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mortal RAW novel - Chapter 129
129 넷째야, 문 잠가라
아침이 밝았다.
창천사마세가의 정문으로 범상치 않은 기도의 사람들이 탄 화려한 마차와 준마들이 쉴 새 없이 들어갔다.
그들은 방계 문파의 수뇌부와 외부에 나가 있던 세가의 요인들이었다.
미리 대기하고 있던 하급 무사와 하인들이 그들을 군웅각으로 안내했다.
이곳은 일 년에 두 번, 연말과 연초에 창천사마세가의 본가와 방계 문파의 수뇌부가 모인 군웅대평의회 때만 문이 열렸다.
그래서 전각으로 들어가는 사람들의 얼굴엔 한결같이 의아한 기색이 떠올라 있었다.
여름이 끝나가는 이 시기에 사마천웅이 군웅대평의회를 개최하는 이유를 알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해가 중천에 이를 무렵이 되자 연락을 받은 사람이 모두 도착한 듯 더는 군웅각 내로 들어가는 사람이 없었다.
웅성웅성-
전각에 모인 사람이 수는 오백여 명에 달했다.
방계 문파의 서열 일위인 천성검문의 문주 대천성검 구일평이 고개를 갸웃하며 중얼거렸다.
“논의할 의제도 말해주지 않고 모이라 하시더니 의자조차 준비되어 있지 않다니, 의전과 절차를 중시하는 가주님답지 않은 조치로다. 광제는 이번 평의회 개최가 열리는 이유에 대해 아는 게 있으신가?”
그는 섭가장의 안주인인 구자경의 부친이다.
그와 어깨를 나란히 하고 서 있던 방계 문파 서열 이위 용문방주 서인광이 눈살을 찌푸리며 말을 받았다.
“아무런 언질도 받지 못했습니다, 형님. 그래서 저도 이상하다고 생각하던 참입니다.”
방계 문파는 창천사마세가의 울타리 안에서 오랫동안 함께 살아온 사람들이라 호형호제하는 전통이 있었다.
구일평은 나직한 침음성을 흘렸다.
“흠…….”
아는 것이 없기는 그도 서인광과 다를 바 없었다.
내일모레면 육십이 되는 그였지만 이런 경우는 처음이었다.
그래서인지 그는 사마천웅의 조치에 대한 궁금함과 더불어 이상한 불안감까지 느끼고 있었다.
그때 군웅각의 문으로 세가의 총관 담승과 신검단주 사마천국을 위시한 여러 명이 들어왔다.
모두 세가의 중추적인 부서를 담당하는 수장들이었다.
그들의 뒤로 문이 닫혔다.
쿵!
구일평과 서인광을 비롯한 장내의 인물들이 분분히 포권을 하며 담승을 맞았다.
담승은 직책도 사마천웅에 이은 본가 서열 이위의 거물이었을 뿐만 아니라 나이도 많았다.
정면에 마련된 단위에 오른 담승이 사람들에게 포권을 하며 말했다.
“급하게 연통을 돌렸는데도 연락을 받으신 분들이 이처럼 빠짐없이 와주신 것에 대해 가주님을 대신해 이 담모가 감사의 말씀을 드리지 않을 수 없소이다.”
서인광이 소리쳐 물었다.
“담 총관님, 가주님께서 군웅대평의회 개최를 명하신 이유가 무엇인지 아십니까? 여기 있는 사람들 중 이유를 아는 이가 아무도 없습니다!”
담승이 쓴웃음을 지으며 말을 받았다.
“시원하게 말씀드렸으면 좋겠소만, 아쉽게도 본인 또한 가주님께 평의회 개최를 명받았을 뿐 아직 의제나 이유에 대해서는 듣지 못하였소이다.”
대번에 군웅각 내부가 시끄러워졌다.
웅성웅성-
담승은 사마천웅의 오른팔이라고 불릴 정도의 최측근이었다.
그런 그조차 이번 행사의 이유를 모른다는 말에 사람들은 충격을 받은 것이다.
그때였다.
끼이이이익-
닫혔던 군웅각의 문이 다시 열리는 소리가 났다.
담승을 비롯한 사람들의 시선이 일제히 문을 향했다.
그곳엔 쏟아지는 햇살을 등지고 두 사내가 서 있었다.
넉 자 길이의 장도를 허리에 차고 죽립을 비스듬히 눌러쓴 장신의 남자와 눈 아래를 검은 복면으로 가린 뚱뚱한 체구의 사내였다.
그들은 진무앙과 강석초였다.
눈을 가늘게 뜨고 그들을 보던 담승이 물었다.
“그대들은 본가의 사람이 아닌데, 어디서 오신 분들이신가?”
대답은 없었다.
진무앙은 입을 여는 대신 걸음을 내디뎠다. 그리고 그의 모습이 사라졌다.
장내에 있던 사람들이 눈을 부릅떴다.
사라진 다음 순간 진무앙은 이미 담승의 머리 위에 도달해 있었다.
군웅각의 문에서 담승이 있는 단까지의 거리는 오십 장에 달했다.
그런데 진무앙이 움직이자 그 거리가 찰나에 사라졌다.
그는 단 일보로 오십 장을 날아 넘은 것이다.
게다가 그의 움직임을 눈으로 본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이런 경공이 가능하다는 것이 믿어지지 않을 정도로 가공스러운 속도.
담승이 고개를 들어 진무앙을 올려다보았다.
“누구……?”
그의 말은 이어지지 않았다.
콰직!
어느새 진무앙이 그의 목을 한 손에 틀어쥐고 번쩍 들어올렸기 때문이다.
“캐… 캑캑… 캑!”
담승이 받은 기침을 토하며 꿈틀거렸다.
공격이나 저항은커녕 작은 버둥거림도 불가능했다.
진무앙의 손에 목이 잡힐 때 이미 전신 경락도 함께 제압된 터라 그것이 그가 할 수 있는 최선이었다.
장내가 쥐죽은 듯 조용해졌다.
어느 누구도 상상하지 못한 사태가 벌어진 것이다.
제일 먼저 반응한 사람은 담승과 가장 가까운 곳에 있던 사마천극이었다.
“이게 무슨 짓이냐!”
벼락치듯 일갈한 그가 검을 빼 들려는 순간, 진무앙의 무심한 시선이 그를 향했다.
우뚝!
그와 눈이 마주친 사마천극의 몸이 석상처럼 굳었다.
진무앙은 그의 혈도를 누르거나 하는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
그런데도 사마천극은 뱀을 만난 개구리처럼 손가락 하나 움직이지 못했다.
진무앙의 가공할 기세에 심신이 무력화된 것이다.
“사마천극, 지금은 네가 나설 때가 아니다. 이 자리는 세가의 반역자들을 징치하기 위해 마련되었다. 이미 사마천웅도 동의한 일이다.”
사마천극의 안색이 변했다.
“반역… 이라니…….”
진무앙의 말에 충격을 받은 사람들의 입이 떡 벌었다.
모두 혼란스러워하고 있었지만 사마천웅이 동의했다는 그의 말을 의심하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군웅각은 세가의 중심부에 있는 전각.
사마천웅이 허락하지 않았다면 어떻게 이곳에서 아무렇지도 않게 담승의 목을 틀어쥘 수 있겠는가.
물론 속사정은 사마천웅의 허락이 아니라 진무앙의 계획에 그가 따르는 것이었지만.
진무앙이 그를 보며 말했다.
“은밀하게 세력을 모아서 평생 따른 주군의 말년에 그의 뒤통수를 치는 건 남자가 할 짓이 아니지.”
“캐캑… 캐캐캑!”
얼마나 마음이 다급한지 담승의 눈에 물기가 어렸다.
하지만 진무앙은 그런 것에 마음이 흔들리는 남자가 아니었다.
그는 망설임 없이 손에 힘을 주었다.
우두둑!
단번에 목이 부러진 담승이 혀를 길게 빼물며 축 늘어졌다.
진무앙은 그의 시선을 아무렇게나 내던졌다.
우당탕! 쿠당탕!
단의 구석까지 굴러간 시신이 나뭇잎처럼 나뒹굴었다.
진무앙이 품에서 연판장을 꺼내 높이 들어올리며 사람들에게 말했다.
“반역의 연판장에 인장을 찍은 자는 이 자리에서 모두 내 손에 죽는다. 내가 손을 쓰기 전에 자결을 한다면 가문만은 보존해 주겠다. 하지만 저항한다면 그 가문은 주춧돌까지 사라질 것이다.”
서인광이 악을 썼다.
“반역의 연판장이라니! 우리는 평생 세가에 충성한 가신들이오. 당신이 누구이기에 이처럼 황당한 거짓말로 우리를 모욕할 수 있단 말이오! 나는 당장 나가 가주님께 이번 일의 괴이함에 대해 간언을 드려야겠소!”
거센 항의와는 달리 그는 파리하게 질린 얼굴로 문을 향해 신형을 날렸다. 하지만 그의 발은 땅에 닿지 못했다.
강석초가 그를 향해 파황신권을 내질렀기 때문이다.
퍽!
푸확!
가볍게 내지른 듯한 일권에 비명도 지르지 못한 채 목 위가 텅 빈 서인광의 시신이 피분수를 뿌리며 바닥에 떨어져 나뒹굴었다.
화살에 맞은 기러기를 연상케 하는 광경이었다.
우당탕!
강석초가 말했다.
“대형이 허락하지 않은 자는 아무도 이곳에서 나가지 못한다.”
서인광의 허무한 죽음을 본 장내에 깊은 호수 같은 정적이 흘렀다.
진무앙이 중얼거렸다.
“예상했던 대로군. 남의 것을 탐하는 자들은 무엇보다도 자기 목숨을 귀하게 여기지.”
그가 낮게 가라앉은 목소리로 강석초에게 말했다.
“넷째야, 문 잠가라!”
“예, 대형!”
강석초는 두툼한 일 장 길이의 빗장을 들어 대문에 걸었다. 그리고 팔짱을 끼고 그 앞에 섰다.
그날, 사마세가의 군웅각은 피로 씻겼다.
창천사마세가 가주전.
사마천웅은 의자에 앉아 있는 진무앙의 앞에 서 있었다.
그의 안색은 어두웠다.
진무앙이 그에게 물었다.
“여전히 같은 생각이냐?”
“예, 무존.”
“썩은 뿌리를 남겨두면 나중에 기둥이 약해지고 결국엔 대들보가 무너진다.”
“제가 쌓은 업보입니다. 제가 감당하겠습니다.”
“이백이십칠 명.”
그가 말한 숫자는 군웅각에서 그의 손에 죽어간 세가의 요인과 아홉 개의 방계 문파 중 다섯 곳의 수뇌부들이었다.
그가 말을 이었다.
“그들이 반역을 도모했다는 걸 알더라도 그들의 후예 중에 복수를 꿈꾸는 놈이 나올 가능성은 충분하다. 이번 기회에 확실하게 정리하지 않는다면 후일 더 큰 분란이 생겨날 수 있다는 말이다.”
“알고 있습니다.”
“그래도 그들을 끌어안고 가겠다고?”
“예. 말씀드린 것처럼 제가 감당해야 하는 업보입니다.”
“고집 센 놈.”
진무앙이 혀를 차며 말하자 사마천웅이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숙였다.
“그들은 모두 내 손에 죽었다. 그러니 네 업보의 일부를 나도 짊어지도록 하지.”
진무앙의 말에 사마천웅이 고개를 번쩍 들며 물었다.
“무슨 말씀이신지?”
“새벽에도 말했던 것처럼 나는 아영의 대부다. 그 아이가 살아 있는 한 사마세가는 내가 지켜주겠다.”
“아……!”
탄성을 토한 사마천웅의 얼굴이 밝아졌다.
진무앙이 말을 이었다.
“그렇다고 날 믿고 과한 욕심을 부릴 생각은 하지 마라. 네가 엉뚱한 짓을 하면 아영과 무광, 아이들만 남기고 사마세가를 세상에서 지워 버릴 테니까.”
“염려하지 마십시오, 무존. 다시는 마령주와 같은 신외지물에 욕심을 부리는 어리석은 짓은 하지 않겠습니다.”
“그 말, 잊지 마라.”
사마천웅이 조심스럽게 물었다.
“무존, 여쭙고 싶은 게 있습니다.”
“뭘?”
“이번 일의 배후에 대체 누가 있는 것입니까? 무룡이를 추궁하지 말라는 말씀도 그렇고, 왜 제가 그자를 추적하는 것을 금하시고, 아무것도 말해주지 않으시는 겁니까?”
진무앙이 미간을 찡그렸다.
“그자는 내가 끝을 볼 테니 관심을 거두라고 말한 걸로 기억하는데?”
“하지만 저희 가문을 대상으로 벌인 짓이 아닙니까? 그런데 제가 어떻게 무존께서 번거롭게 직접 그자를 찾아 손을 쓰시는 걸 지켜보고만 있을 수 있겠습니까?”
“말을 빙빙 돌리지 마라. 그냥 너도 놈의 피를 보고 싶은 것 아니냐.”
사마천웅이 입술을 깨물며 고개를 숙였다.
진무앙이 말을 이었다.
“놈은 아영을 납치했다. 그러니 이 일은 내 일이고, 놈에 대한 너의 분노가 아무리 크다고 해도 양보할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다.”
“그래도…….”
진무앙은 사마천웅의 말을 끊었다.
“놈은 내가 처리할 테니 넌 가문과 하남 무림계를 추스르는 일에만 전념해라. 내 손에 세가 전력의 삼분지 일이 사라졌다. 그만큼 약해졌다는 걸 너도 알지 않느냐. 앞으로 어떤 놈이 세가를 노릴지 알 수 없다. 무광이 제 역할을 할 수 있을 때까지 너는 세가를 다시 반석 위에 올려놓아야 한다.”
“…알겠습니다, 무존.”
진무앙이 일어섰다.
“가시려고요?”
“그럼? 여기서 네 그 주름진 얼굴을 보고 있으라고?”
“제가 반로환동은 하지 못했어도 아직 주름이 그리 많지는 않…….”
“됐고. 애들이나 잘 챙겨라.”
사마천웅이 물었다.
“첫째 아가는 지금 의약당에서 치료를 받고 있습니다. 둘째 아가는 언제쯤 본가에 보내려 하시는지요.”
“아영은 혀가 잘렸고, 정신적인 충격이 심하다. 며칠 더 상처를 돌보고 괜찮을 때 세가로 보내겠다.”
“알겠습니다. 그런데 제가 무존을 뵙고 싶으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아무것도 하지 마라. 난 남자가 날 보고 싶어 하는 걸 원하지 않는다.”
“예?”
이 무슨 뜬금없는 대답이란 말인가.
사마천웅은 멍한 얼굴이 되었다.
진무앙의 음성이 더는 들리지 않았다. 그는 이미 떠난 후였다.
사마천웅은 입술 사이를 비집고 새어 나오려는 한숨을 억지로 삼켰다.
그는 하룻밤 사이에 십 년은 늙은 듯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