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mortal martial artist RAW novel - Chapter 24
제2화 드리안국과의 동맹
“그곳을 좀 더 보충해라!”
젠달리프가 성벽을 가리켰다.
대부분의 성벽은 수리 되었다. 이제 한곳만 남았다.
투석바위에 무너졌던 성벽 쪽으로 드워프들이 뛰어갔다. 잠시 뒤 연장질 소리가 들려왔다. 신명대국의 백성들도 드워프들이 가리킨 바위들을 옮기며 도왔다.
으쌰!
백성과 드워프들은 모두 한마음이 되었다.
성벽은 견고하게 쌓아 올라 가고 있었다.
젠달리프가 고개를 끄덕였다. 팔 장을 풀었다. 황성 쪽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그는 스스로 자신의 발걸음을 재촉 하고 있었다.
황성은 완공 직전이다.
웅장함과 예술성이 극에 달한 황성!
역사상 대륙 최고의 황성이 될 것이 뻔하였다.
젠달리프는 흐뭇한 눈빛을 띄었다.
“고쿠!”
“예! 노커.”
황성 꼭대기 탑에서 고쿠가 크게 대답했다.
“상황은 어떤가?”
“괜찮습니다. 노커. 순조롭습니다. 탑과, 조각이 끝나는 이틀 후 모든 황성 작업은 종료 됩니다!”
“수고하게!”
젠달리프는 서둘러 발걸음을 돌렸다.
그는 몸이 열개라도 부족했다.
성의 완공과 성벽 수리, 병기 제작, 데이모스 연구.
이 모든 것을 지휘 하는 그는 며칠간 잠을 자지 못하고 있었다.
젠달리프가 탑 안으로 들어갔다.
“나다. 젠달리프.”
젠달리프는 맨땅을 향해 말하였다.
“알겠다.”
저음의 목소리가 들렸다.
본성의 가디언. 하크의 목소리였다.
곧 땅에서 숨겨졌던 문이 드러났다. 끼이익 하는 소리와 함께 문이 열리기 시작하였다. 지하 본성으로 향하는 계단이 눈에 들어왔다.
젠달리프가 계단을 내려갔다.
갈색 톤의 우락부락한 몸집을 가진 하크. 그가 계단 맨 밑 정면에서 우뚝 서 있었다.
“몬스터들은 아직인가?”
젠달리프가 물었다.
황성 작업을 하는데 몬스터들의 힘이 있다면 더욱 수월하다. 그런데 대전이후로 몬스터들이 통제 되지 않았다.
“아직도 잔뜩 겁을 먹은 모양이다.”
“한심하긴. 대전이 끝난 지 육 일 가까이 지났는데도 말인가?”
“그렇다.”
“하긴…….”
신명국의 검사들이 발했던 기운들은 여태껏 타국의 기사들과는 차원이 달랐던 것이었다.
본능에 충실한 몬스터들은 더욱 그 기운들이 잘 느껴졌을 게다.
잔뜩 겁을 먹은 후 본성 지하 깊숙이 숨어 나오질 않고 있었다.
워낙에 큰 전쟁이었으니까……
당연한일이다.
동족 중 몇몇도 해머를 들지 못하고 있지 않은가.
“수고하게.”
젠달리프가 하크의 옆을 지나쳤다.
젠달리프는 대장간으로 향했다.
땅! 땅!
대장간은 해머질 소리로 가득했다.
뿌옇게 올라온 수증기가 천장을 채우고 있었다.
젠달리프는 한 드워프의 곁으로 다가갔다.
병기 작업에 한창이다.
“키키키…….”
젠달리프가 괴상스러운 웃음소리를 흘렸다.
원수 레드 드래곤 아르카콘트의 뼈들이 동족의 손아래 병기로 만들어지고 있기 때문이었다.
“잘되고 있는가?”
젠달리프가 물었다.
“예.”
드워프는 해머질을 멈추지 않은 채 대답하였다.
젠달리프는 진열대 위의 검을 들었다.
드래곤본으로 만들어진 검.
아직 공작 작업과 검집 작업에 들어가지 않은 블레이드 천연의 모습이었다.
흡족하다.
젠달리프가 블레이드를 이리저리 훑어보았다.
매끄러운 날은 예기를 흘리고 있었다.
무엇이든 베어버릴 것만 같다.
땅! 땅!
드워프가 해머질을 멈추고 집게를 들었다. 집게로 드래곤 본을 집어 냉수에 담궜다. 뻘겋게 달아올랐던 뼛조각이 식으며 수중기를 내뿜었다.
드워프는 모루 위로 다시 드래곤 본을 올렸다.
해머질은 그렇게 반복 되었다.
젠달리프는 동족의 해머질이 끝날 때까지 기다렸다.
결국 드워프가 해머질을 끝냈다.
흘러내리는 땀을 손등으로 훔치며 옆을 돌아보았다.
“오셨습니까. 노커”
“열심히 하고 있군. 블레이드 부분을 내리칠땐 힘을 조금더 빼는 것이 좋겠어.”
“예?”
“유연성을 갖추라는 말이지. 강한 타격만이 검을 단단하게 만드는 것이 아니지. 이리 줘보게.”
젠달리프가 손을 내밀었다.
“예.”
드워프는 젠달리프에게 해머를 건넸다.
젠달리프가 해머를 움켜쥐었다.
그는 드래곤본을 노려보았다.
해머가 위로 올라갔다.
그의 해머질이 시작되었다.
땅! 땅!
음유시인의 노랫가락처럼 해머질 소리는 리듬에 맞춰 일정하였다. 때론 강렬하고, 때론 느슨한 해머질 솜씨는 대단 했다.
드워프는 감탄하였다.
한참 동안 해머질을 하였다.
젠달리프의 관자놀이에 땀이 맺혔다.
막바지에 달하자 해머는 보석을 다루듯 매우 세심하게 움직였다.
젠달리프는 해머질을 멈췄다.
“봤나?”
“예. 노커.”
드워프는 좀 더 예리해진 날을 보며 대답하였다.
“그럼 수고하게.”
젠달리프가 해머를 되돌려주었다.
드워프는 우두커니 드래곤본을 바라보았다.
뭔가 결심한 듯 눈빛이 빛났다.
더욱 강하게 해머를 움켜쥐었다.
드워프는 노커가 보여줬던 모습을 떠올리며 해머질을 했다.
“좋다…….”
노커 젠달리프가 고개를 끄덕였다.
젠달리프는 대장간 안을 천천히 돌았다. 병기 작업을 하고 있는 드워프들에게 한 가지씩 조언을 해 주었다. 시간은 어느새 훌쩍 지나가고 있었다.
병기 작업은 순조롭게 진행되고 있다.
황성이 완공되는 시점에서 병기 작업도 완료 될 듯하였다.
젠달리프는 한숨 돌렸다.
치열한 전쟁이 벌어졌을 때도, 자신과 동족은 작업을 멈추지 않았다.
‘그대들의 작업에 열중하라.’
신명대국의 황제가 전쟁 직전 말했던 말은 아직도 가슴에 남아 있었다.
이제 곧.
얼굴을 들 수 있을 것이다.
젠달리프는 대장간 깊숙이 들어갔다.
매우 큰 방 아니 공터라고 해야 맞다.
이곳은 다른 곳과 분위기가 달랐다.
엄숙하고 조용했다.
조용한 가운데 장로급 드워프들이 서로 의견을 나누고 있었다. 젠달리프가 다가오자 고개를 숙였다.
젠달리프는 앞을 보았다.
하나하나 분해 된 부품들이 즐비하게 놓여 있었다. 제일 중앙엔 식어가는 드래곤 하트까지 있었다.
문득 젠달리프가 그쪽으로 걸어갔다.
“이것은 더 이상 쓰지 못할 것 같다.”
젠달리프는 드래곤 하트를 가리켰다.
“데이모스가 파손될 때 드래곤 하트까지 기운을 잃습니다. 노커.”
“하는 수 없군. 주첨기님께서 주신 드래곤 하트로 연구를 지속하게.”
“예. 노커.”
장로 드워프들이 대답했다.
“여기 있는 제어 장치를 보십시오. 노커.”
“음…… 제어술사가 필요 할 수밖에 없는 구조다.”
“맞습니다. 노커.”
“제어술사가 있으면 매우 번거롭다. 효용성이 매우 떨어지는데…… 이걸…….”
젠달리프는 도면 옆에 놓인 펜을 잡았다. 젠달리프가 제어장치 설계도면 위에 뭔가를 덮어 썼다. 장로 드워프들은 서로 눈빛을 교환하고 고개를 끄덕였다.
“제어장치를 증폭장치로 바꾸고, 곧 제어는 검사의 능력에 달한다는 말씀이시군요.”
“맞네.”
“좋습니다. 이쪽으로 연구를 진행 하겠습니다. 노커. 테마는 정하셨습니까?”
장로 드워프는 새롭게 제작될 두기의 데이모스에 대해 물었다. 젠달리프는 담담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빛과 어둠. 절묘한 조화지…….”
콧수염을 멋들어지게 기른 귀족과 일행은 넋을 잃고 앞을 바라보았다.
신명대국의 황성은 굉장했다.
하릴백작이 입을 쩌억 벌렸다.
그는 과학과 예술의 나라 드리안의 대귀족이다.
신명대국의 황성은 규모와 위엄이 넘치는 외관뿐만 아니라 예술성까지 뛰어났다. 천상의 천성(天城)을 그대로 옮겨 놓은 듯하다.
인간의 기술로써는 이렇게 뛰어난 성을 제작할 수 없다.
이성의 장인은 드워프다!
“아……드워프!”
역시나. 황성의 장인들을 발견하였다.
“어째서 저들이…….”
하릴 백작이 의아해서 중얼거렸다.
드워프들은 인간을 싫어한다. 드리안국에서도 드워프들을 영입하려 했다. 대단한 조건을 걸어도 드워프들은 일말의 관심도 보이지 않았었다.
그런 드워프들이 신명대국의 황성과 성벽을 증축 하고 있었다.
“바로 이곳입니다.”
와룡방이 말했다.
“대……대단한 성입니다.”
하릴 백작은 진심이었다.
사절단원 모두 같은 생각이다.
“아직도 피비린내가 나는군요. 양해 부탁드리겠습니다.”
와룡방이 포권하였다.
하릴 백작은 두 손을 저었다.
“양해라니요. 그런 말씀 하지 마십시오. 검사님.”
“그럼 앞장서겠습니다.”
드리안국의 사절단은 와룡방의 뒤를 따랐다. 한창 성벽 수리를 하고 있는 드워프들과 백성들이 사절단원들을 호기심 어린 눈빛으로 바라보았다.
사절단원 역시 마찬가지다.
‘설마 저……저들이 백성 전부인가.’
하릴 백작은 믿기지 않았다.
아무리 주위를 둘러보아도 일천호도 되지 않는 마을 하나만 보일뿐!
주변은 위엄있는 황성과는 천지차이였다.
현재 백성 수만 놓고 봤을 때.
신명대국의 규모는 자국인 드리안국의 1000분의 1 정도 밖에 되지 않는다.
‘나라라고 할 수 없는 규모…….’
그러나 하릴 백작은 이를 겉으로 드러내지 않았다.
그는 신중한 사람이다.
눈에 보이는 것을 전부로 치부하는 옹졸함을 진작 버리지 않았다면. 자유분방한 나라 드리안에서 대귀족 백작의 신분을 유지하기 힘들었을 것이다.
‘이런…… 나라가 로스엔 대국과의 대전에서 승리하고, 로스엔 대국을 속국으로 만들었단 말인가…… 대단한 나라다. 신명대국은…….’
하릴 백작은 새로운 세계에 온 듯한 기분이었다.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가 되지 않는다. 어떻게 로스엔 이십만 대군을 물리쳐단 말인가. 이렇게 조그마한…… 규모로써. 소문대로 신명대국 검사들이 모두 소드 마스터라 하더라도…….’
하릴 백작은 와룡방의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와룡방은 표준 키다.
그러나 흘러나오는 기운 때문에 그 등은 거인의 그것보다 거대해 보였다.
‘차차 알게 되겠지. 지금 중요한 건 결과다. 신명대국이 로스엔 대국과의 전쟁에서 승리하고. 새로운 강대국으로 떠올랐다. 이 결과에 충실하자. 하릴.’
하릴 백작은 다시 한번 다짐하였다.
“그럼 조금만 기다려 주십시오.”
와룡방이 성문 앞에 멈춰 섰다.
“예.”
하릴 백작이 대답했다.
실제적인 신명대국의 황성은 눈앞에 보이는 웅장한 성이 아닌, 지하의 본성이라는 것을 알 길이 없었다.
와룡방은 포권한후 몸을 날렸다.
큰 성문을 훌쩍 넘어버리는 신명대국의 검사.
사절단원들은 아직도 익숙해지지 않았다. 한동안 서로를 바라보며 할 말을 잃어버렸다.
어느 정도 시간이 흘렀을까?
큰 성문이 열렸다.
그곳에서 얼굴이 새하얀 노인과 청년, 그리고 신명대국의 검사 와룡방이 나왔다.
노인의 얼굴이 하얗게 보이는 데는 이유가 있었다. 여성들이나 바르는 분을 얼굴 가득히 바른 상태였다. 그러나 세월은 속일 수 없는 법. 잔주름들이 가득 보였다.
그는 혜공이었다.
‘희한한 노인과 청년이네…….’
하릴 백작이 생각했다.
“안녕하십니까. 드리안국에서 온 사절단입니다. 저는 하릴 백작이라고 합니다.”
“어서오십시오.”
“어서오세요.”
혜공과 만소자가 공손히 그들을 맞았다.
“안으로 들어오세요. 폐하께서 기다리고 계십니다.”
만소자가 말했다.
띵.띵.
그때 선율이 들려왔다. 그것은 중원의 금소리였는데 사절단원들은 처음 들어보는 소리였다. 가늘면서도 사람의 심금을 울린다. 선율은 황성의 안쪽에서 들려오고 있었다.
하릴 백작은 가슴이 설렜다.
두근거리는 심장.
웅장한 황성과, 기묘하면서 아름다운 선율은 사절단원의 마음을 단번에 빼앗고 있었다.
황성으로 올라가는 계단은 상당히 높았다.
그러나 힘들 틈이 없다.
계단 하나하나 정성스레 새겨진 조각들이 모든 정신을 잡아당기고 있었다.
‘정말 대단한 성이야. 계단조차…….’
드워프 장인들의 솜씨는 과연 대단하다.
‘저기에도 그들이…….’
하릴 백작은 탑 꼭대기 부분에서 작업하고 있는 또 다른 드워프 장인들을 발견하였다.
신명대국은 이제 막 세워진 대국.
신선한 느낌이다.
사절단원들은 황성 안으로 들어갔다.
내부도 뛰어났다. 신명대국 황성의 묘미는 오히려 겉보다도 내부 장식과 규모에 있었다.
사절단원들은 연신 감탄사를 터트렸다.
이윽고 큰 문 앞에 혜공과 만소자가 멈춰 섰다.
부드러운 선율은 문안에서 들려오는 것이었다.
“폐하! 드리안국의 사신들이 도착하였습니다요.”
혜공의 가는 목소리.
하릴 백작이 흠칫하였다.
문이 열리고 아름다운 금소리가 덮쳐 왔다.
먼 정면에는 주첨기가 용좌에!
주첨기보다 한 단계 낮은 계단의 좌측엔 진천, 우측엔 수라혈마가 앉아 있다. 그리고 그 열에 맞춰 수백 명의 무림고수들이 앉아 있었다.
아름다운 선율은 아미 문도들이 연주하는 금에서 나오고 있는 소리였다.
“아…….”
신묘한 분위기다.
대륙 곳곳의 건축 양식과, 지방 특색에 해박한 하릴 백작이었지만 이런 분위기는 실로 처음이다.
일반적인 성의 장식이 아니다.
처음 듣는 음악과, 기묘한 장식들!
하릴 백작과 사절단원의 눈이 휘동 그래졌다.
아!
하릴 백작은 눈을 내리깔고 고개를 숙였다.
이상하게도 신명대국의 황성엔 붉은 융단이 깔려 있지 않았다.
하릴 백작과 사절단원들은 주첨기의 앞쪽으로 다가갔다.
무릎을 꿇었다.
“폐하. 드리안국에서 온 하릴 이라 하옵니다.”
하릴 백작은 황공하게 고개를 조아렸다.
“고개를 들라. 하릴 백작. 이미 짐의 신하에게 그대들의 이야기를 들었다.”
주첨기가 말했다.
하릴 백작이 조심히 고개를 들었다.
하릴 백작은 차마 신명대국의 황제와 눈을 마주치지 못하였다. 비록 어리다하나. 제왕의 기운이 하릴 백작을 짓누르고 있었다.
대단한 위압감이다.
하릴 백작과 사절단원들은 몸을 떨었다.
더군다나 수백 명의 고수들까지 기운을 발하고 있으니, 사절단원들은 숨이 막힐 지경이었다.
“이것은 칼렌 전하께서 황제 폐하께 드리는 작은 선물이옵니다.”
하릴 백작이 말했다.
사절단원들은 지고 있던 상자들을 내려놓았다.
사절단원들이 상자를 열었다.
찬란한 금빛이 뿜어져 나왔다.
금은보화로 가득 찬 상자가 세 짝이었다.
그러나 주첨기의 눈은 약간의 미동도 없었다.
하릴 백작은 당화하며 뒤로 눈치를 보냈다. 한 사절단원이 보석함을 조심히 들고 앞으로 나왔다.
하릴 백작 이를 이어 받았다.
보석함 안에는 붉은색의 영롱한 빛을 담고 있는 팔찌가 들어 있었다.
“화염의 팔찌 입니다.”
하릴 백작이 눈초리를 살짝 올렸다.
‘이정도면 반응이 있겠지?’
불의 정령왕 제이가 대정령사 메르세티아에게 줬다는 그 팔찌! 지니고 있으면 불의 정령왕 제이의 수호를 받는다는 십대보물 중에 하나였다.
하지만,
“받을 수 없다. 하릴 백작. 드미안국 왕의 성의는 받은 것으로 하겠다.“
분명 값어치가 커 보이는 물건이나 주첨기는 이를 반기지 않았다. 금은보화를 받는 대에는 그에 따른 책임이 뒤따른다는 것을 모르는 그가 아니었다.
“폐하.”
하릴백작이 놀라 말했다.
“폐하께서 증정품을 거절 하시면 소인은 칼렌 전하를 볼 면목이 서지 않사옵니다.”
하릴백작이 뭐하냐는 듯한 눈빛으로 사절단원들을 재촉하였다. 사절단원들은 부랴부랴 뚜껑을 닫았다. 그리고 하릴 백작의 뒤로 와 무릎을 꿇고 머리를 조아렸다.
주첨기가 다시 한 번 확고히 거절하려는 순간.
우낏 하고 소리가 들렸다.
주첨기의 품안에서 설령이 고개를 빼꼼히 내밀었다.
설령의 눈에 팔찌가 들어왔다.
화염의 팔찌는 당장이라도 타오를 듯 붉은 빛깔을 영롱하게 발하고 있었다.
설령은 주첨기의 어깨를 찔렀다.
주첨기가 설령을 보았다.
팔찌를 바라보는 설령의 간절한 눈빛. 팔찌를 향해 조물조물 거리는 작은 손.
그렇지 않아도 설령에게 뭔가 선물을 해 주려 하였다. 지난번 설령의 노력으로 고수들이 빠르게 치유 되었다. 살신성인의 그 자체였던 설령은 타의 모범이었다.
주첨기가 피식 웃었다.
“그럼 그 팬던트를 받기로 하겠네. 드리안국의 왕에게 감사하다고 전해 주게.”
주첨기가 손을 펼쳤다.
화염의 팔찌가 빨려 그의 손으로 날아 들어왔다.
헉! 사절단원들의 눈이 크게 떠졌다.
주첨기는 화염의 팔찌를 조심스럽게 잡았다. 그리고 설령의 목에 걸어주었다. 팔찌가 목걸이로 둔갑하는 순간이었다. 순간 팔찌가 눈부신 붉은 빛을 뿜었다.
고수들이 긴장하였다.
하릴백작도 이런 적이 한 번도 없어 당황한 기색이었다.
[우낏. 우낏.]그러나 설령은 더욱 기분 좋은 듯 웃었다. 설령은 주첨기의 어깨 위로 나왔다. 어깨 위에서 폴짝 폴짝 뛰며 기분 좋은 소리를 냈다. 설령의 목에서 팔찌가 철렁거렸다.
“팔찌가 설령을, 설령이 팔찌를. 둘 다 서로를 좋아하는 것 같군.”
주첨기가 말하였다.
“그……그런 것 같사옵니다.”
십대보물중 하나인 화염의 팔찌가 이상스러운 식물(?)의 목걸이가 되었다.
하릴백작은 식은땀을 닦았다.
“그런데 드리안 국에선 본국을 어찌 찾아온 것인가?”
힘 있는 목소리다.
방금 전까지 부드러웠던 분위기는 순식간에 사라졌다. 하릴 백작의 눈빛도 남다르게 변했다. 하릴백작은 공손히 고개를 조아렸다.
“저희 드리안 국은 로스엔대국의 속국으로 있었사옵니다. 아니…… 속국이옵니다.”
주첨기가 고개를 끄덕였다.
이미 알고 있는 일이다.
삼강국은 저마다 서너 개의 속국을 가지고 있다. 십약국에 속하는 이콘, 케이트, 드리안국은 로스엔의 속국이었다.
“알고 있다.”
“저희 드리안국은…… 에드먼국의 원수국이며, 율리안국의 주신을 믿지 않습니다. 허나 로스엔 대국은 더 이상 저희 드리안국을 지켜주질 못할…… 대국에서 중국으로 그 위상과 국력이 떨어졌습니다.”
하릴 백작의 말에 수라혈마는 낄낄 거렸고, 진천은 근엄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계속 말해 보라.”
이런 일…… 예상하고 있었다.
중원에서도 이런 일은 비일비재 하다. 약국은 강국을 찾아 몸을 의탁 했다. 그것이 약국으로서 살아남는 방법이었다. 그게 싫다면 스스로 힘을 키우는 수밖에.
주첨기는 자신도 모르게 주먹을 쥐었다.
“단도직입적으로 말해. 로스엔, 에드먼, 율리안으로부터 신명대국이 저희 드리안국을 보호해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청을 들어주신다면 저희 드리안국은 신명대국을 군주국으로 모시며, 그에 따른 협약을 진행 하겠습니다.”
주첨기가 얼굴을 굳혔다.
아무리 비일비재한 일이라 해도. 개인이 아닌 일국의 일이라 해도. 자국이 아닌 타국의 일이라 해도.
자청해서 고개를 숙이고 들어오는 모습은 그리 좋아 보이지 않았다.
“본국은 아직 그 기반이 채 잡히지 않았다. 드리안국은 무엇을 기대한 것인가?”
“아니옵니다. 폐하. 신명대국은 로스엔 대국을 물리치고 속국으로 다스리는 대국! 현재 그 위명만으로도 매우 강한 대국이옵니다. 저희 드리안국의 청을 들어주시옵소서.”
“들어주시옵소서.”
사절단원들이 간청했다.
그러나 주첨기는 선뜻 허락하지 않았다.
아직 속국들을 다스리기엔 나라의 기반이 잡히지 않았다는 것이 그 이유다.
“폐하. 드리안 국에서 저리 청하는데 고민하실 필요가 무엇이 있겠습니까요.”
혜공이 주첨기의 옆에서 조용히 말했다.
“아닙니다. 혜공. 본국은 로스엔만으로도 벅찬 상황입니다.”
“피를 보지 않고 국세를 확장시킬 절호의 기회입니다. 폐하.”
진천도 포권하였다.
“낄낄……뭘 고민하느냐. 알아서 꿇지 않느냐.”
수라혈마까지 나서도 주첨기는 요지부동이었다.
안정적인 국력의 확장이냐. 거침없는 국력의 확장이냐.
그 갈림길에서 주첨기는 고개를 숙였다.
고개 숙인 그의 눈에 청강검이 들어왔다.
검집에는 승천하는 용이 새겨져 있었다. 그 용은 거침없어 보였다. 주첨기는 용좌의 팔걸이 끝을 움켜쥐었다.
주첨기가 고개를 들었다.
하릴 백작을 직시 했다. 강맹한 기운이 하릴 백작의 전신에 몰아쳤다.
하릴 백작은 잔털이 쭈삣 섰다.
“그것이 정녕 드리안 왕의 생각인가?”
간담이 서늘했다.
“예. 폐하. 전하께서 그리 전하라 말씀 하셨사옵니다.”
하릴 백작의 등줄기를 타고 식은땀이 흘러내렸다. 그의 상의 뒷부분은 축축이 젖어 들어갔다.
“좋다. 드리안 왕의 청을 받아들이겠다.”
주첨기가 결단을 내렸다.
그제야 수라혈마와 진천 그리고 혜공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감사드리옵니다. 폐하.”
“협약에 대해선 자리를 옮긴 후 이야기를 나누기로 하지.”
주첨기가 자리에서 일어나며 말하였다.
“저희 드리안국은 로스엔 국에게 곡물 생산량의 이 할을 그리고 십대 예술가의 작품을 매년 바치고 있으며, 연구 기술과 군사에 대한 감찰을 받고 있습니다. 또한 도로권과 외교권, 내관임명권이 로스엔국에게 있습니다. 저희 드리안국은 로스엔 국과의 협약을 파기하고 이 모든 권한을 신명대국에게 양도하려 하옵니다. 폐하.”
하릴 백작이 준비해두었던 여러 서류들을 꺼내 앞으로 내밀었다. 수십 장의 서류들은 로스엔국과의 협약서는 물론, 드리안국의 권한을 신명대국에게 양도한다는 새로운 협약.
그것이었다.
“매우 좋은 기회입니다요. 폐하.”
혜공은 매우 반기는 기색이었다.
“드리안국은 어째서 본 대국에 모든 권한을 넘기려 하는가? 외교권과 내관임명권, 그리고 군사권까지 양도 한다면 그것은 나라가 아니다.”
주첨기가 담담하게 말했다.
하릴백작은 관자놀이에 식은땀이 맺혔다. 신명대국의 황제의 말이 맞다. 그 모든 권한을 양도한다면 일국이라기 보단, 신명대국에 속한 영지에 불과하다.
하지만 약소국인 드리안국이 이렇게 대국에 기대지 않으면!
이는 패국의 지름길이다.
원수국 에드먼이 가만히 내버려 두지 않을 것이며, 이단이라 하여 율리안국에서도 보고만 있지는 않을 것이다.
“대전에서도 말씀 드렸다시피, 신명대국의 강한 힘에 기대고 싶기 때문이옵니다.”
“그것이 나라를 지키는 길인가?”
“……예.”
하릴 백작이 말했다.
그의 말에서 비참함이 묻어나왔다.
이것이 바로 약소국의 설움이다.
“본대국은 강하나 아직 미완하다. 따라 짐은 그대의 청을 들어줄 수가 없다.”
“폐……폐하.”
벌써 협약을 파기한다는 서한을 로스엔국에게 보낸 상태다. 이제 와서 신명대국의 속국에 들어가지 못하면 이는 매우 큰일이다.
하릴 백작은 간절히 말했다.
“하릴 백작.”
주첨기는 하릴백작이 건넸던 서류들을 다시 돌려보냈다.
“예. 폐하.”
“하지만 드리안국이 본대국과 절친하게 지내려는 바를 알았다. 이에 본대국은 드리안국과 친우의 나라가 되고 싶다.”
“예?”
하릴 백작은 주첨기의 말을 이해하지 못했다.
“짐은 지금 드리안국에게 상호동맹을 청하고 있는 것이다. 하릴 백작. 드리안국은 본대국의 속국이 아니니 조공은 물론이고 여러 권한들을 양도 받을 수 없다. 드리안국을 타국이 침략하면 본대국이 그대들을 도와 응징할 것이며, 본대국을 타국이 침략한다면 드리안국도 자국의 일처럼 도와야 할 것이다.”
“폐하!”
하릴백작과 사절단은 놀라 외쳤다.
“드리안국은 스스로의 힘을 키워라. 타국에 핍박 받지 않는 강대국이 되어 본대국의 친우국으로써 부끄러움이 없도록 하라.”
주첨기가 결론을 내렸다.
하릴 백작과 사절단은 할 말을 잃어버렸다. 이러한 결과가 나오리라고는 생각도 못 했다.
솔직히 자청하여 속국으로 들어가는 것은 매우 비참한 일이다. 약소국이기에 어쩔 수 없는 일이라 지금의 설움을 참고 후를 기약 하려 하였다.
그러나 신명대국의 황제는 드리안국이 속국보단 친우국이 되길 바라고 있었다.
하릴 백작은 감동하여 눈물이 날 지경이었다.
한편 혜공과 수라혈마는 매우 못마땅한 표정이다.
“혜공.”
주첨기가 혜공을 불렀다.
혜공이 공손히 고개를 숙였다.
“동맹협약서를 준비하십시오.”
“하오나……폐하.”
“혜공. 준비하시오.”
“폐하…… 아니 될 말씀입니다요. 동맹국이라니요. 자청하여 신하국이 되겠다는 것을 어찌 막으십니까요.”
“어서 준비하시오!”
주첨기가 단호하게 말했다.
혜공이 찔끔 놀라 바로 동맹협약서 두 장을 준비하였다.
주첨기가 인을 찍었다.
하릴 백작도 드리안국의 왕을 대신하여 싸인 하였다. 서로 동맹협약서를 나누어 가졌다.
하릴 백작과 사절단이 깊숙이 허리를 숙였다.
“감사드리옵니다. 폐하. 가히 대국 황제 폐하의 넓으신 아량에 소인은 탄복하였사옵니다.”
“아니다. 친우 드리안국의 사절단인 그대들에게 대접을 소홀히 할 수는 없지. 만소자야.”
“예. 폐하.”
“친우국의 사절단을 공손히 모셔라.”
주첨기가 만소자를 바라보았다.
만소자가 문을 열고선 말했다.
“모두 저를 따라오시지요. 지내실 곳으로 안내해 드리겠습니다.”
하릴 백작은 만소자를 따라가기 전 다시 한 번 고개를 숙였다.
‘독……립……인……가…….’
하릴 백작은 정신이 없었다. 수백 년 만에 속국이란 불명예스러운 호칭을 버리게 된 것이다. 정신을 차렸을 때 하릴 백작의 뺨엔 눈물이 흘러내리고 있었다.
주첨기가 가라는 듯 손짓하였다. 그제야 하릴 백작과 사절단원들은 만소자를 따라 내실 밖으로 나갔다.
“제자야.”
그간 참고 있던 수라혈마가 바로 음성을 터트렸다.
매우 못마땅한 표정이다.
“예. 스승님.”
주첨기가 대답하였다.
“이번 일은 도저히 이해할 수가 없구나. 낄낄. 그렇지 않은가. 진천?”
수라혈마는 진천에게 시선을 돌렸다. 진천 역시 혜공과 수라혈마의 생각과 같았다. 진천은 살며시 고개를 끄덕였다.
“제 생각은 다릅니다. 스승님. 본대국은 아직 개국식도 치르지 않은, 미완의 국가입니다. 급히 먹는 떡은 체한다 하였습니다. 확장과 내국의 안정! 로스엔국을 속국으로 받아들인바가 그 둘의 타협점입니다. 물론…… 현재로선 말입니다.”
의미를 알수 없는 미소가 주첨기의 입가에 퍼져 나갔다.
침탄의 늪.
로스엔을 대변하는 말이다.
대전에서 무참히 패하고 속국으로 전락해 버린 로스엔의 백성들은 침울하였다. 대전에 참가하였던 아들과 남편의 전사 통보가 도착하고 있었다.
죽은 이들을 그리워하는 부인과 딸의 울음소리는 멈추지 않고 들렸다.
그리고 그들은 ‘신명국’이라는 나라를 원수로 삼고 저주를 퍼부었다.
로스엔국의 백성으로써는 누가 보더라도 정의는 자국에게 있었다. 아실리안 황제 폐하께서 그러셨다.
신명국은 검신인지 마신인지 알 수 없는 황제를 필두로, 일방적인 전쟁을 선포하였고 이미 완벽한 계획을 세워놓았던 것처럼 전국을 제압하여 대전을 승리로 이끌었다.
그들이 사랑하는 남편과 아들의 목숨을 빼앗았다.
원수는 신명국이다!
백성들은 신명국이란 이름을 들을 때마다 분에 차 몸을 떨었다. 로스엔의 백성들 사이에서 신명국의 검사들은 ‘마족’ 이라는 소문은 퍼질 대로 퍼진 상태였다.
커다란 겸(낫)을 등에 진 험상궂은 인상의 사내가 문을 박차고 들어왔다.
서적을 들여다보고 있던 매화일검이 부셔진 문 쪽을 바라보았다.
매화일검이 미간을 접었다.
“무슨 일이오. 사사혈겸.”
“지금 로스엔의 떠돌고 있는 소문을 못 들었는가?”
“아…….”
매화일검은 살짝 웃었다.
“본대국이 악마의 나라라는 유언비어가 로스엔의 백성들에게 퍼지고 있다.”
“알고 있습니다. 진정하시지요.”
매화일검은 보고 있던 책을 덮으며 일어났다.
“지금 진정하게 생겼는가? 배은망덕한 로스엔의…….”
사사혈검의 얼굴은 이미 벌게져 있었다.
“황성이지요.”
“어?”
“소문의 근원지가 황성이라는 것은 이미 알고 있습니다.”
매화일검은 창밖으로 고개를 돌렸다.
황성의 성문 앞에는 백성들이 모여 있었다.
많은 학자들이 들고 일어선 것이다.
신명국의 검사는 사백.
학자들이 추론하기론 제아무리 뛰어난 검사라 하더라도 사백으론 이십만 대군을 이기지 못한다. 그러나 패했다. 하지만 그렇다 하더라도 모든 병력을 소집한다면 이십만 이상의 병사를 모을 수가 있다.
학자들의 주장은 그것이었다.
다시 한 번 병사를 모으고 신명국을 응징 하자는 것이다. 그에 수많은 백성들이 동참하여 성 앞에서 시위를 하고 있었다.
“그런데 왜 보고만 있는가? 당장에라도 배은망덕한 로스엔의 왕을!”
사사혈겸이 거칠게 다가왔다.
“단지 백성들은 선동에 속고 있을 뿐입니다.”
매화일검은 품안에서 종이 한 장을 꺼냈다.
“그러니까 그 선동자를 벌해야 하지 않겠는가!”
“곧은 것만이 좋은 것이 아닙니다. 유연해질 때도 있어야 하는 법이지요.”
매화일검이 일필로 글을 써내려갔다.
백성들이 신명대국에 분노하는 이유는 유언비어 때문이다. 그 유언비어가 잘못된 것이란 것만 알면 어느 정도 분노는 사그라들 것이다.
황성에서 나온 소문을 부정하는 글이 종이를 채워갔다.
전쟁의 발단. 거대병기 데이모스. 황제 아실리안의 전쟁 선포까지.
이것이 진실이다.
“이것으로 될 것 같은가?”
사사혈겸이 불만스럽게 말했다.
“됩니다. 수천 장을 만들어 수도에 배포하십시오. 생각이 있는 자들이 먼저 깨우칠 것이고, 그들이 주위의 이들을 깨우치게 만들 것입니다.”
“이렇게 해도 계속 소문이 돌면…… 그땐 소문의 발원지 아니지…… 로스엔의 왕을 죽여 버려도 상관없겠는가? 나 사사혈겸은 뒷담 까는 것을 제일 싫어하거든.”
“편할 대로 하십시오.”
매화일검이 포권하였다.
“크크…… 알았다.”
사사혈겸은 종이를 들었다.
그러고선 방밖으로 거칠게 나갔다.
“후우…….”
매화일검은 다시 한번 창밖을 바라보았다.
그렇지 않아도 아들과 남편이 죽어 분노한 백성들…… 황성에서 퍼트린 유언비어 때문에 더욱 분노하고 신명대국에게 저주를 퍼붓고 있다.
“종결지어야겠어…….”
로스엔에서 바라고 있는 것이 백성들의 궐기일지도 모른다. 아니 백성들을 선동하는 이유는 그것 밖에 없다.
매화일검은 황제 아실리안에게 향했다.
황제 아실리안은 무척 피곤해 보였다.
이전에 힘이 넘치던 황제의 모습이 아니다. 단지 패배자의 모습이다.
매화일검이 허리를 숙였다.
“무슨일 때문에 왔는가?”
황제 아실리안을 비롯한 대신들이 매화일검의 눈치를 살폈다.
매화일검이 공손히 말하였다.
“전하. 황성 밖에선 무슨 일입니까?”
“아무 일도 아니다.”
“아무래도 로스엔의 백성들은 본대국과 다시 한번 전쟁을 벌이고 싶어 하는 것 같습니다.”
“그……그럴 리가 없다.”
아스틴 공작이 말을 더듬었다.
뭔가 알고 있는 눈치였다.
“어째서 로스엔에선 저들을 방관하고 있으십니까?”
“훗.”
황제 아실리안은 코웃음 쳤다.
매화일검의 얼굴이 굳었다.
“비록 본국이 속국으로 전락하였다 하나! 신명국에게 내정 간섭까지 받아야 하는가? 군사와 경제상황에 대해 감찰과 조언을 받는 것은 협약서에 명시된 일. 하지만 백성을 탄압하라는 일까지 협약서에 써 있지 않다. 이는 본국의 일이다. 본국은 협약내용을 지킬 테니 더 이상 간섭하지 말라.”
황제 아실리안이 매화일검을 노려보았다. 매화일검은 황제 아실리안의 눈빛을 피하지 않고 입을 열었다.
“협약 내용을 지키신다니 할 말이 없습니다. 전하. 하지만 선동하고 있는 소문의 근원지가 황성이라는 것은 이미 알고 있습니다. 그 소문이 백성을 선동하고 본대국을 음해하려는 성격을 띠고 있는데 어찌 보고만 있겠습니까? 본대국의 황제 폐하께서는 아실리안 전하를 충성스러운 신하로 보고 있으신데, 군신간의 의가 깨질까 걱정이 되어 말씀 드리는 것입니다.”
“잘못된 사실이니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그 말을 하러 온 것인가?”
아실리안이 입꼬리를 올렸다.
“아닙니다. 아실리안 전하를 안전히 로스엔 국까지 모셔 드린 지 십일이 지났습니다. 저희는 내일 본대국으로 떠나야 할 것 같습니다.”
아스틴 공작과 대신들의 표정이 살짝 밝아졌다. 안도의 한숨 같은 것이 조금씩 새나왔다.
“필요한 것이 있는가?”
아스틴 공작이 황제 아실리안 대신 물었다.
“아실리안 전하께서 협약 내용을 충실히 이행하여 본대국의 황제 폐하께 충성하시겠다는 마음이 변치 않음을 확인한 것으로 족합니다. 하지만…….”
충성이란 단어에 아실리안의 얼굴이 구겨졌다.
“하지만.”
아스틴 공작이 말꼬리를 잡았다.
“한 가지 알려드릴게 있습니다. 이번 전쟁이 왜 발발 하였는지 아십니까?”
“…….”
아무도 말이 없었다.
“정녕 아무도 모르신 것입니까? 매우 중요한 일입니다.”
그래도 모두 대답이 없다.
원한과 두려움이 섞인 눈으로 매화일검을 노려볼 뿐이었다.
“그럼 제가 알려드리겠습니다. 로스엔국에서 일방적으로 본대국의 영토를 침입하고, 황제 폐하의 스승님과 여러 수하들을 공격하여 많은 이들이 부상 입었습니다. 본대국의 황제 폐하께선 스승님을 어버이처럼 여기시며, 여러 수하들을 친동생처럼 여기시는데. 로스엔국은 이에 아무런 사죄의 말이 없었습니다. 사죄가 없는데 전쟁이 끝났다고 생각하신다면 오산입니다…… 저 매화일검은 아실리안 전하와 황제 폐하의 군신의 의가 깨질까 걱정되어 조심히 알려드리는 것입니다.”
황제 아실리안이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그러니 어쩌란 말인가! 짐보고 대국민사죄의 말이라도 하란 말인가!”
“그렇게 해 주신다면 바랄 것이 없겠습니다. 아실리안 전하께서 시작하신 일이니…… 끝을 마쳐야 하는 것이 아닌지 생각됩니다. 그것이 군신의 의를 지키는 길이고 전쟁을 완전히 마치는 길입니다.
매화일검이 빙그레 웃었다.
“그럼 십일 후에 있을 개국식 때 뵙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