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mortal martial artist RAW novel - Chapter 25
제3화 진행되는 개국식
드리안국의 사절단이 도착한지 일주일이 지났을 때였다.
매화일검과 사사혈겸이 본성으로 돌아왔다.
그런데 그들은 이십 명씩 이루어진 두 무리. 총 사십여 명의 타국 사람들과 함께 돌아왔다.
태양빛을 차단하는 창이 넓은 모자를 쓴 사람들. 그리고 구리빛 피부를 가진 사람들.
모자를 쓴 사람들은 바다의 나라 케이트에서 온 사절단이었고, 구리빛 피부를 가진 사람들은 광산의 나라 이콘에서 온 사절단이었다.
로스엔에 신명대국의 사신이 있다는 소리를 듣고, 두 나라에서 급히 사절단을 파견. 신명대국까지 동행을 한 것이다.
그들이 도착했을 땐 신명대국의 본성은 완성되어 있었다.
천상황성(天上皇城)!
콧수염을 멋지게 기른 케이트국의 비잔틴 백작과 햇빛에 그을려진 굵은 팔뚝을 가진 이콘국의 시리무스 백작.
두 백작은 호 하고 탄성을 질렀다.
“이곳이 본대국의 황성입니다.”
매화일검이 말했다.
자부심이 넘치는 듯 어깨를 당당히 폈다.
“정말 대단합니다. 로스엔대국의 황성과, 율리안 대신전은 물론이고 에드먼 황성은 범접할 수조차 없이 웅장하군요.”
케이트국의 비잔틴 백작은 진심으로 말했다.
“대단하군요.”
이콘국의 시리무스 백작도 동조하였다.
신명대국은 활기가 넘쳤다.
나라라기보다 소도시의 성격을 띠고 있었다.
백성들의 얼굴은 모두 밝았다.
도착한 사절단을 향해 미소를 지으며 허리를 숙였다.
정말 좋은 땅이었다.
역시 드래곤의 평원이다. 수백 년간 삼강국이 노렸던 땅인 만큼, 땅은 최고로 비옥하였으며 광활히 넓었다. 끝이 보이지 않는 지평선 쪽으로 노을이 지고 있었다.
“드리안국의 하릴백작은 이미 도착했겠군요.”
시리무스 백작은 황성 쪽을 바라보며 말했다.
“저희보다 훨씬 먼저 출발하였다고 들었으니…… 그럴 겝니다.”
비잔틴 백작이 고개를 끄덕였다.
두 백작은 사이가 좋아 보였다.
이콘국과 케이트국 그리고 드리안국.
로스엔의 속국이었던 이 삼약국은 수백 년 전부터 서로 사이가 무척 좋았다. 끈끈한 유대관계를 지속하기 위해 왕자와 공주를 서로 혼인시키는 일도 비일비재 했었다.
서로의 국력은 비슷했고, 처해진 상황이 무척이나 같았기에 시간이 흐를수록 그 관계가 깊어지고 있었다.
그들은 성문에 도착했다.
성문에는 희한한 동물이 새겨져 있었다.
어찌 보면 드래곤같이 생겼지만 그 꼬리가 길고 날개가 없다.
비잔틴 백작과 시리무스 백작이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매화일검이 살짝 미소 지으며 입을 열었다.
“용입니다.”
“드래곤과는 다른 것입니까?”
드래곤?
황제 폐하께서 처치하신 그 괴물을 말하는 것인가?
매화일검은 당연하다는 듯한 표정이었다. 용과 괴물은 차원이 다르다.
천룡은 신성시 되는 영물중의 영물이다!
“그렇습니다.”
“크크…… 드래곤? 그 괴물은 이미 본대국의 황제 폐하께서 물리 치셨소.”
사사혈겸이 덧붙였다.
“예? 드래곤을 물리 치셨다니요?”
두 백작이 놀라 사사혈겸을 돌아보았다.
“두말하면 잔소리요. 황제 폐하를 시해하려고 한 존재는 결코 살아남을 수가 없소. 그게 드래곤이란 괴물이라 할지라도 말이오. 황제 폐하께선 일검에 드래곤을 베어버리고선 이곳에 나라를 세우셨단 말이오.”
사사혈겸이 어깨를 으쓱했다.
“설……설마…….”
괜히 이곳이 드래곤의 평원이 아니다. 레드 드래곤 아르카콘트가 잠들어 있다는 전설! 아니 전설이라기 보단 확인되지 않은 사실에 가까웠다.
대륙의 모든 나라는 암묵적으로 이 평원에 레드 드래곤 아르카콘트가 존재하다는 것을 인정하고 있었다. 그리고 삼강국이 이 비옥한 토지를 두고 눈치만 보고 있었던 결정적인 이유이기도 하다.
“뭐라더라…… 빨간 괴물이었다는데…… 하여튼 설마가 아니오. 크크크.”
사사혈겸이 괴소를 지었다.
“그럴 리가…….”
두 백작은 그래도 믿지 못하는 눈치였다.
사사혈겸의 눈초리가 무섭게 치켜 올라갔다. 매화일검이 이를 눈치채고 사사혈겸을 가로막았다.
두 백작을 향해 공손히 말하였다.
“사실입니다.”
“예…….”
두 백작은 미심쩍었지만 더 이상 꼬릿말을 붙이지 않았다. 커다란 낫을 지고 있는 저 전사는 그렇다치더라도, 정광이 흐르는 이 기사의 말은 매우 믿음직스럽기 때문이었다.
“누구십니까!”
성벽위에서 소리가 들려왔다.
“매화일검이오.”
“오. 대협 돌아오셨습니까?”
성벽은 높았다. 그러나 모용휘는 성벽 아래로 뛰어내렸다. 가뿐히 땅에 착지 하였다.
“헉!”
두 백작과 사절단은 놀라 두 눈을 껌벅 거렸다. 저 높은 곳에서 뛰어내리고도 상처 하나 입지 않았고, 그 동작이 매우 가뿐해 보였다. 가히 신기에 가깝다.
모용휘는 시리무스 백작과 케이트 백작을 행해 연거푸 포권 하였다.
‘역시…… 신명대국의 인사법은 특이하군.“
두 백작은 생각하였다.
그러곤 어수룩하게 포권의 형식을 따라했다.
“이분은 이콘국의 시리무스 백작님이시고, 이분은 케이트국의 비잔틴 백작이시오.”
매화일검이 두 백작을 모용휘에게 소개 하였다.
“안녕하십니까. 모용휘입니다.”
서로간의 인사가 끝났다.
“왠지 바빠 보이는데…….”
매화일검이 말했다.
닫힌 성문 뒤로 평소보다 시끌벅적 하였다.
“개국식 준비로 한창입니다.”
“아. 그렇지 않아도 황성이 완공된 것 같소.”
모용휘는 두 백작의 얼굴을 살폈다.
“예. 두 분께서는 어쩐 일로 본대국에 오신 것입니까?”
모용휘가 멀었다
“신명대국의 황제 폐하를 알현하기 위해 왔습니다. 그런데…… 날을 잘못 맞춰 온 것 같군요.”
비잔틴 백작이 슬쩍 웃었다.
“아닙니다. 황제 폐하께서 언제나 손님을 받아들이시라 명을 내리셨습니다.”
“그것참 다행입니다.”
시리무스 백작이 말했다.
“그럼…….”
모용휘가 포권을 한 후 지면을 박찼다.
높은 성벽을 단번에 뛰어넘는 그였다. 두 백작과 사절단은 또다시 입을 쩌억 벌렸다. 그 모습을 보고 사사혈겸이 이상스러운 웃음소리를 흘렸다.
덜커덩!
끼이이익. 하는 소리와 함께 거대한 황성의 성문이 열렸다.
모용휘가 중앙에서 포권을 한 채로 두 나라의 사절단을 환영하였다.
황성은 확실히 분주하였다.
“저들은…….”
사절단의 눈에 가장 먼저 들어온 것은 바삐 움직이는 드워프들이었다.
드워프들은 살아서 꿈틀대는 듯한 신비로운 조각상들을 들고 있었다. 황성으로 들어가는 계단 옆에 장식할 용도의 것인 것 같았다. 하지만 단지 계단 옆에 장식하기에 대단한 예술품이 아까워 보이는 건 사실이었다.
“아…….”
두 백작은 눈앞에 펼쳐진 웅장한 광경에 할 말을 잃어버렸다.
하늘까지 이어질듯한 높은 200 계단.
신명대국의 검사들을 본떠 만든 사백 개의 조각상은 살아 있는 것이 아님에도, 당장에라도 병기를 뽑아 들고 뛰쳐나올 듯 위풍당당하였다.
한 계단 한 계단.
좌쪽으론 정파 고수. 우쪽으론 사파 고수.
오를 때마다 거대한 신명대국의 검사들이 내려다보고 있었다.
굉장한 조각상들의 시선에 위축되는 것이 사실이었다.
“크크…… 멋지군.”
사사혈겸이 자신의 조각상 앞에서 웃었다.
매화일검 또한 만족하는 얼굴이었다.
사절단원들은 겨우 계단을 다 올랐다. 모용휘가 황성문을 열며 말했다.
“지금 황제 폐하께서는 자리에 계시지 않으십니다. 먼 곳에서 오시느라 피곤하실 테니 이분께서 쉬실 곳을 안내해 드릴 것입니다.”
황성 안에서 한 사람이 등장했다.
새하얀 분을 얼굴 가득히 뒤집어쓴 노인.
혜공이었다.
“어서오십시요오. 제가 안내해 드리겠습니다요. 드리안국에서 온 사절단원분들도 그곳에서 쉬고 계십니다요.”
혜공은 이콘국과 케이트국에서 온 사절단원들을 끌고 외성으로 향했다. 타국에서 온 손님들을 위해 지어진 외성은 황성만큼은 아닐지라도, 다른 강대국의 본성 만큼이나 웅장하고 거대 하였다.
황성 바로 옆에 지어진 외성.
그 안에는 이미 드리안국의 사절단원들이 머물고 있었다. 이콘국의 시리무스 백작과 케이트국의 비잔틴 백작은 그 안에서 한 중년 남성을 만났다.
먼저 온 드리안국의 사신. 하일 백작이었다.
하일 백작이 모두를 반겼다.
“오. 이게 누구십니까. 시리무스 백작님과 빈잔틴 백작님이 아니십니까.”
하일 백작은 매우 좋아보였다. 그동안 신명대국의 외성에서 융숭한 대접을 받고 얼굴에 기름기가 꾀나 흐르고 있었다. 마치 손을 대면 기름기가 물씬 묻어나올 것처럼.
“하일 백작!”
비잔틴 백작이 큰 모자를 벗으며 외쳤고.
“오래간만입니다.”
시리무스 백작도 하일 백작의 손을 움켜잡았다.
셋은 매우 절친한 친구처럼 보였다.
“이곳에서 짐을 푸시고 계십시요오. 다시 오겠습니다요.”
혜공이 두 백작에게 말했다.
두 백작은 혜공에게 눈인사를 하였다. 혜공은 아낙처럼 엉덩이를 씰룩거리며 걸어갔다. 보폭도 매우 좁은 종종 걸음으로 외성 밖으로 빠져나갔다.
“두 분 다 늦으셨군요.”
하일 백작은 여유로운 표정을 지었다.
그는 할일을 다 마쳤다. 매우 좋은 조건으로 협약을 지었다. 이제 그에게 남은 일은 오 일 후에 있을 개국식 참석뿐이다. 남은 오 일 동안은 여유로운 나날들이 될 것이다.
“하일 백작. 지난번 로스엔국에서 본 후로…… 그러니까 1년만입니다. 그동안 잘 지내셨습니까? 드리안국에도 별고는 없는지요?”
시리무스 백작은 말하며 뒤쪽으로 눈치를 보냈다.
그러자 따라왔던 사절단원들이 복도 쪽으로 걸어갔다. 주위를 두리번거리는 그들은 어떠한 방에서 묵을지 고민하는 표정이다.
드워프의 솜씨가 발휘된 방들……
아무렇게나 한곳을 찍어도 타국의 황제방 못지않은 최특급의 방들이다.
사절단원들이 빠져나간 홀에는 하일 백작, 시리무스 백작, 비잔틴 백작. 삼약국의 세 백작만 남게 되었다.
“본국에 무슨 일이야 있겠습니까. 너무 평온해서 탈이지요.”
하일 백작은 미소 지었다.
“다행입니다. 하일 백작도 재협약을 맺으러 온 것입니까?”
시리무스 백작도 그러한 목적을 위해 온 것이다. 시리무스 백작은 하일 백작의 결과가 무척이지 궁금하였다.
하일 백작의 안색을 보건데. 좋았으면 좋았지 결코 나쁘지 않는 결과일 것이다.
비잔틴 백작도 하일 백작의 대답을 기다렸다.
“그렇습니다. 일주일전에 협약을 맺었습니다.”
하일 백작은 당당했다.
“어떻게 되었습니까? 신명대국의 황제 폐하께서 받아 주셨습니까?”
비잔틴 백작이 기다렸다는 듯 물었다.
“받아 주시지 않으셨습니다.”
엥?
하일 백작의 대답에 비잔틴, 시리무스 두 백작은 의아했다.
자청하여 속국으로 들어가는 것인데도 받아주지 않았다는 점. 하일백작은 임무를 완수하지 못했다는 점.
이 두 가지는 지금 하일 백작이 짓고 있는 미소와는 동떨어진 것이었다.
“정말 입니까?”
비잔틴 백작이 다시 물었다.
“예. 신명대국의 황제 폐하께선 자청하여 속국이 되겠다는 본국을 거부 하였습니다. 대신…….”
“대신?”
두 백작의 귀가 솔깃해졌다.
“드리안국과 신명대국은 군신의 관계가 아닌 친우의 관계로 거듭나게 되었습니다.”
두백작은 한순간 멍해졌다.
두 백작의 의아한 표정은 더욱 진해졌다.
“친우의 관계라니요?”
“하하…… 말 그대로 입니다. 더 이상 본국은 타국의 속국이 아니게 된 것입니다.”
아! 하일 백작의 표정이 밝은 이유는 여기에 있었다.
“정말 대단한 결과 입니다. 하일 백작. 어떻게 그러한 협약을 맺을 수 있었습니까? 드리안 국에서는 저희와 같은 의도로 온 것이 아니었습니까?”
“맞습니다. 하지만 말했듯. 신명대국의 황제 폐하께선 본국을 군신간의 관계가 아닌 친우의 나라로써 받아주신 것입니다. 결코 이 하일이 잘나서 성공적인 협약을 맺은 것이 아니지요. 하하.”
하일 백작이 웃었다.
시리무스 백작과 비잔틴 백작도 미소를 지었지만 왠지 부자연스러워 보였다.
어색하게 올라간 입꼬리 탓이다.
“두 분도 걱정을 안 하셔도 될 것 가습니다. 신명대국의 황제 폐하이신 주첨기님은 매우 호탕하신분이니 말입니다.”
“그……그렇습니까?”
“예.”
하일 백작은 자신 있게 대답했다.
“그런데…… 로스엔 대국과의 전쟁에서 완승한 저력은 잘 알겠지만…… 나라의 규모가 매우 작아 보이는군요. 신명대국은 어떠한 나라 같습니까? 그리고 황제 폐하는 어떠하신 분이신 것 같습니까?”
가만히 대화를 듣고 있던 비잔틴 백작이 입을 열었다.
“강인한 나라. 강인하신 분.”
하일 백작은 그렇게 말을 끊었다.
검은 흑발을 길게 늘어트린 청년은 배꼽부분에 양손을 모으고 있었다. 오로라 같은 오묘한 기운이 청년의 몸을 감싸 돌고 있었다. 용처럼 휘어 올라간 용미에선 강인함이, 굳게 닫힌 입에선 꺾이지 않는 고집이 엿보였다.
청년이 눈을 떴다.
청아한 기운이 눈동자위에서 반질거렸다. 청년은 운기조식을 마쳤다.
그는 주첨기였다.
주첨기는 머리를 묶어 올렸다. 옆에 걸쳐 놓은 검은 로브를 집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휘익.
로브가 커다란 포물선을 그리며 주첨기의 등을 감쌌다.
십 갑자.
무림지존으로 군림할 수 있는 절대의 내공이다. 하지만 그 철갑거인 데이모스라는 병기! 혹은 드래곤이라는 엄청난 괴물! 생소하고 강한 존재들이 존재하는 곳이 바로 이계다.
또 어떤 희괴한 괴물이 있을지 모르는 일이었다.
십 갑자론…… 아직 멀었다.
그것이 주첨기의 생각이었다.
주첨기는 눈앞에 떨어지는 폭포수를 바라보았다.
본성의 지하일층 외실.
드워프들이 만든 인공폭포는 주첨기 만이 들어올 수 있는 유일한 공간. 주첨기만을 위한 공간이다.
아니 한 명이라고 해야 할지, 한 마리라고 해야 할 지, 한 개라고 해야 할지 모를 하나의 존재도 들어올 수 있다.
말할 것도 없이 설령이다.
“이만 나가 봐야겠어. 많이 늦었어.”
주첨기가 설령에게 말했다.
설령은 나가기가 싫었다.
조용한 지하에 떨어지는 폭포수 소리만이 울리는 이곳에 있으면 마음이 차분해지는 기분이다.
고수들이 있는 곳에 가면 언제나 뒤따르는 게 있었다.
강렬한 시선. 바로 그것이다.
[우끼……]의도적이지 않게 인기인이 돼버린 설령은 고개를 가로 지었다.
“가까운 시일 안에 또 온다고 약속하지.”
주첨기가 설령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설령은 가만히 있었다.
[우끼.]생각을 마쳤는지 느리게 고개를 끄덕였다.
주첨기는 빙그레 웃으며 외실 밖으로 걸어 나왔다.
“주첨기님.”
드워프의 노커 젠달리프가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베틀엑스 대신 큰 해머를 쥐고 있는 젠달리프는 주첨기가 보이자 바로 고개를 숙였다.
다른 한 손엔 한 자루의 장검집도 들고 있었다.
“병기는 전부 완성 되었는가?”
이미 알고 있다는 듯 주첨기가 물었다.
“예. 주첨기님. 사백이개의 병기는 모두 완성 되었습니다. 드래곤의 뼈를 손톱만큼도 남기지 않았습니다. 키키키…….”
젠달리피의 입에서 괴기한 웃음소리가 흘러나왔다. 젠달리프는 들고 있던 장검집을 앞으로 내밀었다.
“바로 이것입니다.”
주첨기는 장검을 받아 들었다.
역시 최고의 장인들이다.
미리 언급했던 대로 새겨놓은 용이 검집을 휘감아 돌고 있었다. 중원에 있을 당시 최고의 황실 장인이라는 귀장도 이 정도는 아닐 듯싶었다.
검은색의 매끄러운 검집.
훌륭한 예술품에는 기운이 서려 있다 라는 말이 절로 실감 되었다.
주첨기는 검집 밖으로 나온 손잡이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손잡이 끝에는 눈알만한 붉은 보석이 박혀 있었다. 자세히 보니 그것은 중원의 호박과도 같은 것으로, 그 중앙에도 승천하는 모양의 용이 새겨져 있다.
붉은색에 승천하는 용의 문장이 중앙에 박힌 신명대국의 국기!
신명대국기를 그대로 손잡이 장식에 박아 놓은 형상이다.
“좋군.”
주첨기는 그것이 무척 마음에 들었다.
개국 공신이라 할 수 있는 사백 명의 고수와 두 스승님에게 신명대국검이 수여된다.
비록 검이 아닌 도,겸,편,창등 다른 병기를 쓰는 자들도 상당하다. 하지만 상관없다. 지금의 이 신명대국검은 병기로써보단 신명대국의 고수라는 의미를 상징성이 더욱 크게 때문이리라.
스르렁.
검을 뽑았다.
주첨기가 손가락으로 검날을 튕겼다. 아무런 울림소리도 나오지 않았다. 단단한 바위를 튕긴 것만 같다.
신비로운 재질이다.
강철 보다, 아니 그 이상으로 단단하나 전혀 무겁지가 않다.
날카로운 예기가 검날을 타 흐르고 있었다.
수하들의 무공 앞에 부끄럽지 않을 명검!
“수고했다.”
주첨기는 만족하여 말했다.
“레드 드래곤 아르카콘트의 뼈를 분해하고…… 내리치고…… 깍고…….”
[우낏.]무슨 말을 하는 것일까.
설령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아……아닙니다. 키키키…….”
노커 젠달리프가 황급히 말했다.
그래도 괴기스러운 웃음소리는 그치지 않았다.
설령이 어색하게 입꼬리를 올렸다.
“완공된 황성은 마음에 드십니까?”
젠달리프의 말엔 자부심이 흘러넘쳤다.
“좋다. 그대들의 솜씨는 가히 귀신과 같다.”
주첨기의 말에 젠달리프는 한껏 어깨를 폈다. 황성의 주인이 될 자가 바로 원흉 레드 드래곤 아르카콘트를 물리쳐주었던 은인이 아니던가. 드워프들도 이번 황성 작업에 나름대로 신경을 썼다. 아니 심혈을 기울였다.
드워프들의 황성 작업이 끝나면서 개국식 준비는 본격적으로 추진되고 있었다.
젠달리프가 다시 대장간으로 돌아간 후, 주첨기는 본성 일층으로 올라왔다. 많은 인원들이 주첨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개국식 준비와, 개국에 따른 여러 방책들을 이야기하기 위해서였다.
“혜공.”
주첨기가 말했다.
하얀 얼굴의 혜공이 허리를 숙였다.
“모두 회의실로 안내해 주십시오.”
주첨기는 그렇게 말한 후, 지금 모인 고수들과 함께 회의실로 향했다.
회의실은 넓었다.
탁상 또한 사백여명의 고수들을 모두 수용할 만큼 컸다. 고수들의 수에 일치하는 사백 개의 의자가 탁상 주위에 가지런히 놓여 있었고, 수라혈마와 진천을 위한 의자 또한 주첨기의 용좌 옆에 놓여 있었다.
주첨기는 높은 용좌에 앉았다.
잠시 뒤. 고수들이 속속 회의실로 도착 하였다.
고수들의 숨결은 남달랐다. 금세 회의실 안은 뜨거운 기운으로 가득 찼다.
“모두 모였습니다요. 폐하.”
어느새 부턴가 주첨기에 대한 칭호는 ‘전하에서 폐하로’ 바뀌어져 있었다.
이젠 황자 전하가 아니다.
황제 폐하다.
주첨기는 고수들을 한 명씩 훑어보았다.
붉고 푸른 안광을 발하는 고수들은 눈이 마주칠 때마다 고개를 숙이곤 하였다.
주첨기는 수라혈마와 진천 두 스승에게 눈빛을 건넸다. 두 스승이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모두 수고가 많다. 앞으로 오일 후면 신명대국의 이름이 천하에 울려 퍼질 것이다. 준비는 어떻게 되어 가고 있는가?”
“폐하. 모든 것이 순조롭습니다요. 오 일 후 개국식은 예정대로 치러 질 것입니다요.”
혜공의 대답했다.
“방각대사.”
주첨기가 방각대사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방각대사가 합장하며 고개를 조아렸다.
“아미타불. 에드먼, 로스엔, 율리안을 비롯한 여러 나라에 본대국의 개국을 알리기 위한 계획은 모두 세워졌습니다. 내일부터 저희 소림승들과 아미여승들이 대륙의 만민에게 개국과 함께 황제 폐하의 넓은 뜻을 알릴 것이옵니다. 아미타불”
“좋다. 방각대사와 만민당의 고수들은 본 대국의 뜻을 알리도록 하라.”
“예. 폐하.”
소림승과 아미여승들은 일제히 대답하였다.
“계주.”
이번엔 천지시당의 계주 차례였다. 황제 폐하의 앞이라 격식을 차린 의상이었지만 여전히 냄새가 심했다. 그가 살짝 고개를 숙이자 역한 냄새가 풍겼다.
그러나…… 그러기에 계주라고 할 수 있다.
“신 계주 아뢰옵니다. 로스엔의 부랑자 길드를 통합하여 세 명의 개방 고수를 길드장으로 임명할 것이며, 신을 포함한 남은 형제들은 타국으로 이동. 소림승과 아미여승들이 밝은 곳에서 개국과 대국의 뜻을 알린다면, 저희 들은 어두운 곳에서 그 뜻을 알리겠나이다.”
“로스엔국에서 그대들의 전공은 대단하였다. 개국식까지 오 일이 남았다. 짧은 시간이지만 그대들의 활약을 기대 하겠다.”
“예. 폐하!”
개방 고수들의 입 냄새가 단번에 퍼졌다.
사파고수들은 낄낄 거렸다. 반면에 정파고수들은 표정 관리를 위해 노력하는 모습이 역력하였다.
[우끼.]설령은 손 같은 두 줄기를 저으며 대놓고 주첨기의 품안으로 파고들었다.
개방 고수들은 저마다 배시시 웃었다.
“남궁혁.”
주첨기가 만보당의 남궁혁을 불렀다.
종남고수들로 이루어진 만보당 역시 최근 개국을 맞이하여 무척 이나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었다.
레어의 보물들에 대한 재정파악이 아직까지 완료되지 않았다. 양이 방대한 것도 그 까닭이지만 보물들은 단순히 금으로만 이루어진 것이 아니다.
금의 양으로 그 가치를 따지면 오죽 간단하겠냐만은 보물이란 것이 본시 예술적, 역사적, 희귀적인 성향으로 가치가 매겨 지는 것이다.
보물들 하나하나가 이계의 역사에 등장하는 역사적인 물건이었으며 대륙에 몇 없는 희귀 보석, 장인 드워프들의 손을 거친 예술적인 물건들이었다.
지금 만보당은 이계의 여러 서적들을 통해 그 가치를 추정하고 있는 작업을 수행중이다.
남궁혁은 얼굴을 붉혔다.
“아직 보고의 가치가 파악 되지 않았습니다. 폐하.”
“어느 정도 진척 되었는가?”
“전체의 삼 할입니다.”
“그 정도면 충분하다. 당분간 만보당은 십만 명의 백성들이 본국으로 들어왔을 때의 재정에 대해서 계획을 세우라.”
십만 명으론 멀었다.
십만 명은 중원의 일개성 인원도 되지 않는 작은 인원이다. 십만 명이란 숫자는 단지 수천만을 위한 일차적인 목표에 불과한 것이다.
“예. 폐하.
남궁혁과 종남 고수들이 해야 할일이 한 가지 추가 되었다. 그들은 일제히 대답했다.
주첨기는 고개를 끄덕였다.
장소백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장소백.”
“신 장소백 아뢰옵니다. 무당, 곤륜, 화산, 공동, 점창. 저희 백 명의 수하들은 아직까지는 할일이 없습니다. 현재 사백 명의 백성들은 심성이 순박하오며 죄를 짓지 않사옵니다. 하지만 저희 수하들은 백성들의 수가 늘어날수록, 앞으로 제정될 국법에 따라 백성들을 통솔할 것이며, 타국의 첩보를 철저히 막겠나이다.”
“좋은 기백이다. 장소백의 말대로 앞으로 그대들의 역할은 매우 크다. 본대국의 치안에 더욱 힘을 써주길 바란다.”
“예. 폐하.”
백 명의 고수들의 대답소리에 회의실 안이 웅웅거렸다.
기도가 넘쳤다.
믿음직스러운 수하들을 바라보는 주첨기로선 뿌듯하였다. 그러나 주첨기는 담담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일 뿐이었다.
“천혈삼괴.”
주첨기가 천혈삼괴를 불렀다.
사파 고수들의 강렬한 시선이 주첨기 쪽으로 모여들었다.
“저희들은 언제든 폐하의 명만 기다리고 있습니다. 에드……먼 이든 율……율……그러니까 율…… 그 뭐시기 나라든 언제든 공격할 준비가 되어 있습니다. 명령만 내리십시오. 폐하.”
사파고수들은 혈기가 넘쳤다.
“그대들은 최전방의 무사들이다. 일당만! 결코 물러섬이 없어야 한다. 언제든 진격할 수 있는 그대들이 짐에겐 무척이나 필요하다. 보다 강해지기 위해 연마하라.”
“예! 폐하.”
사파고수들의 눈에서 안광들이 번쩍였다.
“위혁민.”
“예. 폐하.”
법제당에 속한 위혁민이 고개를 조아렸다.
주첨기는 틈틈이 청성고수들과 진천 그리고 수라혈마와 함께 법을 제정하였다.
아직 국법은 큰 틀만 잡혔다.
세세한 잔가지는 아직 준비 중이다.
법제정은 시간이 촉박하다 하여 서두를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시간을 가지고 대국의 뜻과 이계의 성격에 맞는 화합점을 잘 살펴 본 후 제정해야 할 것이다.
“그대들은 이계를 보다 느끼고 본대국에 맞는 법이 무엇인지 잘 생각해 보아야 할 것이다. 앞으로도 지금처럼 그대들을 믿고 있겠다.”
“예. 폐하.”
청성고수들의 대답소리와 함께 회의는 끝이 났다.
이제 남은 것은 개국식이다.
오 일 후……
신명대국의 붉은 깃발이 펄럭이고, 신명이란 대국명이 대륙을 진동시키리라.
대머리 신관이 복도를 바삐 걸었다.
하얀 신관복이 펄럭거리며 여러 시녀와 대신들을 스쳐 지났다. 그때마다 시녀들과 대신들은 대머리 신관을 향해 공손히 허리를 숙였다.
물론 주신 율리안의 축복언을 잊지 않았다.
대머리 신관은 눈앞의 문을 활짝 열었다. 한 명의 노인과 이십대 초반의 여성이 두 눈을 감고 기도를 하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그 둘은 티넬신전의 에스힐 대신관과 리쟌느 신전의 사나 대신관이었다.
“벌써 시작했군.”
대머리 신관은 나지막이 중얼거렸다.
하얀 빛이 두 대신관의 손에서 뿜어져 나왔다. 이윽고 푸른 오로라가 두 대신관의 몸을 감쌌다.
오로라는 퍼져 나갔다.
대머리 신관의 몸에 오로라가 닿았다. 대머리 신관의 입꼬리가 이죽 올라갔다.
미소지만 왠지 부자연스러운 미소.
대머리 신관은 눈을 감았다.
에스힐과 사나. 두 대신관의 중앙에 하나의 문장이 생성되기 시작하였다.
붉은 색의 문장!
결코 그것은 주신 율리안이, 태초에 뜻을 알렸던 하얀색과는 다른 색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 사람은 오로라의 늪 속으로 점점 빠져 들었다.
오로라 역시 그 색이 점점 변하고 있었다.
오라는 방안을 가득 채웠다.
흡사 피 같은 붉은 연막 혹은 기운이 꿈틀거렸다. 구석에 놓여 있던 화분에도 붉은 기운이 닿았다. 화분의 식물은 닿자마자 고개를 숙였다.
색도 누렇게 변질되었다. 생기가 완전히 빠져나갔으니 절대 소생이 불가능 해 보였다.
시간이 지나갔다.
“아!”
세 대신관은 합의라도 한 것처럼 동시에 눈을 뜨며 탄성을 터트렸다.
그분의 말씀을 들었다.
세 대신관은 환희차 한동안 입을 열지 못했다.
“분명 그분의 말씀이셨습니다…….”
“예. 신탁은…… 이로써 확실해졌습니다.”
사나는 쿵쾅 거리는 심장을 부여잡으며 말했다. 지금까지 그분께선 교황님 이외엔 직접 말씀을 내려주신 적이 없었다. 지금껏 신탁을 내릴 때는 단지 간략한 이미지와, 추상적인 사물을 통해 말씀하셨다.
헌데!
바로 지금…… 그분의 말씀을 들은 것이다.
이디스 엘드리안 교황님의 말은 옳았다. 주신 율리안님은 목소리는 만물의 어머니처럼 부드러웠고 신성했다.
“신명국…….”
대머리 대신관 라이트 핸드는 주신 율리안의 음성이 아직도 귓가에서 맴도는 듯하였다.
주신 율리안님께선 신명국으로 인해 어지러워진 세상을 바로잡기 위해 친히 강림한다는 것이다.
신명국에게 고마워해야 할지 분노해야 할지 갈피가 잡히지 않았다.
“주신 율리안님의 말씀을 직접 들었으니, 총력을 다해 강림준비를 해야겠습니다.”
사나는 얼이 빠진 표정으로 말했다.
“헌데…….”
에스힐이 조심히 입을 열었다.
사나와 라이트핸드가 에스힐을 바라보았다. 라이트 핸드는 침을 꿀꺽 삼켰다.
식은땀이 관자놀이를 타고 주룩 흘러내렸다.
“어째서 처녀의 몸이 필요한지는 모르겠습니다…….”
주신 율리안께선 강림에 처녀 백여 명이 필요하다고 하셨다. 그것도 제물로써.
“처녀는 그 어떤 존재보다 순결합니다. 이것으로 다 설명이 되지 않습니까? 순결한 처녀들의 영혼이 주신 율리안님의 강림길을 열어주는 것입니다. 처녀들의 영혼이 지상으로 통하는 어둠을 밝혀주는…… 그런 것입니다.”
라이트 핸드가 말했다.
에스힐은 고개를 끄덕였지만 여전히 그 점이 마음에 걸렸다. 하지만 이내 생각을 떨쳐 버렸다. 그토록 기다리고 기다렸던 주신 율리안님께서 강림 하신다!
“주신 율리안님의 뜻이라면…… 백성들도 받아들일것입니다. 오히려 영광이겠지요. 자신의 영혼으로써 율리안님의 길을 밝혀주니 말입니다.”
라이트 핸드의 말에 두 신관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다른 신관들과 백성들에게 주신 율리안님의 말씀을 전하고, 강림준비를 치밀하고 신속하게 하도록 합시다.”
에스힐은 주신 율리안님의 강림이 벌써부터 눈에 선했다.
하늘이 열리고 새하얀 빛이 뿜어져 나와 세상을 밝힌다. 열린 하늘에서 주신 율리안님이 지상으로 천천히 내려와 자신들을 향해 손을 벌려, 따뜻한 품안으로 인도하시리라.
“신명국의 개국식은 어쩌지요?”
문득 사나가 물었다.
“들으셨지 않으셨습니까? 주신 율리안님께선 세상의 율법을 어지른 신명국에 화가 나 있습니다. 개국식에 참가할 필요도, 참가해서도 안 됩니다. 어차피 그들은 곧 주신 율리안님의 벌을 받게 될 것입니다. 저는 교황님께 가겠습니다. 사나님께선 대신관님들에게, 에스힐님께선 백성들에게 전해 주십시오.”
“알겠습니다.”
“알겠어요.”
세 대신관은 희열에 찬 눈빛을 교환하였다. 개국 이래로 고대해 왔는 일이 바로 펼쳐지려는 순간이었다.
라이트 핸드가 먼저 방에서 나갔다.
“모든 백성들이 율리안님의 강림을 보기 위해 수도로 몰릴것입니다. 에스힐님께서 각별히 이점에 대해 준비 해 주십시오.”
“물론입니다.”
사나와 에스힐은 의미 심장한 얼굴을 한 채로 방 밖으로 빠져나왔다.
방문이 닫혔다.
애꿎게 죽어 있는 식물이 덩그라니 남았다.
식물 뿐이랴.
손톱만 한 작은 벌레들도 죽어 있었다. 방안의 생물이란 생물은 세 대신관을 제외하고선 모두 죽어 있던 것이다.
그러나 그 누구도 그 사실을 알아채지 못하고 있었다.
한편 라이트핸드는 들뜬 마음으로 교황을 직접 방문하고 있었다.
주신 율리안을 뜻하는 색인 하얀색.
하얀색으로 도배된 교황실에는 신성한 성배가 중앙에 배치되어 있었고, 주신 율리안의 조각이 중앙벽에 새겨져 있었다. 그 앞에 대신관들과는 다른 신관복의 노인이 눈을 감은채로 손을 모으고 있었다.
유일한 권위를 상징하는 교황의 모자와 관대(허리띠)를 착용하고 있었고, 신성한 하얀색의 의복을 정갈히 입고 있었다.
라이트핸드는 교황 이디스 엘드리안의 기도가 끝날 때까지 기다렸다.
“오셨습니까. 라이트 핸드님.”
교황이 말했다.
“예. 교황님. 친히 주신 율리안님께서 말씀을 내려주셨습니다.”
교황은 미소 지었다.
“알고 있습니다. 이리 앉으시지요.”
라이트핸드는 교황이 가리킨 자리에 공손히 앉았다. 교황은 라이트핸드의 얼굴에 가득 퍼진 희열을 보았다.
교황은 부드럽게 미소 지었다.
“어떠신가요?”
“예?”
“율리안님의 신언을 직접 들으신 느낌말입니다.”
“미천한 인간의 언어로는 형용할 수 없는 기분입니다.”
라이트핸드는 아직도 전율이 돋는 듯하였다.
“그렇습니다. 그분은 미천한 저희들이 감히 상상조차 할 수 없는 분이시지요. 돌아오는 보름달이 뜨는 밤. 이십 일 뒤 그분께서 내려오시겠다고 했지요?”
“예. 그분께서 그렇게 말씀 하셨습니다.”
“그날은 세상이 재창조 되는 날일입니다. 그날까지 모두 정신과 몸을 깨끗이 하도록 모두에게 말씀드려주십시오. 저는 지상으로 내려오는 그분의 길을 조금이라도 밝히기 위해 금식기도에 들어가겠습니다.”
교황 이디스 엘드리안도 다름 대신관들 못지않게 희열에 가득 찬 표정이었다.
“폐하. 신명국에서 사자가 왔습니다.”
“신명국에서? 들어오라 해라.”
황제 에드먼 19세는 담담한 얼굴로 말했다.
로스엔국과의 전쟁에서 완승하고 본격적으로 개국식을 준비한다고 들었었다. 신명국에서 사신을 보낸 것을 보니 아무래도 그 개국식 날이 가까워진 모양이다.
에드먼 19세는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한 자세였다.
“폐하. 신명국에서 온 방각대사와 그 일행입니다.”
대신이 말했다.
방각대사와 세 명의 소림고수가 합장을 하며 안으로 들어왔다.
에드먼의 황성도 웅장하지만 신명대국의 황성에는 비할바가 못되었다. 이미 익숙해질대로 익숙해진 방각대사와 소림고수들은 느긋한 표정이었다.
에드먼 19세는 나지막하게 눈을 떠 방각대사를 바라보았다.
신명국의 사람과 대면한 것은 처음이다.
신명국의 검사 사백여명 모두 소드 마스터라는 소문이 문득 떠올랐다.
앞에 보이는 대머리 노인은, 검사처럼 보이지 않는다. 그러나 소드 마스터 이상 가는 기운이 그의 주위에서 어른거리고 있지 않은가.
신기할 따름이다.
“아미타불. 방각이라 하옵니다. 페하.”
방각대사는 오십보 정도 떨어진 곳에서 합장하였다.
“신명국의 소문은 익히 들었다. 가까이 오라.”
방각대사도 에드먼 19세를 보며 속으로 흠칫 놀랐다.
에드먼국 황제의 전신에서 뿜어지는 기도가 자신 이상이었다. 비록 본대국의 두 기인보다는 아니더라도, 왜만한 일류고수를 능가하는 기도다.
“신명국에선 어쩐 일인가?”
에드먼 19세가 시치미를 떼고 말했다.
“황제 폐하의 전서를 가지고 왔습니다. 아미타불.”
방각대사의 목소리는 경건하였다.
특히 아.미.타.불
합장을 하며 그 말을 할 때, 에드먼 19세를 제외한 실내의 모든 사람들은 숙연해졌다. 황제 에드먼은 차가운 눈초리로 다시 한 번 방각대사의 모습을 훑었다.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에드먼의 시선은 방각 대사의 어깨 너머, 세 고승들을 향하고 있었다.
오! 모두 소드 마스트급이다.
황제 에드먼은 문득 대소를 터트렸다.
“하하하. 방각이라 하였던가?”
“예. 폐하.”
황제 에드먼은 자리에서 일어나 방각 대사 곁으로 걸어갔다.
호위 기사들이 놀라 그에게 바짝 붙으려 하였다. 황제 에드먼은 간단한 손짓을 하였다. 유독 몸집이 큰 기사를 제외한 호위 기사들은 그 자리에 멈춰 서 싸늘한 눈빛으로 방각 대사를 경계 하였다.
황제 에드먼은 몸집이 큰 기사와 함께 방각 대사의 앞에 섰다.
“폐…….”
방각 대사가 말을 하려다, 입술을 닫아버렸다.
갑자기 황제 에드먼의 몸에서 열화 같은 기운이 뻗치고 있었다. 황제 에드먼의 기운은 방각대사를 압도하고도 남았다. 방각대사와 세 명의 고승은 놀라 고개를 들었다.
황제 에드먼은 미소를 짓고 있었다.
일국의 사신의 역을 수행중인 방각대사로썬 소림내력을 끌어 올릴 수 없었다.
세 고승이 이를 눈치챘다.
셋은 약속이라도 한 듯 방각대사의 등에 검지손가락을 댔다.
‘뭐지?’
황제 에드먼은 뿜어내던 기운을 거둬들이지 않았다. 오히려 더욱 강렬히 방각 대사를 향해 토해냈다.
방각대사가 보리회암공의 수법으로 손을 저었다.
황제 에드먼의 기운이 방각대사의 손 쪽으로 흘러들었다. 이윽고 황제의 기운은 방각대사 몸으로 빨려 들어갔다.
몸속으로 들어온 기운이 폭발할 듯 꿈틀거렸다. 방각대사가 미간을 찌푸렸다.
‘신기한 수법이군.’
어떻게 했는지는 몰라도, 자신이 토해놓은 오라가 신명국의 사신 몸속으로 빨려 들어가고 있었다.
황제 에드먼은 당황하기 보단 흥미롭다는 표정이었다.
‘무슨 수법인지는 몰라도 무리다.’
황제 에드먼의 기운은 멈추지 않았다. 범람하는 홍수처럼 쏟아졌다.
방각대사의 몸속에서 회오리치는 황제의 기운이 조금씩 사그라들었다. 그것은 네 등분 되었다. 하나는 방각대사에게, 나머지 셋은 세 고승들 쪽으로 나뉘어졌다.
이정도 기운이라면 소림내력을 외부로 끌어 올리지 않고도, 몸 안에서만 제압할 수가 있다.
방각대사의 접힌 미간이 풀어졌다.
그 자리에 온화한 미소가 드리웠다.
‘신기해…….’
황제 에드먼은 더 이상 오라를 발출 시키지 않았다. 상당한 의구심과 함께 억지로 웃음을 터트렸다.
하하하!
“대단하군.”
방각대사는 고개를 저으며 합장했다.
“아미타불. 아니옵니다. 저희 노납들보다 높은 경지에 오르신 에드먼 황제 폐하께 탄복할 뿐이옵니다.”
황제 에드먼은 그리 싫지만은 않은 기색이었다.
“그런데 한번도 보지 못한 수법이었다.”
“보리회암공이라고 하옵니다.”
“보리회암공? 신기한 이름이군. 신명국의 검사들은 소문처럼 그대들 같이 강한가?”
“대반수가 이 노승들 보다 뛰어나옵니다. 그리고 두 노기인께선 저희 노납들이 범접할 수 없는 경지에 달하셨으며, 황제 폐하께서는 두 노기인의 경지를 뛰어 넘어, 하늘을 가르고 산을 무너트리실 수가 있사옵니다. 아미타불.”
소드 마스터를 뛰어넘는 경지라……
“그런가? 꼭 신명국의 왕과, 그 두 노기인을 만나보고 싶군.”
방각대사는 기다렸다는 듯이 입을 열었다.
“만나실수가 있사옵니다. 자국은 이번에 개국식을 치르옵니다. 이것이 바로 황제 폐하께서 전하는 황서이옵니다. 아미타불.”
방각 대사가 품안에서 전서를 꺼냈다.
공손히 전서를 앞으로 내밀었다.
황제 에드먼이 이를 받으며 옆을 보았다.
유난히 몸집이 큰 기사.
투구 안으로 보이는 눈밑에는 주름이 상당량 져 있었다. . 투구와 어깨갑으로 이어지는 목갑 사이로 삐져나온 머리칼 또한 백색이었다. 하지만 눈빛만은 살아서 꿈틀 거렸다
위풍당당하다.
“제논 공작.”
황제 에드먼은 노기사를 그렇게 불렀다.
“예. 폐하.”
노기사가 깊숙이 허리를 숙였다.
“그대가 신명국의 개국식에 참석해 보는 것이 어떤가?”
“알겠습니다. 폐하.”
황제 에드먼이 노기사 쪽으로 전서를 내밀었다. 노기사는 투구를 벗었다.
용처럼 휘어 올라간 하얀 눈썹, 목덜미까지 내려오는 백발. 칼같이 날카로운 눈빛.
대장군의 풍모!
제논 공작은 무릎을 꿇어 전서를 받았다.
“감사드리옵니다. 폐하. 아미타불.”
“그대들의 이름은 무엇인가?”
황제 에드먼이 물었다.
“저는 일각이옵니다. 폐하.”
“진각이옵니다.”
“보각이옵니다.”
세고승이 차례로 대답하였다.
황제 에드먼은 자신의 자리로 가 앉았다. 탁자에 손을 올려 턱을 굈다. 그러고는 의미심장한 표정으로 방각 대사와 세 고승들을 바라보았다.
“방각,일각,진각,보각. 그대들에게 묻겠다. 그대들은 대 에드먼 제국의 백작이 될 생각이 없나?”
결코 헛말이 아니다.
방각 대사와 세 고승은 여전히 온화한 표정을 지으며 너털하게 웃었다.
“허허. 에드먼 황제 폐하께서는 저희 노납들을 좋게만 보시옵니다. 말씀만은 감사하게 듣겠습니다. 폐하.”
“진심이다. 대 제국은 그대들 같은 인재가 필요하다. 그대들이 원하는 것이라면 무엇이든 들어주지. 무엇을 원하는가? 지위? 보물? 명성?”
“아미타불. 말씀만은 감사하옵니다. 폐하.”
방각대사가 나서서 말했다.
“신명국은 개개인이 강하긴 하나 나라라고 하기엔 너무 좁은곳. 그대들 같은 자들에겐 더 넓은 곳이 필요하다. 대 에드먼 제국과 같은 곳 말이다.”
“저희들은 매우 만족스럽습니다. 황제 폐하의 호의는 감사드리옵니다. 아미타불.”
“아미타불.”
황제 에드먼의 얼굴이 굳었다. 그러나 이내 곧 굳은 표정을 풀며 말했다.
“신명국이 좁다고 느껴질 땐, 언제든 오너라. 대 에드먼 제국은 언제든 그대들을 받아들일 것이다. 그건 그렇고. 황궁에서 머물다 가겠는가?”
“호의는 감사드리오나 다른 용무가 있사옵니다. 아미타불.”
“그렇군. 지금 바로 떠나는가?”
“예. 폐하.”
“제논 공작. 이들과 같이 떠나라.”
제논 공작은 예순이 훨씬 넘어 보였으나, 장대한 기골은 아직도 굽혀지지 않았다. 젊은 기사들보다 힘이 넘치는 걸음으로 방각대사 일행에게 다가갔다.
방각대사는 제논 공작을 향해 합장하였다.
비록 제논 공작이라는 노기사에게선 기운이 느껴지지 않으나, 위압감이 들었다.
그리고 그의 눈에 맺힌 정광.
필히 엄청난 기운을 숨기고 있는 것이다.
‘이계에 이런 노고수가 존재할 줄이야…….’
방각 대사와 세 고승은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이 노기사의 내력을 도통 감 잡을 수가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