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mortal RAW novel - Chapter 138
138 마녀들이 낙양으로 온 까닭은?
일로객잔 이층.
뜻밖에도 그곳엔 석채은만 있는 게 아니었다.
진무앙이 눈을 껌벅이며 물었다.
“주 대협, 석 목주하고 같이 다니기로 한 겁니까?”
석채은과 함께 있는 사람은 주신언이었다.
그가 짧은 수염을 쓰다듬으며 말을 받았다.
“자네 같은 남자와 같이 다니는 것보다 훨씬 낫네그려, 하하하.”
그를 보는 진무앙의 눈이 게슴츠레해졌다.
“음… 저 따라 하지 마시고 본인의 정체성을 유지하시는 게 어떻겠습니까?”
“내 스승께서는 늘 좋은 건 배워야 한다고 가르치셨다네.”
“공처가시잖아요? 석 목주 같은 미인과 붙어다니다가 사모님한테 걸리면 어쩌려고요?”
“애처가일세. 그리고 내게 석 목주는 훌륭한 무림의 동도지, 여자가 아닐세. 그렇게 말하는 건 석 목주에 대한 모욕일세.”
“말은 번지르르하십니다.”
“늘 자네에게 면전에서 까이는데 말까지 못하면 어떻게 이 자리를 유지할 수 있겠는가.”
진무앙이 고개를 갸웃하며 말을 받았다.
“제가 아는 주 대협은 원래 이런 분 아니셨던 거 같은데요?”
“사별삼일이면 괄목상대하다고 했네. 자네를 알게 된 지 벌써 수개월이나 되지 않았는가. 이 정도 지났으면 나도 변해야지. 사람이라면 마땅히 발전이 있어야 하지 않겠나.”
“으으음… 지금 본인이 발전하고 있다고 말하는 겁니까? 그런데 왜 내 눈에는 주 대협이 시간이 갈수록 사람이 아니라 능구렁이가 되어가는 것처럼 보이는 걸까요?”
“칭찬으로 듣겠네, 하하하하.”
주신언이 어깨까지 흔들며 너털웃음을 터트렸다.
기도 차지 않는다는 표정으로 두 남자의 대화를 듣고 있던 석채은이 말했다.
“지부장님, 아무래도 이번 일 끝나면 진 호위와는 거리를 확실하게 두셔야 할 것 같아요.”
주신언이 어리둥절한 얼굴로 물었다.
“왜 그렇게 생각하시는 거요?”
“너무 저 사람과 비슷해지고 있는 것처럼 보이거든요. 먹을 가까이하면 검은 물이 든다고 하잖아요.”
진무앙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석 목주, 지금 내가 ‘검은 먹’이라고 말하는 겁니까?”
“찔리는가 보죠?”
이 정도면 작심하고 펼치는 협공 수준이다.
이럴 때 계속 말을 받아주면 귀찮음이 산더미처럼 늘어난다.
즉, 화제를 전면적으로 전환하는 것이 최선의 방어이자 공격이다.
물론, 진무앙은 두 사람의 공격이 자신이 아무 생각 없이 던진 말로 인해 촉발된 것이라는 것 따위는 이미 잊었다.
그는 자신에게 불리한 걸 끌어안고 가는 남자가 아니니까.
그가 석채은에게 물었다.
“왜 날 보자고 한 겁니까? 마녀를 찾은 겁니까?”
석채은은 살짝 고개를 저으며 대답했다.
“아직이요. 하지만 마녀의 짓으로 의심스러운 단서는 발견했어요. 혹시 그것에 대해 당신이 아는 게 있지 않을까 싶어 만나자고 했어요.”
“그럼 혼자 오지, 왜 주 대협과 함께 온 겁니까?”
“그 단서가 소림사가 있는 등봉현 쪽으로 이어지고 있거든요.”
주신언은 소림의 장로인 일엽 대사의 속가제자다.
“단서가 이어진다? 설명을 해줘야 알아들을 것 같군요.”
“어제와 오늘 이틀 동안 낙양 외곽에 있는 마을 세 곳의 주민들이 모두 살해당했어요. 직선은 아니었지만 등봉현 방향으로 이어진 마을들이었고요.”
진무앙이 미간을 찡그리며 물었다.
“마을 사람들이 모두 죽었단 말입니까?”
“그래요. 사람뿐만 아니라 살아 있는 거라면 개와 고양이까지 모두 죽었어요. 불행 중 다행히 큰 마을들이 아니어서 희생자는 총 백오십여 명 정도지만, 죽음의 형태가 들어본 적이 없을 만큼 굉장히 특이해요.”
“어떻기에 그런 말을 하는 겁니까?”
“남녀노소 상관없이 희생자들은 피와 정혈이 모두 빨려서 목내이(미이라)가 된 모습으로 발견되었어요.”
진무앙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목내이…….”
듣고만 있던 주신언이 끼어들어 말했다.
“그뿐만이 아니라네. 시신들의 피부가 빛바랜 금빛으로 변해 있었네. 목내이가 되었다면 갈색이나 회색이어야 하는데, 금빛이라니… 이런 경우는 듣기는커녕, 어떤 고사에서도 본 적이 없네.”
석채은이 거들었다.
“그들의 죽음은 사악한 마공에 의한 것이 분명해요. 시신이 되었는데도 마기가 느껴질 정도였으니까요.”
진무앙의 입술 사이로 낮은 침음성이 흘러나왔다.
“흠…….”
석채은이 말을 이었다.
“시신에게 이런 흔적을 남길 수 있는 중원의 마공은 알려진 것이 없어요.”
“그래서 소뢰음사의 마녀가 한 짓으로 의심된다 이런 말입니까?”
“그래요.”
진무앙의 안색이 진지해졌다.
“주 대협, 시신을 볼 수 있겠습니까?”
“흠, 자네의 표정을 보니 그들에 대해 뭔가 아는 게 있는 것 같은데, 그게 뭔지 말해주겠나?”
진무앙은 태연하게 고개를 저으며 대답했다.
“아는 건 없습니다. 직접 보면 떠오르는 게 있을지도 몰라서 보여달라고 하는 겁니다.”
석채은과 주신언의 얼굴에 못 믿겠다는 기색이 노골적으로 떠올랐다.
“나는 자네가 이 사건에 대해 뭔가 아는 게 있는데도 말하지 않는다는 생각이 드는군.”
“그럴 리가요. 제가 다른 사람보다 경험이 풍부하고 식견이 해박한 건 아주 분명한 사실이지만 불가사의한 일까지 다 아는 건 아닙니다.”
석채은이 고개를 모로 기울이며 물었다.
“그 말, 정말이에요?”
“물론이요.”
진무앙이 당당하게 말했지만 두 사람에게는 아무 소용이 없었다.
그들은 진무앙을 전혀 신뢰하지 않았다.
그동안 진무앙이 그들에게 거짓말을 한 게 얼마나 많은데 그를 믿겠나.
한 번 속으면 속인 놈이 잘못이지만, 두 번 속으면 속은 놈이 븅신이라는 말도 있지 않은가.
주신언이 일어서며 말했다.
“가세. 우리 지부에 가까운 마을에서 죽은 시신 몇 구를 옮겨놨네.”
진무앙이 따라 일어서며 말을 받았다.
“어차피 나한테 보여줄 생각이셨으면 빨리 이야기를 하지 그러셨습니까.”
“그러려고 했는데, 이곳에 오자마자 엉뚱한 소리를 먼저 시작한 건 자네였네.”
“그래요? 그랬었나? 왜 기억이 나지 않을까?”
진무앙은 태연하게 대꾸하며 걸음을 옮겼다.
석채은과 주신언은 고개를 휘휘 저었다.
반 시진 후 무림맹 낙양 지부 지하.
서늘한 한기가 느껴지는 지하 석실의 바닥에는 거적에 덮인 세 구의 시신이 놓여 있었다.
주신언이 진무앙에게 말했다.
“저들일세. 자네가 한번 보게나.”
진무앙은 사양하지 않고 거적을 들췄다.
쪼그리고 앉아 시신의 상태를 살핀 그는 석채은과 주신언이 그들을 왜 목내이라고 불렀는지 알 수 있었다.
이남일녀인 시신은 일가족처럼 보였다.
중년의 남녀와 열서넛가량의 남자아이는 뼈에 가죽을 씌운 것 같은 모습이었고, 피부는 빛바랜 금빛을 띠고 있었다.
진무앙의 눈빛이 깊게 가라앉았다.
‘갈수록 태산이로군. 이 시신들에 남은 흔적은 분명 칠마병 중 하나인 겁화금종이 남긴 거야. 그것이 마기를 보충하기 위해 사람들의 정혈을 갈취할 때 생기는 흔적이니까…….’
그는 입술을 물어 터져 나오려는 욕을 삼켰다.
‘염병, 겁화금종까지 세상에 나왔다는 건가… 더구나 흡정을 할 수 있다는 건 환우지약과 마병 본체가 만나 삼단계 각성까지 마무리하고 천무령과 빙의 대상자의 일체화가 진행 중이라는 말인데…….’
그는 남자아이의 손목을 잡았다.
푸스스-
아이의 손목 피부가 먼지처럼 부서졌다.
겁화금종을 비롯한 칠마병이 정혈을 갈취하는 걸 흡정이라고 했다.
그 흡정에 당한 피해자는 열두 시진이 지나면 먼지가 된다.
시신조차 남기지 못하는 것이다.
그것을 증명하듯 시신들은 조금씩 부서지고 있었다.
죽은 지 열두 시진이 다 되어가는 것이다.
칠마병이 절대마병이라 불리는 이유 중 하나가 그 때문이었다.
하지만 아직 그 진행은 미미한 수준이라 석채은과 주신언은 그것을 알아차리지 못하고 있었다.
‘이상해… 타라는 겁화금종에 대해 이야기한 적이 없어. 아마도 그건 그녀와 싸운 마녀가 떠나던 순간까지 겁화금종을 사용하지 않았기 때문이겠지.’
생각이 이어졌다.
‘마녀는 루드리야 일족에 대한 원한이 골수에 사무친 소뢰음사 일족의 후인이야. 그런데도 싸움이 끝날 때까지 그걸 사용하지 않았다는 건… 마녀가 금종을 갖고 있지 않았다고밖에 생각할 수가 없는데…….’
그는 눈살을 찌푸렸다.
‘하지만 타라는 카일라스 산의 지하에서 탈출한 건 분명 마녀 한 명뿐이었다고 했다. 대체 어떻게 된 거지?’
가능성은 둘이었다.
첫째는 소뢰음사의 마녀와 겁화금종은 아무런 상관이 없다는 것.
둘째는 카일라스 산의 지하에서 탈출한 마녀가 둘이고, 그중 한 명이 겁화금종을 갖고 있다는 것.
진무앙의 눈에 강렬한 신광이 어렸다.
하지만 그는 쪼그린 채 시신들을 보고 있어, 그의 등 뒤에 있던 석채은과 주신언은 그것을 보지 못했다.
‘마녀가 낙양으로 온 이유가 궁금했는데…….’
타라는 마녀가 낙양으로 온 까닭은 진무앙에게 복수하기 위해서라고 추측했었다.
하지만 마녀가 천안통이라도 깨우쳤다면 몰라도 그건 말도 안 되는 것이었다.
‘만약 탈출한 마녀가 둘이고, 타라와 싸웠던 마녀가 겁화금종을 가진 마녀를 추적하는 중이라면? 그리고 금종을 가진 마녀가 낙양으로 왔기 때문에 여기까지 뒤를 쫓아온 것이라면?’
그러면 두 가지를 제외한 모든 것이 설명이 되었다.
‘겁화금종을 가진 마녀는 루드라 신전이 있는 정식 입구로 탈출하지 않았다. 그럼 다른 통로가 있어야 하는데, 그런 곳은 존재하지 않아. 그런 곳이 없다는 건 내가 잠들기 전에 다 확인했었으니까. 금종의 마녀는 그곳에서 어떻게 탈출한 거지? 그리고 왜 이곳으로 온 거지?’
진무앙의 입술이 달싹였다.
[유코.]즉시 대답이 있었다.
[왜?] [수향루에 가서 타라를 불러와. 등봉현 쪽으로 이동할 테니까 최대한 빨리 따라와.]흔적 따위를 남기지 않아도 유코라면 어렵지 않게 따라올 터였다.
진무앙이 가르친 그녀의 추종술은 당대 최고 수준이니까.
퉁명스러운 유코의 전음이 들려왔다.
[나는 심부름하려고 당신 옆에 붙어있는 게 아니라는 거 잊었어? 나는 당신을 죽일 여자야.] [언제 죽여도 좋으니까 지금은 그냥 내가 시키는 거나 해.]진무앙의 목소리에 은근한 짜증이 섞인 것을 느낀 유코의 말투가 수그러들었다.
[중요한 일이야?] [응. 그것도 아주.] [알았어. 심부름 한 번 하면 순순히 칼을 한 번 맞아주는 걸로 하는 거야?] [아무 때나 칼질하라니까. 저항하지 않을 테니까.] [당신이란 남자를 당최 믿을 수가 있어야지.]진무앙은 한숨이 절로 나왔다.
‘후우… 나한테 전생이라는 게 있다면 분명히 나는 나라를 골백번도 더 팔아먹은 매국노였을 거다. 그렇지 않으면 내 여자들한테 이런 대접을 받을 리가 없잖아…….’
그때 유코의 전음이 귀를 파고들었다.
[내가 그렇게 심한 말을 한 것도 아닌데 뭘 그렇게 울상을 해. 보는 사람 마음 약해지게.] [마음 약해졌으면 얼른 다녀오기나 해.] [알았어.]유코의 기척이 사라졌다.
석채은과 주신언은 그녀의 기척을 전혀 알아차리지 못했다.
그들의 실력으로 그녀를 발견하는 건 죽었다 깨어나도 불가능한 일이었다.
진무앙이 일어나는 것을 본 주신언이 물었다.
“알아낸 게 있으면 사람 속 터지게 자네만 알고 있으려 하지 말고 공유해 주게.”
“알아낸 거 없습니다.”
“정말인가?”
“정말이라니까요.”
진무앙은 속으로 이를 부드득 갈았다.
여자들만 자신을 못 믿는 게 아니라 남자도 마찬가지 아닌가.
그래도 그런 걸 내색할 수는 없다.
자신이 불신의 표상이라는 걸 내색하는 건 너무 얼굴 팔리는 일 아닌가 말이다.
그가 말했다.
“그래서 이제부터 조사하려고 하는데, 두 분 중 누가 나와 같이 갈 겁니까?”
석채은이 냉큼 나섰다.
“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