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mortal RAW novel - Chapter 101
101 내 나이가 어때서!
다음 날 아침.
언제나처럼 강석초가 소소와 함께 진무앙의 방문을 벌컥 열고 들어왔다.
“밥 먹으러 가자!”
초췌한 얼굴로 침상에 늘어져 있던 진무앙이 힘없이 고개를 저었다.
“기운 없어서 못 가겠다. 갖고 와.”
“내가 네 하인이야? 그리고 무단결근하고 외박까지 하더니 새벽에 기어들어 와서는 이제 밥까지 갖다 달래? 세상 참 편하게 산다.”
“부러우면 너도 이렇게 살든지.”
“그걸 말이라고 하냐! 얼른 일어나, 너 때문에 소소도 굶겠다.”
진무앙이 매가리라고는 약에 쓰려고 해도 찾아볼 수 없는 눈으로 소소를 돌아보았다.
소소가 걱정스러운 얼굴로 물었다.
“숙부님, 어디 아프세요? 하룻밤 사이에 얼굴이 반쪽이 되셨어요.”
대답은 강석초가 했다.
“저 인간, 아파서 저렇게 된 거 아니니까 걱정할 필요 없다.”
소소가 고개를 들어 강석초를 보았다.
“그런데 왜 저렇게 힘이 없으세요?”
“밤에 엉뚱한 곳에 힘을 다 써서 그래.”
“어디에요?”
강석초는 난감한 얼굴이 되었다.
“지금 말해줘도 너는 몰라. 나이가 들면 저절로 알게 될 거야. 그러니까 궁금해하지 마라.”
두루뭉술한 대답에 소소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강석초가 침상으로 다가가 진무앙의 어깨를 잡으며 인상을 와락 찌푸렸다.
“어우, 밤꽃 냄새… 대체 밤새 얼마나 난리를 친 거야? 적당히 좀 해. 이 낭랑이 알까 겁난다고!”
강석초가 잡아 일으키는 대로 흐느적거리며 상체를 일으킨 진무앙이 말했다.
“못 간다니까 그러네. 다리에 힘이 하나도 없어.”
강석초가 콧물이 튈 정도로 세차게 콧방귀를 꼈다.
“흥! 힘없는 다리는 그 다리가 아니겠지.”
진무앙이 쓰러질 듯 흐물거리며 말을 받았다.
“석초야, 알면서 악쓰지 마라. 대꾸할 힘도 없다.”
그가 물었다.
“백지는?”
“너하고 나간 후에 돌아오지 않았다. 바로 떠난 거 같아.”
대답하던 강석초는 다시 열이 받는지 진무앙을 타박했다.
“너도 그렇고 연 낭랑도 그렇고, 대체 나이들은 어디로 처먹은 거냐? 그 나이쯤 되었으면 자중도 할 줄 알아야 하는 거 아니냐고!”
“육중한 꼰대 납셨네.”
“꼬… 꼰대!”
“아무튼, 난향이라면 몰라도 멋진 남자들만 보면 침을 질질 흘리는 네가 할 말은 아닌 것 같다.”
치명적인 연타 공격을 당한 강석초의 얼굴이 확 변했다.
진무앙이 어깨를 잡은 그의 손을 떼어내고 다시 누우며 말을 이었다.
“그리고 말이다. 남자든 여자든 젓가락 들 힘만 있으면 불타오르는 거야. 그건 나이하고 상관없어. 네가 아직 어려서 잘 모르는 것일 뿐이야, 임마.”
강석초가 앓는 신음을 토하며 울부짖었다.
“아으으으으… 내 나이가 어때서!”
그때 소소가 말했다.
“숙부님, 제가 식사 가져다 드릴게요. 잠깐만 기다리고 계세요.”
진무앙이 소소를 보며 싱긋 웃었다.
“역시 내 걱정 해주는 건 너밖에 없구나. 천천히 갖고 와도 되니까 밥 꼭꼭 씹어먹어라. 급하게 먹으면 체한다.”
소소가 환하게 웃었다.
“예, 숙부님.”
소소와 함께 방을 나가던 강석초가 진무앙을 돌아보며 작은 목소리로 물었다.
“어떻게 알았어?”
그가 무엇을 묻는지는 자명했다.
진무앙이 심드렁하게 되물었다.
“어떻게 알았겠냐?”
“이 낭랑?”
“응.”
“으으으… 누나는 그 절대 비밀을 어떻게 저 인간에게…….”
진무앙이 매가리 없는 목소리로 끊어진 뒷말을 이어주었다.
“석초야, 그래서 세상에 믿을 사람 하나 없다는 속담이 생긴 거란다.”
조금 전에는 꼰대라더니 이제는 영락없는 어린애 취급이다.
하지만 강석초는 성질을 낼 기력도 없어서 축 늘어진 배를 출렁이며 힘없이 방문을 닫고 나갔다.
진무앙은 침상에서 뒹굴거리며 아침과 점심을 소소가 가져다준 음식으로 때웠다.
그가 일어난 건 해가 서편으로 많이 기울었을 때였다.
그것도 자의가 아니었다.
손님이 두 명이나 직접 그를 찾아왔기 때문이었지.
밍기적거리며 일어난 진무앙은 의자에 앉은 난향과 목일석을 번갈아 보며 눈을 끔벅거렸다.
아무리 봐도 두 사람은 어울리는 조합이 아니었다.
그가 귀찮은 기색이 역력한 얼굴로 난향에게 물었다.
“루주님, 어인 일로 누추한 제 방에까지 직접 행차하시었습니까?”
존댓말이다.
목일석이 있으니 둘이 있을 때처럼 평대를 할 수는 없었다.
난향이 그를 째려보며 말을 받았다.
“아침에는 일어나지도 못할 지경이었다고 들었는데 지금은 괜찮아 보이네.”
찔끔한 진무앙이 어색하게 웃었다.
“아… 하하하……. 어제 잠을 좀 설쳐서 그런 겁니다. 꼬맹이가 식사를 챙겨줘서 많이 좋아졌습니다.”
“잠을 설치셨어? 아예 못 잔 건 아니고?”
대답을 못 하고 어물거리던 진무앙은 목일석을 힐끔 보며 바로 화제를 바꾸었다.
“……무슨 일로 오신 겁니까?”
어젯밤에 대해서는 길게 이야기하면 할수록 그의 손해였다.
“켕기는 게 있나 보네. 기를 쓰고 말을 돌리는 걸 보면?”
진무앙은 난향의 말을 가볍게 묵살했다.
“용건을 말씀하시지요, 루주님.”
잠시 그를 말 없이 째려보던 난향이 고개를 휘휘 젓더니 용건을 꺼냈다.
“의뢰 때문에 왔어.”
“의뢰요? 그런데 왜 목 호위와 함께 오신 겁니까?”
“의뢰자가 목 호위거든.”
“응?”
진무앙이 눈살을 찌푸리며 목일석을 보았다.
목일석이 말문을 열었다.
“루주님과 상의를 했더니 자네를 추천하시더군. 능력이 출중한 용병낭인이었고, 최근 몇 가지 의뢰도 성공적으로 수행했다면서. 그래서 자네를 찾아왔네.”
“의뢰 내용이 뭔지는 모르겠지만 목 호위 실력으로 해결하지 못하는 일을 내가 해결할 수 있다고 생각하시는 겁니까?”
아직 목일석이 무공을 펼치는 걸 본 적은 없지만 진무앙은 그가 절정의 경지에 이른 무인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목일석이 탄식하며 말을 받았다.
“후우, 내가 직접 나설 수 있었다면 굳이 자네에게 의뢰를 하러 오지는 않았을 걸세.”
강한 자신감과 더불어 안타까움이 깃든 음성.
난향이 거들었다.
“그의 말이 맞아. 그가 이곳에 은둔하고 있다는 건 외부에 알려져서는 안 되는 일이야. 그래서 그는 직접 나설 수가 없어.”
진무앙이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
“은둔은 무슨, 숨어 있는 거면서.”
목일석의 눈빛이 강해지고 난향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분위기를 파악한 진무앙이 재빨리 말을 이었다.
“아무튼 알겠고. 그래서 대금은 얼마를 준비한 겁니까?”
목일석이 허리춤에서 전낭을 꺼내 진무앙에게 내밀었다.
“루주님은 절반은 선불, 나머지는 후불로 지불하면 된다고 하시더군. 그래서 오십 냥을 넣었네.”
“도합 백 냥짜리 의뢰라는 거로군요.”
“대금이 적어 미안하네. 내 전낭의 사정이 넉넉하다면 기꺼이 더 지불하겠지만, 지금의 내게는 이것이 최선일세. 이것은 지난 이 년 동안 내가 이곳에서 일하며 모은 월봉 전부라네.”
진무앙의 눈이 가늘어졌다.
목일석의 월봉은 그보다 한 냥이 더 많아서 은자 여섯 냥이었다.
그러니 백 냥이면 그가 이 년 동안 일상 생활하며 쓰고 남은 돈 전부라고 할 만했다.
‘무슨 일이기에 이놈이 이렇게까지 저자세로 나오는 거지?’
진무앙은 궁금해졌다.
목일석은 기루의 호위를 하고 있었지만, 무인으로서의 자부심은 누구보다 강한 남자였다. 그에 걸맞은 실력도 갖추었고.
즉, 남에게 아쉬운 소리를 쉽게 할 사람이 아니라는 말이다.
그런 그가 저렇게까지 말을 한다는 건 이번 의뢰가 굉장히 절실하다는 뜻이었다.
진무앙이 목일석에게 말했다.
“일단 의뢰 내용을 들어보죠. 수락 여부는 그 후에 결정하고요.”
난향이 빙긋 웃으며 끼어들었다.
“안 돼.”
진무앙이 뜨악한 표정으로 물었다.
“왜 안 된다는 겁니까?”
“진 호위, 이번 의뢰는 무조건 수락이야. 당신의 선택지에 거절이란 단어는 없어.”
진무앙이 강력하게 항의를 했다.
“그런 게 어디에 있습니까?”
“어디 있기는. 여기에 있지.”
“이건 공정한 거래가 아닙니다. 아무리 고용주라고 해도 이렇게 강압적으로 의뢰를 수락하라고 하는 건 상도의에 어긋난다고요.”
난향이 진무앙을 노려보며 말을 받았다.
“당신이 도의를 찾아? 날아가던 참새가 웃다가 배꼽 떨어질 소리를 하고 자빠졌네. 진 호위, 진짜 도의가 어떤 건지 내가 알려줄까?”
말을 하는 난향에게서 희미하게 이를 가는 소리까지 들은 진무앙은 즉시 자세를 낮췄다.
본래 소나기는 일단 피하는 게 상책이다.
그가 재빠르게 목일석에게 말했다.
“수락하겠습니다. 그러니까 목 호위, 의뢰 내용을 말해주세요.”
목일석의 볼살이 가늘게 떨렸다.
“고맙네, 진 호위.”
발작할 것 같던 난향도 진무앙을 한 번 흘기고는 눈을 감았다.
진무앙과 목일석이 나누는 대화에 더는 끼어들지 않겠다는 의사가 명백한 태도였다.
목일석이 길게 심호흡을 하며 말문을 열었다.
“자네도 이미 짐작하고 있겠지만 나는 사해집마부 사람일세. 무력 집단인 집마오단 중 혈마단의 부단주를 맡았었네.”
진무앙은 천하삼정의 내부에 관심을 끊고 지낸 지 하도 오래되어서 그들의 속사정을 잘 알지는 못했다.
그래도 사해집마부의 천지인혈옥 집마오단의 부단주라면 서열 백 위 안에 드는 고위직이라는 것 정도는 알고 있었다.
그가 말했다.
“생각보다 직위가 높은 분이셨네. 강마팔단공의 오단공을 수련하는 걸 보고 집마부의 요인이겠다 싶기는 했지만요.”
목일석의 눈에 놀란 빛이 떠올랐다.
“내 수련 단계까지 알아보았단 말인가?”
“그게 뭐 어려운 일이라고요.”
진무앙은 아무렇지도 않게 대꾸했지만, 듣는 목일석은 놀람을 넘어 경악하고 있었다.
강마팔단공은 사해집마부에 몸담은 모든 무인이 익히는 무공이었다.
누구나 익히니까 별 볼일이 없는 무공이겠거니 하면 그것은 엄청난 착각이었다.
강마팔단공은 지난 이백 년래 마도무림에서 창안된 수많은 마공 중 당당히 서열 이위에 자리매김한 초절기였으니까.
이 무공은 직급에 따라서 전수되는 단계가 달랐다. 그리고 각 단계마다 그 수준에 합당한 권장지각, 병기무예 등이 종합적으로 편성되어 있었다.
그래서 삼단공을 익히면 일류고수 소리를 듣고, 오단공을 익히면 절정고수의 반열에 들어섰다는 평가를 받았다.
육단공을 수련하면 초절정고수 소리를 듣고, 팔단공을 대성하면 무림을 통틀어 열 손가락 안에 드는 절대고수라 일컬어졌다.
물론 오단공부터는 난이도가 극악이라 무재를 타고나지 않은 자는 거저 준다고 해도 돼지 목에 진주목걸이 격으로 성취를 얻을 수 없었지만.
목일석이 놀란 건 강마팔단공의 오 단계까지는 외부에서 구별할 수 있는 특징이 나타나지 않기 때문이었다.
육단공부터는 운공할 때 강기가 외부로 흘러나오지만, 그전에는 그런 징표가 드러나지 않는 것이다.
그런데 진무앙이 자신의 수련 단계를 한눈에 알아보았으니 어떻게 놀라지 않을 수 있겠나.
진무앙이 심드렁하게 말했다.
“목 호위, 놀란 거 끝났죠? 그러면 이제 말을 하세요. 기다리기 지루하니까.”
목일석은 쓴웃음을 지으며 입을 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