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mortal martial artist RAW novel - Chapter 10
제2화 죄인 하이드 백작
“바와 뱌 혹은 베와 브로 읽습니다.”
모두 대륙에 통용되는 룬스 문자를 ‘괴상한 문자’ 혹은 ‘꼬부랑 문자’라 칭하였다.
수라혈마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이런 것을 배워서 어디다 써먹느냐. 낄낄…….”
정면엔 커다란 종이 수십 장이 붙여 있었다.
룬스 문자가 보기 좋게 적혀져 있다.
그러나 수라혈마의 시선은 다른 곳을 향하고 있었다.
실리아의 엉덩이.
참 탐스러운 과일 같다.
“쩝”
수라혈마가 괜스레 입맛을 다셨다.
“무식하군. 수라혈마. 일대 종사라는 사람이…….”
진천이 짧게 내뱉었다.
“뭐? 말은 바로 하랬다. 이따위 이상한 것을 배워서 어디다 써먹지?”
“스승님!”
“왜 그러냐, 제자야.”
“진천 스승님의 말씀대로 스승님께선 대종사가 아니십니까?”
“그렇지”
코를 함껏 세웠다.
“우리는 이계에 대해 전혀 모릅니다. 대종사께서 이계의 사람들에게 무시를 당하시면 좋으시겠습니까?”
“아니지. 낄낄. 그런 놈이 있으면 일격에 죽여 버리지”
“중원에서 대종사셨던 스승님께선 이계에서 문자도 모르는 낙오자가 되실 것입니까?”
“낙오자라니! 어떤 놈이 감히 이 수라혈마를 낙오자라 한단 말이느냐. 제자야.”
“그러니 배우십시오. 두 스승님께선 이 문자를 배우셔서 이끌고 온 수하들에게 다시 가르쳐야 합니다.”
“다시 가르쳐야 한다고?”
수라혈마가 못마땅한 표정을 지었다.
“진천 스승님께선 잘 배우고 계시지 않습니까?”
“저런 위선 덩어리하고 본좌하고 비교를 하지 마라”
수라혈마가 말했다.
진천이 수라혈마를 노려봤다.
하얀 수염이 은은히 떨렸다.
“분명 진천 스승님의 가르침 아래 정파 고수들은 이계의 문자를 터득할 것입니다.”
진천의 밝은 미소.
수라혈마는 그게 어떻냐는 표정이다.
“모르시겠습니까?”
이런!
수라혈마는 눈을 굴렸다.
무엇이든 정파에 뒤처지는 것은 봐줄 수 없는 일이다. 더군다나 자신의 교인들 중 으뜸을 뽑아 데리고 왔다. 진천이 데리고 온 정파놈들에게 뒤처져서는 안 되지.
입을 다물었다. 그리고 벽을 바라봤다.
수십 장의 종이. 뱀처럼 꼬아진 문자. 여러 개의 원이 겹쳐진 문자.
기이한 기형의 문자 등 수십 종류가 넘었다.
정확히는 62자다.
주첨기가 살짝 미소 지었다.
정파와 사파와의 관계.
잘못 통솔하면 커다란 내분으로 번질지 모른다.
그러나 서로의 적대 감정을 잘만 활용하면 평소 능력의 몇 배는 발할 수 있다.
이것이 그들의 관계다.
중요한 건 적대 감정이 더 번지지 않게 하는 것이다.
다행히 시간이 지날수록.
적대 감정은 완화 되어 가고 있었다.
적대 감정이라기 보단.
서로를 의식하며 경쟁하는 관계랄까?
진천을 바라봤다. 역시나다.
수라혈마와 진천은 벽을 직시하고 있었다.
벽을 꿰뚫어 버리고도 남을 눈빛이다.
“전하. 정말 괴상한 문자예요.”
평소 조용하던 만소자가 입을 열었다.
“맞습니다요. 전하.”
혜공까지 맞장구 쳤다.
“하하. 그렇습니까? 제가 봐도 그렇습니다.”
“실비아!”
“소저!”
수라혈마와 진천이 동시에 외쳤다. 둘을 또다시 서로를 노려보았다. 눈에 불꽃이 튀긴다.
“옛?”
벽에 다른 종이를 걸고 있었다.
실비아가 깜짝 놀라 뒤로 고개를 돌렸다.
“아직 멀었느냐? 낄낄. 이따위 것 외우는 건 본좌한테 식은 죽 먹기나 다름없지.”
“험험. 기다리기 지루하구나.”
벌써 다 외웠단 말인가?
만소자와 혜공.
그리고 실비아는 입을 쩌억 벌렸다.
“이……이게 마지막 문자입니다. ‘스’ 혹은 ‘사’로 읽히며 경건하다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63번째다.
마지막 종이를 벽에 붙였다.
“룬스 문자는 이렇게 총 63가지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이해가 가지 않는 것이 있다.
이렇게 강한 자들이 어떻게 문자조차 모를수가 있지?
강한 의문이었지만 물어볼 수 없었다.
“다음으로 넘어가지.”
주첨기 역시 진천과 수라혈마 못지않았다.
“전하! 아직…….”
혜공이 곤욕스럽게 말했다.
순간 관자놀이에 식은땀이 맺혔다.
아직 10번째도 외우지 못했다.
두 마리의 뱀이 서로 몸을 꼬며 올라가는 듯한 문자!
어떻게 읽는 다고 하였더라?
르? 아?
떠오르지 않았다.
“아직까지 뭘 하고 못 외운 거냐? 우리 마누라. 낄낄.”
수라혈마가 빈정댔다.
당신들이 비정상이다!
그나마 황궁내에선 머리 회전이 빠르게 돌아간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혜공공.”
만소자가 조용히 말했다.
“몇 번째 걸 보고 계시나요?”
“저기 뱀처럼 꼬아진 것. 열 번째 것 이네.”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만소자의 얼굴이 점점 변했다. 얼굴에 피어 있던 온화한 미소가 사라졌다.
대신 그곳에 울상이 자리 잡았다.
“혜공공. 저기…… 검같이 생긴 것은 어떻게 읽나요.”
검같이 생긴 것?
혜공은 만소자가 가리킨 것을 찾았다.
그리고 슬그머니 미소가 번졌다.
“저와 자 혹은 주라고 읽지.”
만소자가 가리킨 문자.
고작 63번째 문자중 세 번째에 불과한 것이었다.
만소자의 머리가 둔한 게 아니다.
혜공의 말을 빌어.
주첨기. 수라혈마. 진천의 머리가 비상적으로 뛰어난 것이다.
“예…… 저와 자…… 주…….”
곧 울음을 터트릴 것만 같은 만소자.
겨우 알아들을 수 있는 소리로 읽었다.
아침부터 목욕 재개를 하였다. 의복도 최대한 바르게 입었다.
사자왕 하이드 백작이 곧 도착한다는 전갈을 받았다.
에드먼 제국과의 칠년전쟁에서 무수한 전설을 만들어 냈던 기사 중의 기사.
소드 마스터 하이드 백작.
그가 도착했다.
이미 글릴남작가의 모든 사람들이 마중 나와 있었다.
수백 명의 사병. 하얀 백마를 타고 있는 여러 기사들. 하인들과 남작의 가족들.
빰빠빠.
악사의 음악소리가 크게 울렸다.
“어서 오십시오. 백작님. 먼 길을 오시느라 수고가 많으셨습니다.”
글릴남작은 정중히 인사하였다.
하이드 백작이 남작을 보았다.
차가운 눈매가 예사롭지 않게 빛났다.
“무슨 수고가 있었겠는가. 자 들어가지.”
상당한 마중에 흡족한 듯하였다.
입꼬리에 만족스러운 미소가 걸렸다.
“예. 백작님.”
붉은 카펫 위를 걸어갔다.
식당안.
귀족가라 해도 보기 힘든 귀중한 음식들이 식탁에 즐비하였다.
“피쉬맨의 요리인가?”
하이드 백작은 부드러운 고기를 입안에 넣었다.
“예.”
피쉬맨은 몬스터 중 유일하게 요리의 재료로 쓰였다.
그 맛을 한번 본사람은 절대 잊을 수 없다.
씹지 않아도 입안에 스르르 녹으며 달콤새콤한 맛이 온몸을 감돈다. 때론 눈물을 만들고 때론 미소를 만들었다.
황제의 식탁에도 뜸하게 올라올 정도로 귀중하였다.
하이드 백작이 눈을 감았다.
신비한 맛이 미각을 자극했다.
기분이 좋아졌다.
“반역무리 유이드는 아직도 해결되지 않았나?”
“그게…… 문제가 생겼습니다.”
괘씸한 무리들의 종적이 한순간에 사라졌다.
어디로 사라진 것일까.
수색을 하고 싶어도 평원은 위험했다.
다그쳐 수색을 한 결과 병사 20여명이 오크들에 의해 전사 하였다.
평원 깊숙한 곳엔 트롤이나 오우거는 기본적으로 서식하고 있다.
그곳은 기사들도 위험하다.
수색은 불가능 했다.
어쩌면 드래곤의 평원에서 사라진 그 무리들.
전체가 평원의 몬스터들에게 당했을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그렇게 생각하면.
더욱 억울한 일이다. 직접 처단해야 한다.
“문제?”
“예. 드래곤의 평원에서 갑자기 사라졌습니다.”
“드래곤의 평원? 무슨 말인가.”
“저……를 유린한 사백 명의 무리들은 드래곤의 평원으로 도망쳤었습니다.”
하이드는 이해가 안간다는 표정이다.
어느 누가! 드래곤의 평원으로 도망친단 말인가.
그건 자살 행위다.
더욱 이해가 안가는 건.
“남작을 유린하였다고? 자세히 말해 보라.”
남작은 코볼트를 토벌하기 위해 사병들을 잔뜩 데려왔었다.
기사들 또한 상당했다.
더군다나 남작 또한 중급의 익스퍼트다. 남작은 자세히 말했다.
자존심은 내세우지 않았다.
어설픈 자존심?
사자왕 하이드 백작을 속일 수 없을게 뻔했다. 단 두 명이 수백 명의 사백을 전투해제 시킨것. 그리고 젊은 대장이 순간적으로 나타나 자신을 유린한 것.
하나도 빠트린 게 없다.
“남작. 자네의 말은…….”
“예?”
“그들이 소드 마스터란건가?”
그런 몸놀림은 소드 마스터 이상의 검사만이 가능한 일이다.
아니다. 소드 마스터란 게 그렇게 희귀한 존재가 아니다.
혹시? 타국에서 비밀리에 양성한 집단인가?
“아닙니다. 어떻게 된 영문인지는 모르나. 그들이 소드 마스터일 리가 없습니다.”
“왜 그렇게 생각하지?”
그러고 보니 없다.
단지.
“느낌입니다.”
“느낌은 육감이라고도 하지. 하지만 그건 오감을 믿지 못할 때 얘기다.”
“예…….”
“아무튼 이번 일은 그냥 넘어갈 일이 아니다. 만약…… 반역집단 유이드에서 소드마스터를 양성했다면. 빠른 시일 안에 처형시켜야 할 것이다.”
매서웠다.
차가운 냉기가 말 한마디 한마디에 풍겨 나왔다.
“어찌 됐든 간에. 이번일로 자네와 나의 공적을 올려보자”
“예. 사자왕 하이드 백작님만 믿고 있겠습니다.”
글릴남작이 굽실거렸다.
하이드 백작은 밥맛이 떨어졌다. 눈앞에 피쉬맨의 요리가 있을지라도. 하지만 그 어떤 진미가 있어도 마찬가지다.
새로운 강자의 출현? 아니면 단순히 속임수?
전자의 경우일 확률이 높다.
어떤 속임수가 수백 명의 사병과 기사를 단체로 제압한단 말인가?
하이드 백작은 속으로 결론을 내렸다.
그들은 소드 마스터다.
소드 마스터가 셋!
어처구니없다.
한번에 소드 마스터 셋이 세상에 모습을 드러냈다?
신비하고 불가사의한 일이다. 하이드 백작은 빠르게 식사를 마쳤다. 왠지 느낌이 불길하였다.
수많은 전장에 나갔어도 이런 느낌은 들지 않았다.
정말로 남작을 유린한 괴단체에 소드 마스터가 무려 셋이나 존재한다면.
큰일이 아닐 수 없다.
소드 마스터가 한번에 셋이나 출몰할 수 없다.
그렇겠지.
하이드 백작은 그렇게 단정 짓고 싶었다. 그러나 남작에게 들은 설명에 따르면 그들 세 명은 소드 마스터다.
신중하자.
“직접 가주지.”
사자왕 하이드 백작이 혼자 뇌까렸다.
윤기가 흐른다.
오동통통한 몸을 보면 귀엽기 짝이 없다.
팔. 다리. 몸통. 어느 것 하나 빠트릴 것 없이 완벽하다.
머리 위로 길게 자라 있는 줄기. 그리고 엄지만 하게 펴진 작지만 화려한 꽃.
설령은 빙그레 웃었다.
오랜만에 주첨기와 밖으로 나왔다.
“이틀 만인가?”
설령에게는 이틀은 너무나 긴 시간이었다. 성은 너비만 성은 너무나 답답했다. 풀잎에 맺혀 있는 이슬을 발견하였다.
설령은 바로 풀잎 위로 뛰어올랐다.
이슬을 빨았다.
설령의 얼굴에 미소가 번졌다.
“설령은 이슬을 좋아하는군.”
설령을 바라보며 바위에 걸터앉았다.
레어의 입구.
벌써부터 드워프들이 보였다. 주첨기를 향해 고개를 숙였다. 모두 측량을 하고 있던 중이었다. 레어를 성으로 개조하기 위해선 완벽한 측량이 필요했다.
가로. 세로. 넓이와 지하수가 흐르는 방향등.
드워프들은 익숙하게 움직였다.
“주위를 한번 둘러볼까?”
성의 주위에 무엇이 있을까.
얼핏 생각해 보건데.
몬스터들의 부락들이 상당할 것 같았다.
주첨기는 이런저런 생각을 하며 설령을 기다렸다.
그동안 배가 고팠는지 이곳저곳을 뛰어다니며 이슬을 껴안았다.
다 먹었다. 배가 부르다. 오랜만에 포식 하였다.
주첨기의 어깨로 뛰어올랐다. 채 몇 분 되지 않아 설령은 금세 잠이 들었다.
“휴.”
주첨기는 황당한 표정을 지었다.
조심스레 설령을 품안에 넣었다.
휙.
몸을 날렸다.
주위에는 예상대로 몬스터들의 부락들이 많았다. 새로 생긴 듯한 부락들로 상당하였다. 뭔가를 발견하였다.
“영역 다툼인가?”
주첨기가 뇌까렸다.
수백 마리의 오크들이 오우거 열을 포위하고 있었다.
오우거의 방망이가 휘둘러졌다.
오크 다섯 마리가 한번에 허공으로 튕겼다.
쿠어어어.
오우거의 괴성.
취이익.
오크의 콧소리가 어지럽게 교차하였다. 오크들은 끈질겼다.
오우거의 공격후 빈틈을 노려 오크들이 달려들었다.
이렇듯 곳곳에서 몬스터들 간의 치열한 영역다툼이 벌어지고 있었다.
레드 드래곤 아르카콘트가 사라졌다.
더 이상 레어에서 드래곤 피어가 흘러나오지 않았다. 몬스터들에겐 레어 주변은 천국이나 다름 없다. 가장 기름진 땅이거니와 평원의 중앙이다.
또한 평원의 큰 강이 레어 주변을 타고 흘렀다.
평원에서 부족의 영광을 차지하기 위해서.
또는 영역확장의 몬스터 본능 때문에서라도 몬스터들은 레어 쪽으로 영역을 넓히고 있었다.
주첨기가 몬스터들 사이를 지나갔다.
바람이 일었나?
주첨기가 지나간지도 몰랐다.
낯선 바람의 존재를 눈치채지 못했다.
바람은 몬스터들 사이사이를 누볐다. 그리고 주시했다.
몬스터들의 공격 패턴과 무기 그리고 약점!
유유히 불던 바람은 언덕 윗자락에서 멎었다. 주첨기가 모습을 드러냈다.
언덕 밑으로 수많은 몬스터들의 군락이 보였다.
그리고 그 뒤로 펼쳐진 평원.
평원은 지평선 끝까지 이어졌다.
탁.
몇 번의 도약으로 군락을 뛰어넘었다. 평원을 밟아선 주첨기는 허리를 숙였다. 평원의 흙을 한줌 손아귀에 쥐었다. 눈을 감고 흙냄새도 음미하였다.
“정말 좋은 땅이군.”
큰 강까지 흐르니.
이곳을 개간하여 농사 짓는다면 품질 좋은 농작물을 거두어 들일 수 있으리라.
다만.
“백성들을 데려오기 위해선 괴물들의 토벌이 우선 되야겠군.”
이렇게 좋은 땅에 사람들이 들어오지 못한 이유.
가장 커다란 것은 몬스터 때문일 것이다.
두 번째는 추측컨대 나라들의 관계 때문이리라
나라란 좋은 땅은 어떻게든 차지하기 위해 무슨 일이든 감행한다.
아직까지 이런 땅에 나라가 없다는 것은 곧 주변 국가를 압도하는 엄청난 강대국이 없다는 것을 뜻한다.
분명.
“서로의 눈치를 보고 있겠지.”
주첨기가 혼자 중얼거렸다.
나라간의 관계란 미묘하다.
이익을 위해 어제의 적이 오늘의 동지가 된다. 그리고 또다시 내일의 적이 된다. 분명 이 세계에도 대국들은 존재할 것이다.
하지만 다른 나라들의 눈치를 보지 않고 평원으로 진출할 만할 제일의 강대국은 없다.
분명 하다.
주첨기가 확신하며 허리를 폈다.
“본국이 제일의 대국이 될 것이다.”
주첨기의 손 틈으로 흙들이 떨어졌다.
갑자기 이는 바람에 가벼운 모래들이 저 먼 곳까지 날아갔다.
모래는 주첨기의 염원을 실었다.
바람 타고 평원 곳곳으로 퍼졌다. 주첨기의 다문 입은 굳건하였다.
“흐합! 더러운 몬스터들!”
한 남자의 목소리가 크게 들렸다.
주첨기가 그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휘릭.
주첨기의 의복이 펄럭였다.
그러기 무섭게 주첨기의 잔영만 남았다.
긴 금색의 장발을 느러트린 사내가 보였다.
중년이다.
네 마리의 초록색 괴물.
일전에 한번 보았던 거대한 괴물과 접전을 벌이고 있다.
“흠.”
좋은 몸놀림이다.
하지만 지나치게 과격하다. 남자는 오우거의 방망이를 피했다.
뒤에서 다른 오우거의 주먹이 날아왔다.
사내는 위로 솟구치며 한 오우거의 목을 향해 검을 휘둘렀다.
“검기?”
검에 푸른색의 기운이 맺혀 있다.
강맹하진 않다. 하지만 일류 고수급은 될 말한 실력이었다.
사내의 검이 오우거의 목을 꿰뚫고 지나갔다.
뎅강. 깔끔하게 오우거의 목이 떨어졌다.
“쿠어어어!”
다른 오우거들이 광분했다. 괴상한 울음소리가 진동한다.
남자는 당황하지 않고 익숙하게 몸을 놀렸다.
과격한 몸동작.
힘이 물씬 풍기는 패도적인 공격이지만, 효율적이지 않다.
더군다나.
슈슈슉.
남자는 검기를 남발하였다. 사방의 지면이 검기로 인해 깊게 패였다.
마치 가뭄날의 갈라진 황량한 벌판처럼.
“죽어랏!”
목소리도 몸동작처럼 무겁다.
패도적인 것은 좋다.
그러나.
너무 힘을 남발하며, 다음 공격이 매끄럽게 이어지지 않는다.
“대단하군.”
주첨기는 그를 그렇게 평했다.
남자의 무공은 하류 무공에 불과하다.
초식이라기 보단.
실전으로 익힌 검술 같다.
혹은 하류 무공이다.
하지만 남자는 그것만으로 일류 고수급의 반열에 올랐다.
그간 노력이 눈에 선하였다.
연이어 다른 오우거의 두 팔이 잘렸다.
쑤아악.
녹색의 체액이 분수처럼 쏟아졌다. 남자는 체액을 맞고 눈살을 찌푸렸다.
“더러운 족속들이 감히!”
남자의 검이 더욱 과격하게 휘둘러졌다.
화염. 낙석. 폭뢰. 맹수. 이 것들을 연상시키는 사내의 검.
너무나 거칠다.
주첨기가 미간을 살짝 찌푸렸다.
“괴물들과 다를 바 없군.”
괴물들이나 남자나 모두 같은 무리로 보였다.
단지 남자가 빠르고 강할 뿐 공격방식은 괴물들과 같다.
뎅강. 데구르르르……
남자의 검기에 의해 두 오우거가 목을 잃었다.
떨어진 오우거의 얼굴.
언덕의 비탈을 타고 굴렀다. 오우거는 이제 둘이 남았다. 여유로울 법 한데 남자는 더욱 광폭해져 갔다. 사정없이 휘두르는 검에 오우거들의 몸이 산산조각 났다.
마지막의 일격! 남자의 검기.
오우거의 정수리부터 사타구니까지 수직으로 그어졌다. 남자는 오우거의 시체에 침을 퉤악 뱉었다.
“더럽게…….”
품안에서 흰 천을 꺼냈다.
갑옷 곳곳에 튄 녹색 체액을 닦았다.
그뿐만이 아니다. 향수까지 꺼냈다. 양 겨드랑이에 뿌렸다.
남자는 향수의 냄새를 맡았다.
찌푸려졌던 표정이 제자리를 찾았다.
마지막으로 다른 천을 꺼내 갑옷을 번드러지게 닦았다.
햇빛에 갑옷이 번쩍였다.
오우거 네 마리와 전투를 벌였던 사람이라고는 보이지 않았다.
“이상한 사람이군.”
주첨기가 중얼거렸다.
목소리가 컸던 것일까? 아니면 남자의 귀가 밝은 것일까?
“누구냐!”
남자가 놀라 고개를 돌렸다.
검은 눈동자와 검은 머리.
헛!
의복이 다른 것만 빼면 글릴 남작이 말했던 자의 인상착의다.
검은 눈동자와 검은 머리를 가진 자는 대륙에 흔하지 않다.
마족? 또한 아주 소수에 불과하다.
하이드 백작의 눈이 크게 떠졌다.
타다닥.
하이드 백작이 주첨기 쪽으로 달려왔다. 검기는 사라지지 않은 채다. 다짜고짜 검기부터 날렸다.
슈앙!
무슨 일인가.
놀란 것은 잠시뿐 주첨기가 가볍게 뒤로 피했다. 사내의 검기가 애꿎은 나무에 부딪쳤다. 나무는 쿵하는 소리와 함께 쓰러졌다. 하이드 백작은 황당하기 짝이 없었다. 일격을 너무나 쉽게 피했다.
다음 공격을 이을 생각이 들지 않았다.
뒤로 물러난 주첨기는 나무를 보았다.
쓰러진 나무……
자신을 죽이기 위해서 한 공격이다.
주첨기의 얼굴이 바로 일그러졌다.
보자마자 공격이라니!!
오해가 있든. 남자가 미쳤든.
전적으로 살기를 담은 공격은 용서할 수 없다.
일전에 자신 스스로에게 한 다짐. 절대 자신에게 살기를 품고 직접적으로 실행에 옮긴다면 그게 누구든지 용서치 않겠다고. 용서는 제일황자 보건왕이 끝이라고.
“분명 나를 죽이려 하였다?”
처음 이 검은 머리의 청년을 보았을 때 아무런 기운도 느껴지지 않았었다.
평민과 다름없다고 생각했다.
아니 평민과 다름없었다.
그런데 갑자기?
주첨기의 몸에서 광대한 기운이 뻗쳐 나왔다.
하이드 백작은 눈썹을 움찔거렸다.
전염병처럼.
움찔거림은 온몸으로 퍼졌다.
“허억.”
숨을 쉴 수 없을 정도다.
놀란 하이드 백작은 검자루를 강하게 움켜쥐었다.
“무슨 꿍꿍이냐! 바로 네놈이 반역자의 무리 중 한 명이랬다!”
움찔거림이 멎었다.
확실히 고함은 효과가 있다.
하이드 백작의 검기가 주첨기의 머리 위로 쏟아졌다.
주첨기가 호흡을 한번 토해내자.
푸른색의 강기가 온몸을 감싸고 돌았다.
팅. 검기는 호신강기에 부딪쳤다.
“이익.”
글릴남작의 말대로 이 모든 것은 속임수다.
오러 블레이드!
드래곤의 비늘까지 베어버리는 검!
오러 블레이드가 푸른색의 괴상한 막에 막혔다.
이럴 수는 없다.
“크읍.”
모든 힘을 쥐어짰다.
조금씩.
아주 조금씩.
하이드 백작의 검이 주첨기의 호신강기를 파고들었다.
그럼 그렇지.
오러 블레이드는 모든 것을 꿰뚫는다.
하이드 백작이 주첨기를 보며 살짝 웃었다.
곧 너는 죽는다!
하이드 백작의 눈이 말했다.
죽는 건 너다.
씨익. 서서히 번지는 주첨기의 미소가 말했다.
찹.
주첨기가 엄지와 검지로 하이드백작의 검날을 잡았다.
“무, 무슨”
검이 잡히다니.
꿈쩍도 할 수 없다.
하이드 백작의 표정이 삽시간에 굳었다.
반면에 주첨기의 표정은 매우 여유로웠다.
여유롭다 뿐이지, 분노한 감정은 사라지지 않았다.
양 눈에서 하이드 백작이 감당할 수 없는 기운이 뻗어 나왔다.
검을 잡은 엄지와 검지!
옆으로 비틀었다.
챙! 검날이 부러졌다.
하이드 백작의 검기는 허공으로 흩어졌다.
“헉!”
하이드는 부러진 자신의 검을 보았다.
주첨기의 손가락에 집혀 있는 검날이 눈에 들어왔다.
믿기지 않는다. 아니 믿을 수 없다
오러 블레이드를 꺾어 버리다니!
자신의 눈으로 확인하고도 믿을 수가 없었다.
주첨기가 장을 펼쳤다.
스멀스멀.
뻘건색의 기운이 요동친다.
장의 중앙으로 모여든 적색의 기운. 내력이 집약된 총체.
슉!
장을 뇌락같이 앞으로 뻗었다.
퍼억! 하이드 백작의 복부에 그대로 적중하였다.
복부에 강한 통증이 일었다.
뿜어진 토악질과 새빨간 선혈!
뒤로 튕겨 날아갔다.
아주 먼 발치로 하이드 백작은 쓰러졌다.
단 일격이다.
눈앞이 가물가물 하고. 복부는 죽을 만큼 고통이 인다.
“허……억……허……억”
하이드 백작의 입가에 피가 가득 묻었다.
자신이 누군가!
자국의 영웅이자. 적국의 공포의 대명사.
사자왕이 아닌가!
한 번도 들어본 적도 없는 청년의 일격에 패닉 상태에 다달하였다는 사실.
도저히 용납할 수가 없다.
눈에 악이 깃들었다.
힘이 없는 악은 단순한 발악이다.
자리에서 일어나려다 다시 쓰러지길 반복하였다.
저벅.저벅.
주첨기가 천천히 걸어왔다.
“너는 누구지? 왜 나를 죽이려 하였는가!”
호통소리에 귀가 멍멍하다.
“허……억……허……억.”
하이드 백작으로선 정신의 끈을 놓지 않고 있는 것만으로도 대단한 일이었다.
주첨기는 멱살을 잡아 올렸다.
깔끔을 떨었던 것. 싸늘한 눈초리.
하이드의 얼굴에서 제일황자 보건왕의 모습이 떠올랐다.
형이라서 용서했다.
같은 피가 흘러서 용서했다.
용서? 아니지.
용서라고 말할 순 없겠지.
그저 같은 사람이 되기 싫었다. 그러나 다음부턴 그렇지 않겠다고 다짐해 왔다.
제일황자 보건왕 형왕 족하!
“분명히 조금 전 너는 나를 죽이려 하였어!”
주첨기가 장을 위로 뻗었다.
그대로 내리칠 것만 같다.
그때였다.
[우끼.]설령이 주첨기의 장으로 타고 올랐다.
설령이 주첨기를 물끄러미 바라봤다.
“쳇.”
멱살을 풀었다.
풀썩.
그대로 쓰러지는 하이드 백작.
주첨기는 하이드 백작을 가만히 내려다보았다.
“그래. 설령. 이자는 이대로 두겠어.”
충분히 벌을 내린 것이다.
주첨기는 몸을 돌렸다.
목숨을 취하진 않겠지만 자신과 약속한바 있지 않은가.
더군다나 괘씸하기 짝이 없다.
다짜고짜 살의를 품은 공격이라니.
“형가”
해의 반대방향으로 진 주첨기의 그림자가 흔들거렸다. 그 속에서 형가가 모습을 드러냈다
“예. 전하.”
“이자를 포박하여 성으로 데려간다.”
실리아는 우연찮게 그분을 보았다.
그분이 틀림없다.
라브린의 영웅. 사자왕 하이드 백작!
“분명해. 하이드 백작님이었어.”
제이너스와 파일로는 믿지 못하겠다는 표정이었다.
답답하였다.
일전에 수도에서 하이드 백작의 연설을 감명 깊게 들은 적이 있었다. 그때 그분의 얼굴을 봐서 기억 하는데.
“훗. 하이드 백작님은 이런 곳에 잡혀 오실 분이 아니시지…….”
제이너스가 중얼거렸다.
검사로써 우상으로 삼고 있었다.
검술도 검술이지만 능수능란한 언변 그리고 꺾일지 모르는 패기는 모든 기사의 우상이었다.
“우리가 잡힌 건…… 실력 부족이야. 가디언조차도 통과하지 못했으니. 하지만 실리아. 이를 자책하여 합리화 시킬 필요는 없어.”
파일로는 실리아의 어깨를 토닥였다.
큭. 몸을 움직이니 복부에 통증이 일었다.
“둘 다 조심해. 나으려면 아직 한참 멀었단 말이야.”
“쳇.”
파일로가 말을 튕기며 뒤로 누웠다.
“그런데 말이야. 정말 이 레어의 주인은 사람이야?”
제이너스는 계속 그점이 의문이었다.
드래곤 슬레이어? 전설에나 나올법한 이야기다.
아니 전설 속에서도 찾아볼 수 없다.
그런 허무맹랑한 전설은 어린아이도 믿지 않으니까.
“몇 번이나 말해야겠어? 맞다니까 그래. 너희들을 살리려고……얼마나 고생했는지 모르지? 그 인간들 앞에 서봐. 말조차 꺼내기 힘들단 말이야. 그런데 이틀 내내…… 생각도 하기 싫어.”
괴상하게 생긴 꼽추노인의 음흉한 눈빛.
그것이 제일 싫었다.
“그래. 믿어줄게. 그럼 이제 우린 어떻게 되는 거야?”
파일로가 물었다.
“모르지. 문자도 다 가르쳤겠다. 너희들만 다 나으면 바로 이곳을 나가는 거야.”
“어렵게 이곳까지 왔는데 왜 나가.”
제이너스가 반문했다.
드래곤의 레어를 찾아오기 전까지 수십 차례 고비를 넘겼다.
그런 어려움을 감수하면서 찾아온 이유가 있다.
“안 돼.“
“제이너스. 드래곤의 보물은 그만 포기해. 여긴 드래곤의 레어가 아니라. 믿지 않겠지만 소드 마스터급의 강자들이 모여 있는 곳이란 말이야. 파일로. 느끼고 있지? 이 기운들.”
“응.”
선명하다.
이렇게 그 강한 기운들을 어떻게 느끼지 못할 수 있을까?
“맞아……이 기운들…….”
이런 기운을 가진 존재들이 사람이라면 말이 달라진다.
실리아가 지금 말하는 것이 옳을지도 모른다.
몇백 명의 소드 마스터…… 그들이 눈앞에 실존하고 있다.
하지만 그럴 리가 없다. 한두 명이라면 모를까. 수백 명이라니……
어쩌면 상위 마족들일지도 모른다.
제이너스가 생각에 잠긴 파일로를 바라봤다.
“정말 소드마스터급의 강자들이 모여 있다고? 말도 안 되지. 소드마스터하고 비기너하고 헷갈린 거 아냐?”
제이너스는 비아냥거렸다.
실리아가 한숨을 후우 하고 뱉었다.
“곧 알게 되겠지. 이래봤자 내 입만 아파.”
“정말?”
“몰라!”
실리아는 불퉁거렸다. 자리에서 일어났다.
“가야할 시간이야.”
“벌써?”
“몰라!”
실리아는 중압감으로 무거워진 몸을 애써 일으켰다.
“몸조리나 잘해. 이런 곳에선 빨리 나가고 싶으니까.”
“잠깐. 실리아.”
파일로가 눈을 떴다.
“왜?”
“그들의 이마에 마신의 인장이 안 박혀 있어?”
“몰라!”
“나 지금 진지해.”
“왜 마족일까 봐? 있으면 진작에 말해 줬지. 늦겠어. 나 간다. 아무튼 몸조리 잘하는 거 잊지마. 정말로!”
마지막 말에 강조하였다.
빨리 나아야 나갈 수가 있다.
실리아는 세상 다 산 듯한 표정으로 나갔다.
실리아가 문밖으로 나가자.
“정말일까?”
제이너스가 물었다.
“뭐가?”
“이곳의 주인이 레드드래곤 아르카콘트를 잡았다는 거.”
“아깝지만 그렇게 된 것 같아.”
“정말 사람일까?”
“몰라. 아마 아닐 거야. 사람일 리가 없지.”
파일로가 어깨를 으쓱했다.
“사람일수도 있지.“
왠지 그러길 기대하는 듯한 눈치다.
“제이너스. 말이 된다고 생각해? 사람이 어떻게 흉포하기로 소문난 레드 드래곤을 잡아? 그랜드 마스터라도 안 돼.”
“그럼 우리는?”
“뭐가?”
제이너스가 피식 웃었다.
“우리 지금 레드 드래곤 잡으러 온 거잖아.”
“그렇지…….”
서로를 바라봤다.
빠르게 진행되었던 대화는 순식간에 사그라 들었다. 그러고는 정적이 찾아왔다.
어색해진 분위기.
둘은 서로의 시선을 피했다.
애꿎은 천장만…… 바라본다.
포박된 한 남자가 피를 흘리며 쓰러져 있다.
사자 같은 금발. 나이에 걸맞지 않은 강인한 몸.
남자는 신음을 흘리며 몸을 뒤척였다.
사자왕 하이드 백작이었다.
하이드 백작은 눈을 떴다. 터질 듯한 통증이 복부에서 일었다.
“으윽…….”
바로 고개를 옆으로 돌렸다.
토악질을 해댔다.
“여긴…….”
하얀색의 밝은 방이었다. 높은 천장과 병사의 집합장으로 써도 될 만큼 넓었다. 마치 꿈을 꾸고 있는 듯. 몽환적인 하얀방이었다.
복부에 통증이 강하게 이는 것을 보니 꿈은 아니었다.
아!
“그 놈.”
놈의 얼굴이 떠올랐다.
간단하게 자신을 제압했던 놀라온 실력!
단 일격에 이렇게 되었다.
그놈에게 잡혀온 것인가.
하이드 백작은 고통에 죽을 것 같이 표정을 일그러 트렸다.
내장이 전부다 뒤틀린것만 같았다.
고위 성직자들의 힐링과 포션!
오늘따라 간절히 떠올랐다.
저벅. 저벅.
멀리서 주첨기가 걸어왔다.
으드득.
사자왕 하이드 백작이 이를 갈았다.
“아직도 살의가 남아 있군.”
주첨기의 눈에서 뻘건 안광이 번쩍였다.
“내……내가 누군지……아는가?”
하이드 백작은 안간힘을 다 해 말했다.
주첨기가 코웃음 쳤다.
“날 죽이려한 자다.”
“나……난. 라브린 대국의 하이드. 백작이다.”
하이드 백작의 얼굴에 경련이 일었다.
자신의 정체를 밝혀도 반역무리의 대장은 아무런 표정의 변화가 없다.
주첨기가 차갑게 말을 내뱉었다,
“그건 내 알바가 아니다. 내가 알고 싶은 것은 어째서 날 죽이려 했다는 것이다.”
“뭐,뭘 잘 못 알고 있는 모양인데. 난 하이드 백작이란 말……이다. 쿨럭!”
억지로 입을 열었다.
그 탓에 검은 피가 입에서 쏟아져 나왔다.
군데 덩어리진 피가 보였다.
심한 내상이다.
“좋다. 하이드 백작.”
살의를 품은 자에겐 용서란 없다.
“어째서 나를 죽이려고 하였지?”
“네……놈은…… 누,누구냐!”
푸핫!
하이드 백작도 지독했다.
소리를 지를 때 마다 내장이 타들어 가는 듯한 통증이 일고, 썩은 피들이 울컥 올라온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소리를 질러댔다.
이마의 힘줄이 부풀어 올랐다.
“너 따위는 알 필요 없다.”
살의를 가지고 공격한 자 따위는!
“따……따위?”
하이드 백작은 몸을 일으키려 하였다. 이를 악물었다. 쓰러져 있을 수만은 없었다.
어떻게든 일어난다.
“너는 용서받지 못할 죄인이다. 알고 있는가?”
주첨기의 분노한 목소리!
강맹한 기운이 솟구쳐 하이드 백작의 전신에 엄습했다.
기운은 온몸을 죄어왔다.
머리. 팔. 다리. 몸통.
하나하나 마비되기 시작한다.
“크어어억!”
비명이 터졌다. 온몸을 비틀었다.
점점 죄어오는 기운들!
서서히 고통이 증가된다. 이윽고 몸을 움직일 수 없게 되었다.
아무런 저항도 할 수가 없었다. 죽을 만큼의 고통을 온몸으로 그대로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
“끄아아아”
하이드 백작의 비명 소리.
증가되는 통증만큼 커져갔다.
“살의……만큼은 그냥 지나칠 수 없다.”
눈은 완전히 뒤로 까졌다.
온통 흰자위만 가득한 눈이 번질거렸다.
내력을 거뒀다.
툭. 투투투툭.
뼈마디가 비틀리는 소리가 들렸다.
하이드 백작의 온몸이 부르르 떨렸다.
전신에 경련이 일어났다.
“이제 말하라. 어째서 나를 죽이려 하였는지.”
아무런 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부릅떠진 눈은 멍하니 초점을 잃었다.
“흠.”
하이드 백작은 정신의 끈을 놓쳤다.
죽진 않았다. 죽어선 안 된다.
살의를 품었던 까닭을 알기까지는 주첨기가 혀를 차며 입구 쪽으로 걸어 나갔다.
막 나가려는 순간 누군가 안으로 들어왔다.
수라혈마와 진천이었다.
“제자야. 웬 놈을 잡아 왔다면서?”
“예. 스승님.”
“전하. 무슨 일이십니까?”
“살의를 품고 저를 공격하였습니다.”
“뭐?”
“괜찮으십니까. 전하.”
두 노고수는 놀랐다.
그러나 걱정은 없었다.
두 노고수는 제자의 실력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었다.
“그래. 그놈은 왜 널 죽이려고 달려들었지? 불쌍한 놈. 낄낄…….”
“문초 중 죄인이 정신을 잃었습니다.”
제자의 말은 곧 아직 모른다는 뜻이다.
“그래?”
수라혈마가 입꼬리를 올렸다.
흥미로운 눈으로 주첨기 어깨 너머를 보았다.
확실히 누군가 쓰러져 있다.
“낄낄낄…… 이 사부에게 맡겨라. 정신을 잃은 고문은 이미 글러먹은 거야. 키키. 이사부가 진정한 고문이란 게 뭔지 보여줄 테니까. 어때? 사부에게 한번 맡겨보겠느냐? 낄낄,”
“그렇게 하십시오. 스승님.”
“낄낄…….”
진천은 걱정스러운 눈으로 수라혈마를 바라보았다.
주첨기와 진천이 나갔다.
수라혈마는 손을 깍지 끼고 목을 좌우로 한번씩 꺾었다.
그러고는 음흉한 표정으로 걸어갔다.
저벅. 저벅.
“오랜만에 실력발휘 좀 해볼까? 낄낄…….”
그의 미소에서 잔인한 냄새가 풍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