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mortal RAW novel - Chapter 140
140 저 자식이 미쳤나?
휙휙- 휘휘휙-
관도 옆의 야산 지대에서 옷자락 스치는 소리가 요란하게 나며 무서운 속도로 달리는 사람들이 있었다.
경공을 펼치며 백아의 뒤를 좇는 진무앙 일행이었다.
주신언이 고개를 갸웃하며 입을 열었다.
“흠, 진 호위, 아무래도 무영백랑이 가는 곳은 태실산인 것 같네…….”
“그런 것 같습니다.”
진무앙은 고개를 끄덕이며 주신언의 말에 동의를 표했다.
멀리 숭산의 장엄한 산세가 모습을 드러내고 있었다.
일백오십 리에 걸친 숭산은 태실산과 소실산으로 나뉜다.
그리고 소실산의 기슭엔 천하제일문이라 불리는 소림사가 있다.
진무앙은 이곳 지리가 낯설지 않았다.
까마득할 정도로 오래전이긴 하지만, 이곳에서 꽤 긴 시간 머무른 적이 있었기 때문이다.
석채은은 앞에서 달리는 진무앙의 등에서 시선을 떼지 못했다.
역시 이번에도 그녀의 가슴엔 그에 대한 의문이 쌓이고 있었다.
‘어떻게 저 사람은 백아의 체향을 맡을 수 있는 거지? 그건 천하에서 사부님과 나 외에는 아무도 맡지 못하는 거라고 알고 있었는데…….’
진무앙이 백아의 뒤를 따를 수 있는 건 체향 때문이었다.
백아의 몸에서는 독특한 냄새가 난다.
그리고 그것은 일반적인 향기와는 전혀 다른 것이라 특수한 기공을 운용하지 않으면 냄새를 맡을 수 없었다.
그런데 기공을 배웠을 리 없는 진무앙은 헤매는 기색 하나 없이 백아의 뒤를 따랐다.
그러니 석채은이 의혹을 느끼는 건 당연했다.
하지만 사정을 알고 보면 그건 전혀 이상한 일이 아니었다.
백아의 체향을 맡을 수 있는 기공을 유가흔에게 전수한 사람이 진무앙이었으니까.
석채은은 유가흔에게 그것을 배웠고.
얼마 지나지 않아 일행은 태실산으로 접어들었다.
그들의 앞에 깎아지른 듯한 절벽을 병풍처럼 두른 봉우리들이 즐비하게 이어졌다.
그렇게 십여 리를 안쪽으로 들어갔을 때 한 줄기 백색 선이 번개처럼 진무앙의 품으로 달려들었다.
백아였다.
진무앙은 품에 안긴 백아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그걸 보는 석채은의 얼굴에 서운한 기색이 떠올랐다.
백아가 자신이 아니라 진무앙의 품을 먼저 찾았기 때문이었다.
시샘 어린 눈으로 백아를 본 석채은은 깜짝 놀라 다급하게 말했다.
“백아, 너 왜 그러니?”
백아는 털을 있는 대로 곤두세운 채 전신을 바들바들 떨고 있었다.
진무앙은 백아의 등을 부드럽게 쓸어내리며 석채은에게 말했다.
“다친 거 아니니까 걱정하지 말아요. 그냥 겁을 먹었을 뿐입니다.”
“겁먹었다고요? 호랑이도 가볍게 찢어 죽이는 백아가요?”
“백아가 본 건 호랑이 따위가 아니니까요.”
석채은은 이어질 진무앙의 다음 말을 추측할 수 있을 정도로 충분히 똑똑했다.
“겁화금종을 가진 마녀를 보았다는 건가요?”
진무앙은 고개를 끄덕이며 백아를 석채은에게 내밀었다.
“석 목주가 백아를 좀 진정시켜요. 이제는 도움을 받지 않아도 되니까. 백아는 제 역할을 충분히 해냈습니다.”
“백아의 체향을 쫓으려는 것 같은데, 그건 불가능해요. 그건 반 각 정도만 유지되고 그 시간이 지나면 사라진단 말이에요.”
“반 각이면 충분합니다.”
“또 혼자 가려고요?”
“같이 가기엔 당신과 주 대협이 너무 느려요.”
“쳇!”
석채은이 입술을 삐죽거렸다.
진무앙은 타라와 아르다반에게 말했다.
“앞으로 벌어질 일은 나도 예상하기 어렵다. 그러니 너희는 내가 돌아올 때까지 석 목주와 주 대협을 지켜라.”
타라와 아르다반은 군소리 없이 대답했다.
“예.”
“알겠습니다.”
진무앙은 석채은과 주신언에게 고개를 돌렸다.
“내가 돌아올 때까지 단독행동은 금집니다.”
주신언이 걱정스러운 얼굴로 말했다.
“우리보다 자네가 더 위험한 거 아닌가? 상대는 겁화금종을 가진 소뢰음사의 마녀잖나.”
진무앙은 대답 없이 싱긋 웃었다.
다음 순간,
쑤와아아앙-
귀를 찢는 파공음과 함께 그의 신형이 가공할 속도로 솟아올랐다.
대경실색한 주신언의 입이 떡 벌어졌다.
“저… 저… 저…….”
그는 진무앙과 알고 지낸 지 몇 달이 되었다. 하지만 그가 무공을 펼치는 걸 보는 건 지금이 처음이었다.
진무앙은 단숨에 수십 장을 치솟더니 신룡이 꿈틀거리는 것처럼 직각으로 방향을 바꾸었다.
그러고는 절벽을 연이어 밟으며 태실산의 최고봉인 준극봉을 향해 날아갔다.
눈으로 따라잡기 어려울 정도로 빠를 뿐만 아니라 일보에 오십여 장을 가로지르는 믿기 어려운 경공술이었다.
그가 펼친 경공은 소림의 능공천상제에 곤륜의 운룡대팔식과 무당의 제운종이 복합된 것이었다.
하지만 주신언은 그것을 알아보지 못했다.
그가 아는 한, 세 가지 경공과 진무앙이 펼친 것과는 하늘과 땅만큼의 차이가 있었기 때문이다.
주신언과 달리 석채은은 별로 놀라지 않았다.
그녀는 어렴풋하게나마 진무앙이 어느 정도의 고수인지 짐작하고 있는 여자인 것이다.
그녀가 말했다.
“주 대협, 우리도 가요.”
“진 호위를 따라갈 수 있겠소?”
“갈 수 있는 데까지는 가야죠. 저 사람한테만 맡기면 이번 일은 미궁에 빠질 가능성이 커요.”
“왜 그렇게 생각하시오?”
“주 대협은 저 사람을 믿어요?”
“물론 믿지 않소.”
“그러니 가야죠. 틈만 나면 거짓말을 하는 저 사람이 이번 일에 대해 나중에 무슨 말을 할지 누가 알겠어요?”
그녀가 타라를 돌아보며 물었다.
“제 말이 기분 나쁘신 건 아니죠?”
타라가 눈가에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전혀요. 저도 저분의 입에서 나오는 말은 잘 믿지 않는답니다.”
옆에 있던 아르다반이 벙긋벙긋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말은 안 했지만 타라의 말에 동의한다는 뜻.
석채은이 말했다.
“다들 의견이 같은 것 같네요. 그럼 어서 가요. 이러다 저 사람을 놓치겠어요.”
네 사람은 전력을 다해 경공을 펼쳐 진무앙이 사라진 방향으로 달려갔다.
* * *
준극봉의 북쪽 절벽.
진무앙은 수직으로 솟은 절벽 면을 평지처럼 밟고 서서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그의 바로 아래엔 동굴 하나가 입을 벌리고 있었다.
동굴은 작았다.
허리를 구부린 사람 한 명이 간신히 들어갈 수 있을 정도였으니까.
그런데 동굴의 입구는 통상의 것들과는 많이 달랐다.
입구의 둘레가 사람이 깎기라도 한 것처럼 굉장히 매끄러웠기 때문이다.
누가 봐도 자연스럽게 형성된 것이라고 생각되지 않는 모습이었다.
미간을 찡그린 진무앙의 눈에는 의아한 기색이 떠올라 있었다.
‘난약사와 아영이 납치되었던 계곡에서도 파천혈신륜의 흔적이 보이더니 이곳에서도 그러네……. 왜지?’
환우십병 중 ‘땅굴파기’ 전문 기능(?)을 가진 건 파천혈신륜뿐이다.
‘확인하려면, 들어가야겠지.’
마음을 정하자 그의 몸이 한 가닥 연기가 빨려들 듯 동굴 안으로 사라졌다.
동굴은 좁았지만 무영경의 침입기법들을 숨쉬듯 편하게 펼치는 진무앙에게는 아무런 장애도 될 수 없었다.
유사비은과 은잠사형으로 신체의 유연성을 극대화한 그는 이매부운으로 몸을 가볍게 한 채 전진했다.
구불구불 이어진 동굴을 이십여 장가량 전진했을 때 앞이 확 넓어지며 형태가 변했다.
지하를 향한 동굴은 나선형의 모습을 하고 있었다.
‘의심할 여지가 없어. 석초 닮은 그놈이 만든 게 분명해.’
구시렁거리며 진무앙은 바람처럼 아래로 달려 내려갔다.
동굴은 길었다.
거의 삼백여 장을 내려왔다 싶었을 즈음에서야 끝이 보였다.
바닥이 가까워질수록 쇠갈퀴가 피부를 찌르고 긁어대는 것 같은, 불쾌하고 날카로운 기운이 강하게 느껴졌다.
태풍처럼 휘몰아치는 그 기운은 광포했고, 끔찍한 살기가 어려 있었다.
진무앙은 미간을 찡그렸다.
‘엄청난 마기로군. 그런데 이상한 걸? 아직 대상자와 일체화를 완성하지 못한 겁화금종은 이 정도의 마기를 뿜어내지 못할 텐데?’
아래에 동굴의 끝이 보였다.
그곳을 지난 진무앙의 발이 바닥을 디뎠다.
그가 서 있는 장소는 사방 십여 장가량 되는 공터였다.
그는 정면을 바라보았다.
그곳엔 높이 칠 장, 폭 이 장에 이르는 거대한 석문이 앞을 막고 있었다.
마기는 석문의 안에서 흘러나오고 있었다.
진무앙의 안색이 무표정해졌다.
‘두께가 다섯 자가 넘는 석문을 뚫고 나오는 마기가 이렇게 강하다는 건… 안쪽은 지옥 같겠군.’
그는 안에서 뭔가 심상찮은 일이 벌어지고 있다는 걸 직감했다.
이곳에 고여 있는 마기의 양은 일체화를 이루지 못한 겁화금종이 단독으로 만들어내는 게 불가능하다는 걸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궁금하면 알아보면 된다.
진무앙은 오른손을 들어올렸다.
그의 장심에서 검푸른 강기가 뭉클거리며 흘러나왔다. 그리고 해일처럼 석문을 향해 밀려갔다.
연이어 일어나는 아홉 겹의 해일.
가공할 기세를 품은 그것은 구겁천뢰탄이었다.
콰우우우우-
콰콰콰콰콰콰콰콰쾅!
고막을 찢는 굉음과 함께 지하가 무너질 듯 뒤흔들렸다.
그리고 여섯 자에 달하는 거대한 석문이 화탄에 맞은 것처럼 산산조각이 되어 날아갔다.
휘익-
진무앙은 탁 트인 문 안으로 망설임 없이 걸어 들어갔다.
쿠쿵- 콰콰쾅!
석문 안쪽은 바깥처럼 공터였다. 하지만 규모면에서는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로 컸다.
높이는 삼십여 장에 달했고, 폭은 일백 장이 넘었다.
공터의 중앙, 바닥에 끌릴 만큼 긴 은발로 순백의 알몸을 가린 두 여자가 무서운 기세로 충돌하고 있었다.
그녀들은 생김새가 찍어낸 것처럼 똑같은 쌍둥이였다. 하지만 둘을 구별하는 건 쉬웠다.
한 여자는 손에 금빛 종을 들고 있었고, 다른 여자는 손에서 붉은빛의 강기가 다발로 쏟아져 나오고 있었기 때문이다.
진무앙이야 몰랐지만, 그녀들은 마히샤와 마야였다.
데엥-
마히샤가 겁화금종을 들어올리자 두드리지도 않았는데 저절로 종소리가 울렸다.
동시에 끔찍한 마기가 폭풍처럼 일어나 공터를 휩쓸었다.
돌로 된 바닥이 다섯 치 깊이로 파이며 먼지가 되어 사라졌다.
진무앙조차 그것을 보고 눈살을 찌푸렸다.
가공할 위력이었다.
마야도 충격을 받은 듯 입에서 한 덩이의 피를 토했다.
하지만 그녀는 한 걸음도 물러서지 않고 손을 흔들었다.
장심에서 일어난 핏빛 강기가 이무기처럼 꿈틀거리며 허공을 가로질러 마히샤의 가슴으로 날아갔다.
데엥-
다시 종소리가 나고 핏빛 강기가 허무하게 스러졌다.
두 여자의 싸움을 지켜보던 진무앙이 미간을 찡그렸다.
‘겁화금종에 맞서는 은발여인이 뇌정신궁에서 타라와 싸운 쪽인 것 같은데… 타라가 패한 것도 무리가 아니었네. 저 여자가 펼치는 건 쇠뢰음사의 혈뢰강기가 아니다.’
그의 눈에 의혹이 짙게 떠올랐다.
‘저건 소뢰음사의 근원인 혈수마찰이 대뢰음사와 양패구사하면서 사라졌던 저주혈마공과 혈수마강, 그리고 혈룡백팔변이다. 천 년 그 이전에 맥이 끊어진 저걸 어떻게 익힌 걸까?’
고개를 갸웃하던 그의 시선이 마히샤가 들고 있는 겁화금종으로 향했다.
그리고 그는 공터에 휘몰아치고 있는 마기의 양이 상상하기 어려울 만큼 강한 게 무엇 때문이었는지 그 이유를 알 수 있었다.
종구(鐘口)라 불리는 겁화금종의 아래쪽에 피처럼 붉은 둥근 물체 일부가 삐죽 삐져나와 있었다.
아주 익숙한 모습과 기운.
그것은 파천혈신륜이었다.
그런데 그것이 하는 행동(?)이 약간 이상했다.
꿈틀꿈틀꿈틀-
파천혈신륜은 고무줄이 아닌데도 아래로 길쭉하게 늘어졌다가 원래의 형태로 돌아가는 걸 반복하고 있었다.
그 광경은 마치 겁화금종이 파천혈신륜을 잡아먹으려 하고, 파천혈신륜은 사력을 다해 도망을 치려고 하는 것처럼 보였다.
그리고 그럴 때마다 겁화금종에서 흘러나오는 마기가 폭발적으로 강해졌다가 약해지는 현상이 되풀이되었다.
환우십병에 대해서라면 모르는 게 없다고 자부하는 진무앙이었다.
하지만 지금 파천혈신륜과 관련된 현상은 듣도 보도 못한 것이었다. 그러니 이해도 되지 않았다.
‘저 자식이 미쳤나? 대체 왜 저러는 거야?’
그때 마야의 공세가 급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