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mortal RAW novel - Chapter 102
102 저 자식이 여기서 왜 나와?
할 이야기를 끝낸 목일석이 돌아갔다.
“난향은 왜 안 가? 어젯밤 일로 더 구박하려고?”
“소귀에 경 읽기나 마찬가지일 게 뻔한데 힘 빠지게 내가 그 짓을 왜 계속하겠어?”
더는 구박을 하지 않겠다는 말.
진무앙이 감격에 겨운 얼굴로 포권을 했다.
“감사합니다, 루주.”
난향이 그를 째려보며 말했다.
“당신, 언젠가 자다가 가위에 눌리면 나 때문인 줄 알아.”
진무앙은 흐흐 웃기만 했다.
할 말이 없는 건 아니었지만 하지 않았다.
공연히 난향의 심기를 거슬려서 좋을 게 하나도 없었으니까.
그가 물었다.
“이 의뢰, 왜 받아들인 거야? 내가 작은 실수라도 하면 수향루가 잿더미로 변할지도 모르는 일인데.”
“첫째, 의뢰를 수행하는 사람이 당신이니까.”
“음… 그 두터운 신뢰, 감동이로군.”
“당신이란 남자는 신뢰 못 하지만, 용병으로서의 당신은 누가 뭐래도 최고니까.”
“감동 취소.”
“둘째, 죽은 목 호위의 스승 추혼귀검은 사해집마부에 몸을 담기 전 잠깐이나마 내 시중을 든 적이 있던 아이야.”
“그런 인연이 있었어?”
“삼정이 쟁패하던 천하대난투 시절 추혼귀검은 어린 목 호위를 데리고 나를 찾아왔었어. 인사를 시키겠다고. 그 십여 년쯤 뒤에 무림맹과의 전투에서 전사했지.”
“그래서 목 호위가 여기 머물고 있었던 거로군.”
“맞아.”
“그런데 목 호위는 왜 집마부에서 나와 숨어 지내는 거야?”
“궁금해?”
난향의 질문에 진무앙은 고개를 저었다.
“아니. 그냥 한번 물어봤어.”
누군가에 대해 많이 알게 되면 얽히는 일도 많아지는 게 세상 돌아가는 이치다.
즉, 아는 사람이 적고 그에 대해 아는 것도 적으면 인생이 단순해진다는 말.
그리고 진무앙은 단순한 인생을 지향하는 아주 소박한(?) 남자다.
난향이 그에게 말했다.
“이번 일, 목 호위의 부탁이라 거절하지 못했지만 쉽게 생각할 일 아니야. 물론 당신이 어련히 잘 알아서 할 거라는 걸 알아. 그래도 무엇을 하든 한 번 더 생각하고 좀 더 신중하게 행동했으면 해.”
“내 걱정하는 거야?”
“당신 걱정을 왜 해? 당신 때문에 엉망이 될지도 모르는 무림을 걱정하는 거지.”
“췟!”
“의뢰받은 일만 해. 엉뚱한 짓을 해서 공연히 평지풍파 일으키지 말고.”
“염려 붙들어 매도 좋아. 나도 풍파라면 딱 질색이니까.”
진무앙이 미간을 찡그리며 말을 이었다.
“그나저나 혈마단주면 집마부 서열 삼십위 안에 드는 거물 아니야? 그런 인물이 병약한 아들을 데리고 한때는 동료였던 자들에게 쫓기는 중이라… 뭔가 너무 현실감이 떨어지지 않아?”
“그만한 이유가 있는 거겠지.”
“그러니까 그 이유가 뭐냐고. 생각나는 거 없어?”
“없어. 목 호위도 그건 모르겠다니 혈마단주를 만나봐야 알 수 있겠지. 그러려면 빨리 그를 안전하게 구해야 하고.”
“말은 참 쉽지. 낙양 인구가 얼만지 알아? 육십만이야. 그 안에서 변장하고 숨어 있는 사람 둘을 찾는 일이라고. 거기다 집마부의 정보기관인 비마잠혈의 촉수도 피하면서 작업해야 하고.”
“그거 당신 전문이잖아.”
“난향은 내가 무슨 삼두육비의 괴물인 줄 아는가 본데, 상대는 사해집마부야. 나, 연약하고 섬세하고 여리고 겁도 많은 남자거든!”
진무앙의 말에 대한 난향의 반응은 단호하고 매몰찼다.
“지랄!”
“…으으으…….”
“이번 일에 석초는 별 도움이 안 될 거야.”
“왜?”
“나는 비마잠혈이 본격적으로 움직이고 있는 전장 속으로 석초의 등을 떠밀고 싶은 마음이 눈곱만치도 없거든.”
“난향, 그거 과보호야. 그놈 살을 빼주기 위해서라도 좀 더 긴장감 넘치고 바쁜 날들이 필요하다고.”
“지금도 석초는 충분히 귀여워. 통통하고 살도 아기처럼 보들보들하잖아. 그러니 여기서 살을 더 뺄 필요는 없어.”
“헐, 그놈이 귀엽다는 사람은 세상에 난향밖에 없을 거다.”
“석초한테는, 그 아이를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정도로 귀여워하는 누나와 형들이 셋이나 더 있다는 걸 잊지 마. 기억이 나지 않으면 걔들 전부 다 불러줄 수도 있어. 부족하면 동생들도 불러주지. 아마 당신이 여기에 있다고 하면 다들 만사 젖히고 달려올걸.”
“…염병…….”
진무앙은 조용히 꼬리를 내렸다.
난향이 말을 이었다.
“비마잠혈의 움직임이 바빠져서 무림맹 풍령부운전과 일월단심맹 구유밀령도 무슨 일인가 궁금해할 거야. 그들이 개입하기라도 하면 일이 복잡하게 전개될 수 있다는 것도 염두에 둬.”
“그렇게 잔소리하지 않아도 그 정도는 나도 알아.”
난향이 자리에서 일어나며 말을 이었다.
“참, 사마세가에서 본격적으로 주신언에게 힘을 실어주기 시작한 것 같아.”
“사마세가에서?”
“비룡무관 참사 조사 때문은 아닌 것 같은데… 다른 뭔가를 바쁘게 쫓고 있는 모양이야. 하지만 보안이 굉장히 철저해서 석초도 아직 그들의 목적은 파악하지 못했어. 당신, 저번에 사마세가에 들어갔을 때 아영을 구한 거 말고 뭔가 다른 짓 한 거 없지?”
진무앙은 바로 고개를 저었다.
“없어. 나는 결백해. 믿어줘. 믿으면…….”
“믿어도 복 안 온다니까! 그 입 안 다물면 확 꿰매 버릴 거야!”
“합!”
“정말 아무 일 없었던 거 맞는 거지?”
“없었다니까.”
“좋아. 아무튼, 당신은 사마세가의 움직임과 관련이 없다고 알고 있을게. 그렇지 않을 때는 내가 정말로 화낼지 몰라.”
“알았어…….”
난향의 눈치를 힐끗 살핀 진무앙이 물었다.
“나, 오늘 저녁부터 자유 근무야?”
“오늘까지는 일해. 내일부터는 마음대로 하고.”
“오늘부터 하면 안 될까?”
“조사를 어디부터 어떻게 시작할 건지 벌써 구상이라도 했어?”
그런 게 있을 리 있나.
“아니.”
“그러니까 오늘까지는 일해. 어제도 결근했잖아. 틈만 나면 놀 궁리하지 마. 나도 흙 파서 장사하는 거 아니야.”
이럴 때의 난향은 평범하기 그지없는 장사꾼이다.
“응…….”
난향도 돌아갔다.
진무앙은 침대에 벌렁 드러누워 팔베개를 했다.
열린 창밖으로 조금씩 붉은빛으로 물들어가는 하늘이 보였다.
어느새 저녁이 다 된 것이다.
하늘을 보는 그의 뇌리에 연백지가 떠올랐다.
남자처럼 호탕하고 거칠 것 없이 굴지만, 그의 품에 안기기만 하면 언제 그랬냐는 듯 어린아이처럼 천진난만해지는 여인.
‘임 궁주도 어리석은 여자는 아니니까 백지가 합류하면 팔흉과의 싸움에서 확실한 우세를 점할 수 있을 거야.’
그는 연백지를 돕겠다는 생각을 하지 않았다.
그는 지금까지 가능하면 다른 사람의 삶에 깊숙이 개입하지 않으려 노력하며 살아왔다.
자신의 여자라고 생각하는 대상이라 할지라도 생명의 위협을 당하는 상황이 아니면 예외를 두지 않았다.
그는 자신이 우주의 법칙을 거스른, 반칙을 넘어 역천에 가까운 존재라는 것을 충분히 잘 이해하고 있는 남자였다.
그런 그가 적극적으로 타인의 인생에 개입하면, 그가 의도하지 않았다 하더라도 세상에 거대한 충격파가 발생할 가능성은 얼마든지 있었다.
실제로 스스로에 대한 자각이 부족했던 초기(?)에 그 때문에 참혹한 겁화도 여러 번 일어났었고.
그는 한때 역사의 창조자였지만 이제는 방관자로 남은 남자였고, 그만큼 불가해한 존재였지만 전능한 신은 아니었다.
무심하게 흘러가는 세월 속에서 그는 처절하게 자각해야만 했다.
자신으로 인해 발생한 거대한 충격파에 휩쓸린 사람들을 모두 구할 능력 같은 건 그에게 없다는 것을.
‘잘하겠지.’
그는 연백지에 대한 생각을 접었다.
다시 그녀의 소식을 들으면 그때 생각하면 될 일이었다.
‘그나저나 난향이 저렇게 나오면 석초에게 정보를 물어다 달라고 하기 어려운데… 가가호호 방문하며 수색할 수도 없고… 어쩐다…….’
생각하던 그는 벌떡 일어났다.
“배고프다. 밥 먹고 생각하자.”
그 말이 신호라도 되는 것처럼 방문이 열리며 소소와 강석초의 얼굴이 나타났다.
“밥 먹으러 가자!”
식사를 마친 진무앙은 호위무사 대기실로 갔다.
언제나처럼 운공 중이던 목일석이 눈을 떴다. 하지만 들어서는 그를 한번 보고는 다시 감았다.
진무앙은 그런 그의 태도가 마음에 들었다.
의뢰인인 그가 왜 조사를 하지 않고 출근을 했냐, 진행은 어떻게 할 거냐 등등 꼬치꼬치 묻는다면 얼마나 피곤하겠는가.
간이 침상에 누운 진무앙은 혀를 찼다.
‘결국 그녀에게 부탁해야 하나…….’
그는 밥을 먹으면서 그리고 지금까지 이번 의뢰에 대해 계속 생각했다.
성실한 용병은 마지막 잔금을 받아낼 때까지 최선을 다하니까.
이번 의뢰의 핵심은 결국 혈마단주와 그의 아들을 빨리 찾아내는 것이었다.
그들을 확보해야 안전하게 빼돌리는 다음 절차의 진행이 가능했다.
‘석채은에게 부탁을 해보자. 정보와 관련된 일이라면 언제든 도움을 주겠다고 했으니까 거절은 안 할 거야. 그녀는 나에 대해 궁금한 게 많으니까 도와달라고 하면 오히려 좋아할 수도 있지. 어차피 가흔을 만나기 위해서라도 봐야 하기도 하고.’
그때 문이 열리며 열 살쯤 된 어린 동기 하나가 얼굴을 빼꼼히 내밀었다.
“진 호위님, 잠깐 나와보셔야 할 것 같아요.”
진무앙은 팔베개를 한 채로 고개만 돌려 동기에게 물었다.
“왜?”
“정문에서 행패를 부리는 손님이 있어요.”
“어떤 놈이?”
“오늘 처음 온 손님이에요. 마흔쯤 된 거 같고, 생김새는 굉장히 멀끔한데 하는 짓은 개진상이에요.”
“그놈이 진상을 부리는 기녀는 누구냐?”
진무앙은 특급 호위무사고 그는 담당하는 기녀의 일에만 출동한다.
“기녀분들한테는 아니고, 총관님한테 행패 부리고 있어요.”
총관이면 이수홍이다.
동기의 말에 진무앙은 눈살을 찌푸렸다.
“다른 호위무사들은 놀고 있는 거냐? 이 총관한테 그러는 거면 그 친구들이 처리하면 되지, 왜 나를 불러?”
“루주님의 지시예요.”
진무앙은 어리둥절해졌다.
“응?”
동기가 말을 이었다.
“루주님이 콕 집어서 진 호위님이 그 개진상을 처리해야 한다고 하셨어요.”
진무앙은 미간을 찌푸리며 일어나 앉았다.
“루주님이 나를 지목한 이유를 아냐?”
동기는 고개를 저었다.
“아니요.”
수향루는 북부 대로에서 가장 큰 기루이고, 손님도 제일 많았다. 손님이 많은 만큼 진상들도 많았고.
하지만 그런 진상 손님은 대부분 이 총관 선에서 정리되었다.
그리고 이 총관이 감당할 수 없는 손님이라고 해도 난향이 그를 처리하라고 직접 진무앙에게 지시를 내렸던 적은 한 번도 없었다.
그러니 어리둥절할 수밖에.
어쨌든 루주가 지시를 내렸으니 호위무사는 당연히 그에 따라야 하는 법.
진무앙은 털레털레 정문으로 나갔다.
정문에 도착한 그는 난향이 자신을 콕 집어 지시를 내린 이유를 알 수 있었다.
총관 이수홍은 남색 장삼을 입은 중년인과 대치하고 있었는데, 두 사람의 주변에는 벌써 십여 명의 호위무사들이 널브러져 있었다.
모두 정신을 잃은 상태라 눈을 뜨고 있는 자가 없었다.
아무리 호위무사들의 무공이 이류라 할지라도 숫자가 열이나 되었다.
하지만 그들을 제압한 중년인은 상처 하나 없었다.
그리고 비록 대기실에 있었다고는 해도 진무앙은 싸우는 소리를 전혀 듣지 못했다.
그것은 중년인이 호위무사들을 단숨에 제압했다는 것을 의미했다.
최소한 일류 이상의 고수라는 뜻.
하지만 진무앙은 난향이 자신을 지목한 건, 중년인이 고수이기 때문이 아니라는 걸 그를 보자마자 깨달았다.
젊었을 때 미남자 소리를 들었을 게 분명한 미중년인.
그의 얼굴을 본 진무앙이 짜증스럽다는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철군자 하후강? 저 자식이 여기서 왜 나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