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mortal martial artist RAW novel - Chapter 49
제3화 망국의 길
탁탁
블랙의 발소리가 동굴 안에 울려 퍼졌다.
그 소리가 매화일검에게는 유난히도 크게 들렸다. 그의 움켜쥔 두 손에 진땀이 배었다.
매화일검은 숨을 죽인 채 블랙을 노려보았다, 퇴로라곤 블랙이 걸어오는 뒤쪽이 전부다.
매화일검은 침착하게 상황을 정리했다. 싸움보다는 대화가 우선이었다.
“여기 숨어 있었군.”
블랙은 싸늘한 어조로 말했다. 목소리마저도 죽음의 냄새가 진하게 풍겨 나왔다.
무장한 병사들이 일제히 매화일검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침입자다!”
병사들은 매화일검에게 달려갔다.
스슷
매화일검이 검병에 손을 가져가자 병사들은 멈칫거렸다.
블랙은 이미 매화일검의 10보 앞까지 도달해 있었다.
“조약에 어긋나는 일이란 것을 모르는가, 블랙 공작?”
매화일검의 목소리가 쩌렁쩌렁 울렸다.
병사들의 입꼬리가 올라갔다. 블랙은 표정변화 없이 입술을 움직였다.
“가만있다가 갔으면 이렇게 죽지는 않았을 것을…….”
블랙의 몸에서 괴이한 기운이 풍겼다. 검은 눈동자는 더욱 깊은 어둠을 끌어안았고, 불길한 검은 머리칼은 하늘로 치솟아 휘날렸다.
“이번 일을 대국에 고해야 하니 블랙 공작은 길을 비켜라.”
“…….”
그러나 반응이 없다. 대화로 될 수 있는 일이 아니란 것을 바로 직감했다.
매화일검은 검병을 쥔 손에 힘을 주었다. 언제든 출수할 수 있도록 준비하며 긴장을 놓지 않았다. 심장은 가속도가 붙어 빠르게 박동했다. 부풀어 올라 터질 것만 같다. 실로 자신이 상대할 수 없는 기운을 블랙 공작이 뿜어내고 있었다.
매화일검은 조심스레 호흡을 가다듬었다.
매화일검과 블랙 사이에 미묘한 정적이 흘렀다.
블랙의 손이 천천히 올라갔다. 매화일검을 향하다가 집게손가락이 쭉 펴졌다. 집게손가락은 매화일검의 얼굴을 정면으로 가리켰다.
“죽여라.”
블랙의 한마디.
블랙은 우뚝 섰다. 팽팽히 감돌던 긴장감이 폭발했다. 매화일검의 뒤쪽에선 병사들이 파이크를 겨눈 채 돌진했다.
“으아아압!”
함성소리가 동굴에 울렸다. 동굴 윗벽에서 돌조각들이 바닥으로 떨어졌다.
“크윽!”
매화일검은 신음을 삼키며 발검 했다.
적들은 살기가 넘쳤다. 어지간해서는 공격을 포기할 줄 모를 것이다.
매화일검은 마음을 단단히 먹고 검에 자비를 베풀지 않았다.
그의 검이 허공을 가로저었다. 새빨간 선혈이 튀었다.
이어 뒤따르는 비명 소리는 처절했다. 검기가 병사들의 몸을 관통했다.
“으헉!”
관통당한 병사들은 바로 고꾸라졌다. 죽음에 이른 눈동자는 여전히 복수심으로 이글거렸다.
로스엔을 곤경에 빠트리고 아들을 죽인 신명대국에 대한 복수심은 강했다.
왕 데오도로와 네 명의 영운은 언제나 말했다.
모든 원흉은 신명대국이다!
“죽어라, 악마들아!”
로스엔의 병사들이 외쳤다.
매화일검은 눈으로 튄 피를 급히 훔쳐내며 몸을 크게 회전시켰다. 순식간에 몸을 서른 바퀴 이상이나 회전했고, 그만큼 뻗어 나온 수십 가닥의 검기가 곳곳으로 날아갔다.
검기는 쾌속하고 강했다. 병사들의 방패를 그대로 갈라 버린다.
매화일검은 병사들을 공격하며 블랙을 훔쳐보았다. 블랙은 팔짱을 낀 채 싸늘한 미소를 짓고 있었다.
매화일검은 의도적으로 블랙에게 검기를 날렸다.
블랙이 손을 퉁겼다. 그러자 검기는 너무도 허무하게 매화일검에게 되돌아갔다.
동굴 안은 피 냄새로 가득했다. 역겨울 정도다.
거칠게 몰아쉬는 호흡으로 열기가 뜨겁다, 비명 소리가 들리고 얼굴에 아군의 피가 튀자 정신이 혼미하다.
로스엔 병사들은 악을 썼다.
‘빠져나간다.’
이렇게 가다간 죽는 이들만 더욱 늘어날 뿐이다. 매화일검은 결심하고 블랙에게 몸을 날렸다.
눈치채지 못한 사이 블랙의 손톱이 기다랗게 자라 있었다. 검은색이다.
매화일검은 허초로 블랙의 가슴 쪽을 찔렀다. 검은 손톱사이로 검이 막혔다.
매화일검은 급히 검을 거두려 했지만 블랙의 힘이 워낙 강했다.
블랙이 자신의 기운으로 매화일검을 뒤로 튕겼다. 매화일검은 병사들 사이로 튕겨났다.
“크……!”
매화일검은 허공에서 균형을 바로잡았다. 밑에서 솟구치는 파이크들이 그의 뒤를 쫓았다.
매화일검은 병사들의 공격을 피하며 한 번에 몇몇씩 눕혀갔다.
로스엔의 병사들이 죽어나가는데도 블랙은 여전히 팔짱만 끼고 있을 뿐이다.
매화일검은 일격을 노렸다.
그러나 자신의 일격은 통하지 않는다는 걸 안다. 매화일검은 다른 방법을 택했다.
검을 휘둘렀다.
검기가 뻗쳤다.
쾅!
블랙이 서 있는 윗벽에 검기가 부딪쳐 동굴이 흔들거렸다. 우르르 하는 소리와 함께 윗벽이 불안해 보였다.
결국 윗벽은 무너지기에 이르렀다. 매화일검은 그 틈을 놓치지 않고 동굴 밖으로 빠져나왔다.
처소에 있는 감찰단원들이 걱정되긴 하지만 그보다 급한 건 이 사실을 알리는 일이다.
로스엔의 전쟁준비와 무시 못 할 고수가 존재하고 있다는 것!
매화일검은 대국의 국경 쪽으로 몸을 날렸다. 그런데 갑자기 발목이 잡혔다.
“크흡!”
갑자기 밀려드는 고통에 매화일검은 신음을 삼켰다.
검은 기운이 그를 붙잡고 있었고, 살을 좀먹어 들어가는 고통을 선사하고 있었다.
검은 기운은 실처럼 이어졌다. 그것을 따라가다 보니 블랙이 나온다.
블랙이 매화일검에게 다가왔다. 동굴이 완전히 무너져 내려 엄청난 인원의 사상자가 났어도 그는 전혀 상관하지 않는 듯한 얼굴이었다.
블랙은 어깨 위에 떨어진 흙먼지를 툭툭 털어냈다.
“어딜 그렇게 가려고 하지?”
블랙이 뇌까리며 손을 펼쳤다. 검은 기운이 뿜어져 나와 매화일검의 몸을 끌어당겼다.
매화일검은 내력을 일으켜 저항했다. 그러나 무리였다.
매화일검은 블랙 쪽으로 질질 끌려갔다. 검은 기운은 좀처럼 떨어지지 않는다. 오히려 더욱 강하게 옭아맸다.
블랙은 매화일검의 가슴을 짓밟았다. 매화일검이 피를 토했다. 고개를 위로 올렸다. 블랙의 눈동자를 직시한 매화일검은 부들거리는 입술로 말했다.
“저, 정체가 뭐냐.”
발목을 옭아맨 이 기운은 사람의 것이 아니다!
“죽어라.”
블랙의 손톱이 장검만큼 기다랗게 자랐다. 그대로 매화일검의 어깨에 꽂았다가 뺏다.
매화일검의 몸이 고통으로 뒤틀렸다. 그러나 매화일검은 정신을 더욱 똑바로 차렸다.
블랙이 공격한 순간 발목을 옭아맸던 기운이 조금이나마 약해졌다.
“으아압!”
매화일검은 괴성을 내지르며 몸을 일으켰다. 블랙의 눈에서 이채로운 빛이 일렁였다.
매화일검은 검은 기운을 떨쳐내고 몸을 앞으로 굴렀다. 이곳에서 죽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스쳐 지나갔다.
죽는 것은 두렵지 않다. 무인이 되면서 각오한 일이다.
그러나 지금 자신만이 알고 있는 로스엔의 정보는 무슨 일이 있어도 전해야 한다.
매화일검은 자하내력을 일으켰다. 불완전하여 완전히 연공하기 전까지는 사용하지 않으려 했던 무공.
보랏빛이 매화일검의 양손을 감쌌다.
블랙은 심상찮은 기운을 느꼈다. 매화일검의 눈동자에도 보랏빛 자하내력이 감돌았다.
매화일검의 호흡이 거칠어졌다. 이를 기다릴 블랙이 아니다.
블랙의 눈이 번쩍 뜨였다. 매화일검이 딛고 서 있는 지면이 갈라졌다.
매화일검은 옆으로 몸을 날렸다. 그곳도 마찬가지다. 지면은 바위며 돌들이 위로 튀며 심하게 흔들거렸다. 지진이라도 일어나는 것처럼 지반이 융기되고 내려앉길 반복했다.
균형 잡기 힘든 매화일검의 전신으로 블랙의 마법공격이 쏟아졌다. 시야를 가득 메운 염화 수십 개가 매화일검 위로 떨어졌다.
매화일검은 급히 자하내력으로 호신강기를 일으켰다.
콰과과광
일대가 불바다가 되었다. 피어오르는 불 사이로 그림자 하나가 걸어 나왔다.
의복이 모두 불탔다. 매화일검의 입과 코 그리고 귀에서 피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매화일검은 장을 크게 펼쳤다. 그리고 몸을 날렸다. 그가 줄곧 감춰두었던 화산파의 절기 자하신공이다.
매화일검은 질풍처럼 불을 가르며 장을 앞으로 내뻗었다. 보랏빛 자하내력이 불들을 비껴냈고 거친 바람을 일으켜 주위로 불의 회오리가 일었다.
블랙은 놀랐다. 상대는 인간이되 주첨기가 아니다. 단지 주첨기의 수하에 불과하다.
그런데 이 힘은?
블랙의 가슴 쪽으로 매화일검이 장을 날렸다.
‘헉!’
블랙은 아찔했다. 매화일검의 공격을 그대로 맞받아치기엔 엄청난 기운이 서려 있었다.
그러나 이를 피할 블랙이 아니다. 그는 손톱을 세우고 똑같이 마주 공격했다.
매화일검의 장에 블랙의 손톱이 꽂혔다. 둘의 몸이 심하게 떨렸다.
매화일검은 점점 뒤쪽으로 밀렸다. 자하신공은 천하제일의 절기로 무적을 자랑했거늘!
매화일검의 눈동자가 흔들거렸다.
“커헉!”
결국 그는 검은 피를 토했다. 그것으로 끝이었다.
블랙이 입을 크게 벌렸다. 목구멍에서 검은 기운이 뿜어졌다. 매화일검의 전신을 뒤로 날려 보냈다. 매화일검의 몸이 커다란 암석에 처박혔다. 그는 연신 흑혈을 토했다. 몸을 일으키기가 힘들었다. 자하신공이 실패했다는 충격 때문에 그의 표정은 얼이 나가 있었다.
블랙의 검은 기운이 매화일검의 심장을 노리고 날아갔다. 매화일검은 정신을 차렸다. 그러나 늦었다. 매화일검은 팔 하나를 포기하고 살아남기로 마음먹었다. 왼팔로 검은 기운을 막았다. 왼팔은 예상대로 견디질 못했다.
“으아아아악!”
매화일검은 비명과 함께 검으로 자신의 팔을 잘라냈다.
피가 분수처럼 솟구쳤다. 그대로 대국 쪽으로 몸을 날렸다. 전력을 경공술에 쏟아 부었다.
블랙은 어깨를 으쓱한 후 매화일검의 뒤를 쫓았다.
매화일검의 경공술은 화산에서도 알아주었다. 더욱이 극한까지 몰렸기에 그는 바람같이 내달렸다.
블랙은 마치 사냥을 하듯 즐기는 눈치였다.
매화일검은 결국 국경까지 도달할 수 있었다.
누군가 피를 흘리며 급히 도망쳐오고 있다. 아주 죽을 것처럼 안색이 새하얗다.
헛!
“후작님!”
매화일검을 알아본 국경의 법병이 외쳤다. 로스엔 국경수비대가 매화일검 쪽으로 달려 나가자 신명대국의 법병들도 국경을 넘어 달렸다. 매화일검은 로스엔의 병사들을 베면서 법병들 쪽으로 달려갔다.
전쟁?
순간 법병들은 놀랐다.
로스엔 병사들은 매화일검과 법병들을 공격하기 시작했다. 수적으로 로스엔 병사들이 열세였지만 곧 역전되었다. 블랙이 뒤쫓아 오고 있었던 것이다.
매화일검은 한 번씩 뒤를 돌아보며 입술을 깨물었다. 어느덧 그의 입술에서는 피가 철철 흘러넘치고 있었다.
매화일검은 두 눈을 질끈 감았다. 블랙은 순식간에 법병들을 날려 버리고 매화일검 뒤로 다가왔다. 그는 매화일검의 등에 화염마법을 던졌다.
적중했다. 매화일검의 허리가 앞으로 크게 꺾였다. 그의 몰골은 처참하기 그지없었다.
정신이 가물거렸다. 당해도 너무 일방적으로 당했다. 서로의 격차가 너무 심해 도망칠 수밖에 없다.
매화일검은 멀어지는 정신을 놓치지 않으려고 애썼다. 자하내력이 역류했을 뿐더러 블랙의 공격이 여러 번 적중했다. 정신을 붙잡고 있는 것만으로도 모든 힘을 다하고 있는 것이었다.
그때 날카로운 검은 기운이 또다시 날아왔다. 검은 기운은 창이 되어 있었다. 매화일검의 양어깨와 두 다리를 그대로 꿰뚫고 지나갔다.
매화일검은 앞으로 고꾸라졌다. 끈이라고 생각할 때였다. 가늘게 떠진 눈꺼풀 사이로 웬 인형이 보였다.
“폐, 폐하!”
매화일검은 미소인지 고통인지 모를 표정을 지었다.
주첨기는 아침부터 왠지 모를 불길한 기분에 휩싸여 있었다. 미간은 한 번 접혀 풀어지지 않았다.
혜공과 만소자는 멀찍이서 주첨기의 눈치를 살피고 있었다.
진천도 마찬가지였다. 유독 엘리나만이 싱글벙글 웃으며 주첨기에게 접근했다.
“주첨기님.”
엘리나는 코맹맹이소리로 말했다.
주첨기의 품에서 설령이 불쑥 고개를 내밀었다. 설령은 우낏 소리를 내며 눈살을 찌푸렸다.
“무슨 기분 안 좋은 일이라고 있으세요?”
“없소.”
“오늘 날씨도 좋던데 산책이나 나가요.”
“그보다 엘리나 양은 여왕께서 찾지 않으시오?”
[우낏!]설령은 몇 번이나 고개를 끄덕였다.
지난 1년간 엘리나는 엘프의 숲으로 돌아갈 생각이 없어 보였다.
항상 쾌활한 모습으로 틈만 나면 놀러나가자고 졸랐다.
이런 엘리나를 실리아와 설령은 썩 좋게 받아들이지 않았다. 언제나 주첨기 옆을 맴돌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엘리나는 실리아와 설령의 방해 작전에도 굴하지 않았다.
“숲은 주첨기님께서 만들어 주신 결계로 매우 안전한 걸요. 제가 여왕이 되는 것도 200년 후의 일이에요. 그때까지 이곳에 있으려고요. 괜찮겠죠, 주첨기님?”
엘리나가 윙크했다.
주첨기는 무뚝뚝하게 고개를 끄덕인 후 창밖으로 시선을 돌렸다.
“차츰 대국은 완성되어가고 있어요. 모든 나라가 신명대국과 같다면 인간세상도 살 만할 것 같아요.”
엘리나는 주첨기 옆에 섰다. 창밖으로는 언제나처럼 열심히 살아가는 백성들이 보였다.
엘리나는 은근 슬쩍 주첨기의 어깨에 머리를 기댔다.
설령의 얼굴이 벌게졌다. 설령은 두 팔로 엘리나의 뺨을 밀었다. 엘리나의 볼살이 옆으로 밀렸다. 그녀의 순박한 눈이 칼처럼 변했다. 모든 식물과 동물들의 친구인 엘프를 이토록 싫어하고 방해하는 식물은 처음 본다.
엘리나는 ‘대체 넌 왜 날 시시콜콜 방해하니?’ 라는 눈으로 설령을 노려보았다.
설령은 어깨를 으쓱하며 더욱 크게 우낏거렸다.
주첨기가 헛기침을 하며 옆으로 한 발자국 움직였다. 그의 어깨에 몸을 지탱하고 있던 터라 엘리나의 몸이 크게 휘청거렸다.
머쓱해진 엘리나는 뒷머리를 긁적였고 이를 지켜보던 혜공과 만소자, 진천이 살며시 미소 지었다.
설령은 엘리나를 향해 피식 웃었다. 엘리나가 크게 한숨을 내쉬었다.
주첨기는 시녀와 시종 그리고 고수들의 인사를 받으며 황성 밖으로 나왔다.
오늘도 엘리나와의 대결에서 승리한 설령은 기분이 좋아졌다.
그러나 주첨기는 여전히 불길한 기분 탓에 좀처럼 설령을 향해 미소를 지어 주지 않았다.
주첨기는 화원을 거닐었다.
무엇이 나를 이토록 불길하게 만들고 있을까?
이런 생각에 사로잡힌 채 화단의 길을 따라 발걸음을 옮겼다.
불길함의 정체!
주첨기는 갑자기 발걸음을 멈추고 서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의 미간이 더욱 진하게 접혔다.
서쪽에서 부는 바람은 그다지 상쾌하지 않았다.
주첨기는 서쪽을 보라보다가 몸을 날렸다. 번영하는 대국의 모습들이 스쳐 지나갔다.
이윽고 주첨기는 국경 근방에 당도했다. 국경에 가까워지는 것만큼 불길함의 정체에 대해서도 가까워지고 있었다.
[우낏?]주첨기의 얼굴을 바라본 설령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만큼 주첨기의 표정은 진지했다.
속도는 더욱 빨라졌다. 주첨기의 몸이 바람에 녹아들었다. 그는 바람과 함께 국경에 도착했다. 진하게 풍기는 피 냄새가 코를 자극했다.
국경 부근에서 법병들을 무자비하게 상육하고 있는 이가 보였다. 그전에 그에게서 도망치는 매화일검의 모습도 보였다.
주첨기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매화일검이 마법공격에 적중당하며 앞으로 쓰러졌다.
주첨기는 신음을 흘리며 매화일검 앞으로 몸을 날렸다. 매화일검의 몰골은 처참했다.
“폐하…….”
매화일검은 간신히 말했다.
“말을 아껴라.”
주첨기는 매화일검은 부축했다.
“로스엔에서 전쟁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저자는 로스엔의 블랙 공작…….”
그로써 매화일검은 정신을 잃었다.
주첨기는 천천히 매화일검을 내려놓았다.
그때였다. 별안간 주첨기를 향해 집채만 한 불덩이가 날아왔다.
매우 빠르다!
주첨기는 내력을 일으켰다. 그대로 내력을 분출시켜 불덩어리를 반대편으로 되받아쳤다. 불덩어리는 블랙에게 날아갔다.
블랙이 몸을 솟구치며 피했다. 애꿎은 로스엔의 수비대원들이 불덩어리에 휩싸여 비명을 질렀다.
“설령, 후작을 부탁한다.”
설령은 주먹을 쥐며 고개를 끄덕였다.
주첨기는 블랙 쪽으로 걸어갔다. 블랙의 얼굴에 잠시 의아한 빛이 스치고 지나갔다. 곧 블랙의 얼굴은 평소와 같이 무표정하게 변했다.
주첨기와 블랙.
둘의 얼굴에서 감정이 느껴지지 않았다. 그것은 오히려 더욱 불안했다.
블랙의 어깨 뒤로 죽은 법병들과 불타고 있는 로스엔 병사들이 보였다.
주첨기의 입가 근육이 움찔거렸다.
“네가 주첨기란 인간인가?”
블랙이 말했다.
“너는……!”
주첨기는 놀랐다. 일전에 절벽 끝에서 자신에게 기운을 넣어 준 네 명 중 하나가 아닌가? 그 네 기인의 도움이 없었다면 지금 이 자리에 있을 수도 없고 대국은 패망했다!
그런데 이러한 상황에서 만나게 될 줄은 꿈에도 상상 못했다.
“감히 인간 주제에 내 힘을 훔치다니.”
블랙의 양손 위로 검은 구가 떠올랐다. 검은 구는 점점 크게 부풀어 올랐다.
청강검이 스스로 뽑혀 주첨기의 손으로 날아왔다. 주첨기가 움켜쥐자 2미터가 넘는 크기의 푸른 검기가 분출되었다.
“훔치다니?”
주첨기가 말했다.
“크크, 들었던 것보다 약해 보이는군. 주첨기, 내 힘을 훔치고도 그 정도밖에 강해지지 않았던가? 로드께서 너무 저자세로 나온 거로군.”
블랙의 입꼬리가 미끈하게 올라갔다.
“무슨 말인지 모르겠군. 난 네 힘을 훔친 적이 없다.”
“네가 지금 살아 있는 것 . 그것이 바로 그 증거다.”
블랙의 눈동자가 검은 기운으로 미끌거렸다. 그는 천천히 주첨기에게 접근하고 있었다.
“그대들이 준 힘은 의도했던 것이 아니라 우연에 불과한 모양이군.”
주첨기는 상황이 이해가 갔다. 그때 있었던 기연은 자신이 말한 대로 우연에 불과했다.
“네가 준 힘은 무슨 방법을 쓰든 돌려줄 용의가 있으며, 의도되었든 그렇지 않든 은혜를 베풀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지금 네가 저지른 죄는 감히 용서치 못하리라.”
“인간은 재미있군.”
블랙의 손에 떠 있는 구는 이제 웬만한 성인남자의 키보다도 더욱 커졌다.
블랙은 로드가 이해되지 않았다. 실제로 주첨기란 인간을 만나보니 그렇게 강한 것도 아니다.
그동안 이 인간을 죽이기 위해 동족끼리 담합하고 유희 아닌 유희생활을 해온 것을 생각하니 웃음조차 나오지 않는다. 폴리모프를 푼다면 직접 상대해 볼 만하다.
블랙은 결단을 내렸다. 주첨기를 향해 상급마법 다크 라운드를 쏘아 보냈다. 손 위에 떠 있던 두개의 검은 구가 주첨기를 향해 날아갔다.
주첨기의 손에서 청강검이 떠났다. 청강검은 두 검은 구를 관통한 후 되돌아왔다.
주첨기가 몸을 날리려는 찰나 블랙의 몸이 번쩍였다.
스르르르
눈부신 빛 속에서 커져가는 그림자가 보인다. 몸은 커지고 날개가 돋아나며 꼬리가 길게 나왔다.
순식간에 폴리모프를 푼 블랙드래곤이 주첨기를 내려다보았다.
“드래곤!”
주첨기는 위를 올려다보며 부르짖었다. 일전에 레드드래곤과 사투를 벌인 기억이 떠오른지라 다시 한 번 이를 악물었다.
“순순히 죽어라, 인간.”
블랙드래곤이 날개를 펄럭였다. 거친 광풍이 주첨기의 전신을 덮쳤다.
주첨기는 몸이 뒤로 꺾였지만 이내 균형을 잡았다. 블랙드래곤은 그를 내려찍을 생각으로 앞발을 들었다.
드래곤 앞에 선 주첨기는 엄지손가락만 하게 보일 뿐!
블랙드래곤의 발 하나가 주첨기의 몸의 수십 배가 넘는다. 그대로 주첨기의 머리를 짓밟을 생각이었다.
주첨기는 양손을 위로 올렸다. 블랙드래곤의 발이 그의 손에 막혔다.
블랙드래곤은 발에 힘을 주었다. 주첨기도 이에 지지 않기 위해 내력을 조금 더 끌어올렸다.
블랙드래곤은 거친 숨을 내뿜었다. 생각처럼 주첨기가 쉽게 짓밟히지 않는다.
블랙드래곤의 숨결에서 검은 기운이 피어올랐다. 그것은 바로 검은 악령들이었다.
블랙드래곤의 다리를 지탱하고 있는 주첨기 향해 검은 악령들이 날아갔다.
괴상스러운 웃음소리가 주첨기의 귀를 간질였다. 이기어검의 수법으로 청강검을 움직여 악령을 상대했다. 허공에서는 청강검과 악령, 그리고 지상에서는 드래곤과 주첨기의 힘겨루기가 계속되었다.
주첨기의 팔이 굽혀지기도 하고 다시 펴지기도 하며 쌍방에 양보는 찾아볼 수 없다.
블랙드래곤은 이대로는 안 되겠다고 생각했는지 발을 거두며 꼬리를 휘둘렀다. 거대한 꼬리가 빠르게 쇄도했다.
주첨기는 블랙드래곤의 꼬리의 끝을 껴안았다. 두 발을 땅에 박고서 허리를 크게 회전시켰다. 손을 놓았다. 블랙드래곤이 허공으로 튕겼다.
블랙드래곤은 입을 크게 벌렸다. 브레스가 튀어나오는 줄 알았지만 그 속에서 나온 건 수십 마리의 검은 악령들이었다. 족히 100마리는 넘어 보였다. 청강검은 마치 살아 있는 생물처럼 허공에서 춤을 추며 검은 악령들을 베었다.
“역시 생각보다 약하군. 인간.”
블랙드래곤의 어투는 자신만만했다. 자신의 힘 중 아직 절반밖에 보여주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가 불기에 주첨기는 몹시 버거워하는 듯 보였다.
“그런가?”
주첨기의 눈에서 푸른색 안광이 뻗쳤다.
그러기가 무섭게 블랙드래곤의 몸으로 박차 올랐다. 크게 펼쳐진 블랙드래곤의 검은 날개에서 검고 뾰족한 것들 수천 개가 돋아 나왔다.
주첨기는 날개에 감싸였다. 블랙드래곤의 날개는 모든 드래곤의 날개 중 가장 질겼다.
주첨기는 전신을 찔러오는 검은 것들을 피하기 위해 몸을 비틀었다. 내력이 깃든 권으로 드래곤의 몸을 강타했다.
“쿠에에엑!”
블랙드래곤이 질겁했다. 반사적으로 날개가 퍼졌다.
주첨기는 밖으로 빠져나와 청강검을 쥐었다.
“내 모든 힘을 보여주겠다, 인간.”
블랙드래곤이 뇌까렸다.
드래곤의 전력, 브레스다!
특히 마법공격과 함께 양동작전으로 이루어진 브레스 공격은 상위마족이라 해도 피할 수 없다. 그 자리에서 소멸될 뿐이다.
상대는 한낱 인간일 뿐. 로드께서 저자세로 나왔던 건 어처구니없는 일이다.
“죽어라, 인간!”
블랙드래곤이 입을 쩍 벌렸다. 이번에야말로 브레스가 뿜어져 나왔다.
검은색이다. 그것은 열화나 혹은 독무가 아니었다. 검은 악령 수만 마리로 이루어진 죽음의 홍수다. 한번 휩쓸리면 모든 생명력을 잃어버린다는!
주첨기도 이제 상대의 전력을 모두 알았다. 그는 내력의 상당량을 호신강기로 일으켰다.
브레스가 주첨기의 몸을 덮쳤다.
쏴아아아!
일대에 살아 있는 모든 존재들의 생명력이 고갈되었다. 설령은 생명력을 빼앗기지 않기 위해, 매화일검이 거기에 휩쓸리지 않게 하기 위해 그를 꼬옥 껴안았다.
주첨기의 몸을 완전히 휩쓸고도 남을 만한 시간이 지났는데도 블랙드래곤은 브레스를 멈추지 않았다. 이처럼 오랫동안 브레스를 뿜어낸 건 처음이다.
블랙드래곤은 브레스를 멈추며 미소 지었다. 그의 미소는 흉측했다.
그런데 이상하다. 훔쳐갔던 힘이 되돌아오지 않았다.
나의 브레스를 전신으로 받고도 살아남을 존재는 없다!
블랙드래곤은 믿기지 않는다는 눈으로 앞을 응시했다.
“크흠……!”
주첨기는 멀쩡했다. 조금도 생명력을 빼앗기지 않았다. 오히려 푸른 호신강기가 더욱 진하게 발하고 있었다.
주첨기는 블랙드래곤을 향해 말했다.
“바로 그것이 네 모든 힘인가?”
“이럴 수가……!”
블랙드래곤은 할 말을 잃었다. 지금 인간 주첨기에게서 느껴지는 힘은 브레스를 뿜기 전에 느꼈던 힘보다 다섯 배 이상을 초과하고 있었다.
감히 상상도 못한 힘!
어디에 숨어 있다가 이제야 나왔단 말인가. 인간들이 말하길, 바로 이럴 때 ‘사기 당했다’ 라고 했다.
블랙드래곤은 흘러나오려는 신음을 억지로 삼키며 또다시 브레스를 뿜었다.
허공에 계단이 놓여 있는 듯 주첨기는 허공을 밟으며 블랙드래곤을 향해 걸어갔다. 블랙드래곤의 브레스는 그의 호신강기를 소멸시키지 못했다.
“아,아니!”
블랙드래곤이 뇌까렸다.
주첨기에게서 느껴지는 힘은 점점 증가하고 있었다. 방금 전에 경악했던 힘을 벌써 훨씬 넘어서고 있다.
블랙드래곤은 전의를 상실했다.
파핫!
주첨기의 공격이 시작되었다. 검 대신 권이다.
죄인은 고통이란 무엇인지 알아야 한다!
주첨기의 생각이 담긴 권은 내력을 충만히 담은 채 블랙드래곤의 몸을 강타하기 시작했다. 주첨기의 모습은 보이지 않는다. 얼굴, 목, 어깨, 몸, 허리, 다리!
“크아아악!”
블랙드래곤의 비명이 그치지 않았다. 강타당한 부분이 심하게 비틀리며 장난기 심한 어린아이가 가지고 놀다가 버린 인경같이 변해 버렸다.
주첨기의 모습이 나타났다. 강력한 일권이 실린 주먹이 정확히 블랙드래곤의 등 중앙을 강타했다.
블랙드래곤은 앞으로 똬리를 틀며 낙하했다.
쿵!
지면으로 떨어졌다.
블랙드래곤은 입을 열 틈도 없었다. 자신의 엄지손가락만 한 크기의 인간에게 구타를 당하는 기분이란 이루 말로 설명할 수가 없었다.
블랙드래곤은 지면 위에서 고통의 발광을 시작했다.
그는 피를 토했다.
얼마나 맞았던가. 정신이 아득해지고 있었다.
‘이대로 죽는다. 한낱 인간에게 맞아죽다니!’
블랙드래곤은 생각했다.
날개 한 번 펄럭일 힘조차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 고통은 힘을 소진시키고 있다.
주첨기는 구타를 멈추고 블랙드래곤의 눈앞에 섰다.
“대륙이 온전하고 짐이 지금 살아 있는 데는 네 의도되지 않았던 은혜가 있었던 터, 지금 네 목을 베지 않는 것으로 모든 것을 갚았다고 생각한다. 천운으로 살아난다면 기억하라. 다음에 보면 필히 죽일 것이니 눈에 띄지 말거라.”
주첨기가 뇌까렸다. 블랙드래곤은 항변도 제대로 못한 채 숨을 헐떡거렸다. 아직까지는 숨이 붙어 있었다.
가만히 놔두면 죽을지도 모르는 상황이었다.
주첨기와 블랙드래곤의 결전으로 주변은 황폐해졌다. 커다란 기운을 느끼고 고수들과 진천이 멀리서 주첨기를 바라보고 있었다.
주첨기는 몸을 돌렸다.
쿠우우우우
구름 사이로 금빛의 거대한 몸이 나타났다. 갑자기 나타난 금빛의 드래곤이 진천과 고수들을 향해 브레스를 토했다.
“큭!”
주첨기는 바로 진천과 고수들에게 달려가 호신강기를 일으켰다.
전신으로 골드드래곤의 브레스를 막았다.
그사이 골드드래곤은 블랙드래곤에게 날아갔다. 커다란 발톱으로 블랙드래곤의 몸을 움켜잡았다. 그리고 날개를 펄럭였다. 쏜살같이 북쪽으로 날아가기 시작했다.
점점 멀어졌다. 골드드래곤에게 잡힌 블랙드래곤은 허공에 피를 뿌려댔다.
“폐하, 괴수가 도망치고 있습니다.”
진천이 말했다.
주첨기는 고개를 저었다.
“이것으로 다 했습니다. 어차피 하루 이상 생명을 유지하는 건 어려울 것입니다. 지금은 매화일검의 치료가 더욱 급합니다. 빨리 황성으로 데려가야겠습니다.”
진천은 고개를 숙인 후 매화일검을 안았다.
피엘튼 산맥.
드래곤로드의 숨겨진 레어가 있는 곳이다.
매우 아름답지만 한번 들어가면 다시 나온 사람이 없다고 하여 ‘미로의 숲’ 이라고도 불린다.
골드드래곤의 레어 안에서는 거친 숨결만이 들려오고 있었다.
어디선가부터 이어진 혈흔은 레어 안 깊숙한 곳까지 이어졌다.
블랙드래곤은 두 눈을 파르르 떨며 연거푸 각혈을 토했다. 골드드래곤이 이를 안쓰럽게 바라보았다. 한편으론 원망 어린 눈빛을 담고 있었다.
“어째서 그리 무모한 일을 했는가.”
골드드래곤은 한탄이 섞인 질책을 했다. 블랙드래곤의 귀에 들어오는 것이라곤 하나도 없었다. 생명력이 빠져나가기 시작하여 주변은 뜨거운 열기로 가득 찼다.
“푸후,푸후!”
블랙드래곤은 생명의 끈을 붙잡고 싶었다. 그러나 끈은 점점 얇아져 곧 사라질 위기에 처했다. 많은 일들이 블랙드래곤의 상념을 스치고 지나갔다.
골드드래곤은 블랙드래곤의 머리 위에 발을 얹었다. 절대 언령을 통한 힐링이 시전 되었다. 골드드래곤의 몸에서 뿜어져 나온 금빛이 블랙드래곤의 상처 쪽으로 흘러들어갔다.
효과가 있는 듯했다. 상처가 아물었다.
그러나 그뿐이다. 빠져나가고 있는 생명력은 멈추지 않았다.
그 힐링 때문일까? 아니면 수많은 상념의 결과 때문일까? 블랙드래곤의 입이 천천히 열렸다.
“결국 이렇게…….”
블랙드래곤의 목소리는 여전히 음침했지만 힘이 실려 있지 않았다. 다 죽어가는 생물의 전형적인 모습이다.
“이미 끝난 일이다. 생명력이 빠져나가고 있다. 길어야 하루…….”
골드드래곤은 고개를 저으며 눈을 감았다.
익센트리크는 주첨기란 인간을 너무나 과소평가했다. 그리고 결론은 바로 지금 이렇게 눈앞에 펼쳐져 있다.
익센트리크의 죽음이 슬프기도 하지만 그보다 걱정이 앞섰다.
익센트리크가 존재한다면 네 드래곤이 힘을 합쳐 주첨기를 어찌해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익센트리크가 자연으로 돌아간다면 세 드래곤이 모두 힘을 합친다 해도 주첨기를 어찌할 수 있을지 미지수다. 아니, 거의 가능성이 없다고 봐야 한다.
“그는 인간답지 않게 너무나 강했습니다, 로드이시여.”
블랙드래곤이 말했다.
“진작 말하지 않았던가. 우리 모두 힘을 합쳐야 상대할 수 있다고 말이다.”
“하지만 그렇게 보이지 않았습니다. 저는……저는…….”
이제 와서 무슨 말을 하랴. 블랙드래곤은 차마 말을 잇지 못한 채 고개를 숙였다.
주변은 뜨거웠지만 몸은 차가웠다. 꼬리 부분은 벌써 얼어붙고 있었다. 이는 죽음이 상당히 가까워졌음을 뜻한다.
골드드래곤은 안타까운 마음에 그저 고개만 저을 뿐 별다른 말은 하지 않았다.
“로드이시여, 이대로 가다가는…….”
골드드래곤이 눈을 떴다.
블랙드래곤은 마지막 힘을 짜내면서 말하고 있었다.
“멸족될지도 모릅니다.”
골드드래곤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주첨기에 대한 원한을 모두 포기하고 은거에 돌입한다면 멸족은 피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자존심이 강한 드래곤들로서는 반드시 원한을 갚을 수 있는 일종의 복수가 필요하다.
“그렇다, 익센트리크. 네가 살아 있다면 어떤 방법이든 강구해 볼 수 있었겠지만 이제…….”
골드드래곤은 계속 말을 이었다.
“그러나 인간 주첨기에 대한 일은 포기할 수 없다. 이러한 집착어린 우리의 성격이 멸족으로 이끌고 가는지도 모르겠구나.”
“……!”
블랙드래곤의 눈꺼풀이 파르르 떨렸다. 온몸은 분노로 가득 찼지만 이제 자신은 곧 죽는다. 멸족을 막고 드래곤의 위엄을 다시 찾을 수 있는 길은 오직 하나다.
블랙드래곤은 드래곤의 마지막 길을 떠올렸다.
“방법이……있습니다.”
“안 돼!”
골드드래곤은 단칼에 자르듯 말을 끊었다. 그도 블랙드래곤이 생각하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 잘 알고 있는 눈치였다.
“이 길을 가도 뭐라고 할 주신은 더 이상 없습니다. 이 길을 보고 싶지 않습니까? 그리고 이 길을 포기한다면 한낱 인간에게 멸족당하고 말 것입니다.”
골드드래곤은 깊은 상념에 잠겼다. 정적이 그렇게 어색하지만은 않았다. 격한 숨소리가 이따금 정적을 깨고, 빠져나오는 생명력은 주위를 더욱 후끈 달아오르게 만들었다.
“결정은 이미 내려졌다.”
블랙드래곤은 피눈물을 흘렸다.
“나를 먹어라, 골드드래곤.”
블랙드래곤은 날개를 펼쳐 바닥을 덮었다. 온몸이 추욱 늘어졌다.
골드드래곤은 그런 블랙드래곤의 눈을 응시하다 고개를 끄덕였다. 허공에서 교차된 눈빛은 암묵적인 합의를 이끌었다.
골드드래곤은 날개를 활짝 펼치며 입을 크게 벌렸다. 날카로운 이빨들이 블랙드래곤의 흐릿한 눈동자에 맺혔다.
이빨은 천천히 다가왔다. 막 블랙드래곤의 몸을 물려던 골드드래곤은 동작을 멈칫거렸다.
“어쩌면……파멸로 치달을지도 모른다.”
“멸족보다는 낫지. 크크!”
블랙드래곤은 눈을 감았다.
추악!
골드드래곤은 블랙드래곤의 몸을 물었다.
금빛과 검은 기운이 골드드래곤의 주위에서 휘몰아쳤다. 골드드래곤은 더욱 깊숙이 이빨을 박았다.
블랙드래곤이 꿈틀거렸다. 골드드래곤은 블랙드래곤의 살점을 물어뜯었다. 피를 빨아들이고 살점을 먹으며 검은 기운을 흡수했다.
블랙드래곤의 입가에 희미한 미소가 그려졌다. 뼈가 바스러지는 소리, 살점이 씹히는 소리가 레어 안에 울렸다.
골드드래곤은 블랙드래곤의 다리, 얼굴, 꼬리 등 하나도 남김없이 모두 먹어치웠다. 이제 남은 것은 블랙드래곤의 심장뿐!
골드드래곤의 눈에 광기가 어렸다. 거침없이 심장을 물어뜯어 몇 번이나 씹었다.
우그적 우그적
골드드래곤의 그림자는 쉴 새 없이 입을 움직이고 있었다.
뼈 하나 남김없이 모조리 먹어치운 골드드래곤!
뜨거운 숨결과 함께 몸을 웅크렸다. 드래곤하트의 기운이 골드드래곤의 몸 안으로 퍼져 나가기 시작했다.
몸 구석구석을 휩쓸다가 골드드래곤의 정신 속을 비집고 들어갔다.
골드드래곤의 눈과 귀 그리고 코에서 검은 악령들이 고개를 내밀었다. 괴기하게 웃어대다 골드드래곤의 몸 안으로 흡수되었다.
“끄아아아악!”
골드드래곤은 큰소리를 터트렸다. 부들부들 떨리는 이마에 불쑥 뿔 하나가 돋아났다.
검은색이다 골드드래곤의 금빛 어린 눈동자도 점차 피 색깔로 변해갔다. 결국 눈동자가 새빨개졌다.
골드드래곤은 몸을 폈다. 허리 부근에서 날개 두 개가 불쑥 튀어나왔다.
몸 색깔도 변했다. 금색에서 칠흑같이 어두운 검은색으로. 몸은 조금 더 커져갔고 골드드래곤의 괴이한 울음소리도 그치지 않았다.
팟!
뿔 바로 밑, 미간 바로 위쪽에 눈 하나가 새로이 뜨였다. 바로 마룡(魔龍)의 눈이다. 숨결을 한 번 뿜어내자 일순간 바닥에 어두운 기운이 깔렸다.
아무리 기다려도 블랙드래곤과 골드드래곤은 오지 않았다.
정보에 의하면 신명대국의 황제에게 당한 블랙드래곤을 골드드래곤이 낚아채어 북쪽으로 사라졌다고 한다. 하지만 도통 소식이 없는지라 그린은 안절부절못했다.
“설마 주첨기란 인간에게 모두 당한 건 아니겠지?”
“로드와 익센트리크가?”
실버는 은빛 머릿카락을 쓸어 넘기며 히죽거렸다.
“그렇지 않고서야 지금까지 연락이 없다는 건…… 그리고 텔레파시가 통하질 않아.”
“무슨 사정이야 있겠지만 그건 아닐 것 같은데?”
“하지만…….”
“곧 올 거야. 어린 왕이 또 불렀잖아. 가야지.”
“그래, 멍청한 인간 같으니라고.”
그린과 실버는 로스엔의 왕 데오도로를 알현했다.
데오도로는 책상과 책장 사이를 왔다 갔다 하며 실버와 그린을 기다리고 있었다.
“오, 어서 오라!”
데오도로와 실버는 그린을 향해 두 팔을 벌렸다.
실버와 그린은 살며시 고개를 숙였다.
“이미 들어서 알고 있을 테지만 감찰관은 신명국으로 도망쳤고, 블랙과 골드가 실종되었다.”
“예, 알고 있습니다.”
실버가 말했다.
“신명국에서 검사들을 이끌고 본국으로 쳐들어오는 것은 시간문제다. 그러나 섣불리 쳐들어오지는 못할 터, 예상보다 시일이 앞당겨졌으니 실버 공작과 그린 공작은 전국에 징병령을 내려 계획을 완성시켜라. 40만! 40만의 군대가 있어야 할 것이다. 그리고 하루 속히 블랙 공작과 골드 공작의 행방을 찾아라. 그대들과 30만의 군대! 모든 것이 완료되었을 때 그대 스승님의 복수와 내 원한을 갚고 로스엔을 대륙 제일국으로 만들 수 있을 것이다. 그날이 코앞까지 다가왔다.”
데오도로는 주먹을 불끈 쥐었다. 야심에 가득 찬 눈동자가 심하게 일렁거렸다.
신명대국에 복수를 꿈꿀 수 있었던 데 가장 큰 공을 세운 것은 바로 네 공작이다. 데오도로는 실버와 그린을 흐뭇한 눈으로 바라보았다.
“예, 폐하.”
실버와 그린이 동시에 대답했다.
실버가 알현실에서 나오며 말했다.
“그래도 익센트리크가 주첨기란 인간에게 그토록 허무하게 당했다는 소식은 믿어지지가 않아. 아무리 강해 봤자 인간이거늘……!”
“로드께서 몇 번이나 당부하신 말씀이잖아.”
“하긴, 성질 급한 놈이 제 무덤을 판 거겠지. 그런데 익센트리크가 죽어 버리면 우리 계획에 차질이 생기는 거 아냐?”
“그러겠지.”
“어떡하지?”
“어떡하긴, 이미 진행되고 있잖아. 중간에 어떠한 차질이 생기더라고 우리는 이대로 나가면 돼. 인간군대를 이용해 신명국을 치는 거지. 지난 1년간의 노력은 바로 이날을 위한 거야, 아미스타드.”
그린드래곤 니르시즈가 어깨를 으쓱했다.
“설령 로드와 익센트리크가 이대로 돌아오지 않아도?”
“그래, 인간군대 40만을 우습게 보지마. 그 정도로도 주첨기를 죽일 수 있을 거야.”
“우선 그렇게 하도록 하지.”
실버와 그린은 국방대신을 불러 그동안 준비해온 ‘40만 징병’을 좀 더 빨리 실행케 했다. 징병이 될 자들의 명단은 이미 작성되어 있는 상태. 그중 20만은 벌써 차출되어 매일 밤 각지에서 훈련을 받고 있다.
왕성이 문이 열렸다. 40만 징병을 위한 기사대가 로스엔 전역으로 달려 나갔다.
기사들은 자신이 맡은 지역에 도착하기가 무섭게 성문의 경계를 강화시켰다. 징병대상자들이 도망치지 못하도록 하기 위함이었다.
기사는 그 지역의 병사들을 이끌고 청년들을 징병하기 시작했다.
“신명국이 쳐들어온다. 폐하께서 징병령을 내리셨으니 이에 반하지 말라!”
기사들이 외쳤다.
아직 준비가 덜 되어 있는 터라 많은 청년들이 발버둥 쳤다. 기사는 손가락으로 징병될 청년을 가리켰다. 뒤에서 대기 중이던 병사들이 죄수를 연행해가듯 청년을 끌고 갔다.
“전쟁이 끝난 후 다시 돌아올 것이오. 부인께선 염려치 마시오.”
기사는 눈물을 글썽이고 있는 중년여성에게 말했다.
“갑자기 전쟁이라니요, 기사님.”
“신명국에서 도발했소. 신명국의 검사들에 대한 소문은 익히 들었을 것으로 압니다. 그들이 도시에 쳐들어오면 모든 백성들을 갈기갈기 찢어죽일 것이오. 부인의 아들은 로스엔의 병사가 되어 신명국의 검사를 막을 것이니 이를 자랑스럽게 여기시오. 그럼 이만…….”
기사가 몸을 돌렸다.
“어머니!”
청년은 울부짖으며 손을 뻗었다. 하지만 그의 양팔을 붙잡은 병사들이 거칠게 끌고 갔다.
중년여성은 땅에 주저앉아 통곡했다.
사람들이 중년여성을 위로하며 일으켜 세웠다. 멀어져가는 아들을 보는 어머니의 눈은 한없이 서글프기만 했다.
기사는 명단을 보았다. 다음 징병대상자는 모퉁이를 돌아 첫 번째 집에 있다.
그 집에서 청년 한 명이 튀어나와 병사들 반대편으로 내달리기 시작했다.
기사가 손가락으로 가리 켰다.
“잡앗!”
청년은 잘 훈련된 병사들에게서 그리 멀리 도망치지 못했다. 얼마 가지 못해서 붙잡혔다.
기사는 청년에게 불호령을 터트렸다.
“이놈!”
“죄, 죄송합니다.”
“징병하러 온 것은 아는 모양이군.”
“어찌 모르겠습니까? 한 번만 봐주십시오. 저는 술주정뱅이 아버지란 작자를 먹여 살려야 합니다. 제가 군대에 끌려가면 아버지는 굶어 죽습니다.”
“그 점에 대해서는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네 아버지도 징병대상자니까.”
“옛?”
“끌고 가라!”
“한 번만…….”
기사는 단호했다.
모든 징병대상자들에게는 저마다 사연이 있다. 그때그때 그 사연을 수용한다면 군대에 끌려갈 자는 한 명도 없다.
기사는 청년이 나온 집으로 들어갔다. 청년의 말대로 그의 아비가 술을 마시고 있었다. 전형적인 알코올중독자로 코가 새빨갰다.
“뉘시오.”
중년남성은 눈을 게슴츠레하게 뜨며 기사를 바라보았다. 기사 뒤로 병사들이 몰려오자 중년남성은 질겁하며 뒤로 물러났다. 의자모서리에 걸려 뒤로 나자빠졌다.
“징집명령이다.”
“징집이라뇨. 이런 술주정뱅이도 군대에서는 필요하시유? 낄낄낄!”
중년남성은 술에 취해 낄낄거렸다.
“데려가라!”
기사가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그제야 중년남성은 상황이 파악되는지 손을 싹싹 빌며 엎드렸다.
“저는 망나니 아들을 먹여 살려야 합니다. 제가 없으면 그 망나니 아들은 뭘 해서 밥을 처먹습니까요?”
기사는 냉소적으로 웃었다.
“데오도로 황제폐하께서 내려 주실 것이다. 물론 너도 말이다.”
“다 됐어요.”
엘리나는 호흡을 가다듬었다.
옆에서 이를 지켜보고 있던 시녀들이 다가왔다.
반라의 매화일검을 모포로 덮어 주었다. 블랙드래곤의 공격을 받고 심한 부상을 입었다.
하지만 엘리나의 치료 덕분에 호전될 수 있었다. 그녀는 주첨기를 향해 살짝 웃었다. 그리고 힘이 빠졌는지 옆으로 몸을 기울였다.
주첨기는 급히 엘리나를 부축한 후 의자에 앉혔다.
“매번 고맙소.”
주첨기가 말했다.
평소 같으면 배시시 웃을 엘리나지만 지금은 희미한 미소와 함께 잠들어 버렸다.
주첨기가 손수 엘리나를 들어 침대에 눕혔다. 엘리나는 아기처럼 쌕쌕거렸다.
주첨기는 자신도 모르게 엘리나의 머리카락을 귀 뒤로 쓸어 넘겨주었다.
설령이 우낏거리자 주첨기는 헛기침을 하며 매화일검에게 다가갔다.
매화일검이 깨어난 것은 그로부터 한 시진이 지난 후였다.
매화일검은 비로소 정신이 들었다.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황제가 보이자 바로 몸을 일으켰다. 엘리나의 치료가 있었지만 아직은 고통이 남아 있었다.
매화일검은 급히 고개를 숙였다.
“죄송합니다, 폐하!”
차마 얼굴을 들 수가 없었다. 로스엔에 수백 명의 감찰단원들이 있는데 자기 혼자만 도망쳐 나온 것은 결코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었다.
그들의 생사여부를 모른다. 아마도 로스엔의 병사들에게 붙잡혔을 것이다.
“어찌 된 일인가? 자세히 말해 보라.”
매화일검은 로스엔에서 있었던 일을 자세히 고했다. 병사들의 집결지와 그곳에서 발각되어 결국 도망치게 된 상황까지.
“처벌해 주십시오. 감찰관인 저는 감찰단원들을 버려두고 혼자 도망쳤습니다.”
“추후에 다시 이야기하기로 하지.”
“폐하……!”
매화일검은 고개를 숙였다.
‘로스엔은 결국 전쟁을 준비하고 있었다.’
주첨기는 진천과 함께 밖으로 나가 접견실로 들어갔다.
진천의 얼굴은 사뭇 심각했다. 잡혀 있는 법병과 시녀들은 그렇다 쳐도 로스엔에 있을 골드, 실버, 그린, 블랙 이 네 존재는 간단히 넘어갈 문제가 아니다.
그들은 괴수,드래곤이다!
“폐하, 후작의 말대로라면 이는 대국에 커다란 위험이 아닐 수 없습니다.”
“맞습니다, 스승님. 어떻게 네 드래곤들이 로스엔의 왕을 돕게 되었는지는 몰라도 분명한 것은 그들이 지난 1년간 전쟁을 준비하고 있었다는 사실입니다. 그리고 지금 당장 해결해야 할 일은 로스엔에 잡혀 있을지 모를 감찰단원들의 문제입니다.”
“이번 사건으로 로스엔은 건전포고를 한 것이나 다름없습니다. 폐하. 하루빨리 폐하께서 용단을 내리시어 반적의 무리들을 토벌해야 할 것으로 사료됩니다.”
“전쟁은…….”
주첨기는 고민이 되었다. 대국의 기틀이 겨우 마련된 이때 전쟁이 터지면 곤란하다. 하지만 피할 수 없는 전쟁이라면 속전속결로 진행하는 것이 옳다!
“피할 수 없을 것 같습니다.”
주첨기가 말했다.
지난 로스엔과의 대전보다 힘든 전쟁이 될지도 모른다. 아니, 틀림없이 그럴 것이다.
이번에는 지켜야 할 백성이 300만 명이 넘는다.
“로스엔이 숨겨둔 병력과 드래곤들의 존재에 대해 더 많은 정보다 필요합니다. 물론 그전에 현재 잡혀 있을 법병과 시녀들의 신병을 다시 되돌려 받는 것입니다. 스승님께서는 사절단을 급히 조직하시어 신병인도를 요청하십시오. 아! 아닙니다.”
적은 감찰단인 후작을 죽이려 했고, 지금은 감찰단원들을 인질로 잡고 있거나 죽였을 것이다. 사절단을 또다시 보낼시 피해가 속출할 것이 뻔했다.
고수들을 보내도 마찬가지다. 이미 드래곤이란 괴수와 대결해 본 주첨기이기에 그들의 강함을 충분히 알고 있었다.
고수들은 드래곤을 상대할 수 없다. 진천 스승님과 수라혈마 스승님도 데이모스에 탑승해야 가능하다.
“폐하.”
“스승님, 대국 안에 있는 모든 고수들과 법병들을 소집하고, 대국 백성들에게 전시령을 공표하십시오. 그리고 개방고수들과 과거 살문에 있었던 자들로 하여금 음행하여 감찰단원을 구출케 하고, 로스엔의 병력상황에 대해 정보를 모으라고 하십시오.”
주첨기는 신속하게 명을 내렸다. 진천은 포권 후 곧장 밖으로 나갔다. 주첨기는 이마를 감싸며 용좌에 앉았다. 결국 로스엔이 일을 저지르고야 말았다. 우려했던 일이 벌어졌다. 그동안 로스엔을 방치해두었던 것에 대해 후회하기엔 이미 너무 늦었다.
후회는 이번만으로 족하다. 마지막이다. 결국 후회하게 되는 것은 로스엔이 될 것이다.
“로스엔……망국의 길을 자초한 건 바로 너희들이다.”
주첨기는 이를 갈았다.
모든 것이 사실로 판명될 때 전쟁이 아닌 정벌이 시작될 것이다.
그날, 로스엔의 이름은 대륙에서 영원히 사라지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