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mortal martial artist RAW novel - Chapter 2
제2화 지존으로 거듭나다
정광이 맺힌 눈을 가진 소년.
그리고 산신처럼 근엄한 수염의 노인과 추한 얼굴의 노인이 한방에 있었다.
“어째서 무공을 배우려 하십니까?”
검황 진천이 생각하기에는, 미강왕 전하가 무공을 배울 이유는 없었다. 천하에 부러울 것이 없는 황자의 몸으로써 어찌 무공을 배우려 한단 말인가.
수라혈마 역시 같은 생각이었다.
“스승님들께 솔직히 말씀 드리겠습니다. 저는 암살의 위협을 받고 있습니다.”
“킬킬. 감히 누가 내 제자를 암살 하려고 하지?”
“제일황자 보건형왕입니다.”
진천과 수라혈마의 얼굴에 놀란 기색이 엿보였다.
“전하. 허나 어전시위들이 있지 않습니까? 무공을 굳이 익히지 않으셔도 되지 않습니까.”
황실의 어전시위!
모두 천하에서 뽑히고 뽑힌 무사들이다. 그들로써 왕부를 호위케 한다면 그깟 자객들 쯤이야 막지 못할 일이 없다.
“암습을 받는 다는 것을 알려 왕부의 경계를 강화시킨다면 일은 걷잡을 수 없이 커지게 됩니다. 이는 황실의 일이기 때문입니다. 저 혼자 해결해야 황실에 안녕이 있습니다. 무엇보다도 어전시위들이나 타인의 힘으로써 제 자신을 지켜야 한다는 게 싫습니다.”
“맞다. 제자야. 그런 것은 혼자 해결해야 하는 법이야! 킬킬”
“전하. 그러다 존신에 해라도 입으신다면 어찌하시려 그러십니까?”
“걱정 마세요. 형가도 있습니다. 그리고 앞으로 천하에서 제일 강한 두 스승님께 무공을 배울 것인데 뭐가 두렵겠습니까?”
미강왕 주첨기가 입술을 굳게 다물었다. 굳은 신념으로 가득 찬 그의 얼굴은 한 치의 미동도 없다.
“두 스승님을 평생 섬기며 그 은혜에 보답하겠습니다. 스승님들. 제자는 지금 바로 무공을 배우고 싶습니다.”
“전하께선 어느 정도의 경지를 원하십니까?”
“천하의 무엇이 와도 저를 해하지 못할 경지입니다. 설사 두 스승님들께서 오신다 하더라도 말입니다.”
진천은 담담히 고개를 끄덕였고 수라혈마는 재미있다는 듯 낄낄 거렸다.
“그리고 하루 빨리 그러한 경지에 오르고 싶습니다. 스승님”
“무공은 서둔다고 이룰 수 있는 게 아닙니다. 전하.”
“아니다. 제자야. 우리 혈마교의 무공은 정파의 무공과는 다르다. 강하면서 익히는 속도 또한 빠르다. 지금 당장이라도 내 무공을 전수해주마. 네가 재능이 있고 나같이 위대한 스승을 만났으니 청출어람 할 수 있을 것이다. 킬킬.”
수라혈마가 진천을 보며 입꼬리를 올렸다.
“안됩니다. 전하. 사파의 무공이 비록 성취속도가 빠르다 하나 불완전하여 일정한 경지에 도달하면 그 벽을 넘기 힘들며 심마에 휘둘릴 수도 있습니다.”
“그럼 네놈들 정파처럼 평생을 거북이 걸음마냥 익히며 죽을 때나 되서야 이제 좀 되었구나 하면서 지팡이 집고 중원으로 나와야겠어? 크크. 제자야 걱정 말아라. 이 사부만 믿고 따라오면 너는 몇 년 안에 천하 제일 고수가 될 수 있을 것이다. 킬킬.”
“전하는 천하를 다스려야 하실 분으로 사악한 무공을 익힐 순 없다. 수라혈마. 혈마교의 무공을 전하께서 익히신다면 천하는 피로 물들 것이다.”
“그거야 말로 반가운 소리군. 키키키키…”
주첨기는 두 고수의 대화를 유심히 들었다.
진천 검황 스승님의 무공은 비록 성취 속도가 느리나 청심한 것이며, 수라혈마 스승님의 무공은 성취 속도가 빠른 대신 심성이 사악해 질수가 있다는 것이다.
그 차이가 어디에서 오는 것일까.
“저는 두 분의 무공을 전부다 배울 것입니다.”
“두 가지 내공심법을 겸용할 수 없습니다. 전하.”
“그렇다. 제자야. 이 사부의 내공심법을 전수 받아 천하를 오시할 내력을 얻어라. 내력만 속행으로 빠르게 쌓을 수 있다면 무공 또한 그만큼 강해질 것이다. 이 추한 늙은이의 무공 따위를 익히다간 다 늙어서야 검을 들을 수 있을 것이다. 키키.”
“비록 제 무공이 성취속도는 느리다 하나 전하의 역량에 따라 다릅니다. 또한 수라혈마의 무공을 익히면 심성이 사악하게 변할 것입니다.
“사악한 것은 네놈들이겠지.”
“말은 바로 하랬다. 수라혈마!”
또다시 두 고수는 서로 잡아먹을 듯 노려보았다. 두 고수의 눈에서 불꽃이 일었다.
“잠시 생각할 시간을 주십시오.”
주첨기는 눈을 감고 생각하였다.
생각을 마친 주첨기가 눈을 뜨며 말하였다.
“사파의 내공심법은 내력을 빠르게 증진시킨다 하였습니까?”
“그렇다. 제자야. 정파의 내공심법보다 두세 배는 빠르지. 잘 생각하였다.”
“아닙니다. 스승님. 내공심법 이외에 내력을 강하게 만들 수 있는 방법은 없습니까?”
“전하. 몇 갑자의 내력을 가지는 신외영물들이 천하에 있습니다만. 무척 존귀하여 찾아 볼 수가 없습니다.”
얼핏 들은 기억이 스치고 지나갔다.
주첨기의 얼굴에 미소가 피어올랐다.
“신외영물이라는 것이 만년설삼 같은 것을 말씀 하시는 것 아닙니까?”
“맞습니다. 전하.”
이곳은 황실이다.
그리고 자신은 황자이다.
천하의 신외영물과 보물들을 담은 보화전에 분명히 있을 것이다.
만년설삼 이외에도.
“다른 신외영물들은 없습니까?”
“공청석유와 천년자패라는 영물이 있다고 전해 내려오고 있습니다. 그것들을 복용하면 몇 갑자의 내공을 증진시킬 수 있다고 하지만. 모두 전설입니다. 전하.”
“전설이라니? 웃기는 소리. 오십 년 전에 놓친 만년설삼을 생각하면 아직도 분에 차는 고만. 산삼주제에 저도 신외영물이라고 도망도 치는데 어찌나 빠른지 내 경공으로 쫓아갈 수도 없었지. 그놈을 먹었으면 너 같은 늙은이 따윈 한주먹감이야. 키키.”
만년설삼과 공청석유 그리고 천년자패라.
“잠시 다녀올 데가 있습니다.”
주첨기의 말에 힘이 들어갔다.
두 스승께 인사를 한 후 밖으로 나왔다. 환관 혜공이 깊숙이 고개를 숙인다.
“혜공. 보화전으로 갑시다.”
“예. 전하.”
미강왕 주첨기가 보화전에 도착하였다.
보화전의 모든 문신들이 급히 종종걸음으로 나와 무릎을 꿇었다.
주첨기가 보화전안으로 들어갔다.
“장충룡 대신은 따라 들어오라.”
혜공이 말하였다.
보화전의 총 책임자인 종삼품 장충룡이 조심히 일어나 주첨기의 뒤를 따랐다.
“미강왕 전하께서 어인 일이시옵니까?”
“장충룡 대신께 부탁이 있어 이렇게 찾아오게 되었습니다.”
미강왕 전하가 태자로 책봉될 것이라 소문이 파다하다. 그러한 전하께서 부탁을 하기 위해 친히 납시셨다.
이 사실 하나만으로도 장충룡은 가슴이 벅찼다.
장충룡이 허리를 굽신거렸다.
“소신이 할 수 있는 일이라면 무슨 일이든 못 하겠사옵니까”
“예. 대신께서 하실 수 있는 일입니다. 제가 무척 필요한 것이 있습니다.”
“무엇이옵니까. 전하. 말씀만 하시옵소서.”
주첨기의 얼굴에 슬그머니 미소가 피어오른다.
“만년설삼. 공청석유. 천년자패!”
한순간!
장충룡의 표정이 굳었다.
미강왕 전하가 말한 세 가지의 영물은 보화전에서도 보물 중에 보물로 속하는 것이다. 장충룡은 허리를 굽신거리며 말을 하지 못하였다.
“대신께선 보화전을 관리하신다 들었습니다. 제게 그 정도는 해주실 수 있으리라 믿습니다.”
주첨기는 걸치고 있던 황자의 장포를 벗어 장충룡의 어깨에 입혀주었다. 가장 신뢰하는 자에게 주는 상이다.
장충룡은 더욱더 할 말이 없어졌다.
“이번 일은 잊지 않을 것입니다. 대신.”
주첨기가 조용히 읊조렸다.
이젠 빼도 박도 못하게 생겼다. 이번 일을 잊지 않겠다 하였으니 눈 한번만 딱 감으면 된다. 장충룡은 결심이 섰다. 지금 자신에게 부탁하시는 분은 곧 황제가 되실 분이시다. 황자의 신뢰를 한 몸에 받을 좋을 기회다. 더군다나 황자께서 친히 장포를 내리시지 않았는가.
“아니옵니다. 전하. 소신은 전하께 충성을 다 할뿐입니다. 그럼 다녀오겠습니다.”
장충룡이 돌아오기까지 시간이 걸렸다. 신외영물들은 보화전의 가장 깊숙한 곳에 있다. 반각이 지났다. 장충룡이 고풍스런 나무 상자 세 개를 가져왔다.
환관 혜공이 이를 받아 탁자 위에 올렸다. 그리고 하나의 상자를 열었다.
상자 안.
흙속에 사람 같이 생긴 인삼이 혜공을 보며 웃었다. 장충룡이 크게 놀라며 급히 상자를 닫았다. 화살 같은 속도였다.
“만년설삼입니다. 도망갈 수도 있으니 조심해야 합니다.”
환관 혜공이 자신도 모르게 뒷머리를 긁적였다.
상당히 머쓱한 모양이었다.
“만년설삼만 조심하면 됩니다. 나머지는 확인해 보셔도 좋습니다.”
혜공은 머뭇거리며 나머지 상자를 열었다.
두 번째 상자 안.
천으로 감싸있는 투박한 호리병이 들어있다.
세 번째 상자 안.
오색 빛깔의 껍질을 가진 커다란 조개다.
“고맙습니다. 장충룡 대신. 오늘 일과 그대를 앞으로 잊지 않겠어요.”
“전하. 소신이 해야 할 일을 했을 뿐입니다.
주첨기는 보화전을 나오면서 얼굴을 굳혔다. 비록 자신이 황자이기는 하나 이 세 가지의 신외영물은 황제폐하의 보물! 대신 장충룡은 자신에게 이것들을 주면 안됐다.
“전하 심려 마십시오. 장충룡 대신은 맡은 일에 충실합니다. 하지만 이번 경우는 틀리지 않았습니까? 상대가 전하였습니다.”
주첨기의 기분을 눈치챈 혜공이 말했다. 갓난아기일 때부터 모셔왔다. 지금 무슨 생각을 하시고 계실지 불 보듯 뻔하였다. 주첨기가 애써 고개를 끄덕였다.
수라혈마와 진천은 주첨기가 가지고온 세 가지 영물을 보며 입을 쩌억 벌렸다.
전설이 아니었다. 실존하였다. 그리고 바로 눈앞에 있다.
만년설삼. 공청석유. 천년자패!
영물들이 황자의 몸에 녹도록 자신들이 이끌어준다면.
황자는 천하 제일의 내력 고수가 되어 자신들의 내력을 뛰어 넘을 것이다!
청출어람(靑出於藍)!
이것은 하루 아침이다.
장난스럽게 실실 웃고 있던 수라혈마의 표정도 얼음장처럼 굳어 버렸다.
자신들이 보고 있는 것에 대해 실로 믿기지 않았다.
“아…”
내일까지 기다릴 것 없다.
지금이라도 당장 할 수 있다.
마음가짐? 자신의 마음은 단호하다.
“지금 당장 섭취하고 싶습니다. 스승님들.”
수라혈마와 검황 진천은 번뜩 정신이 들었다. 주첨기의 눈과 태도에 물러서지 않을 힘이 깃들어 있었다. 제자 주첨기는 상당한 고집쟁이라는 것을 둘 다 어렴풋이 느끼고 있던 터였다.
수라혈마는 아쉽다는 듯한 눈으로 영물을 바라보고 있다. 입맛을 쩝쩝 다셨다. 아무것이나 집어 입안에 넣고 싶다. 슬쩍 검황 진천의 눈치를 보았다.
검황 진천이 검자루에 손을 가져갔다. 푸른 기운이 검자루에서 일렁거린다.
일종의 협박 같았다.
쳇.
“지금 당장?”
수라혈마가 물었다.
“예. 스승님. 기다릴 것이 무엇 있겠습니까. 영물이 눈앞에 있고 저 역시 준비가 다 되었습니다.”
“전하. 상당히 고통스러울 것이나 참으셔야 합니다. 일말의 소리라도 내었다간 목숨이 위태로워 질것입니다.
진천은 걱정스러운 표정이었다.
“예. 스승님”
진천이 만년설삼이 든 상자를 열었다. 상자가 열리자 만년설삼이 씨익 웃었다. 허공으로 솟구쳤다.
타타탁.
만년설삼이 진한 향기와 함께 사라졌다. 진천과 수라혈마의 눈동자가 한곳을 직시하고 있다. 진천이 쏜살같이 몸을 날려 허공에 손을 뻗었다.
휘릭. 진천이 손을 움켜쥐었다. 모습이 보이지 않던 만년설삼이 잡혔다. 주첨기는 신기한 듯 만년설삼을 바라보았다.
끼리리리…
만년설삼이 이상한 소리를 내며 발버둥 쳤다. 흙들이 설삼의 몸에서 떨어졌다.
“이걸 단숨에 삼키셔야 합니다.”
주첨기가 눈살을 찌푸렸다.
인삼이나 사람처럼 움직이고 눈, 코, 입 같은 형상도 가지고 있다. 더군다나 이상한 소리까지 낸다. 흡사 살려달라고 하고 있는 것 같다.
“미안하다만 네가 필요하다.”
주첨기가 입을 크게 벌렸다.
진천이 주첨기의 입에 만년설삼을 넣었다. 주첨기는 바로 입을 다물었다.
으으윽.
입안에서 만년설삼이 몸부림친다. 입이 억지로 열릴 것만 같다. 주첨기는 더욱 이를 악물었다. 그리고 만년설삼을 삼키기 위해 온힘을 다했다. 주첨기의 양볼이 크게 부풀어 올랐다.
꿀꺾! 됐다.
넘어갔다고 생각들 때였다. 배로 넘어가는 만년설삼이 발버둥 치자 심한 고통이 일었다. 주첨기의 허리가 반쯤 꺾이며 온몸이 경직 되었다.
배 깊숙한 곳에서 열화의 기운이 솟구쳐 오른다. 내장을 전부 녹여 버리는 것 같다. 바로 목구멍 까지 신음소리가 차올랐다. 뜨거운 불길이 온 몸을 휘젖는다. 그 고통에 정신을 놓칠 것만 같다.
하지만 주첨기는 정신의 끈을 놓지 않았다.
온 세상이 빨간 색으로 변하며 흔들거렸다.
몸속의 피가 모두 부글부글 끓어오른다.
주첨기의 온몸에서 식은땀이 폭포수처럼 쏟아져 나오고 있었다.
“시작하자. 수라혈마”
“그러지”
진천이 주첨기의 오른쪽 어깨를, 수라혈마가 왼쪽 어깨를 잡았다.
밑으로 눌렀다.
태산처럼 움직이지 않는다. 열화의 기운이 정수리로 쏟아져 나오려 한다. 수라혈마와 진천이 서로의 눈빛을 교환 하였다.
한손으로 어깨를 누르고 한손으로 정수리를 눌렀다. 그리고 각각의 내력을 일으켰다.
생각보다 거대한 기운이다.
하지만 두 고수는 당황하지 않았다.
“으업”
기합 소리와 함께.
진천에게서 푸른색의 기운이 수라혈마에게서 적색의 기운이 분출하였다.
쿵!
주첨기의 무릎이 꿇어졌다.
정수리에 대고 있던 손을 급히 등으로 옮겨 혈도를 짚었다. 수라혈마와 진천의 집게손가락이 교차하며 주첨기의 등을 짚기 시작하였다.
탁. 탁. 탁.
정수리로 솟구치려는 만년설삼의 기운이 억눌러졌다. 대신 만년설삼의 기운은 주첨기의 온몸을 휘저었다. 더욱 강맹해진 기운이 주첨기의 온몸에서 폭발하였다.
머리 끝부터 발끝까지!
온몸이 염화에 휩쓸려 타버리고 있는 것이 아닐까?
극심한 고통이 온몸을 자극하였다.
하지만 참아야 한다.
이까짓 고통 쯤 이겨내지 못할 자신이 아니다. 주첨기가 스스로 되새기며 입술을 질끈 깨물었다. 그의 입술에서 흘러나온 피 한줄기가 목을 타고 흘렀다.
뜨거운 피는 곧바로 증화 되었다.
온몸으로 발출되려는 만년설삼의 기운을 막은 두 고수는 손을 폈다.
탁!
두 고수가 핀 손을 주첨기의 등에 댔다.
주첨기의 온몸이 부르르 떨렸다.
두 고수는 마치 한사람처럼 손발이 잘 맞았다. 동시에 내력을 손으로 돌려 주첨기의 등에 주입하였다.
깨끗하며 따뜻한 기운!
혼탁하며 차가운 기운!
주첨기는 몸속으로 들어오는 또 다른 두 기운을 느꼈다. 두 기운은 어지럽게 몸속에서 움직였다. 한동안 빠르게 움직이던 기운들이 점점 속도가 느려지더니 일정한 방향을 타고 회전하기 시작하였다.
크윽.
오히려 고통이 극심해졌다.
크윽.
주첨기의 의복이 식은땀으로 젖었다.
엄청난 고통에 조금만 방심한다면 혼절 할 것만 같다. 주첨기는 그럴수록 더욱 오기가 생겼다.
이까짓 고통에 질 자신이 아니다.
몸속으로 들어온 두 기운이 만년설삼의 열화를 감싸며 천천히 움직였다.
시간이 얼마나 흘러가는지 모른다.
기운들이 서로 엉켜 몸속에서 몇 번이나 회전하였다. 그러자 만년설삼의 열화는 몸 구석구석으로 퍼져 폭발하는 횟수가 줄어들었다.
시간이 지나면서 주첨기의 온몸이 뻘겋게 달아올랐다.
진천과 수라혈마의 관자놀이에도 식은땀이 송글송글 맺혀 있었다.
몸속의 기운들이 움직이는 속도가 더욱 늦어졌다.
아주 천천히…
피를 타고 흐른다.
그리고 미칠 듯 극심했던 고통이 점차 사그라들기 시작하였다. 온몸을 뜨겁게 태우던 기운이 이제는 따뜻하게 변했다.
한 바퀴 몸속에서 회전을 끝냈다.
나신으로 온천 속에 들어간 듯한 느낌이다.
일그러졌던 주첨기의 얼굴이 점점 평정을 되찾아 가고 있었다.
다시 몸속에서 회전을 시작하였다. 엉키고 엉킨 실타래가 풀린 것처럼!
내력들은 서로의 갈 길 대로 움직였다. 부딪침도 없다. 순탄 대로였다. 드디어 종결짓는 것일까?
기운들은 미세한 혈관들을 하나한 돌았다. 그리고 한곳으로 빨려 들어가기 시작하였다.
배꼽 밑!
넓은 공간이라도 생긴 것일까.
그 공간은 따뜻한 만년설삼의 기운들로 점점 채워졌다. 공간이 가득 채워지자 몸에서 돌단 기운들의 회전도 멈췄다. 두 개의 다른 기운들이 등 쪽으로 이동하여 점점 사라졌다.
두 개의 기운들이 사라졌다.
그러나 여전히 배꼽 밑의 공간에는 따뜻한 기운으로 가득했다.
진천과 수라혈마는 주첨기의 등과 어깨에서 손을 땠다.
조용한 정적 속에…
주첨기의 얼굴이 평온해졌다.
커다란 숨소리가 일정하게 들려왔다.
주첨기가 눈을 떴다.
모든 것이 달라보였다.
천장의 아주 작은 흠집이 눈에 들어왔다. 평소 같으면 보이지도 않을 것인데.
주첨기는 놀라하며 뒤를 돌아보았다. 진천과 수라혈마가 식은땀을 흘린 채로 가부좌를 틀고 앉아 있었다.
매우 상쾌하였다.
온몸을 태울 듯이 일었던 극심한 고통은, 배꼽 밑으로 강대한 기운을 남기고 사라졌다. 그리고 온몸은 온천 속에 있는 것처럼 따뜻하였다.
진천과 수라혈마도 운기를 마쳤다. 수라혈마는 바로 진천의 손을 끌었다. 손목을 잡았다.
수라혈마의 눈이 번뜩 커졌다.
“이…이 갑자!”
진천 역시 주첨기의 손목을 잡더니 같은 반응을 보였다.
“과연 만년설삼이로다… 오룡봉성(五龍奉聖)…. 열린 중단전으로 내력이 가득 찼구나. 대단해… 대단해… 전하. 괜찮으십니까?”
“예. 스승님. 어떻게 된 건지 모르겠습니다. 극심한 고통이 거짓말처럼 사라졌습니다. 그리고 지금은 아주 먼 곳까지 가까이 있는 것처럼 잘 보이며 온몸이 날아갈 듯 가뿐합니다. 또한 만혈(滿血)이 따뜻하여 온천 속에 들어가 있는 듯 하며, 배꼽 밑으로 왠지 모를 기운들이 깃들어 있습니다.”
“킬킬… 중단전이 열리고 이 갑자의 내력이라. 제자야. 너는 이제 내력만큼은 고수가 된 것이다. 만년설삼 만으로도 내력이 이 갑자로 증진 되었다. 나머지 영물들까지 받아들인다면 너는 천하를 오시할 수 있을 것이다. 크크크… 제자야.”
스승님의 말대로 아직 공청석유와 천년자패가 남았다.
“전하. 비록 이 갑자로 내력이 증진되었으나 무공을 모르면, 갓난아기에 명검을 쥐어준 것과 같습니다. 내일부터는 무공 수련에 더욱 정진하셔야 합니다.”
“맞다. 내일부터 바로 내 절학인 파천마권을 전수해주마.”
“아닙니다. 전하 신의 절학인 구천신검을 전수해 드리겠습니다.”
치릿!
역시나 진천과 수라혈마가 얼굴을 붉혔다.
서로의 언성이 높아졌다.
주첨기가 빙그레 웃었다.
“예 스승님들. 허나 나머지 영물들은 어떻게 되는 것입니까?”
“전하. 만년설삼이 기운이 전하의 몸속에서 완전해 질 때 다음 영물을 섭취 하실 수 있습니다. 저와 수라혈마가 옆에서 보좌 한다면 한 달이면 충분합니다.”
“흥! 너와 나가 아니라. 나와 너겠지.”
두 늙은 고수가 어린아이처럼 다투는 모습에 웃음이 나올 뻔 하였다.
주첨기는 남은 두 상자를 바라보며 주먹을 불끈 쥐었다.
자신의 방으로 돌아온 주첨기는 한동안 잠을 이루지 못했다. 이리저리 뒤척이다 결국 상체를 일으켰다. 벽에 기댄 채 자신의 손을 바라보았다.
이전과는 다른 힘이 느껴진다.
단전이라 하였던가?
그곳에서 스멀스멀 올라오는 기운을 느끼고 있으면 괜스레 미소가 지어진다.
아스라이 손에 잡힐 듯. 그러한 힘이다.
“형가”
주첨기의 음성에도 미세하게 힘이 묻어져 나왔다. 천장의 그림자가 낙하하였다. 형가가 무릎을 꿇은 채 모습을 드러냈다.
“예. 전하”
“너의 내공을 얼마나 되지?”
“채 일 갑자가 되지 않습니다. 전하.”
형가 같은 고수가 일 갑자가 되지 않는다 하였다. 주첨기는 약간 놀란 듯 눈을 크게 떴다. 그러나 곧 놀란 기색은 사라지고 담담하게 고개를 끄덕인다.
“현재 내 내공은 이 갑자다.”
언제나 주첨기의 곁을 떠나지 않는 형가.
주첨기가 만년설삼을 섭취한 장면을 보았으며 두 고수들과 주첨기의 대화 내용 또한 들었다.
어찌 그것을 모를까.
“확실히 감이 잡히지 않는다. 이 갑자라는 내공이 어느 정도의 힘을 지녔는지.”
“전하께서 모시고 있는 두 스승님들의 내공은 약 사 갑자 정도로 추청됩니다.”
“사 갑자라…”
“예. 전하. 이 갑자의 내력은 가옥을 부수고, 삼 갑자의 내력은 강을 막으며, 사 갑자의 내력은 태산을 부순다고 전해지고 있습니다.”
“어느 정도 내력을 지녀야 고수란 소리를 들을 수 있지?”
“일 갑자입니다. 전하께서 모시고 있는 두 스승님의 사 갑자란 내력은 다른 무림인들에 비해 월등히 높은 것입니다. 무림에선 이 갑자의 내력만으로도 절정 고수의 반열에 오를 수 있습니다.”
모시고 있는 주인이 이 갑자의 내력을 얻었다.
당연히 수하로써는 흥분할 수밖에 없다. 평소 때와 다르게 말이 많아졌다.
“그래?”
“하지만 내력은 바탕이 될 뿐입니다.”
주첨기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하였다.
“무공 수련에 정진할 것이다.”
황자의 몸으로써 무림인 스승을 두 명이나 두었다. 영물까지 섭취하여 내력이 월등히 증진 되었다. 무공이란 것에 몸을 한번 담은 이상.
그곳에 우뚝 서야 하는 게 당연하다. 한번 시작했으면 끝을 봐야 한다.
그것이 주첨기의 성격이었다.
“그래. 나는 이만 잘 것이다.”
얼마나 지났을까?
잠을 자고 있던 주첨기가 눈을 번쩍 떴다.
타다닥.
바로 옆에 있는 것처럼 지붕위의 소리가 들렸다.
누군가 있다.
잠시 들렸던 소리가 한순간 멈췄다.
자객이다!
드디어 왔군.
주첨기가 지붕 쪽으로 귀를 기울였다.
일류의 자객이라 움직임을 멈춘 자객들에게선 아무런 소리도 나지 않았다.
주첨기는 잠에 든 것처럼 눈을 뜨지 않고 조용하게 숨을 쉬었다.
타다닥.
자객들이 지붕을 타고 창문 쪽으로 움직였다.
발걸음 소리! 여섯 명이다.
조용히 행동해야 하는 자객치고는 상당한 숫자다. 주첨기는 내심 긴장하며 입을 다물었다. 그들은 점점 가까워 졌다. 이윽고 그들이 창문의 바로 옆으로 이동하였다. 이불속에 들어있는 주첨기의 손이 주먹을 쥐었다.
슈슈슉!
검은 그림자와 함께 검광이 번쩍였다.
비호같이 주첨기의 위로 날라들었다.
그와 동시에 주첨기가 이불을 박차며 옆으로 몸을 날렸다. 허공에서 세바뀌돌며 착지하였다.
챙!
어느새 모습을 드러낸 형가가 정면의 자객에게 검을 날렸다.
주첨기는 가만히 보고만 있지 않았다.
창문 쪽으로 몸을 날렸다.
슈욱.
몸이 자신이 생각 하는 대로 움직인다.
세 명의 자객이 일제히 주첨기를 향해 달려들었다.
시퍼런 칼날이 창문 틈사이의 월광에 번쩍였다.
주첨기의 머리 위로 떨어지는 칼날!
희한하게도 자객들의 동작 하나하나가 눈에 박힌 듯이 들어왔다. 주첨기가 매우 능숙한 동작으로 머리위의 칼날을 피했다.
복면을 쓴 자객.
그들의 눈동자가 의아하게 변했다.
자객 세 명은 동시에 주첨기를 공격하였다.
휙. 휙. 휙
뒤로 몸을 날려 허리의 공격을 피하고, 몸을 비틀며 머리 쪽으로 떨어지는 대각선의 공격 피했다. 그리고 마지막 검이 주첨기의 가슴을 향해 찔러 들어왔다.
반사적으로 몸이 움직인다.
몸을 숙였다.
허공을 찌른 검날을 집게와 검지 손가락으로 잡았다. 따뜻한 기운이 손 쪽으로 밀려왔다.
흐헙!
손가락을 비틀자 ‘챙’ 하고 검이 반절로 부러졌다.
당황한 자객들에게서 허점이 드러났다.
몸을 날린 주첨기는 발로 한 자객의 얼굴을 돌려 찼다.
자객이 벽으로 나가 떨어졌다.
연속적으로!
주첨기는 바로 옆 자객의 복부를 주먹으로 쳤다.
풀썩.
자객이 배룰 움켜잡으며 무릎을 꿇었다.
남은 한 자객은 서둘러 몸을 돌려 도망가려 하였다. 주첨기는 그의 목덜미를 잡고 뒤로 잡아 당겼다. 목을 움켜쥔 후 어깨를 짓눌렀다.
자객은 꼼짝도 못하고 그 자리에서 무릎이 꿇려졌다.
주위를 둘러보았다.
주첨기의 공격에 쓰러진 두 명의 자객.
그리고 형가의 검에 의해 부상을 입은 자객 세 명이 바닥에서 신음을 흘리고 있다.
바람을 가르는 움직임의 소리와. 검끼리 부딪치던 소리가 일순간 멎었다. 조용한 가운데 자객들의 조용한 신음 소리만 들렸다.
주첨기는 제압한 자객의 귓가에 속삭였다.
“너희들을 누가 보냈는지 알고 있다. 그 자에게 내 말을 똑똑히 전하라. 나 미강왕 주첨기는 이 곳에서 물러서지 않고 얼마든지 받아주겠다. 다음은 더 많은 인원을 기다리고 있겠다.”
움켜쥔 목을 위로 잡아당겨 자객을 일으켰다.
복면속의 자객의 눈이 불안하게 흔들거렸다.
“방자한 것들! 썩 물러가라!”
주첨기가 외쳤다.
쓰러져 있던 자객들은 간신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서로가 서로를 부축하며 창문으로 몸을 날렸다. 한명을 제외한 다섯 명의 자객은 쓰러질 듯 위태위태하였다. 지붕 쪽으로 도망가는 자객들의 소리가 점점 멀어졌다.
주첨기는 침대에 걸터앉았다.
어지러워진 방안. 곳곳에 고인 흥건한 피. 이제야 실감되었다.
이 갑자의 내력이란 어떤 것인지!
자객들의 공격과 소리가 모두 보이고 들렸다. 그리고 자신의 주먹과 발에 들어간 힘은 바위를 부숴 버릴 것만 같았다.
강해진 자신이지만.
미소 짓지 않는다.
아니. 미소 짓지 않아야 한다. 더욱 강해질 것이기 때문에…
그때 가서 미소 짓자.
“궁녀들에게 미안하게 됐군.”
어지러워진 자신의 방에 대해 소문을 낸다면 구족을 멸할 것이다. 이렇게 으스름을 줘야 하는 내일을 생각하니 눈살부터 찌푸려졌다.
“아무래도 오늘밤은 자기 그른 것 같군.”
유난히 달빛이 밝은 밤이었다.
주첨기는 일류장인들에게 왕부내의 공연장을 연마장으로 개조하라 명하였다. 며칠 후 과연 일류장인들의 솜씨라 훌륭한 연마장으로 탈바꿈 하였다.
고급 나무로 깐 바닥에 윤기가 흘렀다.
넓은 지붕을 유지하기 위한 나무기둥 여러 개가 곳곳에 박혀 있다.
천명은 능히 수용할 수 있을 정도의 크기다.
그곳에 단 세 사람만 있었다.
“어제 자객 여섯 명이 암습해 왔었습니다.”
수라혈마가 흥미로운 듯한 기색을 띄었다.
“하지만 간단하게 제압할 수 있었습니다.”
“낄낄. 그럼 그렇지”
“전하. 옥체를 보존하셔야 합니다.”
“알고 있습니다. 스승님. 그래서 무공에 정진할 생각입니다. 두 스승님들께선 오늘부터 제자에게 무공을 전수 해주실 수 있으십니까?”
주첨기는 허리를 숙이며 공손히 청했다.
“예. 전하. 신의 절학인 구천신검을 전수해 드리겠습니다”
“웃기는 소리. 구천신검? 아홉 개의 하늘? 낄낄. 제자야. 지금 당장 내 절학 파천마권을 전수해주마. 내 절학 파천마권은 하늘도 깨트릴 수 있는 무공이다. 저 늙은이의 무공 이름이 뭐냐. 구천! 아홉 개의 하늘이라 한다. 하늘이 아홉 개? 말도 되지 않지. 이름부터에서 차이가 나지 않느냐. 저 늙은이의 무공은 내 무공보다 한수 아래 아니 십수 백수 아래지.”
검황 진천이 불같은 눈으로 수라혈마를 노려보았다. 수라혈마는 코웃음 치며 어깨를 으쓱 하였다.
“제자는 잘 모르겠습니다. 두 스승님의 무공을 모두 배우겠습니다.”
“아니다. 제자야. 잘못 생각하였다. 내 절학만 익혀도 가히 천하 군림 할 수 있다.”
“사파의 무공을 익히면 마음이 혼잡해집니다. 전하.”
“예. 스승님. 그래서 두 스승님의 무공을 모두 배워 중용을 지키겠습니다. 또한 저는 두 스승님의 제자이지 않습니까. 어느 한 분의 무공만을 배울 생각이면 어찌 두 스승님을 모셨겠습니까.”
검황 진천의 얼굴에 안심한 기색이 스치고 지나갔다.
반면에 수라혈마는 그렇지 못했다.
황자 미강왕 주첨기.
이 소년을 자신만의 제자로 만들고 싶다.
그러나 검황 진천이 시시콜콜 시비를 걸며 이를 막지 않은가?
그렇다고 진천과 생사를 두고 겨루기엔, 그가 너무 강하다. 한번 공격이 시작되면 어느 한쪽이 죽기 전까진 멈추지 않을 것이 분명하다.
살든가 죽든가.
확률은 반반이다.
‘네 뜻대로 되게 놔두지 않을 것이다. 수라혈마. 좋은 기회다 싶어 전하를 사파인으로 만들어 천하를 좌지우지 하려는 네 속셈을 모를 쏘냐’
진천은 일찍부터 수라혈마의 속내를 간파하고 있었다.
“할 수 없군. 나는 마음이 넓은 사람이라 제자의 의견도 따라주지. 좋아. 하지만 제자야. 오늘은 이 스승의 무공부터 익혀라. 낄낄…”
“예. 스승님.”
얼굴을 일그러트리고 있던 수라혈마는 코를 세웠다.
“늙은이. 이만 나가지? 그리고 천장에 달라붙어 있는 놈도 나가라. 지금부터 본좌가 내 애제자에게 절학을 전수할 것이다.”
진천은 느긋하게 밖으로 나왔다.
미강왕 전하의 마음을 올바르게 이끌도록 하기 위해선, 자신의 무공을 수라혈마의 무공보다 한걸음 늦게 익히는 게 좋다.
혼잡한 것을 정심한 것으로 정화 시킨다!
수라혈마의 절학 파천마권으로 생긴 사념을 자신의 절학인 구천신검으로 정화 시킨다.
다행히도 전하는 이미 생각하고 있었던 것 같다.
전하께서 말씀하셨다.
[중용을 지킬 것입니다]중용!
이는 정도이다.
전하의 생각은 벌써부터 정도를 걷고 있었다.
주첨기의 말을 떠올린 검황 진천의 얼굴에 슬그머니 미소가 피어올랐다.
‘황혼에 제자를 만났다. 다만 수라혈마와 같은 스승이라는 것이…’
미강왕 주첨기.
그는 대국의 황자이기 전에 자신의 자랑스러운 제자로 성장할 것이다. 앞으로 수라혈마의 마수를 견제하고 정도의 길을 걷게 하는 게 자신이 해야 할일이라.
검황 진천은 속으로 다짐하였다.
우연히 정파와 사파의 두 절정고수를 초청한 것은 뜻하지 않게 두 고수의 경쟁 의식을 자극 하고 있었다.
결과적으로 주첨기에게 이로운 쪽으로 돌아가고 있었다.
“앞에서 말했듯이 이 스승의 절학은 파천마권이다. 하늘을 깨트리고 천하를 군림하는 절대적인 권법이지. 낄낄. 나는 이 파천마권 하나로 사파무림을 통일 하였다. 제자야.”
“예.”
“우선 무엇인지 알아야 배우겠지? 멀리 떨어져라 그리고 잘 보아라. 제자야. 이것이 바로 하늘도 깨트린다는 파천마권이다!”
주첨기는 뒤로 멀리 떨어졌다.
탁!
수라혈마가 바닥을 박찼다. 허공으로 뛰어 올랐다.
“제 일초식 적광뇌락!”
수라혈마가 외치며 허공에서 몸을 거꾸로 돌렸다.
빠른 속도로 바닥을 향해 떨어지기 시작했다.
팟!
일권을 뻗었다.
쾅!
연마장의 바닥이 깊게 패이며 커다란 소리가 났다. 바닥의 잔해가 주위로 날렸다. 주첨기는 날라오는 잔해들을 가볍게 피하며 수라혈마의 동작을 주시했다.
팟!
이권을 뻗었다.
수라혈마의 권에 맺힌 적색의 기운이 또다시 바닥을 내리쳤다. 첫 번째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의 소리가 울렸다.
팟!
마지막. 바닥에 거의 다다른 수라혈마가 양 주먹으로 삼권을 뻗었다. 수라혈마는 바닥을 깊숙이 파고 들어갔다. 펑 하는 소리와 함께 땅이 흔들 거렸다.
쉬릭!
깊이 파인 바닥 속에서 수라혈마가 솟구쳐 나왔다.
“제 이초식 백골음명!”
갑자기 수라혈마가 멈춰 섰다. 가만히 서있는 듯하지만 주위의 기운들이 그에게로 빨려 들어가고 있다. 수라혈마가 가슴 쪽으로 끌어 모은 주먹에 적색의 기운이 눈에 확연할 정도로 일렁거렸다.
그 상태로 수라혈마는 가만히 있었다. 마치 돌이 된 것처럼 움직이지 않는다.
갑자기.
“합!”
수라혈마가 기합을 지르며 앞을 향해 권을 뻗었다.
콰콰콰쾅!
한쪽 벽이 완전히 허물어져 밖이 훤히 보였다.
“제 삼초식 구마회혼”
아홉 개의 무적이다!
무엇이 진짜고 무엇이 가짜인가? 저것이 가짜인가?
틀렸다.
전부다 진짜다.
어떻게 봐도 아홉 개로처럼 보이는 수라혈마의 권들이 쭉쭉 뻗었다. 저걸 한몸에 맞았다간 온몸이 형체도 남김없이 바스라 질것이 분명하다.
주첨기는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아찔하였다.
“제 사초식 만세혈수!”
휘리리릭.
차가운 바람이 불었다.
수라혈마의 잔영이 곳곳에 남았다. 이 갑자의 내력이 없었다면 보지 못했으리라. 수십 개의 잔영이 연마장을 채웠다. 잔영들은 제각기 일권을 뻗고 있었다. 그곳에서 팟 하며 적색의 기운이 불똥을 튀겼다.
순식간에 연마장에 가득 찬 잔영들이 권을 내지렀다. 잔영들이 내지르는 주먹과 주먹. 개미 한 마리조차 빠져나갈 구멍이 없다. 이 범위 안에 든 자들은 결코 피할 수 없을 것이다.
가히 이 사람이 인간일까?
주첨기는 믿기지 않았다.
“제 오초식 귀왕강림!”
가득 채웠던 잔영들이 하나둘 사라졌다. 결국 연마장의 제일 중앙에 수라혈마 한명이 남았다. 가만히 서있는 수라혈마의 전신에서 주위를 압도하는 기운이 뿜어져 나오기 시작하였다.
수라혈마의 눈이 점점 충혈되어 갔다.
불룩.
핏줄이 터질 듯 부풀어 올랐다.
부모를 죽인 원수와 대면한 것 같은 몹시 분노한 모습이다.
눈이 완전히 충혈 되었다. 흰자와 검은자가 보이지 않는다. 눈은 오로지 적색으로 가득 하다.
그야 말로 귀왕의 모습이다!
귀왕으로 변한 수라혈마가 바닥에 주먹을 꽂았다. 그리고는 수없이 바닥에 주먹을 휘둘렀다. 수십 개의 권이 일제히 바닥을 내리쳤다. 바닥의 주위로 ‘콰앙’ 하는 소리가 울렸다.
거대한 폭발이 일었다.
잔해들이 날렸다. 뿌연 먼지가 일었다. 차츰차츰 먼지들이 가라앉자 시야가 트였다.
잔해들의 가운데엔 왜소한 노인 한명이 주첨기 쪽을 향해 서있었다.
그가 거칠게 숨을 몰아쉬었다.
“후우…후우… 오초식 만큼은 자제하려고 했는데. 낄낄. 제자야. 다 보았지?”
“예. 스승님.”
연마장은 폐허나 다름없게 변해버렸다. 놀란 어전시위들이 병기를 꺼내들고 주위로 달려왔다. 주첨기가 손을 내젓자 모두 각기 다른 방향으로 사라졌다.
주첨기는 위력을 실감하고 속으로 크게 놀랐다.
이정도 일 줄은 몰랐다.
“내력을 자제하였다. 모든 내력을 분출한다면 방금 보았던 것의 세배 이상의 위력을 발할 것이다.”
주위를 완전히 폐허로 만들어버렸는데, 이것이 내력을 자제한 것이란 말인가?
위력은 실로 놀라웠다.
주첨기는 할 말을 잃어버렸다. 수라혈마가 흐뭇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제자야 지금 본 초식들이 앞으로 네가 배울 것들이다. 낄낄낄…”
“예 스승님.”
드디어.
본격적인 수련이 시작되었다. 주첨기는 전율로 몸을 떨었다.
하지만 무표정! 주첨기의 얼굴은 몸과 다르게 매우 담담하였다.
퇴수산의 어경정
약 세 달만이다.
바로 밑으로 보이는 어화전은 봄을 알리듯 꽃들이 피어나기 시작하였다.
어경정을 오른 주첨기는 삼개월전과는 판이하게 달랐다.
총기가 가득해 보였던 어린 소년의 모습은 찾아볼 수가 없었다.
외모만 어릴 뿐이다.
그에게서 흘러나오는 기운은 감히 누구도 접근하지 못할 정도였다.
묵묵히 먼 곳을 바라보고 있는 소년이 주먹을 쥐었다. 한순간 붉은 기운이 어스름 거리다 사라졌다.
이 갑자의 내력 때문일까?
아니면 무학에 타고난 재능이 있었기 때문일까?
한 달 만에 파천마권 삼성에 이르렀다.
파천마권이 사파의 무공이나, 주첨기는 사념에 빠져들지 않았다. 진천의 가르침과 함께 만년설삼의 정순한 내력이 사파의 사념을 다스리게끔 만들고 있었다.
“전하. 폐하께서 찾으십니다.”
눈치를 줄곧 보고 있던 여러 환관들 중 혜공이 나섰다.
어린 황자에게선.
이제 황제의 면모가 엿보이고 있다.
“폐하께서요?”
“예. 전하. 건천궁으로 납시라는 폐하의 분부이옵니다.”
혜공이 간드러진 목소리로 말하였다.
주첨기는 바로 몸을 돌려 건천궁으로 이동하였다.
주첨기의 보폭은 일정하였다.
바닥 위에 살짝 떠 스쳐지나가듯 가벼워 보였다. 상당히 먼 거리임에도 불구하고 전혀 피로하지 않았다. 주첨기가 건천궁의 입구에 달하자 어전시위들과 대신들이 예를 갖췄다.
황제의 집무실인 건천궁.
주첨기가 입궁하였다.
홍희제는 용좌에 앉아 있었다. 그는 무척 화가 나 있었다.
“폐하. 부르셨습니까?”
홍희제의 표정이 점점 의아하게 변해갔다.
가끔씩 어리광도 피우던 황자의 모습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졌다.
황자의 몸에서 범상치 않은 기운이 흘러나온다. 안광 또한 살아있는 듯 번뜩이는 것이었다.
정광으로 가득 찬 눈. 단호한 입. 풍겨 나오는 기도. 황자로써의 자세.
모든 것이 완벽하다.
어린 황자에게서 황제로써의 풍모가 나타나고 있었다.
홍희제의 화난 표정이 풀어졌다.
그렇다고 화난 감정까지 모두 없어진 것이 아니다.
“황자. 어찌하여 이 아비를 보러 오지 않는가? 한 달 동안 황자의 모습을 볼 수 없었다.”
아!
주첨기는 낯이 뜨거웠다.
무공에 전심을 다하느라 문안인사를 드리지 못한지 한 달이 지났다.
“폐하. 죄송하옵니다.”
“됐다. 궐내에 황자가 무림인 두 명을 스승으로 섬기고 있다는 소문이 돌고 있다. 사실인가?
“예. 폐하.”
“어찌하여 황자는 글을 멀리하고 무림인 스승을 섬기는가! 황실의 체면은 안중에도 없단 말이더냐!”
홍희제가 호통 쳤다.
어렸을 적부터 총애를 한 몸에 받았던 주첨기다.
이렇게 폐하가 화가 난 것은 처음 보았다.
하지만 할 말이 없었다.
무림인 스승을 섬기는 것도 사실이었고 앞으로도 평생 섬길 것이다.
“왜 말이 없느냐. 황자. 어째서 글을 멀리하고 무림인들을 가까이 하느냐. 황자의 도리를 잊은 것이냐!”
묵묵히 있던 주첨기가 머리를 조아렸다.
“폐하. 저를 믿사옵니까? 그렇다면 지켜봐주십시오.”
주첨기가 머리를 조아린 채로 고개를 들지 않았다. 홍희제는 말없이 주첨기를 내려다보았다.
어린 황자가 벌써 이만큼이나 컸단 말인가.
홍희제의 입술이 천천히 열렸다.
“좋다. 황자는 어렸을 적부터 짐의 기대에 어긋나지 않았다. 앞으로도 계속 지켜볼 것이니 짐의 기대에 부흥하리라 믿겠다.”
“감사합니다. 폐하.”
건천궁에서 나온 주첨기는 마음이 무거웠다. 호통을 맞은 것은 이번이 처음 이었다. 한 번도 이런 적이 없었던 지라 발걸음에 천만근의 추를 매단 듯하였다.
허나! 마음먹은바.
어쩔 수가 없다. 이미 결정되어 진 일이다.
주첨기는 진천과 수라혈마가 있는 곳으로 향했다.
방안에서 수라혈마의 소리가 들려왔다.
“한번 겨뤄보자. 진천. 낄낄… 왜 겁나나?”
“흥! 좋을실 대로.”
주첨기가 웃으며 문을 열었다.
“스승님들.”
“오! 내 애제자.”
추한 얼굴의 노인이 가슴과 손을 폈다.
“전하.”
신선 같은 수염을 가진 노인은 포권하였다.
“드디어 오늘입니까?”
한 달 동안 이날을 기다렸다.
신외영물 천년자패가 눈앞에서 기다리고 있다.
“낄낄. 그렇지. 이 천년자패의 내력을 받아들이면… 아마 제자의 내력은 우리 둘의 내력보다 더욱 클 것이다. 좋지? 천년자패의 경우 만년설삼보다 많은 내력을 지니고 있으니 그만큼 더한 고통도 뒤따를 것이다. 참을 수 있겠지? 제자야. 낄낄낄…”
“예. 스승님. 고통을 참지 못하면 어찌 사내대장부라 할 수 있겠습니까.”
만년설삼을 섭취할 때의 고통이 아직까지 눈앞에 선하다. 그런대도 주첨기는 단호하게 대답하였다.
수라혈마와 진천이 서로의 눈빛을 교환하였다. 수라혈마가 고개를 끄덕이자 진천이 상자를 열었다. 오색빛깔의 천년자패가 그 모습을 드러냈다.
진천은 내력을 일으켰다.
천년자패의 입은 진천의 내력에도 불구하고 열리지 않는다. 수라혈마까지 합세하여 억지로 입을 벌렸다.
어느새 부터인가.
수라혈마와 진천이 서로를 향해 얼굴을 붉히지 않고 있었다. 수라혈마가 진천에게 시비를 거는 것을 뺀다면. 둘의 관계는 사이가 그다지 좋지 않은 친구 같아 보일정도로 발전하였다.
천년자패의 입이 열렸다.
화악!
은빛이 갑자기 쏟아져 나왔다. 모두 눈이 부셔 눈을 질끈 감았다. 시간이 지나자 은빛은 사그라 들었다.
엄지 손가락만한 진주가 보였다.
바로 저것이다.
몇갑 자의 내력을 가지고 있는 영물!
주첨기가 진주를 끄집어 요리저리 훑어보았다. 당장이라도 내다 팔아도 고급 중에 최고급 진주로 팔릴 것이다. 황성에서 많은 진주를 보았지만 이렇게 빛깔이 영롱한 것은 처음본다.
“시작하겠습니다. 스승님들.”
주첨기는 입안에 진주를 넣었다.
아직까진 아무렇지 않았다.
향긋한 향기가 입안에 맴돌았다.
꿀꺾.
진주가 식도를 타고 넘어갔다.
흡!
역시나 고통이 일었다. 황급히 만년설삼의 기운을 끌어 모아 진주를 감쌌다. 그러나 배속을 수만 개의 검으로 찔러 넣는 것 같은 고통이 더욱 강해졌다.
수라혈마와 진천이 주첨기를 꿇어앉혔다. 둘은 등에 진기를 불어 넣기 시작했다. 주첨기의 의지대로 만년설삼의 기운까지, 수라혈마와 진천의 진기와 동화되어 진주 기운의 주위를 맴돌기 시작하였다.
덜덜덜…
몹시 추워졌다.
주첨기의 눈썹에 설얼음이 맺혔다.
점점 번져갔다.
머리카락이 쭈삣쭈삣 서며 하나하나 얼었다. 수라혈마와 진천은 당황하였다.
천년자패의 내력이 생각보다 강맹하고 컸다. 다행인 것은 주첨기의 몸에 녹아있는 만년설삼의 내력이 천년자패의 한기를 어느 정도 제어해주고 있다는 것이었다.
처음부터 천년자패를 먹었으면 목숨이 위태로웠을 게다.
아니, 거의 죽음이 확정되었을 게다.
영물의 섭취 순서에 있어 운이 상당수 따랐다.
으윽.
주첨기의 코와 귓구멍에서 한기가 뿜어져 나왔다. 한기는 주위의 가구들에 부딪쳤다. 가구들은 바로 설얼음이껴 허연 김이 피어 올렸다.
시간이 지나갈수록.
천년자패의 내력을 제어하는데 힘이 들었다.
안되겠다.
마지막 내력까지 뿜어내야 한다.
진천과 수라혈마의 입술에서 한줄기의 피가 동시에 흘러나왔다.
주르르륵.
뜨거운 피.
곧 주첨기의 몸에서 풍기는 한기에 얼어붙고야 말았다.
이래선 전부다 위험하다.
“전하… 제가 일러주는 대로… 내력을… 움직이십시오.”
“이…놈… 지금 내 제…자에게 네..놈의 내공 심법을 전수하…려는 게…아니냐”
“천…년자패…는 극음… 수라…혈마…너의…내공 심법…은 오히려 독이 된다… 나의 내공 심법만이…”
정말로 여기서 잘못 되었다간 세 명 모두 주화입마 당한다.
모든 무공을 상실한다?
끔찍하여 생각조차 하기 싫다.
수라혈마는 무언으로 진천의 내공심법을 전수하는데 동의하였다.
주첨기가 고통에 부르르 떨며 고개를 끄덕였다.
― 대거혈을 주축으로 시작하여 회전한다. 중극, 혈해, 양구, 해계, 태중을 거쳐 위로 올린다. 다시 대거 혈을 지나 음교, 중완, 양문, 유문, 거궐, 옥당, 선기, 염천 그렇게 두 번을 회전한다. 옥당혈로 내려와 기운을 양팔의 둘로 나눠, 협백, 소해, 공최, 극문,내관 순으로 두 번을 회전한 후 단전으로 빨아들인다. 또다시 거료혈까지 내력을 끌어 올려 혹중과 선기 염천을 세바퀴 맴돌다 태충 혈까지 내려와 다시 옥당까지 회전한다.
주첨기의 머릿속으로 진천의 음성이 들렸다.
전음이다.
주첨기는 고통 속에서도 모든 혈도를 기억하였다. 그리고 기억을 더듬어 내력을 움직였다.
이것이 아니다.
수라혈마와 진천의 얼굴에 당혹감이 일었다.
그렇다고 등에서 손을 뗄 수도 없는 상황이다.
주첨기의 의지대로 그들의 내력이 움직이고 있었다. 주첨기의 내력이 자석처럼 두 고수의 내력을 끌어당겨 온 혈을 따라 움직였다.
내력들이 혈도를 따라 회전할 때마다.
천년자패의 내력이 주첨기의 몸속에 녹아들었다.
그뿐 만이 아니었다.
두 고수의 내력들까지 더불어 빨려 들어갔다.
두 고수가 자신의 내력들을 거두려 했지만 어찌된 일인지 더 빠르게 빨려 들어갈 뿐이었다.
중극… 옥당… 소해… 선기… 염천
주첨기는 운기를 멈추지 않았다.
얼음장 같이 차가웠던 몸이 따뜻해져 간다.
이윽고
주첨기의 눈에서 뇌락 같은 안광을 번쩍였다.
팟!
진천과 수라혈마가 벽으로 튕겼다.
쿨럭.
두 고수의 입에서 한 웅큼의 선혈이 뿜어졌다. 수라혈마와 진천 각각 일 갑자에 육박하는 내력이 주첨기의 몸에 녹아버렸다.
화아아악!
주첨기의 몸에서 빛이 뿜어 나왔다. 주첨기의 몸이 저절로 일어났다. 대(大)자로 양팔과 양다리를 쭉 피고 고개를 천장을 향해 들었다.
쫘지지직
주첨기의 옷이 사정없이 찢겨져 주위로 떨어졌다.
그의 피부도 옷처럼 찢겨지려는 것일까.
가슴부분에 가기 시작한 금이 온몸으로 번졌다. 마치 쪼개지기 직전의 도자기 같다.
“아…”
두 고수가 입을 쩌억 벌렸다.
투두둑.
주첨기의 갈라진 피부가 바닥으로 떨어졌다.
피부가 떨어진 곳에는 새로운 살이 돋아 있었다.
윤기가 흘렀다.
매우 부드럽고 매끄럽게 보였다.
마지막 한 조각의 피부가 떨어졌다.
완전히 나신이 된 주첨기!
투드드득.
뼈들이 움직이며 서로 자리를 찾아가는 소리가 요란스럽게 들렸다.
“환…골…탈…태”
수라혈마가 믿기지 않는 듯한 표정으로 중얼 거렸다.
그것뿐만이 아니다.
어린 아이의 새끼손가락 만큼이나 부풀었던 주첨기의 태양혈이 사그라들기 시작한 것이다.
“설마…”
그럴 리가 없다.
그 경지는 단지 전설일 뿐이다.
태양혈이 무공을 익히지 않은 사람처럼 평평해졌다.
그리고 주첨기의 몸에서 흘러나오고 있던 엄청난 기운이 일순간에 사라졌다.
눈에서 발출하던 정광도 거짓말처럼 증발하였다.
무공을 잃은 것이 아니라면…
이것은!
화경의 경지다.
무공을 익힌 흔적이 없어져 평범한 사람처럼 변하는 이 경지는 단지 전설인 줄 알았다.
“반박귀진…”
주첨기가 나신으로 누워 정신을 잃었어도.
검황 진천과 수라혈마는 넋을 잃고 바라볼 뿐이었다.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이게 꿈인지 생시인지 분간도 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