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mortal martial artist RAW novel - Chapter 22
제7화 이십만 대 이백
신명국의 왕이 홀로 황성을 점령.
제이의 수도 프린트, 교통 도시 이티네, 군사도시 곤드, 상업도.시 포스로, 군사 요충지 젤 요새 등등.
한 손에 꼽을 수 있는 극소수의 인원에 의해 점령당했다.
황태자 클레이스의 분노한 얼굴은 실로 처음이었다.
황제 아실리안은 모든 상황을 파악했다.
믿을 수 없지만 사실이다.
황제 아실리안이 치욕스러운 표정을 감추고 명했다.
“아스틴 공작과 하레스 단장은 십만 대군을 우회하여 본국을 수호한다. 모든 상황이 사실이다면 십만 대군을 분산할 경우 승리는 장담할 수 없다. 십만대군으로 점령당한 도시를 돌아다니며 격파한다. 절대 병력을 분산하지 말라.”
신명국의 왕은 자신에게 두 번째 치욕을 안겨주었다.
황제 아실리안은 이를 악물었다.
어찌나 강하게 물었던지 이빨사이로 핏기가 보였다.
“예! 폐하.”
“지금 당장!!”
아스틴 공작은 이십만 대군중 기동성이 좋은 병사들을 급히 차출하였다.
황제 아실리안이 이끄는 십만대군은 신명국의 성 쪽으로 진군.
아스틴 공작이 이끄는 십만대군은 주요도시들을 되찾기 위해 우회했다.
로스엔의 이십만 대군은 그렇게 둘로 나눠졌다.
아스틴 공작은 병사들의 이동속도를 극으로 끌어 올렸다.
“대전을 마친 후 너희들에게 포상이 있을 것이다!”
아스틴 공작이 외쳤다.
병사들은 피로에 지쳐 보였다.
도시 사이폰에 도착한 건 그로부터 하루하고 반나절이 지난 후였다.
“저,저것은!”
아스틴 공작이 뭔가를 발견하였다.
포스엔성의 게양대에 걸린 붉은 깃발.
그것은 로스엔의 국기가 아니었다.
“크윽.”
사실이 아니길 바랐다.
그래서 이 십만대군을 다시 우회하여 황제 폐하의 뒤를 따르려 하였다.
아스틴 공작에게 있어도 신명국은 최초이자 최대인 치욕을 안겨준 곳이었다.
자신의 분노가 실린 검으로 적병을 베어버리고 싶었다.
“전군 멈춰라!”
부우.
나팔소리가 울리고 로스엔의 깃발이 요란스럽게 흔들거렸다.
십만대군은 진군을 멈췄다.
“공작님. 저것은 대국의 국기가 아닙니다.”
하레스 단장이 말했다.
“알고 있다.”
“이상한 문자가…….”
로스엔의 국기 대신 걸린 깃발에는 이상스러운 붉은 형상이 적혀 있었다.
신명(新明)!
“제가 다녀오겠습니다.”
하레스 단장이 검을 빼 들었다.
아스틴 공작이 고개를 끄덕였다.
하레스 단장의 말이 지면을 박차고 앞으로 달려 나갔다.
굳게 닫힌 성문은 열릴 생각이 없어보였다.
“수문장은 성문을 열어라!”
하레스가 외쳤다.
그래도 아무런 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성문을 열어라!”
반응이 없다.
하레스의 얼굴이 오묘하게 일그러졌다.
다시 돌아왔다.
“응답이 없습니다.”
“무슨 생각이지?”
아스틴 공작은 뇌까리며 생각에 잠겼다.
신명국의 국기만 내걸린 채 성안에선 아무런 응답이 없다. 이것은 무엇을 뜻하는가? 그 속에 담긴 적의 계략을 파훼해야 한다.
적들은 단순히 무력만 강한 것이 아니라 계략까지 썼다.
대군이 본국에서 떠난 사이.
본국을 공격할 줄이야…… 그것도 소수정예로……
적들은 그런 자들이다.
“한 번 더 다녀오겠나?”
“예. 공작님.”
이번에도 마찬가지였다.
일말의 반응도 없다.
약간의 잡음조차도 들리지 않았다.
사람이라고는 살지 않는 버려진 성인 것만 같다.
아스틴 공작은 주먹을 쥐었다.
“적들은 시간을 끌 생각이야. 분산된 대군을 이곳에 발목 잡아두려는 것이다!”
그는 결론을 내렸다.
“충차대를 조립하라.”
병사들은 성문을 단번에 부술 수 있는 충차대를 조립하였다. 점심 식사 할 정도의 시간이 흐른 뒤 충차대는 완성되었다. 아스틴 공작이 지휘봉으로 포스로 성문을 가리켰다.
“성문을 부셔라!”
성문을 부수는데 반응이 없을 리 없다.
충차가 드르르 소리를 내며 움직였다.
병사들은 충차로 성문을 공격했다.
쿵!
성문이 단번에 찌그러졌다.
“흐음.”
성문이 부셔지고 있는 판인데도 적군은 반응하지 않았다.
쾅!
큰 소리와 함께 성문이 파괴되었다.
“돌격하라!”
아스틴 공작이 명령을 내렸다.
십만 대군이 포스로의 성내를 향해 달려가기 시작하였다.
앞장선 하레스 단장이 제일 먼저 성내로 진입하였다.
성벽 위를 바라보니 궁병은 없다.
애초에 반응이 없었던 것처럼 아무도 보이지 않았다. 자국의 병사들까지 말이다.
“공작님. 이상합니다.”
아스틴 공작이 눈을 번쩍 떴다.
“카란츠 전법을 아는가?”
카란츠 전법.
무력이 뛰어난 적은 인원을 적군의 성안에 잠입 시켜 놓는다. 그 후 잠입병들이 시도 때도 없이 치안을 어지럽힌 후 중요 요인을 암살 한다.
이 경우 잠입병들이 자국의 많은 병사들 속에 끼어 있어 찾기도 힘들다.
여러 대전에서 그 효용성을 봐 온 터!
“아!”
하레스 단장이 신음을 흘렸다.
“카란츠 전법이다.”
우선 성을 점령한 후 대군을 분할시킨다. 그 후 카란츠 전법으로 시간을 끄는 것이다.
“예!”
하레스 단장은 병사들을 일천 명씩 일백 군단을 조직했다. 일백군단으로 하여금 성안을 샅샅이 뒤지도록 명을 내렸다.
아스틴 공작과 하레스 단장은 군단을 이끌고 영주성안으로 들어갔다.
“헉!”
뒷 훈련터에서 아스틴 공작이 신음을 터트렸다.
그곳엔 수천 자국 병사들이 무릎 꿇고 있었다.
포스엔을 지키던 병사들이다.
“모두 뭣들 하는가. 일어나라!”
아스틴 공작이 외쳤다.
아무도 미동 하지 않았다.
흡사 눈을 부릅뜬 채 죽은 것 같았다.
그래도 죽지는 않았는지 숨은 쉬고 있었다.
“이게 무슨 일이던가.”
아스틴 공작이 중얼거렸다.
뒤에서 하레스 단장이 뛰어왔다.
“공작님!”
하레스 단장은 다급한 얼굴이었다.
“어느 곳에서도 적군을 찾아 볼 수가 없습니다. 성주인 머티온 자작의 행방조차 알 길이 없으며 그들의 가족은 모두…… 헛”
하레스 단장은 신음을 흘렸다.
그는 수천 명의 병사 역시 머티온 자작의 가족처럼 굳어 있다는 사실을 그제야 눈치챘다.
죽은 것 같이 굳어버린 병사들과 성주의 가족은 어떻게 된 거란 말인가
또한 성주인 머티온 자작과 신명국의 기사들은 어디로 갔단 말인가!
아스틴 공작은 머리가 지끈 아려왔다.
비록 반절이 우회는 했다만 십만대군으로도 충분하다.
적은 무위가 각기 뛰어나다 하나 오백 명도 되지 않는다. 말과 병사들의 철갑화가 한 번씩만 짓밟아주면! 그야말로 인간육포가 될 것이다.
끝이 보이지 않는 진군!
드래곤의 평원 중앙부분에 도착할 무렵이었다.
높은 성이 눈에 들어왔다.
아직 채 완성된 것 같지 않았다.
하지만 그 웅장함에 절로 탄음이 토해졌다.
“다 왔군.”
황제 아실리안이 뇌까렸다.
“폐하. 제게 선봉을 맡겨주십시오.”
황자 클레이스는 기다려다는 듯이 말했다.
“황자는 아직 어리다.”
“아닙니다. 폐하. 단칼에 적장의 목을 베어 오겠습니다. 본국을 경시한 무리들을 용서 할 수가 없습니다.”
클레이스의 정말로 분한 표정이었다.
“아직 어려.”
“아닙니다. 폐하…… 추후 대국을 다스릴 제가…… 그자 앞에 무릎을 꿇었습니다. 스스로 견딜 수가 없습니다. 제발 부탁드립니다. 황제 폐하. 절 선봉장으로 임명해 주시옵소서.”
죽을 각오를 한 눈이다.
황제 아실리안는 고개를 저었다.
비록 십만 대군과 채 오백이 안 되는 적군.
하지만 이는 엄연히 전쟁이다.
황자는 전쟁을 겪기에 아직 이르다.
그게 아실리안의 생각이었다.
“황자는 더 이상 청하지 말라!”
“폐하…….”
“황자에겐 이번이 처음으로 참여한 전쟁이다. 선봉장으로 임명하기엔 경험과 나이가 너무 부족하다. 좋은 경험이 될 터이니 모든 것을 지켜보고 배우도록 하라.”
“예…….”
클레이스는 말꼬리를 흐렸다.
황제 아실리안이 뒤를 향해 손짓하였다.
키닐 백작이 일천의 기병을 이끌고 쏜살같이 질주하기 시작했다.
“모두들 성안으로 들어가시오.”
소림과 아미 고수들이 백성들을 보호하기 위해 나섰다. 백성들은 부랴부랴 짐을 챙겨들고 성안으로 내달렸다.
말발굽과 철갑화에 이는 먼지만 보더라도 어마어마한 적군의 규모가 짐작이 갔다.
쳐들어온 병사들은 수만이다!
아이들은 울부짖었고, 부모는 그런 아이를 들쳐 업은 채 내달렸다.
끼이익.
성문이 열렸다.
신선 같은 풍모의 노인이 걸어 나왔다.
노인은 성안으로 뛰어 들어오는 백성들을 향해 말하였다.
“걱정하지 말라. 노부는 전하의 명을 받고 그대들을 보호하기 위해 나왔다.”
백성들이 진천을 향해 허리를 숙였다.
소림과 아미 고수들은 백성들을 마지막 한 명까지 성안으로 들여보냈다.
방각대사가 진천을 향해 합장하였다.
“아미타불. 진인께서도 들어가시지요.”
“아니오. 방각대사. 내 성문을 지키겠소이다. 대사께선 의협들과 함께 성벽위에 오르시오. 본국의 성은 철옹성이오. 절대 백성들이 다쳐선 아니 될 것이외다.”
“당연하지요. 관세음보살.”
아미고수 은소소가 고개를 숙였다.
“진인께선 들어가시지요. 이곳은 소승들이 맡겠습니다.”
“아니외다.”
진천은 단호하게 말했다.
“소승들의 힘이 필요하면 바로 달려 나오겠습니다. 아미타불.”
소림과 아미 고수들은 성안으로 들어갔다.
거대한 성문이 닫혔다.
정파 고수들이 성벽 위로 뛰어올랐다.
“대군이군.”
진천이 중얼거렸다.
일천의 기마군단이 달려왔다.
진천과 일정한 거리에서 기마군단은 멈춰 섰다.
“로스엔 대국의 키닐 백작이다. 너는 누구인가!”
키닐백작은 의아해 했다.
성벽위의 다른 병사들과는 달리, 웬 노인 한 명이 닫힌 성문 앞에 굳건히 서 있었다.
대장군의 기도가 흘러넘치는 노인이다.
“노부는 진천이다.”
진천이 내력을 실어 말했다.
음성은 흡사 메아리처럼 웅웅 거렸다.
키닐백작은 당황하였다.
험험. 헛기침을 한 후 음성을 터트렸다.
“본국은 사악한 무리들인 너희들을 처단하기 위해 대군을 일으켰다. 지금이라도 성문을 열고 항복한다면 목숨만은 살려줄 것이라는 황제 폐하의 명이시다.”
“어림없는 소리. 노부를 능멸하여 화를 자초 하지 말라! 그대는 당장 돌아가 왕에게 전해라. 신명대국은 당신들을 두려워하지도 않는다. 되려 그대들이야말로 본국이 두려운 것이 아닌가! 지금 이라도 그대들이 항복한다면 목숨을 살려줄 것이다.”
진천의 기도가 키닐백작을 짓눌렀다.
“후……후회하지 말아라! 늙은이.”
키닐 백작의 음성이 떨렸다.
“돌아간다!”
키닐 백작은 말머리를 돌렸다.
십만 대군이 주둔한 쪽으로 말을 몰았다.
“폐하. 적들은 항전을 준비 중이옵니다.”
키닐 백작이 보고 하였다.
“부질없는 짓.”
황제 아실리안이 입꼬리를 올렸다.
“진군!”
황제 아실리안은 성이 훤히 보이는 평원까지 대군을 이동 시켰다.
와아아아!
웅장한 십만 대군의 함성은 성을 무너트릴 기세였다. 그러나 성벽 위 고수들의 표정은 냉담하기 짝이 없었다. 성문 앞 진천 또한 매우 담담했다.
황제 아실리안이 병사들을 돌아봤다.
날은 어두워졌고 병사들은 강행군에 지쳤다. 잠시 숨을 돌린 후 단숨에 적들을 짓밟는다.
“진을 펼쳐라!”
십만 대군은 신명대국의 성 앞에 진을 펼치기 시작했다.
수천 개의 횃불이 일렁였다.
아실리안은 멀리 보이는 진천을 향해 중얼거렸다.
“각오하라…… 짐을 경시 여긴 죄가 얼마나 큰 것이지 보여주겠다.”
아실리안의 각오에.
“결코 너희들은 노부를 지나칠 수 없다.”
진천의 담담한 눈이 대꾸 하였다.
노예에서 신명대국의 백성이 된 사백여명.
그들의 장로격인 맥스 노인은 밤잠을 설쳤다.
바로 코앞에 로스엔의 대군이 몰려왔는데 잠이 올 리가 없었다. 충혈된 눈이 이를 말해 주고 있었다.
“조금도 자지 못했네.”
맥스노인이 한숨 섞인 말을 뱉었다.
“저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성벽 위 건장한 청년들이 모여 있었다.
모두 불안한 표정이었다.
“우리들은 신명대국의 백성이네. 비록 자유를 우리 힘으로 얻진 못했지만, 지키는 것이라도 보탬이 돼야 하지 않겠는가?”
“그래서,”
청년들은 등 뒤에서 농기구를 꺼내 들었다.
“여차하면 돌격이라도 할 수 있습니다.”
“자네들도 마찬가지구먼.”
맥스노인도 잡풀을 벨 때 쓰는 작은 낫을 준비해 두었다.
그들의 표정은 진지했다.
“지금 성문 밖에선 진천님께서 홀로 적군을 막고 계신다네. 알고들 있는가?”
“당연하지요.”
청년들은 뒤로 고개를 돌렸다.
성문 코앞에 진을 펼친 로스엔의 대군!
그 뒤로 태양이 떠오르고 있었다.
“헛.”
한 청년이 손가락으로 로스엔 진형을 가리켰다.
“드디어…….”
맥스 노인이 중얼거렸다.
곧 로스엔의 진형에서 나팔 소리가 들렸다. 뿌연 먼지가 일며 로스엔의 병사들이 함성을 질렀다.
― 맹주님!
다급한 전음이 들려왔다.
― 조심하십시오.
정파 고수들은 성문 앞을 홀로 막고 서 있는 진천을 향해 한마디씩 전음을 날렸다.
진천은 담담히 고개를 끄덕였다.
절대 물러서지 않는다.
아무도 성안으로 들여보내주지 않는다.
들어가려거든 노부의 시체를 뛰어 넘고 가라!
홀로선 진천.
로스엔군이 진을 펼친 어젯밤 이후로 조금의 미동도 없이 성문 앞을 지키고 서 있었다. 그의 모습은 어느 때보다 거대해 보였다. 절대 움직이지 않는 철옹성 그 자체다.
“의협들은 성을 사수하라!”
진천이 내력 실린 음성을 터트렸다.
“예! 맹주님!”
정파고수들은 일심동체가 되어 외쳤다.
저마다 병기를 움켜잡았다.
밝은 햇살이 정파 고수들의 머리 위로 쏟아져 내리고 있었다.
황제 아실리안이 검을 높게 치켜들었다.
와아아아!
터져 나온 로스엔군의 함성소리가 고막을 터트릴 기세였다.
로스엔군의 사기는 하늘을 베고 바다를 가를 정도로 충만했다.
‘주군을 잘못 만난 죄의 벌이 어떤 것인지…… 보여주마.’
“적들에겐 죽음뿐!”
황제 아실리안이 외쳤다.
아실리안은 뒤로 손짓을 하였다.
소드 마스터 루이먼이 앞으로 나왔다.
“저자가 적군의 대장 같군. 경은 적장의 머리를 가지고 돌아올 수 있겠는가?”
그렇지 않아도 노인주제에 밤새 폼 잡고 서 있는 것이 계속 심기를 건드리고 있었다.
루이먼은 힘 있게 고개를 숙였다.
“예. 폐하. 단 일격에 적장의 머리를 바치겠습니다.”
“좋다!”
“짐은 명한다. 경은 적장을 베어 자국의 사기를 증진시키고, 적국의 사기를 짓눌러라.”
“예!”
루이먼은 말을 몰고 나아갔다.
“흐음.”
거리가 가까워짐에 따라 루이먼의 표정이 일그러지고 있었다. 성문 앞을 지키고선 신명대국의 늙은 장수. 그가 뿜어내는 기도가 자신을 와락 덮쳤다.
엄청난 기도다.
왠지 모를 불안감이 엄습했다.
신명국의 왕에게 입은 수치가 떠올랐다.
이를 잊지 말자.
‘수십. 수백 배로 되돌려준다’
루이먼은 머뭇거리는 말을 억지로 몰았다.
진천과 거리가 상당히 가까워졌다.
진천의 기도를 느끼기에 충분한 거리다.
루이먼은 몸을 부르르 떨고 있는 자신을 발견 하였다.
“적장은 어서 나와 내 검을 받아라.”
루이먼이 검을 뽑아 들며 외쳤다.
“노부는 이 자리에서 움직이지 않는다.”
“본인과의 대결을 거부 하는 것인가? 역시 사람은 늙으면 겁만 남게 되는군.”
루이먼은 떨리는 몸을 억제하기 위해 크게 외쳤다.
“마음대로 하거라.”
진천은 조금도 움직일 생각이 없어 보였다.
“하는 수 없군.”
루이먼은 슬쩍 성벽 위를 올려다보았다.
낙석할 준비를 하고 있는 병사와 궁병들이 보이지 않았다. 띄엄띄엄 신명국의 기사들만이 성벽을 지키고 있었다.
코웃음이 나왔다.
하물며 산적 무리라 할지라도 궁병은 기본적으로 배치되어 있다.
완전히 파악됐다.
적은 나라가 아니라 일개 무리 일뿐이다.
궁병조차도 조직되지 않은 작은 무리!
루이먼은 피식 웃었다.
“노인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는 지켜주지! 단칼에 베어주마!”
말에서 내렸다.
그러기 무섭게 앞으로 달려 나갔다.
“내 검을 받아라!”
푸른 기운이 루이먼의 검을 감싸 돌았다.
이계인들이 흔히 말하는 오러 블레이드!
로스엔의 십만 병사들은 일제히 자랑스러운 표정으로 함성을 질렀다.
“죽어랏!”
루이먼이 검을 휘둘렀다.
날카로운 푸른 기운들이 진천의 몸을 향해 쏟아졌다.
진천은 어느새 빼 든 검을 휘둘렀다.
구천신검법 제 삼초식 천검대연의 수법이 펼쳐졌다.
루이먼이 터트린 푸른 기운들이 진천의 검로 안으로 빨려 들어갔다. 그 기운들은 검로 안을 맴돌다 사라졌다.
아니?
루이먼의 얼굴이 당혹감으로 물들었다.
더욱 깊숙이 진천 쪽으로 파고들었다.
루이먼은 흐르는 물처럼 움직이는 진천의 검로 안에 파묻혔다. 헤어 나올 수 없는 기묘한 검의 변화가 루이먼의 앞에서 수차례 반복되었다.
‘이런 검술이…….’
루이먼은 새로운 경지를 보았다.
“으윽.”
루이먼은 이 기묘한 검술을 파훼하기 위해 머리를 굴렸다.
하지만 해답은 나오지 않았다.
진천의 검이 루이먼의 코앞까지 당도했다.
루이먼은 끝났구나 생각하였다.
반사적으로 눈을 질끈 감았다.
탁 하는 소리와 함께 루이먼은 자신의 몸이 움직이지 않는다는 것을 눈치챘다.
루이먼은 얼은 동태처럼 빳빳이 굳었다.
진천이 손등으로 루이먼의 허리를 쳤다.
루이먼의 몸이 성벽 위로 날아갔다.
정파고수가 루이먼을 낚아챘다.
“루이먼경,”
황제 아실리안은 침통스러웠다.
로스엔에 손꼽히는 소드 마스터가 채 몇 합도 나누지 못했다. 허무하게 포로로 잡혀버렸다.
황제 아실리안의 얼굴은 금세 벌게졌다.
“폐하!”
땅의 기사. 소드 마스터 베르만이 청했다.
“제가 적장의 목을 취하겠습니다.”
“오. 베르만경. 경만 믿는다.”
“예. 폐하.”
베르만은 처음부터 거칠게 뛰어 나갔다.
조금 전 상대의 실력을 눈으로 보았다. 감히 어느 정도의 경지를 지니고 있는지 추측 하지 못할 실력! 그래도 설마 그랜드 소드 마스터일리는 없다고 생각하였다.
처음부터 자신 있는 검술을 사용했다.
스네이크 제 1 검술.
미끄러지는 뱀처럼 베르만의 검!
푸른 기운에 감싸인 채 진천을 향해 날아들었다.
‘도무지 감 잡을 수 없을 걸.’
베르만의 검술엔 자신감이 흘러 넘쳤다.
쉭.
진천이 살짝 비낀 고개 사이로 검이 지나쳤다.
우연일 것이다.
베르만은 맹공을 가했다.
쉭.쉭.쉭.
진천은 허리와 고개만 움직이며 연거푸 세 번이나 베르만의 검을 피하였다.
흥분한 베르만이 크게 검을 올렸다.
빈틈이다.
진천의 집게 손가락이 베르만의 명문혈을 찔렀다.
베르만도 루이먼과 다를 바 없는 모습으로 변했다. 진천은 베르만을 성벽위로 날려버린채 외쳤다.
“노부는 만명이고 십만 명이고 상관없다. 너희들은 절대 노부의 등뒤에 나있는 길을 걸을 일이 없을 것이다.”
커다란 호령.
진천의 수염이 흔들거렸다.
“마법사단!”
황제 아실리안은 웅성 거리는 병사들이 들으라는 듯 크게 말했다.
일천여명의 마법사단이 걸어 나왔다.
황제 아실리안이 검으로 진천을 가리켰다.
“적장을 죽여라.”
“알겠나이다. 황제 폐하.”
마법사단의 수장인 고위 마법사 드레트가 후드를 걷었다.
드레트가 지팡이를 높게 치켜 올렸다.
밝은 빛이 나왔다.
모든 마법사들의 머릿속에 라이트닝의 심상이 동일하게 떠올랐다.
가로로 늘어선 마법사들이 지팡이를 움켜쥐었다.
진천을 가리켰다.
고위 마법사 드레트의 지팡이에서 전격 마법이 쏟아 나왔다.
“라이트닝!”
동시에 일천여 마법사들의 마법이 터져 나왔다.
천개의 전격 마법이 토해내는 스파크가 곳곳에서 번쩍였다.
일천여개의 라이트닝은 서로 엉켰다.
진천을 향해 뻗어나갔다.
“흡!”
진천은 눈을 부릅떴다.
몸을 감싼 청령진기가 은은한 빛을 발했다.
쾅 하는 소리와 함께 거대한 라이트닝의 본체가 진천의 전신을 때렸다.
시선은 튀기는 스파크로 가득하였다.
황제 아실리안의 입꼬리가 올라갔다.
마법사단의 전격마법을 몸으로 받다니……
어리석다.
과한 용기는 오만!
황제 아실리안은 전격마법이 토해내는 빛에 눈이 부셨다. 오른손으로 눈앞을 가렸다. 마법의 빛이 천천히 사라지기 시작하였다.
고위 마법사 드레트가 고개를 끄덕였다.
마법사들은 라이트닝을 멈췄다.
빠지직. 빠지직.
마법을 온몸에 받은 노인은 검게 그을린 채 서 있었다. 아직도 백발노장의 주위에선 스파크가 일었고, 두 눈을 감은 상태다.
적장은 죽었다.
고위 마법사 드레트가 확신을 가질 때였다.
진천이 눈을 번쩍 떴다.
그가 몸을 한번 비틀자 타버린 의복이 군데군데 찢겨져 날아들었다.
“피해랏!”
황제 아실리안이 고개를 숙이며 외쳤다.
수십 개의 천조각이 강렬한 속도로 날아오는 것이 아닌가?
무슨 수법인지는 몰라도 심상치 않다.
아슬아슬하게 황제 아실리안의 투구 위로 천조각이 스쳐 지나갔다.
으악.
미처 피하지 못한 마법사들이 비명을 토했다.
천조각은 마법사들의 몸을 관통하고 지나갔다.
뻘건 피가 솟구쳤다.
‘이럴 수는 없다’
황제 아실리안은 상체를 일으켰다. 손으로 투구를 더듬어 보니 윗 장식이 잘려져 나갔다. 천만다행히 아닐 수 없다. 조금만 늦었어도 목숨을 잃을 뻔하였다.
성인의 몸보다 거대한 방패를 가진 병사들이 황제 아실리안 앞으로 나섰다.
방패를 겹겹이 쌓아 황제 아실리안을 보호하였다.
황제 아실리안은 고개를 흔들었다.
조금 전 백발노장이 일으킨 경악스러운 일을 잊기 위해서다.
“실드군단은 앞으로! 전군을 보호하라.”
황제 아실리안이 외쳤다.
실드군단은 전군의 앞으로 나와 큰 방패를 땅에 박았다.
일층. 이층. 삼층.
서로의 몸을 밟고 올라서 거대한 방패의 성벽을 이루었다.
황제 아실리안의 눈에 독기가 일렁거렸다.
“투석부대!”
드르르……
백여 대가 넘는 투석기의 바퀴가 지면을 긁었다.
투석기는 집채만 하다.
그것이 날리는 바위가 성벽을 무참히 부숴 버린다. 이것이 바로 투석기다. 공성전에 있어서 절대 빠질 수 없는 병기로써 그 효용성은 수많은 전투에서 증명되었다.
황제 아실리안도 백여 대의 투석기를 동원하였다.
아실리안이 신호를 보냈다.
로스엔 병사들은 수십 명씩 달려들어 투석기위에 바위를 올려놓았다.
으압. 으압.
병사들은 일정한 기합을 토하며 투석기의 공격 준비를 완료 하였다.
“어디 이것 또한 막을 수 있는지 보겠다. 준비!”
황제 아실리안이 외쳤다.
“발사!”
황제 아실리안이 포효하였다.
투석부대병들이 투석기의 노끈을 향해 검을 휘둘렀다. 노끈이 잘려지자마자 그 반탄력으로 바위들이 하늘을 날았다.
하늘엔 온통 나는 바위들뿐이었다.
― 부숩시다
― 당연하지요.
정파 고수들 사이에 전음이 오갔다.
바위는 빠른 속도로 날아들었다.
정파고수들이 성벽을 박차고 뛰어올랐다. 그들의 손에 들린 검에서 검기가 피어올랐다.
뜨겁게 작렬하는 태양빛을 가르고 검을 휘둘렀다.
뻗어 나온 검기!
뎅강!
두부 베는 것 같이 거대한 바위가 허공에서 반절로 쪼개졌다. 정파고수들은 저마다 권을 내질렀다.
내뿜어진 내력은 바위를 본래의 진형 쪽으로 날려 보냈다.
“으악.”
로스엔의 진형에 투석바위가 떨어졌다.
여러 대의 투석기도 바위에 맞아 부셔졌다.
진형은 금세 엉망진창이 되었다.
“모두 재정비하라.”
황제 아실리안은 이를 갈았다.
그는 분노에 찬 눈으로 정파고수들을 노려보았다.
이제 더 이상 그들의 무위를 봐도 놀랍지 않다. 더욱 분노만 쌓일 뿐이다.
“이동!”
황제 아실리안이 검으로 좌우를 가리켰다.
기사들이 병력을 넓게 퍼트렸다.
평원 가득 메운 병사들은 조금 전 상황을 똑똑히 보았다.
거대한 투석바위를 허공에서 잘라 버리고, 다시 되돌려 날려 버리는 그 기묘한 수법과 무위!
그제야 단 사백 명이 칠천여 병사들과 벌인 전투에서 어떻게 대승을 거둬들였는지 이해가 갔다.
저들은 최정예다.
“궁병은 시위를 당겨라.”
아실리안의 몇에 수만 궁병들이 시위를 당겼다. 팽팽하게 당겨진 시위. 걸친 화살은 언제든 날아갈 준비가 되어 있었다.
“궁병을 제외한 전군! 돌격 준비.”
착!
기병들은 창을 장착했다.
보병들도 주먹을 움켜쥐며 내달릴 준비하였다.
“키닐 백작. 그대가 전군을 지휘하여 성을 함락 시켜라.”
“예. 폐하.”
키닐 백작은 힘 있게 대답했다.
“발사!”
황제 아실리안의 명이 떨어졌다.
궁병들은 시위를 놓았다.
슈슈슈슉.
수만 발의 화살들이 허공을 가로질렀다.
하늘을 새까맣게 뒤덮은 화살들! 모두 신명대국의 성을 향해 날아가고 있었다.
“전군 돌격하라! 적의 목을 베는 이는 천 골드와 작위를 하사 한다.”
천 골드와 작위.
병사들의 눈빛이 달라졌다.
“돌격!”
황제 아실리안의 외침과 함께 키닐 백작이 앞장서 달려갔다. 그 뒤로 수천 군마와 수만 병사들이 있는 힘껏 내달렸다.
금세 뿌옇게 먼지가 일어 평원을 뒤덮었다.
“와아아아.”
병사들의 함성소리는 갈수록 커져갔다.
아……
정파 고수들은 침을 꿀꺽 삼켰다.
검황 진천의 입술이 약간 비틀어졌다.
검황과 정파 고수들은 검을 강하게 움켜잡았다.
본격적인 이백 대 십만대군의 결전이 시작된 것이다. 모두 목숨을 내걸고 죽을힘을 다해 적들을 막아야 했다.
― 왔다!
시야에 자신들의 목숨을 노리고 날아오는 수만 발의 화살들이 들어왔다.
정파 고수들은 검을 휘둘렀다.
어지럽고 빠르다.
화살들은 그치지 않고 날아왔다. 몇 발이 아닌 한번에 수십 발씩 날아들어 혼이 날아갈 지경이었다. 정파고수들은 온 정신을 집중하고 날아오는 화살들을 족족 쳐냈다.
그러나 그치지 않는 화살.
어느새 정파 고수들의 관자놀이에 식은땀이 맺혔다.
쾅!
투석바위가 성벽에 부딪치는 소리다.
화살뿐만 아니라 투석 바위까지 날아오고 있었다.
정신없다.
하늘에선 수만발의 화살과 거대한 바위가 날아들고, 땅에선 수만 명의 병사들이 사다리를 올려 기어 올라오고 있다.
팡! 정파고수 중 한 명이 갑작스럽게 날아온 마법에 적중 당했다. 급격히 호신강기를 일으켰지만 내상은 피할 수 없었다.
입 끝으로 피가 흘러나왔다.
고수는 피를 훔칠 새도 없이 화살들을 쳐내기에 바빴다.
“크하하핫!”
황제 아실리안이 웃어젖혔다.
아무리 개개인의 무위가 뛰어난들 대군 앞에선 소용이 없다.
십만 대군이다. 십만 대군.
“잘 보거라. 황자. 이것이 본국의 위력이다.”
황자 클레이스에게 말했다.
“예. 폐하.”
클레이스는 진천을 바라보고 있었다.
어지러운 가운데 진천이 서 있는 곳은 확연히 눈에 띠였다.
진천이 손을 한번 휘두를 때마다 한 번에 여러 명의 병사들이 튕겨져 나가고 있었다.
쾅.
투석바위 하나가 또다시 성벽에 부딪쳤다.
아무리 정파고수들이 일 갑자 이상의 내력을 지닌 일류 고수들이지만.
수만 발씩 날아오는 화살과 투석바위 그리고 수천발의 마법 공격을 막아내는 데는 한계가 있었다.
이윽고 또 한 명의 비명이 터져 나왔다.
“컥!”
정파고수 중 한 명의 다리에 화살이 박혔다.
“크윽,”
정파고수는 신음을 흘렸다.
정면으로 날아오는 불덩어리를 가르자마자 자신을 향해 날아오는 수십 개의 화살이 시야에 가득 찼다.
화살을 뽑아낼 시간이 없다.
혈도를 제압하는 것도 한계가 있었다.
어느 순간부터는 살초를 쓸 수밖에 없었다.
진천은 피를 뒤집어쓴 자신의 모습이 어떤지 생각할 겨를이 없었다. 끊임없이 몰려드는 병사들을 향해 검을 휘둘렀다. 휘둘러도 그 수는 전혀 줄지 않고 있는 것만 같다.
진천은 얼굴에 튀긴 피를 훔쳤다.
진한 피비린내가 나는 전장 성문 앞.
끊임없이 몰려들긴 하지만 누구 하나 진천 뒤의 땅을 밟는 이는 없었다.
“흐아아압!”
진천이 고함을 터트렸다.
“으악.”
진천을 향해 달려들던 병사들이 귀를 움켜잡았다.
진천이 몸을 회전하며 각을 날렸다. 풀어헤쳐진 백발과 함께 멋들어진 수염이 휘날렸다.
열 명이 이상이 뒤로 날아갔다.
시야에 가득 찬 건 적병들뿐이었다.
아침부터 지속된 전투는 밤이 지나가도록 계속 되고 있었다. 천하의 검황 진천이라지만 그 또한 체력에 한계가 인간이다.
후욱.
진천이 숨을 크게 내뱉었다.
“으아악!”
성벽 밑으로 추락하는 로스엔 병사들의 비명 소리도 전장의 일부였다.
정파 고수들은 사다리를 타고 올라오는 병사들을 저지 했다.
그 사이.
화살 하나가 날아들었다.
청성고수 와룡진은 강렬한 통증과 함께 이를 악물었다.
벌써 세 번째 박힌 화살이다.
― 대형!
막내 와룡방이 전음을 날렸다.
― 자리를 고수해!
와룡진은 투석바위를 갈랐다.
와룡방 역시 와룡방보다 상황이 나빴으면 나빴지 더 좋지 않았다.
타격당한 적군의 사술에 내상을 입었고, 어깨에 박힌 화살덕분에 검의 속도가 늦어지고 있었다.
후욱. 후욱.
정파고수들의 숨결은 거칠어졌다.
비무와 소단위의 전투는 많이 벌여봤어도, 이렇게 엄청난 대군과 전쟁을 하는 것은 처음이었다.
몇날 몇일.
길면 몇 달 몇 년은 족히 걸리는 전쟁이다.
“이놈!”
와룡진은 막 성벽위로 올라온 적병을 베었다. 적병은 와룡진에게 베이기도 전에 자군의 화살에 목숨을 잃은 상태였다. 큰 검상 입은 시체 한 구가 성벽 아래로 떨어졌다.
푹.
방각대사는 법장을 휘둘러 화살을 쳐냈다.
확실히 하루 종일 지속된 전투에 몸의 반응이 늦어지고 있었다. 미처 처리하지 못한 화살 하나가 날아왔다. 방각대사의 귀를 꿰뚫고 지나갔다.
“나……무……아……미……타……불”
방각대사는 진언을 외우며 통증을 완화 시켰다.
“저희들도 도우겠습니다!”
성안의 백성들이 외쳤다.
백성들은 커다란 나무판자로 화살들을 막고 있었다.
“안됩니다.”
종남고수 남궁혁은 두개의 화염덩어리를 가르며 외쳤다.
“으압!”
어느새 기어 올라온 병사가 검을 휘둘렀다. 남궁혁은 팔꿈치로 병사의 명치를 찍었다. 뒤로 크게 날아간 병사는 성벽 아래로 추락! 비명이 들려왔다.
― 남궁대협! 앞을!
갑자기 전음이 들렸다.
남궁혁은 화들짝 놀라 앞을 바라보았다.
막 투석바위가 자신의 다리 밑 성벽에 적중당하는 순간이었다. 큰소리와 함께 남궁혁이 서 있던 일부분이 무너져 내렸다. 남궁혁의 몸이 기우뚱 했다.
정면으로 날아온 아이스 미사일이 남궁혁의 어깨에 부딪쳤다.
“컥.”
남궁혁의 어깨가 얼려졌다.
― 남궁대협!
― 괜찮습니다.
남궁혁은 마지막 남은 내력을 끌어 올렸다.
얼음을 녹였다.
그러나 통증은 여전 하다.
남궁혁은 자세를 바로잡으며 이를 악물었다. 홀로 성문을 지키고 서 있는 검황 진천대협이 생각났기 때문이리라.
진천은 쌍장을 뻗었다.
내기가 폭발하여 수십 명을 잠재웠다.
금세 그 자리를 또 다른 병사들이 채웠다.
진천은 거친 숨을 몰아쉬며 앞을 노려보았다.
“결코 너희들은 이곳을 지나칠 수 없다!”
진천의 큰 호령소리에 달리던 병사들이 움찔 거렸다. 기도가 완벽히 제압당해 자신의 몸이 아닌 듯 움직이지 않는다. 진천의 검이 그들의 가슴을 베었다.
“와아아아아!”
그래도 병사들은 사기가 꺾이지 않았다.
진천은 숨을 크게 마시며 내력을 운용했다. 여러 개의 검이 한번에 진천을 찔러 들어왔다.
진천은 그것들을 피하며 검에 내력을 집중했다.
모처럼 피어오른 수 미터의 검기.
병사들은 공격을 멈추고 뒷걸음질 쳤다.
진천의 검에서 내력이 폭발하였다.
구천신검 제 사초식 천검천파!
진천은 승천하는 용처럼 몸을 회전하며 검을 휘둘렀다.
일순간!
“으아아악.”
수를 헤아릴 수 없을 병사들이 검기의 회용돌이에 휩쓸렸다.
많은 병사들이 날아갔다.
진천의 앞 공간이 텅 비었다.
확실히 병사들이 진천을 향해 달려드는 것을 꺼려하는 것이 확연히 보였다.
너무 내력을 끌어올린 탓일까. 하루 종일 지속된 전투에 몸이 견디질 못하는 것일까.
진천의 몸이 비틀거렸다.
“크하하핫!”
팔짱을 낀 채 모든 상황을 보고 있던 아실리안.
그는 웃음을 참을 수 없었다.
“마지막 발악인가? 어디까지 발악을 해대는지 지켜보겠다!”
정파 고수 이백 명은 십만 명을 상대로 잘 버티고 있었다.
깊은 밤이 되었을 무렵엔 모두들 부상을 입은 상태였다. 로스엔의 병사들 역시 사만에 가까운 피해를 입었다.
“지독한 놈들…….”
황제 아실리안은 정파고수들을 그렇게 평했다.
거의 반절에 육박하는 군대가 피해를 입었다.
하지만 이제 성은 함락될 지경에 이르렀다. 조금만 더 피해를 감수하고 몰아붙인다.
“얼마 머지않았다. 적들은 지쳤다!”
황제 아실리안은 병사들을 격려하였다.
― 얼마 버티기 힘들 것 같습니다. 크윽.
남궁혁이 금방이라도 쓰러질 것만 같았다.
― 버티시오. 남궁대협. 이 성은 기필코 지켜야 하오!
화산일검의 전음 소리.
화산일검 또한 몸 상태가 말이 아니었다.
“절대 노부 뒤를 지나칠 수 없다!”
진천이 호령하며 검을 휘두른다. 피에 젖은 그 모습은 무척이나 피로해 보였다.
분명히 십만대군은 엄청난 숫자였다.
죽여도 죽여도 끊임없다.
“크하하핫!”
황제 아실리안 대소를 하였다.
허억. 허억.
정파 고수 모두 거칠게 숨을 토하며 검을 휘두른다. 처음 같은 몸동작이 아니다.
내공은 바닥났다.
악으로 검을 쥐어 잡았고, 오기로 기합을 내질렀다.
모두 오기만 남은 그때!
로스엔국의 후방에서 비명 소리가 들렸다.
비명 소리는 빠른 속도로 전염되었다.
한두 명으로 시작됐던 비명 소리는 급기야 수백으로 퍼졌다.
“으악!”
외마디 비명 소리와 함께 마법사들의 마법 공격수가 떨어지고 있었다.
그들이다!
갑자기 그들은 로스엔의 후방에서 나타나 폭풍처럼 몰아쳤다. 마법사와 궁병 그리고 투석병 밖에 남지 않은 후방은 속수무책으로 무너지고 있었다.
진한 피비린내.
그치지 않는 비명.
겁에 질린 마법사들의 얼굴.
“전……전하!”
이윽고 화산일검이 음성을 터트렸다.
“전하!”
남궁혁의 눈도 번쩍 뜨였다.
“모두 베어라!”
주첨기는 맹렬한 호령하였다.
이 얼마나 듣고 싶었던 목소리던가!
퇴괴평온당. 사파고수들의 검이 마법사와 궁병의 위로 작렬하였다.
“키키키…….”
수라혈마가 권을 내질렀다.
수십 명의 마법사가 운용한 실드는 조금도 버티지 못했다. 수라혈마의 권기가 마법사들의 전신을 때렸다. 마법사들은 비명조차 지르지 못하고 목숨을 잃었다.
“전하께서 퇴괴평온당과 함께 돌아오셨다!”
피로와 고통에 얼굴을 찌푸리고 있던 정파고수들. 그들의 얼굴이 밝게 펴졌다. 절로 휘두르는 검에 힘이 들어갔다.
“우와아아!”
전세는 순식간에 반전되었다.
확실히 날아오는 마법공격과 화살들의 수가 대번에 느려지고 있었다.
“죽엇!”
홍염광마가 권을 휘둘렀다.
파이어볼을 꿰뚫고 지나간 권이 마법사의 얼굴에 적중되었다.
끽 하는 소리가 들렸다. 빠르게 마법사단의 중앙으로 파고들어가며 마법사들을 공격했다.
귀영살검, 혈연수, 혈지추객, 소면혈객, 진성목 등이 홍염광마의 뒤를 바짝 따라붙었다.
사파고수들을 막을 자는 아무도 없었다.
주첨기의 눈이 번쩍였다.
“전군!”
그의 목소리가 혼란한 전장터를 깨웠다.
주첨기의 목소리는 적군 아군 할 것 없이 고막을 진동시켰다.
정파고수들과 사파고수들이 더욱 강하게 검을 움켜잡았다.
“돌격하라!”
주첨기의 황명이 떨어졌다.
― 갑시다
― 좋았어
― 돌격.
정파 고수들은 성벽에 기어오르는 병사들을 처리하였다. 그러곤 바로 성벽 아래로 뛰어내렸다.
부상 입고 내력이 고갈되었던 자들의 모습이라곤 믿기 힘들 정도로 힘찬 동작이었다.
슈슉.
성벽 아래로 뛰어내리는 정파 고수들의 그림자가 어둠에 묻혔다.
갑자기. 휘둘러진 정파고수들의 병기가 달빛에 번뜩였다.
뻘건 선혈이 솟구쳤다.
이미 땅은 낭자한 선혈들로 질퍽질퍽 하였다.
“돌격!”
정파고수들은 일제히 외쳤다.
거침없이 몸에 박힌 화살을 뽑아 내동댕이쳤다.
― 맹주님.
화산일검이 진천의 옆에 바짝 붙었다.
― 전하가 돌아 오셨다.
― 예.
“으아압”
진천이 기염을 토했다.
검기를 날렸다. 달려오던 일대 기병대원들이 비명을 토했다. 로스엔 병사들은 속수무책으로 무너져 내렸다.
전방에선 정파고수들.
후방에선 사파고수들.
그들을 막아서는 병사들에겐 죽음뿐이었다.
휘둘러진 검에 수명씩 튕겨 나가고, 내뻗어진 주먹에 수명씩 몸이 관통 당한다.
신명국의 기사들은 인간의 몸놀림이라고 볼 수 없는 빠른 속도로 전장을 휘저었다.
“이럴 수는 없어……뭣들 하는가!”
황제 아실리안이 외쳤다.
황제 아실리안이 정신이 들었을 땐 이미 전세는 역전 되었고, 자군의 병사들이 빠른 속도로 침몰해 들어가고 있었다.
“로스엔의 왕이여!”
전신을 압도하는 음성이 황제 아실리안의 뒤통수를 강타하였다.
황제 아실리안은 급히 뒤를 돌아보았다.
컥!
숨이 막혔다.
바로 눈앞에는 신명국의 왕이 서 있었다.
주첨기는 검으로 아실리안을 가리켰다.
매서운 푸른 검기가 불타오르는 듯 일렁였다.
황제 아실리안은 신음을 흘리며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이미 친위 병사와 기사들 모두 바닥에 쓰러져 있었다.
“크윽.”
황제 아실리안은 뒷걸음쳤다.
“로스엔의 왕이여…….”
주첨기의 나지막한 말 한마디와 함께 아실리안이 감당 못할 힘이 쏟아져 나왔다.
거대한 힘이 아실리안의 어깨를 짓눌렀다.
아실리안은 몸부림 쳤다.
소용없다.
탁!
황제 아실리안의 무릎이 꿇려졌다.
“전쟁은 끝났다.”
주첨기는 검을 늘어트린 채 무릎 꿇은 아실리안을 향해 걸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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