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mortal martial artist RAW novel - Chapter 54
제8화 로드&마룡
“와아아!”
에드먼의 10만 대군이 함성을 질렀다.
황제 에드먼은 잘 다듬어진 한 자루의 칼 같았다. 그는 말을 몰아 50만의 병사들 중 고르고 고른 10만 병사들을 돌아보았다.
로스엔으로의 모든 출병준비를 마쳤다.
로스엔이 신명대국에 흡수되면 대륙의 정세는 신명대국 쪽으로 완전히 기운다. 대륙전체의40퍼센트 이상의 영토가 신명대국의 영토가 되는 것이다. 대제국의 군주로서 대륙통일을 꿈꾸는 황제 에드먼은 이를 막아야했다.
대의명분은 만들어 내기 쉽다. 로스엔의 고통 받는 백성들을 구하기 위함이라거나, 대륙의 정세를 어지럽히는 신명국을 처벌한다고 하면 그만이다.
“로스엔도 기특하군. 언제 그리 많은 병사를 모았지?”
에드먼은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로스엔의 왕은 신명대국에 복수하겠다는 일념으로 전쟁준비만 해 왔습니다. 그래도 40만은……신념만으로 이룩할 수 없는 숫자입니다.
대마법사 이제이가 말했다.
“어차피 신명대국과의 전쟁에서 전멸직전까지 갈 것이다. 지금쯤이면 엄청난 전사자가 발생하겠지. 짐은 이때를 기다리고 있었다.”
“부디 신명대국을 물리치시어 대륙의 정세를 바로잡으십시오, 폐하.”
이제이가 말했다.
“그럴 것이다.”
에드먼은 10만 대군 앞에 섰다. 전국을 지휘하려고 칼을 뽑아 들었다.
그때 필마 한 마리가 무섭게 내달려왔다. 말 뒤에는 정찰병을 알리는 깃발이 꽂혀 있었다.
“폐하!”
“무슨 일이냐?”
정찰병은 말에서 내려 에드먼의 발아래 고개를 숙였다.
“신명대국이 이끄는 40만 대군이 로스엔의 수도에 입성했습니다.”
“멍청한지고! 40만 대군은 바로 로스엔의 병사다.”
“예?”
정찰병은 뭔가 이상하다고 느꼈다.
그것은 황제 에드먼도 마찬가지였다.
“자세히 말해 보라. 신명대국이 어찌 40만 대군을 이끌고 있다고 하느냐. 더군다나 로스엔의 수도에 입성했다는 말은 또 무슨 말이더냐?”
“폐하, 앞의 정찰병이 도착하지 않았습니까?”
“큭!”
에드먼은 실소를 흘리며 이마를 짚었다.
어쩐지 정찰병이 너무 늦게 왔다. 이 정찰병의 말에 따르면 진즉에 또 다른 정찰병이 도착해야 옳다.
“도착하지 않았다.”
“폐, 폐하…….”
정찰별은 당황하여 말을 더듬었다.
“어서 자세히 말하라.”
“30일 전 신명대국의 황제가 노스말드 평원에서 40만 대군을 회유했습니다. 그 대군으로 즉시 수도로 직행했고, 바로 15일 전에 수도에 입성했습니다.
“뭐라!”
황제 에드먼도 대마법사 이제이도 정찰병의 말을 믿기가 어려웠다.
“1,2만도 아니고 40만 대군을 회유하다니!
에드먼은 정찰병의 목에 들이댔다.
“거짓을 고하면 구족을 멸하리라.”
“폐하, 감히 어느 안전이라고 거짓을 고하겠습니까?”
에드먼은 마음을 가다듬었다.
정찰병이 사고를 당해 도착하지 않는 것은 흔히 있는 일이다. 정찰병의 실종으로 전쟁양상이 뒤바뀐 사례가 역사적으로도 많다.
‘그런데……이 에드먼이 그런 실수를 하다니.’
황제 에드먼의 얼굴이 붉으락푸르락 해졌다. 그는 정찰병의 목에 들이댄 칼을 내려놓았다.
잠시 대군을 대기시켜 놓은 후 정찰병과 함께 황성 안으로 들어갔다.
황제 에드먼과 대마법사 이제이는 정찰병에게서 전장의 상황을 자세히 들었다.
그러나 온통 믿지 못할 이야기뿐이었다. 신명대국의 황제가 나타난 후로 황당무계한 일들이 숱하게 벌어지고 있었다.
“드래곤이라니! 로스엔의 네 공작이 모두 드래곤이었단 말이냐?”
에드먼이 물었다.
“예, 폐하! 그런데 데이모스에 탑승한 진천 공작이 그린드래곤을 죽였으나 그 시체를 블랙드래곤과 비슷한 드래곤이 낚아채갔습니다. 실버드래곤은 신명대국의 황제에게 죽었다는 소문이 나돌고 있습니다.”
정찰병은 황제 앞이라 긴장했지만 차분하게 말했다.
“흠……!”
에드먼은 정찰병에게 포상금을 지급하라고 명한 후 내보냈다.
“이제이, 어떻게 생각하는가?”
에드먼이 물었다.
“폐하, 시일이 다소 늦어졌다지만 지금이라도 신명대국의 야욕을 막아야 합니다.”
“짐도 그렇게 생각한다.”
에드먼은 황성 밖으로 나갔다. 10만 대군의 전열을 가다듬었다.
대마법사 이제이도 백색 로브를 걸치고 말에 올라탔다.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다.’
에드먼은 생각했다.
그때 페를리우스 공작이 허겁지겁 달려왔다.
에드먼은 공작의 서두르는 모습에서 불길함을 느꼈다.
“폐하!”
“공작, 대체 무슨 일이기에…….”
“진군을 멈추어야 합니다. 로스엔은 완전히 신명국에 흡수되었습니다.”
페를리우스 공작은 심각했다.
에드먼은 탈에 탄 채로 페를리우스 공작을 내려다보았다. 에드먼의 얼굴이 묘하게 일그러졌다.
“계속 말해 보라.”
“7일 전 신명국의 황제가 로스엔을 평서라 명하고 진천 공작을 평서왕으로 봉했습니다. 반신명국파를 숙청하여 친신명국파로 내정을 개혁했으며, 왕족을 모두 유배시키는가 하면 로스엔의 왕 데오도로를 참수했습니다.”
히이잉
황제 에드먼이 뿜어내는 살기 때문에 말이 놀라서 울부짖었다.
“로스엔 왕조가 완전히 망했다는 거군. 그런가, 공작?”
“예, 폐하, 진천 공작은 검사 100여 명과 3만여 명의 병사들로 로스엔 아니 평서를 지키고 있습니다.”
“크으…….”
에드먼은 머리가 핑 돌았다.
이제 로스엔으로 출정할 수 없게 되었다. 로스엔이 완전히 망해버렸다.
10만 대군을 로스엔으로 진격시킬 경우 신명국과 전면전을 각오해야 한다.
“대체 경은 그토록 중요한 소식을 왜 이제야 알리는 것인가?”
“폐하, 송구하옵니다.”
페를리우스 공작은 머리를 조아렸다.
에드먼은 검을 검집에 꽂아 넣었다.
“공작,이제이, 10만 정예를 모두 해신시키되 언제든 소집령에 대기하도록 하라.”
에드먼은 화난 표정으로 들어가 버렸다.
“신명대국이 로스엔까지 흡수한 이상 비상책을 강구해야 합니다, 공작.”
병사들을 모두 해산시킨 후 이제이가 말했다.
“그렇습니다. 신명국의 국력은 날이 갈수록 커지고 있습니다. 이제는 제국과도 비등할 정도지요.”
페를리우스가 대답했다.
“진실을 왜곡해서는 발전이 없습니다, 공작. 신명국의 국력은 이미 제국의 국력을 넘어서고 있습니다.”
이제이는 암담한 목소리로 말했다.
“험험!”
페를리우스는 헛기침을 했다.
“그렇다고 칩시다. 그럼 이제이님은 비상책을 생각해두신 바가 있습니까?”
페를리우스가 물었다.
이제이는 고개를 저었다.
상황이 이렇게까지 암담하게 돌아가리라고는 미처 생각하지 못했다.
“지금부터라도 생각을 해야지요. 중요한 건 더 이상 신명국의 국력이 확장되지 않도록 막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제이가 말했다.
“그렇지요.”
어느 날 갑자기 흑발과 흑안의 사람들이 나타나 신명대국이란 나라를 세웠다. 대륙의 정세를 움켜쥐고 있는 에드먼 제국마저 움츠러들도록 만들었다.
2년도 걸리지 않았다. 어마어마한 국력확장이다.
불과 한 달도 되지 않았건만 마치 1년쯤 지난 후에 돌아온 것처럼 길게 느껴졌다.
주첨기와 250명의 고수들은 승전고를 울리며 복귀했다.
백성들과 법병들은 황제폐하가 돌아오시기만을 손꼽아 기다리고 있었다.
드디어 황제폐아와 고수들의 모습이 보였다.
“폐하께서 돌아오셨다!”
“신명대국 만세!”
백성들은 꽃가루를 휘날리며 주첨기와 고수들을 환영했다.
로스엔을 정벌하고 당당히 들어오는 고수들과 황제폐하!
그들이 거룩해 보였다.
“아따 허벌나게 많소. 참하고 예쁜 아가씨는 어디 없나?”
방자는 환영인파를 두리번거리며 걸었다.
방자의 눈에 한 여성이 포착되었다. 그는 여성을 향해 윙크했다.
방자의 모습이 비록 누추하고 외모도 추한 비만덩어리지만 신명대국의 검사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여성의 얼굴에 홍조가 피어올랐다.
“이제 대국도 커져가고 있겠다, 우리도 이제 결혼해야 하지 않겠어?”
방자가 물었다.
“결혼이라…… 누가 우리 같은 거지들하고 결혼을 하려고 하겠어?”
개방도 장길이 뇌까렸다.
“우리는 거지이기도 하지만 자랑스럽고 용맹한 신명대국의 검사라고.”
“검사이기 전에 거지란 사실을 잊지 마.”
“아따 두고 보랑께. 저기 참한 아가씨 보이지? 내 저 아가씨하고 결혼해 버리겄어.”
“맘대로 해라.”
장길은 방자를 무시했다.
신명대국의 황제 주첨기가 하얀 백마를 앞세우고 수도로 들어왔다.
수도의 수많은 여자들은 그의 늠름한 모습에 두 눈을 잃었다. 그뿐이면 다행이다. 이루지 못할 사랑에 가슴마저 잃어버렸다. 주첨기는 결코 넘볼 수 없는 분위기의 소유자였다. 눈이 마주치면 온몸이 얼어붙어 버린다.
“신명대국 만세!”
백성들이 외쳤다.
주첨기는 설령을 어깨 위에 올려놓았다. 설령이 아니었다면 진천 스승님은 깨어나지 못했을 것이다. 없어진 왼팔이 안쓰러울 뿐이다.
[우끼,우끼.]설령은 기분이 좋은지 연신 소리를 냈다.
주첨기와 신명대국의 고수들은 바닥에 깔린 꽃잎을 밟으며 황성으로 들어갔다.
황성 앞으로 모든 서기관들과 시종, 시녀들이 마중 나와 있었다.
엘리나와 실리아는 서로 앞에 서겠다고 아옹다옹 다투었다.
주첨기의 모습이 보이자 엘리나와 실리아가 앞으로 뛰쳐나갔다.
[우낏!]그러자 설령이 주첨기의 어깨에서 말머리로 뛰어내렸다. 남은 한쪽 팔을 쫙 벌리며 주첨기 앞을 가로막았다.
설령은 어떤 여자의 접근도 허락하지 앉았다.
“폐하,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매화일검이 머리를 조아렸다.
“그동안 고생이 많았다, 후작. 우선 안으로 들어가서 얘기하지.”
주첨기는 애절한 눈빛으로 글썽거리는 실리아와 엘리나를 뒤로하고 매화일검과 함께 회의실로 들어갔다. 고수들은 각자의 처소로 돌아갔다.
“폐하, 이미 승전소식을 들어서 알고 있었습니다. 정말 감축 드립니다.”
“매화일검, 진천 스승님이 평서왕이 되셨다는 걸 알고 있나?”
“예,폐하.”
“그 일 때문에 오자마자 그대를 부른 것이야. 율리안으로 갈 수 있겠나?”
“폐하의 명이온데 어찌 거역할 수 있겠습니까?”
매화일검이 대답할 때 밖에서 노크소리가 들렸다.
주첨기가 고개를 끄덕이자 매화일검이 들어오라고 말했다.
노커 젠달리프였다. 그는 이상하게 웃으며 주첨기 앞으로 다가왔다.
“주첨기님, 무척이나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짐을? 건축 때문인가?”
“아닙니다. 실버드래곤 때문입니다.”
“실버드래곤…….”
급한 대로 실버드래곤의 목만 잘라서 로스엔으로 가지고 갔었다. 그러고 보니 실버드래곤의 시신이 어찌 되었는지 궁금하다.
“실버드래곤은 동족들과 함께 지하본성으로 옮겨놨습니다.”
“잘했다. 그러고 보니 실버드래곤을 해치워 달라는 그대와의 약조를 내가 지키지 않았는가?”
주첨기는 밝게 미소 지었다.
“예, 주첨기님. 그런데 한 가지 부탁이 있어 이렇게 찾아오게 되었습니다.”
“뭔가?”
“주첨기님이 해이추신 실버드래곤의 해체를 저희 친우동족에게 맡겨 주십시오. 그들에게도 저희처럼 원한을 갚게 해 주고 싶습니다.”
주첨기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대들처럼 실력이 훌륭한 장인이라면 그리하도록 허락하겠다.”
“감사합니다, 주첨기님. 아!”
젠달리프는 몸을 돌리려다가 멈추었다.
“친우동족의 노커가 저의 신호를 받았다면 황성으로 찾아올 것입니다. 당연히 실버 드래곤의 레어 위치를 알고 있을 것입니다. 실버드래곤을 해치우셨으니 실버드래곤의 레어 안에 있는 보물들도 마땅히 주첨기님의 물건이라는 생각에서 말씀드리는 것입니다.”
“잘됐군.”
주첨기는 거부하지 않았다. 마침 지난 1년간의 발전을 위해 레드드래곤의 레어 안에 있던 보물을 거의 다 썼다.
‘새로운 보물창고라…… 평서를 대국처럼 복구시킬 수 있겠군.’
젠달리프가 돌아간 후 주첨기는 매화일검을 율리안으로 보냈다.
이튿날 주첨기는 대승을 기념하여 3일 동안 대국축제를 명했다.
로스엔에서와 마찬가지로 술과 고기가 모자람이 없는 축제였다.
대학에서는 축제기간에 학생들끼리 학술대회를 열기도 했다. 가는 곳마다 이벤트와 음악이 함께했다. 주첨기는 창밖을 바라보았다. 밤늦도록 켜진 불빛들이 아름다워 보였다.
주첨기는 오랜만에 깊은 잠을 잘 수 있었다. 밖에서 들리는 백성들의 웃음소리가 그의 꿈속을 환하게 만들었다.
축제 마지막 날에는 음유시인들이 모여 ‘오러블레이드’라는 희곡을 발표하여 화제가 되었다.
신명대국의 황제 주첨기와 발록의 결전을 자세히 다룬 내용인데, 민간에 떠도는 소문들을 모아 희곡화 시킨 것이었다. 소문이라면 보통 부풀려지기 마련인데 주첨기와 발록의 결전은 더 이상 부풀릴 수 없을 만큼 극도의 것이었다.
직접 황제와 발록의 결전을 보지 못한 자가 희곡 오러블레이드를 보고 거짓이라고 했다가 성난 군중들에게 몰매를 얻어맞는 사건이 벌어지기도 했다.
희곡 오러블레이드는 엄연히 사실이다.
그렇게 크고 작은 사건, 숱한 이벤트가 벌어졌던 신명국의 축제는 성황리에 끝났다.
쨍그랑
벌써 혈 번째 깨먹는 그릇이다.
수라혈마는 기분 나쁘게 깨진 그릇조각들을 발로 밀어 버리고 의자에 몸을 파묻었다.
모든 정신이 로스엔과 대국의 전쟁으로 쏠렸다. 진천이 그린드래곤을 잡았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는 배가 아파 죽을 것만 같았다.
“크으…….”
자신도 대전에 참여하고 싶고 전공을 세우고 싶다. 자신이 있는 시프트로 에드먼의 병사들이 확 쳐들어왔으면 하는 것이 수라혈마의 솔직한 심정이다.
“아주 코가 하늘을 찌르겠어, 그 위선 늙은이. 드래곤은 본좌도 잡을 수 있다.”
몇 분 안자 있지 못하고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가슴이 답답했다. 세피로스를 부르려고 했다.
때마침 세피로스가 그를 찾아왔다.
“오, 아이야! 도대체 에드먼과 페국의 전쟁은 언제 끝나는 것이더냐?”
“보름 안에 에드먼의 승리로 끝날 것입니다, 공작님. 전쟁이 걱정돼서 그러시는 겁니까? 분명 대국이 승리할 테니 마음 놓으십시오.”
“당연한 소릴! 몸이 근질거려서 그런다. 위선 늙은이 혼자만 전공을 세우고 본좌는 이렇게 재미없는 도시에 처박혀 있으니 원…….”
“평화스럽지 않으십니까?”
세피로스가 미소 지었다.
“본좌는 평화를 좋아하지 않는다. 낄낄, 아주 다 때려 부수고 다녀야 시원하지.”
“저…….”
세피로스는 말꼬리를 흐렸다. 뭔가 하고 싶은 말이 있는 모양이다.
“말해 봐라.”
“저, 공작님…….”
“말해 보라니까?”
“아닙니다. 말씀드리지 않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말해라. 본좌의 성질을 알면서 그러느냐.”
“저, 전쟁이 끝났습니다.”
세피로스는 몸을 꼬며 수라혈마의 눈치를 살폈다.
“전쟁이 끝났다고? 본좌가 전공 하나 쌓지도 못했는데 벌써 전쟁이 끝났단 말이냐? 으으…… 진천 혼자만 다 해먹고 본좌는 이게 뭐냐!”
수라혈마는 화풀이용 그릇을 들어 벽에 내동댕이쳤다. 가구나 가옥을 부술 때마다 세피로스의 잔소리를 듣기 싫어 준비해둔 것이다.
‘이크!’
세피로스의 몸이 움츠러들었다.
수라혈마는 세피로스의 표정을 살폈다. 눈치를 살피는 것을 보니 아직 말이 다 끝나지 않은 것 같았다.
수라혈마는 얼굴을 세피로스의 얼굴 가까이 가져갔다.
세피로스는 자꾸 시선을 피해 고개를 돌렸다.
“더 있지 않느냐?”
“예?”
“할 말…… 더 있지?”
수라혈마가 눈을 게슴츠레하게 떴다.
세피로스는 대답하지 못한 채 우물쭈물했다.
“본좌가 미치는 것 보고 싶지 않으면 빨리 말해라.”
“저, 공작님…… 정말 듣지 않으시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으득!
수라혈마가 이를 악물었다.
“어서 말해.”
“저…… 황제폐하께서 장악하신 로스엔의 영토를 평서라고 작명하셨습니다.”
“그게, 뭐?”
수라혈마는 아무 일도 아니라는 듯 어깨를 으쓱했다.
“진천 공작님을…….”
“진천이 뭐?”
수라혈마의 눈초리가 다시 달라졌다.
“저…… 진천 공작님을 평서왕으로 봉하시고 평서지방을 맡기셨습니다.”
수라혈마는 자신의 귀를 의심했다. 실실 웃으면서 세피로스의 머리를 쥐어박았다.
“이젠 노부를 놀리기까지 하는구나. 낄낄!”
“…….”
세피로스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수라혈마가 다시 한 번 세피로스의 머리를 쥐어박았다.
“예끼! 노부의 나이가 희수(77세)를 넘었거늘.”
그래도 세피로스가 입을 열지 않고 시선을 피하자 수라혈마의 얼굴이 점점 뻘겋게 달아오르기 시작했다.
“사실이더냐!”
“……예.”
세피로스는 죽어가는 목소리로 대답했다.
수라혈마가 조용해졌다. 세피로스는 불안해서 눈을 질끈 감았다. 그래도 너무나 조용해 슬그머니 눈을 떴다.
수라혈마가 배와 이마를 감싸 쥐고 쓰러져 있었다.
“공작님!”
세피로스는 놀라서 외쳤다.
“왕…… 왕…… 왕! 그 위선 늙은이가 왕이 되었다고? 왕? 왕? 왕?”
수라혈마는 초점을 잃은 눈으로 중얼거렸다.
세피로스가 보았을 때 단순히 넘길 문제가 아니었다. 도움을 청하려고 황급히 뛰어나가려는 순간 매화일검과 부딪쳤다.
“매화일검 후작님!”
세피로스는 눈물을 글썽이며 말했다.
“세피로스님, 왜 눈물을……?”
매화일검이 말했다.
세피로스는 수라혈마를 가리켰다.
‘헛!’
매화일검은 급히 수라혈마에게 몸을 날렸다. 맥을 짚어 봐도 아무런 이상이 없었다.
수라혈마는 넋이 나간 눈으로 ‘진천 놈이 왕’ 이라는 말만 반복해서 중얼거리고 있었다.
“이게 어떻게 된 일입니까, 세피로스님?”
매화일검이 물었다.
세피로스는 코를 훌쩍이며 사실대로 말했다. 그러자 매화일검은 품 안에서 황제의 인이 찍힌 황서를 꺼내어 읽었다.
“전 율리안의 영토 중 현재 대국의 영토가 되어 있는 힌턴 지역을 평동이라 칭하고 수라혈마 공작을 평동왕으로 봉해 평동지방을 통솔케 하라. 신명대국 황제 주첨기!”
세피로스가 놀란 눈으로 매화일검을 바라보았다.
수라혈마가 갑자기 일어나더니 대소를 터트렸다. 고막이 터져버릴 듯했다. 시프트성이 흔들렸다.
“그럼 그렇지!”
수라혈마의 눈이 초롱초롱하게 빛났다.
“암…… 수고하였다, 후작.”
수라혈마는 매화일검의 어깨에 손을 걸치면서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
매화일검은 황제의 황서를 수라혈마에게 건네면서 말을 이었다.
“저는 공작으로 봉해졌습니다.”
“후작이 아니라 공작인가?”
“예, 평동왕 전하! 전하를 보필하라는 폐하의 황명이 있었습니다.”
수라혈마의 눈이 동그래졌다.
“방금 전에 뭐라고 했지?”
“예? 무슨 말씀이신지…….”
“방금 전에 한 말 있잖아. 다시 해 보아라.”
“예, 평동왕 전하! 전하를 보필…….”
수라혈마가 매화일검의 말을 끊었다.
“그래, 그거다! 전하, 전하? 전하! 크와하하하핫! 평동왕이 나가신다.”
수라혈마는 창밖으로 몸을 던졌다. 그의 웃음소리가 점점 멀어져 갔다.
매화일검과 세피로스는 서로를 바라보며 어깨를 으쓱했다.
“잘 오셨습니다. 좀 전에는 당황하여 인사를 제대로 못 드렸군요.”
세피로스가 먼저 인사했다.
“저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공작으로 승관하신 걸 감축 드립니다.”
“별말씀을요.”
“저는 이제 공작님보다 직위가 낮은 남작에 불과하니 말씀을 낮춰 주십시오. 이곳에서도 전쟁소식을 많이 들었습니다만 공작님께 다시 한 번 듣고 싶습니다.”
매화일검은 빙그레 웃으며 이야기를 시작했다.
신명대국의 328구역 사람들이 전멸하고 법병들도 상당수 전사했다는 부분에서 세피로스는 신음을 흘렸다.
“……그렇군요.”
세피로스는 황제가 40만의 대군을 회유한 장면을 직접 보지 못한 것이 매우 아쉬웠다.
“이제는 세피로스 남작의 이야기를 들을 차례요. 이곳 상황은 어떻소?”
매화일검이 물었다.
“크르르…….”
그린드래곤 니르시즈는 몸을 뒤척이다가 눈을 떴다.
처음 보는 곳이다. 보통의 레어들 만큼이나 커다란 동굴이었다.
니르시즈는 자신의 몸을 내려다보았다. 목이 꿰뚫리고 수백 개의 검이 몸에 박혔던 것으로 기억한다.
모두 드래곤 본으로 만들어진 검이었으며, 오러까지 씌워져 있어 상처를 복구하지 못할 거라고 생각했다. 죽었어야 정상인데 몸이 완벽하게 치료되어 있었다.
니르시즈는 몸을 움직였다. 고통이 일지 않았다.
‘여긴 어디지? 설마…….’
니르시즈는 신명국 검사들에게 붙잡힌 게 아닌지 의심했다.
그런데 어디서도 인간의 냄새를 맡을 수가 없었다. 오히려 친숙한 냄새가 풍겼다
“이 냄새는…… 이 기운은 ……?”
매우 익숙하지만 그 정체를 기억해내지 못했다. 냄새와 기운이 점점 가까워진다.
“크푸, 크푸!”
거친 숨소리도 들려왔다.
‘로드?’
왠지 로드의 냄새가 나기도 했다.
‘아니야. 익센트리크?’
익센트리크는 이미 죽었다고 알려졌다.
냄새와 기운이 가까워지자 정신이 바짝 들었다. 나르시즈는 몸을 떨고 있는 스스로를 발견하고선 신음을 삼켰다.
‘도대체 어떤 존재가 나를 이렇게 두렵게 만드는 거지? 나타나려면 빨리 나타날 것이지.’
나르시즈는 모퉁이쪽을 응시했다. 거재한 그림자가 모퉁이에서부터 나오기 시작했다.
드래곤의 날개가 보였다.
‘아, 동족이다! 동족이 나를 구한 거야.’
나르시즈는 그제야 안심이 되었다. 막 모퉁이 쪽으로 이동하려 할 때 거기서 익숙한 냄새와 기운의 주인공이 모습을 드러냈다.
나르시즈는 한순간 자신의 눈을 의심했다.
‘아니야, 그럴 리가 없어!’
나르시즈는 고개를 저었다.
확인 차 다시 보았을 때도 똑같았다. 네 개의 날개, 세 개의 빨간 눈, 이마에 돋은 뿔과 칠흑같이 검은 비늘…….
물론 나르시즈는 그 정체를 알고 있었다.
“아니야!”
그린드래곤 니르시즈의 컬컬한 목소리가 동굴 안에 울려 퍼졌다. 그는 도망치려고 날개를 펄럭였다. 강렬하게 천장 쪽으로 날아갔다.
천장을 뚫고 먼 하늘로 도망칠 속셈이었지만 뜻대로 되지 않았다. 천장엔 드래곤도 뚫지 못할 강력한 결계가 처져 있었다.
“크푸,크푸!”
그것의 거친 콧바람이 몸에 닿을 때마다 니르시즈는 몸서리를 쳤다.
“로드이시여, 어째서 마룡이 되셨습니까? 어째서…… 어째서 익센트리크를……!”
나르시즈는 미친 듯이 외쳤다
마룡은 아주 느긋한 걸음으로 니르시즈를 향해 걸어오고 있었다.
나르시즈는 도망갈 곳이 없었다. 주변은 마룡이 이미 결계를 쳐 놓았다
나르시즈는 두려웠다. 마룡의 새빨간 눈동자에서 나오는 시선은 온몸을 꿰뚫어 버리는 느낌이다.
강한 자에게 느끼는 두려움이 아니다. 이것은 생물로서 먹이피라미드의 상층에 있는 포식자에 대한 근원적인 두려움이다.
“저, 저리 가!”
니르시즈는 도망갈 곳을 찾기 위해 쉴 새 없이 눈동자를 굴렸다.
마룡은 그에게 한 걸음씩 접근해오고 있었다.
퇴로가 없다!
니르시즈는 이를 악물었다.
“다, 다가오지 말라고! 로드! 어째서…… 어째서 익센트리크를 먹어 버린 거야!”
마룡에게 말이 통하지 않음을 잘 알면서도 니르시즈는 외칠 수밖에 없었다.
마룡에 대한 두려움이 몸을 파고들었다.
‘도망갈 수 없다면…….’
“크와와아!”
니르시즈는 녹색 브레스를 내뿜었다.
마룡은 검점 날개로 몸을 감쌌다. 녹색 브레스가 마룡의 날개에 부딪쳤다.
니르시즈는 최대한 쏟을 수 있는 양을 퍼부었다.
그렇게 얼마나 지났을까? 니르시즈의 브레스가 가늘어지더니 더 이상 나오지 않았다.
마룡의 날개가 펴졌다.
“자, 잘못했어!”
니르시즈는 뒷걸음쳤다.
마룡의 눈동자에서 피처럼 붉은빛이 번쩍였다.
마룡은 니르시즈를 향해 뛰어들기 시작했다.
“으으……!”
니르시즈의 입이 떨려 이빨끼리 여러 번 맞부딪혔다. 그의 눈동자에 마룡의 거대한 뿔이 들어왔다.
“로드이시여! 로드이시여!”
뒷걸음치다 동굴 끝까지 다다랐다. 니르시즈는 더 이상 뒷걸음질을 할 수가 없었다.
“익센트리크! 로드이시여!”
아무리 불러도 마룡의 눈동자에는 이채가 감돌지 않았다.
마룡의 송곳니 사이로 게걸스러운 침이 흘렀다. 니르시즈의 코앞까지 다가왔다.
“안 돼!”
나르시즈는 고함을 지르며 앞발을 휘둘렀다.
그러나 마룡은 이를 피하지 않고 그대로 들이받았다.
니르시즈는 등 뒤의 벽에 부딪쳐 피를 토했다. 마룡이 가진 세 개의 눈동자가 그의 목을 응시했다.
니르시즈는 덜덜 떨며 고개를 저었다.
“안 돼, 안 돼. 로드으으으!”
그는 부르짖으며 마법을 난사했다.
츠츠츳
대지계마법이 마룡의 코앞에서 발현되었다. 거대한 송곳 같은 암석들이 마룡의 얼굴을 노렸다.
그러나 마룡은 마법들을 모두 삼켜 버렸다. 동시에 꼬리로 니르시즈의 몸을 후려쳤다.
니르시즈의 목이 심하게 꺾였다. 훤히 드러난 목.
마룡은 송곳니를 니르시즈의 목에 꽂아 넣었다.
“컥!”
니르시즈의 눈이 부릅떠졌다.
“차라리…… 그냥 죽여 줘.”
니르시즈가 애원했지만 마룡은 이빨에 더욱 힘을 주었다. 니르시즈의 목살을 쥐어뜯었다.
팟!
피가 터졌다.
니르시즈는 앞발로 마룡의 몸을 밀어내려고 애썼다
그의 목살을 집어삼킨 마룡은 반대편 목까지 물었다.
마룡을 밀어내려고 했던 니르시즈의 앞발이 힘없이 떨어졌다.
“먹지…… 마.”
니르시즈의 눈에서 피눈물이 흘러나왔다.
마룡은 입을 크게 벌렸다. 마룡의 입은 니르시즈의 얼굴보다도 컸다.
터업!
마룡은 니르시즈의 얼굴을 단번에 물었다. 그리고 고개를 세차게 비틀었다. 니르시즈의 온몸이 축 늘어졌다. 마룡은 힘차게 니르시즈의 목을 뜯었다. 그리고 씹지도 않고 꿀꺽 삼켰다. 이어 마룡의 이빨이 니르시즈의 가슴팍에 박혔다.
마룡은 수년은 굶은 듯 한시도 쉬지 않고 니르시즈의 몸을 뜯어먹었다. 뼈 하나 남기지 않았다.
니르시즈를 다 먹은 마룡의 배는 크게 부풀었다.
“크푸,크푸!”
마룡은 똬리를 틀고 누워 콧바람만 내뿜었다.
“크르르르…….”
마룡이 신음하며 몸을 비틀었다. 갑자기 몸이 비대해졌다. 배에서 피가 터지면서 다시 한 쌍이 튀어나왔다.
뿔 하나, 눈 셋, 날개 넷, 다리 여섯.
마룡은 전보다 더욱 거친 콧바람을 내뿜었다.
“크푸,크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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