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mortal martial artist RAW novel - Chapter 4
제4화 만년설삼
안녕?
나는 이제 막 영물이 된 예쁜 만년설삼이야.
인간들은 정말 웃겨.
나는 천년밖에 살지 않았는데.
만년설삼이라는 이름을 붙여준다? 만년산 대 영물 선배님들께서 들으시면 섭섭할 텐데 말이야.. 아… 만년 정도 사셨으면 신이 되셨겠구나.
나는 천년동안 추운 설산에 있느라 참 많은 고생을 했었어. 다른 동료들에게 들으니, 인간 근처의 산에서 자라는 산삼들은 간혹 멧돼지나 산동물들에게 먹히기도 하고, 인간들에게 발견되어 뿌리 채 뽑히게 되기도 한대.
에그.
잔인해라
설산에 틀어박혀 있는 나로썬 참 다행이지? 설산에 있었으니까 천년동안 온전할 수도 있었던 거고, 그래서 영물이 될 수도 있었던 거야.
그래도 추위에서 벌벌 떨며 천년은 기다려야 한다는 게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몰라. 여기 봐 바. 소나무 아저씨 뿌리가 옆구리를 자꾸 찌르는 바람에 이렇게 상처가 남았어. 소나무 아저씨가 미안하다고 했지만. 그래도 평생 동안 흉터가 남을 거란 말이야.
그래도 이건 약과야.
지금도 설산을 생각하면 등골이 오싹해.
산삼도 등이 있냐고?
왜 그래…
우리 산삼들도 있을 건 다 있어. 여기 보이는 게 팔이고 여기 보이는 게 다리고 바로 이쪽이 등이야. 물론 이곳은 얼굴이고. 봐 바 다 있지?
영물이 된지 한 달도 되지 않아 미숙한 점이 많아. 동료들에게 세상에 대한 얘기도 많이 들었지만 두려운 것도 사실이야. 그러나 나는 모험심이 무척 강해서 두려움을 극복할 수 있어.
…
알았어. 알았으니까 다그치지마. 그래 나 겁도 많고 용기도 없어. 됐어? 지난번에 한 심마니가 올라오자마자 놀라서 온몸을 부르르 떨었던 거 가지고 뭐라 그러지마. 누구는 놀라고 싶어서 놀라나?
빠른 다리로 도망치면 되지 않냐고? 맞아… 하지만 심마니들이나 무림고수들을 보면 얼마나 무서운데. 특히 무림 고수들 말이야. 날 보면 아마 침을 헤 흘릴 거야.
내 단전으로 들어와. 내 단전으로 들어와…
하면서 나를 잡아 입안에 넣겠지.
에그… 무서워.
그런데 어제는 왜 무림인들을 따라갔냐고?
내 얘길 자세히 들어봐.
이제 영물이 되어서 천하를 유람하며 많은걸 보고 배우고 또 동료들도 만나려고 했어. 그리고 어제 무산에 도착했지. 마침 어제가 무산신녀님의 강림일이었더라.
강림일의 아침 이슬은 정말 몸에 좋아. 그래서 여기저기 맺혀 있는 이슬들을 마시면서 행복해 하고 있었단 말이야.
그때 밑에서 인간들이 올라오고 있었어. 하나하나 눈에 있는 정광을 보니 무림고수들 이었단 말이야. 더군다나 사백 명이 넘어보였어.
모두 대단한 고수들이었지만 그 무리 속에서 눈에 띄는 한명이 있었어. 사백 명의 고수들을 이끌고 올라오는 남자 인간. 언뜻 보면 무공을 익히지 않은 듯 보여. 기운도 싹 감춰져서 나도 하마터면 모를 뻔 했다니까.
그런데 유심히 지켜보니까 이게 웬일?
사람이 아닌 줄 알았어.
10갑자가 넘는 내공을 가진 사람 봤어? 내공이 너무 많으니까, 내공 스스로가 놀라 몸을 숨기고 있었나봐. 10갑자가 넘는 내공을 지는 사람이 있다는 말은 들어본 적도 없잖아. 그렇지? 더군다나 아직 약관(20세)도 넘지 않아 보였단 말이야.
그래서 몰래 뒤를 졸졸 따라갔지.
그 와중.
갑자기 짙은 안개가 펼쳐진 길이 나타났어.
따라가야 할지 말아야 할지 고민 했어. 결국 따라가기로 했지.
응? 그 10갑자 이상의 내력을 가진 청년이 꽤나 잘 생겨서 따라간 거 아니냐고? 너무해. 날 그 정도로 밖에 안 봐?
영물나이 한 달이지만 사람 생긴 거 정도는 판단할 수 있어. 나 눈 높아. 왜 이래. 응? 그래… 맞아. 그 청년이 딱 내 취향이라서 따라갔어. 꼭 내 입으로 이렇게 말해야해? 밉다…
말이 끊겼네. 계속 말할게.
어디 까지 말했더라? 아! 짙은 안개길.
그래. 짙은 안개길 까지 따라갔는데 갑자기 뭔가 내 몸을 끌어 당기는거 같은 거야. 거부할 수 없는 힘이었어. 깜빡 정신을 잃고 눈을 떠보니 쭉 초원이 펼쳐져 있더라.
무림고수들도 마찬가지였어. 모두 초원에 쓰러져 정신을 잃고 있었어. 누군가 뒤척이길래 혼자 놀라서 수풀 속으로 숨어 버렸지.
그게 지금까지 일어났던 일 전부야.
잠깐만…
앗!
그가 다가온다…
눈치 챈건가?
도망가자~
부시럭. 팟!
수풀이 움직이더니 뭔가가 솟구쳤다.
찰라의 순간 사라져버렸다.
팟!
주첨기는 반대편을 보며 입꼬리를 올렸다. 그와 동시에 주첨기의 모습도 사라졌다. 남은 잔영이 바람에 유유히 흔들거렸다. 결국 잔영은 허공으로 흩어졌다
“인삼?”
주첨기는 웃음이 나왔다.
손바닥 만한 인삼이 허겁지겁 초원을 달리고, 돌부리를 뛰어넘는 모습이란. 그 모습을 보는 사람치고 안 웃는 사람이 없을 게다. 문제는 인삼이 달리는 속도가 매우 빠르다는 것이다. 어찌나 빠른지 일반 사람들의 눈에는 보이지 않을 것이 분명하다.
일정한 간격을 두고 뒤를 쫓았다.
인삼이 어떻게 나오나 보고 싶었다.
훽.
인삼이 뒤를 돌아보았다.
주첨기가 웃어주었다.
인삼의 얼굴이라고 추측되는 곳의 표정이 어둡게 변했다.
퉁!
인삼은 땅속으로 꺼졌다. 땅속이라고 잡지 못할쏘냐. 주첨기는 발을 굴렀다.
쿠구궁.
땅속이 울리는 소리!
인삼이 땅속으로 꺼졌던 곳이 움직였다. 주첨기의 내력을 이기지 못한 인삼은 다시 튀어나왔다.
주첨기의 손이 뇌락처럼 인삼을 낚아 챘다
[우끼!]두두두.
발버둥 치는 인삼에게서 흙들이 떨어졌다. 인삼이 발악하지만 소용없다. 주첨기의 손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인삼이 잔뿌리를 세우며 진천을 보았다.
“하하하! 걱정 말아라. 먹지 않는다.”
자신에게 더 이상 영물은 소용없다.
다른 고수들에게 이 만년설삼을 넘겨도 되지만.
자신의 손에 잡혀 살려고 발버둥 치는 모습을 보니 안 돼 보인다.
오 년 전.
그때도 그랬다.
손에서 발버둥 쳤던 만년설삼이 떠올랐다.
“만년설삼. 너를 해하지 않을 테니 그만 바동거려라. 힘들지 않느냐?”
[우끼?]만년설삼의 움직임이 멎었다.
이해가 되지 않는 듯한 얼굴이 주첨기를 올려다보았다.
주첨기가 고개를 끄덕였다.
서서히 만년설삼의 표정이 풀어지기 시작하였다.
이윽고 주첨기는.
“자. 너도 네 갈 길을 가거라.”
땅위에 만년설삼을 조심히 내려놓았다. 그래도 만년설삼이 움직이지 않는다. 살짝 검지 로 등을 떠밀어도 만년설삼은 주첨기만 힐끔힐끔 바라볼 뿐이었다.
“하하. 너를 다시 잡지 않을 테니 걱정 말아라.”
그 말을 남기고 앞으로 천천히 걸어 나갔다.
다다닥.
뭐지?
주첨기가 뒤로 고개를 돌렸다. 졸졸 뒤따라오던 만년설삼이 주첨기의 눈을 피해 고개를 뒤로 돌렸다. 그러면서 몸을 흔들며 딴청을 피웠다.
주첨기는 어이가 없어 웃음이 나왔다.
다시 걸어가고.
고개를 돌리면.
뒤따라오던 만년설삼도 멈춰 서서 고개를 훽.
탁! 주첨기가 멈추는 소리
훽! 만년설삼이 고개를 돌리는 소리
탁. 훽…. 탁. 훽…. 탁. 훽…
“네 갈길을 가래도.”
혹시?
“갈 곳이 없는 것이더냐?”
만년설삼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따라와도 좋다.”
담담하게 툭 내뱉으며 다시 발걸음을 옮겼다. 뒤따라오던 만년설삼이 주첨기의 어깨 위로 뛰어올랐다. 주첨기의 얼굴에 몸을 비비적거렸다.
한참을 비비적거리던 만년설삼은 주첨기의 어깨에 앉았다. 주첨기가 매우 재미있다는 눈을 하였다.
사람 같이 감정을 것이 표정도 있으며 표현도 있다. 또한 자신의 말도 알아듣는다.
신기한 영물이다.
주첨기는 어깨에 만년설삼을 올려놓은 채 복귀하였다.
사백 명의 고수는 주위를 수색하러 모두 떠났다.
그자 리에 남은 사람은 주첨기와 진천, 수라혈마와 혜공 그리고 아직까지 깨지 않은 만소자, 모습을 감춘 형가뿐이었다.
만년설삼을 가장 먼저 발견한 건 수라혈마였다.
“제자야!”
가늘게 떠진 눈.
물욕에 가득 찬 탐욕스런 표정.
징글맞은 얼굴을 한 수라혈마다.
“네 어깨위에 있는 건 만년설삼이 아니더냐? 낄낄…”
어디를 봐도 만년설삼이다.
자꾸만 돼지 괴물들이 생각났다.
괴물 주제에 내단도 가지고 있지 않던 놈들!
다시 수라혈마의 얼굴이 달아올랐다.
그래도 눈앞에 만년설삼이 있지 않은가.
“키키. 역시 이 사부를 위하는 건 제자 밖에 없다. 갑자기 만년설삼이라니 사부는 감격했다. 낄낄.”
“스승님. 이 만년설삼은 제가 잡아온 것이 아니라 스스로 따라온 것입니다. 그렇지?”
만년설삼은 세차게 고개를 끄덕였다.
“잘됐네. 이참에 사부도 내공증진을 해보자. 아까 돼지 놈들만 생각하면…”
치가 떨린다는 표정이다.
“전하의 복이십니다. 수라혈마. 너는 살날이 얼마 남지도 않았으면서 영물 욕심을 그리 내느냐. 전하께선 수라혈마의 말을 마음에 담지 마십시오.”
진천이 견제에 나섰다.
“맞습니다요. 전하. 만년설삼은 천하의 영물. 나중을 위해 비축해두는 것이 좋을 것 같사옵니다요”
환관 혜공이 말을 하였다.
주첨기도 이를 반겼다.
“스승님. 두 분의 말씀을 들으셨습니까?”
“이놈들! 노친네하고 늙은 마누라는 어찌 시시콜콜 내게 시비를 거는가!”
폭갈 같은 음성이 터져 나왔다.
주첨기의 어깨에 앉아있던 만년설삼이 몸을 움찔하였다.
“내 마음대로 할 거다. 상관 마라. 낄낄낄.”
수라혈마가 만년설삼을 향해 손을 뻗었다.
무척 빠른 손놀림이었다.
씨익.
갑자기 만년설삼이 웃었다.
탁.
만년설삼은 주첨기의 어깨를 박차고 뒤로 멀리 뛰었다. 수라혈마의 손이 허공을 스쳐지나갔다.
자신의 손을 피했다?
“이놈…!”
문득 오십 년 전쯤 놓친 만년설삼이 생각났다.
그놈이 어찌나 빠른지 자신의 경공으로 따라잡을 수가 없었다. 혼자 화병으로 죽기 직전까지 갔었다. 그때 그놈과 오크들이 얼굴까지 떠오른 수라혈마는 악에 받쳐 괴성을 질렀다.
“끼요오오옷!”
이미 저만치 만년설삼은 도망치고 있었다.
문득 멈춰 섰다.
고개를 뒤로 돌린 만년설삼.
씨이이익.
마치 조롱하듯 웃는다.
수라혈마가 미친 듯이 앞으로 몸을 튕겼다. 시위를 떠난 화살처럼, 뇌락처럼 엄청난 속도지만. 만년설삼이 한 수 위였다. 수라혈마와 만년설삼의 모습이 초원 언덕의 내리막길로 사라졌다.
“웃었어.”
“웃었습니다.”
“웃었습니다요.”
만년설삼이 수라혈마를 향해 보여줬던 미소!
그 미소가 모두의 뇌리에서 떠나지 않았다.
얼마나 지났을까.
수색을 떠났던 고수 중 한명이 돌아왔다. 화산파의 매화검수 중 일인이었던 유운검 영운이다. 영운은 어깨에 뭔가를 들쳐 메고 있었다.
돼지 괴물은 그가 메고 있는 것에 비하면 약과였다.
이번 놈은 소였다.
소의 얼굴을 했는데. 몸집은 태산 같은 거인이다.
괴물!
“돌아왔습니다. 전하”
쿵!
영운의 어깨에서 괴물이 미끄러져 떨어졌다.
“이것은 무엇인가?”
“수색하던 중 쓰러트린 괴물입니다. 또한 이것은 이 괴물이 쓰고 있던 병기입니다.”
손에 쥐고 있던 커다란 도끼를 주첨기의 앞에 조심히 내려놓았다.
거인이 써야 어울릴 크기.
엄청난 도끼날!
투박한 손잡이!
이 소 괴물과 딱 맞는 무기다.
“돼지 얼굴을 한 괴물들이 있더니 이번엔 소 얼굴을 한 거인 괴물이군.”
주첨기가 중얼거리며 미노타우르스를 살폈다. 옆에서 혜공이 눈살을 찌푸리며 주첨기의 뒤로 살짝 숨었다. 진천이 유운검 영운에게 다가갔다.
“수고했다. 유운검.”
“아닙니다. 지존. 전하의 명을 받들었을 뿐입니다.”
영운이 고개를 숙였다.
“정말 이상합니다. 스승님. 돼지 괴물에 이어서 소 괴물이라.”
갑자기 무슨 일인지 모르겠다.
한 번도 보기 힘든 괴물들이 눈앞에 벌써 두 마리다.
미노타우르스의 가슴 쪽에 매화꽃 무늬 두 개가 새겨 있었다.
“이십사수매화검법 중 매개이도로 공격하였군.”
“예. 지존.”
“좋은 실력입니다. 이런 괴물을 단 일초로써 끝을 봤군요. 헌데 수라혈마 스승님은 어딜 가셔서 돌아오시질 않는지…”
아마 이 괴물을 보면 눈이 휘둥그레 질것이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이 소괴물에게서도 내단의 기운이 느껴지지 않는다.
“교주님! 전하!”
멀리서 음성이 들렸다.
혈마교 천마친위단의 일원이었던 고유룡이었다.
고유룡은 풀위를 스쳐 날아 주첨기 일행의 앞으로 도착하였다.
“또…”
고유룡의 등에는 또 다른 괴물이 메어져 있었다.
“이번엔… 개의 얼굴을 한 괴물인가.”
주첨기는 질려버렸다는 표정을 지었다.
코볼트의 시체가 싸늘하게 식어갔다.
주첨기 일행이 잠시 주둔하고 있는 초원.
그곳에 썩은 내가 진동하였다.
코를 찌르는 썩은 내!
한쪽에 쌓여있는 몬스터들의 시체에서 나는 악취다.
오크, 코볼트, 미노타우르스, 오거.
많게는 수십 마리에서 적개는 수백 마리까지 쌓여있다. 모두 수색에서 돌아온 고수들이 가져온 것들이다. 몬스터들의 산이 높게 쌓여 가고 있다.
신기한 괴물들을 잡아왔다.
그래서 당당한 발걸음으로 돌아왔는데 이게 웬일?
속속 돌아오는 사람들마다 등에 한두 마리씩의 괴물시체를 가져 오는게 아닌가?
그리고 그게 쌓이고 쌓였다.
신기한 괴물들!
한순간에 처치 곤란한 쓰레기가 되었다.
한껏 의기양양해서 돌아오던 고수들의 표정은 점점 어둡게 변해갔다.
“전하. 이곳은 이상한 곳입니다.”
검황 진천이 눈살을 찌푸렸다.
“그렇습니다. 스승님. 괴물들이 저렇게 많이 살고 있다니 상상도 못했습니다. 스승님께선 무림을 활보하면서 천하에 저런 괴물들이 산다는 것을 들어보셨습니까?”
“금시초문입니다. 전하.”
“저렇게 많은 괴물들이 존재하면서 어떻게 천하에 알려지지 않았는지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이렇게 많은 종류, 많은 수의 괴물들이 존재하고 있었다면 벌써 알려져야 했을 것인데 말입니다.”
“그렇습니다. 전하.”
주첨기는 십문정도 무당파 장소백이 말했던 바가 문득 생각났다.
그는 돼지 괴물 두 마리를 가지고 왔었다.
그가 말하길 괴물들이 모여 사는 곳이 있단다. 장소백 그 말고도 다른 이들도 다 같은 보고를 하였다.
괴물들이 군집생할을 한다.
부락이 발견되었다!
다시 한번 무당파 장소백을 불렀다.
“전하. 부르셨습니까. 신 장소백입니다.”
장소백이 공손히 허리를 숙였다.
“그들의 부락에 대해서도 자세히 말하라.”
“예. 전하. 전하의 명을 받고 서북쪽으로 향하던 중에 저 돼지 괴물 두 마리를 만났습니다. 그리고 얼마 안가서 돼지 괴물들이 운집해 있는 부락을 발견하였습니다. 괴물들을 섬멸 하고 싶었으나 보고가 먼저였기에 이렇게 달려왔습니다.”
“부락의 규모는 얼마나 되었나?”
“얼핏 잡아 오백 마리 정도 살고 있을 정도의 규모였습니다.”
“오백 마리 정도?”
부락에 돼지 괴물 오백 마리 정도 살고 있을 걸로 추측된다. 한 마리 보이는 것도 놀라운 일인데 오백 마리라니. 정녕 이곳은 인간계 밑에 존재한다는 아수라계인가? 무산신녀의 벌을 받고, 부처의 자비를 받지 못하여 아수라계에 떨어진 것인가?
온갖 악귀들이 싸움을 벌인다는 아수라계?
그러기엔 너무나 평온해 보이는 평원이다.
그리고 자신은 그런 것 따위는 믿지 않는다.
한순간 아수계를 생각 했던 자신.
피식 웃음이 나왔다.
장소백 다음으로 진혈살단의 사파고수 살묘검인을 불렀다.
“살묘검인이라고 합니다.”
사파인답게.
얼굴에 온갖 흉터로 가득하다.
흉측하다.
그는 흉측한 만큼 잔인하게도 보였다.
그 역시 장소백과 마찬가지의 보고를 하였었다.
“저 개 괴물의 부락에 대해서 자세히 말해보라.”
“이곳과 얼마 떨어지지 않은 북쪽에 있습니다.
“규모는?”
“저 혼자서도 처리할 수 있을 정도입니다.
“그래서 어느 정도인가?”
“칠백 마리가 넘습니다.”
비록 괴물이긴 하지만 매우 약하다.
개 괴물은 중원의 삼류 무사 정도?
덩치가 클수록 그 위력이 커진다. 개 괴물보단 돼지 괴물이 더욱 강하다.
코볼트 보단 오크.
돼지 괴물보단 소 괴물이 더욱 강하다.
오크 보단 미노타우르스.
소 괴물보단 거인 괴물이 더욱 강하다.
미노타우르스 보단 오우거.
“확실한 위치는 어디인가?”
“바로 저쪽으로 오만 보 정도 떨어져 있습니다.”
주첨기가 고개를 끄덕였다.
“특이한 사항은 없던가?”
“색목인 몇이 괴물들에게 붙잡혀 있는 것 같았습니다.”
“색목인?”
색목인이라고는 하지만 사람.
사람이 괴물에게 잡혀있다. 주첨기의 눈이 번뜩였다.
“살묘검인. 그 개 괴물 부락에서 색목인들을 구출해 올 수 있겠나?”
살묘검인은 아주 당연하다는 표정이다.
그까짓 것들 실상 괴물이라고는 하지만 너무 약하다.
그러나 무공을 익히지 않은 사람 즉 민간 백성이라면 공포의 대상일지 모른다.
자신이 누군가?
일 갑자 이상의 내력을 지닌 고수다.
그까짓 괴물쯤이야 식은 죽 먹기다.
“예. 전하.”
“그럼 색목인들을 구해와라. 다른 머리색과 피부색을 가졌을 뿐이지 우리들과 같은 사람이다.”
살묘검인은 고개를 꾸벅한 후 몸을 날렸다.
괴물들에 이어 색목인들까지 발견되었다.
한족이 아니다. 색목인이다.
그렇다면 이곳은 서역의 한 지방일 확률이 높다.
만약에 서역일 경우!
어째서 자신들이 서역에 있는 것일까.
사천과 서역이 비록 가깝다 하나. 능히 말을 타고 한 달 이상은 달려야 도착 할 거리다.
“스승님. 이곳이 서역이 아닐까 추측됩니다.”
“그럴 수도 있습니다. 전하. 색목인들이 오거든 그들에게 물어보면 될 것 같습니다.”
“서역 말이라면 제가 잘할 줄 압니다요.”
가만히 듣고 있던 혜공이 끼어들었다.
“혜공. 그런 재주를 가지고 있었습니까?”
“전하. 이 혜공을 어떻게 보고 계셨던 것입니까요.”
혜공은 살짝 웃었다.
그러나 곧 얼굴이 찌푸러진다.
악취 때문이다.
전장터의 시체 썩는 고약한 냄새.
족히 10배 이상은 더 심하다.
괴물들의 녹색 체액이 한줄기의 강을 이루어 언덕 밑으로 흘렀다.
한시라도 빨리 이곳에서 벗어나고 싶은데 그러지 못한다.
사라진 수라혈마 때문이었다.
만년설삼을 쫓아 사라진 수라혈마의 모습이 도통 보이지 않았다.
다른 곳에 잠시 이동할 수도 있으나.
스승님께 말씀도 안하고 이동하는 것은 도리가 아니다.
더군다나.
사파고수 살묘검인도 아직 돌아오지 않았다.
“전하. 신이 수라혈마를 찾아오겠습니다.”
“아닙니다. 제가 갔다 오겠습니다. 스승님.”
그때였다. 팟!
별안간 만년설삼이 주첨기의 어깨 위로 뛰위 올랐다.
어디서 나타났을까.
주첨기와 눈이 마주친 만년설삼은 씨익 웃었다. 그리고 만년설삼은 뒤쪽을 향해 몸을 돌렸다.
먼 시선. 누군가를 기다리는 것 같다.
“만년설삼. 사부님은 어디에 두고 너 혼자만 왔느냐?”
스승님은 만년설삼의 뒤를 쫓아 사라졌었다.
만년설삼은 그냥 웃을 뿐이다.
잠시 뒤.
쉬이이이잉. 거친 바람이 일었다.
소용돌이를 몰며 달려오고 있는 자는 수라혈마였다. 수라혈마는 주첨기의 앞에 우뚝 섰다. 가만히 만년설삼을 노려만 보고 있다.
“스승님. 이제야 오십니까.
수라혈마는 대답하지 않았다.
그는 무척 분개한 표정이었다.
만년설삼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러자 수라혈마의 이마에 혈관이 돋았다. 주먹을 부르르 떨지만 앞으로 나가지 않는다. 속으로 삭힐 수밖에 없어 수라혈마는 미칠 지경이다.
이놈의 만년설삼!
잡을래야 잡을 수가 없다.
주첨기 다음으로 경공이 빠른 사람이 수라혈마이거늘.
만년설삼은 그보다 한 수위였다.
언제나 몇 보씩 앞서나갔다.
놓쳐 사라졌는가 싶으면 저 멀리서 자신을 기다리며 웃고 있었다. 분에 받쳐 쫓아가면 웃음을 쪼개며 또다시 달려 나가길 반복하였다.
끼요요요옷!
스스로 성에 못 이겨 수라혈마는 괴성을 질렀다.
저 괘씸한 놈.
언젠가 꼭 먹고 말리라.
정사파 고수들은 놀라서 수라혈마를 바라보았다.
“스승님. 왜 그러십니까?”
주첨기가 물었다.
수라혈마는 벌겋게 달구어진 얼굴로 씩씩 거릴 뿐이다.
쪽팔려서라도 입을 열지 않았다. 한낮 인삼 하나를 잡지 못해 두 시진 동안 헛고생을 하였다. 이를 어떻게 말하겠는가?
생글.생글
자신을 바라보며 웃고 있는 만년설삼!
이놈!
수라혈마는 불처럼 얼굴이 상기되었다. 그러나 전처럼 잡으려 들지 않았다.
포기다.
이놈은 정공법으로 잡을 수 없다. 이놈이 방심한 틈을 노린다. 잠을 잘 때나 혹은 급작스런 습격으로!
“낄낄낄…”
웃음을 흘렸다.
그런데 이게 웬 악취인가.
“앗! 제자야. 이 괴물들은 다 뭐냐!”
그제야 몬스터들의 시체로 이루어진 산을 발견하였다.
“근방에서 잡아들인 괴물들입니다.”
돼지 얼굴 괴물 이외에도 온갖 종류의 괴물들이 다 있었다.
개 얼굴! 소 얼굴!
그리고 엄청난 몸집의 괴상한 괴물까지.
수라혈마의 입에 군침이 돌았다.
진천이 덧붙였다.
“수라혈마. 저 괴물들 모두 내단을 가지고 있지 않다.”
냉정한 어조.
수라혈마의 얼굴이 한순간에 굳었다.
“쳇!”
뭔가 대단히 꼬인 날이다.
고수 중 한명이 주첨기의 어깨위에 앉아 있는 만년설삼을 발견하였다.
그가 놀라 나지막하게 중얼 거렸다.
“만년설삼이다…”
그 말은 삽시간에 전체로 퍼졌다.
주첨기는 자신을 향한 뜨거운 시선에 움찔했다. 모두 이글거리는 눈동자로 자기 쪽을 바라보고 있었다. 바로 그 시선들이 만년설삼을 향하고 있다는 것을 눈치 챘다.
“만년설삼…”
전설이 영물.
눈앞에 있다. 손만 뻗으면 된다. 그리고 먹는다.
일약 수 갑자의 내력이 증진되어 그토록 꿈꾸던 절정 고수의 반열에 오를 수 있다.
주첨기는 그만 머쓱해졌다.
그렇게 군침 흘리는 눈빛으로 바라보지 말라고 명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스…”
진천을 부르려던 주첨기.
말을 멈췄다.
진천 역시 같은 눈빛으로 만년설삼을 바라보고 있었다. 생글 생글 웃고 있던 만년설삼의 표정이 심각해졌다. 어느순간 부터인가 몸을 떨고 있었다.
부스스스.
흙들이 떨어졌다.
“색목인이다!”
누군가의 외침으로 만년설삼에게 몰렸던 눈길이 한순간 살묘검인쪽으로 옮겨졌다.
등에 업힌 성인 남자, 그리고 양 옆구리에 어린아이 한명씩.
색목인 세 명과 함께 도착하였다.
그 한순간일 뿐.
다시 사백 고수들의 시선이 만년설삼에게로 돌아왔다.
정사파 할 것 없이 모두의 눈이 가늘게 떠졌다.
뱀과 같이 음흉하다.
만년설삼이 애절한 표정으로 주첨기를 바라봤다. 금방이라도 울음을 터트릴 것만 같다. 주첨기는 이 만년설삼이 뭘 원하는지 알 것만 같았다.
고개를 끄덕였다.
쑤욱.
만년설삼의 표정이 환한 미소로 바뀌었다. 모두의 눈길을 피하기 위해 주첨기의 품안으로 파고들었다.
살묘검인이 데리고 온 칼튼은 몸을 부들부들 떨고 있었다.
특이한 검은 눈동자들이 자신들을 보고 있다. 무척 신기한 듯이, 혹은 재미있는 것을 구경하는 듯한 눈들이다.
칼튼은 자신의 아이들을 부둥켜안았다.
아이들은 겁에 질려있다.
코볼트 들에게 끌려가서 이러는 것이 아니다. 코볼트 들에게 포박되어 있을 때도 울고 있었지만. 도망치기 위해 몸부림 쳤던 아이들이다.
그런데 이제는 망연자실한 것 표정이다.
아이들 뿐만 아니라 사실 칼튼도 그러하였다.
한 사내 때문이다.
‘개의 얼굴을 단 괴물들에게서 색목인들을 구하라’란 명을 받은 살묘검인
칼튼은 사내가 코볼트들을 죽이면서 히죽히죽 웃던 얼굴이 자꾸만 생각이 났다. 코볼트 수백 마리가 사내를 에워쌓는데도 사내는 그 상황을 즐기는 듯 했다..
사내가 들고 있는 검이 움직일 때.
코볼트 여러 마리가 죽어나갔다.
평범하게 안 죽였다. 잔인하게 골라 죽였다.
분명히 사내는 그것을 즐기고 있었다.
말도 안 되게 코볼트는 단 한명의 사내에게 몰살 되었다.
아무도 믿지 않을 것이다.
혹시 말로만 듣던 소드마스터?
대륙의 영웅이 저렇게 잔인할 리 없다.
영웅은 학살을 즐기지 않는다.
자신과 아이들을 잡아먹으려고 했던 몬스터들!
그런 몬스터들이 모두 죽어나가는데 통쾌 하지 않았다.
혐오스럽고 증오스러운 몬스터들에게 동정심이 간 건 그때가 처음이었다.
날카로운 눈매를 가진 사내의 검에 의해 코볼트들이 죽을 때마다 왠지 모르게 두렵고 끔찍했다.
잔인한 광경이 눈앞에서 쉴 새 없이 펼쳐졌다.
그 충격에 아이들이 오줌을 지렸다.
사내가 코볼트를 하나도 남김없이 죽인 후 자신에게 걸어왔을 때.
꼼짝없이 죽는 줄 알았다.
사내의 잔인한 눈이 전신을 훑고 지나갔을 때 등골이 오싹하였다.
죽는다.
코볼트처럼 죽는다.
죽음을 각오하고 눈을 질끈 감았을 때.
사내가 자신을 업고 자식들을 옆구리에 끼었다.
그리고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사내는 자신과 아이들을 큰 나무들을 건너뛰었다. 나뭇잎을 밟고 뛸 수 있다는 건 생각조차 해본 적이 없는 일이다.
더군다나 매우 빠른 속도였다.
눈을 뜨기 힘들 정도의 바람이 눈에 스쳐지나갔다.
눈을 떴을 때
이 사내와 같은 복장을 한 사람들이 수백 명 모여 있었다.
모두 검은 눈동자였다.
“제발 살려주십시오. 제 아이들을 봐서라도…”
칼튼은 강하게 아이들을 부둥켜안았다.
색목인은 극도의 공포에 떨고 있다.
아이들은 넋을 잃은 듯하다.
주첨기가 걱정스럽게 말했다.
“무슨 오해가 있는 것 같습니다. 당신을 그 괴물들에게서 구출한 것이지 죽이려 했던 게 아닙니다.”
구출?
안심해야 하지만 더욱 불안하였다.
수많은 검은 눈동자들.
눈동자 하나하나 빛들을 뿜어내고 있었다.
“괜찮습니까?”
“예…”
“우선 쉬셔야겠습니다. 그보다 아이들이 걱정됩니다만.”
충격 때문에 아이들이 이상하다.
칼튼도 그러하였다.
아이들을 부둥켜안고 눈물을 흘렸다.
주첨기의 품안에 있던 만년설삼이 반쯤 몸을 내밀었다.
만년설삼은 자신의 뿌리 쪽을 내려다봤다.
그리고 아주 조금의 일부분. 다음 날이면 자랄 만큼의 부분.
툭.
만년설삼이 눈을 찌푸렸다.
[우끼!]눈꼽만큼의 뿌리를 떼어냈다. 순간적으로 사백 소구들의 눈이 번쩍였다. 그것을 주첨기에 내밀었다.
“이걸 저 아이들에게 먹이라는 건가?”
끄덕. 끄덕.
그리고는 다시 주첨기의 품속으로 숨었다.
주첨기는 만년설삼에게 받은 뿌리를 손바닥에 올렸다.
말그대로 눈꼽만큼이다.
영물이니 정말 적은 양이라도 효과가 있을 것이다. 주첨기가 허리를 숙여 두 아이에게 얼굴을 가까이 가져갔다. 칼튼이 놀라 더욱 아이들을 부둥켜안았다.
“괜찮습니다. 아이들에게 좋은 것입니다.”
칼튼은 믿지 않는 눈치였다.
살아 있는 작은 식물의 뿌리라니.
극독물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이미 주첨기가 아이들의 입에 조그마한 뿌리조각을 넣고 있었다.
화악.
대번에 아이들의 얼굴에 혈색이 돌았다.
초점을 잃었던 아이들의 눈동자도 본래의 자리를 찾아갔다. 정신이 들었다.
바로 울음부터 터뜨렸다.
“괜찮아. 괜찮아. 아빠가 있잖아.”
두 아이는 칼튼을 강하게 안았다.
“물어보고 싶은 게 많습니다. 우선 쉬십시오.”
쉬고 싶다. 하지만 도대체 쉴 수 있는 분위기가 아니다.
그리고 이 악취!
“허억…”
신음을 뱉었다.
한 쪽에 쌓여있는 몬스터.
오크와 코볼트는 물론. 미노타우르스와 오우거도 있었다.
미노타우르스와 오우거가 어떤 몬스터인지 잘 알고 있다. 일급 용병이나 기사 여럿이 뭉쳐야 잡을 수 있다는 몬스터들이다.
그런 몬스터가 수십 마리씩 쌓여있다.
이 몬스터들 모두를 이 사람들이 잡은 건가?
“이곳은 저 괴물시체들 때문에 있지 못하겠습니다. 혹시 근처에 주둔하기에 좋은 곳이 있습니까? 강이 인접해 있는 곳 말입니다.”
“있…습니다. 평원의 강이라고…”
칼튼은 얼떨결에 대답하였다.
“좋습니다. 우선 그곳에 진을 펼쳐야겠습니다. 그곳에서 쉬시는 게 어떻겠습니까? 보아하니 이 근처에 괴물들 소굴로 가득한 것도 같은데.”
주첨기는 묻고 싶은 게 많았다.
하지만 참았다.
우선 이 색목인과 아이들은 쉬어야 한다.
괴물들에게 둘러 싸여 공포에 떨었을 것을 생각하니.
괜스레 안쓰럽다.
“말이 없다면 하루이상은 걸어가야…하는 거리입니다.”
“괜찮습니다. 안내해주시겠습니까?”
“예? 예…”
주첨기가 등을 돌렸다.
“모두 진을 펼칠 곳으로 이동한다.”
천둥 같은 소리가 주첨기의 입에서 터져 나왔다.
칼튼과 아이가 크게 놀랐다. 숨이 멎는 듯하다. 사람의 입에서 저렇게 큰 소리가 나오다니.
마법사인가?
그렇게 보이지는 않는다.
총기가 넘치는 젊은 청년이라고 생각했는데.
한순간에 위압적인 분위기가 흘렀다.
“제 등에 업히시지요.”
주첨기가 무릎을 굽혀 등을 보이며 말했다.
“괜…괜찮습니다.”
“어서요!”
황자 특유의 위압감.
“그럼 제 아이들을…”
“스승님들. 부탁합니다. 어서 업히십시오.”
업혀야만 할 것 같았다.
아빠와 떨어지지 않으려고 두 아이가 울어댔다.
하지만 괴물들의 시체에서 떨어져 다른 곳에 진을 펼쳐야 한다. 이곳에 오래 머물다간 괴물들에게서 이상한 병이라도 옮을 가능성이 있다.
수라혈마와 진천이 각각 한명씩을 안았다.
칼튼도 그제야 조심히 주첨기의 등에 올랐다.
“방향이 어디 입니까?”
“저 산 쪽을 향하다 보면 나옵니다. 그런데 그곳… 위험합니다. 오크들이 자주 출몰하는 곳이라.”
“오크가 무엇입니까?”
오크를 모른다?
칼튼은 황당했다.
“바로 저 몬스터가… 오크…입니다.”
“하하! 저 돼지 머리 괴물의 이름이 오크군요. 당신은 저 괴물들을 잘 알고 있는 것 같습니다. 아무튼 진을 펼친 후에 자세한 얘기를 나눕시다. 자… 진군한다!”
주첨기의 커다란 목소리가 울렸다.
주첨기가 땅을 박찼다.
사백 명의 고수들도 일제히 솟구쳤다.
칼튼은 두 눈이 휘둥그레졌다.
코볼트 부락을 섬멸시켰던 사내만이 그토록 빠르게 달릴 줄.
아니, 날 줄 알았다.
그런데 아니었다.
여기에 있는 사백 명 모두가 엄청난 속도로 내달리는 것이다.
꿈을 꾸고 있는 것일까?
그렇다면 어디서부터 꿈인가.
이건 말도 안 된다.
이 사람들…
사람도 아니다.
하루 종일 쉬지 않고 걸어야 도착할 수 있는 거리를.
한 시간도 채 되지 않아 도착 했다.
초원의 강.
대평원에 흐르는 커다란 강.
평원의 풍요로움은 이 강으로부터 나온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깨끗하며 수위가 높아 수량이 풍부하다.
강의 주위로 평탄한 지면은 진을 펼치기에도 알맞았다.
보자마자 마음에 들었다.
“이곳에 진을 펼친다! 그런데 여기에도 돼지 괴물들이 있군.”
강가에서 오크 한 부대 즉 삼십 마리를 발견하였다.
가는 곳 마다 괴물들이 출몰한다.
과연 이곳은 어디란 말인가.
더 이상 돼지 머리를 한 괴물들은 희귀 대상이 아니다.
오크들 쪽으로 몸을 날렸다.
“취이익. 인간들이다!”
사백 명이 넘는 인간들이 몰려왔다. 당황한 오크들이 허겁지겁 무기를 챙겼다. 인간들의 무리 중 한 명이 갑자기 튀어 나왔다.
갑자기 날아온 주첨기!
그가 오크들의 무리 속으로 뛰어들었다.
쿵!
주첨기의 몸에서 내기의 바람이 폭풍처럼 몰아쳤다.
지면이 울리는 커다란 소리와 함께 오크 수십 마리가 주위로 튕겼다.
오크들의 병기가 저편으로 날아갔다. 그 뒤를 바로 오크들의 육중한 몸이 따랐다.
꾸에에엑.
삼십 마리가 넘는 오크들 대반수가 강가로 빠졌다.
빠지기 전 이미 모두 죽어 있었다.
오크들의 시체는 강하류로 떠내려갔다. 입이 딱 벌어진 칼튼과 그 아이들.
전사 부족이라는 오크 삼십 마리가.
어떻게 당했는지도 모르게 모두 죽어 튕겨나갔다.
마치 폭풍에 휩쓸려 나가는 병든 병아리처럼!
슝.
주첨기가 한 번의 도약으로 다시 돌아왔다.
오크들의 체액 하나 묻지 않은 채였다.
“자. 이곳에서 주둔할 것이다. 진을 펼쳐라!”
주첨기의 명령이 떨어졌다.
정사파의 고수들은 익숙한 솜씨로 진을 펼치기 시작하였다.
높은 나무를 뛰어넘는다.
강물 위를 뛰어 다닌다.
주먹으로 바위를 깨트린다.
상식적으로 생각조차 할 수 없는 일들이다.
모든 것이 칼튼과 그의 자식들의 눈앞에서 벌어졌다.
그들은 사백 명의 고수 들을 넋 잃고 바라보았다.
“아…”
코볼트 부락을 몰살시켰던 엄청난 사내도 이 사백 명의 구성원 중 한명에 불과했던 것이었다.
실로 혼란을 가져 올만큼의 엄청난 충격이다.
삽시간에 진이 완벽하게 펼쳐졌다.
견고한 천막. 요리 기구. 그리고 무림인들에게서 빠트릴 수 없는 간이 연마장!
“만소자야.”
“예. 전하.”
언제부터인가 정신이 들어 멍하니 있던 내시를 불렀다.
“이 분과 아이들을 쉴 곳으로 안내하라. 푹 쉬셔야 할 듯하다. 쉬신 다음에 자세한 이야기를 나눕시다.”
“예. 전하. 모두 저를 따라오시지요.”
머뭇거리고 있던 칼튼과 그 아들들이 만소자를 따라 이동하였다.
“괴물들이 빈번하게 출몰하는 이곳은 분명히 우리가 알던 중원과는 다른 곳이다. 이곳이 어디인지 알기 전까지 이곳에 주둔 할 것이니 모두들 대기하라!”
[우끼…]줄곧 눈치를 보고 있던 만년설삼이 어깨위로 다시 올라왔다.
“예! 전하.”
두패로 나뉘어졌다.
물론 진천의 정파와 수라혈마의 사파다.
천막도 따로. 연마장 따로. 음식도 따로다.
서로를 보며 적의를 불태운다.
그런 그들에게도 공통점이 있었다.
바로 주첨기의 어깨에 앉아서 자신들을 보고 있는 만년설삼!
그들은 만년설삼을 보고 하나같이 입맛을 다셨다.
전하의 것이라는 것은 확실하나.
그래도 눈길이 여간 가는 게 아니었다.
도톰하게 오른 몸집.
자꾸만 입안에서 침이 고인다.
“후우.”
주첨기는 한숨이 나왔다.
무림에 대해서는 잘 모르나.
얼핏 봐도 정파와 사파와의 골이 상당히 깊은 듯하다.
지금 이곳이 어떤 곳인지도 모르는 상황에서 서로를 보고 으르렁대면 안 된다.
“스승님들.”
진천과 수라혈마와 함께 강가로 걸었다.
주첨기의 미간이 접혀 있었다.
“근심이 있으십니까. 전하.”
“왜 그러냐. 제자야.”
“괴물들이 출몰하는 이곳도 그러하며, 정사파 양간의 무림인들의 관계 또한 걱정입니다.”
“낄낄… 정파 나부랭이들과 사이좋게 지낼 리가 있나.”
“수라혈마. 누가 할 소리를 하는지 모르겠구나.”
“뭐? 낄길. 제자야. 그래도 걱정마라 그래도 이정도면 잘 지낸다고 할 수 있지. 만나기만 하면 칼부림을 하는 게 당연한데 말이야.”
“그렇습니다. 전하. 수라혈마의 말이 맞습니다.”
하긴. 두 패로 나누어졌다고 단점만 있는 것도 아니다.
서로간의 경쟁의식이 어쩌면 새로이 새울 제국을 더욱 번창시킬지도 모른다.
어찌됐건 중요한건 자신에 대한 충성이다.
이 두 무리를 이끄는 것!
목숨을 다 바치는 충성을 얻어내는 것!
모두 자신의 역량에 달려있다.
밤이 되었다.
무산에서의 갑작스러웠던 일.
그리고 괴상한 괴물들 때문에 시끄러웠던 하루가 저물어 갔다.
돼지, 개, 소의 얼굴을 한 괴물들…
그리고 그들이 사는 부락과 구출해온 색목인,.
이 밤이 지나고 나면 모든 것이 정리 될 것이다.
문득 주첨기는 밤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캄캄한 밤. 무수히 떠있는 아름다운 별들.
그리고… 앗!
주첨기는 눈을 비볐다.
분명히 속이 꽉 찬 보름달이 두 개다. 눈을 다시 비비고 보아도 본래의 달과 적색빛을 내는 이질적인 두 개의 달이 서쪽과 동쪽. 두 군 데에 떠있다.
어떻게 이런 일이!
누군가를 부르기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이미 달이 두 개인 것을 알아챈 고수들은 밤하늘을 멍하니 바라보고 있었다.
“스승님.”
“전하.”
“분명 제 눈이 잘못된 것은 아니지요? 만월이 서쪽과 동쪽 두 개나 떠 있다니 말입니다.”
“저 역시 그렇게 보이고 있습니다. 귀신에 홀린 듯한 느낌입니다. 전하. 괴물들에 이어 두 개의 달이라니…”
아!
색목인이 있었구나.
주첨기는 바로 칼튼과 그의 자식들이 자고 있는 천막으로 뛰어갔다.
칼튼은 깨어 있었다.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아들들의 머리칼을 쓸어 넘겼다.
비록 이들이 우호적으로 대해주고 있지만.
언제 돌변할지 모르는 것이 사람이다.
손쉽게 코볼트 부락을 섬멸하고.
한 번의 도약으로 오크 삼십 마리를 즉사시키는 무서운 사람들로 가득한곳.
그러한 곳에서 잠이 쉽게 올 리가 없었다.
“들어가겠습니다.”
이들 무리의 대장인 젊은 청년의 목소리였다.
주첨기가 안으로 들어왔다.
“잘 쉬셨습니까?”
“덕.덕…..분에 잘 쉬고 있습니다… 뭐라고 감사의 말씀을 전해야 할지…”
말이 자연스럽게 나오지 않았다.
“물어보고 싶은 게 있습니다. 이곳에서 살아오셨습니까?”
“이곳이라면… 드래곤의 평원 말씀이십니까? 그럴…리가 있겟습니까. 이곳은 사람이 살 수 없는 곳입니다.”
“드래곤의 평원?”
주첨기가 눈을 위로 굴렸다.
어깨위의 만년설삼도 고개를 갸웃거린다.
“어째서 사람이 살 수 없다는 것입니까? 그것보다. 달이 두 개 떠 있는걸 보셨습니까?”
“무슨 문제라도?”
칼튼이 되물었다.
“달이 두 개가 떠있습니다. 한 개여야 할 달이 말입니다.”
무슨 말을 하고 있는 거지?
칼튼의 눈이 황당하게 떠졌다.
“원…래 두 개 잖습니까. 아모네와 패셔네.”
주첨기 또한 황당하였다.
그러나 지금 눈앞의 색목인의 눈은 매우 진실 되었다. 거짓말이나 잘 모르는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닌. 아주 당연히 알고 있는 것을 말하고 있는 것이 다다.
순간 주첨기의 머리를 스치고 지나가는 생각이 있었다.
“이곳은 대명제국이 아닙니까?”
대명제국?
신기한 이름이다.
아까부터 이상한 것만 묻는다.
이 세계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처럼.
“이곳은 드래곤의 평원입니다. 어느 나라의 영토에도 속하지 않는다는 것을 설마 모르시는 것….아니겠죠?”
청년의 반응을 보니 정말 모르는 것 같다.
“로스엔. 에드먼. 율리안. 삼강국에 둘러싸여 있지 않습니까?”
로스엔? 에드먼? 율리안?
아무리 기억을 되짚어 봐도 이런 이름을 가진 나라를 들어 본적이 없다. 서역의 나라들에 대해서도 대학사에게 배웠지만. 그런 나라는 없다.
“들어보지 못한 나라입니다. 그렇다면 당신은 어느 나라 백성 입니까?”
“저는 로스엔의 백성입니다. 대륙의 삼강국을 모르시다니… 그렇다면 은인께서는 어느 나라의 백성이십니까?”
“대명제국 입니다.”
삼강 십약국.
대륙의 열세 나라 중에 대명제국이란 곳은 없었다.
“대륙에 대명제국이란 이름을 가진 나라는 없는 걸로 압니다만… ”
“무슨 소리입니까? 어찌 천하의 중심인 대명제국을 모르는 것입니까!”
어조가 격해졌다.
“진…정하세요”
“두 개의 달은 어떻게 된 겁니까?”
“무슨 말씀이신지…”
“본래 한 개여야 맞는 달이 두 개가 떠있습니다. 동쪽엔 본래의 달이 서쪽엔 적색의 이질적인 달 이렇게 말입니다.”
본래 한 개여야 맞다?
자신이 태어났을 때부터 달은 두 개였다. 아니 그 훨씬 전 대륙이 창조할 때부터.
“신서를 보면 주신께서 두 개의 달을 만드신 후에 이 대륙을 창조하셨다 하였습니다. 두 개의 달이 떠 있는 게 맞습니다.”
주첨기가 담담히 고개를 끄덕였다.
이 색목인에게 물어봐서 이끌어낼 대답은 다 끝났다고 생각 되었다.
밖으로 걸어 나온 주첨기.
두 개의 달 중 적색의 달 아모네를 올려다본다.
머릿속으로 색목인의 말을 정리하였다.
대명제국을 모른다. 두 개의 달이 떠있는 것은 당연하다.
달의 이름은 아모네와 패셔네다.
이 평원의 이름은 드래곤의 평원이다.
어떤 나라의 영지도 아니다.
세 강국이라는 에드먼, 로스엔, 율리안에 둘러싸여 있다.
결론은?
“두 개의 달이 떠있는 것이 당연한 세계. 내가 알고 있는 중원과는 다른 곳인가…”
쉽게 단정 내릴 순 없다.
하지만
스스로를 로스엔의 국민이라고 자처하는 색목인의 말을 종합하면 결론은 그것으로밖에 도출 되지 않는다.
지금 밤하늘에 떠있는 두 개의 달.
그리고 그것을 보고 있는 자신.
어느 것도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만약에 이곳이 중원과는 다른 곳이라면.. 하늘이 내게 주신 기회일지도 모른다.”
주첨기는 불안감을 곧 긍정적으로 생각 하였다.
신강에 세우려고 했을지라도.
대명제국의 황자로써 나라를 세우는 과정에 많은 어려움이 따른다. 또 나라를 세웠어도 문제다. 황제폐하께선 대명제국의 황자라는 것을 잊지 말라는 뜻으로 청강검을 내려주셨다.
그것은 곧 대명제국에 반하는 행동을 하지 마라는 뜻이다.
일국을 세우는데 대명제국에 반하지 않는 행동만을 할 수 있을까? 때로는 대명제국의 국경과 마찰이 있을 것이다.
정말 이곳이 대명제국이 존재하지 않는 세계라면?
대 환영이다.
두 손을 들고 반길 일이다.
달이 두 개인 세계이든. 세 개인 세계이든. 네 개인 세계이든.
어느 곳에든 백성은 있긴 마련이고 자신의 이념을 퍼트릴 수 있다.
따라 이곳이 어떤 곳이든지 간에 상관없다.
그렇게 생각하자 답답하던 마음이 한결 나아졌다.
고개를 들었다.
주첨기의 양 눈에 두 개의 달이 박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