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mortal martial artist RAW novel - Chapter 73
제3화 에스와 던칸
늦은 오후, 야행에 대비하여 벌써부터 모닥불을 피워 놓았다. 장작이 따닥따닥 소리를 내며 타들어갔다. 보콜과 주첨기는 나란히 앉아 모닥불에 구운 고기로 저녁식사를 하고 있었다.
‘흠…….’
보콜은 자신의 의뢰인과 동행할수록 의뢰인의 정체가 더욱 궁금해져갔다.
대담한 행동과 뛰어난 무위, 그리고 북산성주와의 관계를 종합해 보면 결론은 하나, 바로 검사!
하지만 머리색과 눈동자색이 검정색이 아니니 검사가 아니라는 결론이 나온다.
‘그럼 대체 어떤 분이지?’
보콜은 식사를 하고 있는 주첨기를 흘깃 쳐다보았다. 음식을 먹는 모습조차 위엄이 서려 있다. 보콜은 고기 한 점을 집어들었다.
“스워드님, 오토에서의 일은 어떻게 되신 것입니까? 북산성주님을 어떻게 알고 계시지요? 하핫, 신경 쓰지 마십죠. 그냥 궁금해서 그렇습죠.”
보콜은 멋쩍어서 뒷머리를 긁적였다.
“같이 일을 하고 있네.”
“예? 어떤 일이신지…….”
“무엇을 그렇게 궁금해하나. 다 먹었으면 이제 그만 일어나는 것이 좋겠군.”
그때였다. 멀리서 누군가 무서운 속도로 달려오고 있었다. 보콜은 눈을 아무렇게나 비빈 후 다시 앞을 바라보았다. 머리를 휘날리며 달려오는 사람의 속도는 가히 말과 같았다.
보콜은 입 안에 가득 고인 침을 삼켰다.
북산성주 계주님이라니!
보콜은 순간 자신의 눈을 의심했다.
“스, 스워드님…… 저, 저기……!”
보콜의 말이 끝날 무렵 계주가 모닥불 앞에 도착했다. 보콜은 급히 머리가 땅에 닿을 정도로 허리를 굽혔다.
계주는 주첨기에게 가서 고개를 숙였다.
‘대체 북산성주님께서 이곳에 왜……?’
보콜은 힐끔 옆으로 고개를 돌렸다. 의뢰인을 향해 숙였던 고개를 쳐드는 계주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보콜은 혼란스러웠다.
‘천하의 북산성주가 고개를 숙이다니. 잘못 본 거겠지. 암, 그렇겠지.’
보콜은 계주와 눈이 마주쳤다.
“자리를 비켜 주겠나?”
계주가 말했다.
“그, 그럽죠. 제가 눈치도 없이…….”
보콜은 후들거리는 걸음으로 멀찌감치 떨어졌다. 북산성주님이 의뢰인과 무슨 대화를 나누고 있는지 매우 궁금하여 조금이라도 들릴까 귀를 의뢰인 쪽으로 향하게 했다. 그러나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는다.
보콜은 그렇게 바짝 얼어붙은 채로 서 있었다.
“용케도 짐을 찾았구나. 무슨 일이지?”
주첨기가 말했다.
“황상께서 하신 말씀이 생각이 나서 나름대로 도적단에 대해 정보를 모아 보았습니다. 그중 주시할 것이 하나 있어 이렇게 찾아오게 되었습니다.”
정보를 담당하는 천지시당의 당주로서 마땅히 해야 하는 일이기도 했다.
“그래?”
“예, 규모로 따지자면 제일인 도적단이 남하성 남단 스타드 산맥 쪽에 존재하고 있다고 합니다.”
“도적들은 얼마나 되는가?”
“대략 5천여 명이 넘는 수라고 합니다. 그동안 그 많은 인원이 용케도 산에 숨어 있었나 봅니다. 병사 1만을 내주시면 남하성주 매화일검과 같이 도적들을 토벌하겠습니다, 폐하.”
주첨기는 잠시 생각했다. 도적들을 토벌하기에 앞서 자신이 직접 그들을 만나 봐야겠다는 결단이 내려졌다.
주첨기는 고개를 저었다.
“아니다. 우선은 내가 먼저 가 보겠다. 스타드 산맥이라고 했는가?”
“예, 폐하. 하오면 소신은 언제나 황상의 하명을 대기하고 있겠습니다.”
“마부가 보고 있다. 예는 생략해라.”
“예.”
계주는 눈인사로 예를 대신하고 몸을 날렸다.
슬그머니 보콜이 주첨기의 곁으로 다가왔다. 그는 계주가 간 것을 확인하고 침을 꿀꺽 삼켰다.
“무슨 일이죠, 스워드님? 성주님을 이렇게 가까이서 볼 수 있다니 영광이었습죠. 대체 무슨 일이기에 성주님께서 직접 찾아온 것입죠?”
“남하성 남단 스타드 산맥으로 향해야겠네. 그곳에 볼일이 있네. 지금 출발하지.”
“예.”
이번에도 보콜은 주첨기에게 마땅한 대답을 듣지 못한 채 마차에 올라탔다.
“이럇!”
보콜이 말의 엉덩이를 채찍으로 때렸다.
말발굽소리와 바퀴 굴러가는 소리가 점점 귀에 익어갔다.
울창한 숲의 밤길을 타고 마차 한 대가 빠른 속도를 질주하고 있었다. 멀리서 들려오는 늑대 떼들의 구슬픈 울음소리가 주첨기의 잠을 깨웠다.
여전히 마차는 달그락 소리를 내며 굴러가고 있었다. 어느새 쌀쌀해진 바람이 살짝 열린 창틈으로 세차게 들어왔다.
주첨기가 앞쪽을 향해 외쳤다.
“보콜, 피곤하지 않은가?”
“조금…… 아주 조금 그렇습죠.”
늑대들이 많아 위험하다고 알려진 산길이라 보콜은 잠도 안 자고 마차를 몰고 있는 중이었다.
“난 괜찮으니까 야영하기 좋은 곳에 마차를 멈춰도 좋다.”
“아닙니다. 이 길은 빨리 지나쳐 버려야 합죠.”
잠이 물밀듯이 쏟아지고 있어도 보콜은 눈을 부릅뜨며 말을 계속 몰았다.
싸늘한 맞바람.
외투로도 더 이상 버티기 힘든 밤 날씨였다. 보콜은 추워지는 것을 탓하며 구시렁거렸다. 이따금 수풀 속에서 마법처럼 빛나는 늑대들의 눈이 보였는데 보콜은 그때마다 말에 채찍질을 더했다.
어두워서 한 치 앞을 확인하기 힘들 길임에도 불구하고 속도를 늦추지 않았다. 그것이 문제였다.
“엇!”
이미 늦었다. 갑자기 커다란 바위가 나타났다. 마차는 미처 이를 피하지 못했다. 마차바퀴가 바위에 부딪쳐 마차는 옆으로 기울었다.
쾅!
마차가 땅에 처박혔고 말들이 서로 뒤엉켜 요란스럽게 울어댔다.
그래도 다행이라면 보콜이 약간의 타박상 정도만 입었다는 것이다. 그는 낑낑거리며 일어나 주첨기의 안위를 확인했다.
“스워드님!”
마차 안을 들여다보았으나 의뢰인이 있지 않았다. 그사이 어디로 사라졌단 말인가?
“많이 다쳤는가?”
보콜 뒤에서 주첨기가 나타났다. 보콜이 흠칫하며 뒤돌아보았다.
“인기척이라도 하시죠. 간 떨어지는 줄 알았습니다.”
이상하게도 의뢰인은 조금도 부상을 입지 않았다. 보콜은 안심했다.
“호, 혹시 마차에서 튕겨 나가신 것입니까?”
마차가 기울기 전에 주첨기가 벼락같이 문을 열고 밖으로 몸을 날린 것을 보지 못한 보콜이 물었다.
주첨기는 고개를 저었다. 너무나 불가사의한 점이 많은 의뢰인이라 보콜도 더 이상 캐묻지 않았다. 우선 말들을 안정시키고 바퀴를 수리하는 게 급선무였다.
보콜이 기울어진 마차를 들어 올리려 온힘을 다했다. 그러나 조금도 꿈쩍하지 않았다. 이를 보고 있던 주첨기가 다가와 한 손으로 마차를 들어 올렸다.
“햐―!”
보콜이 입을 쩌억 벌렸다.
“아차!”
보콜은 짐칸에서 틀대를 꺼내 마차바퀴가 빠져 버린 곳에 끼워 넣었다. 연신 울음소리를 내고 있던 말들도 차츰 안정을 되찾았다. 그러나 한 마리가 다리를 접질렸는지 절뚝거렸다.
보콜은 혀를 찼다.
“스워드님, 아무래도 이곳에서 야영을 해야 할 것 같습니다. 이놈이 다리를 삐었습죠.”
“그렇게 하게.”
막 모닥불을 피우고 야영준비를 마쳤다. 보콜은 그제야 타박상을 입은 상처를 치료할 수 있었다.
멀리서 들려오는 늑대의 울음소리!
그제야 이곳이 위험지역인 것을 깨달았다. 보콜은 불안한 기색으로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그러곤 모닥불을 주변에도 피워 늑대의 위험으로부터 조금이라도 피하려고 노력했다.
그래도 쏟아지는 잠을 어찌하지 못했다. 어느새 보콜은 횃불 앞에 앉아 꾸벅꾸벅 졸기 시작했다. 코까지 골며 깊은 잠에 빠졌다.
주첨기가 그 모습을 보며 미소를 지었다.
휙!
문득 주첨기가 숲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그는 바로 몸을 날렸다.
그가 사라진 것도 모른 보콜은 모닥불 앞에서 연신 고개를 끄덕이고 있었다.
스스슷
주첨기의 눈이 크게 뜨였다. 족히 20마리는 넘어 보이는 늑대 무리에 포위당해 서로 등을 맞대고 서 있는 소년과 소녀를 발견했다.
큰 체구의 소년은 너클을 끼고 있었고 소녀는 롱소드를 쥐고 있었다. 늑대들에게 포위되었음에도 불구하고 둘에게선 두려운 기색이 보이지 않았다.
“하압!”
늑대 한 마리가 소년을 향해 달려들었다.
시작이다.
늑대들은 일제히 침을 흘리며 소년과 소녀를 공격했다. 소년은 얼굴까지 뛰어오른 늑대의 공격을 피했고 곧장 주먹으로 늑대의 복부를 강타했다.
늑대는 뒤로 심하게 내동댕이쳐졌다. 소녀 역시 검으로 늑대의 목을 베었다.
“도망치자!”
소년이 늑대 두 마리의 공격을 피하며 말했다.
“도망치면 이놈들이 더욱 좋아할걸? 늑대는 인간사냥을 즐긴다고.”
소녀의 검이 늑대의 몸을 꿰뚫었다. 소년과 소녀의 발아래 늑대의 시체가 하나둘 늘어갔다.
“그냥 이대로 죽는 것은 너무 허무하잖아. 누가 알아주는 사람도 없고 말이야.”
“곰탱아!”
소녀가 소년의 얼굴 쪽으로 검을 찔렀다. 소년이 화들짝 놀라 고개를 숙였다. 막 소년의 목덜미를 물려던 늑대가 소녀의 검에 목숨을 잃었다.
“뒤를 조심했어야지!”
소녀가 빽 소리를 질렀다.
“너, 나한테 감정 있지?”
소년은 화풀이를 늑대에게 했다. 늑대 위로 올라타 얼굴을 몇 번이고 있는 힘껏 내리쳤다. 늑대는 주먹 네 번을 받지 못하고 쓰러졌다.
어느새 늑대의 수는 열 마리로 줄었다. 소년과 소녀는 거친 호흡을 토했다. 늑대들도 거리를 유지하고 더 이상 달려들지 않았다.
“후우, 힘들어 죽겠네.”
“난 더 이상 검을 휘두를 힘도 없어.”
“정말 여기서 죽는 건가? 장난으로 해 본 소리였는데 사실이 되는 거야?”
“그러게.”
소년과 소녀는 다소 여유로운 듯 짧은 몇 마디를 주고받았다. 하지만 그들의 말처럼 정말로 체력이 바닥나서 온몸이 무거웠다. 다시 늑대들의 공격이 시작된다면 막을 수 있다고 장담할 수 없었다. 아니, 결코 온전하게 끝나지 않으리라.
그때였다. 가장 몸집이 큰 늑대가 어슬렁어슬렁 앞으로 나왔다.
[크르르르…….]늑대는 흉포한 이를 드러냈다.
늑대와 소년소녀 간의 눈싸움이 벌어졌다. 소년소녀는 눈 한 번 깜짝이지 않았다.
[아우!]큰 늑대가 울음소리를 낸 후 몸을 돌렸다. 남은 늑대들도 소년소녀를 노려보다 큰 늑대의 뒤를 따랐다. 늑대의 모습이 수풀 속으로 완전히 사라졌다.
소년소녀는 풀썩 그 자리에 주저앉았다. 피비린내가 물씬 풍겼지만 자리를 옮길 힘조차 남아 있지 않았다. 소년소녀는 서로를 바라보며 피식 웃었다.
“우리가 늑대 떼를 해치운 거다.”
소녀가 말했다.
“우리 단둘이서.”
“몇 마리?”
“20마리.”
“곰탱아, 100마리가 넘었잖아.”
소녀가 말했다.
“맞아, 100마리지. 100마리, 하핫!”
“여긴 어디?”
“크리텔 산맥.”
“우리가 뭘 했어?”
“늑대 100마리를 해치웠지. 하하하!”
소년소녀는 서로 손을 마주치며 배시시 웃었다.
소녀는 갑자기 반대쪽 수풀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 아무도 없는 수풀을 향해 외쳤다.
“이봐, 구경 다 했으면 나와!”
“왜 그래?”
“저 수풀 뒤에 사람이 숨어 있어.”
“사람이?”
“응.”
“이런 데 사람이 왜 있어? 혹시…… 도적단 아냐?”
“그런 건 아닌 것 같고 길을 잃은 사람이겠지.”
“그래도…….”
“아직 파릇파릇한 소년소녀가 곤경에 처했는데 가만히 구경만 해? 완전히 겁쟁이야, 겁쟁이”
소녀가 소년에게 말했다.
소녀가 말한 대로 수풀 뒤쪽에서 한 사람이 앞으로 걸어 나왔다. 주첨기였다. 소녀는 의외라는 표정이었다. 주변에 널린 늑대들의 시체를 보고 잔뜩 겁먹은 채 몸을 떨며 나올 줄 알았는데 걸음걸이가 당당하다.
“이봐, 당신! 그렇게 지켜만 보고 있는 게 어딨어? 검도 지니고 있구만?”
“에스, 처음 보는 사람한테 너무 막말하는 거 아냐?”
“멍청아, 우리가 살아났기에 망정이지 죽었다면 그런 소리가 나올 것 같아?”
소녀가 성을 내자 덩치 큰 소년은 바로 고개를 푹 숙였다.
소년은 자신보다 몸집이 반절이나 작은 소녀에게 한마디 말대꾸도 못했다.
주첨기는 천천히 소년소녀에게 다가갔다.
낯선 이!
소녀는 반사적으로 검을 쥐었다.
“둘이서도 충분히 해치울 수 있었다.”
주첨기가 대수롭지 않다는 듯 말했다. 말은 그렇지만 지켜보고 있다가 위험한 순간에 도와줄 생각이었다. 늑대의 이빨이 소녀의 목덜미에 박히기 일보직전이라 해도 주첨기는 충분히 도와줄 능력이 있었다.
“그래도 당신…… 그러는 거 아냐. 이렇게 예쁜 소녀가 곤경에 처해 있으면 조금이라도 도왔어야지. 암, 그렇고말고. 이렇게 예쁜 소녀…….”
“예쁜?”
소년이 소녀를 흘깃 쳐다보았다.
“뭘 봐?”
소녀가 앙칼지게 말했다.
소년은 바로 시선을 피하며 주첨기를 흘깃 바라보았다.
“그런데 당신, 이곳에는 왜 어슬렁거리는 거야? 여기 안 보여? 늑대들밖에 없어. 그리고 참고로 말하는데 도적질할 생각이라면 관두는 게 좋아. 우리는 가진 것도 없거니와…… 봤지? 우리 한 몸 정도는 충분히 지킬 수 있으니까. 당신에게도…….”
“그렇군.”
주첨기는 다소 불쾌한 기색을 드러냈다. 이내 고개를 저으며 몸을 돌렸다.
“이봐, 어디 가!”
소녀가 당황해서 외쳤다.
이미 주첨기는 수풀 속으로 사라지고 없었다.
“뭐 해, 곰탱아! 빨리 쫓아가지 않고?”
“왜 쫓아가야 하는데?”
소년이 말꼬리를 흐렸다.
“나도 몰라.”
“뭐야. 그런 게 어딨어.”
“남자가 왜 이렇게 굼떠!”
소녀가 소년을 밀어 버리고선 주첨기가 사라진 수풀로 뛰어갔다.
“같이 가!”
소년도 급히 일어나 소녀의 뒤를 쫓았다.
마치 장미로 머리를 물들인 듯한 빨간 생머리. 오히려 검은색 머리보다 사람의 얼굴이 더 화사하게 보이고 전체적으로 아름다운 분위기를 풍겼다.
또한 눈이 크고 오뚝한 콧날에 앵두 같은 입술은 전형적인 미인의 외모였다.
하지만 소녀 에스는…….
“멍청아, 빨리 좀 와.”
입이 거칠었다.
“힘이 다 빠졌어. 좀 천천히 가자.”
“아이, 씨! 아까 그 사람 어디로 사라진 거야? 무슨 사람이 그렇게 빨라?”
“그러니까 조금만 쉬었다가 찾자.”
키가 190센티미터가 넘고 평원을 보는 듯 쫙 벌어진 어깨를 지닌 소년 던칸은 소녀 에스의 몸을 가리고도 남을 만큼 몸집이 우람했다. 하지만 우람한 몸집에 비해 아직 얼굴엔 애티가 남아 있었다.
“곰탱아, 빨리 좀 와.”
에스는 주첨기가 사라진 방향으로 서둘러 발걸음을 옮겼다.
한참을 걸어도 보이지 않는다. 그래도 포기를 모르고 무작정 그쪽으로 향했다.
“불빛이닷!”
에스가 불빛을 찾고 기뻐서 외쳤다. 뒤에서 급히 쫓아온 던칸은 숨이 차서 말도 제대로 안 나왔다. 늑대들과 전투를 벌이고도 힘이 넘치는 에스가 마냥 신기할 뿐이었다.
“헉헉! 가, 같이 가.”
“으이그, 저 곰탱이! 저걸 어디다 써먹지?”
에스와 던칸은 불빛을 쫓아 다가갔다.
“산길이닷!”
불빛을 찾았을 때보다 더욱 기뻐서 폴짝 뛰었다. 괜히 지름길로 간다고 설치는 것이 아니었다. 크리텔 산맥에서 길을 잃고 헤맨 지 이틀이 지난 후에야 발견한 산길이다. 숨이 차서 헉헉거리고 있던 던칸도 그제야 미소를 지었다.
그러면 그렇지! 찾을 줄 알았다.
에스는 모닥불 앞에 앉아 있는 두 사람을 발견했다. 한 남자의 뒷모습이 조금 전에 사라졌던 사람의 모습과 매우 흡사하다.
“이봐!”
에스가 크게 외쳤다. 부르는 사람은 돌아보지 않고 엉뚱한 아저씨만 고개를 돌린다.
“이봐, 당신 말이야!”
약이 오른 에스가 더 크게 외쳤지만 역시 마찬가지였다.
“스워드님, 웬 아이들입니다?”
자다가 깬 보콜이 말했다.
“신경 쓰지 말게.”
“그래도 이 위험한 곳에 아이들이라니…… 그런데 도대체 누구를 저렇게 부르는 거지?”
보콜이 중얼거리며 에스를 쳐다보았다.
에스는 씩씩거리며 주첨기의 등 뒤에 섰다.
“이봐, 그렇게 가 버리는 게 어디 있어?”
에스가 성난 어조로 말했다.
“헉헉! 에, 에스, 너무 무례하잖아. 그러면 안 돼. 이분에게 왜 그러는데?”
“넌 조용히 있어, 곰탱아.”
“이놈들, 갑자기 나타나서는 이게 무슨 짓이야?”
가만히 상황을 지켜보려고 했는데 도저히 못 참겠다. 보콜이 눈을 부릅뜨며 말했다. 그도 한목소리 하는지라 에스와 던칸이 움찔거렸다.
“그, 그게 이 사람이 우릴 무시하잖아요. 도와주지도 않고요.”
천방지축으로 날뛰던 에스는 한층 기가 꺾여 우물우물 말했다.
보콜은 천천히 에스와 던칸의 모습을 훑어보았다. 떠돌아다니는 아이들 같은데 짐승의 피 냄새가 물씬 풍겨져 나온다.
보콜이 눈살을 찌푸렸다.
“이 사람이라니! 이분이 뉘신지나 알고 말하는 것이냐? 이분은…….”
곰곰이 생각해 보니 의뢰인이 누군지 자신도 알지 못했다. 보콜은 뒷머리를 긁적였다.
“스워드님이시다.”
“스워드님?”
에스와 던칸이 고개를 갸웃했다. 그런 이름을 들어 본 적이 없다.
“무슨 이름이 그래요? 서, 설마 귀족이에요?”
에스가 보콜에게 물었다.
“흠…….”
보콜은 의뢰인이 귀족인지 아닌지 확실히 몰랐다. 귀족이 아닌 사람을 귀족이라고 거짓말하는 것도 나름대로 중죄라 쉽게 대답하지 못했다.
할 말이 없어진 보콜은 호통쳤다.
“이놈들! 이게 무슨 소란이냐.”
“에이, 거짓말이 들통나니까…… 우리 여기 좀 앉아도 돼요? 춥고 배고프고…….”
에스가 간절한 눈빛으로 보콜을 올려다보았다. 눈앞의 아이들은 자신의 아들보다도 어리다. 보콜은 화를 누그러뜨리고 대답도 하지 않은 채 앉았다.
에스는 바로 주첨기 옆에 쭈그려 앉았다. 던칸만 우두커니 서서는 어떻게 할 줄을 몰랐다.
“너도 이리 와서 앉아라.”
“예, 아저씨. 감사합니다.”
보콜이 말했다.
“그래도 자네는 나은 편이군.”
보콜은 모닥불에 구워진 고기를 아무렇게나 잘라서 던칸에게 내밀었다.
던칸은 에스에게 먼저 그것을 양보했고 곧 다시 한 접시 받았다.
“스워드님, 이 아이들은 누굽니까?”
보콜이 물었다.
“나도 모르네.”
주첨기가 어깨를 으쓱했다.
“모른다고? 아저씨, 우리가 늑대들에게 공격받고 있는데 이 사람이 멀리서 구경만 하다가는 혼자서 휑하니 가 버렸다고요.”
“이 사람이라니, 말 함부로 하지 말거라!”
보콜이 어른으로서 따끔히 야단쳤다.
“그렇지만…….”
에스는 눈을 흘기며 시선을 고기 쪽으로 돌렸다. 마치 뱃속에 거지가 들어앉은 듯했다. 자신의 고기를 금세 해치우고 던칸의 고기까지 빼앗아 먹었다. 던칸은 속으로 울면서도 이를 바라만 보았다.
‘완전히 말괄량이군.’
주첨기와 보콜이 에스에 대한 생각을 똑같이 했다.
“그런데 너희들, 늑대들을 물리쳤다고?”
“그럼요!”
에스는 입가에 묻은 고기기름을 닦지도 않은 채 자랑스럽게 대답했다.
“던칸?”
에스가 던칸 쪽으로 시선을 옮겼다.
던칸은 어깨를 쫙 피면서 입을 열었다.
“에스와 저, 이렇게 둘이서 크리텔 산맥에서 늑대 100마리를 해치웠습니다.”
“100마리를?”
“예.”
“크큭!”
너무나 터무니없는 말이라 보콜은 실소를 지었다. 그는 곧 ‘아하하핫!’하고 대소를 터트리며 에스와 던칸을 손가락질했다.
“어른에게 그런 거짓말하는 거 아니다.”
“정 못 믿겠으면 저기 저쪽으로 쭉 올라가 보세요. 늑대의 시체들이 있을 테니까요,”
“하핫! 원 어린애들이 벌써부터 허풍을…… 그래, 너희들은 이름이 뭐냐?”
“몰라요.”
에스는 콧바람을 내뿜으며 고개를 돌렸다.
“전 던칸이고 이쪽은 에스예요.”
“난 보콜이다. 아무튼 조금 시끄럽게 만나긴 했지만 반갑네. 어디로 가는 중인가?”
“저희는 목적지가 따로 없어요. 우선은 남하성부터 둘러보려고요.”
“오, 우리도 그쪽으로 가는 길인데…… 도대체 그 먼 데까지는 왜?”
“수련 중이에요. 황성의 검사, 아니 기사만 돼도 족하니 우선 대륙을 돌아보면서 수련을 쌓고…….”
“그럼 최종목적지는 황제폐하겠구나.”
자신의 이야기가 나오자 주첨기도 사람인지라 귀가 솔깃해졌다. 그는 가만히 대화를 들었다.
“황제폐하요?”
“그래, 황성의 검사가 되겠다는 생각을 가졌다면 마지막 종착지가 황제폐하가 있는 황성이지. 그렇지 않느냐?”
“그, 그래요.”
던칸은 몸집에 어울리지 않게 얼굴을 붉혔다.
보콜은 던칸의 그 모습이 귀엽다고 생각했다. 마치 자신의 아들을 보는 것 같았다.
“내 아들이 지금 황도에서 법병대장으로 있지.”
“정말요?”
입을 쀼루퉁하게 내밀고 있던 에스가 표정이 확 달라지더니 보콜 옆으로 자리를 옮겼다.
“그럼! 내 아들이 법병대장이지.”
“우와! 황도의 법병대장들은 통일전쟁에서 훌륭한 전공을 쌓은 사람이 됐다고 들었는데, 아저씨의 아드님은 황제폐하와 이왕전하 그리고 검사님들과 같이 전쟁에 참여하셨군요?”
에스가 신이 나서 물었다.
“당연하지.”
보콜은 팔짱을 끼며 흐뭇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대, 대단해요! 그렇지, 곰탱아?”
“그럼, 대단하고말고!”
“황도의 법병대장들은 다른 지역의 법병대장들보다 훌륭한 전공을 쌓았고 월등히 강하다고 했어요. 정말 대단해요.”
에스의 눈망울이 초롱초롱해졌다.
그건 던칸도 마찬가지였다. 기대감에 가득 찬 둘의 눈을 본 보콜도 입가에 미소가 그려졌다. 그는 그동안 너무 오랫동안 아들자랑을 못했다.
“우와! 그럼 아드님의 나이가 어떻게 돼요?”
“그건 왜?”
“혹시 알아요? 이것이 인연이 될지도…….”
“하핫! 내 아들은 이미 결혼해서 다섯 살 난 아들과 세 살 난 딸이 있단다.”
“에이, 그런 법이 어딨어요?”
“하하핫!”
약간은 삭막했던 분위기가 일순간에 풀렸다.
보콜은 에스와 던칸에게 차까지 건네며 아들에게 들었던 전쟁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에스와 던칸은 침을 꼴깍꼴깍 삼켰다. 황제 주첨기가 활약했던 이야기가 나올 때면 에스는 ‘와우!’하고 소리를 질렀다.
황제폐하의 영웅담!
보콜의 말에 따르면 아들의 경험담에 아주 약간의 과장이 섞였다지만 전혀 그렇지 않았다. 주첨기에게는 하늘을 나는 듯한 경공술이 있고 천지를 가르는 무공이 있다. 이는 과장이 아니라 엄연한 사실이다.
주첨기는 멀리서 보콜의 이야기를 들으며 피식피식 웃었다.
“자, 그렇게 에드먼 황성은 점령되었지. 바로 그 전투에서 내 아들이 적군의 기사 셋을 벤 전공을 인정받아 법병대장이 되었다.”
“와아!”
보콜은 아들에게 들은 이야기를 자신이 직접 경험한 것처럼 실감나게 했다.
이야기가 끝났다. 에스와 던칸은 흥분한 콧바람만 씩씩 내뿜을 뿐이었다.
“그만 일어나야겠군.”
“예? 더해 주세요, 아저씨.”
에스가 말했다.
“마차를 고쳐야 돼. 이곳에 더 머물렀다간 언제 늑대들에게 당할지 몰라.”
“늑대라면 저희가 해치울 수 있어요. 그렇지, 곰탱아?”
던칸이 세차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도 이야기를 더 듣고 싶은 모양이었다.
“안 돼.”
“그럼 저희들도 마차 고치는 거 도와 드릴 테니까 태워 주세요.”
“돈이 많이 들 텐데?”
“에에에엣? 설마 돈을 받으시려고요? 이렇게 여린 소녀와 소년에게서요?”
“이미 이 마차는 스워드님을 태우고 가는 중이야. 스워드님께서 허락…….”
보콜이 주첨기의 눈치를 살폈다.
“난 상관없네.”
“하지만 이 아이들이 탈 자리가 없습니다.”
“괜찮네.”
주첨기가 대수롭지 않다는 듯 말했다.
“와우! 거 봐요. 괜찮다잖아요. 이제 보니 당신, 그렇게 무정한 사람도 아니었네? 저랑 저 사람하고 같이 타고 곰탱이는 아저씨 옆에서 마차 모는 거 도와주면 되잖아요. 마차 모시다가 피곤하면 곰탱이에게 하라고 해도 되고요. 쟤 마차 잘 몰거든요.”
“그, 그래요.”
던칸이 말했다.
“아무튼 마차부터 고치자.”
마침 짐칸에 여분의 바퀴가 하나 더 있었다. 이럴 때를 대비하여 여분의 바퀴를 가지고 다니는 것은 필수였다.
에스가 던칸에게 눈치를 주었다. 던칸이 무거워 보이는 마차바퀴를 간단하게 들어서 가져왔다.
“난 무엇을 하면 되겠나?”
주첨기가 물었다.
“스워드님은 가만히 기다리시고 계시면 됩죠. 너희들도 모닥불이나 쬐고 있거라. 사람이 많이 달라붙어 봤자 거추장스럽거든.”
보콜은 익숙한 솜씨로 마차를 고치기 시작했다. 마차바퀴 하나쯤 고치는 건 일도 아니었다.
질주하는 마차 안은 분위기가 묘했다. 가만히 눈을 감고 앉아 있는 주첨기와 그 옆에서 계속 그를 응시하는 에스.
에스는 주첨기의 얼굴을 세세히 살폈다. 좀 전에는 몰랐는데 이렇게 가까이서 보니 이목구비가 뚜렷하고 미남형의 인상이다.
‘호오…….’
에스가 자신의 턱을 쓰다듬으며 미소 지었다.
[우끼.]그런데 이상한 소리가 들렸다.
에스는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내가 잘못 들었나?”
[우끼.]이번엔 분명히 들었다. 처음 듣는 이상한 음성이다.
에스는 한 번 더 소리가 나길 기다렸다.
[우끼, 우끼.]스워드라고 불리는 사내의 가슴팍에서 들리는 소리다. 그러고 보니 사내의 가슴 쪽이 약간 부풀어 있었다. 뭔가를 가슴에 품고 있는 모양이었다.
에스는 호기심이 일어 집게손가락으로 부푼 부분을 찔렀다. 약간 딱딱한 촉감이 손끝에 느껴졌다.
[우끼!]불쑥!
이상한 식물이 상의 위로 나타났다. 식물인데 얼굴이 있다. 사람처럼 눈, 코, 입의 형체가 오밀조밀하게 있어 귀엽다는 느낌이 들었다.
흠칫 놀란 에스는 호기심을 가지며 말했다.
“넌 뭐야. 식물이야? 동물이야?”
“설령이라고 하지.”
대답은 엉뚱한 데서 들려왔다.
“설령? 이 식물인지 동물인지 알 수 없는 이게 설령이라는 종이야?”
[우끼!]에스가 물건취급을 하자 설령이 얼굴을 붉혔다.
“너…… 내 말 다 알아듣는 거야?”
“네 이름이 에스이듯 내 친구의 이름은 설령이지.”
“친구? 어떻게 사람하고 식물하고 친구가 될 수가 있어. 나 이거 주면 안 돼? 엄청 귀엽게 생겼다.”
에스가 주첨기에게 계속 반말했지만 주첨기는 구태여 암행까지 나온 이상 에스에게 말을 높이라고 하고 싶지는 않았다.
“아, 귀여워.”
에스가 설령의 머리에 손을 댔다.
[우끼!]갑자기 설령이 뛰쳐나와 에스의 뺨을 때린 후 돌아갔다.
“아얏!”
한 박자 느리게 에스가 비명을 터트렸다. 갑자기 뺨이 지끈거렸다.
“아……!”
에스는 화가 나기도 전에 문득 어디선가 주워들은 이야기가 생각났다.
‘황제폐하는 언제나 한 식물을 품고 다니는데 그 식물은 사람의 말을 알아들을뿐더러 스스로 행동하고 또…… 그 식물의 몸을 먹으면 죽은 사람도 살려낸다고 했던가? 어째 얘와 비슷한데?’
“당신, 스워드라고 했지? 혹시 그거 알아? 황제폐하께서도 이렇게 작은 식물을 지니고 다니시는데 한 번 움직이면 엄청 빨라서 볼 수도 없다고 그러던데? 들어 봤어?”
“그런가?”
주첨기는 피식 웃었다.
“봐, 설령 얘하고 닮았잖아. 어떻게 생겼는지 보지 못해서 모르겠는데, 아마도 황제폐하께서 품고 다니는 그 식물과 같은 종인 것 같아. 설마 당신…… 그것도 모르고 있었던 거야?”
에스가 한 번 더 설령을 만지려고 손을 가져갔다.
“처음 듣는 소리군. 설령은 귀찮게 하는 사람을 싫어하지. 더 귀찮게 하면 반대쪽 뺨이 아프게 될 것이다.”
“엥?”
뭔가 이상하다. 에스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런데 왜 검사가 되고 싶은 것인가? 무슨 사연이라도 있는 것인가?”
“특별한 사연은 없어. 하지만 꼭 사연이 있어야 꿈을 가질 수 있는 건 아니잖아. 굳이 사연을 따지자면…… 한 번은 자고 일어나서 문득 창밖을 본 적이 있어. 그때 나는 하늘을 나는 사람을 보았어. 마법이 아니었어. 그건 뭐랄까. 느낌이 하늘을 밟고 뛰는 것이랄까? 나중에야 안 거지만 그 사람은 대국의 검사님이셨어.”
“그럼 검사가 되고 싶다기보다는 하늘을 밟고 뛰고 싶은 것이 아닌가? 그러려면 차라리 마법사가 낫지 않겠나?”
“아니야. 이봐, 당신! 다른 사람의 꿈을 함부로 취급하는 거 아냐. 우리 엄마가 그러셨어. 타인의 꿈이 설사 자신에게는 하찮게 생각될지라도 존중해 줘야 한다고. 사람은 저마다 다르니까. 그래서 세상이 이루어진다고…….”
“훌륭한 어머니시군.”
“맞아, 우리 어머니는 훌륭하셨어.”
에스의 눈이 촉촉이 젖어들었다.
“훌륭한 어머니를 뒀으니 넌 검사가 될 수 있을 거다. 400검사 중에는 여자들도 많지.”
주첨기가 다시 눈을 감으며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