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mortal martial artist RAW novel - Chapter 20
제5화 사파 고수들의 활약
하얀 의복을 정갈하게 차려입은 대신관들은 한자리에 모였다.
티넬 신전의 에스힐. 세스 신전의 세피로스.
리쟌느 신전의 사나. 케인 신전의 라이트 핸드.
그 외 여섯 명.
율리안의 십대신관 열개의 손가락이 바로 그들이다.
접근할 수 없을 것만 같은 오로라가 등 뒤로 퍼져 나오고 있었다.
근엄하다.
그리고 엄숙하다.
“율리안님이시여…… 저희들의 눈을 뜨게 해 주소서.”
그들은 서로의 손을 맞잡고 눈을 감았다.
주신 율리안님께 신의 눈을 기원하였다.
먼 곳을 내다 볼 수 있는 신의 눈!
그것은 율리안님이 내려주시는 권능 중 일부분에 지나지 않았다.
원탁의 중앙으로 오로라가 집중 되었다.
주신 율리안께서 좋아하시는 색은 흰색이다.
하지만 희한하게도 붉고 검은 빛을 띤 문장이 나타났다.
그러나 어느 누구도 문장의 색이 검붉은 색임을 알아채는 사람은 없었다.
열개의 손가락 모두 눈을 감고 있기 때문이었다.
화아아아악.
권능의 기운이 느껴졌다.
열명의 대신관은 하나가 되었다.
주신 율리안님의 눈!
단 한 개의 눈으로써 먼 대지를 바라본다.
넓은 평원위에 진형들이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빼곡하다. 그리고 그쪽을 향해 달려오는 수많은 대군과 이를 지켜보고 있는 금색 장포의 사내.
검을 빼 들고 대군을 운집하는 사내의 목소리가 들린다.
“결전의 날이 이일 후로 다가왔다!”
저자가 바로 로스엔국의 황제 아실리안이다.
대신관들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와아아아!
수십만 대군의 함성소리는 천지에 요동쳤다.
점점 그들의 모습이 멀어진다.
율리안님의 눈은 다른 곳을 보여주었다.
오로라가 더욱 진하게 발출되었다.
탁상위 검붉은색의 문장이 번쩍였다.
대신관들의 인중 쪽으로 붉은 빛을 쏘았다.
화락!
다른 곳이 보였다.
웅장한 성이 드워프들의 손에 의해 쌓여 올라가고 있었다, 농부들은 넓은 평원을 개간하고 있고, 법의를 입은 대머리 남자들이 손을 걷어붙이고 농부들을 돕는다.
그리고 청순하게 생긴 여성들이 농부의 부인들을 도와 빨래와 식사 준비를 하고 있었다.
이곳인가?
드래곤의 평원…… 신명국이란 나라가 들어선 곳이?
율리아님께서 보여주는 영상은 거기서 끝이었다.
검붉은 문장이 사라졌다.
열개의 손가락 모두 천천히 눈을 떴다.
모두들 놀란 듯한 표정이었다.
“엄청난 대군입니다…….”
티넬신전의 대신관. 에스힐이 놀랍다는 듯 말했다.
로스엔의 황제 아실리안이 징병한 병력은 엄청난 대군이었다.
십만 명? 십오만 명?
“로스엔의 황제가 매우 분개한 모양입니다. 저런 대군을 징병하다니 말입니다.”
리쟌느 신전의 대신관.
사나는 아직도 대군들의 웅장함이 눈앞에서 어른 거렸다.
그렇게 많은 병력이 모인 것은 실로 오래간만이다.
“그나저나 신명국이란 나라는 왜 그렇게 천하태평인지 모르겠습니다.”
사나가 어깨를 으쓱 하였다.
“사나님. 신명국의 왕이란 자가 로스엔국의 수도에서 벌인 일을 모르십니까?”
에스힐이 물었다.
“알지요. 모를 리가 있겠습니까.”
신명국의 왕은 단 혼자서 황성에 쳐들어갔다.
수천명의 병력과 수백 명의 기사!
더군다나 황제까지 그 앞에 무릎을 꿇었다.
무위가 어느 경지에 이르면 그런 힘을 가질 수 있을까?
감히 추측이 불가능하다.
그런데 주신 율리아님조차 그 자의 정체를 보여주시지 않았다.
“그렇지 않아도 그 자의 정체에 대해서 율리아님께 빌어보았지만 아무것도 알려주시지 않으셨습니다.”
“신명국이라는 무리들은 모두 정체불명의 자들입니다. 더군다나 개개인들이 무위가 뛰어납니다. 하지만……로스엔국은 족히 십만 이상의 대군입니다. 불 보듯 뻔한 전쟁입니다. 로스엔은 거침없이 신명국이란 무리를 몰살하고 그곳으로 영토를 확장할 것입니다. 아무래도 우리 율리아님의 손가락들이 나서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렇지 않아도 그 일 때문에 모인 것이 아닙니까.”
에스힐이 말했다.
“어디서 갑자기 신명국이란 무리가 나타났는지는 몰라도, 그들 개개인들의 실력은 최상급입니다. 아무리 로스엔이라 할지라도 피해가 있을 듯하니, 조금은 더 지켜봐야 하지 않겠습니까? 정 안 되겠다 싶을 때 본국이 나서면 됩니다.”
대신관들은 서로를 바라보았다.
어린 대신관 세피로스가 입을 열었다.
“에드먼도 나서겠지요. 걷 잡을수 없는 대륙전쟁이 발발할 것입니다.”
“괜찮습니다. 세피로스님. 로스엔국이 드래곤의 평원을 점령할대 에드먼 제국과 본국은 동맹을 맺을 것입니다. 이미 사신들이 오가고 있습니다.”
“그렇군요.”
세피로스는 다른 의문점이 생겼다.
“그런데 신명국의 왕은 어떻게 하실 생각들이십니까? 엄청난 무위를 지니지 않았습니까.”
“도통 율리안님께선 신탁을 내려주시지 않으십니다…….”
사나가 조용히 말했다.
“율리안님께서도 말씀해 주시 않으실 땐, 그분께서 우리의 행동을 주시하시고 계시다는 것을 명심해야 합니다.”
어린 세피로스의 말에 모두 담담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잠시 동안은 지켜보는 것으로 결정이 난 것입니까? 모두 그렇게 생각하십니까?”
에스힐이 물었다.
“예.”
“예.”
에스힐은 자리에서 일어나 입을 열었다.
“로스엔국이 신명국을 몰아칠 것이지만 잠시 동안은 지켜보는 것으로 결정이 났습니다. 따라서 신명국에 보내기로 예정되었던 전도사는 취소되었습니다.”
“에스힐님.”
세피로스의 목소리였다.
“예. 세피로스님.”
“그런데 자꾸만……
문득 또 다른 의문이 생겼다.
“그런데 자꾸만……로스엔국에 커다란 재앙이 온다는 율리안님의 신탁이 자꾸만 마음에 걸립니다.”
아!
그제야 대신관들은 신탁이 떠올랐다.
황제 에드먼 19세.
그의 말 한마디가 곧 법이다.
말 한마디에 제국 수천만 백성들의 생사여부를 결정할 수 있고, 수백만 군대를 하루아침에 진군 시킬 수도 있다.
절대권력.
이 말은 그를 위해 존재한다.
거칠게 뻗친 흰 수염.
승청하는 용마냥 힘 있게 치솟는 흰색의 눈썹.
물러섬이라곤 전혀 없을 것만 같은 눈과 강인한 턱선.
그가 바로 황제 에드먼이다.
황제 에드먼은 자리에서 일어나마자 침대 옆에 놓인 명검을 집어 들었다. 허리에 찬 후 탁상위에 올려진 띠 형식의 왕관을 깊게 눌러 썼다.
커텐을 걷었다.
아침햇살. 그의 강렬한 눈빛이 번뜩였다.
탁.
그후 강하게 문을 밀며 밖으로 나왔다.
일흔이 넘는 나이.
그러나 발걸음은 거칠었고, 전신에서 뿜어지는 기도는 대단 하였다.
범접할 수 없는 위엄이 흘러 넘쳤다.
모든 대신이 그를 향해 무릎 꿇었다.
귀족 모두가 무위가 뛰어난 검사이니 만큼, 모두의 기도는 강렬했다. 그러나 황제 에드먼의 기도가 모두의 것을 억누르고 있었다.
“폐하. 로스엔국이 신명국을 상대로 대전을 준비 하고 있다고 하옵니다. 호티아 지방에 모인 병력은 현재 십이만. 이틀 후면 이십만에 육박할 것이라 사료되옵니다.”
“이미 들어서 알고 있다.”
컬컬한 목소리가 황제 에드먼의 입에서 흘러나왔다.
힘이 실려 있다.
“필히 드래곤의 평야로 확장하려는 터! 아실리안의 마음대로 두지 않을 것이다. 대신들은 로스엔의 행동 하나하나를 주시하며 바로 보고하라.”
“예. 폐하.”
“드래곤의 평야는 제국의 영토니라! 페를리우스 공작은 짐을 따라오라.”
황제 에드먼은 집무실로 들어갔다.
대마법사 이제이가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20대 초반의 청순가련한 외모지만 성격은 정 반대다.
두얼굴의 대마법사 라고 불린다. 오죽하면 마신의 추종자가 아닌데도 대마도사라 칭하는 사람까지 있을 정도였다.
“오셨습니까.”
대마법사 이제이가 말했다.
황제 에드먼은 슬핏 고개를 끄덕였다.
똑.똑.똑. 노크소리.
“폐하. 페를리우스 공작입니다.”
문밖에서 호위기사의 목소리가 들렸다.
“들어와라.”
페를리우스 공작이 안으로 들어왔다.
“이제이.”
황제 에드먼이 대마법사 이제이에게 눈치를 보냈다.
이제이가 중얼거렸다.
푸른 마나가 이제이의 손에서 뻗어 나와 벽들을 뒤덮었다.
이로써 방안의 소리는 완전히 차단되었다.
대마법사 이제이가 손수 시전한 사일런트(Silent)는 그 누구도 뚫을 수가 없다.
“공작. 데이모스는 어떻게 되었는가?”
데이모스!
“현재 네기가 시험을 마쳤습니다.”
페를리우스 공작은 자신있게 대답하였다.
“완벽한가?”
“예. 폐하.”
“로스엔국은?”
“시험 중이던 두 기중 한 기는 손실되었고, 이를 보충하기 위해 노력중입니다.”
“손실되었다고?”
황제 에드먼과 이제이의 눈이 크게 떠졌다.
“예. 로스엔국의 소드 마스터 하이드 백작과 고위 마법사 그레이가 탈취. 실종되었습니다.”
“후훗.”
황제 에드먼은 웃었다.
“폐하. 율리안국에선 데이모스에 대한 대처수단으로 천신을 강림시키려는 움직임이 보입니다.”
“천신을?”
율리안을 움직이는 대신관 열개의 손가락들.
그들의 신성력은 타의추종을 불허한다.
천리안은 물론 예지 능력까지 가지고 있는 그들이 한대 힘을 모아 천신을 강림시키려 한다면 어쩌면 가능할 수도 있을 터.
황제 에드먼의 미간이 접혔다.
“로스엔국과 본 제국이 데이모스를 연구하고 있지만, 율리안은 기술면에서 로스엔국과 본 제국에 비한다면 상당히 뒤떨어집니다. 데이모스에 대한 첩보가 없다면 천신의 강림. 그 방법밖엔 없을 것입니다. 폐하.”
“맞는 소리다. 이제이는 어떻게 생각하는가?”
황제 에드먼이 이제이를 바라보았다.
이제이가 공손히 고개를 숙였다.
“폐하. 옳은 말이옵니다. 다만 율리안에선 천신을 강림하려 시도했던 적은 많았사옵니다. 하지만 매번 실패를 하였사옵니다.”
“이번은 틀립니다. 이제이님. 열개의 손가락 모두가 뭉쳤으며 천신의 강림은…… 신탁에 의해 결정되었다는 정보가 들어왔습니다.”
“신탁에 의해서?”
황제 에드먼은 의아한 표정에 지었다.
“예. 폐하.”
“긴장을 늦출 수가 없다. 드래곤 평원으로 진출하려는 로스엔국은 본국과 율리안국이 막을 것이다. 그 이후를 생각하라. 본국의 데이모스에 대항하려는 천신의 존재에 대해서 보다 확실히 알아야 할 것이다.”
“예. 보다 많은 정보를 모으겠습니다.”
“이제이!”
“예. 폐하.”
이제이가 살포시 놀라며 고개를 들었다.
“무슨 생각을 그리 골똘히 하고 있는가?”
“신명국입니다. 종합적으로 볼 때 신명국은 그리 약한 나라가 아닙니다.”
“왜 그렇게 생각하지?”
황제 에드먼은 흥미롭다는 듯 표정을 지었다.
턱을 굈다.
“수백의 병력만으로 대승을 이끌었었습니다. 로스엔의 아스틴 공작과 하레스 단장이 이끄는 칠천 중 오천이 전사 이천이 포로로 잡혀, 수치를 입은 게 오래전일이 아니지 않사옵니까. 더군다나 로스엔의 황성에서 신명국의 왕이 벌인 사건은 전설로 남을 것이옵니다.”
“흐음…….”
황제 에드먼의 주름살이 깊숙이 접혔다.
강력한 철권주의 황제지만 단 두사람의 말은 깊게 새겨듣는다.
대마법사 이제이와 공작 페를리우스.
그렇기에 더욱 강한 제국을 만들 수 있었다.
“짐이 잘못 생각하였군.”
황제로써 하기 힘든 말.
그러나 황제 에드먼은 거침없이 그 말을 토했다.
“이십만에 육박할 로스엔의 대군을 상대 할 순 없다.”
“그럴 것이옵니다.”
“하지만! 짐은 이제이의 말대로 신명국의 저력은 약하지 않다는 것을 잊지 않겠다. 공작 또한 이를 잊지 말라.”
“예. 폐하.”
절대복종!
페를리우스는 바로 생각을 고쳤다.
향후 계책은 신명국의 저력이 약하지 않다는 것을 염두해 두고 짜야 한다.
“재미있게 돌아가는군. 십 년만인가…….”
황제 에드먼이 컬컬한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부우.
나팔소리가 사방에서 울렸다.
“우와아아!”
병사들의 사기는 하늘을 치솟았다.
순간적으로 터져 나온 함성소리가 주변 공기를 뜨겁게 달구었다.
호티아 평원에 운집한 병력만 이십만에 육박한다.
그 끝을 알 수 없는 인해(人海!)
인산인해라는 말이 실감될 판이었다.
황제 아실리안이 검을 치켜들었다.
부우.
수백 개의 나팔소리!
수십만 병력이 양 갈래로 나눠졌다.
“전군!”
황제 아실리안이 소리 높여 외치며 말을 몰았다.
황제 아실리안을 태운 눈부신 백마가 병사들이 터준 길을 달리기 시작했다.
“와아아아!”
병사들이 병기를 위아래로 흔들며 환호성을 질렀다.
고막을 터쳐 버릴 듯한 함성소리.
소드 마스터 루이만과 베르만이 소속된 친위 기사단 이십 명이 은갑과 은검을 장비한 채 그 뒤를 바짝 따라붙었다.
“진군한다!”
병사들은 양 갈래로 자리를 더 넓혔다.
착.
선두에 있던 백여 명의 귀족들이 말머리를 돌렸다.
귀족들의 기사단.
그 합이 이천이다.
귀족들이 황제 아실리안을 따르고 말을 탄 기사들과 마법사들이 그 뒤를 따른다.
말발굽 소리가 요란스럽게 교차되었다.
기마병과 마법사단이 길을 지나쳤다.
수십만 병사들은 비켜선 자리를 메우며 진군을 시작하였다.
황제 아실리안은 검을 움켜잡았다.
그날의 수치가 문득 떠올랐다.
자신의 신하들이 무릎을 꿇었다.
자신 또한 신하들 앞에서 무릎을 꿇었다.
죽음 보다 더한 수치!
참을 수 없는 치욕으로 그날부터 한숨을 자지 못하고 피를 토했다.
하지만 드디어 돌아왔다.
복수다.
“기다려라…….”
대군이 도착하는 날은 곧 신명국 파멸의 날이다.
BoB의 길드 마스터가 된 계주는 길드원들을 소집하였다.
이른바 개타작이 언제 날아들지 모른다.
백 명이 넘는 거지들은 잔뜩 겁을 먹었다.
더군다나 그들의 뒤에 있는 다섯 명의 사내들!
눈을 마주치면 죽는다라는 생각이 팽배하였다. 뒤에서 느껴지는 살기에 거지들의 몸이 부르르 떨렸다.
계주의 입이 열렸다.
움찔.
거지들은 눈을 질끈 감았다.
개타작인가?
비명은 터지지 않았다.
불안한 표정으로 슬그머니 눈을 떴다.
‘드디어 오늘이다.’
계주는 눈을 부릅떴다.
“너희들은! 도시로 나가 신명대국의 강한 검사들이 이 도시를 점령 하였다고 소문을 퍼트려라.”
점령이라니.
그런 허무맹랑한 소문은 길드원의 자존심으로 허락할 수가 없다.
아무리 개타작이 무섭다고는 하지만.
“기,길드장님,하,지……만.”
퍽!
말을 채 끝내기도 전에 피가 튀기는 개타작이 벌어졌다. 괜히 입을 연 거지는 순간 걸레 같은 몰골로 변해버렸다.
“거짓이 아니다. 소문이 퍼질 때쯤이면 이미 이 도시는 우리들에 의해 점령 되어 있을 것이다.”
계주가 말했다.
“크크크. 당연하지.”
홍염광마와 사파 고수들이 낄낄 거렸다.
“지금 당장 시행하라.”
계주는 나무막대기로 문밖을 가리켰다.
“옛!”
백 명의 거지들은 있는 힘껏 뛰쳐나갔다.
독설사겸이 한 거지의 목덜미를 낚아챘다.
병기의 뾰족한 끝을 거지의 인중에 가져갔다.
“똑바로 해. 개놈아. 그 추한 대갈빡에 구멍 뚫리기 싫으면 말이야. 큭. 우리들이 지켜보고 있으니까.”
“예예예예예예예예!”
거지는 오줌을 지렸다.
“나가봐.”
독설사겸은 거지를 밖으로 내 던졌다.
거지는 신음을 토할 새도 없이 재빨리 일어나 도망쳤다.
“사이폰의 성에는 오천 병사가 있다. 특히나 마법사란 사술집단이 백명이 존재 하니 이를 조심해야 할 듯하다.”
계주는 정보지를 펼쳤다.
거지들이 모아온 사이폰의 정보다.
병력의 수와 이끄는 기사 그리고 성주에 대한 정보가 빼곡하였다.
“성주는 머티온 자작. 사티온을 수호하라는 명을 받고 전쟁에 참여 하지 않았다.”
사파 고수들은 고개를 끄덕였다.
“무공은 익혔나?”
“이계에서 말하는 소드 익스퍼트 중급에 해당한다는군.”
계주가 뇌까렸다.
“그게 뭐지?”
혈마겸이 중얼거렸다.
“멍청한 자식. 우리 발끝에도 미치지 못한다는 거다.”
홍염광마가 비릿하게 웃었다.
“마법사란 사술집단만 조심하면 되겠군.”
말없이 목각인형을 바라보고 있던 사사혈검이 중얼거렸다. 가라앉은 목소리는 암울하기 짝이 없다.
“그놈들도 상관없습니다. 제 검을 막을순 없지요.”
유악해 보이지만 말 한마디 한마디가 섬뜩했다.
전검이 말했다.
“정공법이다. 남쪽의 정문으로 들어가 한번에 제압한다. 최대한 살상은 자제 하되, 방해자는 제거하라는 전하의 명이시다.”
“자제라…….”
홍염광마는 자신 없이 말했다.
“전하의 명이시니 하는 수 없군. 대신 우두머리란 머티온 자작은 내가 죽여 버릴거야.”
“적의 수장은 반드시 사로잡으라는 전하의 명이 있으시다.”
“그럼 두 번째라도. 두 번째는 누구야?”
홍염광마는 다소 실망스러운 눈치였다.
“기사단장 질렌이다.”
“좋아. 그놈은 내가 죽이겠어.”
훗. 독설사겸이 코웃음 쳤다.
“내가 죽이는 걸 구경만 해야 될 거다. 키키킥.”
파팟!
독설사겸이 지면을 박찼다.
“앗! 저놈이.”
홍염광마와 혈마겸 그리고 전검이 동시에 외치며 몸을 날렸다.
“갑시다.”
계주가 사사혈겸에게 말했다.
사사혈검이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는 누이를 그리워하며 만든 목각인형을 고이 품안에 집어넣었다.
사파고수들은 대로를 가로질렀다.
“꺄악!”
놀란 행인들이 비명을 질렀다.
이미 사파고수들은 쫓아 갈수 없는 곳에서 내달리고 있었다.
눈 깜짝할 사이.
그들의 모습이 사라졌다.
“바로 저기다! 키키”
독설사겸이 괴상스럽게 웃으며 속도를 높였다.
“어딜?”
홍염광마가 권을 쥐었다.
“일타는 바로 나란 말이지.”
독설사겸이 뇌까리며 쥐고 있던 병기를 날렸다. 두 자루의 낫이 뱅그르르 돌며 경비병의 목을 베고 지나갔다.
애꿎은 경비병은 그대로 목숨을 잃고 쓰러졌다.
“뭐야?”
성문을 지키고 있던 경비병들이 놀랐다.
사슬들이 움직이는 소리와 함께 성문이 닫혔다.
“저놈들은 내거야.”
홍염광마가 권을 내 뻗었다.
광화마권(狂火魔拳)!
권기가 터져 나왔다.
“앗! 저기……!”
한 경비병이 사파고수들을 발견하고 외쳤다.
말을 끝내 잇지 못했다.
홍염광마의 권기가 경비병을 덮쳤다.
쾅. 폭발음과 함께 서너 명의 경비병들이 뒤로 튕겨 날아갔다.
“나라고 가만히 있을 순 없지.”
혈마겸은 사신의 낫 같은 거대한 겸(대낫)을 뽑았다.
백팔혈겸마참(百八血鎌魔斬)!
성문의 상부로 뛰어 겸을 휘둘렀다.
불그스름한 사기가 여러 번 번쩍였다.
쩌저적.
성문은 두 갈래 나눠졌다.
발로 툭 차니 뒤로 무너지며 쪼개졌다.
“전하의 명을 잊지 마시오!”
계주가 걱정스러워 외쳤다.
“알았대도!”
사파고수들은 괴소를 지었다.
열린 성안으로 몸을 날렸다.
수도의 백성들은 들떠 있었다. 황제 폐하가 친히 수십만 대군을 이끌고 진격하셨다. 상대가 검신 혹은 마신이라고 소문난 자의 무리라고는 하지만, 본국의 군대는 수십만에 육박하였다.
걱정 없다.
조그마한 무리들을 혼내주러 간 것뿐이다.
수도의 분위기는 평상시와 다를 바 없었다.
그러나 수도 근위병들은 달랐다.
잔뜩 긴장한 눈빛 이었다.
그들은 불안감을 어깨에 잔뜩 짊어진 채 주위를 기울이고 있었다.
그런 그들을 먼 곳에서 내려다보는 자가 있었다.
신명대국의 황제 주첨기!
그는 언덕에 앉아 수도를 한눈에 내려다보고 있었다.
집게손가락으로 설령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우낏.]설령은 기분이 좋았다.
이렇게 주첨기와 나란히 앉아 먼 곳을 바라보는 것은 정말 오래간만이다.
마침 바람도 상쾌하다.
“설령.”
설령의 머리 위로 난 줄기가 바람에 하늘 걸렸다. 설령은 주첨기의 손바닥위로 뛰어올랐다.
[우낏?]고개를 갸웃했다.
“이제 그만 가자.”
설령은 고개를 마구잡이로 저었다.
“갈 시간이야. 들어와.”
주첨기가 가슴 쪽 상의를 살짝 열었다.
[우끼……]설령은 얼굴을 찌푸리며 품안으로 들어갔다. 후우. 가슴속에서 한숨 비슷한 소리가 들려왔다.
평온하던 주첨기의 표정이 일순간 굳어졌다.
눈은 날이 잘선 한자루의 칼처럼 떠져 있었고, 입은 결코 열리지 않을 것처럼 닫혀 있었다.
언덕을 내려가는 그의 뒷모습은 거대해 보였다.
주첨기는 수도의 대로를 걸었다.
이질감을 느낀 행인들이 주첨기를 슬핏 바라보곤 하였다.
눈이 마주치면 갑자기 이는 섬뜩함에 시선을 피했다.
“똑같군.”
주첨기가 중얼거렸다.
지금은 전시다.
그러나 행인들은 그것과는 별개의 사람들처럼 보였다.
마치 타국의 일인 것처럼……
툭.
한 사내가 주첨기와 어깨를 부딪쳤다.
사내는 몇 발자국 떨어진 곳으로 튕겨 나가 쓰러졌다. 투구를 고쳐쓰고 떨어진 파이크를 잡으며 일어섰다. 그의 하드레더에는 황실 근위병의 문장이 박혀 있었다.
“아……아……아…….”
병사는 주첨기를 알아봤다.
그 강대한 힘에 무릎 꿇었던 수천명중에 한 명. 바로 자신이 아니던가.
“비켜라.”
한마디.
병사는 쥐고 있던 파이크를 놓쳤다.
주첨기가 그 옆을 지나갔다.
행인들의 틈 속으로 주첨기의 모습이 사라졌다.
“이봐!”
마침 지나가던 근위병이 병사를 일으켰다.
“왜그래?”
“그……그자가 왔어.”
“그자라니?”
병사는 가득 고힌 침을 꿀꺾 삼켰다.
“그,그자 말이야.”
“아 글쎄 누구?”
근위병은 병사의 등 쪽에 묻은 흙들을 툭툭 털어주었다. 병사는 언 동태처럼 몸이 꼳꼳 하였다. 눈 또한 휘동 그래져 있었다. 근위병이 부들부들 떠는 병사를 보며 눈을 찌푸렸다.
“왜 그래. 어디 아파?”
“그자…… 신명국의 왕이 왔어.”
“뭣?”
근위병은 자신의 귀를 의심하였다.
올것이 오고야 말았구나!
근위병은 병사의 옆을 스쳐 지나나갔다.
재빨리 이 사실을 알리고 방비해야 했다. 단 한사람 때문에 수도의 모든 호위기사와 병사들이 한시 긴장을 늦추지 않고 있다.
[우끼.]설령의 울음소리가 들려주첨기가 품안을 열었다. 품안에서 빠져나온 설령은 어깨위로 뛰어올랐다. 매우 걱정되는 표정으로 주첨기의 뺨을 매만져주었다.
“들어가 있어. 피가 튀기질도 몰라. 그리고 설령. 내 걱정은 마”
설령이 고개를 끄덕이자 주첨기는 설령을 쥐어 품안에 넣었다.
주첨기는 황성으로 통하는 다리 위를 걸었다.
급조된 황성대문이 보였다.
주첨기에 의해 파괴된 강철문을 다시 만들려면 시간이 걸리는 모양이었다.
지금의 황성대문은 나무로 급히 만들어져 있었다.
주첨기는 담담하게 그쪽으로 걸어갔다.
헉!
근위 병사들이 신음을 토했다.
어찌 이 자의 모습을 잊을수 있을까? 그날 이후 이자의 거대한 모습은 눈앞에서 아른 거려 사라지지 않는다.
“넌!”
황성 근위 기사가 외쳤다.
“수도는 신명대국이 점령한다.”
주첨기는 담담한 목소리로 말하였다.
혈연철조!
혈연수의 손에서 철조가 튕겨 날아갔다. 비상하는 매 마냥 날아든 철조!
“으아악!”
그것은 도시 이티네의 병사들 목숨을 몇 개씩이나 빼앗아 돌아왔다.
혈연수의 뒤로 검이 찔러 들어왔다.
혈연수는 허리를 숙여 가뿐히 피하였다.
옆으로 몸을 비틀었다.
철조로 검 주인의 다리를 긁어버렸다.
저저적.
철갑화와 함께 생살이 한 웅큼 뜯겨져 나왔다.
기사는 비명을 질르며 다리를 움켜 잡았다.
혈연수는 급히 자신에게 달려드는 수십 명의 병사를 향해 뭔가를 뿌렸다.
초록색의 연막?
치명적인 독이다.
숨을 들이 킨 병사들이 켁켁 거렸다.
눈이 충혈 되어져 갔고 숨은 막혀왔다.
그사이 혈연수는 기사의 숨통을 끊어놓았다.
팟!
피가 튀겼다.
그의 얼굴을 감싼 검은 두건이 시뻘겋게 물들었다.
혈연수는 땅에 배를 붙이다시피 자세를 낮추고 앞으로 몸을 튕겼다.
뒤늦은 파이크가 애꿎은 땅을 찔렀다.
혈연수는 빠른 속도로 철조를 손에 장착하였다.
그러고는 병사들의 다리를 베기 시작했다.
“악!”
병사들의 비명이 곳곳에서 터져 나왔다.
다리에서 피가 솟구치는 병사들이 늘어갔다.
― 그것도 독이라고.
당진진의 전음이 들렸다.
― 훗. 내 병기는 독이 아니라 철조다.
혈연수 역시 전음을 날렸다.
― 잘봐. 이게 독이야.
가문에서 파문당한 장문인의 조카 당진진. 그는 혈마교로 귀속해 있었다.
품안에서 한웅큼의 검은 가루를 꺼냈다.
손을 뻗으며 검은 가루를 뿜었다.
화아아악.
순간적으로 검은 가루는 병사들의 시야를 가렸다.
당진진은 검은 가루 사이를 누볐다.
오묘하게 움직이는 손동작이 검은 가루를 더욱 널리 퍼지게 만들었다.
숨을 들이킨 병사들은 단번에 혼절하였다.
그 수가 족히 백여명은 넘어 보였다.
― 전하의 명을 잊지 말자고. 혈연수.
― 알았다.
그러면서도 혈연수는 손에 인정을 두지 않았다.
“악……마.”
다가오는 혈연수를 보며 한 병사가 중얼거렸다.
발이 떨어지지 않는다.
두려움이 온몸을 잠식해버렸다.
혈연수가 검은 천으로 온 얼굴을 감쌌지만, 입부분의 천이 실룩이는 것이 보였다.
거침없다.
혈연수의 철조가 병사의 숨통을 끊었다.
죽어서도 공포로 얼룩진 병사의 눈동자는 감기지 않았다.
“크윽. 후퇴하라!”
근위대장 멀티가 외쳤다.
단 다섯명을 상대 할 수가 없었다.
― 저놈?
― 저놈.
― 저놈!
― 저놈……
― 저놈!!
다섯 사파고수의 눈이 번쩍였다.
혈연수의 철조에서 피 같은 뻘건 기운이 피어 올랐다.
당진진은 사천당문 고유 암기 비천화우를 준비 하였다.
미향의 마검에서 사기가 스멀스멀 검을 타고 흘렀고, 마음곡의 목청으로 내력이 집중되었다.
“죽어랏!”
환음색마가 외쳤다.
그때.
사파고수들은 일제히 비기를 출수 하였다.
광풍이 몰아쳤다.
분수같이 솟구치는 피. 아귀의 울음 같은 비명 소리. 비릿한 피비린내와 식어가는 피의 온기!
사정거리 안에 들어온 병사들은 목숨을 잃었다.
“후! 컥.”
누구의 공격이 먼저라 할 것 없었다.
근위대장은 가장 처참해진 몰골로 쓰러졌다.
근위 대장 곁에 있던 병사들 역시 애꿎은 희생물이 되었다.
우엑.
이를 본 병사가 토악질을 하였다.
“으아아아악.”
병사들은 병기조차 내버리고 도망치기 시작했다.
“어딜?”
환음색마가 뇌까렸다.
그는 요란스럽게 병사들 사이를 누볐다. 그때마다 한줄기의 피가 허공을 향해 솟구치곤 하였다.
쾅쾅쾅!
“열어!”
병사들이 굳게 닫힌 성문을 향해 울부 짖었다.
성벽 위에선 아무런 대답이 들려오지 않는다.
병사들은 단번에 눈치챘다.
겁먹은 성주가 성문을 닫아버렸다.
우리들은 여기서 죽는다.
저 다섯 악마에게!
“호호호.”
미향이 손등으로 입을 가리며 웃었다.
그녀가 다가오자 병사들은 바짝 얼어붙어 움직이질 못하였다. 오줌 지린내가 물씬 풍겼다.
미향과 사파고수들은 로스엔 병사들에게 다가갔다.
이제 죽었다.
병사들은 눈을 질끈 감았다.
팡!
커다란 소리가 울렸다.
굉장한 바람이 일며 앞의 병사들을 날려버렸다.
길이 생겼다.
사파고수들은 두려움에 가득 찬 로스엔의 병사들을 지나쳐 걸었다.
그들은 병사를 죽이지 않았고, 병사들도 사파고수들의 뒷모습을 향해 검을 겨눌 생각조차 들지 않았다.
사파고수가 지나갔다.
맥이 풀린 다리.
하나둘 풀썩 주저앉고야 만다.
사파고수들이 고개를 위로 올렸다.
성벽에 배치된 궁병들이 시위를 놓았다.
수백. 수천발의 화살이 사파고수들의 향해 날아들었다.
“컥!”
사파고수들의 비명 소리가 아니다.
되려 성문이 닫혀 차마 들어가지 못했던 로스엔의 병사들이 화살 세례를 받았다.
사파고수들은 각자의 병기로 화살들을 쳐냈다.
― 뛰어 넘는다.
― 좋다.
― 감히, 다 죽여버리지
혈연수가 먼저 솟구쳤다.
성문이 굳게 닫히고, 성벽이 제아무리 높아도 소용없다. 성벽위로 뛰어올랐다.
궁병들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혈연수의 철조가 궁병들을 향해 날아갔다.
쉬익!
혈루쌍검이 성문을 향해 검을 휘둘렀다.
두자루의 검이 지나간 자리를 시작으로 금이 가기 시작하였다. 수십조각으로 나눠진 성문은 파괴되고 말았다. 잘려진 성문조각들이 와르르 무너졌다.
혈루쌍검과 월광이 먼저 안으로 뛰어들어갔다.
꿀걱.
병사들이 침을 삼켰다.
손이 부들부들 떨리고 몸이 말을 듣지 않았다.
이들의 강함은 성안에서 지켜보았었다. 다행히 성안으로 배치 받았기에망정이지 성 밖으로 배치되었다면 일찍이 목숨을 잃었을 게다.
그런데 그 강한자들이 달려오고 있다.
악마들……
“뭣들 하느냐. 어서 막아라!”
근위 대장 파스테인이 외쳤다.
정작 자신은 성안으로 도망치고 있었다.
하늘위로 인영이 솟구쳤다.
강렬한 태양에 검은 인영의 동작만 보였다.
인영의 손에서 뭔가 뻗어나갔다.
단검!
“켁…….”
근위 대장 파스테인은 단발마의 비명과 함께 앞으로 고꾸라졌다. 정확히 성으로 올라가는 계단의 앞이었다.
“으아아악!”
병사들은 비명을 지르며 앞으로 뛰어 나왔다.
그래도 훈련은 받았었다.
파이크 병사들이 돌격을 하였다.
진성목은 가만히 있지 않았다.
붉은 사기가 어린 검을 움켜잡으며 파이크 병사들의 위로 뛰어들었다.
여러 개의 파이크들이 일제히 진성목을 향해 찔러 들어왔다.
팟!
진성목의 모습이 사라졌다.
진성목은 파이크 병사들의 중앙에서 나타났다.
휘잉.
몸을 회전하며 회사사검법을 시전하였다.
― 여기는 내가 맡겠다. 키킥.
진성목은 모두에게 전음을 날렸다.
사파고수들은 고개를 끄덕였다.
병사들의 머리 위를 뛰어 넘어 성안으로 들어갔다.
진성목이 씨익 웃었다.
― 성주는 반드시 사로잡는다.
― 알고 있어.
― 너나 조심하지. 콱 죽여 버리면 전하께 명목이 안선다고.
― 저쪽같군.
― 아니. 나는 저쪽 같은데.
― 그럼 모두 흩어져서 찾지.
― 좋아.
사파고수들의 전음이 어지럽게 오갔다.
그들은 눈빛을 맞췄다.
누가 먼저라 할 것 없이 양 복도로 몸을 날렸다.
호화스러운 성안.
아무도 없는 듯 조용하였다.
혈아는 이층의 한방문을 열었다.
“꺄악.”
시녀들이 한곳에 모여 서로를 부둥켜안고 있었다.
하얀 피부. 긴 생머리. 붉은 입술. 혈아는 매력적인 미인이지만 온몸에서 뚝뚝 흐르는 로스엔 병사들의 피가 그녀를 악귀처럼 보이게 만들었다.
“제발 살려주세요……제발.”
시녀장인 듯 보이는 노파가 몇 번이는 절을 하였다.
“흥”
혈아는 거칠게 방문을 닫았다.
저런 민간인에게는 관심 없다는 듯한 눈치다.
쾅!
월광이 방문을 박찼다.
아무도 없는 것 같지만 월광의 눈을 속일 순 없었다. 월광은 침대 위로 검을 휘둘렀다.
침대가 반절로 쪼개졌다.
그 밑에서 겁으로 온몸을 떨고 있는 한 늙은 남자의 모습이 드러났다. 그는 성의 집사였다.
“살……살…….”
월광은 차가운 눈빛으로 집사를 내려다보았다.
월광이 집사의 멱살을 잡아 올렸다.
집사는 정신을 잃을 지경이었다.
월광은 집사를 훑어보았다.
“넌 아무것도 아니군.”
담담하게 중얼거렸다.
거칠게 집사를 벽 쪽으로 내던진 후 방 밖으로 걸어 나왔다.
“아참.”
문득 월광이 고개를 돌렸다.
집사가 몸을 움찔거렸다.
“이봐.”
“예,예.”
“성주의 방은 어디에 있지?”
“오……오층에.”
월광의 입꼬리가 피식 올라갔다.
월광은 천천히 집사에게 다가갔다. 집사의 눈앞으로 검을 들이댔다. 집사는 눈을 질끈 감았다. 월광이 집게와 엄지로 집사의 눈을 억지로 뜨게 만들었다.
“누굴 바보로 아나? 이곳은 사층까지 밖에 없어. 큭.”
월광은 어처구니가 없다는 듯 손으로 이마를 짚었다.
“한번……한번만……용서를.”
“안내해라.”
월광은 마음을 진정 시켰다.
자신을 농락한 이자를 죽이는 것은 뒤로 미뤘다.
누구보다 빨리 성주를 사로잡아 전공을 세운다!
“빨리 못 일어나?”
월광이 참지 못하고 외쳤다.
“다,다리가,”
집사가 간신히 말했다.
무서워 도저히 다리가 움직이지 않는다.
“큭.”
월광의 눈에서 살심이 번뜩였다.
집사는 바로 뛰어 일어났다.
“이,이쪽입니다!”
으악!
피 비린내가 코를 찔렀다.
집사가 안내하는 쪽에서 사람들의 비명 소리가 울렸다. 집사는 제발 살려달라는 듯한 표정으로 월광을 돌아보았다.
“저……저곳이.”
“저곳인가? 큭. 늦겠어.”
월광은 집사를 제쳐두고 앞으로 몸을 날렸다.
이미 혈루쌍검의 검 소리와 당요석의 괴기한 웃음소리가 들리고 있었다.
복도에는 갑옷을 입은 기사들의 시체로 즐비하였다.
모두 일격에 목숨을 잃었다.
흉갑에 그어진 한 자루의 검상과 목 부분에 박힌 작은 침이 사인의 요인이다.
“으악!”
저곳이군.
월광은 시체를 뛰어 넘어 방안으로 들어갔다.
“늦었어. 월광.”
혈루쌍검의 검에서 피가 뚝뚝 떨어졌다. 피를 잔뜩 뒤집어쓴 채 당요석이 웃었다.
그들의 주위로 목숨을 잃은 기사들이 쓰러져 있었다. 그리고 한구석에는 서로 부둥켜 안은 채 떨고 있는 가족이 보였다. 군사 도시 곤드의 성주 빌리온 자작과 그의 가족들이었다.
“제기랄.”
월광은 침을 퉤악 뱉었다.
이렇게 늦은 건 전부 그 늙은이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