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mortal martial artist RAW novel - Chapter 17
제2화 신명대국의 백성들
드래곤의 평원!
레드 드래곤 아르카콘트가 잠들어 있다는 곳.
수만 몬스터들이 자리를 잡고 있는 곳.
어느 나라도 이곳을 침범할 수 없다는 것은 다 알려진 사실이다. 그것은 세계의 불문율이었다.
삼강국들은 그곳에 몬스터들이 많기 때문에 침범하지 않는다. 하지만 이것은 두 번째 이유에 불과하였다. 첫 번째는 삼강국 그들끼리 서로의 눈치를 보기 때문이었다.
따라서 드래곤의 평원에 침범 할 수 없다!
법칙이 되어 버린 사실이었다.
그러나 그것이 깨졌다.
하루아침에 등장한 그들.
자신들을 신명대국이라 표방한 무리가 나타났다. 국가라고 하기엔 너무 작은 규모였다. 그러나 부하 사백 명 모두가 소드 마스터 급에 해당하는 검사라는 우스갯소리가 들린다.
단지 우스갯소리라고 치부하기엔 의문점이 남았다. 평원에서의 전투는 예상치 못한 그들에게 대승을 안겨주었다.
아스틴 공작이 이끄는 대군.
삼대 기사단중 하나라는 이그판 기사단과 포함된 대군의 규모는 칠천여명에 달했었다.
그러나 신명대국이라 표방한 무리는 단 사백 명으로 그들에게 대항했고 단한 명의 사상자 없이, 로스엔의 병사 오천여명을 전사, 이천여명의 병사를 포로로 잡았었다.
단 사.백.명.으.로
다른 나라에 그 소식이 들어가지 못할 이유는 없었다.
소문은 순식간에 퍼졌다.
주신 율리안을 섬기는 나라가 있다.
삼강국 중 하나인 이 나라는 나라의 이름조차도 ‘율리안’ 이다. 율리안 신성대국은 황제가 곧 교황인 제정일치를 표방하였다.
귀족은 세 분류였다.
문관과 무관은 타국과 비슷하나 율리안은 이 두부류 보다 신관들의 세력이 더욱 강했다. 고위 관료의 반절이상이 대신관들이었다.
그만큼 신전들의 권력도 강하였다.
백성 전체가 율리안교의 신봉자이니 더 이상 무엇을 말하랴.
퍼덕. 퍼덕.
새하얀 비둘기가 창공을 갈랐다.
발목에는 둘둘 말아진 종이가 매달려 있었다.
비둘기는 신전에 들어와 벽 쪽의 나뭇가지에 걸터앉았다.
에스힐이 비둘기를 쓰다듬으며 종이를 빼냈다.
그러자 비둘기는 영리하게도 새장 속으로 들어가버렸다.
에스힐은 율리안 티넬신전 대신관이었다.
그는 로스엔에 대한 첩보를 담당하고 있었다. 로스엔의 첩자들은 모두 그를 통해 본국과 연락을 취하고 있었다.
대신관 에스힐이 종이를 펼쳤다.
“사실이었나…….”
허연 수염을 쓰다듬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드래곤 평원을 점령한 무리들에 대한 정보다. 곧 대륙에 퍼질 내용이었지만 그 내용면에선 A급이었다.
소문은 사실이었다.
정말로 로스엔 대국이 사백여명의 조그마한 무리들에게 당하였다. 그 사백 명의 실력에 대해선 자세히 알려진 바는 없었다. 전투의 참가자들 말에 따르면 사백여명의 검에서 모두 푸른색의 기운이 일렁 거렸다고 하였다.
에스힐은 웃었다.
그는 마법진 위에 섰다.
주위에 마법석들이 발광 하였다.
슈우우웅.
에스힐은 푸른빛에 감싸인 채 대신전에서 나타났다.
황제가 사는곳이 곧 황성이다. 그런 의미에서 대신전은 율리안의 황성이었다. 교황 이디스 엘드리안과 황족들은 대신전 안의 여러 궁에서 살고 있다.
신관들이 그를 향해 고개를 숙였다.
“대신관님 오셨습니까.”
“율리안의 축복이 당신에게”
“율리안의 축복이 당신에게”
에스힐은 빠른 걸음으로 걸었다.
아홉명의 대신관들이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에스힐을 포함한 이 열 명의 대신관들이 바로 율리안을 이끄는 ‘율리안의 손가락’이다.
“로스엔에서 전서가 도착 하였습니다.”
에스힐은 모두의 앞쪽으로 전서를 꺼내 펼쳤다.
“소문은 사실이었습니다. 신명대국이라 표방하는 무리들을 어떻게 할 것인지 논의 해봅시다.”
국가적 일급 논의는 일차적으로 율리안의 손가락들에게서 이루어진다. 그 후에야 문관과 무신들의 회의로 넘어가게 된다. 곧 문관과 무신들 자체적으로 중대한 문제에 대한 논의를 할 수 없으며 당연히 결정을 내릴 수도 없다.
“그 점에 대해선 그들이 이단인지 아닌지에 대해서부터 알아야 할 것 같습니다.”
세피로스가 말했다.
그는 어린 소년이다. 열개의 손가락은 물론이고 모든 신관들 중에 가장 어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가 대신관이 된 것은 주신 율리안님의 신탁이 있었기 때문이다.
“세피로스 대신관님의 말씀이 옳습니다.”
“그들은 어느신을 믿고 있습니까?”
“아직 자세한 것에 대해 밝혀진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그들에 대해 알려진 것은 대신관님들 모두 알고 있다시피 사백여명이 모두 강한 검사라는 것들뿐입니다. 그들은 한 명의 전사자 없이 로스엔 국의 이그판 기사단과 칠천여명의 병사를 격파하였습니다. 어느 신을 믿고 있냐고 물으셨습니까?”
“예.”
“그들은 이번 전투에서 어떤 신성력도 사용하지 않았으며, 그 어떠한 이교의 흔적도 발견할 수 없었습니다.”
에스힐이 말하였다.
“저는 의문입니다. 그들 무리에 대한 신탁이 아직까지 내려오지 않았습니다. 또한 여기에 계신 대신관님들 모두 그들 무리에 대한 예지몽을 꾼 적이 없지 않습니까?”
유일한 여성 대신관 사나가 반문하였다.
“그 점에 대해선 정말 의문이 아닐 수 없습니다. 유티아님의 신탁이 내려오지 않은 이상 그들이 이단인지 아닌지 결정하는 것은 섣부른 판단 아닐까요?”
“아닙니다. 혹시 교황님께 그들에 대한 예지몽이나 혹은 신탁이 내려 왔을지도 모릅니다.”
교황님이 받는 예지몽과 신탁은 그 어떤 대신관들 보다 강하다.
라이트핸드가 대답하였다.
신명대국이라 표방한자!
그들이 이단인지 아닌지는 매우 중요한 사항이었다.
이단은 처단한다!
“교황님께선 아직 아무런 말씀이 없으십니다. 아무튼 좋은 기회입니다.”
에스힐이 담담하게 말했다.
“로스엔국도 하이드 백작의 실종을 대의명분으로 삼고 드래곤 평원으로의 진출을 도모하였습니다. 뜻하지 않게 사백여명의 무리에게 당하게 되었지만 말입니다.”
“에스힐님의 말씀은…… 유티아님의 말씀을 드래곤의 평원까지 퍼트릴 수 있는 기회라 하시는 것입니까?”
“맞습니다.”
대신관들은 서로의 눈빛을 교환하였다.
로스엔국의 진출 소식을 들었을 땐 분개 했었다. 하지만 그들을 막을 명분이 없었다.
그러나!
그들이 이단일 경우 명분이 생긴다. 신성대국도 드래곤 평원으로 진출한다. 수백 년간 이루지못한 못한 교세를 확장할 절호의 기회다.
“모두 동의하시는군요.”
에스힐은 인자한 미소를 지으며 중얼거렸다.
“아직까지 본국은 수백 년 전 유티아님께서 내리셨던 신탁을 이행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이번에야말로 교세의 확장! 신탁을 이행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인 것입니다.”
그의 말에 모두의 눈빛이 번뜩였다.
“그들 무리가 본교를 믿게 되면 되겠군요…….”
세피로스가 총명스럽게 말했다.
“예. 그렇습니다. 이미 드래곤 평원으로 진출한 그들이 본교를 믿는 다면 신탁은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에드먼과 로스엔이 가만히 있지 않을 것 같습니다만?”
사라가 지적했다.
“여러 대신관님. 유티아님의 말씀이 내려오시지 않으셨습니까? 로스엔국은 조만간 큰 재난을 입습니다. 문제는 에드먼국입니다만. 에드먼국이 본교의 영지인 드래곤 평원을 침략한다면 본교는 가만히 있지 않을 것입니다. 본교의 교인들을 구원해야지요.”
“하지만 그들이 유티아님의 말씀을 믿지 않는다면…… 그들을 이단으로써 처단 해야겠군요.”
세피로스는 어린아이답지 않은 신중한 표정이었다.
두 눈엔 총기가 가득하였다.
흠.
잠지코 듣고 있던 대신관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이번 논의에 대해 결정이 난 것 같습니다. 그들에게 본교의 전도사를 보내, 그들이 이단인지 아닌지 확인해 보는 것으로 하겠습니다. 이단은 처단해야 하고, 아니면 전도를 해야 하니까요…….”
에스힐이 논의를 끝냈다.
몇몇 대신관들의 입꼬리가 살며시 올라갔다.
약 사백 명에 육박하는 사람들이 평원 위를 걷고 있었다. 모두들 불안한 얼굴을 하고 있다. 만드라고라 같은 식물을 따라서 가고 있기는 하지만.
“정말 이곳으로 가야 하는 거 맞아?”
사람들은 술렁였다.
분명 그들은 이따금씩 경고 팻말을 보았다.
국경부터 띄엄띄엄 박힌 팻말엔 [진입 금지] 라고 쓰여 있었다. 추가적으로 몬스터 출몰지역인 드래곤의 평원이라 적혀 있기도 하였다.
드래곤의 평원!
대륙에 살면서 그 평원의 소문을 들어보지 못한 자는 없을 것이다.
사람들이 발걸음을 멈칫거렸다.
[우낏?]설령이 고개를 뒤로 돌렸다.
조그마한 뿌리로 오라는 듯 손짓 하였다.
“여……기 드래곤의 평원이야.”
“몬스터들에게 습격 받는 거 아냐?”
도망가려면 지금 뿐이다.
자신들을 안내하고 있는 이상한 식물 하나밖에 없다.
그러나 아무도 도망치지 않았다.
바깥세상은 노예였던 자들이 살기엔 두려운 곳이었다. 비록 노예문서가 사라지긴 했지만 돈한 푼 없는 몸으로는 다시 노예가 되는 수밖에 없다. 그리고 정말 믿음직한 주인을 만났지 않은가?
이제 와서 도망치기는 싫었다.
[우낏. 우낏]설령이 얼굴을 찌푸리며 연거푸 손짓 하였다.
“그래. 가자. 드디어 우리가 살 터전을 잡을 수 있어.”
생각을 마친 사람들은 그제야 발걸음을 옮겼다. 한걸음 한걸음이 조심스럽기 짝이 없다.
문득 저편에서 아스라이 다섯 사람의 인형이 보였다.
혜공과 만소자.
그리고 둘의 호위에 나선 청성고수 세 명이었다.
[우낏?]설령이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주첨기는 보이지 않았다. 실망한 설령은 얼굴이 어두워졌다.
아! 무슨 일이라도 있는 것일까?
설령이 혜공에게 사백여명의 사람들을 가리켰다. 그러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이들을 부탁한다는 뜻이었다. 혜공도 이를 알아차리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팟!
설령이 사라졌다.
혜공과 만소자 그리고 세 명의 청성고수는 놀라지 않았다. 만년설삼이 눈앞에서 사라지는 건 평소에도 있는 일중에 하나다.
“전하의 명을 받고 왔습니다요 당신들은 누구입니까요?”
혜공이 맥스 노인에게 물었다.
맥스 노인은 노예 마을에 있을 당시 촌장이었다. 팔십세가 넘는 나이로 가장 나이가 많았다.
“저,희들은 신명대국의 백성입니다.”
맥스 노인이 대답하였다.
혜공은 모두를 훑어보았다.
하나같이 피곤한 기색이었고, 앙상하게 뼈만 남은 소년 소녀들도 상당하였다. 잘먹고 잘살던 사람들이 아닌 것은 확실하나, 모두의 눈엔 희망이 가득 차 있었다.
“환영합니다요.”
“환영합니다.”
혜공과 만소자가 미소 지었다.
세 명의 청성고수들도 살짝 고개를 숙였다.
세 명의 청성고수.
가만히 서 있어도 뿜어져 나오는 기도가 대단하다.
사람들은 절로 숙연해졌다.
― 혜공공.
갑자기 자신을 부르는 소리가 머릿속에 울렸다.
청성고수 와룡진과 눈이 마주쳤다. 혜공은 그 소리가 와룡진의 전음임을 그제야 눈치챘다.
― 결국 괴물들에게 포위 되었습니다. 수는 대략…… 천 마리 이상일 것 같습니다.
“그렇습니까요?”
― 예. 주위 언덕들을 보십시오.
주위라고 하지만 눈으로 확인하기엔 너무 멀었다. 혜공은 짐짓 고개를 끄덕였다.
그때 이상한 울음소리가 울려 퍼졌다.
“쿠아아아!”
사람들은 경악하며 소리가 울린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동. 서. 남. 북! 사방이 포위 되었다.
“결국…….”
사람들은 서로를 부등켜 안았다. 어린아이의 울음소리도 점점 커져만 갔다. 만소자도 불안해하는 사람들을 보며 울상을 지었다.
하지만 혜공과 세 명이 청성고수들의 얼굴 표정은 전혀 달라진게 없이 침착하였다.
“모두 침착 하십시오!”
청성고수 와룡진이 내력을 뿜어냈다.
“어떻게 침착 하시라는 말씀이십니까. 지금 몬스터들에게 포위당했습니다. 이곳은 드래곤의 평원이지 않습니까.”
지팡이를 잡은 맥스노인의 손도 부르르 떨렸다.
“신명대국의 백성들이여 당신들의 나라를 믿으십시요.”
사람들은 서로의 손을 꽈악 쥐었다.
어느새 오크들의 모습이 보이기 시작하였다.
오크들은 새까맣게 몰려들고 있었다.
“쿠아아아”
오크들의 괴상한 함성이 메아리 쳤다.
고막이 진동한다.
“아……아…….”
사람들은 두려움으로 어쩔줄을 몰라했다
세 명의 호위 기사가 있지만 오크들은 천마리가 넘어 보였다. 이젠 다 죽는구나 생각하니 눈물이 앞을 가렸다.
자유를 찾자마자 죽음이라니……
이윽고 사람들의 눈에 눈물이 흘렀다. 아내를, 그리고 자식들을 강하게 껴안았다.
이제야 좋은 주인을 만나게 됬는데. 드디어 정착해서 가족들과 오붓하게 살 수 있을 것만 같았는데. 결국 이렇게 죽는 것인가?
정녕…… 죽는 것인가.
“사람들을 안정시켜주세요오”
“하,지만 지금 몬스터가…….”
맥스 노인도 사색이 되어 말하였다.
오크들은 엄청난 속도로 돌진하고 있었다. 언덕을 내려온 천여마리의 오크들이 평원을 질주하였다.
입 밖으로 튀어나온 송곳니와 피가 덕지덕지 굳은 병기들.
공포 그 자체였다.
오크들은 어느새 코앞까지 다가왔다.
“으아악!”
사람들이 비명을 질렀다.
― 혜공공. 괴물들을 처리하고 오겠습니다.
“그렇게 하세요.”
세 명의 청성고수들은 주위로 흩어졌다.
북. 남서. 남동 쪽.
“이제 곧 끝날 것입니다요. 장로님께선 사람들을 진정시켜 주십시요오. 저분들을 보십시요오.”
맥스 노인은 오크들을 향해 달려가는 세 명의 검사를 보았다. 그들의 검을 감싸고 점점 자라나는 푸른색의 기운! 그것은 말로만 듣던 오라 블레이드였다.
대륙에선 오러 블레이드를 사용할 수 있는 자들을 소드 마스터라 불렀다.
“모두 침착하고 앞을 봐라!”
맥스 노인이 외쳤다.
그제야 하나둘 사람들이 고개를 들었다.
막 세 명의 청성고수가 오크들의 무리에 뛰어들고 있었다.
“흐아아아압!”
와룡진, 와룡강, 와룡방 삼형제의 기합 소리가 터져 나왔다.
기합만으로도 오크 몇이 튕겨 나갔다.
그 위에 검기가 쏟아졌다.
쿠엑.
오크들은 짧은 비명을 토하며 쓰러졌다.
“청운적하검!”
와룡진이 시전한 청운적하검이 부드럽게 움직였다. 쾌검들에 비해 한없이 느리고, 부드럽게 움직이는 검이었다. 그런데도 오크들은 이를 뻔히 보고도 피하지 못했다.
눈앞으로 천천히 다가오던 검이 어느새 허리를 베고 지나갔다.
“송풍검법”
와룡강은 송풍검법을 시전하였다. 청운적하검과는 달리 빠른 쾌검이었다. 검이 보이지 않으니 막을수도 없다.
상쾌한 바람이 불었다.
그러나 그것은 죽음의 바람이다.
그 바람이 지나가면 어느새 목은 꿰뚫려져 있었다.
“칠십이파검”
와룡방이 하늘로 치솟았다. 오크들의 병기가 뒤늦게 허공을 갈랐다. 허공에서 몸을 돌려 밑으로 검을 내리꽂았다. 그 짧은 순간 와룡방의 검은 무수히 많은 변화를 일으켰다.
한번 변화를 일으킬때마다 오크들의 목이 떨어져 나갔다.
“아…….”
사람들은 넋을 잃고 그들을 바라보았다.
오크들이 수없이 쓰러지며, 곳곳에서 녹색 체액들이 튀겼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 명의 검사들이 아름답다고 느껴졌다.
태양에 검이 빛났다.
그것은 명화를 그리는 화가의 붓처럼 움직였다.
사람들이 정신을 차렸을 땐 수많은 오크들이 쓰러져 있었다.
오크들의 시체가 산처럼 쌓였다.
“취이익. 그놈들, 취이익. 악마 인간들이다.”
드래곤의 레어에 둥지를 틀었다는 인간들이 있다던데 바로 이들인 듯하다.
최근 평원에 동족들을 무수히 살해하는 인간들.
바로 악마 인간!
주첨기 일행에 대한 소문은 몬스터들 내에서도 빠르게 전파되고 있었다.
[ 취이익. 도망쳐랏! ]대장격인 오크가 외쳤다.
이들을 상대할 수 없다.
전사의 자존심을 단 한 번 꺾는 수밖에.
“어딜!”
와룡진의 검이 대장 오크의 몸을 갈랐다. 오른 어깨위쪽에서부터 왼허리까지 대각선으로 분리되었다.
대장 오크가 무너졌다.
[ 취이익! ]오크들은 허겁지겁 도망가기 시작하였다.
“끝났어. 대형.”
삼형제의 막내 와룡방이 막 도망치려는 오크의 등을 베었다.
― 혜공공. 추적해야 합니까?
와룡진이 전음을 보냈다.
혜공은 쩌억 벌리고 있던 입을 급히 다물었다.
“아닙니다요.”
혜공도 삼형제의 놀라운 무위에 놀란 상태였다.
무림고수들의 많은 활약상을 본 혜공도 이러한데, 이제막 에드먼 영토에서 벗어난 이들은 어떨까?
그들의 몸이 부르르 떨리고 있었다.
두려움, 공포? 그런 종류가 아니다.
전율이다.
단 세 명의 검사가 천 마리가 넘는 오크들을 물리쳤다. 그것도 세 명의 검사 쪽이 일방적으로 오크들을 몰아 붙였고, 오크들은 속수무책이었다.
수백 마리가 죽고 나서야 오크들은 도망쳤다.
“와,”
어린아이들이 동경의 눈으로 삼형제를 바라보았다.
죽은 오크들의 악취가 풍겼다.
혜공이 눈살을 찌푸렸다.
“어서 갑시다요. 전하께서 기다리고 계십니다요.”
“아……예……예…….”
맥스 노인은 굽실거리며 혜공의 뒤를 따랐다.
청성 삼형제가 사백 명을 호위 하였다.
와룡진은 좌측을 와룡강은 우측을 그리고 와룡방은 후방을 맡았다.
천 마리의 오크도 간단하게 제압한 검사들의 호위를 받는다?
사람들의 얼굴에 두려움이란 사라졌다.
그리고 그 자리에 삼형제들에 대한 경외심이 자리 잡았다.
이렇게 대단하신 검사님들이 천한 자신들을 보호해 주고 있다.
눈물이 날정도로 감사하고 든든하였다.
후로도 두 차례 오크들의 습격이 있었다.
어김없이 세 검사의 활약으로 오크들은 막대한 피해를 입고 도망쳤다.
“도착하였습니다요.”
꼬박 하루를 걸었다.
“아…….”
놀라움의 연속이었다.
눈앞엔 장대한 공사가 펼쳐지고 있었다. 쉽게 사람 앞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 드워프들이 성을 짓고 성벽을 쌓고 있었다. 아직 완공되지 않았음에도 그 광대함에 감탄사가 절로 나왔다.
“모두 왔는가. 신명대국의 백성들이여.”
위엄 있는 목소리가 웅웅 거렸다.
성벽 위에 한 청년이 망토를 펄럭이며 서 있었다.
“전하!”
혜공과 만소자 그리고 삼형제는 급히 무릎을 꿇었고 땅에 이마를 댔다.
본래 노예였으나 주첨기에 의해 자유를 찾은 자들.
사백 명의 백성들도 혜공들을 따라 절을 하였다.
“이곳이 앞으로 너희들의 밭이 될 것이다.”
넓은 평원은 광활했다.
지평선 너머 비옥한 토지가 끝없이 펼쳐져 있었다.
“몬스터는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본국은 강하다.”
주첨기의 말에 몇몇 사람들이 눈물을 흘렸다. 소문엔 죽음의 땅이라고 알려진 곳이지만 그들에겐 더없는 축복과 자유의 땅이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주첨기에게 절을 하며 땅에 입술을 맞췄다.
땅은 진한 흙냄새를 풍겼다.
수십 년간 노예로써 땅을 일궜다. 흙냄새만 맡아도 땅이 얼마나 비옥한지 알수가 있다.
이 평원은 진정 축복받은 비옥한 땅이다.
“정녕 저희들은 자유인 것입니까? 전하.”
맥스 노인은 환희에 가득 찬 얼굴이었다.
“그렇다. 너희들은 나의 백성들이다. 앞으로 이곳에서 터전을 잡고 본국에 충성을 다하라.”
“예. 전하.”
남녀노소 할 것 없이 모두 몇 번이나 절을 하였다.
주첨기는 혜공을 불렀다.
“혜공. 당분간 이들이 지낸 천막이 필요할 것 같습니다. 천막을 지을 재료들은 저곳에 있으니 백성들을 이끌어 지으십시오. 만민당이 도와줄 것입니다.”
소림사 승려들이 혜공을 향해 합장 하였다.
“아미타불.”
백성을 돕기 위해 조직된 만민당은 소림사 승려들로 구성되어 있었다.
“잘 부탁 합니다요.”
[우낏.]주첨기의 품속에 있던 설령이 혜공을 향해 윙크하였다.
혜공의 얼굴이 순간적으로 굳었다.
주첨기는 청성 삼형제와 함께 사라졌다.
“우선 몇 가구인지부터 알아봐야 할 것 같습니다. 아미타불.”
“그럴 것 같습니다요.”
혜공과 만소자는 본격적으로 인원 조사에 나섰다. 그 사이 소림 승려들은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누었다.
에드먼에서 수십 년간 천대받으며 온갖 노역을 담당했던 설움에 눈물을 흘렸다. 그럴 때마다 소림사 승려들은 이젠 좋아질 것이라고 사람들을 안심시켰다.
“이렇게 가족입니까요?”
혜공이 물었다.
아내와 어린 딸의 손을 잡고 있는 남성이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하였다.
“예. 그렇습니다.”
만소자는 붓으로 그들의 이름과 가족 현황을 명부에 적어 내려갔다.
혜공은 이마의 땀을 훔쳤고 만소자는 가쁜 숨을 내쉬었다.
인원조사를 하느라 계속 돌아다닌 탓이었다.
“휴. 다 끝났네.”
“아미타불. 시주. 수고하셨습니다. 이제 저희들이 나서야 할 차례군요. 천막을 몇 개나 지어야 합니까?”
성인 남자 123명, 성인 여자 140명, 소년 70명, 소녀 50명이되 가족은 90호였다.
결론적으로 당분간 이들이 사용할 큰 천막 90여개와 가족이 없는 이들이 사용할 작은 천막 백여 개가 필요 했다.
“대형 천막 구십 개와 소형 천막 백 개가 필요합니다요.”
“아미타불. 알겠습니다.”
소림사 승려들은 천막의 자재가 쌓여 있는 곳으로 향했다. 그들은 거대한 통나무를 양손에 하나씩 들었다.
아!
사람들 아니 이제 신명대국의 백성들이 탄성을 질렀다. 인자한 미소를 머금고, 힘하고는 전혀 상관없어 보이던 사람들이 괴력을 발하고 있는 것이었다.
그것뿐만이 아니었다.
한 승려가 모아진 통나무의 앞에 섰다. 그는 집게손가락을 세우고 통나무의 중앙을 찔렀다. 집게손가락의 끝에는 푸른 기운이 걸쳐 있었다.
소림 무공 금강신지(金剛神指).
집게손가락에 찔린 통나무가 부르르 떨렸다.
팟!
수십 갈래로 쪼개졌다.
“와!…….”
백성들의 탄성은 마법 같은 광경들에 연발하였다. 정신을 차린 몇이 쪼개진 통나무 쪽으로 달려갔다.
“저희도 도우겠습니다.”
“시주님들은 쉬시고 계십시오. 먼 길을 오느라 피곤하실 겁니다. 아미타불,”
“아닙니다. 저희들이 살 곳이니……으샤!”
백성들도 소림 승려들을 도와 천막들을 세우기 시작했다. 소림 승려들은 내력을 유용하게 사용하였고, 백성들 역시 전력을 다해 도왔다.
천막은 해질 무렵 모두 완성되었다.
아이들은 노을이 물든 평원 위를 뛰어 놀았다.
처음이었다. 부모를 잘못 만난 탓에 태어나자마자 노예였다. 채 다 크기도 전에 밭으로 끌려가 혼절직전까지 일에 시달렸다.
“하하하!”
아이들의 천진난만한 웃음소리가 평원에 울렸다.
천막의 앞에선 부부가 자신의 아이를 보았다. 그들의 아들과 딸들이 웃으며 뛰어 노는 모습은 처음이었다. 노예였던 아이들로선 마음껏 달릴 수 있는 것만으로 한없이 즐거웠다.
흑.
남편이 부인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부인은 눈물을 삼키며 미소 짓고 있었다.
“여보…….”
부인은 남편을 품안에 꼬옥 껴안았다. 부인은 남편의 가슴에 얼굴을 묻었다. 아이들의 밝은 웃음소리가 계속 될수록 부인은 울음을 그칠 수가 없었다.
“이제 잘 살아봅시다. 여보.”
“예……여보.”
주홍빛 노을이 아이들의 머리 위로 쏟아지는데 그렇게 예쁠 수가 없었다.
한편 맥스 노인과 이들의 대표로 뽑힌 열 명의 장년들이 대 천막 안에 모였다.
“아미타불.”
“관세음보살”
은소소와 노승 방각대사가 들어왔다.
둘은 만민당의 당주격이었다.
맥스노인과 열 명의 장년은 급히 자리에서 일어나 허리를 숙였다.
“모두 앉으세요. 시주님들”
은소소가 미소 지었다. 그래도 그들은 앉지 않았다. 은소소가 웃으며 먼저 자리에 앉았다.
“제가 먼저 앉아야 하나요? 이제 모두들 앉으세요. 시주님들”
시주님?
맥스노인들은 의자에 앉았다.
“예. 저…… 그런데 뭐라고 불러야 할지…….”
“화은사태라 부르세요. 보다시피 아직 본국의 기틀은 잡혀 있지 않아요. 시주님들은 본국의 시작이자 기반이에요. 전하께서는 본국의 백성들이신 시주님들이 평온하고 풍족한 삶을 누리길 바라시죠. 그래서 저희들을 보내셨어요. 관세음보살.”
“정말 진심으로 감사합니다. 너무나 감사해서…… 어떻게 해야 할지를 모르겠습니다.”
맥스 노인이 대답했다.
“가옥이 생길 때까지 당분간은 천막에서 지내셔야 할 거예요. 그때까지는 참고 지내 주세요.”
“예? 집이 생긴다고요?”
한 장년이 놀라 물었다.
“예. 땅 분배 후, 그에 맞춰 가옥들도 지을 거예요. 관세음보살.”
“저……저……저희 모,모,두에게 말입니까?”
“예.”
은소소가 밝은 미소를 지었다.
믿기지 않는다.
집이라니?
자유를 주고 천막을 준 것만으로도 감지덕지인데 땅과 집까지 준다니. 그것도 무상으로 말이다. 이를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몸 둘 바를 몰랐다.
꿈이 아닌지 허벅지를 꼬집기도 하였다. 그러나 아픔이 느껴지는 현실이다. 그동안 고통의 세월은 이날을 위한 일종의 시험이나 마찬가지가 아니었을까?
“모두 농사를 지어 보셨나요?”
“예. 저희들은 농노였습니다.”
맥스노인이 당연하다는 듯이 대답하였다.
“아……이제 본국에 오셨으니 걱정마세요. 그럼 농사에 대해선 잘 알고 계시겠네요?”
“그렇습니다.”
“그러실 줄 알았어요. 전하께서는 그대들이 농사를 지을 수 있는 최상의 환경을 제공해 주라고 하셨어요. 무엇이든지요. 지금 필요한 게 있으면 말씀해 주세요. 바로 준비해 드리겠어요.”
“컥……컥!”
맥스노인은 물론이고 대표로 모인 장년인들은 숨이 막힐 지경이었다. 어째서 미천한 자신들에게 이러한 대접을 하는지. 아무리 생각해도 알 수가 없었다.
오로지 이로 말할 수 없이 고마울 뿐이다.
“우선 식량과 모포, 의복이 필요 하겠네요. 그리고 무엇이 필요하죠?”
은소소가 말했다.
맥스노인과 장년인들은 머뭇거렸다.
“괜찮습니다. 말씀들 해 보시지요. 아미타불”
방각대사가 합장하였다.
그제야 맥스노인이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농기구가 필요 합니다.”
“그리고요?”
“씨앗이 필요 합니다.”
이번엔 한 장년인이 말하였다.
“좋아요.”
은소소는 웃으며 맥스노인들이 말하는 것을 적어내려가기 시작하였다. 간단한 씨앗과 취사용품부터 농기구에 이르기까지. 사백여명이 쓸 것이라 그 양이 꽤 많았다.
“장로님. 당분간만 모포나 여러 생활용품이 없더라도 모두에게 참아 달라 말 좀 전해 주세요. ”
“저희들이 가져온 것도 있으니 너무 심려마십시오.”
“내일 여기에 계신 여러분들과 가까운 도시로 물품들을 구입하러 가야겠네요. 그렇지요 방각대사님?”
“그렇습니다. 아미타불.”
“장로님. 내일 괜찮으신가요? 이정도 사려면 몇 골드가 필요 하지요? 일 년 치 식량과 그리고 기타 물품들이요.”
은소소도 이계에 화폐 단위가 골드라는 것은 알고 있었다.
“다……당연히 괜,괜찮습니다. 지금 그 식량과 물품들을 모두 사려면…….”
눈을 위로 굴려 속으로 계산하였다.
맥스 노인의 입이 쩌억 벌어졌다.
“왜 그러지요? 장로님. 계산되었나요?”
“그,그게…….”
계산된 금액은 너무나 많았다.
“말씀해 보세요. 장로님.”
“그,그러니까…… 천,천,천오백 골드가 필요합니다.”
맥스 노인은 식은땀까지 흘리며 어렵게 대답하였다.
“잘 알겠어요.”
“예……옛?”
“천오백골드 넉넉히 잡아서 이천 골드겠군요. 전하께서는 그대들을 위해 지원을 아끼시지 않을 거예요. 끝난 것 같네요. 오늘 하루만큼은 푹 쉬세요. 내일은 타 도시로 물품을 사러가야 하니까요. 관세음보살.”
“아미타불.”
회의는 끝났다.
이튿날 은소소는 만보당 즉 신명대국의 재정을 관리하는 종남 고수들을 찾았다. 사백여명이 사용할 농기구와 생활용품 그리고 식량에 대한 금화를 요청하였다.
만보당에도 주첨기의 명이 떨어져 있었다.
‘백성들의 편리와 농사에 대해 자금을 아끼지 말라!’
은소소는 요청한 이천골드를 받았다. 개당 백 골드의 가치가 있는 로타드의 금화로 이십 개였다.
편리를 위해 로타드의 금화로 주었다.
이것은 곧 만보당이 화페의 가치를 잘 알고 있음을 뜻하였다.
만보당은 드래곤의 서재에 있는 여러 책들로 물품들의 일반적인 시세와 화폐의 가치를 조사하였었다.
“어째서 금화를 이십 개만 주는 건가요? 남궁대협.”
은소소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종남고수 남궁혁이 살짝 웃었다.
“화은사태”
남궁혁이 은소소의 법호를 불렀다.
“이 금화는 로타드의 금화라고 하는 것이오. 일반적인 금화들보다 백배 이상의 가치를 지니고 있소. 최소 백 골드의 가치인 이것들이 이십 개이니 결코 모자라지 않을 것이오.”
“그렇군요. 남궁대협. 그럼. 관세음보살”
은소소는 금화주머니를 허리에 찼다.
평원으로 향했다.
평원 쪽에는 많은 백성들이 모여 있었다.
자신들을 위할 물품들과 농기구들을 사러가기 위해 사람이 나올 것이란 소식이 다 퍼진 상태였다.
와아아아아.
은소소의 모습이 보이자 사람들은 환호성을 질렀다. 은소소의 뒤로 방각대사를 포함한 이십여 명의 소림 승려들이 뒤따라오고 있었다.
찰랑.
소림승려들이 걸을 때마다 그들의 지팡이, 법장이 소리를 냈다.
맥스 노인과 열 명의 중년인이 앞으로 모두의 나왔다.
“오셨습니까.”
맥스노인들이 공손히 고개를 숙였다. 백성들도 환호성을 그치고 함께 고개를 숙였다.
“예. 잘 주무셨나요. 시주님들. 갈 준비는 끝나셨나요?”
“예. 화은사태님.”
그렇게 밝은 표정일수가 없었다.
얼굴이 새하얀 노인이 놀라운 얼굴을 했다. 환관복을 입은 그는 여성스러운 자세로 앉아 있었다. 그러고는 두 손을 하늘을 향해 뻗었다.
“오……오…….”
비로소 그의 손 끝에 푸르스름한 기운이 맺혔다.
“바로 그거예요.”
실리아는 미소 지었다.
“드디어 혜공께서는 마나를 느끼게 되었어요.”
일반 마법사들보다 빠른 성취에 실리아도 가르치는 보람을 느꼈다.
아. 한사람이 더있었지?
실리아가 한 소년을 바라보았다. 소년 역시 노인과 같은 복장으로 얼굴이 새하얗다. 소년은 노인처럼 하늘을 향해 손을 뻗으며 낑낑 거렸다.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그래도 소년은 멈추지 않았다. 식은땀까지 흘리며 몇 번이나 하늘을 향해 뻗었다. 한 번씩 노인의 손끝에 맺힌 마나의 기운을 보았다. 그때마다 소년은 울상으로 바뀌어져갔다.
“만소자씨도 천천히 하세요. 혜공께서 성취가 빠른 것이지 만소자씨가 느린 것이 아니니까요.”
“하……하지만.”
만소자는 우울하게 말하였다.
“하하. 만소자야. 너무 무리하지 말아라.”
혜공이 만소자의 어깨를 토닥였다.
“맞아요. 만소자씨. 무리하지 마세요. 혜공님. 마나를 느끼신 기분이 어떠신가요?”
“손끝에 따뜻한 기운이 느껴지는 게 매우 좋네. 뭔가…… 뭐라고 말을 해야 할지는 모르지만 정순한 무엇인가가 느껴지고 있어.”
“네. 당분간은 마나를 느끼는 수련을 게속 하세요. 우선 마나와 친숙해지는 것이 중요하니까요. 혜공님은 마법에 자질이 뛰어나신 것 같아요. 그리고 만소자씨는…….”
실리아가 말꼬리를 흐렸다.
혜공과 만소자의 표정은 정반대였다.
흐믓한 표정을 짓고 있는 혜공과는 달리 만소자는 고개를 푹 숙이고 있었다. 얼굴에 먹구름이 가득 낀 만소자는 매우 안쓰러웠다,
“저도 알아요…… 제가 모자라다는 거.”
만소자가 힘없이 말하였다.
귀를 기울여야 겨우 알아들을 수 있는 크기였다.
“만소자씨 저를 한번 더 보세요.”
실리아는 마나의 기운을 모았다.
실리아의 손에서 마나의 빛이 은은하게 빛났다. 실리아가 만소자의 두 손을 잡았다. 만소자의 볼이 금세 붉게 물들었다. 그것을 아는지 모르는지 실리아는 멈추지 않았다.
온기.
실리아의 손은 따뜻하게 보였다.
그러나 만소자에게는 그것이 느껴지지 않았다.
푸른 마나의 기운이 실리아의 손을 타고 만소자의 손으로 흘렀다. 만소자의 손에서 마나의 기운이 맴돌았다.
“어때요. 따뜻한 게 느껴지나요?”
“아니요.”
만소자는 풀이 죽었다.
“두눈을 감고 정신을 집중하세요. 처음에는 머리, 다음에는 목 그리고 가슴으로 마지막에는 손에 모든 정신을 집중시키세요.”
“아무것도.”
만소자는 솔직하게 대답하였다.
혜공이 미소 지으며 그것을 바라보았다.
“자…… 한 번 더 느껴보세요. 마나의 기운은 어디에나 퍼져 있어요. 공기에도 돌에도 그리고 우리들의 몸에도요. 만소자씨의 몸에도 있어요. 마나는 매우 친숙한 것이랍니다. 조급한 마음을 가지지 마시고 집중하신다면 느끼실 수 있으실 거예요. 한 번 더 눈을 감고 느껴보세요.”
그래도 마찬가지였다.
혜공공과 마법선생 실리아가 말했던 온기는 느껴지지 않았다. 만소자는 울고 싶은 심정이었다.
“죄송해요…….”
만소자는 결국 고개를 떨구었다.
“아니에요. 죄송할 거 없어요. 다시 말하지만 혜공님께서 성취가 빠르신것이지 만소자씨가 부족해서 그러신 것이 아니에요. 혜공님.”
“응?”
“만소자씨를 도와주세요.”
“그렇게 하지. 만소자야. 왜 울상을 하느냐.”
“혜공공…… 전 아무래도 소질이 없는 것 같아요.”
“허나 전하께서 명을 내리셨다. 만소자야.”
“예.”
실리아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두 내시가 실리아를 올려다보았다. 실리아가 살짝 허리를 숙였다 폈다.
“저는 이제 마법서를 보러 가야 할 것 같아요. 혜공님께선 만소자씨를 많이 도와주세요.”
실리아는 벌써부터 기분이 좋았다.
드래곤의 마법서를 볼 생각을 하니 환호성이라도 지르고 싶은 심정이다.
바로 어제까지만 해도 드래곤의 서재엔 얼씬도 못했다. 그러나 부상 입은 무림고수들에게 치료마법을 걸어준 공이 인정되었다. 그리고 드디어 드래곤 서재에 들어가도 좋다는 허락을 받았다.
드래곤 서재에 들리기 전 잠시 친구들을 만났다.
“실리아. 기분이 좋아 보이네?”
“바로 오늘부터 드래곤 서재에 들어갈 수 있게 됐어. 희귀한 온갖 마법서들이 나를 기다리고 있다고.”
실리아는 매우 들떠 있었다.
제이너스와 파일로가 미소 지었다.
씁쓸한 미소였다.
이들과 처음 만난 건 삼 년 전 어느 여관이어다.
그곳에서 의기투합하였다.
드래곤 슬레이어!
각자 이루고자 하는 목표가 있었다.
실리아는 드래곤의 마법서였고 제이너스는 보물이었으며, 자신은 드래곤 슬레이어란 명성이었다.
“정말 잘됐어. 네 꿈을 이룰 수 있겠네. 이젠 드래곤 레어를 찾아서 헤매지 않아도 되겠어. 대마법사 실리아님”
파일로가 말했다.
“왠지 미안한 느낌인데.”
“아니야. 진심으로 축하해. 실리아. 정말 부럽다.”
제이너스는 밝게 웃었다.
“그러게 말이다. 후우. 난 지금 뭘 하고 있는지.”
파일로가 한숨을 내쉬었다.
“파일로. 난 진천님께 검술을 가르쳐 달라고 청할 거야.”
“검술을? 함부로 남에게 가르쳐 주겠어?”
“내 집념을 보여줄 거야. 손이라도 자를 수 있어.”
손이라도 자를 수 있다?
연약한 제이너스에게 어울리지 않는 말이었다. 하지만 진심인 것 같았다. 제이너스는 말장난을 하지 않는다. 언제나 약속과 공표했던 것들에 대해선 꼭 지켰던 그다.
3년이 지난 지금 파일로도 실리아도 제이너스의 출생에 대해 들은 적은 한 번도 없었다. 출생에 대한 이야기가 나올 때마다 제이너스는 유연하게 말을 돌렸다.
이제는 암묵적으로 제이너스의 출생에 대한 이야기는 꺼내지 말자는 약속이 생겼다.
그래도 궁금하다.
실력은 미숙하지만 검술은 고급검술이었다.
무엇보다도 한 번씩 발하는 분위기가 남달랐다.
일반 모험가와는 다른 무언가가 있었다.
“왜 그렇게 쳐다봐?”
제이너스가 파일로에게 물었다.
“아니다. 진천님의 제자가 되겠다고 청할 거라고?”
“좋은 생각이야. 제이너스. 진천님은 무척 좋으신 분 같던데. 그 이상하고 못생긴 노친네하고 다르게. 흥!”
실리아는 얼굴을 구겼다.
수라혈마가 떠올랐다.
음흉한 눈으로 몸매를 훑어보던 그 눈빛!
낄낄 거리는 이상한 웃음소리!
더욱 마음에 안드는 것은 그 노친네의 앞에 서면 몸이 바싹 얼어붙는다는 것이다.
“난 그분이 더 마음에 들던데?”
파일로가 툭 내뱉었다.
“엥?
실리아의 목소리와.
“응?”
제이너스의 목소리가 동시에 터져 나왔다.
“왜. 맘에 들잖아. 가로막는 것은 다 죽여버릴 것 같은 그 무시무시한 분위기! 꼭 마신이 강림 한 것 같은…… 그 강대함은 한번 보면 잊을수가 없어. 자고로 검을 지니는 사람이란 그런 분위기를 풍겨야 하는 거야. 그게 남자지!”
파일로가 주먹을 불끈 쥐며 말했다.
후우.
실리아와 제이너스가 한숨을 쉬었다.
“제이너스. 그런데 넌 드래곤의 보물이 목표가 아니었어?”
실리아가 물었다.
“드래곤의 보물은 목표가 아닌 수단이야. 이미 드래곤의 보물은 놓쳤으니 다른 수단을 강구해야 하지. 내가 강해지는 거야. 목표를 이룰 수 있게.”
제이너스의 목소리에 힘이 담겨 있었다.
“좋아! 이젠 파일로만 남았어.”
“응?”
“넌 뭐 할 거야. 이렇게 시간만 때우고 있을 순 없잖아.”
실리아가 말했다.
“당분간은 지켜볼 생각이야.”
“뭘?”
“신명대국의 개국(開國). 대국의 건설을!”
아!
실리아와 제이너스가 짧은 외마디 탄성을 질렀다.
이곳이 어디인가?
사백여명의 소드 마스터들이 모여 있는 곳!
그리고 소드 마스터의 경지를 뛰어넘은 두 노검사와 이들을 이끄는 제왕.
그들이 나라를 건설하려 하고 있다.
자신들은 그것을 어느 누구보다도 가까이서 바라보고 있지 않은가!
아무런 생각 없이 지내는 것 같지만 파일로 그 나름대로 뭔가를 생각하고 있었다.
실리아는 파일로를 다시 보았다.
“그래. 모두 보기 좋아.”
“좋았어. 지금 당장 진천님께 가야겠어. 그리고 내 집념을 보여드릴거야.”
제이너스는 침대를 박차고 일어났다. 그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방에서 나왔다.
꼭 제자가 되고 말겠다는 신념이 가득한 눈.
불끈 쥔 주먹은 필 생각이 없어 보였다.
장내는 평소보다 분위기가 격앙되어 있었다.
몇 일 전부터 모두의 감정이 고조되고 있었던 것이다.
‘꼭 큰일이 일어날 것만 같아’
제이너스는 속으로 생각하였다.
모두 로스엔국에 분개하고 있다.
제이너스가 그것을 모를 리가 없었다.
조심스럽게 진천의 방에 도착하였다.
벽엔 진천이 직접 적어놓은 시 한 폭이 멋들어지게 걸려 있었다. 진천은 그 밑의 의자에 몸을 기대 앉아 있었다. 한 손에 받친 책장을 넘기는 얼굴은 마치 현자 같았다.
“제이너스? 무슨 일인가?”
때마침 책을 다 읽었다. ‘천재지변에 따른 대륙의 변화’ 란 지리학 책이었다. 최근 진천은 드래곤의 서재에 있는 책들에 푹 빠져 있었다.
중원에서는 접해볼 수 없었던 많은 서적들.
진천의 새로운 눈을 뜨게 해 주고 있었다.
“스승님. 절 제자로 삼아 주세요.”
제이너스가 바로 무릎을 꿇었다.
쿵 소리가 났다.
진천은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제이너스를 보았다.
스승님? 갑자기 제자로 삼아 달라니?
진천의 얼굴에 미소가 피어올랐다.
제이너스의 모습에서 어린 시절 전하의 모습이 겹쳐 보였다. 그때와 같았다. 다짜고짜 불러서는 무릎부터 꿇고 스승님 이라니. 얼마나 황당했는지. 그때를 생각하면 지금도 미소가 그려지곤 한다.
“일어나라. 제이너스.”
“스승님. 저를 제자로 받아 주실 때까지 이 자리에서 일어서지 않을 것입니다.”
아쉽게도 제이너스는 무골이 아니었다.
“고집이 강하구나. 그러나 노부는 더 이상 제자를 받아들일 생각이 없다.”
진천이 단호하게 거절하였다.
제이너스는 실망하지 않았다. 예상했던 바였다. 오히려 더욱 결심을 굳혔다.
기필코 제자가 된다.
“소용없느니라. 그렇게 있다 하여 노부의 마음은 흔들리지 않는다. 제이너스”
“손가락이라도 잘라야 하나요. 아니면 눈이라도 파내야 하나요. 어떻게 해야 제 집념을 보여 드릴 수 있겠습니까.”
“허허허…….”
진천은 길게 더러워 진 수염을 쓰다듬으며 난처하게 웃었다.
“소용없다. 노부는 더 이상 제자를 받아들이지 않을 것이니라”
뒷짐을 지고 나가버렸다.
그래도 제이너스는 자리에서 일어나지 않았다. 제자로 받아줄 때까지 절대 일어나 않는다. 제이너스는 이를 악물었다.
자신은 꼭 강해져야만 하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