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mortal martial artist RAW novel - Chapter 3
제3화 이세계의 평원
“전하 일어나셨습니까?”
주첨기가 눈을 떴다.
자신을 내려다보고 있는 진천과 수라혈마 그리고 형가가 보였다.
“아…”
뭔가가 달라져도 크게 달라졌다.
이것이 내 몸이란 말인가?
온몸에서 느껴지는 이 거대한 기운은 무엇이란 말인가?
주첨기는 놀라 눈을 크게 떴다.
그리고 자신의 몸을 살펴보았다. 손등에 자잘하던 검상들 까지 깨끗이 없어졌다. 흡사 여자 같은 백옥 같은 피부다. 이불을 들춰 자신의 나신을 바라보았다. 몸에 박혀있던 점들과 작은 흉터들 하나하나가 전부 사라졌다.
“이게 어떻게 된 것입니까?”
“감축 드립니다. 전하. 환골탈태를 걸쳐 반박귀진의 경지에 이르셨습니다.”
“그렇다. 제자야. 이 늙은이의 말이 맞다. 무림 역사를 통틀어 찾아볼 수가 없는 … 전설로만 전해지는 경지에 이른 것이다. 크크크… 역시 내 제자야.”
“하지만. 전하. 비록 화경에 이르는 경지에 드셨다 하나 무공은 익히셔야 합니다.”
“맞아. 킬킬. 지금의 너는. 어린아이에게 신검을 맡긴 거와 같지. 그 엄청난 내공을 다스리려면 무공을 익혀야 한단 말이지. 키키”
주첨기는 자리에서 일어나 두 노인을 향해 절을 하였다.
“이 모든 것이 두 스승님 덕분입니다. 이 은혜는 잊지 않겠습니다.”
“키키키. 당연하지. 제자야. 지금 네 몸속에 있는 내공이 얼마나 되는지 알겠느냐? 무려 7갑자다! 그 속엔 이 늙은이와 내 내력이 일 갑자씩 깃들어져 있다. 너를 살릴 려고 내력까지 소비하며 얼마나 노력했는지 모른다. 이 은혜는 절대 잊어서는 안 된다. 킬킬.”
형가가 주첨기를 일으켜 세웠다. 미리 준비해두었던 황자의 의복을 건넸다.
주첨기가 의복을 갖추자 진천이 입을 열었다.
“어제 움직이셨던 혈도가 기억나십니까? 전하.”
“스승님께서 말씀 해주신 것은 모두 기억하고 있습니다.”
“그것이 바로 신의 내공심법인 청령진기라 합니다.”
“쳇…”
수라혈마가 쭈삣거렸다.
“오늘부터는 신의 절학인 구천신검을 전수하겠습니다.”
“뭐? 지금 제자는 내 절학을 전수 받는 중이다. 내 것부터 다 받고 전수를 하던가 해. 내공심법도 네놈 맘대로 전수하였지 않았는가?”
“수라혈마. 네 무공의 전수는 다 끝났다. 이제 전하께 남은 것은 스스로 정진하시는 것일 뿐. 너는 옆에서 간단히 조언을 하면 된다.”
“아니야!”
“수라혈마. 노인의 억지는 꼴불견이다.”
“제…제기랄… 죽고 싶어?”
“스승님. 그렇게 하고 싶습니다. 파천마권은 지금처럼 정진 하겠습니다.”
주첨기까지 나서자 수라혈마는 더 이상 우기지 못했다. 검황 진천과 주첨기가 수라혈마에게 눈길을 보냈다. 수라혈마가 이마를 짚으며 ‘헉’ 하고 소리를 냈다.
검황 진천과 제자 주첨기가 합심하여 보내고 있는 눈빛!
나가!
나가주세요!
“제자도 다 필요없어. 이제 난 쓸모없단 그 말이지? 좋아 좋아. 나가주겠어. 은혜도 몰라보는 제자 따위가 무슨 제자라고. 크르르르…”
“스승님. 무슨 말씀을 그렇게 하십니까. 제자가 어찌 스승님의 은혜를 잊겠습니까.”
“됐어.”
쾅!
수라혈마가 거칠게 문을 닫고 방 밖으로 나갔다.
“걱정 마십시오. 아마 환관을 다그쳐 어화방의 음식이나 먹으러갔을 것입니다. 신경 쓰지 마십시오. 속이 좁은 친구입니다.”
친구?
진천은 스스로 말하고 머쓱하였다.
“오늘부터 제 절학인 구천신검 또한 정진하셔야 합니다. 그래야 전하께서 말씀하신 중용을 지키실 수가 있습니다. 벌써 파천마권의 삼성에 드셨다고요?”
“예. 스승님.”
“한번 펼쳐 보실 수 있습니까?”
주첨기가 가볍게 포권을 한 후 뒤로 몸을 날렸다.
무공을 익히지 않은 사람처럼 아무런 기운이 느껴지지 않았었다. 그러나 주첨기가 일보 움직일 때마다 진천조차도 감당 못할 기운이 나타났다 사라지길 반복하였다.
그때마다 진천은 자신도 모르게 몸을 움찔거렸다.
보법을 밟던 주첨기가 문득 멈췄다.
가슴 쪽으로 권을 쥐며 끌어 모은다.
단전의 내기를 권에 집중하는 초식인 것 같다.권에 맺힌 기운이 놀라울 정도로 커져 간다.
위험수위를 넘어섰다.
“전하. 위험합니다.”
주첨기는 그소리와 함께 앞으로 권을 내질렀다.
권에서 회오리 같은 내력의 바람이 뿜어져 나오며 앞으로 쏟아졌다.
콰앙!
주첨기의 시야에 보이는 벽들이 한줌의 재가 되었다.
그걸로도 모자라.
벽을 관통한 권풍은 뒤의 건물까지 날려버렸다.
다행히 궁녀들과 대신들이 다니지 않는 곳이었다.
반절은 날아가 버린 실내.
그리고 확 트인 시야로 무너져 내리는 건물들.
“아…”
검황 스승님의 말에 내력을 반절 밖에 끌어 올리지 않았음에도 위력은 대단했다.
어전시위들이 진상을 확인하기 위해 뛰어왔다.
역시. 최근 들어 제삼황자 미강왕 전하께서 모시고 온 무림의 두 고수가 황성을 제집처럼 부순다.
진천은 어전시위들의 따끔한 눈총을 받았다.
어전시위들이 물러가자 진천이 말하였다.
“사심이 깃들어 있지 않습니다만 내력 조절을 하셔야 할 것 같습니다. 전하.”
“이정도 일 줄이야 감히 상상이나 했겠습니까. 주먹에 가옥이 날아가니, 전력을 다한다면 태산도 무너트릴 기세입니다.”
진천이 검을 뽑음으로써 전수가 시작되었다.
진천의 절학인 구천신검은 총 아홉 개의 초식으로 이루어졌다.
그리고 아홉 개의 초식 언제든 서로간의 변초식으로 이어 질수 있는 변검이었다.
아홉 개의 초식이나.
이 아홉 개의 초식이 언제든 자유롭게 다른 초식으로 변환 될 수 있기에, 시전될 수 있는 전개 방식은 무수하다.
제일초식 천검초개.
제이초식 천검개화.
제삼초식 천검대연
제사초식 천검천파
제오초식 개천지
제육초식 백화천
제칠초식 대천입밀
제팔초식 만검진천
제구초식 일검경천
초식을 시전하는 진천은 물처럼 움직였다. 검은 살아 있는 듯한 착각을 가져왔다.
울부짖기도 하고, 웃기도 한다.
절도 있는 수라혈마의 무공과는 다르다.
처음부터 끝까지 멈추지 않았다.
초식 속으로 빨려 들어갈 것만 같다.
내력을 운용하지 않는 초식의 시전임에도 그 속에 잠재되어 있는 위력이 느껴진다.
한번 시작되면!
멈추지 않는 것이 자신의 성격과 일치하다.
파파팟!
이미 머릿속에서 구천신검이 시전되고 있었다.
그로부터 오년이 흘렀다.
이목구비가 조각처럼 뚜렷하다.
눈썹이 승천하는 용 마냥 멋들어지게 올라가 있었다.
작은 아이였던 주첨기!
그는 기골이 장대한 남아가 되어 있었다.
몸을 한번 튕겼다.
하늘을 날 듯 황성의 저편으로 뛰었다. 차가운 바람이 빠르게 그의 귓가를 스치고 지나갔다. 한번 땅을 박찰 때마다 주첨기의 모습이 사라졌다. 그리고는 먼 발치에서 그 모습을 드러내곤 하였다.
허공에서 주첨기의 금장포가 펄럭인다.
스쳐가는 바람…
그는 바람 속에 몸을 맡겼다.
그리고 바람이 되었다.
탁.
궁녀들의 눈을 피해 궁의 외곽에 착지하였다.
황자의 복관을 제대로 갖췄다. 손에 들고 있던 면류관도 머리에 써 고정시켰다. 갑자기 궁의 외곽에서 제삼황자가 나오자 궁녀들이 황급히 머리를 조아렸다.
미강왕 전하.
신하들을 거동하지 않은 채 어디선가 불쑥 나타나 신출귀몰 하다고 소문이 자자했다.
이번의 경우도 그랬다.
“부르셨습니까. 폐하”
청년 주첨기는 홍희제에게 절을 하였다.
오년이 지난 이때. 홍희제는 많이 늙었다 홍희제가 기침을 토했다.
“황자. 가까이 오라.”
“예. 폐하”
홍희제는 듬직한 주첨기를 보니 절로 미소가 일었다.
천하를 잘 다스리지 못하였지만, 그래도 아들들만큼은 잘 자라주었다.
“환관과 대신들은 물러가라!”
홍희제의 황명.
문밖에서 서있던 환관들과 대신들이 서둘러 사라졌다.
“짐이 황자를 부른 이유는 다름이 아니다. 황자도 알다시피 짐은 이미 늙어 더 이상 태자 책봉을 미뤄선 안 될 것만 같다. 태자 책봉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 황자.”
천하의 주인이 될 태자의 책봉이 황제의 입에서 나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첨기의 표정엔 아무런 변화도 없었다.
“마땅히 제일황자이신 보건형왕께서 책봉되어야 한다고 사료되옵니다.”
그 점 때문에 지난 몇 년간 황자 책봉을 미뤘다.
홍희제 자신이 가장 총애하는 것은 제삼황자인 첨기나, 그는 셋째 아들이었다. 삼황자의 위로 두 명의 황자가 더 존재하고 있다.
두 명의 형왕이 존재하는데도 삼황자를 태자 책봉으로 하기엔 황실이 위험하였다. 실례로 장자를 태자로 책봉하지 않아 황자들끼리의 권력투쟁으로 인해 쇠퇴한 대국들이 어디 한두 나라인가.
“제 걱정은 마시옵소서. 폐하.”
“아니다. 짐은 누구보다도 황자가 제일 걱정된다.”
홍희제도 보건왕과 미건왕의 사이가 무척 나쁘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자신이 죽고 보건왕이 황제로 올랐을 때, 미건왕이 첫 번째 제거대상이 될 것이다.
“형왕과 마주치지 않을 것입니다. 저는 제 길을 갈 것입니다. 폐하.”
오 년 동안 많은 생각을 하였다.
자신을 죽이려고 하는 형왕 때문에 무공을 익혔다. 무공을 익히면서 생각이 조금씩 바뀌었다. 아무리 밉고 원한을 가졌다 한들 같은 핏줄이다.
한때 어린 반발심으로 결코 떠나지 않을 것이라 다짐 했다. 그러나 그건 반발심에 불과할 뿐이었다. 철이 들고나자 같은 핏줄에게서 피를 보고 싶지 않았다.
형제의 연은 상제님께서 정해주신 것.
천륜을 어기지 않겠다.
“갈 길이라니 무슨 말이더냐. 황자.”
주첨기가 미소 지으며 입을 열었다.
“이미 생각을 마쳤습니다. 제 갈 길로 떠나지만 언제나 대명제국의 황제이신 폐하의 아들이라는 것을 잊지 않을 것 입니다. 폐하.”
“짐은 당황스럽다. 어디를 간단 말이더냐”
비록 태자책봉에 대한 미련은 버렸다.
하지만 자신만의 대국을 다스리겠다는 생각은 계속 키워오고 있었다.
오 년간 줄곧 생각 하였다.
자신만의 대국…
“변방에 나라를 세울 것입니다.”
“나라를 세운다니!”
“폐하. 심려 마십시오. 저는 대명제국의 황제이신 폐하의 자랑스러운 아들이 아닙니까? 대명제국에 해가 되는 일은 하지 않을 것이옵니다.”
홍희제가 고개를 끄덕였다.
“황자…”
홍희제는 눈가가 뜨거웠다.
어린 황자가 다 커서 이제는 자신만의 대국을 만들기 위해 떠나겠다고 말한다.
굳은 결심을 한 얼굴로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황자를 보고 있노라니, 눈물을 참을 수가 없었다.
“폐하. 심려 마시옵소서. 소자 잘할 것이옵니다.”
“황자. 너는 누구보다도 총명한 아이였다. 그래 언제 떠날 생각이더냐?
“폐하께 말씀 드리는 즉시 떠나려 하였습니다. 마침 그게 오늘이 되었습니다.”
“언제나 너는 대명제국의 황자라는 것을 잊지 말아라…”
홍희제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건천궁의 벽에 걸린 긴 장검을 빼들었다. 예사롭지 않은 광택이 검집을 타고 흘렀다. 홍희제는 검을 가지고 주첨기에게 다가갔다.
“이것은 대국의 보검 청강검이다. 황자는 청강검을 받아 이를 전하는 짐의 뜻을 잊지 말아라.”
“예. 폐하. 만수무강 하시옵소서. 만세 만세 만만세.”
주첨기는 홍희제를 향해 세 번의 절을 한후 검을 받았다. 주첨기의 눈에서도 눈물 한줄기가 흘러나왔다.
“폐하… 부디 만수부강 하시옵소서.”
종종걸음으로 뒷걸음질 하여 건천궁 밖으로 나왔다. 주첨기는 다시 한 번 황제가 앉아있는 쪽을 향해 세 번의 절을 하였다. 건천궁의 외벽 쪽으로 돌았다.
탁!
발로 땅을 박차자 주첨기의 몸이 하늘로 솟구쳤다.
주첨기가 모습을 드러낸 곳은 보건왕부의 외벽이었다.
“전하. 어인 일이시옵니까?”
보건왕부의 어전시위 총관 다풍이 절을 하였다.
주첨기를 향해 절을 하는 보건왕부의 신하들은 매우 놀라운 듯한 얼굴을 하였다. 지난 십 년 동안 한 번도 보건왕부에 출입하지 않았던 미강왕 전하가 아닌가?
첨기가 찾아왔다는 소식을 들은 보건왕!
보건왕 주기린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첨기. 무슨 일로 왕부를 찾아왔지?”
“형왕 족하. 긴히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주위의 눈들부터 치워주십시오.”
“모두 물러가라. 이제 말해봐라. 첨기가 무슨 일로 왕부를 찾아왔지? 십 년 만인가?”
“형왕 족하. 저는 내일 황성을 떠납니다.”
“무슨 말이지?”
주기린이 퉁명스럽게 반문하였다.
보건왕은 육년 전부터 미강왕을 견제하고 있었다.
태자 책봉!
이 문제만 아니라면 미강왕은 좋은 동생이 되었을 게다. 황제폐하의 총애를 독차지 하지만 않았어도. 자신이 그렇게 독수를 뻗지 않아도 되었으며, 육 년 동안 고심하지 않았어도 되었을 것이다.
“말 그대로입니다. 형왕 족하. 저는 제 갈 길을 찾아 떠날 생각입니다.”
“갑자기 찾아와서 그런 말을 늘어놓는 저의가 뭐냐?”
“같은 핏줄로써 태자자리를 놓고 피를 보기 싫어서 입니다.”
주첨기는 말을 돌리지 않았다.
너무 솔직한 말이라 보건왕은 당황하였다.
“형왕 족하께선 치세를 할 자신이 있습니까?”
“당연하다.”
자신을 죽이려고 했던 것만 빼면 형왕 족하 또한 제왕의 자질을 타고 났다.
“그 말을 믿고 떠나겠습니다. 더 이상 제게 자객을 보내시지 않으셔도 됩니다. 보내셔도 소용없고 말입니다.”
육 년 동안 끊임없이 찾아온 자객들.
그제보다 어제, 어제보다 오늘!
전보다 뛰어난 자객들이 셀 수 없이 찾아왔지만. 그들은 주첨기의 일권에 모두 도망쳤었다.
“자객이라니!”
“형왕 족하. 동생은 다 알고 있습니다. 지난 육 년간 형왕 족하께서 보낸 자객들… 어찌 모르겠습니까?”
보건왕이 코웃음 쳤다.
“그래. 알고 있었군.”
“바보가 아닌 이상 알 수밖에 없습니다.”
“첨기! 어째서 그럼 조용히 있었던 것이지? 내게 앙갚음이라도 하고 싶지 않았나?
“하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형왕 족하와 저는 황가의 같은 피를 가지고 있습니다. 친형제끼리 피를 보기 싫습니다. 그뿐입니다.”
“바보 같군…”
보건왕은 씁쓸하게 웃었다.
“그러나 이번이 마지막입니다. 더 이상 저를 자극하지 말아주십시오. 한 번만 더 저를 자극한다면!”
갑자기 주첨기의 몸에서 뜨거운 열풍이 불었다. 실내의 장식들이 우수수 요란하게 떨어졌다. 주첨기의 몸에서 흘러나오는 거대한 기운이 보건왕의 몸을 엄습했다.
이것은 공포다!
보건왕은 차마 부릅떠진 주첨기의 눈을 직시하지 못했다.
고개를 돌렸다.
그때였다.
헙! 쾅!
실내의 기물들이 일순간 산산 조각나며 잔재를 뿌렸다. 책상도 의자도, 서재도, 많은 서책들도 한낮 가루로 변해버렸다. 주첨기의 기도는 가히 살인적이었다.
“그동안 같은 핏줄이라 천륜을 지킨 것뿐입니다. 더 이상은 참지 않겠습니다. 형왕 족하께선 그렇게 알고 계십시오. 다시는 서로 대면하는 일이 없기를 바랍니다. 형왕 족하.”
보건왕은 온몸을 바르르 떨며 그 자리에 주저앉았다.
주첨기는 등을 돌렸다.
뒤도 돌아보지 않고 거칠게 앞으로 나아갔다.
정파지존 검황 진천.
사파지존 혈마교주 수라혈마.
이 두 절정고수가 서로 농담을 주고받으며 한방에 있으리라고 누가 감히 생각이나 했겠는가?
천하에 이를 아는 사람은 단 세 명뿐이다.
같은 방안에 있는 주첨기와, 환관 혜공 그리고 어린 내시 만소자.
바로 그들이다.
모두들 어디론가 떠날 듯 간단한 차림으로 갈아입은 상태였다. 주첨기라고 예외가 아니었다.
“제자야. 잘 생각 하였다. 황성을 나가거든 본교로 가자. 혈마교주 자리를 너에게 물려주마. 낄낄. 황제가 대수더냐. 호의호식하며 잘 사는 게 황제지. 수많은 미녀에 온갖 음식들이 즐비한곳! 바로 본교니라. 낄낄낄.”
이런 어투!
아주 질려버렸다.
검황 진천이 고개를 설레설레 저었다.
“안됩니다. 미강왕 전하께선 대국을 세우시겠다는 거대한 포부로 황성을 나가는 것입니다. 누가 당신 같은 사람들이 모여 있는 곳에 가려고 나간다고 하였습니까요?”
환관 혜공이 질색하였다.
“늙은 마누라. 너도 가보면 알 거야. 푹 빠져버릴 걸. 낄낄. 어쨌든 본좌는 결정 하였다. 제자야. 나는 이만 은퇴하고 혈마교를 네게 맡겨버리마. 너라면 잔혹무도한 대 혈마교주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중원에서 너의 무공을 따라올 자 감히 없으니, 너의 무공으로써 혈마통일을 이룩하라. 낄낄낄… 그러면 제국 따윈 안 세워도 될 것이야.”
후우.
검황 진천이 한숨을 내쉬었다.
어떻게 오년이 지났는데 이 늙은 마괴는 달리진 것이 하나도 없었다.
“누구 보고 마누라라고 합니까.”
“그만들 하십시오.”
따끔한 목소리에 모두 입을 다물었다.
주첨기의 심각한 표정을 보니 아무도 입을 열지 못했다.
“두 스승님께선 준비가 되셨습니까?”
진천과 수라혈마가 그렇다고 대답하였다.
지난 오 년 동안 꾸준히 준비하여 언제든 명령만 하달하면 되었다.
제국을 세우기 위해서 있어야 할 것이 첫 번째가 백성이요 두 번째가 치안을 유지할 강력한 군사다.
정착할 땅에는 어련히 사람이 살기 마련이나 강력한 군사는 모으기가 힘들었다.
그래서 주첨기가 생각한 것이 무림의 고수였다.
특히 수라혈마 스승님의 혈마교!
혈마교주인 스승님의 말에 절대 복종하는 그들은 최고의 군사다. 수천 명이 넘는 교도중에 무공이 가장 뛰어난 이백을 선발하였다.
이름하여 진혈살단!
하나하나 일류의 무공을 지닌 정예 중에 정예다.
그들은 모두 혈마교주 수라혈마의 명을 기다리고 있는 중이다.
검황 진천도 이에 지지 않았다.
정파에서 검황의 입지는 대단하다.
절대적인 존재로써 모든 정파 무림인들에 존경을 받는다. 그런 검황이 친히 구파일방을 돌며 일류고수 이십명 씩을 요청하였다.
소림, 무당, 화산.
곤륜 ,아미, 점창.
청성, 공동, 종남
그리고 개방!
구파일방에서 각문의 일류고수 이십명 씩을 보내 요청에 수락했다.
검황 진천이 오 년 동안 차분히 준비한 일이었다.
진천은 그들을 십문정도라 칭했다.
“낄낄. 진혈살단 이백은 언제라도 움직일 수 있다.”
“십문정도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전하.”
정사파 무림인들 총 사백 명이다.
모두 일당백 아니 일당천의 일류고수들!
주첨기는 백만 대군을 얻은 듯 마음이 든든하였다.
주첨기가 황성을 나설 때였다.
평소 주첨기를 따랐던 신하들과 환관들이 소문을 듣고 몰려들었다. 여럿이 주첨기와 동행 하겠다 하였으나 주첨기는 이들을 거절하였다. 황성의 사람들 중 환관 혜공과 청년 내시 만소자만이 유일한 동행자였다.
황제폐하가 계신 곳을 향해 세 번의 절을 마쳤다.
그리고는 목적지인 양양으로 이동했다.
다다닥. 다다닥.
수라혈마와 검황 진천의 전서를 받은 일류 고수들이 양양으로 몰려들고 있었다.
주첨기 일행이 양양의 약속장소인 청화호에 도착했을 때쯤이었다.
챙! 챙!
병장기 소리가 요란하게 들렸다.
큰 전투가 벌어지고 있는 모양이다.
수라혈마와 진천은 아차 하는 생각이 들었다.
사파의 일류고수들과 정파의 일류고수들을 한곳으로 불러 모았으니 무슨 일이 일어나겠는가?
정말 생각이 짧았다.
역시!
일류고수들이 바닥을 스치듯 날며 서로를 공격하고 있었다.
고수들 중에 고수!
일류고수 사백 명!
그들이 대단위의 전투를 벌이는 모습은 장관이었다.
용쟁호투다.
푸른 기운와 적색 기운이 여기저기서 터졌다.
보다 못한 주첨기가 전투 속으로 뛰어들었다.
병기와 병기의 사이!
정파고수와 사파고수들의 사이를 스쳐 지나갔다. 주첨기가 스쳐지나간 자리 뒤로 어김없이 고수들이 쓰러졌다. 점혈 당한 것이다!
휘리리릭.
탁!
세 명이 동시에 쓰러졌다.
휘리리릭.
탁!
여섯 명이 동시에 쓰러졌다.
순식간에 대반수의 고수들이 쓰러졌다.
점혈 당하지 않은 몇몇 고수들이 주위를 보며 놀랐다.
갑자기 약속이나 한 듯 모두들 점혈 당했다.
바로 저 청년이다!
앗!
갑자기 그가 눈앞에 다가오더니 순식간에 자신을 스치고 지나갔다.
있을 수 없는 일이다.
탁!
마지막 한명까지 점혈 당해 쓰러지자, 시끄러웠던 청화호에 정적이 일었다.
“역시 내 제자라니까. 낄낄…”
“정사파의 일류 고수 사백 명을 단번에 제압하다니…”
수라혈마와 진천이 놀란 것은 환관 혜공과 만소자에 비할 바 못됐다.
늙은 내시와 젊은 내시가 입을 쩌억 벌렸다.
넋이 나갔다.
방금 잘못 본 것은 아니겠지?
미강왕 전하께서 하늘을 날라 다니는 무림인들 사백 명을 개미 다루듯 하였다.
수라혈마와 진천이 점혈당한 무림인들의 중앙으로 걸어갔다.
수라혈마와 진천이 동시에 등장한 것을 본 정사파 무림인들의 눈이 크게 떠졌다.
“이분은 제삼황자 미강왕 전하이시다. 본인의 제자이기 전에 주군이시다. 십문정도는 이분을 문주처럼 여겨 충성을 다해야 할것이다.”
“저기 늙은이가 말한대로다. 낄낄. 본좌 저 늙은이와 같이 미강왕 전하의 신하이자 스승이다. 진혈살단은 본좌의 주군이자 제자인 미강왕 전하를 본좌보다 귀하게 대해야 하며 목숨을 다 바쳐 충성해야 한다. 낄낄…”
모두들 주첨기를 바라밨다.
제삼황자 미강왕!
일류고수 사백 명을 단번에 제압하는 무위라!
눈으로 보고, 직접 당했어도…
믿기지가 않는다.
무림지존인 수라혈마와 검황도 그렇게는 하지 못할 것이리라!
입신에 달한 무위다.
하지만 전혀 무공을 배운 사람 같지가 않다.
그렇다면 반박귀진?
설마…
그래도 역시.
전설적인 경지인 반박귀진이다.
십문정도와 진혈살단의 고수들의 결론은 모두 반박귀진에 이르렀다.
정답이었다.
바로 자신들의 눈앞에 반박귀진의 고수가 서있다.
수라혈마와 검황을 뛰어넘는 절대 지존이 공표되는 순간이다.
팟!
상황이 안정되었다고 판단한 주첨기가 내력을 발출하였다. 수백갈래 갈라지며 내력들이 뻗어나갔다.
타타탓.
고수들의 등에 내력이 부딪쳤다.
점혈 되었던 것이 풀렸다.
모두들 넋이 나간 표정으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서로 눈치를 보며 덤벼 들지 않았다.
주첨기가 내력을 일으키며 말하였다.
태산을 울리는 음성이 대지를 흔들었다.
추측조차 할 수 없는 심오한 내력!
모두 등골이 오싹하였다.
“나는 대명제국의 삼황자 미강왕 주첨기다. 두 스승님을 모시고 그대들과 함께 새로운 나라를 세우기 위해 이렇게 세상에 나왔다.”
수라혈마가 진혈살단을 이끌고.
진천이 십문정도를 이끈 채 주첨기의 뒤를 따랐다. 무림고수 사백 명의 행렬을 막을 자는 아무도 없었다. 개개인으로도 위압감이 대단하다. 그런 그들이 사백이 모였으니 할 말 다한 것이다.
“전하. 목적지는 어디입니까?”
“신강입니다.”
황성을 떠나오기 전부터 생각해온 곳이다. 척박한 땅에 사람이 살기 힘든 자연 환경이지만 대명제국에서 벗어나 나라를 세울 곳은 그곳 밖에 없었다.
신강으로 향하는 그들의 행렬.
서쪽으로.
또다시 서쪽으로.
오로지 서쪽으로만 말을 몰았다.
다다닥.
사백 마리가 넘는 말들의 말발굽 소리가 크게 울렸다. 그 뒤로 모래돌풍이 일었다.
두 달 동안 서쪽으로만 달린 것 같다.
쉴 새 없이 내달리던 사백 마리의 말들이 사천성 무산의 골짜기 입구에 멈춰 섰다.
바로 그들의 앞을 한 노부부가 막아서고 있었다.
근처에 사는 주민인 모양이었다.
“무슨 일이십니까?
주첨기가 공손하게 물었다.
“무슨 일인지는 모르나 오늘만큼은 이곳에 들어가면 안 됩니다.”
노파가 눈썹을 찌푸렸다.
“무슨 일이 있습니까?”
“바로 오늘이 오십 년 만에 한번 돌아오는 무산신녀님의 강림일 입니다.”
무산신녀라면 알고 있다.
민간에 전해 내려오는 신화!
태양신 염제의 딸 요희가 죽어 운우의 신이 되었는데, 사람들은 요희를 무산신녀라 칭했다.
하지만 신화일 뿐이다.
“하하. 미신은 믿지 않습니다. 아무쪼록 걱정해 주신 것에 대해 감사합니다.”
“안됩니다. 안됩니다. 절대 들어가시면 안 됩니다. 강림일에 산에 들어갔다간 무산신녀님의 무서운 재앙이 내릴 것입니다.”
길을 비켜서지 않을 작정 같았다.
“괜찮습니다. 길을 비켜주십시오.”
“못 비킵니다.”
노파가 길을 막고 비키지 않자.
“이놈의 노친네가!”
수라혈마의 눈매가 꿈틀거렸다.
그제야 노파는 겁을 먹고 황급히 옆으로 물러났다.
“여보. 상관 말고 갑시다. 저들이 어떻게 되든…”
노파의 남편이 노파의 손을 이끌었다.
“절대 들어가시면 안 됩니다. 무서운 재앙이 내려요!”
노파는 끝까지 외쳤다.
“갑시다.”
주첨기가 바로 말을 몰았다.
노파의 당부 때문에 조금은 찜찜한 게 사실이었다. 하지만 그깟 미신 때문에 멈춘다는 것이 더욱 웃긴 일이다.
투두둑.
빗방울 하나가 주첨기의 얼굴로 떨어졌다.
산중턱에 접어들 때쯤 비가 시야를 가릴 정도로 쏟아지기 시작하였다.
말들의 발굽이 진흙길에 미끄러진다.
히이잉.
이상스럽게 말들은 앞으로 나아가지 않으려고 발버둥 쳤다.
채찍질을 해도 똑같았다.
모두 울어 댈 뿐 움직이지 않는다.
“전하. 말들이 이상합니다.”
진천이 말머리를 쓰다듬으며 안정시키려 하였다.
“하는 수 없습니다. 말을 듣지 않는 짐승에겐 채찍질 밖에 없습니다.”
결국 채찍질을 강도를 높였다. 채찍에 피가 묻어 나왔다.
그제야 말들이 조금씩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래도 앞으로 나가지 않으려고 하는 것은 여전하였다.
한참을 나아갔다.
무심결에 주첨기가 한 나무를 바라봤다.
앗!
전에 봤던 나무가 아닌가.
나뭇가지가 특이하게 생겨 분명히 기억하고 있었다.
다른 고수들도 눈치 챈 모양이다.
길을 잃은 것은 아니었다.
줄곧 앞으로 뻗은 한길로만 나아가고 있었기에 길을 잃을 수도 없었다.
속는 셈 치고 나무에 상처를 만든 후 앞으로 나아갔다.
그 와중.
다시 그 나무를 발견하였다.
나무에 만든 상처 또한 일치한다.
모두들 귀신에라도 홀린 듯한 기분이었다.
“잠시 비를 피합시다.”
우선 장대처럼 쏟아지는 비부터 피하고 보자.
한참 뒤. 그치지 않을 것만 같았던 비가 그쳤다. 앞으로 쭉 뻗은 산길 저편에 안개가 뿌옇게 꼈다.
가까이 다가갔다.
이러한 안개는 처음 보았다.
한 치 앞도 하나도 볼 수가 없다.
“어떻게 할 것입니까?”
“전진한다.”
이대로 멈춰 있을 순 없다.
주첨기가 결단을 내렸다.
안개 속에 수백 명의 고수들이 파묻혔다.
주첨기는 심장이 두근거렸다. 자꾸만 요사스러운 기운이 땅에서 스멀스멀 피어오르고 있다. 지금 일행들이 밟고 있는 이 땅은 요사스런 땅이다! 귀신들이 사람을 가지고 장난이라도 치는 것일 수도 있다. 그따위 귀신쯤은 이 청강검으로 베어버리라.
주첨기가 애써 속으로 위안을 삼으려 해도 불안한 기분은 사라지지 않았다.
마치 빨려 들어가듯 앞으로 향한다.
“모두들 잘 오고 있는가?”
“예! 전하.”
고수들이 일제히 대답했다.
다행히 뒤에서 잘 따라오고 있었다.
그때였다.
주첨기의 몸이 앞으로 튕겨나갔다. 저 앞쪽에서 강한 힘이 주첨기를 끌어당기고 있었다. 주첨기는 당황하지 않고 내력을 일으켜 저항하려 하였다.
하지만 자신을 끌어당기고 있는 힘은 인간이 어찌 할 수 없는 힘이었다.
결국 주첨기를 비롯한 수백 명의 고수들이 앞으로 빨려 들어가기 시작했다.
안개 속을 허우적거렸고. 내력을 일으켜 저항도 해봤고. 병기를 땅에 박아보아도 소용없다.
빨려 들어가는 속도가 빨라졌다.
급기야 속도감에 온몸이 찢어질 듯하였다.
“으아!”
주첨기를 따르는 사백 명의 고수들이 비명을 질렀다.
시간이 지난다.
비명 소리가 차츰 차츰 줄어들어 간다. 어느 순간 비명소리는 전혀 들리지 않았다.
훼에에엥.
차가운 바람소리만이 산길에 맴돌았다. 안개가 걷힌 산길의 모습이 드러났다.
무림고수들이 저항했던 흔적. 뜯겨진 가지. 떨어져 있는 병기.
그리고 파여진 길…
흔적만 남기고 모두 어디로 간 것일까.
무산. 그 어떤 곳에서도 주첨기와 그 일행의 모습을 찾아볼 수가 없었다.
끝이 보이지 않는 넓은 초원.
그 이에 눈살을 찌푸리게끔 만드는 강렬한 태양빛이 쏟아지고 있다. 초원을 감싸 사방으로 보이는 산맥들.
내리막 저편엔 냇가가 있는지 물소리가 들렸다.
평화롭게 보이나.
어울리지 않는 신음소리가 상당했다.
초원의 중앙.
아무렇게 쓰러져 있는 사람들이 내는 소리였다.
사백 명이 넘는 인원이 쓰러져있는 장관을 구경하러 온것일까?
숲속에서 그들을 지켜보는 눈동자들이 있었다. 그곳에서 거친 숨소리가 들린다.
후우. 후우.
“취익. 저 인간들 이상하다.”
인간의 목소리가 아니다.
그러기 너무나 이질적인 목소리였다.
“서로 전투를 벌인 것 같다. 취익”
“우선 지켜보자.”
험상궂은 돼지의 얼굴에 인간보다 우람한 몸집.
열 마리가 넘었다.
이들 중 가장 몸집이 큰 몬스터가 손짓했다. 크고 검은색 피부를 가졌다. 바로 이 놈이 이들 오크의 대장이다. 수풀 뒤쪽으로 오크 이십 마리가 명령을 기다리고 있었다.
취이이익.
대장의 명령이 떨어졌다. 이십 마리가 수풀 속으로 숨어 들어왔다.
이상한 복장을 한 인간들?
서로 싸운 것일까.
신음을 흘리며 일어나지 않는다. 오크들은 인간들을 이상한 눈으로 바라보았다. 인간들이 몸을 뒤척거렸다.
오크들은 일제히 각자의 병기를 움켜쥐었다.
본래 인간들의 것으로 추정되는 무기들.
핸드엑스나 글레이브를 제외하면 모두 원시적인 투박한 무기뿐이었다.
그러나 무기는 쓰는 자의 능력에 따라 위력이 달라진다.
오크들의 우락부락한 팔에 휘둘러지는 무기!
그것들의 위력을 과소평과하면 오산이다.
헛!
인간들이 다시 뒤척인다.
오크들은 모두 달려 나갈 듯 몸을 움찔거렸다.
“취익. 기다려라”
검은 오크가 말했다.
얼핏 보면 제멋대로 같지만 모두 검은 오크의 통제아래 있었다. 검은 오크는 신중하게 쓰러진 인간들을 주시했다. 별다른 이상이 없어 보인다.
잠에 든 것도 아니다.
무슨 이유인지는 모르나 전부 쓰러져 일어나지 않는다. 간혹 뒤척 거리는 자들을 봐도 전투불능 상태다. 원래 인간들의 행동에 이해 못할 것들이 많다.
결론이 났다.
덮친다!
오크들은 인간들이 가지고 있는 장검들을 탐욕스럽게 바라보았다.
“으음.”
주첨기는 이상한 느낌에 몸을 뒤척이며 눈을 떴다.
강렬한 햇살에 눈살을 찌푸렸다. 옆으로 고개를 돌렸다. 자신의 뒤를 따라왔던 정사파의 고수들이 전부 쓰러져 있다. 그때 눈을 뜬 수라혈마와 눈이 마주쳤다.
“낄낄…”
그는 실실 웃었다.
뭔가가 자신들을 노려보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수풀 쪽이다.
결코 좋은 느낌이 아니다. 자신들을 향해 적의를 띄고 있다. 그리고 살기로 번져갔다.
주첨기가 자리에서 일어나려고 하였다. 수라혈마가 입꼬리를 올렸다.
“제자야. 재미있는데. 지켜보지. 낄낄. 감히 누가 본좌를 죽이려 하는 거지?”
“스승님. 제자가 나서겠습니다.”
“아니야. 기분도 더러웠는데 몸이나 풀어야지.”
수라혈마가 주섬주섬 일어났다.
의복에 묻은 흙들을 툴툴 털었다.
검은 오크의 눈이 크게 떠졌다.
한 인간이 일어났다.
외소하나 이상스럽게 강하다고 느껴진다. 그러나 자신들은 삼십이고 일어난 인간은 한명이다. 어떤 방면으로 생각해도 이길 수밖에 없다.
“취이익. 죽여라!”
검은 오크가 헨드엑스를 치켜 올렸다.
우어어어.
오크 삼십 마리가 일제히 포효하였다. 오크들이 무기가 수풀을 쓰러트렸다. 오크들은 거칠게 튀어나왔다. 괴상한 울음소리가 초원에 울렸다.
쓰러져있던 무림고수들이 하나둘 눈을 떴다.
그런데 이게 뭔가.
웬 돼지 얼굴을 한 괴물들이 뛰어오고 있지 않은가?
그것도 한 무더기!
그러나 십문정도와 진혈살단의 고수들은 일어나지 않았다. 정좌로 앉아 있었다. 바로 괴물들을 향해 몸을 날린 혈마교주 수라혈마를 보았기 때문이다.
수라혈마의 무공!
어떤 괴물이 와도 끄덕없다.
검은 오크가 가장 앞장서서 뛰어왔다. 갑자기 자신들을 향해 달려오던 늙은 인간의 모습이 사라졌다.
헛!
갑자기 검은 오크는 뭔가에 부딪쳐 뒤로 넘어졌다.
수라혈마는 검은 오크를 내려다보았다.
돼지같이 생긴 것부터 탐탁지 않았다.
“삼류무사정도 밖에 안 되는 것들이. 낄낄…”
파핫!
수라혈마는 가볍게 검은 오크를 발로 찼다. 내력이 충만한 발길질에 검은 오크가 반대편으로 튕겨 날아갔다.
괴상한 울음소리와 함께 달려오던 오크들은 멈춰 섰다.
“꾸에에엑”
그들의 대장이 자신들의 머리를 위를 날아가고 있었다. 정확히 인간의 발길질에 나가떨어진 것이다.
“취익. 취익. 강한 인간…. 죽는다”
“어서 와라. 이 돼지들아! 키키키”
수라혈마는 아주 재미있다는 표정이다.
“죽는다! 인간! 취이이익!”
수라혈마의 도발에 오크들은 다시 달려들었다.
그러나 그것은 엄청난 실수였다.
수라혈마의 권이 한 오크의 배에 적중했다. 수라혈마의 권은 계속 이어졌다.
팟!
주먹이 적중 한 소리
꾸에엑!
오크들의 단발마.
“역시나 돼지 멱따는 소리였어. 낄낄낄…”
수라혈마가 실실 웃었다.
순식간에 오크 다섯 마리가 하늘로 튕겨 나갔다. 모두 분수처럼 녹색의 체액을 부렸다.
오크들이 멈칫거렸다.
이 사람… 인간이 아니다.
그러나 늦었다.
수라혈마의 권이 멈칫거리는 오크들에게 날아들었다. 열개로 변한 주먹이 몰아쳤다. 오크들은 제정신이 아니었다. 눈을 한번 깜빡일 때마다 동료 다섯이 하늘을 날고 있었다.
“취이이익. 도망치자. 취익.”
겁에 질린 오크가 몸을 돌렸다.
삼십 명이었던 동료가 몇 번 눈 깜짝일 사이에 반절로 줄었다.
저것은 인간도 아니다
“괴물이다. 취익”
“괴물이 괴물이라고 하네? 낄낄…”
도망치는 오크의 등이 훤히 보였다.
수라혈마가 권을 날렸다.
도망치기 시작한 오크들의 등들로 가득하다.
팍!
꾸에에엑.
수라혈마의 권은 도망치는 자에게 용서가 없다
자비도 없다.
어차피 도망치지 않는 자에게도 마찬가지다.
마치 태풍에 쓸려 나가듯.
오크들이 멀리 튕겨나갔다.
수라혈마의 주위에 남은 오크는 단 한 마리에 불과했다.
“취이익. 살려줘..라 인간.”
오크로써!
전사의 긍지는 찾아볼 수가 없다.
공포로 가득 찬 눈이 불안정하게 흔들거렸다. 부들부들 떨리던 손은 결국 병기를 놓쳤다. 수라혈마는 오크가 떨어트린 병기를 주워들었다.
몽둥이.
지적 생물이 쥐는 것이라고 알 수 있는 흔적은. 손잡이처럼 둘둘 말은 끈뿐이었다.
몽둥이를 쥐었다.
오크를 향해 씨익 웃었다.
매우 잔인한 미소.
오크는 싸늘한 웃음을 보며 온몸이 굳는 듯하였다.
수라혈마가 몽둥이를 치켜들었다.
“그만 하면 됐지 않은가? 수라혈마. 아무리 괴물이다 하나 이렇게 떨고 있다.”
어느새 다가온 검황 진천이 수라혈마를 가로막았다.
반면에 주첨기는 가만히 있었다.
죽이려고 달려든 것은 바로 저 괴물들이다.
그렇다고 팔짱을 끼고 바라보고 있는 주첨기는 수라혈마의 편도, 진천의 편도 아니었다. 굳이 따지라면 수라혈마쪽으로 마음이 기운다.
“취이이익. 제발…살려줘라. 인간…”
병든 병아리도 이렇게 떨진 않을 것이다.
“그래. 살려주지. 키키.”
수라혈마가 말했다.
예상치 못한일이라 주첨기와 진천의 얼굴이 의아하게 변하였다. 주첨기가 뒤에서 천천히 걸어왔다.
“괴물아. 사람의 말을 하는구나.”
“취이익. 인간의 말… 배웠다… 편하다. 제발 살려줘라. 취이이익”
이렇게 생긴 괴물은 처음 본다.
사람의 얼굴한 거미! 인면지주가 있다는 소리는 들었어도 돼지의 얼굴을 하고 사람의 몸을 가진 괴물이 있다는 소리는 듣지 못했다.
더군다나 한 무더기였다.
괴물들 전부 수라혈마의 권에 적중당해 주위에 쓰레기처럼 쓰러져 있다.
“스승님. 무엇을 하는 중입니까?”
수라혈마는 쓰러져 고통스러워하고 있는 오크들을 질질 끌었다. 한곳에 모으니 검은 오크부터 살려달라고 애원한다. 수라혈마가 군침을 삼켰다.
“이 사부가 어째서 이 괴물들을 살려줬겠냐? 킬킬… 괴물들의 내단은 몸에 그리도 좋단다. 크크크”
설마 이 괴물들의 내단을?
아니나 다를까.
진혈살단의 고수들이 수라혈마와 같은 표정으로 다가오고 있었다.
모두 입안에 가득 고인 침을 꿀꺾 삼켜댔다.
음흉하게 가늘게 떠진 눈.
오크들도 심상치 않다는 것을 느꼈다.
검은 오크가 울상으로 수라혈마를 올려다보았다.
“내..단이 뭐냐. 취이익.”
“거기.”
수라혈마가 몽둥이로 검은오크의 배를 가리켰다.
“낄낄. 산채로 그곳을 갈라내면 검은 혹 같은게 보이거든. 그게 내단이지. 네 덕분에 본좌가 오랜만에 몸보신좀 하겠다. 낄낄…”
“취이이익. 우리를… 취익. 먹는다?”
“그래. 그리 멍청하지 않은 괴물이야. 본좌가 괜히 너희들을 살려둔 게 아니야. 자고로 산채로 단전을 꺼내야지 그 신선도가 최고거든. 키키”
오크들의 얼굴은 절망적으로 변했다.
간혹 인간을 먹는 종족은 봤어도.
종족을 먹는 인간을 본적은 없다.
이자는 인간도 아니다.
오크들은 발버둥 쳤다.
수라혈마에게 적중 당한 곳에서 당장이라도 죽을 만큼 고통이 일었지만 안중에도 없었다. 오크들이 발악하며 울부짖자 주위는 괴성으로 가득 찼다.
주첨기가 눈살을 찌푸렸다.
“내단이라…”
검황 진천은 뒤로 물러났다.
유일하게 말리고 있던 인간이 물러서자 오크들은 더욱 미칠 것만 같았다.
“그냥 죽여라. 인간. 취익”
검은 오크는 간절했다.
웃기는 괴물들이다.
진혈살단!
사파무림인들의 음흉한 미소가 더욱 짙어졌다.
“제자야. 저 검은 돼지 놈이 이들의 대장 같으니 이놈의 내단을 네게 주겠다.”
“제발. 취익 죽여라. 취이이익”
“감사하게 거절하겠습니다. 스승님.”
주첨기는 어깨를 으쓱하였다.
“그럼 고맙고. 낄낄… 아참! 진천. 이놈들은 내가 잡은 것이니까 너는 절대 안준다. 키키키”
“…”
뒤로 몸을 돌린 진천.
그의 얼굴에 어두운 빛이 스치고 지나갔다.
그는 오크들을 흘깃 쳐다보았다.
쩝.
괜스레 입맛을 다셔본다.
“제발. 죽여라. 인간. 취이이이익”
오크들의 간절한 울음소리가 평온한 초원에 퍼져나갔다.
수라혈마는 기분이 나빴다.
괴물들이 약할 때 부터 눈치를 챘어야 했다.
“제기랄. 돼지 놈들…”
괴물들에게는 내단이 없었다. 그래도 검은 돼지 괴물에게는 있을 줄 알았는데, 그마저 기대를 깨트렸다. 화가나 잘근잘근 씹은 괴물들의 살덩어리도 맛이 텁텁하였다.
입이 더러워졌다. 손도 더러워졌다. 기분이 잡쳤다.
손을 닦으며 툴툴거리는 수라혈마.
주첨기는 그를 바라보다가 사백 명의 고수들을 향해 몸을 돌렸다.
“모두들 괜찮나?”
주첨기가 내력을 담아 말했다.
“예. 전하.”
일제히 대답하였다.
일류 고수들의 우렁찬 소리가 합쳐졌다.
각기 천지를 울리는 소리!
한 명 한 명 대단한 고수들이라 그들의 소리는 대단하였다. 주첨기가 잠시 시간을 주자 모두 제자리에 앉았다. 가부좌를 틀고 손을 모았다.
그 안개가 자욱했던 곳에서 무슨 일이 벌어진지는 모르지만.
무림인들에게 빠트려서 안되는 게 바로 운기조식이다.
주첨기는 주위를 둘러보았다.
사천에서 볼 수 없는 나무들이 보였다. 무엇보다도 이 강렬한 태양빛이 계속 마음에 걸렸다.
지금은 늦가을.
곧 겨울이 돌아오는데.
이 뜨거운 햇빛은 무엇이란 말인가.
그리고 방금 전의 돼지 괴물들은?
뭔가가 잘못되고 있는 게 분명하다.
“스승님. 이곳은 무산이 아닙니다.”
주첨기가 확신을 가지고 진천에게 말하였다. 진천도 그리 생각 하고 있었다.
무산에는 이런 넓은 초원이 없다.
그리고 무산이 아니란 것을 확신할 수 있는 건 기후와 초원의 풀들이다. 황량한 무산에서는 이렇게 많은 풀들이 자랄 수 없다.
또 이상한 것은 풀들이 한 번도 보지 못한 종류라는 것이다.
“전하의 말씀이 맞는 것 같습니다.”
‘안개 속으로 빨려 들어가면서 무슨 일이 벌어진 것 같습니다. 그리고 이곳은 무산도 아니거니와 사천도 아닙니다.
“무산이라고 하기엔 산천초목이 푸르고, 사천이라고 하기엔 날씨가 더우니….쯧.”
진천이 혀를 찼다.
으음…
쓰러져 있던 환관 혜공이 그제서야 일어났다.
“일어났습니까. 혜공.”
안개를 헤치며 전진하다 알 수 없는 힘에 빨려들어 갔었다. 그 힘 때문에 정신을 차리고 보니.
높은 산은 사라지고 넓은 초원이 눈앞에 펼쳐져 있었다.
이렇게 황당할 데가.
“예. 전하. 헌데 이곳은 어디입니까요?”
“사천도 무산도 아닙니다. 이제 알아볼 것입니다.”
사천도 무산도 아니라니.
어찌된 일일까?
잠시 뒤.
사백여 명의 고수들은 운기조식을 마쳤다. 운기조식을 마친 그들은 각자가 놀란 눈이었다. 서로가 서로를 향해 고개를 끄덕였다. 모두 같은 생각이 든 모양이다.
대기에 퍼져 있는 기운!
그것의 양이 이상하다.
지나칠 정도로 풍부했다.
전과 비교하자면 서너 배 이상이다.
확실히. 운기조식 할 때 내공의 증가도 서너 배 이상 증진 되었다. 이것은 두 손 들고 반가워야 할 일이다.
허나 이상한 것만은 틀림없다.
“아무래도 이 근방을 수색해봐야 할 것 같습니다. 근처에 사는 백성을 데려오면 더 좋습니다. 사람에게 물어봐야 빠른 법이니까요. 저 괴물들도 왠지 마음에 걸리고 말입니다.”
“돼지 새끼…”
수라혈마가 단번에 얼굴을 찌푸렸다.
“남쪽과 동쪽은 진혈살단이 맡지.”
“그럼 북쪽과 서쪽은 십문정도가 맞겠습니다. 전하”
수라혈마와 진천이 대답했다.
곧 수라혈마는 진혈살단의 고수들에게.
진천은 십문정도의 고수들에게 명령을 하달했다.
“전하께서 근처를 수색하라는 명을 내리셨다. 이인 일조가 되어 북쪽과 남쪽을 수색하라!”
“들었지? 낄낄. 우리역시 마찬가지다. 너희들은 본교의 고수 중에 고수들이다. 본좌는 너희들이 정파나부랭이들 보다 신속하고 정확하게 수색할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그렇지 않느냐? 낄낄낄…”
“그렇습니다. 교주님! 정파 나부랭이들과 저희들을 비교하지 마십시오.”
진혈살단의 고수들이 일제히 외쳤다.
뭐?
정파 나부랭이?
정파 고수들의 눈에 쌍심지가 켜졌다.
“지존! 사파놈들이 하는 말을 들으셨습니까?”
그들의 기세는 방금이라도 달려들 듯 하다.
누구 하나라도 기합을 지르면 바로 대단위 전투가 펼쳐질 것이다.
보다 못한 주첨기가 혀를 차며 앞으로 나왔다.
이들을 이끌 생각을 하니 막막하다.
400명의 고수.
반은 정파의 고수며 반은 사파의 고수다.
물과 기름 겪인 그들!
운기조식을 할 때부터 두 패로 나눠졌었다.
중간에 선만 안 그었지, 선을 그은 것보다 확실히 구분되어 떨어져 있었다.
앞으로 그들은 서로 협력하며 자신을 도와야 한다.
그 모든 것이 자신에 달려 있으리라.
주첨기는 모두를 바라보았다.
“너희들은 앞으로 친인척보다 더욱 가까운 사이가 되어 나를 도와야 할 것이다. 헌데 벌써부터 서로를 배척한다니 말이 되는가?”
부릅떠진 눈!
갑자기 태풍이 몰아쳤다. 그 발원지는 주첨기였다. 모두의 머리칼이 심하게 나부꼈다.
기운을 한 몸에 받는 고수들은 입안에 가득 고인 침을 꿀꺾 삼켰다. 결국 아무도 주첨기와 눈을 마주치지 못했다. 성이 난 주첨기의 표정에서 개국(開國)을 선포한 선황제 주원장의 모습이 엿보였다.
“모두 한 가족이다. 그것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
어떻게 사파놈들과 한 가족이 될 수 있겠는가
어떻게 정파나부랭이들과 한 가족이 될 수 있겠는가.
그것이야 말로 수치다.
정사파의 고수들은 하고 싶은 말이 목구멍까지 올라왔다.
그러나 성을 내고 있는 황자의 앞에서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예. 전하!”
귀청이 떨어질 듯한 음향이 울렸다.
주첨기가 손을 내저었다.
정사파 고수는 서로를 한 번 씩 노려본 후 몸을 날렸다. 사방으로 폭죽이 터진 듯 산개한다. 그리고 눈 깜짝 할 사이에 모두가 사라졌다. 하나같이 무서운 기세다.
아스라이 초원의 지평선 끝에 그들의 모습이 보였다. 결국 시야에서 마저 사라져버렸다.
“정말 무산신녀님께서 벌을 내리신 것이 아닐까요.”
환관 혜공은 아직 깨지 않은 만소자를 바라보며 물었다.
자식 같은 만소자가 깨어나지 않으니 매우 걱정되는 모양이다.
무산신녀의 벌?
주첨기는 피식 웃었다.
“아닙니다. 혜공.”
짧은 대답이다.
하지만 혜공은 이상스러우리만큼 안심되었다.
흠.
주첨기가 수풀 쪽으로 눈을 돌렸다.
눈을 떴을 때부터 느낀 것이다.
그쪽에서 상당한 기운이 풍기고 있었다.
기운이라기보다는 영묘한 느낌이다.
“무슨 일입니까. 전하.”
진천이 물었다.
“저쪽에 뭔가가 있습니다. 느껴지지 않습니까?”
주첨기가 손가락으로 수풀을 가리켰다.
“전하. 신은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습니다.”
“아닙니다. 분명히 뭔가가 있습니다.”
주첨기는 그쪽으로 천천히 걸어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