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mortal martial artist RAW novel - Chapter 15
제7화 철갑거인 데이모스
사막으로 치자면 그는 천 일 동안 비가 한 번도 내리지 않은 곳이다. 황량해질 대로 황량해진 땅의 얼굴을 하고 있었다.
피폐했다.
그리고 패배감과 절망감에 휩싸여 있었다. 그 속에 느껴지는 독기는 미친 자의 그것이었다.
“으아악!”
머리를 무자비하게 헝클어트렸다.
그를 바라보는 가족들은 몸을 벌벌 떨었다.
대국의 영웅, 부인의 남편, 아이들의 아버지는 미쳐서 돌아왔다.
“모두 비켜!”
“아,아버지.”
다자란 아들이 막아도 소용없었다.
그에겐 남은 건 독기 뿐이다.
사자왕 하이드 백작.
그가 아들의 팔을 뿌리치며 문밖으로 나왔다. 아들도, 부인도 포기하였다. 그 뒷모습을 바라볼 뿐이었다. 하이드 백작의 모습이 보였다. 저택의 가신들은 바로 허리를 숙였다.
하지만 하이드 백작은 본 채 만 채 그 옆을 스쳐 지나갔다.
“도,도련님.”
그의 아들을 도움 청하는 눈빛으로 바라보았다.
백작가의 아들 프레스.
고개를 설레설레 저었다.
이미 하이드 백작은 저만치 멀어져 있었다.
행인들을 생각 하지 않는 무참한 발걸음.
성큼성큼 걸어가는 그에게 여러 사람들이 부딪쳤다.
그때마다 악. 하는 소리와 함께 튕겨 나갔다.
그 누구도 이 사람이 하이드 백작이란걸 알아채는 사람이 없다.
그만큼.
하이드 백작은 알아보지 못할 정도로 겉모습이 변해 있었다. 흡사 방금 탈옥한 살인마 같다.
그나마 가슴에 박힌 백작가의 문장.
그것이 수도의 지하 감옥으로 끌려가지 않게 하고 있었다.
한참을 걸었다.
성의 외곽에 있는 하얀색의 건물.
로스엔 대국의 기관으로 알려진곳이나, 아무도 그 용도를 아는 바가 없는 곳이다.
결국 이곳에 오고야 말았다.
챙! 파이크가 교차하였다.
하이드 백작의 앞을 막았다.
파이크를 날렵하게 다루는 솜씨는 일반 병사의 것이 아니었다.
최소 소드 익스퍼드 중급에 해당하는 기사다.
병사로 위장하고 있을 뿐?
역시 이곳이군.
‘그것’을 연구 중인……
하이드 백작이 은글슬쩍 입꼬리를 올렸다.
“비켜라. 죽이고 싶지 않으니까.”
음침한 목소리에는 힘이 담겨 있었다.
이자가 하는 말은 진실이다.
그만한 힘을 가지고 있다.
기사 둘은 금방 눈치챘다.
“비킬 생각이 없는 모양이군.”
하이드 백작은 조금도 기다릴 생각이 없었다.
쉬익.
놀라운 속도로 발검하였다.
순간 번쩍였다.
눈앞의 파이크가 두 조각 나는 것은 물론 그 뒤의 굳게 닫힌 철장벽까지 산산조각 났다. 폭발음이 쾅 하고 고막을 울렸다. 그것이 끝이 아니다.
두 번 번쩍인 검.
투툭.
어깨쭉지부터 완전히 잘려진 팔 두개가 바닥으로 떨어졌다. 두 기사가 어깨를 부여잡았다.
“끄악.”
아무리 강한 정신력을 가진 기사라 하더라도.
신체의 일부분이 절단된 상황에선 비명을 참을 수 없다.
“그것이 나를 기다린다…….”
두 기사의 목까지 베어버릴 참이다.
하이드 백작이 검을 치켜들었다.
그때였다.
눈앞에서 화염이 터져 올랐다.
전신이 휩싸일 정도로 강렬하다.
하이드 백작이 신속하게 뒤로 몸을 날렸다.
소드 마스터. 사자왕.
이 위명들은 단순히 생긴 것이 아니었다.
“멈춰라!”
목소리부터 들렸다.
팟!
하얀로브를 입은 중년인의 몸이 순간 사라졌다. 근접한 공간으로 모습을 드러내며 스펠을 중얼거렸다.
여기가 어디라고?
이곳의 정체를 알고도 정문에서 소란을 피울 정도면……
미쳐도 단단히 미친 자다.
중년인.
마법사 그레이는 스펠을 마치며 시동어를 외치려 하였다.
“네놈 죽을줄 알아라!”
사자왕 하이드 백작이 도약하였다.
앗!
그레이가 스펠을 급히 거둬들였다.
저 자는? 자신의 눈을 의심하며 크게 외쳤다.
“하이드!”
자신의 이름?
하이드 백작은 허공에서 몸을 빙그르 돌며 착지 하였다.
마법사를 노려봤다.
“그레이?”
기사와 마법사.
어찌보면 친구가 되기 힘든 사이다.
그러나 운명 때문일까?
서로의 관심사와 신분이 달랐음에도 불구하고 왜 그렇게 친하게 지내 왔나 모르겠다.
기사와 마법사지만.
둘도 없는 라이벌이자 친구였다.
그레이는 쓰러진 두 기사에게로 텔레포트 하였다.
힐링을 시전하였다.
두 기사는 두 팔을 잃은 채로 정신을 잃었다.
“이게 도대체 무슨 일이야! 네가 이곳에서 왜?”
그레이는 혼란스러웠다.
절망적인 표정이다.
“그것이 필요해. 너라면 도와줄 수 있겠지?”
“안 돼!”
“내 모습을 봐. 예전의 하이드는 없다…….”
정말이다.
친우 하이드의 모습은 없었다. 친우로써 그레이는 결단이 필요했다.
친우냐. 아니면 임무냐.
“지금까지 네가 쌓아온 명예와 직위를 버리는 거다. 알아?”
“상관없다.”
“어쩌다 그렇게 된 거야!”
그레이는 절망적인 고함을 질렀다.
하이드의 눈을 보았다.
일찍이 소식은 들었다.
친우 하이드가 드래곤의 평원에서 실종 되었다고.
그때까진 별다른 걱정이 없었다.
그런데 그것이 아니었다.
친우는 쌓아올린 모든 것을 버릴 만큼 복수에 미쳐서 돌아오게 된 것이었다.
“정말 그것이 필요한 건가? 하이드! 너는 소드 마스터가 아니냐 말이다!”
“소드 마스터? 웃기는군…….”
“하이드!”
“난 또 소드 마스터가 대단한 건 줄 알았지. 크큭.”
“무슨 소리야?”
횡설수설한 하이드 백작의 말에 그레이는 미칠 지경이었다.
“자그마치 사백 명이나 있어. 아니. 그중 세 명은 소드 마스터의 경지를 훨씬 뛰어넘지.”
도대체 드래곤의 평원에서 무슨 일이 있었던 거야? 이야기나 해 보자……그래 차분하게. 모든 걸 버리지 않고도 해결할 수 있는 방도는 분명히 있을 거란 말야. 하이드…….”
그레이는 고위 마법사 답게 말하였다.
“없다.”
“…….”
“그것이 필요해……강철의 거신! 데이모스가…….”
크윽.
그레이는 침통하게 머리를 감쌌다.
머리가 부셔질 듯 지끈 거렸다.
손으로 이마를 눌러 보아도 아픔이 가시지 않는다.
아프다.
그레이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결국 친우 하이드가 ‘데이모스’란 이름을 꺼내버리고야 말았다.
“우선 이곳부터 처리 하지…….”
그레이는 주위를 둘러보았다.
의슥한 곳이었으며, 철저히 비밀에 붙여진 기관이라 인적이 드믄 곳이었다.
아무도 본 사람이 없다.
자신이 집으로 돌아가는 길이었기에망정이지.
잘못 했으면 하이드가 걷잡을 수 없을 만큼 난리를 피웠을 것이다.
그레이가 중얼거렸다.
정신을 잃은 두 기사의 몸을 푸른색의 마나가 감싸돌았다.
그리고 천천히 사라졌다.
“다른 말은 다 필요 없다. 친우로써 부탁 아니 무릎이라도 꿇겠다.”
하이드 백작이 싸늘하게 말했다.
“데이모스는 어떻게 알았어?”
“나는 백작이다. 또한 대국의 영웅이다.”
“좋아…… 잘 생각해 보자. 그렇게나 갈구해야 한단 말인가?”
“그래. 키키키…….”
그레이는 섬뜩하였다.
친우 하이드의 입가에 미친 미소가 걸린 것이다.
“나야말로 부탁하지. 하이드. 데이모스는 포기해라.”
“안 돼. 날 막지마라. 널 죽이기 싫다. 그레이.”
하이드가 그레이의 옆을 스치고 지나갔다.
“기다려!”
차가운 눈빛.
하이드는 그레이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좋아. 하이드 넌 내게 엄청난 빛을 지는 거다.”
그레이는 주위를 둘러보며 하이드를 구석으로 이끌었다.
어물쩡하게 이곳에 서 있다간 기관 안의 병사들에게 발각될 수도 있었다.
건물의 으슥한 벽에 등을 지고 섰다.
“데이모스에 대해 뭘 알고 있지?”
“드래곤의 마력으로 움직이는 강철의 거신이라는 것뿐. 그러나 나는 그것이 필요해.”
“아무것도 모르는군. 기사는 드래곤의 마력을 통솔할 수 없다. 아무리 소드 마스터라 할지라도.”
“그래서?”
“드래곤의 마력을 통솔하고, 데이모스와 기사의 매개체가 될 고위 마법사가 필요하지. 그것뿐만이 아니다. 기사는 데이모스의 육체적인 힘을 조종 하지만 마법사는 정신적인 힘을 조종 한다.”
“한마디로 너 또한 필요하다는 거군. 그레이.”
하이드는 단번에 알아들었다.
복수를 할 수 있다는 미소가 피어 올랐다.
소드 마스터인 자신과 고위 마법사인 그레이.
둘이 탄 데이모스는 악마의 화신이다.
“날 도와줄 거지?”
“그래…….”
그레이가 침통하게 대답하였다.
단한번이다.
친구를 위해서 모든 것을 버리는 일은……
한번으로 족하다.
“하지만. 데이모스는 자국에 단 두 대 뿐이야. 우리가 한대를 탈취한다면 자국의 국력은 커다란 피해를 입는 것이지. 자국에 막대한 피해를 끼쳐도 되는가? 하이드…… 백작.”
백작이라는 말을 강조하였다.
대국에서 내려준 백작이란 작위!
그에 따른 책임도 필요하지 않은가?
이런 뜻이었다.
그러나 하이드 백작은 클클 거렸다.
당연하다는 듯한 얼굴을 지었다.
자신이 망가졌는데 자국이 무슨 상관인가!
“또 한 가지 알아둘게 있다. 데이모스에 대한 연구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불완전 하다는 거지. 언제 어떻게 될지 몰라. 기체도 그렇고 너와 나도 마찬가지다.”
“데이모스의 위력은?”
하이드가 동문서답으로 물었다.
“상관없다는 얼굴이군. 위력? 상상을 초월하다는 것뿐. 위력은 아직 모른다.”
자세히는 알 수 없다.
“됐어. 크크.”
“그래. 어차피 시험 가동을 해봤어야 했는데…… 이상스럽게 시작하게 되는군. 화신의 제물이 될 자들은 누구지?”
“날 이렇게 만든 놈들…… 전부!”
주먹을 움켜쥐었다.
부들부들 떨리는 주먹 사이로 피가 뚝뚝 떨어졌다.
어찌나 강하게 움켜쥐었던지.
손톱이 손바닥을 파고들어 피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뚝. 뚝.
새빨간 피는 매우 뜨거웠다.
에드먼 제국.
커다란 나라임에도 불구하고 모든 권력은 황제에게 집중 되어 있었다. 혹자들은 에드먼 제국의 황제 에드먼 14세를 ‘신의 권력에 도달한 자’라고도 칭하였다.
정권, 병력, 경제, 내정
강력한 법과 군부에 의한 통치는 왕이 모든 것을 한 손아귀에 쥘수 있게끔 하는 수단이었다.
완벽한 피라미드 구조다.
상위층은 하층의 인간들에게 명령을 하고, 하층의 인간들은 절대 복종 한다.
그 어떠한 명령이라 할지라도……
그렇지 않으면 황제 에드먼 14세의 지엄한 벌이 떨어지게 되리라.
채찍이 떨어졌다.
아악.
어린 남자아이가 비명을 지르며 쓰러졌다. 아이는 노예였다.
몇 일 간 할당된 분량을 채우지 못했다.
결국 감시관은 채찍을 들었다.
“밥은 그냥 주는 줄 알아?”
감시관의 채찍은 사정이 없었다. 모두들 남자아이를 동정하는 눈빛으로 바라봤다. 그것뿐이다.
나설 수가 없다. 자신들도 같은 노예의 신분이기 때문이다.
“제발 때……때리지,마세요.”
“이놈이 말대꾸를!”
감시관이 채찍을 치켜 들었다.
어린 노예는 눈을 질끈 감았다.
그때였다.
“아얏!”
짧은 외침이 울렸다.
어린 노예의 것이 아니었다. 감시관은 빨갛게 달아오른 볼을 연신 비볐다.
감히 어떤 놈이!
감시관이 눈에 불을 키며 주위를 둘러보았다.
돌에 맞은 것도 아니었고, 누가 와서 때린 것도 아니었다.
그럼 뭘까?
황당함에 채찍을 더욱 강하게 움켜 잡았다.
짝!
감시관의 고개가 훽 돌아갔다.
“어떤 놈!”
짝! 짝! 짝!
연달아 따귀 맞는 소리가 울리더니 얼굴이 빨갛게 달아올랐다.
매우 쓰라리고 아프다.
손에 들고 있던 채찍을 떨어트렸다. 아픔에 눈이 가늘게 떠졌다. 그 좁은 시야속에서 뭔가가 어스름 보였다.
화난 식물?
꼭 파르프의 뿌리 같이 생긴 것이 자신을 보며 화가 난 표정을 짓고 있었다.
표정을 가진 식물도 있었던가.
아!
만드라고라?
하지만 만드라고라는 악마 같은 형상을 띄고 있다는데……
“설령!”
남자의 목소리가 들렸다.
휙. 뭔가가 눈앞을 스쳐 지나갔다.
젊지만 웅장한 목소리!
정신이 번뜩 들었다.
자신도 모르게 몸서리 처졌다.
감시관은 고개를 들었다.
자신을 향해 걸어오고 있는 한 사내가 보였다. 그는 매우 젊었다. 준수한 얼굴만 빼면 평범하였다. 그러나 왠지 모르게 눈을 마주칠 수 없었다. 걸어오는 평범한 사내의 모습에서, 사나운 맹수의 뭔가를 볼 수 있었다.
주첨기는 인상을 찌푸리고 있었다.
노예?
중원에서도 암암리에 노예란 것이 거래되고 있었다.
하지만 말만 들었을 뿐 본적이 없었다.
노예란 것이 이렇게 참담한 것이었다니……
아직 채 자라지도 않은 어린 소년 소녀들에게 무자비한 채찍질을 가한다니. 절로 인상이 구겨졌다.
저건 사람을 대하는 게 아니다.
가축을 대하는 것과 같다.
“당……당신은 뭐야?”
감시관이 말을 더듬었다.
“일어나라.”
주첨기는 어린 노예에게 말하였다.
어린 노예는 어리둥절한 표정이었다.
“스스로의 힘으로 일어나”
자신은 수많은 암습 속에서 자라왔다. 그래서 스스로를 지켜내고자 결단을 내렸고, 지금의 자신이 바로 그 결과다. 황자의 몸으로써 무공을 익힌다는 생각은 위험한 발상이기도 했지만, 이를 꿋꿋이 지켜냈다. 그리고 살아남았다.
어린 노예의 입장과 자신의 입장과는 분명히 다르다.
하지만!
누군가 일으켜 주길 바라서는 안 된다.
“어서.”
주첨기가 나지막하게 말하였다.
어린 노예가 손으로 땅을 짚었다.
몸을 반쯤 일으켰다.
“이놈이!”
감시관은 차마 주첨기에게 채찍을 날리지 못했다.
애꿎은 어린 노예의 머리 위로 채찍이 떨어졌다.
쉬익. 악!
어린 노예대신 감시관이 비명을 질렀다. 채찍은 이미 저만치 튕겨 날아가고 있었다.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도 모르게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었다. 감시관이 자신의 손목을 잡으며 울부짖었다.
[우낏.]설령이 통쾌하다는 듯이 씨익 웃었다.
“일어나. 어서”
“예!”
어린 노예는 얼떨결에 대답하였다.
급히 일어났다.
주위에 어린 노예의 또래로 보이는 많은 소년 소녀들이 몰려왔다. 그 수가 백 명이 넘었다. 모두 피골이 상접한 모습으로 거지 중에 상거지도 이렇지는 않으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주첨기는 모두를 둘러보았다.
아이들……
“넌……누구냐!”
“질문은 허용하지 않겠다. 묻는 말에 대답만 하여라. 이 아이들은 모두 노예인가?”
“으…… 그래! 모두 노예다. 당신 이러고도 무사할 줄 알아? 조금 있으면 제국병들이 올꺼다. 그때 바짓가랑이 붙잡고 울고불고 해도 소용없어.”
감시관은 이를 갈았다.
“기대 되는군. 이 아이들의 주인은 누구지?”
“알아서 뭐하려고!”
감시관이 고함을 질렀다.
어린 노예들은 감시관이 주먹을 쓰지 않는 것이 이해가 되지 않았다. 평소 감시관의 행동을 봤을 때, 저분에게 이미 주먹을 쓰고도 남았을 텐데……
근방에 포악하기로 소문난 감시관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왠지 주눅 든 듯한 모습이었다.
“우선 이 아이들을 모두 사지. 제국의 다른 노예들에 대해선 추후 다시 생각 하겠다.”
주첨기가 말했다.
제국의 다른 노예들?
감시관이 삐쭉 거렸다.
“이 아이들의 주인에게 안내해라.”
“그……그러…….”
“이 후로 하대에 대해선 용서치 않겠다.”
주첨기의 눈에서 순간 뻘건 빛이 요동 쳤다.
감히 범접할 수 없는 기운에 감시관의 몸이 은연히 떨렸다.
강한 자의 눈. 당당한 행동. 오만해 보이는 어투.
이자는 타국의 귀족일 것이다. 남작 정도의 하층 귀족이 아닌 그 이상의 고위 귀족!
분명하다.
여러 귀족들을 보아온 자신의 눈을 의심할 여지가 없었다.
“알……겠습니다.”
감시관이 대답한지 얼마 되지 않아 제국 병사 들이 몰려왔다. 일반 변두리 영토 임에도 불구하고, 병사들의 무장은 수준급에 달해 있었다. 중무장한 병사들은 하나같이 날카로운 눈빛으로 주첨기를 훑어보았다.
일전에 보았던 로스엔 국의 병사들과는 그 차원이 달랐다. 금방이라도 전장에 투입시켜도 손색이 없을 정도로 눈빛과 행동이 남달랐다.
“모두 기다려라.”
주첨기는 어린 노예들에게 말하였다.
어린 노예들의 눈망울이 빛났다.
이분은……
자신들을 구원해 주시기 위해 달려온 전설의 기사 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기를 간절히 기도하였다.
주첨기는 한 저택에 도착 하였다.
노예들의 피와 땀으로 이루어진 저택은 성이라고 부를 수 있을정도로 거대하고 화려했다.
영주 가말 남작.
그의 저택이었다.
에드먼 제국의 모든 귀족들이 그렇듯, 가말 남작도 전형적인 무인이었다. 그의 저택에 들어서면서부터 ‘말을 타고 진격하는 기사’의 거대한 석상이 보였다.
붉은 양단이 깔린 복도의 양 옆쪽으로 전시용 병장기들이 수없이 걸려 있었다.
그리고 교차된 검의 문장이 크게 박힌 문이 열렸다.
주첨기와 가말 남작이 만났다.
“가말 남작이다.”
둘은 서로의 눈부터 보았다.
가말 남작은 고개를 갸웃 거려다.
자신을 찾아온 손님은 눈이든 몸이든, 어느 곳에서도 기사의 냄새가 나지 않았다. 검이라곤 잡아 본적이 없는 사람 같았다. 그저 검은 머리와 검은 눈동자가 매력적인 미남아. 타국 대귀족의 자제 같아 보이는 인상이 짙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잔뜩 긴장되었다.
처음 겪는 현상이다.
거기에 이상하게 생긴 식물이 어깨에 올라타고 있지 않은가?
가말 남작은 헛기침을 하였다.
“험험. 수하에게 말은 들었다. 내 노예들을 사고 싶다고?”
“그렇다.”
그렇다?
가말 남작의 인상이 구겨졌다.
다짜고짜 하대라니?
그러나 거부감은 들지 않았다.
저 청년에게 하대는 너무나 자연스러워 보였고, 그 하대를 듣는 자신도 별다른 거부감이 들지 않는다.
단지 황당하다고 할까?
“우선 당신이 누구인지 알고 싶은데?”
“곧 알게 될 것이다. 단지 노예를 사러 온 것뿐이니 그것에 대한 흥정을 하고 싶군.”
주첨기가 말하였다.
가말 남작은 귀신에 홀린 듯한 기분이었다.
“그러지. 어린 노예들을 전부 사고 싶다고?”
“어린 노예들의 부모들까지 있다면 전부 사고 싶다.”
“이곳에 있는 어린 노예들은 모두 노예들이 낳은 자식들이니 부모들 또한 존재하지. 자금에 대해선 자신 있나 보군? 족히 수백은 될 만한 노예들을 모두 사겠다니.
“얼마지?”
“급히 노예들을 처분할 생각이 없으니, 합당한 가격을 제시해야 하는 건 당연하지. 일반적인 시세보단 높을 것이다. 이것에 대해선 영주인 나와 직접 흥정을 하는 건 좀 그렇군. 마치 노예 상인이 된 것 같아서.”
가말 남작은 등을 돌렸다.
벽으로 다가갔다.
장식 되어 있는 진검 하나를 움켜 잡았다.
“검은 익혀 보았나?”
검을 맞대면 이자의 출신내력에 대해 어느 정도 알 수 있을 것이다.
비전 검술!
각 가문마다 그 특색이 있다.
물론 학자가문이라면 말이 다르지만.
가말 남작은 왠지 앞의 청년을 시험해 보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나 스스로를 보호할 정도는 읽혔다. 당신의 모든 노예들을 사고 싶다. 우선은…….”
주첨기는 말꼬리를 흐렸다.
“그전에 에드먼 제국의 남작에게 친히 가르침을 받아 보는 게 어떻겠는가?”
가말 남작은 주첨기에게 다가섰다.
노예에 대해선 별 관심이 없다.
시세보다 높은 가격에 팔면 그뿐이다.
노예는 다시 사면 되니까.
그것보다 이자의 내력에 대해서 무척 궁금하였다.
신비한 분위기의 청년.
“가르침?”
주첨기가 무뚝뚝하게 되물었다.
“에드먼 제국의 남작인 나 가말에게 말이다.”
에드먼 제국은 기사들의 나라라고도 일컬어진다.
귀족 모두.
소드 익스퍼트 상급에 해당하는 경지다.
애초에 소드 익스퍼트 상급에 달하지 않고선 귀족조차 될 수 없다. 아무리 대귀족의 자제라고 하더라도, 그만한 경지에 들어야 작위가 세습 된다.
또한 에드먼 제국의 귀족들에겐 타국의 기사들과 다른점이 하나 있다.
귀족이라야 익힐수 있고, 또 익혀야 하는 제국검술!
에드먼 제국의 각 가문비전과 그 맥을 같이 하여, 개인의 검술을 더욱 체계적이고 활용할 수 있게 만들어졌다고 알려진 검술이다.
그만큼 귀족 하나하나가 대단한 실력이라.
다른 약소국의 자제들이 에드먼 제국의 귀족들에게 가르침을 받으러 오는 경우도 많았다.
“거절 하지.”
주첨기는 한마디로 마무리 지었다.
그러나 가말의 생각은 달랐다.
“검을 뽑아라. 몇 번 검을 겨루다 보면 그 생각이 달라질 것이다. 더욱 정진 할 수 있는 좋은 기회라 삼고, 최선을 다하라. 젊은이여. 하하”
가말은 뒤로 몇 발자국 물러나 검세를 취했다.
주첨기는 가만히 서 있을 뿐이다.
“검을 거둬라.”
“뭐?”
한순간 어리둥절하였다.
“나를 공격하는 즉시 너는 죽는다.”
주첨기가 말하였다.
“이런…….”
태어나서 처음으로 듣는 소리였다.
가말 남작은 미친 듯이 웃었다.
통쾌해서?
전혀……
어느 고귀한 가문의 자제인지는 몰라도 세상을 몰라도 너무 모른다.
어처구니가 없어도 이렇게 없을 수가 있던가.
가말 남작이 입꼬리를 올렸다.
몬스터 보다 더욱 몬스터 같은 이들!
사람이라고 말할 자가 감히 있을까?
외모가 흉측하다는 게 아니다.
일검일도. 기형병기가 휘둘러졌다.
사방으로 솟구치는 체액!
끈적한 녹색 체액이 얼굴로 튀기자 괴소를 짓는다. 그것으로 만족되지 않은 듯 이미 죽은 몬스터의 위로 칼질을 해댔다. 퍽퍽 하는 소리와 함께 살점들이 떨어져 나갔다.
몬스터들이라지만……
차마 눈뜨고 볼 수 없을 만큼 잔인하다.
“키키키.”
빠직.
수라혈마가 트롤의 머리를 밟아 부셨다.
괴상한 비명 소리가 짧게 흘러나오다 뚝 끊겼다.
후우.후우.
살육에 취한 사파고수들은 거친 숨을 연신 토했다, 하얀 김이 입에서 길게 뿜어져 나왔다. 거칠게 몸을 다뤄서가 아닌, 극도의 흥분 상태가 숨을 거칠게 만들고 있었다.
구토가 나올 만큼 비릿한 체액냄새.
주인을 찾을 수 없이 분리된 팔과 다리.
그리고 난자된 육체.
수백 몬스터 중 살아남은 자는 아무도 없었다.
“벌써 이 부락도 끝난 거야? 킬킬”
수라혈마가 신경질적으로 말하였다. 그러나 살짝 지어진 눈웃음에서 또 다른 ‘기대’를 볼 수 있었다.
몬스터라 불리는 이 괴물들은 얼마든지 있고말고.
바로 얼마 못가 또 다른 부락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정말 약해 빠졌어. 괴물이면 괴물다워야 하는 거 아니야? 그 뭐냐…… 인면지주란 괴물은 장난 아니라던데?”
고우룡은 아무렇게나 튀긴 체액들을 훔쳐냈다.
“그래도 발악하는 게 귀엽잖아? 크르르, 하고 말이야 하하하!”
천파편살이 말하였다.
동시에 채찍을 휘둘렀다.
아직 그 와중에서도 숨이 붙은 트롤한 마리가 있었다. 천파편살의 채찍은 트롤의 얼굴을 덮쳤다. 놀라운 속도로 10번 이상 트롤의 얼굴을 내리쳤다.
일 획. 이 획. 그리고 십 획.
열 번 그어졌다 하여 십 등분이 아니다. 트롤의 얼굴이 수십 등분으로 갈라졌다. 더러운 고깃덩어리 수십 개로 변해버렸다. 비릿한 냄새가 물씬 풍긴다.
그러나 사파고수들은 뭐가 좋은지 히히 거릴 뿐이었다.
미소에 살짝 드러난 이빨.
섬뜩하다.
“가자! 킬킬…….”
수라혈마는 바로 몸을 날렸다.
반나절동안 이십여 개의 부족을 말살. 대략 이천여마리가 넘는 몬스터들을 베고, 찌르고, 찢고, 가르고, 터트렸다. 그러나 만족되지 않는다.
살육이라면…… 삼일 밤낮을 해도 좋다.
“존명(尊命)!”
사파고수들이 포권하였다.
몬스터 토벌!
이것은 그들에게 더 이상 주군 주첨기의 명령일 뿐만이 아니었다.
물론 명령이다.
세상에서 제일 매력적인 명령이다.
한낮 도기가 예술로써 승화되는 것과는 달리……
몬스터 토벌에 대한 명령은 마약처럼 변질 되었다.
이것 또한 중독이다.
살육에 대한 중독. 어서 죽이자.
이 평원에 있는 모든 괴물들을 전부 말살 시켜 버린다.
“크크크…….”
바람에 실려 가는 듯 내달림이 매우 가볍다.
갑자기…… 번쩍!
사파고수 모두의 눈이 지옥의 야차처럼 변했다.
괴물의 부락.
또 하나 발견되었다. 수라혈마가 부락을 가리켰다.
“우아아악!”
흡사 비명과도 같은 고함소리.
평원이 진동하였다.
사파고수들이 내달렸다.
그들의 몸에서 풍기는 죽음의 냄새가 강하게 휘몰아쳤다.
미노타우르스들은 커다란 배틀 엑스를 움켜쥐었다. 평원에서 오우거 다음으로 강자로써 군림하고 있는 그들이다.
우우,
어처구니가 없다는 듯한 얼굴.
맹한 눈이 사납게 부릅떠졌다.
허나 늦었다.
“이번엔 소머리 괴물이네. 킬킬.”
수라혈마가 중얼거렸다.
내달리는 속도를 늦추지 않았다.
어느새 수라혈마의 몸집보다 두 배 이상 커다란 미노타우르스가 그의 앞에 나타났다.
미노타우르스는 단지 전투 준비 하고 있을 뿐이었다.
수라혈마가 달려오는지도 모르는 채.
수라혈마의 몸놀림은 몬스터의 안력으로 쫓을 수 없다.
“쿠아아악”
수라혈마는 호신강기를 일으키며 그대로 통과하였다.
쿵.
수라혈마가 지나간 자리.
몸이 크게 뚫린 미노타우르스가 쓰러졌다.
그것이 시작이었다.
사파고수들의 병기가 무자비하게 휘둘러졌다. 미노타우르스들은 일체의 반격도 못하였다.
그들의역할? 연무장의 타격대.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다.
전신으로 병기를 받고 쓰러지면 그뿐이다. 순식간에 미노타우르스의 한 부족도 몰살당했다.
사파고수들……
아주 천성적으로 이쪽 방면에 타고난 자들이었다.
크하하하. 히히히. 크크크크.
광기 어린 사파고수들의 괴기한 웃음소리는 그치지 않았다.
수라혈마 이끄는 그들은 몬스터 토벌중이다.
“그래서 에드먼 16세가 황제로 등극하게 된 것입니다.”
기다란 금발의 소년의 음성은 부드러웠다.
드래곤 슬레이어.
드래곤 슬레이어란 치기 어린 꿈은 소년과 무척 어울리지 않았다. 여자 못지 않게 연약해 보이는 소년은 금방이도 쓰러질 듯 보였다.
그는 드래곤 슬레이어가 되겠다며 레드드래곤의 레어로 침입한 세 명의 사춘기 소년 소녀중.
한 명 제이너스였다.
“허허허. 그렇군. 이곳도 중원과 다를 바가 없군. 혈육을 살해하고 황제의 자리에 오르는 것은 비일비재한 일이다.”
검황 진천이 허연 수염을 쓰다듬었다.
중원?
그런 나라도 있었던가.
“그렇습니다. 비극은 언제나 되풀이 되는 법입니다. 혈육의 피로 일어선 에드먼 16세는 필히 혈육의 피로 망하게 될 것입니다.”
음성은 공손하였다.
순간적으로 제이너스의 눈에서 빛을 발하였다.
“그렇게 되지. 그래서 모든 일엔 정도(正道)란 것이 중요한 법이네.”
진천은 제이너스를 좋게 보고 있었다.
이계의 책들을 보기 위해선 도움을 한 이계인이 필요하였다.
생소한 단어.
중원인의 상식으로 이해할 수 없는 가치관들.
이 것들을 보충하기 위해 제이너스를 찾았고, 제이너스는 기다렸다는 듯이 검황을 진심으로 도왔다.
제이너스는 자처해서 검황의 수발까지 거들었다.
검황 진천을 극진히 대하는 마음가짐이 직접 눈에 보일 정도였다.
진천은 에드먼 황가에 대해 다룬 책 ‘에드먼’을 닫았다. 곰팡이 냄새가 물씬 풍기는 책들의 무리 속에 끼어 넣었다.
“정적이라. 오래간만이군.”
다른 책을 뽑는 대신 잠시 눈을 감았다.
오랜만에 조용함을 느꼈다.
이계에 떨어진 이후로 정신없는 하루하루를 보냈다. 꼭 몸이 바쁘다기보단 마음이 혼란 상태였다.
시간이 지나면서 마음은 수습되었다.
그렇지만 사파고수들이 언제나 시끄럽게 굴었다.
성안이든. 성 밖이든.
조용할 때가 없었다.
그러나 오늘은 달랐다.
수라혈마가 사파고수 이백 명을 모두 이끌고 나갔다.
성 주위의 괴물 토벌!
퇴기평온당이라 하여 전하께선 그들에게 괴물 토벌을 명하였다.
잔뜩 신이 난 채 나간 사파고수들의 모습이 떠올랐다.
각 나라를 관찰하기 위해 세워진 천지시당!
천지시당에 속하는 개방고수들 또한 전하의 명을 받들어 세상으로 나갔다.
만민당 역시 마찬가지였다.
백성들을 모집하고 이들을 관리하기 위해 만들어진 만민당.
이에 소속된 방각대사와 은소소가 각각 소림과 아미의 고수들을 이끌고 주위 나라를 탐색할 수 있도록 청하였다.
백성들의 삶을 보아야 한다.
그래야 체계적인 계획을 세울 수 있다.
진천은 기꺼이 허락했다.
섬세하고 자비로운 소림과 아미의 고수들이라면 타국의 탐색 중에 위험한 일을 벌이지 않을게다.
재정 관리를 위해 세워진 만보당!
남궁혁과 종남고수들은 지하 삼층으로 들어가 버렸다.
그들의 목적은 지하 삼층에 쌓여 있는 보물들을 조사, 관리 하기 위해서다. 이계의 물질 가치에 대해선 책들로 인해 어느 정도 익힌 뒤였다.
그리고 치안을 위해 세워진 치세당!
무당, 곤륜, 화산, 공동, 점창.
중원에서 내국호위장군들과 같은 역할을 담당하게 된 이들.
본국의 호위를 위해서 움직여야 하는데 이번엔 달랐다.
다섯 문파.
백여 명의 고수들은 사파고수들의 뒤처리를 위해 움직이게 되었다.
사파고수들이 지나간 자리엔 이계의 괴물들이 시체로 산을 이루고 있었다.
더러운 피는 강이 되어 흘렀다.
이를 가만히 방치해 두면 안 된다.
비옥한 토지를 역병과 악취의 토지로 내버려 둘 수는 없다.
이렇게 사파고수들과 정파고수들이 성 밖으로 나가게 된 것이다.
성의 일층에 남아 있는 고수들은 청성고수 이십 명뿐이었다. 이들 모두 법제당의 일원으로, 법의 제정을 위해 정신이 없다.
성은 조용할 수밖에 없었다.
진천. 청성고수 이십. 혜공. 만소자.
실리아. 파일로. 제이너스.
이 들 26명만 남아 있다.
“오늘 따라 매우 조용합니다. 모두들 어디들 가신 것입니까?”
“저마다 전하께서 내리신 명을 수행중이지. 그런데 노부는 이렇게 한가히 책을 읽고 있으니…… 허허허.”
진천이 미소 지었다.
“노부 역시 가만히 앉아 있을 순 없네. 아무래도 괴물들의 시체 치우는 것을 도와야겠군.”
자리에서 일어났다.
“저도 돕겠습니다.”
제이너스가 두 팔을 걷었다.
그때였다.
다다다닥.
누군가 급히 뛰어왔다.
청성의 도복을 입은 중년인! 청성고수다.
“무슨 일인가!”
진천이 놀라서 물었다.
쿨럭. 청성고수는 대답대신 한 웅큼의 피를 토해냈다.
끊어지려는 정신을 붙잡았다. 간신히 입을 열수가 있었다.
“침……침입니다.”
청성고수는 그대로 정신을 잃었다.
진천은 바로 청성고수의 맥을 짚었다. 아주 약하지만 다행히 맥은 뛰고 있었다.
직접 도움을 청하고 쓰러질 정도라면……
시간이 없다!
“이 자를 부탁하네.”
진천은 최대히 빠른 속도로 달려갔다. 밖으로 빠져나가는 계단을 눈 깜짝할 사이에 올랐다. 하크가 바로 문을 열었다. 문이 열리자 피 냄새부터 물씬 풍겼다.
그리고 뒤따르는 것은.
“으악!”
고수들의 비명 소리였다.
“저……저것은.”
진천의 눈동자에 한 물체가 들어왔다.
거대한 철갑(鐵甲)!
사대천왕 중 지국천왕을 연상케 하는 거대한 철갑!
철갑의 거인이라니……
진천은 믿기지 않는 듯 고개를 저었다.
“모두 노부 쪽으로 피하라!”
진천은 청성고수들에게 외치며 검을 빼 들었다.
“다 죽여주마!”
지면을 울리고 하늘을 가르며 바다를 엎을 만한 굉장한 소리!
철갑거인에서 나는 소리였다.
철갑거인은 검을 들고 있었다.
하늘을 깨트릴수 있는 지국천왕의 검만큼이 크다.
저 거대한 것으로 내리치면 부셔질 것이 없을 것이다.
그런데 푸른색의 검기까지 둘러져 있다.
저 검에 맞으면 몸에 베이는 것이 아니라 짓이겨진다!
철갑거인이 검을 휘둘렀다.
쑤웅!
거대한 검.
인간이 쓰는 검 마냥 빠르게 움직였다.
진천은 경악 하였다. 전력을 끌어 몸을 튕겼다. 청성고수 다섯 명의 위로 검이 떨어졌다. 청성고수들은 제각기 검기를 일으켰다.
청성고수 다섯 개의 검이 한곳으로 모아졌다.
철갑거인의 검과 청성고수 다섯 명의 검이 맞부딪쳤다.
커헉.
청성고수들은 신음을 흘렸다. 강맹한 힘이 그들을 짓눌렀다.
철갑거인과 다섯 청성고수는 힘대결에 돌입하였다.
고수들의 온몸이 부들부들 떨렸다.
버틸 수 없다!
서로의 눈빛을 교환 하였다.
지금이닷.
빠르게 뒤로 빠졌다. 청성고수 다섯은 내상을 감수 하였다.
쿨럭!
한 웅큼의 피가 터졌다. 그뿐이랴.
애지중지 하던 검에 금이 가기 시작하더니 이윽고 깨져버렸다.
“이 요물(妖物)!”
또 다른 청성 고수들이 철갑거인의 등 뒤로 달려들었다.
이미 부상을 입고 있었으나 전력을 다한 그들의 몸놀림은 전혀 손색이 없었다.
청성 고수들!
몸은 다르지만 마음은 같다.
그들의 검은 통일되었다.
청성파를 구대문파의 지위로 올려놓은 검법.
벽사검법 중 이초식 [창사파]가 시전 되었다.
“너희들의 주인을 데리고 와!”
철갑거인의 오른손에 불이 꿈틀 거렸다.
눈 깜짝할 사이 화살처럼 형상이 완성되었다. 여러 개의 불화살들이 튕겨 나갔다.
매번 이렇다. 접근해서 공격하려 하면 요사스러운 사술이 튀어나왔다. 이번에도 예외는 아니었다. 불화살은 날아오는 청성고수들에게 날아갔다.
“크윽.”
청성고수들은 신음을 흘렸다.
그대로 베어버린다!
청성고수들의 검이 불화살을 갈랐다.
막 흝어지는 불을 뚫고 나왔다.
그때 철갑거인의 주먹이 코앞에 당도해 있었다.
빠른 주먹은 순식간에 청성고수들을 강타하였다.
주먹은 성인의 키만큼 컸다.
전신에 주먹이 적중 당했다.
퍽!
주먹을 맞은 청성고수들은 수백 장 뒤로 튕겨 날아갔다.
휘리릭.
진천이 허공으로 뛰었다. 낙하하는 고수들을 받았다. 외상이 대단하다.
진천은 눈살을 찌푸리며 고수들을 땅에 내려놓았다.
진천이 보기에도 청성고수 이십은 철갑거인의 상대가 되지 않는다.
도대체 저 요물은 무엇이란 말인가!
“어서 노부 쪽으로 피하라!”
진천의 내력이 요동쳤다.
청성고수들은 그제야 진천의 존재를 눈치챘다.
“맹주님!”
청성고수들이 철갑거인을 피하며 몸을 날렸다.
철갑 거인도 뛰었다. 거대한 몸에 어울리지 않는 빠른 속도다.
철갑거인의 왼손이 움직였다. 도망치는 한 고수의 위를 덮쳤다. 고수는 미처 피하지 못했다.
철갑거인은 청성고수를 쥐었다.
청성고수의 하반신이 주먹에 가득 찼다.
드드득.
뼈가 바스러지는 소리부터 울렸다.
“크아아악”
청성고수는 극심한 고통에 허리를 비틀었다.
완전히 잡힌 하반부는 빠지지 않는다.
“와하하하핫!”
철갑거인이 웃음을 터트렸다.
들고 있던 청성고수를 회전력까지 더해 아무렇게나 던졌다. 우연하게도 진천 쪽으로 날아왔다. 무리하게 받으면 고수는 큰 부상을 입는다. 진천은 날아온 고수를 급하게 겨드랑이에 꼈다.
그리고 앞으로 달렸다. 속도를 천천히 낮췄다.
“괜찮은가?”
“,다……다리가.”
타탁.
진천이 응급처방으로 청성고수의 혈도를 눌렀다.
“부탁하네.”
미리 피신한 청성고수들에게 뒤를 맡겼다.
“요물(妖物)!”
청성고수 반절 이상이 철갑거인에게 부상을 입었다.
진천이 부르짖었다.
“기다리고 있었다! 아쉬운 대로 우선 네놈부터 죽여주마!”
진천보다 열배 큰 철갑거인이 말하였다.
청성고수 반절 이상이 철갑거인에게 부상을 입었다.
낯익은 목소리다. 이제야 기억났다.
주군을 죽이려 했던 죄인이자 검기를 쓸 수 있는 자.
그런데 어째서 그자의 목소리가 철갑거인에게서 난단 말인가!
철갑거인의 눈이 묘하게 번질거렸다.
이윽고 뻘겋게 번쩍였다.
화락 타오르는 불 같다.
뭔가 이상하다고 생각 될 때였다.
“지진!”
땅이 갈라지고 흔들렸다.
하지만 지진과는 차이가 있었다.
마나의 기운이 땅을 흔든다.
대단위 마법! 얼스퀘이크(Earthquake)!
“어서 모두 성으로 피하라. 저 요물은 노부가 처리 하겠다!”
진천은 검부터 휘둘렀다.
충만한 내력이 담긴 검은 반월 같은 검기를 토했다.
동시에 진천은 철갑거인을 향해 뛰었다.
쾅!
눈앞에서 검기대 검기가 맞부딛쳤다.
큰 폭발이 허공에서 터졌다.
진천이 검을 휘두르고 철갑거인도 검을 휘둘렀다.
진천의 초식은 허초였다.
위로 살짝 뛰었다.
휘둘러진 철갑거인의 검을 밟아 몸을 튕겼다.
“흐아아압“
진천의 노한 수염이 부르르 떨렸다.
뒤로 몸을 날려 거리를 확보하였다.
분노한 검황 진천.
절정에 이른 고수답게 상황부터 판단했다.
철갑거인은 청성의 일류고수 20명을 간단하게 제압한다. 청성고수들 대부분이 부상을 입었다. 철갑거인은 매우 강하다. 철갑거인에게서 느껴지는 기운은 절대 자신보다 뒤지지 않았다.
요물 중에 요물!
한순간 진천의 검기가 두 배 이상 커졌다.
뿌옇게 반투명이던 상태의 검기는 진한 푸른색으로 변했다.
검기가 유형화된 검막의 경지.
진천은 지면을 박찼다.
청령진기를 끌어올렸다. 구천신검 제 4초식 천검천파가 진천의 검에서 시전 되었다. 하늘을 깨트릴 위력을 가진 검이 철갑거인을 향해 돌진 하였다.
진천은 검이 되었고, 검은 진천이 되었다.
신검합일!
“흡!”
철갑거인도 예사롭지 않은 기운을 터트렸다.
철갑거인의 검과 진천의 검이 맞부딪쳤다.
강렬한 검풍이 주위로 몰아쳤다. 지천의 백발이 검풍에 나부꼈다.
“죽어랏!”
철갑거인이 힘으로 진천을 밀었다.
진천이 몸을 비틀며 검을 비껴냈다.
이어진 진천의 공격.
철갑거인의 안쪽으로 파고든 검이 오묘하게 움직였다.
철갑거인이 서둘러 검을 휘둘렀다. 오묘한 검은 예측하기 힘들었다.
막 철갑거인의 어깨 쪽에 진천의 검이 닿으려는 순간이었다.
인시너레이트(incinerate)!
진천의 전신으로 열화가 뻗쳤다.
진천은 호신강기를 일으켰다.
열화의 강렬한 열기는 호신강기를 깨트릴 것만 같았다.
진천은 살짝 신음을 흘리며 검을 거뒀다. 바닥에 착지 하였다. 그 위로 철갑거인의 거대한 발이 떨어지고 있었다. 진천이 아슬하게 피하였다.
지면 깊숙이 철갑거인의 발이 박혔다.
이때다!
검이 진천의 손에서 떠났다.
검막을 두른 검은 빠른 속도로 비행하였다.
단번에 끝을 낸다.
철갑거인의 목을 노린 검은 엄청난 속도였다.
철갑거인이 고개를 숙였다. 덩치에 맞지 않은 민첩한 행동이었다.
검은 허공을 가르고 지나갔다.
진천이 놀라며 검을 되돌렸지만 이미 늦었다.
철갑거인의 검이 먼저 지천의 위로 떨어지고 있었다.
피하기엔 늦었다.
진천이 온몸에 퍼져 있는 천령진기를 극성까지 끌어 올렸다.
위로 떨어지는 검을 손으로 막았다.
“크윽.”
진천은 신음을 흘렸다.
점점 몸이 땅으로 파묻혀 갔다. 이윽고 완전히 땅 속으로 파묻히고 말았다. 철갑거인의 반대편 손에서 튀어나온 화염의 구가 지면과 충돌하였다.
지금껏 보지 못한 대단위 폭발이 일었다.
지면이 집채만큼 파였다.
“맹주님!”
놀란 청성고수들이 외쳤다.
아!
움푹 파인 홀에서 위로 뛰어오르는 진천이 보였다.
청성고수들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하지만 진천의 온몸은 곳곳이 타있었다.
또한 입가에 피까지 흘리고 있었다.
철갑거인은 이를 놓치지 않았다.
뛰어오른 진천을 향해 주먹을 휘두른 것이었다. 진천의 전신을 강타하고도 남을 주먹은 빨랐다.
퍽!
진천은 호신강기를 일으켰다.
그대로 주먹이 진천의 전신을 강타하였다.
진천이 뒤로 튕겨 날아갔다.
호신강기에 의해 어느 정도 충격은 흡수 되었지만 완전히 흡수된것은 아니었다.
쿨럭.
진천은 뻘건 선혈을 토했다.
이번의 공격으로 내상을 입었다.
“내상…….”
중원에 있을 적 언제 내상을 입었었는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
철갑거인의 모습이 더욱 거대해 보였다.
“죽여주마! 크하하하핫!”
숨 돌릴 틈 없이 철갑거인의 공격이 이어졌다.
또다시 불덩어리 먼저 진천을 향해 뿜어졌고, 그 뒤를 이어 철갑거인이 검을 휘둘렀다.
진천은 담담한 표정으로 옆으로 몸을 날렸다.
철갑거인은 진천의 손에 검이 없다는 것을 잊고 있었다.
휘이이익.
진천의 검이 철갑거인의 어깨를 관통하고 돌아왔다.
철갑거인이 그 충격으로 휘청 거렸다.
진천은 몸을 날려 철갑거인의 얼굴을 다리로 걷어찼다.
철갑거인의 고개가 훽 돌아갔다.
쿵!
거대한 몸이 큰 소리와 함께 쓰러졌다.
진천은 쓰러진 철갑거인의 얼굴을 향해 검기를 날렸다.
그때 검은 막이 철갑거인의 몸 앞으로 생성되었다.
고위 마법 블랙니스 실드(Blackness‘shield)였다.
그러나 검기는 블랙니스 실드를 뚫었다.
검기가 철갑거인의 투구를 베었다.
“크악.”
철갑거인의 안에서 신음이 터져 나왔다.
쩌저적.
투구에 금이 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투구는 깨지지 않았다.
진천이 이를 악물었다.
처음에 입은 내상이 이번의 공격으로 더욱 벌어진 것 같았다. 진천이 몸을 날렸고 철갑거인이 일어났다. 진천은 철갑거인의 어깨에 올라탔다.
연거푸 진천의 권이 철갑거인의 얼굴에 적중되었다.
철갑거인은 연신 휘청거리며 주먹들을 그대로 맞았다.
마지막이다!
진천은 철갑거인의 얼굴을 향해 검을 휘둘렀다. 갑자기 철갑거인이 몸을 숙였다.
진천은 허공에서 몇 바퀴 돌며 착지 할 수밖에 없었다.
“이 자식!”
철갑거인이 괴성을 터트렸다.
철갑거인이 검을 휘둘렀고 진천도 검을 휘둘렀다. 둘은 기운을 끝까지 끌어올린 상태였다. 이번 공격은 서로에게 마지막이 될 수도 있다.
승부닷!
지금껏 보지 못했던 기의 태풍이 전장을 휘몰아쳤다.
부상 입은 청성고수들은 내력을 끌어올려 태풍에 견디려 하였다. 부상을 크게 입은 몇몇 고수는 차마 이를 견디지 못하고 멀리 휩쓸려 날아갔다.
“맹주님…….”
청성 고수들은 가늘게 눈을 뜨고 앞을 보았다.
끊임없는 공방이 시작되었다.
진천과 철갑거인은 한 치의 양보도 없었다.
용호상박(龍虎相搏)이다.
거인과 인간의 싸움이 이러할까?
곳곳에서 번쩍였다.
시간이 지나도 승부는 나지 않았다.
부상만 늘어갔다.
철갑거인의 몸 군데군데 부셔질 듯 금이 가 있었고, 진천의 옷 역시 피 묻은 넝마가 되어 있었다.
진천의 숨이 거칠어졌다.
찰겁거인의 몸동작도 조금 느려졌다.
수십 합을 겨뤘어도 승부가 나지 않고 시간은 흘러만 가고 있었다.
그럴수록 양쪽 다 죽음을 향해 내달리는 꼴밖에 되지 않는다.
이 사실을 알면서도 공격을 늦출 수 없다.
기풍이 일 때마다 쪼개진 철갑거인의 파편들이 굴러 다녔다. 그리고 사방에 흥건히 고인 진천의 피도 주위로 번졌다.
“죽어라!”
“요물!”
호흡을 가다듬을 틈 따윈 없다.
또 다시 서로를 향해 달려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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