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mortal RAW novel - Chapter 121
121 명복을 빌어줄게
방을 나가는 곡난난의 등을 보는 진무앙의 미간에 주름이 잡혔다.
생각이 많은 눈빛이었다.
그때까지 없는 사람처럼 조용히 있던 난향이 그를 불렀다.
“무앙.”
“말해.”
“정주에 갈 거야?”
“거긴 왜?”
“당신 지금 단리영의 실종이 채경옥과 관련이 있다고 생각하고 있잖아. 내 말이 틀려?”
“틀린 건 아니야.”
“그럼 단서를 찾기 위해서라도 채경옥이 있다는 정주에 가야 하는 거 아니야?”
“채경옥은 정주에 가지 않았어.”
“그걸 어떻게 확신해? 근거라도 있는 거야?”
“근거는 없어.”
“뭔가 감이 잡히는 거라도 있는 모양이네.”
“조금.”
채경옥이 납치범이라면 낙양을 떠났을 리가 없었다.
그녀의 목적은 환우지약이니까.
“말해주지 않을 거야?”
“난향이 몰라도 되는 일이야.”
물어봐도 대답해 줄 수 없는 이야기였다.
말을 시작하면 환우지약에 대한 것도 나올 수밖에 없으니까.
“당신 지금 분위기 어떤지 알아?”
“내 분위기? 어떤데?”
“눈앞에 있는 것들은 모조리 썰어버릴 것 같아.”
난향의 말에 진무앙은 쓴웃음을 머금었다.
그는 말을 받는 대신 화제를 바꿨다.
“난향, 사마무룡의 의뢰, 여전히 유효해?”
“당연하지? 그런데 그건 왜 물어? 마음이 바뀌기라도 했어?”
“하겠다고 전하고 만날 시간과 장소를 잡아줘.”
“알았어.”
진무앙이 별채로 돌아가자 혼자가 된 난향이 중얼거렸다.
“만약 단리영이 납치당한 거라면……. 당신이 누군지 모르지만, 먼저 명복을 빌어줄게…….”
* * *
오후, 일로객잔에 진무앙이 휘적휘적 들어섰다.
“진 호위님, 오셨습니까요. 사마 공자께서 벌써 오셔서 기다리고 계십니다요.”
자주 오는 터라 이제는 얼굴이 익숙한 점소이가 웃으며 그를 사마무룡이 머물고 있는 별채의 가장 안쪽에 있는 특실로 안내했다.
진무앙이 들어서자 사마무룡이 일어나 그를 정중하게 포권을 하며 맞았다.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진 호위.”
진무앙은 얼떨떨한 표정으로 마주 포권하며 눈을 껌벅였다.
두 사람의 신분 차를 생각하면 사마무룡은 정말 극진히 그를 예우하고 있었다.
그가 말했다.
“너무 어색한데, 사마 소협, 이러는 건 좀 지나친 거 아닙니까?”
“어려운 일을 의뢰하려는 참인데, 나의 이런 태도가 지나치다고 할 수는 없죠.”
“내가 의뢰를 수락할지도 아직 정해진 게 없고, 또 수락한다 해도 돈을 받고 하는 일일 뿐입니다.”
“돈이 오가는 일이지만 결국 그걸 하는 건 진 호위 아니겠습니까. 사람에게 정성을 다하라는 게 선조 대대로 내려오는 우리 가문의 유훈입니다.”
진무앙과 사마무룡은 마주 앉았다.
진무앙이 물었다.
“그런데 한 가지 이해하기 어려운 점이 있습니다. 나는 비룡무관 참사의 유력한 용의자 아니었습니까? 그런 내게 의뢰를 할 생각을 어떻게 하게 된 겁니까?”
“진 호위는 용의자일 뿐이지, 범인은 아니지 않습니까? 명확한 목격자도 나오지 않았고, 비슷한 사람을 보았다는 말만으로 의심하는 건 지나친 감이 있죠.”
“사마 소협은 주 지부장과는 의견이 많이 다른 것 같군요. 그분은 나를 범인이라고 확신하는 것 같던데.”
“같이 일을 한다고 해서 꼭 의견이 일치하는 건 아니니까요.”
“그렇긴 합니다만.”
“그 사건과 이번 의뢰는 관계가 없습니다. 전혀 별개의 사안이죠.”
“내가 범인으로 밝혀져도 말입니까?”
“그건 그때 가서 생각하면 되지 않을까요?”
진무앙의 눈이 깊어졌다.
사마무룡의 속내를 짐작하기 어려웠다.
하지만 이런 상대와 거래를 한 게 한두 번이었던가.
게다가 이번 의뢰는 사마세가에 자유롭게 드나들기 위해서는 수락할 수밖에 없는 것이었다.
즉, 그도 원하는 의뢰라는 말이다.
사마무룡이 품에서 두툼한 전낭을 꺼내 진무앙에게 내밀었다.
“의뢰 대금입니다.”
진무앙은 전낭을 열어보지도 않고 허리춤에 챙겨 넣었다.
“확인 안 합니까?”
“창천사마세가의 적통이 오십 냥 갖고 장난치겠습니까.”
“그건 그렇죠, 하하하.”
가볍게 웃은 사마무룡이 말을 이었다.
“의뢰 내용을 말하지도 않았는데 선뜻 대금을 받는 건 진 호위가 내 의뢰를 수락했다는 의미로 받아들여도 되겠습니까?”
“맞습니다.”
“이게 다 휘제 덕분이라고 생각해도 무방하겠죠?”
“아마도요.”
“그 녀석이 돌아오면 한턱 단단히 쏴야겠군요.”
진무앙이 말했다.
“일단 들어나 보죠.”
사마무룡이 고개를 끄덕이며 낮은 음성으로 말했다.
“진 호위, 지금부터 하는 이야기는 밖으로 새어나가서는 안 되는 것이라 절대 비밀을 엄수해 주어야 합니다.”
“걱정 마시죠. 남아일언중천금 아니겠습니까. 내 입은 천금보다 무겁습니다.”
난향이나 강석초가 들었다면 혀를 찼을 말이지만, 사마무룡은 믿는 기색이었다.
진무앙이 어떤 남자인지 전혀 알지 못하는 그로서는 당연한 일이었다.
사마무룡이 한층 무거워진 목소리로 말문을 열었다.
“진 호위, 혹시 본가에 몇 가지 문제가 있다는 걸 알고 있습니까?”
진무앙은 살짝 미간을 찌푸렸다.
사마무룡이 무슨 말을 하려는지 속내를 헤아리는 게 쉽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는 고개를 저으며 대꾸했다.
“아실지 모르지만 난 내 일 외에는 별 관심이 없는 사람입니다. 사마세가라고 예외는 아닙니다.”
“휘제와 친분이 있는 듯하여 알고 있는 게 있으리라 생각했는데 내가 너무 앞서 나갔던 것 같군요.”
“앞서 나간 거 맞습니다.”
진무앙의 질문에 사마무룡이 쓴웃음을 지으며 말을 받았다.
“아무튼 휘제가 무림맹으로 떠나기 전 내게 진 호위를 강력하게 추천했습니다. 힘든 일이 있으면 당신에게 의뢰하면 해결할 수 있을 거라고 자신만만하게 말하더군요.”
진무앙의 눈이 커졌다.
‘휘아가 나를 추천했다고? 대체 무슨 일이기에?’
사마무룡의 표정이 진지해졌다.
“진 호위가 남자와 말을 길게 섞는 걸 좋아하지 않으니 바로 본론으로 들어가죠.”
“나로서는 쌍수를 들고 환영할 수밖에 없는 말이로군요.”
사마무룡이 진중한 표정으로 말했다.
“몇 년 전 소가주인 무광 형님의 몸에 심각한 문제가 생겼었습니다. 다행히 최근에 해결이 되긴 했지만, 아직 형님은 예전의 무공을 회복하지 못한 상태입니다.”
이미 알고 있는 일이었다.
“그런데 부부는 일심동체라고 형님이 앓으셨을 때 형수님도 많이 아프셨습니다.”
진무앙은 모르는 척 물었다.
“형수님이라면, 몇 번째 분을 얘기하는 겁니까?”
“단리 성에 영 자를 쓰는 둘째 형수님입니다.”
“그렇군요.”
“두 분은 그 상태에서도 둘째 조카를 낳을 정도로 금실이 좋았습니다. 그런데 며칠 전 형수님이 홀연히 사라지셨습니다.”
진무앙의 얼굴이 굳어졌다.
사마무룡이 사마무광과 단리영을 언급했을 때부터 어느 정도 예상했던 전개이기는 했다.
하지만 정말로 곡난난이 들려줬던 내용이 의뢰로 들어오다니.
사마무룡이 말을 이었다.
“아버님과 형님은 세가의 정예를 동원해 형수님을 찾고 있습니다. 하지만 아직 범인의 윤곽조차 잡지 못했습니다.”
“범인이라고 하는 걸 보니 사마 소협은 단리 부인의 실종을 납치라고 확신하는 모양이군요.”
“이렇게 말 한마디 남기지 않고 행방을 감출 이유가 없는 분이니까요.”
“범인이 지금까지 사마세가에 뭔가를 요구하지도 않은 겁니까?”
“그렇습니다. 그랬다면 추적이 좀 더 쉬웠을 겁니다.”
“그럼 범인의 목적은 단리 부인 자체라는 건데, 그분이 납치를 당할 만한 이유가 있습니까?”
사마무룡의 얼굴에 잠시 갈등하는 기색이 떠올랐다.
말을 해야 할지, 말아야 할지 고민하는 기색이었다. 하지만 그 갈등은 곧 끝이 났다.
“형수님께서 무언가 귀중한 무림의 보물을 찾을 수 있는 단서를 갖고 계셨던 것 같습니다. 이건 아버님과 형님만이 정확한 걸 알고 계시는 일입니다. 나는 어렴풋이 짐작만 할 뿐이고요.”
“사마 소협은 그 보물이 뭔지 모르는 겁니까?”
“그렇습니다.”
“범인으로 의심이 가는 사람이 있습니까?”
“없습니다.”
“흠…….”
진무앙은 가만히 사마무룡을 바라보았다.
사마무룡도 그의 시선을 피하지 않았다.
진무앙이 말했다.
“이런 사건의 경우, 벌써 여러 날이 지났으니 단리 부인을 발견했을 때 그녀가 살아 있을 가능성이 크지 않다는 걸 알고 있습니까?”
사마무룡의 안색이 천천히 일그러졌다.
“후우… 그런 불행한 일이 벌어지기 전에 진 호위가 형수님을 찾기를 바랄 뿐입니다.”
“조사를 위해 사마세가의 어디든 다닐 수 있는 권한이 필요합니다.”
“당연한 일이죠.”
사마무룡이 품에서 옥패 하나를 꺼내 진무앙에게 내밀었다.
“일급 창천옥패입니다. 이걸 소지한 사람은 가주전과 연공실을 제외한 어디든 자유롭게 출입할 수 있습니다.”
옥패를 받아 든 진무앙이 말했다.
“좋습니다. 바로 조사를 시작하죠.”
진무앙은 일로객잔을 나섰다.
힐끗 객잔을 뒤돌아보는 그의 눈에 묘한 기색이 어렸다.
‘아영이 얽혀 있지만 않았다면 흥미로운 일이었을 텐데.’
그는 휘적휘적 수향루로 걸어갔다.
밤이 찾아온 낙양에 어둠이 내리고 있었다.
* * *
다음날 아침, 황궁의 태후전.
“이 시간에 어마마마께서 침전에 계시지 않다니. 그게 대체 무슨 해괴한 말이냐? 어서 사실대로 고하지 못할까!”
대로한 신무제의 일갈이 태후전을 뒤흔들었다.
환관과 상궁 나인, 대소신료들이 두려움에 질려 벌벌 떨었다.
황제의 시선이 노 상궁을 향했다.
“노 상궁.”
“예, 황상 폐하.”
“어마마마께서 어디로 가셨느냐? 너는 알고 있지 않느냐!”
노 상궁이 털썩 무릎을 꿇고 머리를 바닥에 찧으며 말했다.
“황상 폐하, 아침에 기침하셨느냐고 여쭈었을 때서야 소인은 태귀비 마마께서 계시지 않은 것을 알았사옵니다. 소인은 정말 마마께서 언제 궁을 나가셨는지 알지 못하옵니다. 통촉하여 주시옵소서.”
“어마마마께서 어제 짐을 찾아오셨을 때 네가 그분을 봉행하였었다. 그분의 또 다른 여행을 짐이 허락지 않는 것 또한 옆에서 들었지 않느냐. 그런데도 그분이 어디로 가셨는지 모른다는 말을 짐이 어찌 믿겠느냐! 말하라. 그분이 어디로 가셨느냐!”
“황상 폐하, 소신은 정녕 모르옵니다. 통촉하여 주시옵소서!”
노 상궁이 피를 토하듯 울부짖었다.
그녀를 바라보는 신무제의 눈이 검은 불길처럼 이글거렸다.
그가 손을 들었다.
그와 노 상궁의 거리는 삼 장여.
하지만 그 거리는 아무런 의미가 없었다.
퍽!
보이지 않는 거대한 쇠집게에 잡히기라도 한 것처럼 노 상궁의 머리가 으스러졌다.
비명도 없었다.
찰나지간에 머리가 사라진 목에서 핏물이 분수처럼 솟아올랐다.
“아악!”
“꺅!”
“으으으……!”
“헉!”
그 광경을 본 사람들이 공포에 질린 비명을 지르며 사시나무처럼 전신을 떨었다.
개중에는 발아래로 누런 물을 줄줄 흘리는 사람도 적지 않았다.
신무제가 입을 열었다.
“어마마마를 찾아라. 그분의 신변에 털끝만큼이라도 이상이 생긴다면 태후전은 개미 한 마리 살아남지 못하리라!”
신무제는 곤룡포를 휘날리며 태후전을 떠났다.
뒤편에 무릎을 꿇고 있던 젊은 상궁 한 명이 고개를 들었다.
죽은 노상궁을 바라보는 그녀의 얼굴엔 공포와 슬픔, 분노로 가득 차 있었다.
그녀는 하오밀문 소속이었고 노 상궁의 제자였다.
‘흑흑흑… 사부님… 사부님…… 흑흑흑…… 황상 폐하가 무공을 익히고 있었다니…… 문주님께 이 소식을 어서 알려야…….’
그녀는 무릎걸음으로 조심스럽게 뒤로 물러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