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mortal martial artist RAW novel - Chapter 36
제6화 최후의 접전
수라혈마는 한숨을 내쉬었다. 만신창이가 된 혈권을 보면 한숨밖에 안 나온다. 부상 입은 고수들도 상당했다.
더군다나 승전보를 가지고 가는 것이 아니라 수만 명의 피난민들을 떠안게 되었다.
“으으…… 그 새파랗게 젊은 놈이 본좌를 뭐로 보고.”
도시 가울의 백성들을 이끌고 신명대국까지 가는 중이었다. 그 젊은 놈이 어찌나 말을 잘하던지 결국 넘어가 버렸다.
백성이 적은 신명대국에 피난민이 몰린다면 이득이 된다나?
그 말에 귀가 얇아져 이미 신명대국엔 300만에 육박하는 피난민이 몰려 있다는 것을 잊어버렸다.
“두고 보자. 클……!”
결국 페국을 거쳐 로스엔에 도착했다.
페국과 로스엔은 대륙의 재앙 속에 혼란스러운 분위기였다. 더군다나 새롭게 떠오르던 대국, 신명대국과 기존의 대제국 에드먼이 대패했다는 소식은 모두를 비통하게 만들었다.
로스엔의 상황은 좋지 못했다. 연신 밀려드는 스켈레톤 때문에 병력은 자꾸만 소진되어가고 있었다.
국경이 무너지는 건 시간문제다.
아스틴 공작은 신명대국 검사들이 지나쳐간다는 소식을 듣고 부랴부랴 달려왔다.
경악했다. 빨간색의 데이모스가 보였기 때문이다.
결국 신명대국에서도 데이모스를 만든 모양이다. 그런데 선명하게 박힌 수십 개의 채찍자국은 무엇이란 말인가?
의구심을 떨쳐 버릴 수 없었다.
“수라혈마 공작님.”
로스엔의 아스틴 공작이 혈권 앞으로 뛰어들었다.
이윽고 수라혈마가 혈권에서 나왔다.
수라혈마는 뒤로 손짓했다. 퇴괴평온당과 피난민들의 행렬이 멈추었다.
“낄낄, 감히 누구기에 본좌의 길을 막느냐?”
“로스엔의 아스틴 공작입니다.”
아스틴 공작은 치욕감을 감추었다. 로스엔이 신명대국의 속국으로 전락하지만 않았어도 이렇게 무례한 노검사에게 존대 따위는 하지 않아도 된다.
“무슨 일인가? 본좌는 본국으로 돌아가느라 매우 바쁘니라. 낄낄낄!”
“시급한 때이니만큼 바로 말하겠습니다. 로스엔의 국경이 언제 스켈레톤에게 무너질지 모르는 위급한 상황입니다. 군주국인 신명대국에 이렇게 간청합니다. 부디 로스엔을 도와주십시오.”
수라혈마는 한숨을 내쉬었다.
패전길에 도와 달라니!
“본좌가 본국에 들러 꼭 폐하께 청하겠다.”
“한시가 급합니다.”
“본좌가 더 급하다!”
수라혈마는 아스틴 공작에게 괜한 화풀이를 했다. 무색해진 아스틴 공작이 고개를 숙였다.
행렬은 계속되었다. 여러 날이 지나고 결국 신명대국에 들어섰다.
수라혈마를 따라왔던 피난민들은 크게 놀랐다. 율리안의 백성들이 모두 신명대국에 몰린 듯하다.
간이천막이 끝없이 지어져 있었다. 신명대국에서 임시로 지은 간이천막의 수가 수십만에 달하니 당연한 것이다.
곳곳에서 연기가 피어올랐다. 구수한 냄새가 풍겨왔다. 간이천막뿐만 아니라 식사까지 신명대국에서 지원하고 있었다.
피난민들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아……!”
꼬르르륵
굶주린 배에서 우렁찬 소리가 났다.
혈권을 발견한 정파고수들이 달려왔다. 정파고수들이 혈권을 향해 포권했다.
모두 대패소식은 이미 들어서 알고 있었다. 전신의 모습으로 나간 혈권은 만신창이가 되어 돌아왔다.
수라혈마가 혈권에서 나왔다. 그사이 10년은 더 나이 늙은 듯했다.
“오셨습니까?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대장군님.”
수라혈마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이며 그들을 지나쳤다. 정파고수들은 수라혈마가 이끌고 온 수만 명의 피난민들을 통솔하기 시작했다.
수라혈마는 황성문 앞까지 걸어갔다. 황성문 앞에는 주첨기가 진천과 헤공 그리고 만소자와 정파고수들을 대동하고 수라혈마를 기다리고 있었다.
수라혈마는 주첨기를 보았다.
둘의 눈빛이 마주쳤다.
수라혈마는 고개를 들 수가 없었다. 주첨기 앞으로 다가가 무릎을 꿇었다.
“스승님……!”
“죄송합니다, 폐하.”
수라혈마에게서 진솔함이 묻어나왔다. 주첨기는 물론이고 진천과 혜공, 정파고수들까지 당황했다.
“대패한 죄, 군법에 따라 엄벌을 받겠습니다.”
주첨기는 담담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대패한 대장수에게 엄벌을 내리도록 군법에 규정되어 있다.
“전사자가 없으니 대패라고 하기엔 너무 말이 과하게 되었습니다.”
“아닙니다, 폐하.”
수라혈마는 쿵 소리가 날 만큼 바닥에 머리를 처박았다.
수라혈마의 이마에서 피가 흘렀다. 주첨기가 소매로 수라혈마의 피를 훔치며 입을 열었다.
“전사자가 없으니 대패라고 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패한 것은 사실, 대장수로서 책임이 있으니 스승님께서는 이에 자중하시어 10일 동안 금식하십시오.”
“10일 금식은…….”
대패한 것에 비하면 너무나 약소한 형벌이다. 아니, 금식은 형벌이라고 할 수도 없다.
주첨기는 그 말을 끝으로 수라혈마를 일으켜 세웠다.
“수라혈마 스승님께서 패하실 정도라면 누군들 이기겠습니까? 너무 상심하지 마십시오.”
주첨기의 전음이 들렸다.
“폐하……!”
“이번 패배를 만회할 기회를 드리겠습니다. 스승님께선 노커 젠달리프를 만나 데이모스를 고치도록 청하십시오. 그 후 퇴괴평온당원 100명을 이끌고 로스엔으로 향하십시오. 로스엔의 국경이 무너지면 본국의 후방이 위험해집니다.”
아!
수라혈마는 고개를 번쩍 들었다.
“그렇잖아도 로스엔에서 응원군을 청했습니다, 폐하!”
“그렇습니까?”
주첨기는 미소 지었다.
“황명을 받들겠습니다, 폐하. 만세, 만세, 만만세!”
“일어나십시오.”
수라혈마는 주먹을 불끈 쥐었다. 이번에야말로 기필코 황명을 받든다. 그리고 대흑마괴 발록도 가만두지 않겠다.
수라혈마의 눈이 화염으로 타올랐다.
“진천 스승님.”
“예, 폐하.”
“본국과 에드먼 제국까지 율리안에서 밀려난 이상 다시 율리안을 침공한다는 것은 어불성설입니다. 천지시당의 보고에 의하면 율리안의 전 지역이 망자들에 의해 점령되기 일보직전이라고 합니다. 대흑마괴 발록이 율리안 점령이 끝난 후 언제 본국을 침공해올지 모릅니다. 지금과 달리 막대한 망자들을 이끌고 말입니다. 이제 국경을 더욱 확고히 지켜야 합니다. 이 수많은 피난민들과 본국의 백성들을 망자들에게서 지켜내야 합니다. 진천 스승님께서는 데이모스 청검에 탑승하여 온전한 사파고수들을 이끌고 국경수비대와 합류하십시오. 이제부터 본국은 국경을 확고히 지키는 데 총력을 기울일 것입니다.”
즉, 율리안을 포기하고 수비에 전력을 다하겠다는 말이다.
“만세, 만세, 만만세!”
진천이 외쳤고,
“만세, 만세, 만만세!”
혜공과 만소자도 외쳤다.
만세물결은 점점 멀리까지 퍼져 나갔다.
뜻도 모르는 수백만 피난민들이 황성을 향해 절했다.
하늘에 짙게 낀 먹구름은 퍼져 나가는 스켈레톤과 같은 속도로 율리안 전 지역을 덮쳤다.
비가 억수같이 쏟아졌다. 곳곳에 응어리져 있던 피들이 빗물 속에 녹아들었다.
피는 강물이 되어 흘렀다. 페국으로 향했다. 페국에서는 율리안에서 흘러 들어오는 이 피의 강을 ‘원혼(?魂)의 눈물’이라고 했다.
“이봐, 잠이 와?”
페국의 국경수비대원 샴이 동료의 어깨를 툭툭 쳤다. 동료 경비병은 깊은 잠에 빠져 있었다.
“후우!”
깨워도 일어나지 않는다.
샴은 그 자리에 주저앉았다. 언제 마물들이 쳐들어올지 모르는 상황. 며칠 밤을 샜는지 모르겠다. 흐리멍덩해진 눈. 초점이 흔들거렸다.
체력의 한계다.
원혼의 눈물이 흘러들어온 이후로 잠을 자지 못했다. 결국 4일 동안이나 잠을 자지 못했다는 것이다.
샴은 자고 싶었다. 그런데 흘러내려오는 원혼의 눈물을 보면 도저히 불안해서 잠을 이룰 수 없었다. 언제 마물들이 쳐들어와 또 다른 원혼의 눈물을 만들어낼지 모르는 일이다.
“이봐.”
“으음…….”
샴은 억지로 꾸벅꾸벅 졸고 있는 동료를 깨웠다. 동료는 반쯤 충혈된 눈을 비비며 일어났다.
파이크를 움켜잡았다. 슬쩍 성 밖을 보았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 유난히 붉은 피의 강만 정적 속에서 흐르고 있을 뿐이다.
“놀랐잖아.”
동료가 말했다.
“교대야. 이젠 내가 자겠어.”
“샴, 넌 잠이 오지도 않잖아.”
샴은 고개를 저었다. 초점이 흐려져 자꾸만 사물이 세 개가 되었다 네 개가 되었다. 두 눈은 뻘겋게 충혈되어 당장이라도 잠에 곯아떨어질 듯 보이지만…….
“넌 너무 걱정이 많은 게 탈이야. 아직 스켈레톤들이 도착하려면 멀었어.”
“그럼 저 강은 뭐야.”
샴은 원혼의 눈물을 가리켰다.
“먼 상류에서부터 흘러나오는 것이지. 시체산에서…… 큭! 하지만 율리안은 큰 나라야. 적어도 3일이야. 이틀 후 우리는 후방 군대와 자리를 바꿀 거라는 소문이 있어. 소문대로라면 걱정 없어. 스켈레톤들은 빨라야 3일이니까. 그들이 도착했을 때 우린 없어. 그러니 너무 걱정 마, 샴. 넌 다 좋은데 소심한 그 성격이 문제야.”
“소심한 게 아니야. 삶과 죽음의 문제야.”
“그게 그거지.”
“그런데 율리안이 망했으니 본국은 독립한 것인가?”
수백 년 동안 율리안의 속국으로 있었다. 율리안의 콧대 높은 신관들의 비위를 수백 년 동안 봐 왔다는 소리이기도 했다.
“독립? 독립이라…….”
동료는 팔베개를 하고 누워버렸다. 심드렁해진 표정으로 입꼬리를 씰룩였다.
“이거 발록에게 절이라도 해야 하는 거 아냐? 우리 페국을 율리안에게서 독립시켜줘서 고맙다고.”
샴이 미간을 찌푸렸다.
“우리가 후방으로 빠지든 안 빠지든 마물들이 침공해오면 본국은 망해. 페국에는 율리안과 마찬가지로 원혼의 눈물이 흐르겠지. 수백만 명의 피로 이루어진…….”
“으으, 하여튼 소심하기는. 끔찍하니까 집어치워. 난 이만 자련다.”
동료가 눈을 감았다.
샴은 그런 동료가 부러웠다. 코앞에 마물들을 두고선 아무 일 없다는 듯 자고 있다.
율리안 쪽에서 먹구름이 밀려들고 있었다. 샴은 심장이 밖으로 뛰쳐나올 것만 같았다. 부들거리는 어깨로 동료의 몸을 툭툭 건드렸다.
“이, 이봐!”
“나 잔다니까.”
동료가 신경질적으로 외쳤다.
“이봐. 저, 저기…….”
샴은 혹시나 잘못 본 게 아닌가 하는 마음에 눈을 비볐다.
틀림없다. 율리안 쪽에서 걸어오고 있는 존재!
그 수를 셀 수가 없다. 한 손엔 시미타를 들었고, 얼굴은 육신이 썩고 백골만 남아 드드득거린다.
“이, 이봐!”
동료는 대답하지 않았다.
“스켈레톤…… 스켈레톤이 왔어.”
샴은 공포에 떨며 속삭였다.
“웃기지 마. 나 정말 잘 테니까 깨우지 좀 마라.”
“정말이야.”
덜덜덜
샴의 이빨 부딪치는 소리가 선명하게 들렸다.
동료는 불안한 마음에 눈을 슬그머니 떴다. 하늘은 어두웠다. 잠깐 사이에 먹구름이 낀 것이다.
성벽 너머.
죽음과 공포의 군단이 진군하고 있었다.
바로 페국을 향해!
“아아……!”
동료의 얼굴이 부르르 떨렸다. 샴은 동료의 어깨를 잡았다.
“이봐, 진정해.”
“스켈레톤이 왔어. 이젠 다 죽었어. 왜 이렇게 빨리 왔지? 지금 오면 안 돼. 저리 가라고.”
스켈레톤의 모습이 맺힌 눈동자가 심하게 흔들거렸다. 샴은 동료의 뺨에 주먹을 적중시켰다.
퍽
“정신 차려!”
“크윽! 도망치자, 샴.”
“헛소리 마. 도망치려고 잠만 자둔 거였어?”
샴은 바로 옆에 놓여 있는 고둥을 잡았다. 적군의 침입을 알리는 고둥이다.
숨을 크게 들이켠 후 고둥을 불었다.
부우―!
고둥소리가 울렸다.
“스켈레톤이다!”
샴은 성벽 아래를 향해 외쳤다.
성안은 일대 혼란스러워졌다. 병사들이 일사불란하게 움직였다. 궁수들은 연습한 대로 성벽으로 올라왔고, 보병과 기마단은 성문 뒤쪽에서 언제든 출격할 준비를 했다.
“너무 빨리 왔어. 벌써 율리안이 망해 버린 건가.”
샴은 신음을 삼켰다.
“율리안은…….”
스켈레톤들이 율리안의 땅을 건너 국경을 침범했다는 것은 곧! 율리안은 마물들의 점령 하에 놓인 마국(魔國)이 되었다는 뜻이다.
신성대국 율리안이란 나라는 사라졌다.
마신에게 속아 악마 발록을 강림시켜 스스로 자멸한 나라!
에드먼과 관련해 두 가지 소식이 있다.
하나는 좋은 소식이고 하나는 그렇지 않은 소식이다.
이럴 때면 대다수의 사람들이 그렇지 않은 소식부터 듣는다.
그렇지 않은 소식?
거두절미하고 에드먼의 10만 대군이 대패했다. 살아서 돌아온 자는 겨우 절반뿐이다.
제논 공작은 킹스켈레톤과의 대결에서 패했고, 신명대국의 공작은 발록과의 대결에서 패했다.
양국을 비교하려는 것이 아니다. 인간과 마물의 전쟁 속에서 그런 건 부질없는 짓이다. 다만 양국을 대표하는 두 검사가 맥없이 무너졌다는 사실에 충격이 컸다.
좋은 소식?
율리안으로 수련하러 갔던 크라우프 백작의 장남 판 크라우프가 2만 명의 기사와 병사를 이끌고 돌아왔다.
수련기사에서 어엿한 기사가 된 그에게 황제 에드먼은 백갑기사단의 칭호를 주었다.
“잘됐군.”
“예, 폐하. 후에 정리된 후 율리안을 점령할 대의명분이 생겼습니다. 뜻하지 않은 이득입니다. 율리안을 수호했던 성기사단이 통째로 왔습니다. 그들을 앞장세워 율리안을 점령한다면 이보다 더한 대의명분은 없습니다.”
“크라우프 백작의 장남이 큰일을 해냈군, 이제이.”
“그렇습니다, 폐하.”
대마법사 이제이가 공손히 대답했다.
“이제 신명국과 동맹을 맺어 국경을 방비해야 합니다. 신명대국과 힘을 합치지 않는다면 힘들어질 것입니다. 하지만 힘을 합친 후 시간이 지남에 따라 전열이 가다듬어지고 대군의 훈련도 끝날 것입니다. 그때 수십만 대군과 함께 데이모스를 모두 출격시켜 속전속결로 마물을 퇴치하고 율리안을 점령하는 일만 남았습니다.”
“그렇군. 하하핫!”
에드먼은 호탕하게 웃었다.
똑똑
노크소리.
“폐하, 신명국의 매화일검 백작이옵니다.”
밖에서 대신의 목소리가 들렸다.
신명국에서 매화일검 백작이 온 것은 여러 날이 지났다. 그런데도 황제 에드먼은 아직까지 동맹협약을 미루고 있었다.
말도 안 되는 조건을 내건 것이다.
“들여보내라.”
때마침 들어왔다.
문이 열렸다. 건장하고 정순한 냄새가 물씬 풍기는 한 청년이 들어왔다.
청년은 깊숙이 허리를 숙였다.
예의가 있다. 뚜렷한 이목구비와 부리부리한 검은 눈을 지니고 있었다.
매화일검은 대마법사 이제이가 가리킨 곳에 앉았다.
“매화일검 백작, 동맹 건으로 찾아온 것이 아닌가? 짐이 건 조건을 받아들이겠다는 것인가?”
황제 에드먼은 턱을 괴었다. 그는 마물이 퇴치될 때까지의 동맹에 대한 조건으로 100만 골드를 요구했다.
“폐하, 동맹문제로 다시 찾아뵙게 되었습니다.”
“받아들이겠다는 것인가?”
그렇다. 100만 골드를 요구해도 신명국에서는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 그렇지 않고서야 그 넓은 땅을 소수의 검사들로 방비한다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아무리 검사들의 실력이 뛰어나다 할지라도 말이다.
“아닙니다. 송구스럽지만 받아들일 수가 없습니다.”
“그런가? 아쉽군.”
에드먼은 사뭇 태연한 척했다.
“대신 다른 조건을 내걸겠습니다.”
“재미있군. 무엇인가?”
“동맹이 이루어지기 위해서는 에드먼 제국에서 본국에 100만 골드를 건네셔야 합니다.”
황제 에드먼의 미간이 접혔다.
“무슨 말입니까? 신명국에서는 홀로 마물들에 대항할 수 있다고 보는 것입니까? 사신으로 온 일국의 백작이 그런 억지스러운 조건을 내건단 말입니까?”
대마법사 이제이는 매화일검의 표정을 보았다.
희한하다. 100만 골드를 요구하면서 자신감에 가득 차 있었다.
“이상하군요. 100만 골드를 요구했던 건 에드먼 제국이었습니다. 에드먼 제국이야말로 홀로 마물들에 대항할 수 있다고 생각하시는 것 같습니다. 현재 대흑마괴 발록과 흑골 킹스켈레톤이 율리안을 점령했습니다. 그리고 지금 그들은…….”
똑똑
노크소리가 다급하게 울렸다. 매화일검의 말이 끊겼다.
황실 안으로 들어온 대신의 얼굴이 매우 상기되어 있었다. 대신은 숨을 헐떡였다.
“폐하, 큰일났사옵니다!”
대신은 무릎을 꿇으며 말했다.
“무슨 일인가?”
“스켈레톤 군단이 쳐들어왔습니다.”
“국경해선 빈번한 일이 아니더냐.”
“아니옵니다, 폐하!”
아!
황제 에드먼은 갑자기 드는 생각이 있어 매화일검을 슬쩍 보았다.
그와 눈이 마주친 매화일검.
씨익
매화일검의 입꼬리가 자연스럽게 올라갔다.
그의 입술이 움직였다.
“100만 골드를 요구하는 건 너무나 억지스러운 것이지요. 처음부터 10만 골드로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큰일이군.”
주첨기는 계주의 보고를 받았다.
율리안을 점령한 망자들이 다음 목표를 에드먼으로 정했다. 킹스켈레톤이 이끄는 망자들이 에드먼의 국경으로 몰려들고 있다는 보고다.
“본국의 국경은 어떤가?”
“아직까진 평소와 같습니다. 에드먼의 여파로 에드먼과 접한 인근 국경에는 조금 더 밀려들고 있을 뿐입니다.”
“발록은 보이지 않았는가?”
멀찍이서 한번 본 이후로 잊혀지지 않는다. 수라혈마 스승님이 탄 데이모스조차 상대가 되지 못할 만큼 강했다.
“직접 전방에 나서지는 않고 먼 곳에서 망자들을 지휘하고 있었습니다.”
계주는 직접 보고 온 바를 사실대로 말했다. 그리고 품속에서 하나의 서신을 꺼냈다. 황룡패의 인으로 봉인되어 있다.
매화일검이 보낸 것이었다. 서신에는 동맹협약서까지 동봉되어 있었다.
주첨기는 협약서에 에드먼 제국이 신명대국에 10만 골드를 주기로 되어 있는 것을 보고 미소 지었다.
“역시 매화일검이야.”
10만 골드냐 100만 골드냐가 중요한 게 아니다. 우선은 에드먼 제국과의 기 싸움에서 이긴 것이다.
또한 그만큼 에드먼 제국은 다급하다는 것을 뜻했다.
“결국 에드먼 제국에서 응원군을 요청했군. 혜공께서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혜공의 외모는 이전과 달라져 있었다. 이마의 주름살이 없어지고 축 늘어졌던 피부들이 탄력을 되찾았다.
다만 나이를 속일 수 없는 것은 아직도 간간히 보이는 눈가의 주름이었다. 그래도 확실히 주첨기가 전해 주었던 약을 먹기 전 보다는 20년은 젊어 보였다.
“지금 대륙의 모든 나라들은 한쪽이 무너지면 다른 쪽들까지 모조리 무너지는 공생(共生)의 관계입니다요, 폐하.”
“혜공의 말이 옳습니다.”
주첨기는 진천 대장군을 불러들였다.
“스승님.”
“예, 폐하.”
“지금 에드먼에 흑골 킹스켈레톤과 대흑마괴 발록이 쳐들어왔다고 합니다. 스승님께서 가셔서 흑골 킹스켈레톤을 퇴치해 주십시오. 그 요마만 없어지면 남은 수백만 망자들도 사라지게 될 것입니다.”
“예!”
진천이 당차게 포권했다.
“청검을 장비하고 정파고수 100을 이끌고 가십시오.”
“폐하, 그리 하오면 본국엔 다 합쳐 200명의 고수밖에 남지 않습니다. 또한 신과 수라혈마도 본국에 없지 않습니까. 통촉하여 주시옵소서, 폐하!”
“괜찮습니다, 스승님. 이곳에는 혜공도 있고 그리고 아직 100이나 되는 고수가 있습니다. 그리고 설령도 있지요.”
[우끼!]고개를 빼꼼히 내민 설령이 어깨를 들썩였다.
“폐하……!”
“진천 스승님, 주군으로서 명입니다.”
“예, 폐하. 황명을 받들겠나이다.”
“스승님.”
“예…….”
“발록을 조심하셔야 합니다.”
진천은 정파고수 50여 명과 함께 에드먼 제국으로 향했다.
쿵 쿵
개선장군처럼 청검의 걸음새는 당당했다.
국경의 치열한 대접전!
그 속에서 제논 공작과 그의 아들 제인스 크리스틴은 제이모스에 탑승하고 있었다. 칠흑같이 어두운 두 기의 흑갑은 대단한 활약을 하고 있었다.
흡사 또 다른 두 마리의 발록이 강림하여 세상을 파괴하는 듯했다. 그 대상이 세상이 아니라 스켈레톤이라는 점에서 다르다.
“크으……!”
국경에는 두 기의 데이모스뿐만 아니라 25만 명에 달하는 대군까지 있었다.
6만 기병, 12만 보병, 6만 궁병 그리고 마법사들…… 그리고 100만을 훌쩍 뛰어넘는 스켈레톤.
그러나 스켈레톤의 수가 생각보다 적다.
대군과 대군이 격돌했다.
천하가 울렸다.
“발록과 킹스켈레톤을 죽이는 게 우선이다.”
제논 공작이 아들에게 말했다.
발록과 킹스켈레톤은 맨 끝에서 움직이지 않았다. 스켈레톤들과 에드먼 병사들의 전투를 보며 희희낙락한 표정들이다.
“킹스켈레톤! 다시 한 번 이 제논과 겨뤄보자!”
분노한 제논이 크게 외쳤다.
그래도 발록과 킹스켈레톤은 움직이지 않았다.
하는 수 없다. 발록과 킹스켈레톤이 있는 곳까지 뚫고 지나갈 수밖에.
“가자, 아들아.”
“예, 아버님.”
두 데이모스는 미친 듯이 돌진을 감행했다.
“아버님, 이대로는 위험합니다. 진형에서 너무 많이 떨어졌습니다.”
아들의 말대로였다.
스켈레톤들을 짓밟으며 나아가는 두 데이모스는 에드먼 진형에서 한참이나 떨어졌다.
“저 두 악마를 처치하지 못하면 승전할 수 없다. 이는 곧 대륙이 마신의 손아귀에 들어가는 것이다.”
“아버님, 하는 수 없습니다.”
발록과 킹스켈레톤은 너무나 떨어져 있었다. 죽어도 다시 부활하는 스켈레톤들을 앞세워 야금야금 제국의 군사들을 집어삼킬 생각이다.
“아버님, 진으로 돌아가 계책을 강구해야 합니다. 이대로는 전력의 손실만 있을 뿐입니다.”
“그러자.”
어쩌면 발록이 직접 안 나서는 게 다행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발록의 위력은 그때 보았다.
그랜드마스터인 수라혈마 공작이 탄 데이모스도 손쉽게 무너뜨렸던 발록이 아니던가?
자신과 아들이 합세한다고 하여 이길 수 있으리라는 보장은 없다.
그때였다.
“아버님! 뒤를 보십시오.”
제인스가 뒤를 가리켰다.
그가 가리킨 방향 끝에는 한 기의 데이모스가 서 있었다.
에드먼 제국의 문장이 없다. 더군다나 폭포수를 연상케 하는 새파란 기체였다.
청색의 데이모스 주위로 검기를 내뿜고 있는 신명대국의 검사들이 보였다.
제논은 바로 알아챘다.
“신명국의 데이모스다!”
수십 명의 소드마스터와 함께 신명국의 데이모스가 응원군으로 도착했지만 그리 좋지만은 않았다.
이로써 확인되었다. 신명국은 최소 두 기 이상의 데이모스를 가지고 있다. 탑승자는 그랜드마스터급이다.
기체 또한 에드먼의 기술을 능가하는 듯하다. 당장은 이득일지 몰라도 대전 이후가 문제다.
“안녕하시오.”
청색의 데이모스에서 진천의 목소리가 울렸다.
귀에 익은 목소리.
신명대국의 또 다른 공작이다.
“진천 공작, 응원군으로 온 것이오?”
제논은 스켈레톤들을 부수며 말했다.
“그렇소. 저것들이 바로 대흑마괴 발록과 흑골 킹스켈레톤이구려.”
청검이 멀리 보이는 발록과 킹스켈레톤을 가리켰다.
“맞소.”
“어째서 저것들을 퇴치하지 않는 것이오. 저들을 퇴치하지 않는 이상 망자들은 계속 살아나오. 황제폐하께서 말씀하셨소이다.”
“그걸 모르는 바가 아니오. 하지만 너무 멀리 떨어져 있소.”
“대사에는 머리로 생각하기 전에 행동으로 옮겨야 할 때가 있소. 지금이 바로 그때요. 고수들은 노부를 호위하라.”
진천은 발록을 향해 뛰었다. 정파고수들이 청검을 감싸고 접근하는 스켈레톤들을 단칼에 베었다.
제아무리 에드먼 제국에 병사들이 많다지만 돌파력만큼은 단 50여 명의 정파고수들을 따라오질 못했다.
신명대국의 검사들은 빠르다. 질풍 같다!
제인스는 신음을 삼켰다.
에드먼 병사들도 정파고수들의 돌파력에 할 말을 잃어버렸다.
“안 되오! 진천 공작! 수라혈마 공작도 발록에게 맥없이 당했단 말이오!”
제논 공작은 놀라서 뒤늦게 외쳤다.
그러나 청검은 멈추지 않았다. 질풍처럼 달려가 순식간에 발록과 킹스켈레톤 앞까지 도달했다.
‘이게 바로 그 악마……!’
진천은 위압감을 느꼈다. 데이모스에 필적하는 거대한 육체와 함께 두 손에는 화염의 채찍이 들려 있었다.
발록은 청검을 보고도 표정에 변화가 없었다.
진천은 멈추지 않고 외쳤다.
“노부가 대흑마괴를 상대할 터이니 너희들은 흑골을 없애라!”
“예, 대장군님!”
정파고수들이 일제히 대답했다.
궁신탄영의 수법으로 몸을 튕겼다. 킹스켈레톤을 향해 50여 명의 고수들이 일제히 날아들었다.
스르릉
청검도 거대한 검을 꺼냈다. 데이모스가 지니고 있는 기운과 내력을 끌어 모아 검강을 일으켰다. 검이 눈부신 푸른빛으로 발광했다.
그대로 발록을 향해 찔렀다.
“아……!”
제논과 그의 아들 제인스가 탄음을 토했다.
갑자기 터져 나온 빛이 세상을 파란색으로 물들였다. 일순간이지만 병사들과 스켈레톤의 움직임이 멎었다.
모든 것이 정지한 듯한 순간!
데이모스 청검의 검이 발록의 목을 찔렀다. 50명의 고수들이 날린 검기도 킹스켈레톤의 몸을 꿰뚫었다.
“헛!”
진천과 정파고수들은 바람이 새는 소리를 흘렸다.
발록과 킹스켈레톤의 몸이 흔들거렸다.
허상(虛想)이다!
진천은 믿어지지가 않아 다시 검으로 휘둘렀다.
“큭!”
베이는 느낌이 들지 않았다. 허공을 가르는 느낌이다.
그것은 킹스켈레톤도 마찬가지였다.
“이게 대체……?”
진천은 허탈하여 애꿎은 스켈레톤들을 짓밟았다.
제논과 제이슨의 데이모스가 급히 뒤쫓아 왔다.
“어떻게 된 일이오?”
제논과 제이슨은 눈앞의 발록과 킹스켈레톤을 보았다. 똑같이 검을 휘둘렀다.
실존하는 듯 보이지만 결국 허상이었다.
속았다!
그렇다면 진짜 발록과 킹스켈레톤은 어디 있단 말인가?
아!
제논이 크게 놀라며 청검을 보았다.
“큰일났소, 진천 공작.”
“아……!”
진천도 깨달았다. 이 대흑마괴와 킹스켈레톤이 노리고 있던 것은 에드먼 제국이 아니다.
진천은 등골이 서늘해졌다.
대흑마괴와 킹스켈레톤이 노리고 있는 건 병력이 많이 빈…… 바로 신명대국이다.
“모두 경공을 극성으로 운용하여라! 본국으로 돌아간다.”
신명대국이 위험하다.
진천은 입술을 질끈 깨물었다. 피가 흥건히 고일 정도로.
진천이 떠난 지 얼마 되지 않아 방각대사, 귀영살검, 와룡진, 천파편살 등 타국에 원조를 청하러 떠났던 네 후작이 같은 시기에 돌아왔다.
식량과 생필품을 실은 수레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었다.
엄청난 양의 식량들이다. 수레 행렬의 끝이 보이지 않는다.
“식량이 도착했다!”
“와아아아!”
신명대국의 백성들과 피난민들이 수레를 보고 환호성을 질렀다.
식량뿐만이 아니다. 옷이 쌓여 있었고, 생필품들이 이리저리 움직여 달그닥거렸다. 수레바퀴가 굴러가는 소리는 행복한 소리였다.
수레는 황성의 창고로 향했다. 창고 앞에 식량들을 차곡차곡 쌓았다. 식량으로 이루어진 여러 개의 대산이 만들어졌다.
막 네 후작이 황제 주첨기를 알현하러 가려고 할 때 주첨기가 먼저 창고로 다가왔다.
“폐하!”
네 후작은 깊이 허리를 숙였다.
“이것들이 네 나라에서 온 식량들인가?”
“예, 폐하. 이콘, 케이트, 드리안, 로스엔에서 상당량의 식량을 원조했습니다.”
주첨기는 식량을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식량의 산이라…… 많아 보이지만 300만의 백성들이 먹어야 할 식량이다. 남궁혁, 식량은 얼마나 되는가?”
주첨기가 물었다.
“300만의 백성이 반년은 지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폐하.”
신명대국의 재정을 맡고 있는 만보당의 당주 남궁혁이 대답했다.
“곧 황하상단에서 매입한 식량들까지 추가될 것이오니 최대 7개월은 거뜬할 것으로 사료되옵니다, 폐하.”
“7개월이라…… 굳이 피난민이 몰려와서가 아니라 나라의 백성이 열 명이든 천만 명이든 나라의 곡식창고에는 언제든 그 나라의 백성이 1년을 먹을 수 있는 식량이 쌓여 있어야 한다, 남궁혁.”
“예, 폐하.”
“본국에 기거하고 있는 백성은 대략 300만 명이 넘는다. 300만의 백성들이 먹을 수 있는 여유분의 1년 치 식량을 언제나 유지하도록 하라. 물론 백성 수가 늘어나면 비축해야 할 식량이 더욱 늘어난다는 것을 잊지 말아라.”
“예!”
이로써 골치를 썩였던 식량문제는 어느 정도 해결되었다.
주첨기는 한시름 덜었다. 이제 대흑마괴 발록과 흑골 킹스켈레톤의 처치만 남았다.
주첨기는 네 백작을 거동하고 피난민의 천막촌으로 향했다. 사람들은 어느덧 차츰 안정을 되찾아가는 듯했다.
주첨기는 말없이 언덕에 서서 피난민들을 바라보았다.
그중 웅성거리는 곳이 있었다.
“내놔!”
한 청년이 늙은 노인을 향해 손찌검을 했다. 늙은 노인은 힘없이 쓰러졌다.
청년은 웃으며 노인이 안고 있는 빵을 뺏었다. 옆에서 그를 말리는 이는 없었다.
“늙었으면 죽는 일만 남지 않았소. 굶어 뒈지든 늙어 뒈지든 똑같지 않소?”
“그, 그것은 이 늙은이의 병든 손녀가 먹을 것이니 제발 돌려주게. 우리는 한때 다 같은 율리안의 자식이 아니었던가.”
“율리안? 그 마신? 노인은 그냥 굶어 뒈지쇼. 이런 곳에서 부대끼며 사는 것보단 그게 낫지 않소?”
험하게 살아왔는지 청년의 얼굴엔 흉터자국이 가득했다.
“퉤!”
청년은 노인의 얼굴에 침을 뱉었다.
네 백작이 서로 먼저 뛰쳐나가려고 하자 주첨기가 가로막았다.
멀리서 이를 발견하고 정파고수가 달려왔다.
“네놈, 그토록 말했거늘!”
정파고수가 청년을 노려보았다.
청년은 심드렁한 표정으로 인상을 구겼다.
주첨기가 청년을 향해 걸어갔다.
정파고수가 주첨기를 알아보고 허리를 굽혔다.
“황제폐하께서 납시셨소!”
네 백작의 내력이 실린 음성이 사방으로 퍼져 나갔다.
시야에 들어온 모든 피난민들이 주첨기를 향해 무릎을 꿇고 고개를 조아렸다. 노인의 빵을 빼앗은 청년은 불안한 듯 주위를 두리번거리다가 이내 주첨기의 반대편으로 내달렸다.
주첨기는 ‘흥!’하고 콧바람을 뿜었다. 손을 펴서 앞으로 내밀었다. 청년의 몸이 빨려와 주첨기의 손에 딱 붙었다.
주첨기는 장력을 거두었다.
청년이 주첨기 앞에 쓰러졌다.
“죄, 죄송합니다.”
청년은 주첨기의 발아래 고개를 처박았다.
주첨기는 단호하게 눈을 떴다.
“모두 들어라! 짐은 너희들을 굶기지 않으리라. 내 백성에게 먹을 것이 없어 흙을 파게 한다면 짐은 기꺼이 짐의 허벅지살을 떼어 먹일 것이다. 모두 잊지 말라! 짐은 언제나 너희들을 굽어보고, 너희들은 짐을 올려다본다. 너희들이 성실한 백성으로 있을 때 짐도 위민민본하는 군주가 될 것이나, 너희들이 법을 어기고 서로를 속이며 남의 것을 탐할 때 짐은 너희들을 심판하는 작두가 될 것이다! 여봐라, 당장 이놈을 끌고 가 지하 감옥에 가두어라!”
청년이 울고불고 애원해도 주첨기는 눈길 하나 주지 않았다.
정파고수들의 하루 일상은 변함이 없다.
반절은 수백만에 달하는 피난민들을 통솔하고, 반절은 계속 부활하여 공격하는 스켈레톤을 상대한다.
어느 쪽이든 고달프긴 마찬가지다.
신명대국의 국경 쪽은 스켈레톤들이 부서지는 소리로 가득하다.
바드득
부서진 뼈를 내력을 이용해 가루로 만들어 버리면 부활시간이 조금 늦춰진다.
정파고수들은 스켈레톤들을 그렇게 상대했다.
그런데 이상한 날이었다. 평소보다 스켈레톤의 수가 배 이상 늘었고, 그 수는 점점 더 불어나고 있었다.
공동의 일파권(一破拳)은 내력을 조절했다. 무작정 내력만 쏟아 부으면 이 많은 스켈레톤들을 상대할 수 없다. 최소의 내력으로 최대의 효과를 내야 한다.
머리를 부수는 방법이 좋다.
일파권의 권이 스켈레톤의 머리에 적중했다.
스켈레톤이 무너졌다.
“정말 끝도 없이 몰려오는구려. 오늘은 더한 것 같소만…… 아니 그렇소?”
일파권이 음양진인에게 말했다.
“맞소이다. 이놈!”
음양진인은 허리로 날아오는 시미타를 피했다. 손을 태극문양으로 저었다. 스켈레톤의 손이 꺾였다. 손에 들린 시미타가 기운에 이끌려 주인의 머리를 베어버렸다.
“지금 에드먼에는 대흑마괴와 흑골이 왔다고 하오.”
“본인도 진천 대장군님께서 철갑거인을 거동하고 가시는 모습을 보았소.”
“큰일이외다.”
일파권은 ‘합!’하고 내력을 분출했다. 권기가 직선으로 뻗어나가 스켈레톤 열을 부서뜨렸다.
“멋진 일격이오. 그대의 칠상권은 언제 봐도 대단하오.”
“아니외다. 음양진인께서는 태극권 앞에 금칠을 하시는 것이오?”
“허허허헛!”
음양진인이 웃음을 멈추었다.
스켈레톤들이 벌떼처럼 몰려들고 있다. 꾸역꾸역 밀려들어 보이는 것이라곤 온통 스켈레톤뿐.
그 사이에 빈틈이 없을 정도다.
“왠지 불길하외다. 오늘따라 너무 많아졌소. 갑절은 넘으오.”
일파권이 말했다.
휘이잉
싸늘한 바람이 불었다. 그리고 먹구름이 몰려들었다. 일파권이 말한 대로 불길한 징조다.
먹구름 속에서 한 얼굴이 불쑥 튀어나왔다. 그리고 손도 나왔다.
“헉!”
채찍이 들려 있다.
화염에 감싸인 채찍!
그것이 휘둘러졌다.
“조심하시오!”
음양진인이 일파권을 향해 외쳤다. 하늘에서 떨어진 화염벼락이 일파권에게 떨어졌다.
일파권은 내력을 모아 권강을 날렸다.
막을 수 없다!
화염벼락이 일파권을 덮쳤다.
“으악!”
일순간 일파권은 화염에 휩싸여 비명을 질렀다. 일대는 온통 아수라장이 되어 불기둥이 몇 개나 치솟아올랐다.
음양진인도 그 충격에 내상을 입었다.
“쿨럭!”
화마에 당해 죽은피가 나왔다. 검정색이다.
음양진인은 소매에 쓰윽 닦으며 일파권에게 뛰어갔다.
상의를 벗어 일파권의 몸에 붙은 불을 껐다. 다행히 일파권이 내력을 일으켜 화상을 입지는 않았지만 외관에서 입어야 할 고통이 모두 몸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몸속이 불타오른다. 심장이 터질 것 같고 피는 데워져 증발하는 것만 같다.
“으으……!”
일파권은 신음을 흘렸다.
음양진인은 그를 어깨에 들쳐 메고 뒤로 몸을 날렸다.
먹구름 속에서 얼굴만 내밀고 있던 존재의 실체가 드러났다. 먹구름 밖으로 나왔다.
발록이다!
이미 정파고수 모두 발록에 대해 들어서 잘 알고 있다.
“대흑마괴가 나타났다!”
정파고수들이 외쳤다.
“크흐흐흐!”
발록이 괴기스러운 웃음소리를 흘리며 채찍을 휘둘렀다.
속수무책!
부상을 입는 자가 속출했다. 국경 일대는 온통 불바다가 되었다.
불바다를 헤엄쳐 나온 것들은 다름 아닌 스켈레톤들이었다. 놈들은 기다렸다는 듯이 더욱 빠른 속도로 돌진했다.
“국경이 무너지면 수백만의 백성이 위험하오!”
장소백이 외쳤다.
그는 지면을 박찼다. 검과 하나가 되어 발록을 향해 몸을 던졌다.
검과의 일체! 바로 신검합일이다.
발록이 날개를 펄럭였다. 날개에서 거친 돌풍이 휘몰아쳤다.
장소백은 검을 일자로 뻗은 채 돌풍에 맞부딪쳤다. 발록의 날개가 더욱 거칠게 펄럭였다.
마기가 쏟아져 나왔다. 신검일체가 되었던 장소백은 뒤로 튕겨 날아갔다.
장소백은 믿기지 않는다는 표정으로 지면에 박혔다.
쿵
장소백 앞에 발록이 내려섰다. 한참이나 고개를 들어야 발록의 얼굴이 보인다. 시커먼 암흑 속에서 이글거리는 살의의 눈빛에 온몸이 섬뜩해졌다.
죽음과 고통 그리고 재앙을 담은 눈빛이 장소백의 눈동자를 꿰뚫었다.
“장 대협! 피하시오.”
장소백은 정신을 차렸다.
정파 고수 다섯 명이 발록을 향해 검기를 날렸다.
발록의 채찍이 허공에서 검기를 소멸시켰다.
정파고수들은 포기하지 않았다. 각자의 독문무공을 연개했다.
어떤 것은 현란하다.
어떤 것은 빠르다.
어떤 것은 패도적이다.
그런데 발록은 단 한 번 채찍을 움직여 그것들을 모조리 막아내 버렸다.
발록의 채찍이 정파고수들 앞으로 쇄도했다. 화염의 열기가 모두를 덮쳤다.
“으악!”
정파고수들은 복부에 큼지막한 화상을 입고 뒤로 날아갔다.
일어서려고 해도 일어나지 못한다. 죽지 않은 게 천만다행이다.
“어서 피해야 하오!”
다른 고수들이 부상당한 정파고수들을 피신시켰다.
발록이 다시 날아올랐다. 그는 손가락으로 앞을 가리켰다.
스켈레톤 군단이 일제히 갈라져 길을 열었다. 커다란 검은 해골이 앞으로 나왔다.
흑골 킹스켈레톤!
정파고수들을 향해 킹스켈레톤이 돌진했다.
거력을 자랑하는 곤륜의 태산(泰山)이 킹스켈레톤 앞을 가로막았다.
[인간, 죽는다!]“참으로 기분을 상하게 하는 음성이다. 요물, 바로 네놈이 흑골이렷다?”
태산의 박도와 킹스켈레톤의 마검이 서로 맞부딪쳤다. 태산의 얼굴이 대번에 일그러졌다.
해골만 남은 것이 힘이 왜 이렇게 대단한지 거력의 자신으로서도 어쩔 수가 없었다.
드드득
뼈가 부딪치는 소리와 함께 태산이 뒤로 밀려났다.
태산은 당황한 얼굴이었다.
킹스켈레톤이 힘을 가했다. 태산이 뒤로 나가떨어졌다.
일어날 새도 없다. 킹스켈레톤의 마검이 다리에 박혔다.
킹스켈레톤은 검을 뽑았다. 피가 분수처럼 솟구쳐 킹스켈레톤의 얼굴에 뿌려졌다.
피가 뿌려진 검은 해골은 태산의 목을 향해 마검을 휘둘렀다.
“태산!”
챙
갑자기 튀어나온 검 한 자루가 마검의 방형을 비틀었다. 킹스켈레톤 주위로 세 명이 내려섰다.
“태산 대협, 어서 피하시오! 여기는 우리가 맡겠소. 청성삼성진을 보여주자고!”
청성고수 와룡진, 와룡강, 와룡방 3형제가 삼성진의 보법을 밟았다.
북과 남서, 남동! 세 방향을 빙그르르 돌며 킹스켈레톤을 혼란케 했다. 진형이 극에 달했을 때 세 청성고수는 일점을 향해 쾌속의 검을 내질렀다.
“조심해. 그건 허상이야!”
태산이 뒤에서 외쳤다.
“스켈레톤들이 쳐들어온다!”
언덕 쪽에서 소리가 들렸다.
스켈레톤이란 소리만 들어도 얼굴이 공포로 백지장처럼 새하얘지는 피난민들.
“꺄악!”
어디선가 비명이 터져 나왔다. 주첨기의 등장으로 장엄해졌던 분위기가 순식간에 아수라장이 되었다. 피난민들은 정신없이 물건을 챙겼다.
“흠……!”
주첨기는 언덕 쪽을 응시했다. 언덕 너머로 발록의 거대한 기운이 느껴지고 있다.
갑자기 나타난 거대한 기운!
네 명의 고수들도 긴장한 기색이 역력했다.
“모두 조용히 하지 못하겠는가? 지금 어느 안전이라고 이리들 소란을 피우는 것이냐!”
“소란들이더냐!”
네 고수가 내력을 터트렸다. 혼란하던 주위가 갑자기 조용해졌다. 그들은 자신들의 잘못을 깨닫고 급히 무릎을 꿇었다.
“귀영살검.”
“예, 폐하.”
“방금 전에 스켈레톤이 나타났다고 소리쳐 혼란을 만들어낸 장본인을 찾아 감옥에 가두어라.”
“예!”
귀영살검이 몸을 날렸다.
“모두 들어라. 너희들은 지금 신명대국에 있다. 너희들은 짐의 백성, 너희의 목숨 또한 짐의 것이며, 짐의 목숨은 그대들의 삶으로 인해 유지되고 있는 것이다. 너희들이 살아 있을 때 짐이 살아 있고, 너희들이 죽을 때 짐도 죽는다. 들어라! 너희들이 살아 있기에 짐은 죽지 않는다. 또한 짐이 죽지 않기에 너희들도 죽지 않는다. 짐은 죽지 않는 지존이니 두려워하지 말 지어다!”
주첨기는 피난민들 사이를 지나쳐 걸어갔다.
공포로 질렸던 안색들이 차츰 본색으로 돌아왔다.
“방각대사.”
“예, 폐하.”
“대사는 이곳에 남아 피난민들을 안정시키시오. 그리고 나머지는 짐과 함께 마물을 퇴치하러 간다!”
주첨기는 용포를 펄럭이며 국경 쪽으로 몸을 날렸다.
슈슛
천파편살과 와룡진도 가고 나자 방각대사는 피난민들을 향해 포권했다.
“아미타불, 노납은 시주들이 폐하의 말씀을 가슴 깊이 새겨들으신 것으로 생각합니다. 모두 폐하의 말씀대로 공포의 번뇌를 씻어내십시오.”
발록과 스켈레톤에 의해 국경에 빈틈이 생겼다. 그쪽으로 스켈레톤들이 밀려들어오고 있었다.
“꺄악!”
국경 근방까지 피난민들이 황성 쪽으로 도망치고 있다.
주첨기는 자신을 향해 달려오는 피난민들을 보며 쓴 침을 삼켰다.
제일 앞장서서 뛰고 있는 스켈레톤이 보였다. 놈은 넘어진 중년사내를 향해 칼날을 번뜩였다.
주첨기는 지력을 튕겼다. 그것이 스켈레톤의 이마를 꿰뚫고 지나갔다. 연거푸 뒤따라오던 스켈레톤 수십 기까지 함께 머리가 뚫려 부서졌다.
“어서 좀 더 안쪽으로 들어가라.”
주첨기가 중년사내를 일으켰다.
“감히 짐의 땅을 침범했다!”
주첨기의 눈에서 불똥이 튀었다. 두 눈동자에 신명대국 안쪽을 향해 뛰어오는 스켈레톤들이 박혔다.
주첨기의 눈이 매섭게 뜨였다. 국토를 침범한 것들은 더욱 용서할 수 없다.
휘이잉
주첨기의 몸에서 바람이 불어나왔다. 상투가 풀러지고 머리가 사방으로 나부꼈다.
황금색 용포까지 펄럭였다. 막 잠에서 깬 승천용의 기운이 주첨기의 몸을 휘감았다.
주첨기는 좌에서 우로 손을 한번 휘저었다. 손가락 틈 사이로 바람이 불어나와 스켈레톤들을 날렸고, 뒤따라 적중한 지력들이 스켈레톤들을 가루로 만들었다.
드드득
마치 댐이 무너져 강물이 범람하는 듯 혹은 해일이 땅을 삼키듯 스켈레톤들이 밀려온다.
“폐하!”
부상당한 고수를 등에 들쳐 멘 음양진인이 스켈레톤들을 부수며 달려왔다.
주첨기는 걱정스러운 마음에 등에 업힌 자를 보았다.
“음양진인, 일파권은 어떠한가?
“화마로 내상을 입었습니다. 위독한 상황입니다.”
“이게 어떻게 된 일이냐.”
“대흑마괴와 흑골이 수백만의 망자들을 이끌고 본국으로 쳐들어왔습니다. 일파권은 대흑마괴의 편술(鞭術)에 당했습니다, 폐하!”
“서둘러 황성으로 옮겨라.”
“예!”
그렇다면 에드먼 제국에 나타났다는 건 속임수였단 말인가? 본국의 병력을 분산시키기 위해서?
한낱 망자들의 속임수 따위에 놀아나다니!
더군다나 곳곳에서 죽어 있는 피난민의 시체도 보였다.
‘내 책임이다!’
주첨기는 나찰귀 같은 표정으로 변했다. 이토록 화가 나는 건 실로 오랜만이다.
저벅저벅
돌들이 지면에서 튕겨 주첨기 주위로 떠올랐다. 그가 이를 악물자 돌들은 가루가 되어 사방으로 비산했다.
“이 마물들…… 감히 짐을 가지고 놀았겠다!”
“폐하, 고정하시옵소서.”
와룡진이 조심스럽게 말했다.
“보이느냐. 감히 죽은 망자들이 산 자를 해쳤다. 짐의 백성을 해쳤다. 짐을 속이고 짐의 백성을 해쳤어. 모두……!”
주첨기는 분노로 얼굴을 파르르 떨었다. 그러고는 단번에 지면을 박찼다.
어느새 손에는 청강검이 들려 있었다. 청강검을 사방으로 휘어 저었다. 스켈레톤 군단 사이로 검기가 날아가 박혔다.
쾅 소리가 한 번씩 터질 때마다 수백 기씩 재로 변했다. 소리는 폭죽이 터지듯 계속되었다.
한편 킹스켈레톤은 열 명의 고수에게 포위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킹스켈레톤의 우세였다.
진을 형성했던 고수가 하나씩 떨어져 나갔다.
하늘에서 날아다니며 무자비하게 채찍을 휘두르는 발록!
고수들은 스켈레톤을 상대하기는커녕 발록의 채찍을 막아내고 피하는 데 전력을 쏟아 부어야 했다.
차이가 너무 심하다. 이러다가는 국경이 완전히 무너진다.
대국 안에 있는 300만에 육박하는 백성들이 살육 당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이를 악물었다. 최대한 스켈레톤이 국경을 뚫고 가지 못하게 했다.
죽기 일보직전까지 가지 않는 한 언제고 다시 일어나 검기를 날렸다. 처절하게 보일 정도였다.
“우리가 왔어!”
장웅칠이 거칠게 대도를 휘둘렀다.
정파고수들의 얼굴이 밝아졌다. 부상을 입은 자를 제외한 사파고수 70여 명이 도착했다.
“저놈……!”
사파고수들은 발록의 파괴력을 보며 다시금 경악했다. 수라혈마 대장군님이 탄 철갑거인조차 상대가 되지 못했었다.
“크윽, 이아아압!”
장웅칠은 아무 생각도 하지 않기로 했다.
싸우다 죽으면 죽는 거다!
장웅칠의 칼에 휩쓸린 스켈레톤이 양분되어 바닥을 굴렀다.
장웅칠과 사파고수 몇몇이 서로 눈을 마주쳤다.
목표는 흑골이다!
최대한 흑골을 죽인 후 모두 힘을 모아 대흑마괴를 상대하는 것이 최선책이다.
사파고수들은 킹스켈레톤을 향해 돌진했다.
쿵
발록은 지상으로 내려와 킹스켈레톤 옆에 섰다. 화염의 채찍이 몇 번 움직여 킹스켈레톤을 공격하던 고수들을 떨쳐냈다. 마치 벌레를 치우듯 아주 간단한 동작이었다.
사파고수들은 멈칫했다.
발록은 그들을 보고 괴기스러운 미소를 지었다. 인간의 피로 얼룩진 송곳니가 드러났다.
쫘악!
전신을 뒤덮고도 남을 만한 거대한 날개가 펼쳐졌다. 검은 날개는 몹시 어두웠다.
심연의 공포를 보았는가?
사파고수들은 발록의 날개 속에서 공포를 보았다.
정신이 어지러워졌다. 이상한 환청이 들리기도 했다.
머뭇거리는 사파고수들에게 어김없이 스켈레톤들의 시미타가 날아들었다.
사파고수들은 섬뜩한 살기를 느끼고 정신을 차렸다.
“피햇!”
몸을 비틀며 옆으로 누웠다.
그러나 빠르게 지나간 시미타가 사파고수들의 허리와 어깨, 팔 등을 베었다.
비명과 함께 자신을 공격한 스켈레톤을 부셨다. 사파고수들은 상처를 부여잡았다.
피가 멈추지 않았다. 오기가 들어 사파고수 열 명이 발록을 향해 검기를 쏘았다.
발록은 날개를 펄럭였다. 마기가 불어 검기는 물론 사파고수들까지 날아가 버렸다.
사파고수들이 허공에서 허우적거릴 때 그 뒤를 발록의 채찍이 따라왔다. 탐욕스러운 붉은 뱀이 먹이를 향해 몸을 날리는 모습을 연상시킨다.
“으악!”
장웅칠은 몸을 틀었다. 그런데 이미 쫓아온 채찍이 온몸을 휘감으려고 했다. 몸에 닿기도 전에 뜨거운 열기로 정신을 잃을 정도였다.
이 채찍에 감기면 즉사하리란 것은 불을 보듯 뻔한 일이다. 장웅칠은 여기서 죽는구나 하고 생각했다.
그때 불현듯 누군가 그에게 날아왔다. 그의 검은 발록의 채찍으로 향했다. 다섯 자 이상 치솟아 오른 검강이 발록의 채찍을 간신히 밀어냈다.
그는 장웅칠을 바로 세워 땅에 내려놓았다.
“짐이 대흑마괴를 상대할 터이니 모두에게 전하라. 망자들이 평원으로 들어가지 못하도록 하라!”
“예, 폐하.”
장웅칠은 급히 어깨의 혈을 눌렀다. 다행히 검상의 피가 멎었다.
“망자들이 절대 평원으로 들어가지 못하게 하라! 황제폐하께서 명하셨다.”
고수들은 주먹을 불끈 쥐었다.
개국 이래 최대의 위기다!
발록으로 인해 벌어졌던 틈을 메우고 스켈레톤들을 가로막았다. 절대 통과시키지 않으리라!
각오가 서린 눈은 뜨겁게 불타올랐다. 이글거리는 눈동자 속으로 킹스켈레톤이 뛰어들었다.
“와라!”
고수들이 진을 펼쳤다.
비록 몇 번이나 파훼 당했지만 그들은 진법을 밟으며 킹스켈레톤을 끌어들였다.
킹스켈레톤이 진에 빠졌다. 열 명의 고수에게 휩싸인 킹스켈레톤은 당황했는지 스켈레톤들을 불러 모았다.
수천의 스켈레톤이 진을 향해 뛰어들었다. 불에 뛰어드는 불나방처럼 스켈레톤들은 끝없이 달려들었다. 킹스켈레톤이 진에서 빠져나오는 것은 시간문제였다.
결국 킹스켈레톤은 고수 한 명을 베고 진을 깨뜨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