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mortal martial artist RAW novel - Chapter 53
제7화 형장의 이슬로 사라지다
“스승님, 깨어나셨군요.”
진천이 눈을 떴다. 시야에 가장 먼저 들어온 것은 제자이자 주군인 주첨기였다.
진천은 벌떡 상체를 일으켰다.
“폐하, 전장은 어떻게 됐습니까?”
“스승님의 전공으로 전쟁은 끝이 났습니다.”
“전쟁이 끝이 나다니요?”
오랜 잠이 한 번에 물러났다. 진천은 정신이 바짝 들어 주위를 둘러보았다. 모든 고수들이 염려하는 눈빛으로 자신을 바라보고 있었다.
“설령은…….”
진천은 설령의 왼팔이 사라진 것을 알아챘다.
“스승님이 깨어나시는 데 설령의 공이 컸습니다.”
주첨기가 말했다.
[우끼.]설령은 배시시 웃으며 남은 오른팔로 머리를 긁적였다.
진천은 설령의 얼굴을 집게손가락으로 쓰다듬었다.
“이 은혜를 어떻게 갚아야 할지 모르겠구나. 설령.”
[우끼,우끼.]설령은 몇 번이나 고개를 저었다.
주첨기는 억지로 진천을 눕혔다
“스승님, 좀 더 누워 계여야 합니다. 전쟁은 끝났으니 더 이상 심려치 마시고 좀 더 쉬십시오.”
“아닙니다.”
“스승님, 제자의 간곡한 부탁을 들어 주시지 않으시렵니까?”
“하오나, 폐하…….”
주첨기는 미소를 지으며 일어났다.
진천이 보기에도 전쟁은 이미 끝난 듯싶었다. 그렇지 않고서야 고수들의 얼굴에 어린 저 평온함을 무엇으로 설명할 수 있을까?
“폐하, 제가 얼마나 정신을 잃었습니까?”
“3일입니다. 이제정신을 차리셨으니 편안히 쉬면서 기력을 회복하셔야 합니다.”
“고수들 중 전사자는 없습니까?”
“한 명도 없으니 심려치 마십시오.”
진천은 묻고 싶은 게 무척이나 많았다. 어떻게 전쟁이 끝나고, 로스엔의 왕은 어찌 되었는지, 그리고 앞으로의 행보는 또 어떻게 될지…….
주첨기는 자꾸 일어나려는 진천을 말리고 회의실로 돌아갔다.
“남궁혁, 백성들의 민심은 어떤가?”
주첨기가 물었다.
“성안의 식량창고를 모두 개방한 결과 민심이 조금씩 잡혀가고 있습니다.”
“스승님의 기력이 완전히 회복되면 곧장 수도로 직행할 것이다. 수도로 직행할 때까지 거치는 영지들의 민심을 반드시 바로잡아야 한다.”
“그동안 로스엔의 왕이 본국에 대한 거짓정보로 백성들을 혹세무민하였으나 진실은 애써 말하지 앓아도 곧 알게 될 것입니다. 더군다나 폐하의 하해와 같은 덕심으로 각 영지의 식량들을 백성들에게 나눠준다고 하셨으니 민심이 바로 집힐 것을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폐하.”
“좋다.”
진천의 기력이 완전히 회복된 것은 그로부터 3일 후였다.
주첨기는 로스엔의 대군을 앞세워 수도로 직행했다.
40만 대군과 신명대국의 검사들을 보고도 성문을 열지 않는 성주는 한 명도 없었다.
‘악마 신명국’ 이란 생각이 로스엔 전반에 팽배했다. 수도로 직행하면서 이런 생각을 바꾸기 위해 부단히 노력했다.
그중 대표적인 것이 성에 비치된 식량 창고를 백성들에게 개방하는 것이었다.
백성들은 좋게 말해서 순박하고 순진했고, 나쁘게 말해서 무식했다. 위에서 하는 말이라면 그대로 믿는 것이 바로 우직한 백성들이었다. 그만큼 민심은 상부의 지침에 따라 흔들리기가 쉬었다.
신명대국 만민당의 고수들은 직접 식량을 백성들에게 나눠 줘 신명대국에 대한 오해를 풀어가기 시작했고, 민심도 바로잡혀갔다.
그렇게 수도까지 직행했다. 정확히 한 달 정도 지나서야 수도에 도착할 수 있었다.
전쟁을 떠났던 대군이 돌아오고 있다는 소식은 이미 퍼질 대로 퍼져 있었다.
만민당의 노력 덕분에 로스엔 전역으로 이번 전쟁의 발발원인이 알려졌다.
‘네 마리의 드래곤과 왕좌에 집착한 데오도로의 농간’ 이라는 황당한 내막이 알려지자 민심을 수습하기가 훨씬 수월해졌다.
로스엔의 왕이 사로잡히고 신명대국이 승리했지만 백성들은 의외로 이런 면에 대해서는 냉담했다. 사실상 로스엔의 백성들에게 돌아온 피해는 하나도 없었으니까.
부인들은 자신의 남편과 아들이 돌아온다는 소식 하나만으로도 기뻐서 춤을 추었다.
수도의 관문으로 귀족 천민 구별 없이 많은 사람들이 몰렸다. 전쟁에서 돌아온 남편과 아들을 환영하는 분위기였다.
로스엔 각지에서 몰려든 사람들의 수가 로스엔 대군의 수와 비등했다.
“병사들이 돌아온다!”
수도의 관문은 이산가족끼리 만남의 장으로 변했다.
주첨기와 신명대국의 검사들은 이를 막지 않았다. 오히려 가족을 찾을 수 있도록 많은 편의를 제공했다
아들과 남편을 전쟁터로 떠나보낸 아낙들은 지금껏 편안히 잠 한번 못 이루었다. 그런데 사지 멀쩡하게 돌아온 남편과 아들을 보니 눈물부터 쏟아졌다.
“다행이다. 다행이야.”
눈물바다다.
‘짐이야말로 다행이다.’
주첨기는 흐뭇한 표정으로 사람들을 바라보았다.
서로 부둥켜안고 우는 남편과 아내.
늙은 노모를 향해 뛰어가는 어린 아들.
전쟁이 평화롭게 끝나 천만다행히 아닐 수 없었다.
신명국의 검사들은 늦은 밤이 되어서야 로스엔 왕성에 입성할 수 있었다.
왕성은 깨끗하게 치워져 있었다. 시녀와 시종들도 신명국 검사들을 향해 고개를 숙였다.
주첨기는 그날 밤 로스엔의 모든 문무백관을 불러들였다. 전쟁에 참여했다가 드래곤의 브레스를 맞고 죽은 귀족이 있을 경우 그의 자제가 대신했다.
주첨기는 왕좌에 앉았다.
“로스엔의 역사는 이제 끝났다. 허나, 짐은 그대들을 높이 쓸 것이니 걱정하지 말라.”
로스엔을 정복한 후 최우선적으로 해야 할 일은 내정안정과 민심수습이었다. 둘이 무너지면 언제 반란이 터질지 모르는 일이다.
그러나 로스엔은 주첨기의 의도대로 변해가고 있었다. 다행스러운 일이었다.
주첨기는 이튿날 수도의 식량창고를 개방했다.
신명국을 악마국이라고 매도했던 말들은 이제 옛날이야기가 되어가고 있었다. 당장 눈앞에 떨어진 식량은 신명대국을 악마가 아닌 천사로 만들어 주기에 충분했다.
또한 최소 3만을 제외한 나머지 병사들을 모두 해산시켰다. 물론 주첨기는 이번 전쟁이 평화적으로 끝난 것에 대해 병사들의 전공을 인정하여 모두에게 포상금 1실버씩을 지급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엄청난 자금이지만 주첨기는 민심수습을 위해서라면 아끼지 않았다. 병사들로서는 살아 돌아온 것만으로도 기쁜데 포상금까지 받으니 신명대국에 대해 품었던 악의가 물거품처럼 사라졌다.
차츰 민심이 수습되면서 신명국의 고수들은 로스엔 영토 내의 모든 로스엔 국기를 거두어들이기 시작했다.
로스엔은 이제 망국이 되었다. 망국의 유산은 하루빨리 처리하는 게 옳다.
왕성에 걸린 국기도 내려지고, 그 자리에 신명대국의 국기가 올라갔다.
수로도 들어온 지 3일간, 주첨기와 신명국의 고수들은 몹시 바쁜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었다.
이제 더 이상, 적어도 수도 안에서는 신명국을 욕하는 이가 없었다. 있다면 어떻게 행동해야 할지 모르는 왕족들뿐이었다.
그렇게 민심이 수습되었다. 이제 로스엔의 백성들을 신명국의 백성으로 전환시킬 만한 계기가 필요하다.
주첨기는 로스엔을 정복한 후로 이때를 기다렸다.
“축제 일정은 다 짰는가?”
주첨기가 남궁혁에게 물었다.
“예, 폐하.”
“일주일간 모든 백성들이 고기와 술을 마실 수 있는가?”
“폐하의 명대로 계획했습니다.”
남궁혁이 계획서를 내밀었다.
계획서를 훑어본 주첨기는 흡족하여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
“이틀 후 백성들에게는 축제를, 귀족들에게는 왕성무도회를 선사하라.”
이번 축제를 위해 로스엔 왕궁의 국고 중 2할이 쓰였다. 천문학적인 금액이 아닐 수 없다.
주첨기는 고민 없이 로스엔 전역에서 축제를 시행토록 했다.
“이얏호!”
광대들이 공 다섯 개를 저글링하며 거리를 활보했다. 뒤따르는 악마들의 흥겨운 음악에 백성들은 몸을 들썩였다.
음유시인들은 이른 아침부터 취해서 알아들을 수도 없는 말을 흥얼거렸다. 그런데 분명 음색만은 아름다웠다. 거리는 축제를 노린 상인들로 북적였다. 거리 곳곳마다 커다란 좌판에 온갖 것들이 놓여 있었다.
그곳엔 고기와 술이 가득했다. 좌판 위의 고기와 술이 떨어질 경우 사람들은 직접 창고로 가서 술항아리를 꺼내고 돼지를 잡아 구웠다.
거리마다 맛있는 냄새로 코를 찔렀다.
“이런 축제는 처음이야.”
중년 사내 더스크가 말했다. 그는 수도에 살았던 일반백성 중 한 명으로 이번 전쟁에 끌려가기도 했다.
더스크는 좌판 위에 놓인 술병을 가져와 친구 워치에게 말했다.
“축제도 축제지만 일주일 동안 술과 고기를 마음껏 마실 수 있다니 천국이 따로 없어.”
“이얏호!”
더스크는 어린아이처럼 광대의 뒤를 따르며 춤을 추었다.
한참을 추다 보니 온몸이 땀으로 가득했다.
뒤따르던 워치가 기다렸다는 듯 차가운 맥주 한 잔을 내밀었다.
더스크는 그것을 단숨에 들이켰다.
“아, 술맛 좋다!”
“오히려 이번 전쟁을 기뻐해야 할까?”
“그거야 두고 봐야지. 황제폐하께서 말씀하신 대로 로스엔을 그렇게 통치해 주실지 말이야.”
“신명대국에서 온 상인들의 말에 따르면 이미 신명대국을 그렇게 통치하고 계시다는걸? 그동안 퍼졌던 소문들은 모두 왕성에서 나왔다는 거 알고 있지?”
“왜 모르겠어. 이제는 모두 다 아는 사실인데.”
“신명대국을 갔다 온……그래, 바스 군! 모두들 신명대국을 욕할 때 바스만 그 소문은 말도 안 된다고 했지. 그때 누가 그랬더라? 신명대국은 악마국이니 모두 죽여 버려야 한다고.”
“자네는 어떻고? 어찌 됐든 좋은 게 좋은 거 아닌가. 사실 우리 같은 평민들은 누가 왕이 되고 어떤 나라가 세워지는가는 상관없잖아. 황제폐하께서 신명대국처럼 앞으로 2년간 모든 세금을 면제해 주시겠다고 하셨으니 우리로서는 더욱 좋은 일이지. 그리고 이걸로…….”
더스크는 주머니에서 실버 한 잎을 꺼냈다.
“우리 마눌님 몰래 맥주도 사먹을 수 있고 말이야.”
“자네 부인도 참 딱하지. 내가 보기엔 일부러 속아 주고 있는 것 같은데…… 전쟁에 참여했던 모든 병사들에게 1실버씩 지급되었다는 것은 누구나 다 아는 사실이잖아.”
워치가 말했다.
“우리 마눌님도 알고 있을까? 아냐, 알고 있는데 안 빼앗아 갈 그런 상람이 아니지. 암, 그렇고말고.”
“전쟁에 끌려갔다 와서 안쓰러웠던 모양이지. 그런데 내 마누라는 뭐야. 집에 도착하자마자 왕성에서 받은 돈부터 찾더군.”
“흐흘, 그거 안됐군.”
더스크의 눈은 초승달이 되었다.
축제는 흥겨웠다. 술도 고기도 음악도, 어느 것 하나 부족하지 않았다. 언제 전쟁이 벌어졌냐는 듯 모두의 얼굴에서는 미소가 떠나질 않았다.
밤이 되었다. 서서히 신명대국의 황제 주첨기에 대한 업적과 신의 경지에 달한 검술실력이 술안주로 오르기 시작했다.
각 귀족가의 저택으로 신명대국의 황제 인이 찍힌 초청장이 배달되었다.
귀족 가에서 마차들이 출발했다. 축제의 열기로 가득 찬 거리를 지나 왕성에 속속 도착했다.
신명대국의 황제는 로스엔을 속국으로서가 아니라 흡수, 통합하겠다고 이미 발표해놓은 상태다. 기존의 로스엔 귀족들은 미래가 불투명했다. 그 와중에 개최된 무회에 로스엔의 전 귀족이 참석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의 인파가 몰렸다.
무도회장 현관 앞에서 신명대국의 고수 넷이서 귀족들을 맞아들였다.
“어서 오십시오.”
모용휘가 말했다.
귀족들은 고수들의 눈치를 살피며 조심히 들어갔다. 엄숙한 밖의 분위기와 달리 무도회장 안은 발랄한 음악으로 가득 차 몹시 흥겨운 분위기였다.
로스엔 귀족들은 자신이 할 수 있는 한 가장 멋들어지게 차려입었다. 귀부인들은 찬란한 원피스와 보석을 하고 나왔고, 귀족들은 수염을 한껏 치장했다.
“황제폐하께서 오셨습니다.”
300여 명의 고수들이 한 번에 후문에서 나왔다. 맨 뒤로 주첨기와 진천이 나란히 들어왔다.
귀족들은 들었던 와인 잔을 내려놓고 고개를 숙였다. 가문의 운명이 결정될지도 모르는 중요한 자리다. 귀족들은 손가락의 움직임조차 조심했다.
주첨기가 단상 위의 왕좌에 앉았다.
“악사는 악기를 계속 켜라.”
주첨기가 왕실 악사 단에 명했다.
그의 등장으로 음악이 부드럽고 고풍적인 풍으로 바뀌었다.
―계주.
―예,폐하,
―조사는 모두 끝났는가?
주첨기는 로스엔 귀족들의 사생활은 물론 그들의 정치적 성향에 대해 조사하라는 명을 내렸었다.
―예.폐하.
―반신명대국의 성향을 가진 이들과 탐관오리 격인 이들을 오늘 다시 한 번 잘 관찰해 보고 짐에게 보고하라.
무도회는 여느 무도회와 다를 다 없이 진행되었다. 고수들은 귀족들을 친근하게 대하며 대화를 나누었다.
계주는 이날 모든 귀족들과 짧게 한두 마디를 나누었다. 고수들에게서도 대화내용을 들어 마음속으로 보고할 바를 간추렸다.
짝 짝 짝
“모두들 춤을 잘 추는군.”
주첨기가 박수를 쳤다.
로스엔 귀족들은 멋들어진 손동작과 함께 허리를 숙여 답례했다.
주첨기는 악사들에게 손짓했다. 음악이 멈추었다.
“그대들은 대부분 이번 전쟁에서 짐에게 충성을 맹세했다. 그렇지 않은가?”
주첨기가 물었다.
“예,폐하! 그렇습니다.”
로스엔 귀족들은 미리 짜기라도 한 듯 동시에 말했다.
“짐은 그대들 같은 충성스러운 신하를 얻어 한없이 기쁘다. 그대들에게 짐의 마음을 보여 주겠다.”
주첨기는 뒤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진천이 바깥쪽으로 눈치를 보내자 시종 수백 명이 조그마한 상자 하나씩을 들고 들어왔다.
주첨기는 귀족들을 턱짓으로 가리켰다. 시종들은 귀족들에게 붉은 상자를 건넨 후 돌아갔다.
“열어 봐도 좋다.”
귀족들은 조심스레 상자를 열었다. 상자 안에는 금오 만든 단도 한 자루가 들어 있었다.
“황공하옵니다, 폐하!”
귀족들은 저마다 누구 목청이 큰지 내기라도 하듯 크게 외쳤다. 주첨기는 고개를 끄덕이며 악기를 켜라는 듯 손짓했다. 음악이 다시 흘러나왔다.
몇 잔의 와인이 분위기를 화기애애하게 이끌었다. 늦은 밤, 두 개의 달이 높게 떴을 때쯤 분위기는 절정을 향해 달려갔다.
누가 보기에도 훌륭한 무도회였다. 정작 이번 무도회의 주인공이라고 할 수 있는 황제 주첨기는 춤 한 번 추지 않고 와인 한 모금도 마시지 않았다.
감정이 실리지 않은 얼굴 속의 눈동자는 귀족들의 행동거지, 어투 하나하나를 면밀히 살피고 있었다.
이미 데오도로가 로스엔을 왕권국가로 만들어놓았다. 사병을 움켜쥔 귀족이 있을까 했지만, 그런 귀족들은 진즉에 처형당하거나 유배를 떠났다. 대부분의 권력은 데오도로와 네 명의 공작에게 몰려 있었다.
로스엔이 전쟁에서 패해 로스엔 정권이 무너지자 기존 귀족들의 취약한 권세가 그대로 드러났다. 변변찮은 사병도 없고, 징병을 할 권한도 없음, 그들이 다스리는 땅도 없었다. 로스엔 내 모든 땅의 주인은 데오도로였다.
데오도로는 귀족들에게 땅을 세습으로 내준 것이 아니라 녹봉 대신 땅에서 나오는 세금을 일부분 받을 수 있는 정책을 펼쳤다.
이러한 상황은 주첨기에게는 금상첨화나 다를 바 없었다.
그래도 황권을 강력하게 만들고, 진정한 로스엔 지역의 주인으로 군림하기 위해서는 철저히 내정을 친(親)신명대국파로 교체해야 했다.
주첨기는 고수들에게 명을 내렸다. 축제가 아직 끝나지 않은 어느 날 점심이었다.
광태랑은 붉은 벽돌의 저택으로 성큼성큼 걸어갔다.
“문을 열어라.”
경비병 둘에게 말했다.
“거, 검사님이십니까?”
“이 몸이 바로 신명대국의 백작 광태랑님이시다. 황명이 내려졌으니 당장 비켜라.”
“옛!”
광태랑은 저택 안으로 들어갔다.
저택의 식솔들은 쳐들어오듯 들어온 광태랑을 보며 소스라치게 놀랐다.
광태랑은 키르만 백작을 찾아왔다. 데오도로가 개정한 내정에서 반신명대국파의 선주에 섰던 자다.
“키르만 백작은 어디 있느냐.”
광태랑은 무시무시한 눈으로 시녀에게 물었다.
시녀는 무서워서 제대로 대답하지 못했다. 몇 번 다그친 후에야 저택의 3층 서재에 있다는 말을 들을 수 있었다.
쾅
서재 문이 박살 났다.
“누구냐!”
키르만 백작은 크게 놀랐다.
서재 문을 부수고 들어온 것은 다름 아닌 신명대국의 검사였다.
키르만 백작은 신음을 삼켰다. 신명대국에 정권이 넘어갔을 때 이런 일을 대충 짐작하고 있었다.
“나, 날 잡으러 온 것인가?”
키르만 백작이 물었다.
광태랑은 서재의 탁상에 올려진 의복꾸러미를 발견했다. 키르만 백작은 도망칠 준비를 하고 있었던 게 틀림없다.
광태랑은 입술을 씰룩였다.
“그렇다. 너를 반역혐의로 체포하라는 황명이 내려졌다.”
광태랑이 목을 좌우로 꺾으며 키르만 백작에게 다가갔다.
키르만 백작은 부질없는 짓인 줄 알면서도 황급히 레이피어를 뽑아 들었다.
“파핫!”
광태랑이 기합을 토했다.
백작은 제풀에 놀라 뒤로 넘어졌다.
광태랑은 낄낄 웃으며 키르만 백작을 제압했다.
키르만 백작은 이미 가족을 타국으로 피신시켰는지 저택에 아무도 남아 있지 않았다.
광태랑은 키르만 백작을 후송마차에 태우고 왕성의 지하 감옥으로 향했다.
반신명대국파였던 귀족들, 재물만 탐해 백성들을 괴롭혔던 귀족들, 반란을 꾀했던 귀족들이 신명국의 고수들에게 붙잡혀 줄줄이 지하감옥에 갇혔다.
그 수가 전체 귀족의 절반이 넘었다. 주첨기는 신명대국법에 따라 귀족들을 처벌했다.
적게는 파면만 당한 이도 있었지만, 반신명대국파의 수괴로 전쟁을 일으킨 키르만 백작 같은 경우엔 사형이 내려졌다. 로스엔의 왕족들도 전범혐의로 체포해놓았다. 단 하루 만에 속전속결로 체포에서 재판까지 이루어졌다.
로스엔의 내정은 이 일로 크게 흔들렸으나 백성들은 귀족들의 일에 관심이 없었다. 오히려 탐관오리라고 소문났던 귀족들이 잡혀갔다는 소식에 ‘신명대국 만세!’를 부르짖는 이들도 있었다.
주첨기는 정권을 친신명대국파로 개혁했다. 내정개혁에서 살아남은 귀족들은 한숨을 몰아쉬었다.
주첨기는 남은 귀족들을 불러들였다. 고수들과 귀족들이 모두 모인 자리에서 말했다.
“기존의 로스엔 영토에서 자잘한 영토의 이름은 변함이 없으나, 이 커다란 로스엔국 영지 전체를 통틀어 ‘평서(平西)’라 칭하고, 진천 대공작을 평서왕으로 봉해 신명대국 평서지역을 통솔하길 명한다.”
진천의 눈이 번뜩 뜨였다.
귀족들과 고수들이 웅성거렸다.
주첨기의 이 발표로 로스엔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 나라가 되었다. 로스엔은 사라지고 신명대국에 흡수되었다.
“감축 드립니다, 평서왕이시여!”
고수들이 진천에게 포권했다.
진천은 손을 내저었다.
“폐하, 신 폐하의 명을 받들 수 없습니다. 미천한 신이 왕이라니요. 아니 될 말씀이십니다.”
대륙을 통일하겠다고 다짐할 당시부터 생각하고 있었다.
일제이왕(一帝二王)!
한 명의 황제와 두 명의 왕!
목숨과 바꿔도 아깝지 않을 신하 둘을 왕으로 내세워 넓은 대륙을 통치하는 데 수월케 하기 위함이다.
“평서왕, 황명이다.”
주첨기가 단호한 어투로 말했다.
“……받들겠나이다.”
진천은 대공작에서 하루아침에 로스엔, 아니 평서지역을 통솔하는 왕이 되었다.
주첨기가 이어서 말했다.
“큰 전공을 세운 계주와 남궁혁을 후작으로 봉하니, 평서왕을 도와 평서지역을 번영케 하라.”
“성은이 망극하옵니다. 만세 만세 만만세!”
계주와 남궁혁은 크게 절했다.
로스엔의 기존 귀족들은 부러운 눈으로 계주와 남궁혁을 바라보았다. 그들은 계주와 남궁혁 밑에 재배치되었고, 정권은 신명대국의 손아귀에 완전히 들어갔다.
정권개혁에 이어 해야 할 일은 정권을 유지시킬 기사단과 병사의 재정립이었다.
“또한…….”
주첨기는 탄력을 받았다. 빠른 결단력과 추진력으로 밀어붙였다.
남은 3만의 병력 중 2천이 로스엔 왕국 소속의 여러 기사단원들이고, 2만8천이 왕성을 보호했던 친위기마병과 보병들이었다.
“로스엔 왕국 기사단의 이름을 평서기사단이라 바꾸고 기사단장에 광태랑 백작을 임명하고, 2만8천의 병사를 평서왕군이라 하여 통솔권을 평서왕 진천에게 내린다.”
주첨기의 목소리에 실린 내력이 왕성 내에 웅웅거렸다.
광태랑과 진천이 무릎을 꿇었다.
‘하―!’
귀족들은 주첨기의 추진력에 다시 한 번 놀랐다. 민심이 돌아오기가 무섭게 로스엔의 이름을 변경하여 새로운 왕을 봉하고, 정권과 군가를 장악하여 완벽한 신명대국의 영토로 만들었다.
로스엔이 망하고 신명대국이 들어섰다. 이를 확고히 할 마지막 일이 남아 있다.
“내일 저녁 전범국왕 데오도로와 왕족들을 처형할 테니 그리 알라!”
통일의 그날까지 조금은 잔인해질 필요도 있었다.
축제가 끝나는 마지막 날, 그 피날레를 장식할 것은 전범국왕 데오도로의 참수형 이었다.
민심이란 것은 참으로 묘하다. 어제 흑(黑)이었던 것이 오늘 백(白)이 될 수도 있고, 내일 다시 흑이 될 수도 있는 것이다.
백성들의 민심은 신명대국으로 완전히 돌아섰다. 그 단적인 예로 백성들이 참수대로 후송되는 데오도로의 마차에 돌을 던진 것을 들 수 있다.
고수들이 나서서 백성들을 말렸다. 자칫 잘못했으면 데오도로는 참수대에 도착하기도 전에 백성들이 던진 돌에 맞아 죽을지도 몰랐다.
“블랙!골드! 어디 있느냐. 어서 나를 구해 주고 저 악마들을 죽여야 하지 않느냐!”
데오도로는 하늘을 향해 외쳤다.
“전범왕이 괴수들을 부른다!”
간사한 혀로 전쟁을 일으킨 드래곤들은 백성들의 머릿속에 괴수로 박혀 버렸다.
백성들은 데오도로에게 돌을 던졌다.
“컥!”
데오도로의 얼굴에 적중했다.
데오도로는 자신에게 돌을 던진 백성들을 노려보며 외쳤다.
“내 모두 너희들을 기억하고 있다. 내 설사 죽더라도 원귀가 되어 너희들을 모두 데리러 오겠다.”
섬뜩할 만큼 처절한 음성이다.
백성들은 흠칫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무수히 많은 돌들이 다시 데오도로를 향해 날아갔다.
파팟
신명대국의 고수 모용휘가 백성들이 던진 돌들을 다 잡아냈다.
그는 백성들에게 말했다.
“더 이상 돌을 던지지 마시오. 황제폐하께서 전왕에 대한 예우를 갖추라고 명하셨고.”
“검사님, 그런데 저자가 드래곤들을 부르고 있지 않습니까?”
소문은 비마보다 빨리 달린다. 백성들 모두 그린 공작의 일을 알고 있었다. 드래곤으로 변해 피아를 가리지 않고 브레스를 쏟아 부었던 그 일!
“그린드래곤…… 그 괴수의 브레스에 우리 남편이 해골로 변해 버렸습니다. 어찌 돌을 던지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검사님?”
여인은 눈물을 뚝뚝 흘렸다.
“설사 괴수를 부른다 할지라도 황제폐하와 평서왕께서 계신 이상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더 이상 돌을 던지는 자는 용서치 않을 것이다. 지엄하신 황명이다!”
광태랑이 말했다.
광태랑과 모용휘는 겨우 데오도로를 참수대까지 후송했다. 참수대 앞에서 수많은 구경꾼들이 모여 있었다. 데오도로가 도착하자 그들은 야유를 퍼부었다.
병사들이 수레에서 데오도로를 끌어냈다. 데오도로의 몰골은 말이 아니었다.
며칠 사이에 몹시 야위었고 머리는 미친 듯 산발 했으며 두 눈엔 핏발이 서 있다.
스스로를 자학한 흔적도 몸 곳곳에 보였다.
“우우우우우!”
백성들이 야유했다.
“이거 놔라, 미천한 것들아! 내 발로 가겠다.”
데오도로가 외쳤다.
“그리하라.”
모용휘가 말했다.
데오도로는 족쇄를 철컹거리며 참수대의 계단을 올랐다. 무릎을 꿇지 않자 병사들이 올라가 억지로 꿇어앉혔다.
병사들이 데오도로의 얼굴에 흑면포를 씌우려고 하자 데오도로가 발버둥 쳤다.
“쓰지 않겠다!”
모용휘가 고개를 끄덕이자 병사들도 더 이상 흑면포를 씌우려 하지 않았다.
대신 참수대 위에 목을 올려놓고 칼을 채웠다.
데오도로는 목을 빼려고 안간힘을 썼다. 그럴수록 목에 상처가 생겨 피가 흘러나왔다.
“죄인 데오도로는 들어라! 그대는 사악한 괴수들을 부려 전쟁을 일으킨 전범국왕이다. 전쟁의 모든 책임을 물어 그대에게 참수형을 내린다. 신명대국 황제, 주첨기!”
모용휘는 황지를 읽었다.
“크큭!”
데오도로는 코웃음쳤다.
“죽기 전에 마지막으로 할 말이 있는가?”
데오도로는 핏발이 선 눈으로 야유를 퍼붓는 백성들을 노려보았다.
“나를 향해 야유를 퍼붓는 이 미천한 것들아! 그리고 지독한 신명국의 악마 자식들아! 내 죽어서 원귀가 되어 너희들에게 천벌을 내릴 것이다. 반드시! 기필코! 내 복수하러 다시 나타나리라.”
“우우우우!”
백성들은 여전히 야유를 퍼부었다.
모용휘의 눈짓을 받은 광태랑이 병사들에게 수신호를 보냈다.
병사가 참수대의 노끈을 향해 걸어갔다. 잘 별러진 칼을 높이 치켜들어 노끈을 자를 준비를 하였다.
이대로 노끈이 잘리면 참수대 위의 커다란 칼날이 떨어져 죄인의 목을 벨 것이다.
“더 이상 없는가?”
“블랙!골드! 짐이 이토록 치욕을 당하고 있거늘! 썩 나타나지 못할까? 이, 이…….”
데오도로는 끝까지 씩씩거렸다.
모용휘는 혀를 차며 고개를 저었다. 광태랑과 함께 참수대의 끝으로 이동했다.
“형을 집행하라!”
광태랑과 모용휘가 동시에 외쳤다. 병사는 참수대의 노끈을 향해 검을 휘둘렀다.
휙
검이 노끈을 잘랐다. 덜컹 하는 소리와 함께 거대한 날이 데오도로의 목을 향해 떨어지기 시작했다.
쓰악
한순간이다
백성들은 눈을 질끈 감았다.
그러나 군중심리란 참으로 묘해서 누군가 환호성을 울리자 곧 일파만파로 번져나갔다.
이로써 로스엔의 지계혈통이 끊겼다. 광태랑은 잘려나간 데오로도의 목을 급히 수거해 수레에 실었다.
데오도로의 처형을 기점으로 왕족에 대한 처벌이 연이어 집행되었다. 외성에 갇혀 있던 전왕 아실리안과 그 5촌까지 일족 300여 명이 넘는 거대한 핏줄이 로스엔 오지로 흩어졌다.
오지 중에서도 오지!
한번 들어가면 살아서는 나오기 힘들다는 미로의 늪, 어둠의 숲, 빨간 갈대밭 등으로 보내졌다.
그렇게 해서 로스엔 왕족은 완전히 무너졌다. 이로써 로스엔이라는 나라는 역사의 한 페이지로 사라졌다.
“폐하, 집행이 모두 끝났습니다.”
광태랑과 모용휘가 보고했다.
주첨기는 창밖을 바라본 채 가만히 입을 열었다.
“알았다.”
모든 상황이 종결되고 로스엔을 흡수하였거늘 가슴이 씁쓸했다.
“폐하.”
진천이 말했다.
“예, 스승님.”
“전쟁은 평화롭게 끝나고 대국의 영토가 확장되었는데 왜 그런 표정을 짓고 계십니까?”
“묘한 민심 때문입니다.”
주첨기는 자조적인 미소를 지었다.
창밖으로 참수대까지 압송되어가는 데오도로의 모습을 보았다. 데오도로를 현왕이라고 칭송하던 백성들이 돌을 던지기까지 불과 며칠도 걸리지 않았다.
순진하다고 해야 할이지, 변덕이 심하다고 해야 할지 갈피가 잡히지 않았다.
“전쟁이 일어나기 전에 백성들이 로스엔의 왕을 칭송하였다지만 로스엔의 왕은 거짓으로 백성들을 꾀어낸 것에 불과했습니다. 거짓은 결국 밝혀지고 진심이 통하는 법입니다. 폐하께서는 언제나 백성들을 진심으로 대하시고 치세를 하시지만 이번 일을 마음에 새겨두어 스스로를 경계해야 할 것으로 생각됩니다.”
“그렇지요.”
주첨기는 고개를 끄덕였다. 이번 전쟁을 통해 새롭게 느낀 바가 많았다.
“그런데 남은 두 드래곤은 보이지 않는군요.”
“듣자 하니 드래곤이란 괴수는 수천 년을 산 지고의 존재라더군요.”
“그렇습니까?”
“예,폐하. 폐아의 생명을 구해 주고 기운을 불어넣어준 것이 드래곤들이었다니 매우 놀랍습니다. 폐하께서는 그 괴수들의 힘을 받아 대흑마괴를 물리쳐 대륙을 구원하셨습니다. 결코 정당하지 못한 일에 사용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힘을 되찾기 위해 전쟁을 일으키려 했다는 점에서 경악했습니다. 그들은 수천 년을 살아오면서 집착과 욕심만 키워온 모양입니다.”
“집착과 욕심이아…….”
‘네가 복수해야 할 상대는 짐이 아니라 바로 너 자신의 욕심과 왕좌에 대한 집착이다.’
주첨기는 문득 자신이 데오도로에게 했던 말이 생각났다. 더욱 씁쓸한 마음으로 차를 한 모금 들이켰다.
“폐하…….”
진천이 조심스럽게 말을 꺼냈다.
“예, 스승님.”
“폐하께서는 대륙을 통일하시려고 결심하신 것입니까? 저를 평서왕으로 봉하신 걸 보니…….”
“그렇습니다. 전쟁이 없는 이상국을 건설하기 위해서는 대륙통일이 필수적입니다.”
“잘 결심하셨습니다, 폐하. 소신, 목숨이 다하는 날까지 충성을 다 바쳐 폐하의 대업을 보필하겠나이다.”
“스승님……!”
주첨기는 스승과 인연을 맺어 준 천지신명께 감사했다.
“스승님, 저는 내일 대국으로 돌아가겠습니다. 스승님께 대사를 미루고 떠나는 것 같아 마음이 여간 불편하지 않습니다.”
“폐하, 신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이튿날 아침, 주첨기는 평서지역에 고수 100명을 남겨둬 평서왕 진천을 돕게 했다. 그는 250명의 고수들과 함께 로스엔의 수도를 떠나 신명대국으로 향했다.
매화일검은 대국이 로스엔을 정벌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더군다나 고수들은 하나도 죽거나 부상을 입지 않았다.
“폐하……폐하!”
매화일검은 주먹을 쥐며 바르르 떨었다.
그는 법병들 앞에 섰다. 법병들은 잔뜩 굳은 그의 표정을 보고 긴장했다.
꿀꺽꿀꺽 침 넘어가는 소리가 들렸다. 이윽고 매화일검의 입이 열렸다.
“대국이 승리했다. 폐하께서는 로스엔을 정벌하셨고, 그 지역을 평서라고 칭해 진천 대공작님을 평서왕으로 봉하셨다. 전쟁이 끝났다.”
매화일검은 벅찬 가슴으로 말했다.
“와아아아아!”
법병들은 할버드를 치켜세우며 함성을 내질렀다.
“전쟁이 끝났다!”
“신명대국 만세!”
“황제폐하 만세!”
법병들의 환호성은 좀처럼 잦아들지 않았다.
그들의 솔리를 듣고 백성들이 몰려들었다. 328구역의 비참한 소식에 우울해하던 백성들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무슨 일이야?”
중년사내가 물었다.
“전쟁이 끝났습니다. 황제폐하께서 로스엔을 정벌하셨답니다.”
청년 법병이 답했다.
“정말인가?”
“그렇습니다. 매화일검 후작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오오! 여보게들, 전쟁이 끝났다네. 황제폐하께서 로스엔을 정벌하시어 전쟁이 끝났다네. 전쟁이 끝났어!”
중년사내는 거리를 뛰어다니며 외쳤다.
매화일검은 이 기쁜 소식을 알리려고 황성으로 뛰어 들어갔다.
마치 기다리고 읶었다는 듯 드워프 노커 젠달리프가 다가왔다. 그는 흥분에 가득 찬 표정이었다.
“매화일검, 이번에 폐하께서 잡으신 실버드래곤을……그러니까 친우동족들에게 복수의 기회를 줄 수 있겠나?”
“무슨 말씀이십니까?”
“나와 여기 있는 동족이 레드드래곤의 노예생활을 했던 것처럼 친우동족들도 실버드래곤에게 붙잡혀 노예생활을 하고 있다네. 그들도 실버드래곤에게 엄청난 원한을 가졌을 텐데, 그들에게 실버드래곤을 해체할 기회를 주고 싶네, 키키키, 우리 때처럼…….”
젠달리프는 레드드래곤을 해체했던 기억이 떠올라 실실 웃었다.
“제가 결정할 문제가 아닙니다. 폐하께 말씀드리십시오.”
“주첨기님은 지금 전장에 나가셨지 않은가. 한시라도 빨리 이 기쁜 소식을 친우동족들에게 알리고 싶어서 그러지.”
“전쟁은 끝났습니다.”
“벌써?”
젠달리프는 의외라는 듯 되물었다.
“예, 폐하께서 곧 돌아오실 것입니다.”
“물론 대국이 승리했고?”
“당연한 말씀이십니다.”
매화일검은 미소 지었다.
“빨리 돌아오셨으면 좋겠어. 실버드래곤을 해체하면서 기뻐할 친우동족의 얼굴을 한시라도 빨리 보고 싶군. 키키키!”
매화일검은 섬뜩한 미소를 짓는 젠달리프를 뒤로하고 황성 안으로 들어갔다.
우선 법병부에 전쟁이 끝났음을 알리고, 전 구역에 게시판에 대국의 승전보를 붙이라는 명령을 내렸다.
“매화일검님!”
두 여성이 매화일검에게 달려왔다. 실리아와 엘리나였다.
“주첨기님이 돌아오신다는 게 정말인가요?”
엘리나가 먼저 물었다.
“폐하께서 돌아오시나요?”
실리아도 연달아 물었다.
매화일검은 당황한 표정을 지으며 그렇다고 대답했다. 그러자 두 여성은 서로 손을 마주잡고 방방 뛰기 시작했다.
“정말이죠?”
“예,엘리나님.”
그 시각 매화일검의 명을 받은 법병부 서기관들이 각 구격에 승전보를 붙였다.
축제와 다름없는 날이 되었다.
백성들은 아껴두었던 술과 고기를 꺼내 승리를 자축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