명 맞나?”
그러고는 유아린을 향해 물었다.
“…….”
그러나 별다른 대답 없는 그녀.
표정이 보이진 않지만, 차가운 냉기마저 느껴졌다.
살짝 무안해진 남자가 뒤통수를 긁적이며 진도윤을 바라봤다.
왜 대답이 없냐는 거겠지.
진도윤은 한숨을 내쉬며 유아린을 바라봤다.
“얀마, 그래도 사람이 말하는데 인사는 해줘야지.”
“……네, 아직 익숙지 않아서. 네, 무명으로 지원한 두 명 맞습니다.”
과연 진도윤이 하는 말은 재깍 잘 듣는 그녀였다.
그런 그와 유아린을 보며, 팀원들이 속삭였다.
“……신기한 친구들이네.”
“근데 왜 무명으로 참가했을까요?”
“그러게, 뭐 숨기고 싶은 거라도 있는 건가?”
걱정과 우려가 담긴 표정으로 바라보는 그들.
이들이 바로 홍콩 던전에 함께 입장할 한국 협회의 지원자들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