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mortal martial artist RAW novel - Chapter 11
제3화 진군
하이드 백작과 함께 돌아온 주첨기는 바로 실리아를 불렀다.
잠시 마주쳤을 때 잡아 온 죄인의 얼굴을 본 실리아.
필히 아는 사람의 얼굴을 본 듯한 표정이었다.
“부르셨나요?”
주첨기의 눈치를 살폈다.
실리아는 수백 명의 고수들 사이에서 문자를 가르치고 있었다. 재미있는 건. 어떤 자들은 자신을 정중하게 대했지만, 어떤 자들은 거스름 없이 막 대하였다.
또한 그 두 분류의 사람들은 서로 사이가 안 좋아 보였다.
척 봐도 알 듯 이들은……
착한 자들과 나쁜 자들?
그건 아닌 것 같다.
예의 바른 자들과 자유로운 자들?
어쩌면 이게 더 맞을지 모르겠다.
수백 명 사이를 오가며 느낀 건 모두 하나같이 머리가 뛰어난 자들이란 것이다. 흘러넘치는 강한 기운 만큼 머리 또한 대단하였다.
진천. 수라혈마.
일찍이 두 노고수는 고수들에게 글 읽는 법을 간략하게 가르쳤다. 고수들은 이번엔 실리아에게 더 자세한 것들을 배우고 있었다.
그러던 와중 주첨기가 실리아를 부른 것이었다.
실리아는 마음을 졸였다.
다른 사람들 수백 명의 앞에 서는 것보다.
자신과 또래인 이 남자 앞에 서는 것이 훨씬 두려었다.
또래라고는 보이지 않는 굳게 다문 입.
자신을 직시하고 있는 눈.
하지만 다른 한편으론 참으로 매력적인 남자다.
“실리아.”
“예?”
갑작스러운 부름에 실리아가 놀라 대답하였다.
“그 죄인을 알고 있는 듯 보였다.”
“죄……죄인이라니요?”
아!
“하이드 백작…… 말인가요?”
“그래. 그자의 스스로 자신을 하이드 백작이라고 하더군.”
그자는 로스엔의 영웅 하이드 백작이었다.
역시……
사자왕!
어째서 초원을 군림하는 맹수가 잡혀온 것인가?
한순간 멍해졌다. 다른 사람도 아닌 하이드 백작이다.
“표정을 보니 그자를 잘 알고 있군.”
“예…….”
그런데 이 사람……
하이드 백작도 모르고 있는 건가?
하긴. 문자도 모르는 사람인데 하이드 백작을 모른다고 해서 새삼스럽게 놀랄 것도 없다. 실리아가 주첨기의 눈빛을 슬슬 살폈다.
“무슨 관계지?”
“관,관계 같은 게 아니에요. 대륙의 사람이라면 누구나 알고 있는 분이세요. 로스엔의 영웅 사자왕 이거든요.”
“전쟁영웅인가?”
“맞아요.”
주첨기는 고개를 끄덕였다.
하긴 그에겐 영웅 다운 기백이 있었다.
반면에 오만하였으며 어리석었다.
살의를 가지고 공격했던 우인(愚人).
“그렇군.”
하지만 어째서 그가 자신을 죽이려 한 것일까.
조금만 생각해 보니 짐작이 갈듯도 했다.l
이곳에 와서 벌인 일이라곤 마을에서의 일 밖에 없다.
영주의 복수? 그때도 그랬다.
그쪽에서 먼저 적의를 가지고 공격했었다. 그렇다.
우린……
이방인인 것이다.
훗. 주첨기가 피식 웃으며 말을 이었다.
“그건 그렇고. 이 세계에 대해서 잘 알고 있겠지?”
문자 다음엔 세계? 고개를 푹 숙인 실리아의 표정이 어두워졌다.
암담하다.
“구체적으로 어떤?”
“이 세계의 나라들과 지리. 작위 체계와 화폐. 유명한 인물들 같은 것 말이다.”
“하……나도 모르시나요?”
“그래.”
실리아는 당혹스러웠다.
주첨기의 이마를 바라봤다.
마족의 인장이 찍혀 있지도 않고. 간혹 스스로 인장을 지웠다는 마족의 얘기처럼 그 흔적도 남아 있지 않았다.
자신도 주첨기에게 묻고 싶은 게 태산이었다.
당신의 존재는? 수백 명의 강자들은? 이곳 레어는? 레드 드래곤 아르카콘트는? 그리고 사자왕 하이드 백작은?
“이 세계에 대한 모든 것을 설명하라.”
실리아는 정신이 번쩍 들었다.
“예. 저 그런데…….”
“무슨 일이지?”
“사자왕 하이드 백작은 어떻게 오게 된 건가요? 그도 우리처럼 레어에 침입이라도…….”
설령은 잠에서 깨 빼꼼히 고개를 내밀었다.
바로 저번에 주첨기에게 업혔던 여자?
실리아가 보였다.
흥!
눈살을 찌푸렸다.
“아니. 나를 죽이려 했었다. 이제 설명을 시작하지.”
주첨기가 차갑게 말했다.
설령은 만족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죽이려 하였다?
실리아의 얼굴이 사색이 되었다.
로스엔의 사자왕이 직접 나서서 죽이려고 할 정도였으면.
이자들은……
적어도 로스엔의 공적이 아닌가?
“어디서부터 시작을 해야 할지.”
실리아는 겨우 표정을 다듬었다.
“이 세계에 존재하는 나라들에 설명하라. 단지 나는 이 세계는 삼강 십약국으로 이루어져 있다는 것만 알뿐이다.”
“예. 드래곤 평원을 중심으로 삼강국들이 위치해 있어요. 로스엔. 율리안. 에드먼이 삼강국이에요.”
“계속하지.”
커흠.
실리아가 목을 다듬었다.
“그럼 우선 간단하게만 말씀 드릴게요…… 로스엔은 대륙의 어떤 나라들보다도 상업적으로 부를 이룬 나라예요. 상업대국이라고 불리기도 합니다. 모든 대륙의 교역 중심지인 로스엔 대국은 상업가문에서부터 출발하여 지금에까지 이르게 된 것이죠. 음…… 그래서 상인들에 대한 규제가 완만하고 상업적인 부를 국가의 이념으로 정할 정도 입니다.”
“실질적인 나라군. 율리안은?”
주첨기는 뇌까렸다.
“율리안은 주신 율리안님을 국신으로 모시는 신성대국 이에요. 율리안의 황제는 국교인 라이트교의 대교주까지 겸하고 있어요.”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에드먼 제국은 철저한 황제 중심국이에요. 다른 나라들도 그렇지만 에드먼 제국은 특별히 모든 권력이 황제에게 집중되어 있어요.”
“모든 권력이?”
“네. 사병이란 게 없어요. 모든 병력이 황제의 직속 기사, 병사들일뿐입니다. 강력한 군국주의이며 법치국가 예요.”
사병이 없다는 말은 참 매력적이다.
나라를 이끌어 가는데 있어.
관료들이 가장 문제다.
전부 자신의 입지를 강화 시키고 더 나아가 왕권을 넘보기도 한다.
입지? 사병은 필수다.
입지란 곧 사병의 순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황궁에서 많은 대신들을 보았다.
어떻게 입지를 조금이라도 강화 시키려고 군부의 높은 관직에 오르려고 하는 그들.
하지만 폐하께서도 그들을 완전히 막지 못하셨다.
대신들 나름대로 살길을 터놓은 탓에.
주첨기는 에드먼 제국에 흥미가 쏠렸다.
“어떻게 사병이 없을 수가 있지? 대신들이 가만히 있지 않을 터인데?”
“자세한 건 잘 몰라요…… 다만 에드먼 제국의 애드먼 18세 황제께선 매우 무서운 분이시라는 것밖에요. 아마,…….”
“아마?”
“강력한 법에 의한 통치가 그렇게 만들지 않았을까 싶어요. 모든 법을 황제께서 직접 제정하시거든요.”
에드먼이라는 제국의 정치적 이념.
자신이 세우려는 대국과 비슷하다.
대국은 강력한 황권이 전제가 되어야 한다.
그 전에 많은 대신들의 힘을 누를 수 있는 황제가 되는 게 첫 수순일 게다.
“그렇군.”
짧은 한마디에 왠지 모를 힘이 담겨져 있었다.
“로스엔은 상업적으로 성공한 대국이라고?”
“네. 가장 강력한 군사제국이 에드먼이라면. 가장 커다란 부를 이룩하고 있는 나라는 로스엔이에요.”
흐음.
두 나라의 이념이 서로 다르게 향하고 있다.
상업과 군사적 이념.
이 둘을 합친다면 꿈꾸던 대국을 이룩할 수 있다.
“지리는 어떻게 되지?”
“음……그러니까.”
실리아는 허리 뒤쪽에서 작은 종이 하나를 꺼냈다.
정확하지는 않지만 충분히 유용한 지도다.
주첨기에게 내밀었다.
지도에 따르면 확실히 드래곤의 평원은 대륙의 정 중앙에 있었다.
그리고 평원의 북동쪽으로 에드먼 서쪽으로 로스엔. 남동쪽으로 율리안이 자리 잡고 있다.
대륙을 횡단하는 커다란 강은 평원을 중심으로 맴돌고 있다.
“역시.”
주첨기는 자신의 추측을 확신했다.
지금까지 이렇게 좋은 땅에 나라가 들어서지 않았던 이유!
삼강국이 서로의 눈치를 보고 있었던 것이다.
어느 한쪽이 영토를 확장시키려 하면 다른 두쪽이 서로 동맹을 맺는다.
그렇게 한 쪽을 견제한다.
삼각의 대립구조.
꼭 한말에 천하가 삼등분으로 나눠졌던 그때와 양상이 비슷하다.
다른 점?
이 삼강의 뒤로 작은 약소국 열나라가 존재한다는 것뿐이다.
“이 나라들까지 세 패로 나눠져 있겠군.”
주첨기가 십약국을 가리켰다.
“네? 네…….”
“정확히는 강국들에게 속박되어 있겠어.”
삼강국과 십약국의 영토 차이가 대단하였다.
“맞아요.”
주첨기는 지도를 물끄러미 바라봤다.
삼강국의 중앙인 드래곤의 평원.
커다란 강이 흐르며 가장 비옥한 땅.
이곳에서 나라를 일으킨다.
물론 삼강국.
아니 대륙의 모든 나라가 자국을 공적으로 삼을 것이다.
그러나.
그러기에 더욱 의미 있는 일.
그러기에 더욱 이곳에서 나라를 일으켜야 한다.
이 자리를 지킬 것이다.
5년 전 무공을 익히기로 다짐했던 소년 주첨기의 눈빛이 일렁거렸다.
“왜……그. 그러시나요?”
갑자기 위압감이 들었다.
실리아가 말을 더듬었다.
“잠깐.”
실리아의 말을 막았다.
주첨기는 지도에 몰입하고 있었다.
마치 지도를 꿰뚫어 버릴 듯한 시선이다.
여러 나라들의 위치와 산맥. 강과 호수. 숲과 평야. 모든 지리를 한눈에 담았다.
잊혀지지 않도록 머릿속에 새겼다.
한참의 정적후.
“이 지도를 내게 주지 않겠는가?”
주첨기가 입을 열었다.
실리아는 바로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 대가 없이 받을 순 없지. 바라는 게 있는가? 모든 일엔 대가가 있는 것이지…….”
“고위 성직자가 계시다면 제 친구들에게 힐링 좀 부탁드려요.”
용기를 내서 말했다.
강자가 수두룩한 이정도의 규모 속에.
고위 성직자가 없을 리 없다.
그런데 주첨기는 이해를 못하는 표정이었다.
“그게 누구지?”
없나?
“그럼 백마법사……라도…….”
“그게 누구지?”
“마……마법을 쓰는…….”
“마법이 뭔가.”
처음듣는 용어였다.
실리아는 완전히 기가 막혀버렸다.
레드 드래곤 아르카콘트를 잡았다는 엄청난 강자가!
문자는 물론 대륙의 정서
그 뿐이랴.
마법의 존재 또한 몰랐다. 실리아는 마나를 일으켰다. 입으로 몇 마디 중얼거리던 끝에 시동어를 내뱉었다.
“라이트.”
실리아의 손에서 밝은 빛의 구가 생성되었다.
한순간 시야가 백색으로 가득 찼다.
휙.
주첨기가 장을 뻗었다.
“무슨 짓인가?”
휘이잉.
강렬한 장풍이 몰아쳤다.
팟! 라이트의 빛이 꺼져버렸다.
아! 마법이 소멸되었다.
실리아는 크게 놀랐다. 라이트는 1서클의 하위마법이다. 그렇다고는 하지만 이렇게 쉽게 소멸되어 버리다니.
시간이 갈수록 이해할 수 없는 사람이다.
이곳에서 빨리 나가고 싶다.
“방금 그게 마법이란 것인가?”
“네.”
“신기하군. 다시 보여줄 수 있는가?”
마법의 능력을 확인하였다. 꼭 주술과도 같은 것이었다.
주술이 실재하는지는 모른다.
그러나 마법은 눈앞에서 실재하고 있었다.
“실리아. 네가 마법사인가?”
“네…….”
주첨기의 표정.
신기한 것을 발견한 어린아이의 것 같다.
빛의 구가 서서히 꺼졌다.
“마법이란 상당히 유용한 것 같군. 신기해.”
주첨기가 뇌까렸다.
보아하니 이 세계에 이런 마법이란 게 통용되는 모양이다.
신기한 노릇이다.
빛이 생성되는 가하면 불도 나오고 물도 나온다.
주술이라면 주술이고. 아니라면 아니다.
부적 같은 것은 없지만, 그 능력은 민담에 들리던 주술과 같다.
생각해 보니 주술가가 없었다.
모두 무림인들뿐이다.
“마법. 그것 배우고 싶군.”
“네……넷?”
문자에 이어서 마법까지?
마법을 배우고 싶다니.
평생을 걸려 배워야 할 마법.
여기서 허락하면 꼼짝없이 이곳에 감금 아닌 감금이 되어 버릴 것이다.
“잠시……생각할 시간 좀…….”
주첨기는 실리아의 마음을 얼핏 눈치챘다.
“단순히 드래곤을 잡기 위해 침입했던 것은 아니었을터. 무슨 이유 때문에 왔었지?”
사실 드래곤을 잡으려던 건 파일로다.
제이너스와 자신은 다른 이유에서였다.
파일로는 드래곤슬레이어의 명성. 제이너스는 드래곤의 보물. 그리고 자신은……
“마…….”
“마?”
“마법서를 구하기 위해 왔었어요.”
당차게 말했다.
마법서라.
책인가?
“서책이라면 드래곤이 모아놨던 곳이 있다.”
실리아의 눈이 크게 떠졌다.
새파란 섬광의 눈빛이 뻗쳐 나왔다.
바로 그곳이다.
대륙에 모든 진귀한 책들
그리고 전설의 마법서가 존재한다는 지식의 보고!
꿈에서도 간절히 원하던 곳이다.
“아……아,”
“마법이란 것을 가르쳐 준다면 그곳을 왕래 할 수 있도록 허락하겠다.”
“아…….”
실리아는 할 말을 잃었다.
머릿속이 복잡하다.
마법을 가르쳐 준다면 그곳을 사용할 수 있도록 허락하겠다니?
마법이란 게 몇 달 사이로 전수할 수 있는 그런 간단한 것이 아니다.
하지만 드래곤이 가지고 있을 온갖 마법서들.
그것들이 눈앞에서 아른 거렸다.
그래. 이것은 인생에 둘도 없는 기회다.
놓치면 평생을 후회 할 것이다. 눈앞의 마법서를 놓칠 수 없다. 그건 더 높은 경지를 탐구하는 마법사로서 할일이 아니다.
두 번 다시 오지 않을 기회.
실리아는 붙잡기로 하였다.
아무리 이곳이 무서운 곳이라 하더라도. 아니 심지어 지옥이라 하더라도! 더 이상 말이 필요 없다.
“하……하겠어요.”
주첨기가 싱긋 웃었다.
“지금에라도 당장…….”
서두르는 모습이 역력하였다.
그녀도 그럴 것이, 대륙의 모든 마법사가 꿈꾸는 온갖 마법서들이 손에 잡힐 듯 가까이 다가올 것이다.
“잠깐. 배울 사람은 내가 아니다.”
“네? 그럼 누굴…….”
“혜공과 만소자 라는 환관 둘이다.”
[우끼.]실리아와 설령이 동시에 고개를 갸웃거렸다.
사자왕 하이드 백작.
그가 실종된 지 일주일이 넘었다.
반역자들로 추정되는 무리들을 찾아 나선다는 한마디와 함께 성을 나갔었다.
그는 원래 혼자 활동하길 좋아했기에 아무도 막지 않았었다.
헌데! 그 후로 소식이 없다.
백작의 실종은 예삿일이 아니다.
더군다나 그게 하이드 백작이려면 더욱!
하이드 백작은 로스엔의 영웅이다.
또한 대 귀족인 백작이시다.
글릴 남작은 결단을 내렸다.
어차피. 하이드 백작이 제발로 찾아오지 않는 한 백작을 찾을 길은 없다.
드래곤의 평원을 수색할 병력을 가지고 있지 않았다.
그럼 방법은 하나다.
백작의 실종을 황성에 알린다.
최근에 벌어진 기이한 일들을 더 이상 숨기지 않는다.
그렇게 황제폐하의 기사단과 여러 귀족들의 도움을 받는 것이다.
일이 걷잡을 수 없이 커지겠지만 하는 수 없었다.
체면과 자존심은 버린다.
하이드 백작이 실종 된 마당에 숨기면 숨길수록 해가 될 뿐이었다.
글릴 남작은 이튿날 바로 황성으로 향했다.
황성에 도착한 건 삼 일 후였다.
한 번도 쉬지 않고 내달린 결과다.
그가 추측했던 반응들이 속속 보였다.
“사자왕이 실종이라니.”
하이드 백작의 실종을 듣고 눈이 휘둥그레진 황제.
“실종? 믿을 수 없군. 쯧.”
여러 대귀족들.
“뭐? 아버님이 실종 되셨다고?”
특히 하이드 백작가의 사람들은 더욱 크게 놀랐다.
이유가 불확실하다.
황제와 대신 그리고 백작가문의 사람들이 다 같이 모인 곳곳에서 아! 하는 소리가 새어 나왔다.
“남작. 자세히 말해 보라.”
황제 아실리안이 말했다.
준엄한 목소리가 성내에 깊숙이 깔렸다.
글릴 남작은 송구스럽게 머리를 조아렸다.
“예. 반역무리 ‘유이드’로 추정되는 자들을 쫓기 위해, ‘드래곤의 평원’으로 단신으로 가셨다 실종되셨습니다.
황제는 신경이 곤두섰다.
반역 집단 ‘유이드’에 대한 말이 나올 때마다, 주름살이 하나씩 느는 것만 같다.
“드래곤의 평원이라니?”
여러 사람들이 중얼거렸다.
드래곤의 평원은 사람이 들어가선 안 되는 곳으로 암묵적 규정 되어 있었다.
그런 곳에 반역집단 ‘유이드’가 있다니?
그리고 그들을 쫓아간 하이드 백작의 실종?
“드래곤의 평원에서 백작이 실종되었다면 예삿일이 아니다. 더군다나 백작은 소드 마스터가 아닌가?”
아스틴이 말했다.
로스엔의 유일한 공작인 그다.
사자왕 하이드 백작.
그와는 ‘친구’ 관계라 해야 할 정도다.
그만큼 사이가 긴밀하였다.
아스틴은 걱정이 되었다.
하이드 백작이 사라진 곳은 다름 아닌 드래곤의 평원이다.
“남작.”
“예. 공작님.”
“어째서 남작은 반역 무리들을 스스로 처리 하지 못한 것인가?”
“유린 당하였습니다…….”
“무슨 말인가?”
글릴 남작의 고개는 더욱 숙여졌다.
“저의 사병으로썬 그들을 처리 하지 못하였습니다. 그래서 사자왕 하이드 백작님께 도움을 요청한 것입니다. 드래곤의 평원으로 몇 번이나 수색병을 보내봤으나, 평원의 몬스터들 때문에 돌아오는 건 수색병들의 시체였습니다.”
모두 느낀 것일까?
뭔가 일이 뒤틀리게 돌아가고 있다.
이상한 느낌.
어두운 침묵이 흘렀다. 황제 아실리안은 생각했다. 국가적 재산이자, 대 귀족인 하이드 백작이 실종 되었다.
하지만 드래곤의 평원이라면 하이드 백작이라도 생사를 가늠할 수가 없다.
하지만 예의라는 게 있다.
대국의 영웅을 대하는 예의.
그를 찾아 나서야 한다.
“공작. 짐은 이번에 황실 기사단 그리폰과 함께 오백여 명의 기병. 삼천여 명의 보병을 준동 시킬 것이다.”
아실리안 황제가 아스틴 공작을 직시하였다.
황제인 나는 이만큼 한다.
귀족회 너희들은 어떻겠는가?
눈이 말해 주고 있다.
“예. 폐하. 귀족회에서도 각 가문에서 기사들을 선발, 증원 할 것이며 오백여 명의 기병. 삼천여 명의 보병을 준동시키겠습니다.”
“좋다. 흡족하다. 공작.”
아실리안 황제가 고개를 끄덕였다.
“폐하. 마법기사단까지 발출 시키는 것은 어떻겠습니까?”
“그것도 괜찮겠군. 드래곤의 평원이니 만큼. 이참에 드래곤의 평원에 대한 조사도 확실히 하는 게 좋겠다.”
글릴 남작은 속으로 안도하였다.
모든게 생각대로 되었다.
사자왕 하이드 백작의 이름이 걸린 것답게 엄청난 규모의 추적군이 만들어졌다.
자신을 유린한 무리들.
꼼짝 없이 죽음을 맞이할 것이다.
훗.
그렇게 될 수밖에 없다.
황실 기사단 그리폰과 폐하의 강인한 병사들. 귀족회의 사병들.
모두 위용이 흘러넘치는 강인한 자들이다!
“제가 이번 추적군의 대장이 되겠습니다. 폐하.”
아스틴 공작이 스스로 지원했다.
친우인 하이드 백작이 실종되었다. 그리고 반역집단 유이드까지 거론되었다.
이렇게 된 마당 가만히 앉아만 있을 수 없다.
“좋다. 공작.”
아실리안 황제는 바로 허락하였다.
공작이라면 누구보다도 든든하다.
“짐은 명한다. 황실 기사단 그리폰과 기병 오백, 보병 삼천. 그리고 귀족회의 자발적인 기사단 그리고 기병 오백. 보병 삼천! 총 칠천 이상의 병력은 실종된 하이드 백작을 찾고, 반역집단이라 추정되는 무리들을 섬멸한다. 장소가 드래곤의 평원이니 만큼 필히 이점에 유념해야 할 것이다.”
“예! 폐하!”
모든 대신들이 무릎을 꿇었다.
일은 빠르게 진행되었다.
회의에 참가했던 대신들은 각자의 가문으로 사람을 보냈다.
어쩌면 좋은 기회일지도 모른다.
사자왕 하이드 백작이 한창 주가를 올리고 있는데 그와 관계를 더욱 돈독히 할 수 있는 기회다.
귀족들의 분위기 또한 마찬가지였다.
남들보다 앞서가진 못해도 뒤처질 순 없다.
각지에서 실력있는 기사들을 모여들기 시작했다.
개중에는 꽤 이름이 알려진 이들도 상당했다.
소드 익스퍼트 상급 이상의 기사들.
모두 로스엔 대국에서 전공을 세웠던 자들이다.
소드 익스퍼트 상급의 기사들은 각 가문의 대장이 되었다.
병력들을 이끌고 수도로 진입하였다.
적게는 오십 명에서 많게는 이백 명까지.
각 가문에서 동원된 수와 작위의 서열은 비례하였다.
황성의 집회장.
은색의 갑옷이 햇빛에 번쩍였다.
독수리의 머리에 사자의 몸. 그리고 거대한 날개를 가진 그리폰!
괴수의 문장이 갑옷들에 박혀 있었다.
소드 익스퍼트 상급으로 구성된 백명의 기사단.
부유한 나라답게 그들은 갑비싼 무구들을 장비 하고 있었다.
마법 무구!
각자의 갑옷과 검에 이상한 그림들이 그려져 있다.
마법진이다.
낮은 서클의 마법이지만 개개인의 대결에선 상당한 위력을 발한다.
그리고 마법을 발동시킬 수 있는 마법무구는 낮은 서클의 마법이라도 부르는 게 값이다.
한둘도 아닌 이그판 기사단 모두가 마법무구를 장비하고 있다.
더욱이 그들은 팔찌까지 끼고 있었다.
힘의 팔찌.
혹은 전쟁신 간츠의 팔지라고도 불리우는 아티팩트.
평소보다 두 배 이상의 힘을 발할 수 있다고 알려진 팔찌다.
그렇다고.
돼지 목에 진주 목걸이를 건 것은 아니다.
이그판의 기사들은 그것을 누구보다도 유용하게 사용하였다.
소드 익스퍼트 상급에 마법 무구까지 겸한 이그판의 기사들.
그들은 대륙의 삼대 기사단중 하나다.
“준비는 다 되었는가?”
아스틴 공작이 하레스에게 말었다.
하레스는 미노타우르스만한 거대한 몸을 가졌다.
주먹까지 바위만 한 그는 괴력의 하레스로 잘 알려져 있다.
소드 마스터의 경지까지 오른 하레스.
그는 이그판의 기사단장이다.
“예. 공작님. 이그판의 기사들 모두 언제든 출발할 준비가 되어 있습니다.”
투구속에서 굵직한 목소리가 들렸다.
마법진의 테두리가 햇빛에 반사되었다.
묘한 기운이 하레스의 눈에서 감돌았다.
아스틴 공작이 고개를 끄덕였다.
많은 병력이 동원되었다.
백여명의 이그판 기사단과 삼천오백명의 황실군.
삼백여명의 기사들과 삼천오백명의 귀족군.
대략 칠천사백 명이 넘었다.
이정도의 병력이 동원된 것은 에드먼 제국과의 전쟁이 끝난 삼년만이었다.
“불안해 보이십니다.”
“내가?”
“예. 공작님.”
“흐음. 걱정스러운 마음을 숨길수가 없군.”
“하이드 백작님은 강하신 분입니다.”
하레스가 대수롭지 않게 말하였다.
그의 말속엔 강자에 대한 믿음 실려 있었다.
자신과의 일대일 연습대결에서.
언제나 자신을 이겼던 강자다!
“하지만 드래곤의 평원에서 실종 되었다는 것이 계속 걸리는군.”
“몬스터들이 많긴 하지만. 백작님은 몬스터들에게 당하실 분이 아니십니다.”
“그건 그렇지. 하지만. 실종 될 사람도 아니지 않은가.”
최근.
하이드 백작의 장자와 자신의 막내딸 간에 혼사가 막 이루어지려던 찰라였다.
그런데 그만 일이 벌어지고 말았다.
자신의 친우이자 사돈이 될 하이드 백작이 실종된것이다!
“걱정마십시오. 전 저희 대군에 당할 몬스터들이 벌써부터 걱정됩니다. 그동안 자국의 대군이 드래곤의 평원에 진출하지 못했 것은 몬스터들 때문만이 아니란거 아시지 않습니까? 율리안과 에드먼의 경계만 없어더라도 진작에…….”
하레스가 주먹을 불끈 쥐었다.
그에겐 다른 의미로써 좋은 기회였다.
언제나 영토의 확장을 꿈꾸던 그다.
그동안 드래곤의 평원으로 진출 하지 못했던 이유는 수많은 몬스터들도 그렇지만 한가지가 없었기 때문이다.
대의명분!
영토를 확장 한다는 것은 명분이 될 수 없다
중앙 드래곤의 평언을 두고 에드먼과 율리안이 항상 눈치를 보고 있다.
따라서 드래곤의 평원으로 더욱 압력이 가해진다.
하지만 이번엔 다르다
실종된 대귀족 하이드 백작을 찾기위한 것이다.
확실한 대의명분이다.
“단장의 말대로. 여러모로 기회일수 있지. 하지만…….”
아스틴 공작이 말꼬리를 흐렸다.
하지만 그는 내 친구다.
‘국익을 위한 도구로써 이용되는 것은 탐탁지가 않다’ 라는 말이 입안에서 맴돌았다.
“이참에 드래곤의 평원으로 진출하는 겁니다.”
젊은 사람답다.
열정이 불타올랐다.
“아무튼. 최대한 빨리 평원으로 향한다. 단장은 전군을 재정비하라.”
“예!”
치잉.
허리춤의 검집에서 장검을 뽑았다.
하레스가 높게 검을 치켜 들었다.
“전군!”
우레 같은 우렁찬 목소리가 터졌다.
착!
전체가 검을 장비하고. 발을 굴렀다.
열화 같은 시선이 하레스에게 꽂혔다.
“대열을 정비하라!”
하레스의 목소리가 대지를 울렸다.
등 뒤에 소름이 쫙 돋았다.
바짝 긴장하였다.
하레스의 명령이 하달되기 무섭게 전군이 움직였다.
차차착.
자로 맞춘 듯 횡과 열을 맞췄다.
수많은 기사들과 병사들 사이로 준엄한 기운이 흘렀다.
작은 숨소리조차 용납할 수 없는 분위기였다.
대규모의 병력 이동.
물론 다른 두 강국에게서 견제가 들어올 것이다.
하지만 대의명분이 있기 때문에 전보단 많은 시간을 벌 수가 있다.
중요한 건 시간이다.
시간만 주어진다면 견고한 수비진형을 펼칠 수 있다.
평원.
대국의 영토가 이곳까지 확장된다면?
하레스의 눈에 넓은 평원이 들어왔다.
끝이 보이지 않는 지평선.
탐스러운 땅! 드디어 밟았다.
하레스와 아스틴 공작은 수천 명의 병력을 이끌고 평원에 들어섰다.
“무슨 일이 있어도. 드래곤은 깨우지 않는 것이 좋아.”
아스틴 공작이 뇌까렸다.
“전설상의 이야기이지 않습니까?”
“아니.”
단 한마디로 하레스의 반문을 막았다.
레드드래곤 아르카콘트는 단순한 전설이 아니다.
그 위대한 존재는 사실이다.
“하지만 지금은 수면기니 레어로 침입하지 않는다면 깨지 않을 거다.”
“공작님. 레어의 위치를 알고 계십니까?”
무뚝뚝한 표정의 하레스도 이번만은 달랐다.
“단장. ‘그것’에 대해 알고 있는가?”
“그것이라면 현재 연구중인…….”
“맞다. 그것을 위해 본국에서 드래곤을 찾아 나선 일이 있었지. 이곳은 레드 드래곤이 산다. 분명히.”
“드래곤도 죽여버리죠.”
무서울게 없었다.
수많은 기사와 병사들이 뒤에 있는데.
이정도면 드래곤도 잡아 버릴수 있지 않을까?
그게 아르카콘트라고 해도!
아스틴 공작이 고개를 저었다.
“전군!”
하레스가 외쳤다.
착!
“속도를 낸다!”
발걸음들이 빨라졌다.
초원들의 풀잎이 병사들의 발아래 짓밟혔다.
좀 떨어진 곳의 길게 자란 수풀이 흔들거렸다.
저놈들은 뭔가?
취익!
한 오크 무리들이 병사들을 유심히 살펴보고 있었다.
그전에 전투를 벌였나?
오크들은 모두 피폐한 모습으로 크고 작은 부상들을 입고 있었다.
모두 불안한 눈빛이다.
부상을 입은 오크들이 거친 숨을 토해내고 있다.
그들이 움찔 거리자 또다시 수풀이 흔들거렸다.
“눈에 거슬리는군.”
하레스가 수풀쪽을 손으로 가리켰다.
“궁수대. 시위를 겨눠라.”
제일 궁수대 백여명이 수풀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화살을 먹여 뒤로 쭈욱 당겼다.
끼익.
시위가 겨눠지는 소리는 섬뜩했다.
“발사.”
하레스가 명령하였다.
슈수숙. 화살들이 날아가는 소리가 들리기 무섭게.
꾸에에엑!
오크들의 비명 소리가 평원에 메아리 쳤다.
주위가 잠잠해지자 대군은 아무일도 없었다는 듯이 평원 깊숙이 진군하였다.
이상한 일이다.
드래곤 평원의 명성에 걸맞지 않게 너무 잔잔하다.
이곳이 드래곤 평원이 맞나?
의구심이 들정도였다.
대규모의 몬스터 습격을 예상하고 있었다.
대규모의 습격? 습격은 많았다.
하지만 전부 최대 삼십마리 정도로 밖에 이루어지지 않은 소규모 무리들이었다.
그것뿐이랴.
몬스터들 모두 부상을 입고 있었다.
뭔가에 쫓기는 듯한 인상이 짙었다. 기사나 보병들이 직접 나설 것 없었다. 궁수대 몇부대의 화살 세례는 그들을 깔끔하게 마무리 지었다.
“안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것 같습니다. 공작님.”
“몬스터들 모두 뭔가로부터 도망치고 있다.”
수만마리의 몬스터들과 전투가 있을 거란 생각이 무너졌다.
전투가 없는 것은 좋다.
하지만 왠지 허전했다.
아스틴 공작은 괜스레 검을 매만졌다. 평원의 중앙 쪽을 향해 진군 하였다. 중앙 또한 마찬가지다.
패국병 추적?
뒤처리를 하고 있는 기분이었다.
대륙의 삼대 기사단중 하나인 이그판 기사들과 대규모의 병력은 고작 도망쳐온 몬스터들을 처리하고 있을 뿐이었다.
저 멀리서 무슨일이 벌어지고 있는지는 모른다.
다만 몬스터들의 처절한 비명 소리가 무슨일이 벌어지고 있는 것을 알려주고 있을 뿐이었다.
“너무하는군.”
아스틴 공작이 솔직히 뇌까렸다.
몬스터들에 비하여 대규모의 병력을 이끌고 온 것이 허무해져버렸다.
“공작님. 마음을 놓지 마십시오. 저 평원의 중심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몬스터들이 하나같이 부상을 당하고 도망치는 것을 보면…… 심상치 않습니다.”
하레스가 심각하게 말하였다.
본능적으로 불안한 기분이 들었다.
기사로써 느끼는 이런 불안함.
현실로 다가올 때가 간혹 있었다.
멀리서 들렸던 몬스터들의 비병소리가 점점 가까워졌다.
꾸아아악.
갑자기 상처 입은 트롤 수십 마리가 한번에 튀어 나왔다.
“궁수대 발사!”
준비하고 있던 궁수들이 시위를 튕겼다.
고슴도치 마냥 화살이 온몸에 박혔다.
쿠아악.
하지만 더욱 거세게 돌진하였다.
“귀족회 제 1,2 기사단. 공격하라!”
기사 이백명이 먼지바람을 일으키며 말을 몰았다.각자 긴 롱스워드를 치켜 들었다. 트롤들을 스쳐 지나가며 검을 내리쳤다.
트롤들의 몸이 산산조각 난다.
부상입은 트롤들은 기사들의 상대가 되지 않았다.
앗!
“…….”
순간 하레스는 뭔가를 느꼈다.
“이그판의 기사들이여 검을 꺼내라!”
몬스터들을 궁지로 몰고 있는 두려움의 실체!
“전군. 준비하라! 대전이 벌어진다!”
하레스가 있는 힘껏 외쳤다.
궁수들은 시위를 겨눴고 보병들은 병기를 움켜잡았다. 기사들이 수풀 앞을 강렬한 시선으로 노려보았다.
강렬한 기운들이다.
꿀꺾.
하레스가 입안에 가득 고인 침을 삼켰다.
왔다!
수풀이 흔들거리며 뭔가가 뛰쳐 나왔다.
사람?
검을 든 희한한 복장의 사람들이다.
“말……말…….”
아스틴 공작이 말을 더듬었다.
“말……도안 되.”
여기저기서 넋잃은 중얼거림이 들렸다. 수천명의 병사들은 모두 자신의 눈을 의심하였다. 수풀에서 뛰쳐나온 사람들은 오십명이다.
그들 모두.
“소드……마스터…….”
하레스가 중얼거렸다.
믿기지 않았다.
검들에 각각 푸른색의 기운들이 감돌았다.
저건 분명히 소드 마스터의 오러 블레이드다!
오십명의 소드 마스터 출현?
“바……바로 저……저들입니다!”
글릴남작이 갑자기 나타난 무리들을 가리키며 외쳤다.
혜공은 청동거울을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었다.
거울속의 혜공은 얼굴을 찌푸리고 있었다.
집게손가락으로 이마를 매만졌다.
“이 주름살들…….”
여자처럼 간드러진 목소리였다.
최근들어 피부가 더욱 거칠어지고 이마에 주름살이 선명해진 것 같다. 그토록 잘 가꿔온 피부였는데 피부가 망가지는 건 한순간이었다.
전부다 마법 때문이다.
마법은 복잡하기 짝이 없었다.
황궁내에서 총명하기로 소문났던 자신이었어도, 마법이란 괴기한 학문에 대해선 통 이해가 안 되었다.
“혜공공.”
만소자가 다가왔다.
그 역시 얼굴에 근심이 가득하였다.
인생의 쓴맛을 알아버린 중년의 얼굴? 한숨이 절로 나왔다.
“아…….”
혜공은 급히 청동거울을 숨겼다.
고개를 뒤로 돌렸다.
“만소자. 인기척도 없이 무슨 일이냐?”
“다름이 아니오라. 마법 때문입니다.”
“왜?”
“혜공공께선 머리가 명석하시어 이해를 잘 하시는 듯하지만 저는 그러지 않습니다. 계속 생각해 봐도 이해가 안 되는 것투성입니다.”
만소자의 눈은 붉게 충혈 되어 있었다.
거의 일주일간 잠을 안자다시피 마법에 전념하였다.
그래도 습득한 것이라곤 하나도 없었다.
만소자는 자신의 머리를 탓했다.
“저도 혜공공처럼 머리가 명석했으면 좋겠습니다. 아직 문자도 완전히 습득하지 못했는데…….”
혜공이 웃었다.
“호호. 만소자야. 그런 투정은 내게 아니라 전하에게 하는 것이야. 아무래도 너는 문자부터 완벽하게 익히는 게 수순인 것 같구나. 호호호.”
“예. 혜공공.”
“걱정마라 내가 가르쳐 줄 테니.”
“정말이십니까?”
만소자의 얼굴이 조금은 펴졌다.
그때.
“모두 열심히인 것 같습니다.”
주첨기가 입구 쪽에서 걸어왔다.
“전하!”
혜공과 만소자가 급히 무릎을 꿇었다.
머리를 조아렸다.
“일어나십시오. 혜공. 만소자도 일어나라.”
“예. 전하.”
“두 사람의 역할이 참 큽니다. 이계에선 마법이란 학문이 아주 유용하게 쓰이고 그 위력 또한 대단한 듯합니다. 수백 명의 수하들 중 두 사람이 유일하게 마법을 배우고 있으니, 지금처럼 정진해 주세요.”
탁.
설령이 바닥으로 내려왔다.
설령에겐 고개를 숙이고 있는 만소자와 혜공의 얼굴이 잘 보였다.
두 사람의 역할이 크다.
지금처럼 정진하라.
그 말에 따라 오묘하게 변하는 만소자와 혜공의 얼굴.
[우끼.]설령이 이를 보며 피식 웃었다.
혜공이 설령을 향해 눈을 부릅떴다.
설령은 다시 주첨기의 어깨로 뛰어올랐다.
“예. 전하. 전하의 큰 기대와 은혜에 꼭 보답하겠습니다요.”
“보답하겠어요.”
그렇지만 그들 목소리에는 힘이 실려 있지 않았다.
왠지 모를 한숨 소리가 작게 들리는 듯하다.
어찌 됐든! 전하의 명이시다.
자신들에게 거는 기대가 크는 만큼 이에 보답해야 했다.
“학습의 정진에 따라 상이 있을 겁니다.”
상?
혜공과 만소자의 눈이 커졌다.
“혜공. 최근 피부가 많이 안 좋아신 듯 보입니다. 이계에는 피부가 젊었을 때처럼 좋아지게 하는 신비한 약이 있습니다. 그게 지금 성 안에 있습니다. 그것을 드리겠습니다.”
주첨기가 살짝 미소 지었다.
태어났을 때부터 함께 해온 혜공.
그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어찌 모를까?
피부를 좋아지게 하는 신비한약! 젊었을 때처럼!
혜공은 심장이 덜컹 거렸다.
“그리고 만소자야. 네게는 친구를 주겠다.”
만소자는 언제나 외로워 했다.
황궁에서도.
“친구요?”
만소자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그래. 토끼 비슷한 귀여운 동물이라고 들었다. 사람에게 해는 없고 오히려 머리가 맑아지는 향이 난다 하니…… 자. 받아라. 만소자야. 최근 마법이란 학업 때문에 고민이 많은 듯 보인다. 상을 먼저 줄 터이니 이에 보답하여라. 정성을 들여 키운다면 주인인 너와 정신적인 교감을 이룰수 있다는 신비한 영물이다.”
알에 대한 건 하크에게서 들었다.
주첨기는 품안에서 주먹만 한 알을 꺼냈다. 드래곤의 방에 있던 알이었다. 알을 내밀었다.
만소자가 두 손으로 공손히 받았다.
“감사합니다. 전하.”
혜공은 가만히 알을 바라보았다.
주첨기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갈망하는 눈빛!
주첨기는 이를 보지 못하고 몸을 돌렸다.
“혜공께서도 더욱 정진해 주십시오.”
한마디가 허공에 울렸다.
주첨기는 이미 사라지고 없었다. 혜공의 얼굴이 울상으로 변했다. 주첨기가 사라진 자리만 멍하니 바라봤다.
피부가 젊어지는 신비의 묘약……
멍하니 있을수록 멀어진다.
“만소자야. 어서 실리아를 불러와라.”
혜공이 말하였다.
다른 곳에서 주첨기가 모습을 드러냈다.
눈에 힘이 들어갔다.
입은 굳게 다물어져 있다.
조금 전과는 상반된 얼굴이다. 준엄한 안광이 흘러나왔다.
주첨기는 단상 위로 올라갔다.
이미 수백 명의 고수들이 전부 모여 있었다.
“모두 들어라”
파도가 넘실거리듯 주첨기의 음성이 울렸다.
“성의 건축이 시작되었으며, 대국의 기틀은 잡혀가고 있다. 영토를 확보하고 백성을 받아들이기 위해선, 주변의 괴물들을 토벌하는 것이 우선되어야 할 것이다. 따라서 괴물의 토벌을 시작한다.
주첨기의 목소리가 모두의 패기를 끌어올렸다.
괴물들을 토벌한다.
직접 나서고 싶다.
“50명씩 8단으로 나눈다. 오늘은 그 시작으로 서남쪽을 향해 첫 단이 나선다.”
진천과 수라혈마의 지휘아래 8단으로 나눠졌다.
주첨기는 8단으로 나눠진 부하들을 둘러보았다.
정파와 사파.
정반대의 분위기다.
잔잔함과 과격.
백색, 청색과 적색, 흑색.
주첨기는 첫발대로 정파를 선택하였다.
잔잔하게 시작하여 과격하게 끝낸다!
“장소백은 앞으로 나와라. 너를 제 일단을 단장으로 임명한다. 장소백은 일단을 이끌고 남서쪽의 괴물들을 토벌하라. 그리고.”
무당파 장소백.
앞으로 걸어 나와 무릎을 꿇었다.
전하의 명이 떨어졌다.
“예! 전하”
1단으로 이루어진 무당파와 곤륜파의 그리고 청성파고수들이 우렁처게 외쳤다.
한 손은 피고 한 손은 주먹을 쥔다.
그리고 강하게 포권하였다. 주첨기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들은 다시 한 번 고개를 숙인 후 뒤로 천천히 걸어갔다.
휙.
입구를 돌았다.
주첨기와 어느 정도 거리가 멀어졌다.
슈슈슉.
바람을 가르는 소리.
모두의 발이 지상을 스치듯 날았다.
비밀통로 입구 앞에 하크가 서 있었다. 하크의 앞으로 수십 개의 그림자가 스쳐 지나갔다. 하크는 멍하니 서 있을 수밖에 없었다. 무당파 장소백이 일단을 이끌고 성 밖으로 나왔다.
성의 외곽부터 개조가 시작되고 있었다.
작은 난쟁이들.
이세계에선 드워프라 불리는 이종족들이 보였다.
각자 연장을 들고 맡은바 최선을 다하고 있다.
너무나 익숙한 손놀림이다.
그들의 손을 거칠 때마다 벽에서 빛이 나는 것만 같다. 하나둘 외곽에서 성의 윤곽이 드러나고 있었다. 전체적인 외곽의 형태를 잡은 후, 내부로 작업이 들어갈 모양이다.
특이한 건 모두 과다할 정도로 집중하고 있다는 것이다.
눈에서 살기 비스므레한 기운들이 뻗친다.
그리고 연장을 휘두를 때.
그들의 입에서 ‘키키키…….’하고 괴기한 웃음소리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레드 드래곤 아르카콘트의 모든 흔적을 없앤다!
드워프들은 흥분 비슷한 눈을 하고 있다.
괴상한 웃음소리……
고수들이 이를 스쳐 가며 한 번씩 입꼬리를 올렸다.
그런데 그보다 더한 소리가 들려 왔다.
“무슨 소리지?”
장소백이 말했다.
괴상한 울음소리와 병장기들이 부딪치는 소리.
가까운 곳에서 뿌연 먼지가 일어나고 있다.
안 봐도 척이다.
전쟁이다.
“괴물들이 또 한바탕 벌이는 것 같은데?”
화산파 매화일검이 말하였다.
그는 중원에서 호탕하기로 소문난 자다. 살짝 머금어진 미소 속에 대장부의 기세가 엿보였다.
“조금 빨리 가는 게 어떻겠나. 장소백”
“그러지.”
장소백이 경공의 속도를 끌어올렸다. 뿌연 먼지가 이는 중심지에 도착하였다. 혼잡한 소리와 함께 사방으로 녹색의 체액이 튀기고 있었다.
“엄청나군…….”
모두 언덕에서서 밑을 내려다보았다.
엄청난 소리만큼이나 밑은 아수라장이었다.
“저것들이 오크라는 괴물들이었나?”
돼지머리의 괴물.
전하에게 듣기론 저 괴물들의 이름은 ‘오크’였다.
“맞네. 그리고 저것들은…… 오우거라 던가?”
녹색의 피부에 커다란 몸집을 가진 흉학한 괴물.
오크와 오우거는 대 전쟁중에 있었다.
수천마리가 한 대 어우러져, 각기 병장기를 휘두르고 있었다. 상대적으로 오크의 수가 50배 이상 많았다. 오크들의 수만 어림잡아도 천 마리가 넘는다.
오우거 한 마리는 오크들을 상대하고 있었다.
“우리가 안 나서도 되겠어.”
청성파 쾌룡지검이 중얼거렸다.
가만히 기다리고만 있어도 서로 공멸하리라.
그의 말대로다.
오우거들이 클럽을 휘둘렀다. 오크들이 여러 마리가 한 번에 튕겨 나갔다.
하지만 오크들은 악착같았다.
동족이 튕겨 나가면 더욱 분개한 동작으로 달려들었다.
인해전술!
오크들의 공격에 오우거들이 하나둘 무너지고 있었다.
그러나 그 속도가 더뎠다.
“사형. 이러다 해가 저물겠어요.”
무당파 태극소검이 질렸다는 표정을 지었다.
“사제의 말이 맞아.”
장소백이 결단을 내렸다.
“기다리고만 있을 수 없습니다. 괴물들의 토벌을 시작합니다!”
검을 빼 들었다.
와!
고수들은 함성소리를 터트렸다.
각자의 병기를 움켜잡았다.
“갑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