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mortal RAW novel - Chapter 110
110 너는 왜 서는데?
수향루 별채 진무앙의 방.
“체력 진짜 거지 같은 녀석이네.”
진무앙은 팔뚝 굵기만 한 대황초의 불빛을 받으며 눈을 꼭 감고 침상에 누워 있는 소년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방에는 그 혼자만 있는 게 아니었다.
소소와 강석초, 목일석, 난향까지 있었다.
진무앙은 간단하게 곽효림을 데리고 온 과정을 설명한 후였다.
그가 고개를 돌려 소소를 보며 타박을 했다.
“너는 잠은 안 자고 지금까지 뭐 하다가 여기까지 들어와? 얼른 가서 자.”
그의 말에 소소는 시무룩한 얼굴이 되었다.
난향이 눈살을 찌푸리며 진무앙을 구박했다.
“당신 들어오는 거 보려고 오는 잠을 쫓아내며 기다린 애한테 말을 그렇게밖에 못해?”
찔끔한 진무앙이 소소에게 물었다.
“나 기다렸냐?”
소소가 작은 머리를 아래위로 주억거리며 대답했다.
“네…….”
진무앙은 머쓱한 얼굴이 되어 소소의 머리카락을 헝클어뜨리며 말했다.
“애가 잠은 안 자고……. 인심 썼다. 좀 있다 가.”
소소의 얼굴이 환해졌다.
“정말요?”
“그래.”
그때 걱정스러운 기색이 가득 어린 얼굴로 소년을 보던 목일석이 진무앙에게 물었다.
“효림이의 몸은 어떤가?”
“목 호위도 이미 확인했잖아요. 체력이 거지 같을 뿐이지, 다친 곳은 없습니다. 그냥 기력이 탈진돼서 정신을 잃은 것뿐이에요. 내일 아침이면 눈을 뜰 테니 쓸데없는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됩니다.”
“다행이네. 다행이야…….”
목일석은 조심스럽게 소년의 손을 잡았다.
이 소년이 낙양에서 현재 태풍의 눈이 돼버린 곽효림이었다.
진무앙은 삼비의 선두를 궤멸시켜 곽보명과 석진방에게 시간을 벌어주자마자 곽효림과 야로객이 은신하고 있다는 장소로 갔다.
그리고 근처에서 수색하던 석채은과 만나 곧 곽효림과 야로객을 찾아냈고, 그를 이곳으로 데리고 왔다.
오기 전에 그는 야로객을 석진방과 곽보명을 도우라고 보냈다.
그리고 석채은에게는 그들을 지켜봐 달라고 했다.
문제가 생길 것 같으면 즉시 그에게 연락하라는 말과 함께.
소소가 신기하다는 표정으로 곽효림을 보다가 진무앙에게 물었다.
“숙부님, 그런데 이 오빠, 정말 남자 맞아요?”
“왜? 남자 같지가 않냐?”
“예. 너무 예쁘게 생겼어요.”
“그렇긴 하지. 나도 처음엔 여잔 줄 알고 사람을 잘못 찾았다고 생각했었으니까.”
그의 말에 방에 있던 모든 사람이 고개를 끄덕여 동의했다.
곽효림은 스물이 넘었기에 소년이라는 말과는 어울리지 않았다.
하지만 오랫동안 괴질을 앓아서 그런지 그는 이제 십육칠 세 정도로밖에 보이지 않았다.
게다가 그의 외모는 아무도 그를 남자라고 생각하지 못할 게 분명할 만큼 독특했다.
창백할 정도로 흰 피부에, 가느다란 뼈와 마른 체구, 선이 고운 이목구비.
그는 진무앙조차 처음에 절세미인이라고 착각했을 만큼 아름다운 외모의 소유자였던 것이다.
목일석이 난향에게 정중하게 포권을 하며 말했다.
“루주님, 이곳에 효림이를 머물게 해주셔서 정말 감사드립니다.”
“그렇게 예의 차릴 필요 없어. 목 호위 조카면 내게도 남이라 할 수 없는 아이니까.”
“사해집마부가 추적하는 아입니다. 제아무리 인정이 넘치는 사람이라 해도 멸문당할지도 모르는 위험을 감수하고 루주님과 같은 의리를 보이기 어렵습니다. 그러니 제가 어떻게 감사드리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지나친 칭찬은 예의가 아니라고 했어. 듣기 민망하니까 그만해.”
“예.”
목일석은 순순히 대답하며 진무앙에게 시선을 돌렸다.
그가 포권을 하며 뭐라고 말하려 하자 진무앙이 먼저 입을 열었다.
“목 호위, 아직 의뢰가 마무리된 거 아니니까 나중에 이자까지 쳐서 인사받겠습니다. 그러니까 지금은 아무 말도 하지 말아요.”
“……고맙네.”
난향이 목일석에게 말했다.
“이 아이는 내가 챙길 테니 목 호위는 이곳에 얼씬거리지 말게. 사람들 눈에 띄어서 좋을 거 하나도 없어.”
“그렇게 하겠습니다, 루주님.”
목일석이 난향과 진무앙에게 포권을 한 후 돌아갔다.
난향이 진무앙에게 물었다.
“무앙, 이 아이가 정신을 못 차리는 게 괴질 때문이야?”
“응.”
“무슨 병이기에 이 지경일까? 알아낸 거 있어?”
진무앙은 고개를 끄덕였다.
“무슨 병인데?”
“구음절맥.”
그의 대답에 난향뿐만 아니라 강석초까지 얼굴을 찌푸렸다.
구음절맥은 천형이라 불리는 불치의 병이다.
이 병에 걸린 사람은 십이경락에 극음의 기운이 차올라서 열다섯 살이 되기 전에 목숨을 잃는다고 알려져 있다.
난향이 물었다.
“확실해?”
“응.”
“이상하네. 어떻게 남자가 구음절맥에 걸린 거지? 오음, 칠음, 구음의 절맥은 여자만 걸린다고 알려진 병이잖아.”
진무앙이 어깨를 으쓱하며 대답했다.
“나도 몰라. 하지만 이 녀석이 구음절맥에 걸린 건 분명해. 나도 이상해서 오면서 확인까지 했다고.”
진무앙이 말을 이었다.
“나이가 스물이 넘었다고 들었는데, 지금까지 이놈 목숨줄 붙여놓으려고 아비 곽보명이 엄청나게 고생했을 거야.”
열다섯 살이 되기 전에 죽는다는 불치병에 걸렸지만 곽효림은 스무 살이 넘은 지금까지 살아 있지 않은가.
고개를 끄덕여 동의한 난향이 중얼거렸다.
“엄청난 천재겠네.”
“그렇겠지.”
절맥이라 알려진 병을 앓는 이들은 경이적인 천재성도 타고난다.
곽효림의 구음절맥을 확인한 진무앙은 독고운진의 말이 사실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구음절맥의 천재성이라면 강마팔단공의 허점을 발견할 수도 있었기 때문이다.
난향이 화제를 바꾸어 그에게 물었다.
“곽 씨 부자를 구하면 어디로 보낼지 생각은 해놨어? 삼정이 추적을 포기하지 않을 게 뻔한데, 천하에 이들을 숨길 만한 곳이 있을까?”
생각해 둔 것이 있던 터라 진무앙은 망설임 없이 대답했다.
“중원엔 물론 없지. 천축으로 보낼 생각이야.”
“거기 아는 사람이라도 있는 거야?”
“중원과 거래를 하는, 눈이 파란 상인 녀석이 하나 있어. 이맘때면 늘 천산북로와 하서회랑을 거쳐서 중원으로 들어와. 그놈과 함께 천축으로 보내면 깔끔해.”
“언제 들어오는데?”
“빠르면 칠 일, 늦어도 보름 이내에 낙양에서 그놈을 만날 수 있을 거야.”
“그때까지는 당신이 그들을 보호해야겠네.”
“별채 지하에 묻어두든가 하지 뭐.”
난향이 진무앙을 흘겨보며 말을 받았다.
“곽 씨 부자가 시체도 아닌데 묻기는 뭘 묻어.”
“말이 그렇다는 거지.”
“흥!”
지금은 자정이 다 된 시각.
한창 장사를 할 때라 난향도 집무실로 돌아갔다.
그새 졸린 눈을 거불거리던 소소가 결국 밀려오는 잠을 참지 못하고 침상 다리를 끌어안으며 주저앉았다.
그러고는 고개를 꾸벅거리며 졸기 시작했다.
진무앙이 소소를 가리키며 강석초에게 말했다.
“애 데리고 가서 재워라.”
평소라면 냉큼 소소를 안아서 나갔을 강석초였다. 그런데 지금은 그 자리에 못 박히기라도 한 것처럼 꼼짝도 하지 않았다.
진무앙이 눈을 껌벅이며 물었다.
“너 뭐하냐? 애 재우라는 말 안 들려?”
“안 들려.”
안 들리는 놈이 대답은 잘도 한다.
“돌았냐?”
“아니.”
“맞을래?”
“응.”
“죽일까?”
“맘대로 해.”
평소라면 강석초에게서 절대로 이런 반응이 나올 리 없었다.
당연히 진무앙은 그에게 뭔가 문제가 생겼다는 걸 알아차렸다.
그는 검지로 강석초의 어깨를 쿡쿡 찔렀다.
“석초야, 너 갑자기 왜 이러냐? 어디 아픈 놈 같다.”
강석초가 찌르는 대로 휘청거리며 대답했다.
“아파.”
“어디가?”
“여기.”
강석초가 가리킨 곳은 심장이었다.
“거기가 갑자기 왜 아파?”
“몰라. 그냥 아파.”
그때 진무앙의 뇌리에 얼마 전 난향과 나누었던 대화가 떠올랐다.
그는 강석초의 시선을 따라 눈길을 옮겼다.
강석초의 두 눈은 곽효림에게 고정된 채 미동도 하지 않고 있었다.
그의 눈에 일렁거리는, 쇠라도 뚫을 것 같은 강렬한 열기를 읽은 진무앙이 말했다.
“석초야, 눈에 힘 좀 빼라. 그러다 애 데이겠다.”
그제야 강석초가 진무앙에게 고개를 돌렸다.
그가 물었다.
“남자가 어떻게 저렇게 아름다울 수가 있지?”
진무앙이 자신의 얼굴에 쓰여 있는 인피면구를 만지작거리며 말을 받았다.
“내 진면목을 아는 놈이 할 말이냐?”
강석초는 쉽게 수긍을 했다.
“……그건 그렇네…….”
그가 연이어 물었다.
“쟤가 남자라는 걸 어떻게 알았냐? 나는 보면서도 안 믿어지는데.”
“서질 않았거든.”
강석초는 어리둥절한 얼굴이 되었다.
말귀를 알아듣지 못한 표정이었다.
“응? 뭔 소리야?”
진무앙이 눈으로 자신의 사타구니를 가리키며 대꾸했다.
“안 섰다구, 자식아.”
“아……!”
그제야 말귀를 알아들은 강석초의 입에서 탄성이 흘러나왔다.
진무앙이 말을 이었다.
“미인 앞에 서면 무조건 반응하는 놈이 쟤 앞에서는 무반응이었어. 그러니 여자일 리가 있겠냐.”
“그렇군…….”
자신의 아랫도리에서 시선을 떼다가 무심코 강석초의 사타구니를 본 진무앙이 깜짝 놀란 얼굴로 한 걸음 뒤로 물러나며 물었다.
“너는 왜 서는데?”
강석초는 심드렁한 얼굴로 말을 받았다.
“설 만하니까 서지. 너도 이미 내 성향을 알고 있잖아.”
“알기는 하지만… 직접 보는 건 처음이잖냐.”
“이상해?”
“뭐가?”
“내가 남자 좋아하는 거.”
진무앙은 피식 웃었다.
“그런 말 하는 네가 더 이상하다, 자식아. 사람이 사람을 좋아하는데 이상할 게 뭐 있냐. 나는 여자를 좋아하고, 너는 남자를 좋아하는 것뿐이야. 그건 이상한 게 아니라 그냥 취향 차이라구.”
그는 곽보명을 돌아보며 말을 이었다.
“내가 아는 놈 중에 명줄이 제일 길었던 놈이 이백마흔두 살까지 살았어. 고금팔대고수에 꼽히던 신화경의 초강고수였는데도 삼백 년을 못 넘기더라. 너라고 그걸 넘기겠냐? 가뜩이나 짧은 인생, 내가 네 대신 살아주는 것도 아닌데 왜 내 눈치를 봐. 눈치 보지 말고 그냥 네가 하고 싶은 거 좋아하는 거 하면서 살아.”
그는 소소를 안아 강석초에게 넘겼다.
“아주 오래전에 서쪽을 떠돌다가 어떤 도시국가에 들른 적이 있었는데, 거기서는 미소년과 중년 남자의 연애가 아주 당연했었다. 당시 그 나라에서 미소년들에게 가장 인기 있고 사랑받았던 사람이 어떤 놈이었는 줄 알아? 아주 못생긴 칠십대 남자였어.”
소소를 품에 안은 강석초가 고개를 갸웃하며 되물었다.
“정말?”
“좀 믿어라, 자식아.”
“미소년들이 나이도 많고 못생긴 남자를 사랑했다고? 그럼 그는 엄청난 부자였거나 절세고수였겠군.”
“천만에. 찢어지게 가난했고, 무공은 중원의 삼류만도 못했다.”
강석초가 믿지 못하겠다는 기색이 완연한 얼굴로 물었다.
“나이 많고, 못생기고, 가난한 데다, 무공도 삼류보다 못한 남자가 어떻게 인기가 있을 수가 있지?”
“그는 그 나라에서 가장 현명한 남자였거든.”
진무앙이 풀썩 웃으며 말을 이었다.
“자기 아내를 악처로 만들 정도로 여자에게 관심이 없는 게 영 마음에 들지 않아서 친구가 되지는 못했지만, 그것만 빼면 여러 번의 전쟁에 참여했을 정도로 용감하고 지혜로운 남자였지.”
얼굴이 밝아진 강석초가 힘주어 말했다.
“나도 현명하고 싸움 잘해.”
진무앙이 혀를 찼다.
“현명? 어디서 개 풀 뜯어 먹는 소리를! 누가 들으면 진짠 줄 알겠네.”
“진짜라고!”
“소리 지른다고 아닌 게 긴 게 되지는 않아, 임마.”
“아으으으…….”
강석초가 신음을 흘리며 그를 노려보았다.
그러거나 말거나 진무앙이 불쑥 말했다.
“네가 저놈에게 어떤 감정을 품든 상관하고 싶지는 않은데, 두 가지는 기억해라.”
눈이 동그래진 강석초가 물었다.
“뭔데?”
“첫째, 저놈 생긴 게 저렇다고 너와 취향이 같을 가능성은 크지 않다는 것. 싫다는 사람한테 억지로 들이대는 건 남자가 할 짓이 아냐.”
“두 번째는?”
“쟤 며칠 있다가 천축으로 떠날 거라는 것.”
진무앙의 말에 강석초는 고민에 빠진 얼굴이 되어 곽효림을 내려다보았다.
잠시 후 그가 진무앙에게 말했다.
“갈게.”
진무앙이 고개를 끄덕이며 한마디를 더 했다.
“내 경험상 누군가를 좋아할 때 생각을 많이 하는 건 별로 권할 만한 게 아니더라.”
강석초는 대꾸 없이 소소를 안고 방을 나갔다.
진무앙은 기지개를 켜며 길게 하품을 했다.
마침내 짧지 않았던 하루도 끝이 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