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mortal RAW novel - Chapter 145
145 미친놈
일우 선사는 봉마곡이 소림사의 뒤에 있다고 했었다.
말만 들으면 사찰의 담을 나서면 바로 계곡이 나올 것 같지만, 실상은 달랐다.
봉마곡은 소림사를 나서고도 소실산 깊은 곳으로 십여 리를 더 들어간 곳에 있었다.
게다가 입구의 형태도 이상해서 아는 사람이 아니면 코앞에 있어도 발견하기 어려웠다.
진무앙은 높이가 삼십여 장에 달하는 깎아지른 절벽 앞에 섰다.
절벽의 아래쪽은 일장을 넘는 나무들과 팔뚝 굵기의 넝쿨들이 뒤덮고 있었다.
진무앙이 절벽으로 다가가자 넝쿨과 나무들이 양옆으로 밀려나며 높이 일 장, 폭 다섯 자가량 되는 동굴이 모습을 드러냈다.
이미 예상한 일인 듯 진무앙은 놀란 기색 없이 동굴로 걸어 들어갔다.
십 장가량 이어진 동굴을 지나자 앞이 확 트이며 분지가 나타났다.
진무앙이 분지를 처음 보고 내뱉은 감상평은 간단명료했다.
“생난리로군.”
쿠르르르- 콰콰콰쾅!
아름드리 거목들이 빽빽하게 들어찬 분지 곳곳에서 고막을 멍멍하게 만드는 굉음이 쉴 새 없이 터졌다.
그때마다 신기루처럼 허공이 일그러지거나 가뭄 든 논바닥처럼 갈라졌다가 회복되었다.
그리고 그렇게 일그러진 허공 아래에서는 수십 개의 돌풍이 일어났다 스러짐을 끝없이 반복하면서 사방팔방을 미친 듯이 휩쓸었다.
그뿐이랴.
분지의 상공엔 핏빛을 띤 구름이 기괴한 형태로 용틀임을 하며 빠르게 흘러 다니고 있었다.
인간 세상의 모습이라고는 믿어지지 않는 광경이었다.
진무앙이 혀를 찼을 때였다.
콰콰쾅!
무시무시한 굉음과 함께 계곡 전체가 무너질 듯 뒤흔들리며 거대한 핏빛 광풍이 일어나 하늘을 가득 채웠다.
“서른 번째 관문이 깨졌군.”
굉음은 계속 이어졌다.
쿠콰콰콰콰- 콰콰쾅!
진무앙이 탄성을 토하며 중얼거렸다.
“호오! 이대로라면 이틀이 지나기 전에 나머지 육관도 모두 박살나겠는데? 팔십 년밖에 지나지 않았는데 그새 이렇게까지 강해졌나?”
그때 가느다란 전음이 그의 귀를 파고들었다.
[무앙, 저 현상이 마두라는 작자 때문에 벌어지고 있는 거야?]유코였다.
주변에 아무도 없는 터라 진무앙은 전음을 사용하지 않고 대답했다.
“그래.”
[마두가 누군데?]“일우가 하는 말 못 들었어? 세상에 나가기 전에 내가 여기 가둬놓은 놈이라, 말해줘도 너는 몰라.”
[진법에 저 정도 충격을 줄 수 있는 자라면 보기 드문 고수인데, 어떤 작자인지 굉장히 궁금하네.]“왜? 강한 놈을 보니까 손이 근질거리기라도 해? 저놈과 한판 뜨고 싶으면 말만 해. 내가 자리 마련해 줄 테니까.”
[흥! 이 나이에 나한테 그런 호승심이 남아 있겠어? 게다가 당신이 할 일을 내가 대신 할 리가 없잖아.]“내 그림자 속에 은신해 있기만 하는 것도 심심하지 않아? 간만에 네가 상대할 만한 강자를 만났는데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나중에 많이 아쉬울 것 같은데 말이지.”
[천만에. 무앙, 잊은 거 같아서 기억나게 다시 한번 말해줄게. 난 죽여야 할 목표가 아닌 사람과는 싸우지 않아!]“잘났다.”
진무앙이 심드렁하게 대꾸한 후 걸음을 옮기며 말을 이었다.
“넌 여기서 기다려. 금방 다녀올 테니까.”
[나도 갈래.]“안 돼. 기다려.”
[내가 대신 안 싸워준다고 해서 삐친 거야?]진무앙은 한순간도 망설이지 않고 소리쳤다.
“삐쳤다! 어쩔래!”
[밴댕이 소갈딱지.]“틈만 나면 내 몸에 칼을 꽂고 싶어 하는 네가 할 말은 아니지.”
[흥!]진무앙은 유코의 세찬 코웃음을 뒤로하고 봉마진 안으로 걸음을 옮겼다.
쇳덩어리도 단숨에 으스러뜨릴 만큼 강력한 압력이 밀려왔다. 하지만 그것은 그의 몸에 닿자마자 눈이 녹듯이 사라졌다.
봉마진 안으로 들어서자 밖에서는 보이지 않던 것들이 눈에 들어왔다.
진무앙이 중얼거렸다.
“염병, 이번 중원행은 생각지도 못했던 경험을 너무 많이 하는 것 같다. 상처를 입지 않나… 다시 보고 싶지 않은 것들이 여기저기서 튀어나오질 않나… 정신이 사나울 지경이라고.”
그의 눈에 가장 먼저 들어온 건, 분지를 에워싸듯 빙 두른, 여섯 겹의 암회색 빛의 장벽이었다.
그것이 봉마진의 남은 여섯 관문이었다.
수백 장 높이까지 치솟은 빛의 장벽은 아홉 개의 빛기둥이 띠처럼 이어져 만들어진 것이었다.
저 암회색 빛기둥마다 그 아래 봉마석이 묻혀 있었다.
무림에 전해지는 대부분의 진법은 나무와 돌 같은 지형지물이 이용한 것들이다.
한 가지를 제외하면 진무앙도 다르지 않았다.
그는 아홉 개의 봉마석으로 하나의 관문을 만들고, 그것을 서른여섯 번 중첩시켰다.
봉마진은 그렇게 삼십육관으로 구성되었고, 사용된 봉마석의 수는 총 삼백이십사 개였다.
봉마진의 관문을 돌파하려면 각 관문을 이루는 아홉 개의 봉마석을 모두 파괴해야만 했다.
벌써 관문 삼십 개가 무너지고 여섯 개밖에 남지 않았으니 온전한 봉마석의 수는 오십사 개뿐이었다.
봉마진이 일반적인 진법과 다른 점, 그것은 봉마석이 평범한 돌이 아니라는 것이었다.
진무앙은 여섯 개의 관문을 무인지경처럼 지나치며 안쪽 깊숙한 곳으로 들어갔다.
그가 온전한 제삼십일관을 넘어섰을 때였다.
슈슉!
얼음 위를 미끄러지는 듯 경쾌하고 맑은 소리와 함께 그의 미간으로 반지 형태를 가진 투명한 강환이 날아들었다.
동시에 진무앙의 일 장 주변 공기가 단숨에 얼어붙으며 가공할 한기가 일어났다.
진무앙은 가볍게 상체를 뒤로 젖히며 손가락을 튕겼다.
데엥-
희미한 종소리와 함께 번개처럼 튕겨진 탄지신통의 지력이 투명한 강환과 세차게 충돌했다.
쾅-
진무앙의 이마 앞에서 벼락치는 듯한 굉음과 함께 격렬한 폭발이 일어났다.
충돌의 여파에 휘말린 그의 머리카락이 뽑힐 것처럼 세차게 휘날렸다.
뒤로 젖혔던 상체를 세우고 삼 장 앞에 서 있는 사람을 본 진무앙이 눈살을 찌푸리며 한숨을 내쉬었다.
“오랜만에 보는 건데 첫인사치고는 너무 감정적인 거 아니냐?”
그와 눈이 마주친 상대가 하단세를 취했던 장검을 중단세로 바꾸며 차가운 목소리로 대꾸했다.
“제 발로 죽을 자리를 찾아 들어온 인간의 입에서 나올 말은 아니네.”
“옷은 어떻게 하고 그 꼴을 하고 있는 거냐?”
“얼굴에 이상한 껍데기를 쓴 놈이 그런 말을 할 자격이 있을까? 그리고 누가 들으면 때마다 네가 옷을 들여 보내준 줄 알겠어.”
상대의 말을 들은 진무앙은 입맛을 다셨다.
틀린 말이 아니었으니까.
그의 앞에 있는 사람은 머리카락을 어깨 어림에서 짧게 자른 훤칠한 키의 여인이었다.
그리고 그녀는 나뭇잎과 넝쿨을 대충 얽어서 만든 것으로 가슴과 사타구니만 가렸을 뿐, 알몸이었다.
그녀가 일우 선사가 ‘희대의 마두’라 부른 바로 그 사람이었다.
진무앙이 여인의 눈을 살피듯 보며 말했다.
“사하, 오면서 완전히 정신 줄 저세상으로 보낸 거 아닌가 생각했는데, 말하는 거 들으니까 반대로 제정신이 돌아온 모양이네.”
“나는 늘 제정신이었어. 네가 날 미친년으로 몰았을 뿐이지.”
“그렇게 말하면 섭하지. 그때의 넌 반쯤 미쳐 있었어. 그렇지 않았다면 내가 너 같은 미인을 이런 곳에 봉인했을 리가 없잖아.”
여인, 냉사하의 눈빛이 얼음처럼 차가워졌다.
“미친놈.”
진무앙의 말처럼 냉사하는 그의 주변에 있는 여인들에게 뒤지지 않는 절세의 미인이었다.
또렷한 이목구비, 눈처럼 흰 피부, 흑백이 뚜렷한 눈동자.
거기에 가슴과 사타구니만 가린 몸매는 혹독한 무공 수련으로 단련되어 있어 완벽한 곡선이었다.
게다가 눈을 씻고 찾아보아도 군살은 없었고, 근육은 탄력이 넘쳤다.
굳이 한 가지 흠을 잡자면 보기만 해도 오한이 들 것 같은 차가운 표정 정도.
그녀의 손에 들린 삼 척 장검의 끝에 반지 형태의 강환들이 줄줄이 맺혔다.
검의 초절정 경지에 이른 자들만이 펼칠 수 있다는 초상승의 기법 검환이었다.
그것을 보며 진무앙이 말했다.
“한빙검환이 십이성에 이르렀군. 축하해야 할 것 같은데? 북해빙궁의 초대 궁주 외에는 아무도 이르지 못한 경지잖아.”
“네놈한테 축하받고 싶은 마음이 있을 거라고 생각해?”
말이 끝나기도 전에 한빙검환이 줄에 꿴 구슬처럼 진무앙을 향해 빗발치듯 날아들었다.
쩌저저저적!
동시에 주변 십 장 이내 기온이 한 겨울처럼 차가워지며 지면에 한 치 두께의 얼음이 맺혔다.
“얼음엔 불이지.”
진무앙은 싱긋 웃으며 일장을 휘둘렀다.
무시무시한 열기를 품은 강기의 폭풍이 일어나 한빙검환과 충돌했다.
콰콰콰콰콰콰쾅!
엄청난 굉음과 함께 두 사람이 서 있던 대지가 두 자나 주저앉으며 흙먼지가 자욱하게 일어났다.
특이하게도 흙먼지와 함께 엄청난 수증기도 일어나 안개처럼 퍼져 나갔다.
극에 이른 한기와 열기가 충돌하며 만들어진 수증기였다.
강렬한 한기가 어린 눈으로 진무앙을 노려보며 냉사하가 이를 갈았다.
“빠드득, 열화마종의 광염분심장……. 진무앙, 내가 그때처럼 또 당할 거라 생각하고 여기 들어왔다면 그게 얼마나 큰 착각인지 뼈저리게 알려줄게.”
스슷-
냉사하의 신형이 안개처럼 흩어졌다. 하지만 사라진 것은 아니었다.
그녀의 신형은 열두 개로 나뉘며 진무앙을 포위했다. 그리고 한빙검환을 날리며 그와의 거리를 좁혔다.
동시에 빙결된 공기 중의 수분이 냉사하의 검무와 조화를 이루며 열두 개의 소용돌이를 이루었다.
소용돌이를 이룬 얼음 결정들은 스치기만 해도 피부가 잘려 나갈 정도로 날카로운 예기를 품고 있었다.
상상을 넘어서는 검공.
하지만 진무앙의 얼굴엔 위기감이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그는 짜증난다는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빙마소혼검무? 갇힌 세월이 폐관수련이었던 거야? 별걸 다 익혔네.”
말과 함께 그는 오른발을 축으로 삼고 바람처럼 몸을 회전하며 열두 번 주먹질을 했다.
가공할 열기를 품은 열두 줄기의 권강이 냉사하의 빙마소혼검무를 맞이했다.
열화마종이 창안했던 일곱 가지의 절기 중 광염분심장에 이은 열화패권이었다.
콰콰콰콰쾅!
동시 다발적으로 벌어진 열두 번의 충돌로 인해 분지가 지진이 난 것처럼 흔들렸다.
그리고 두 사람의 주변 십여 장이 초토화되며 다시 석 자나 주저앉았다.
버섯구름처럼 피어나는 자욱한 흙먼지와 수증기 속에서 진무앙과 냉사하는 다시 부딪쳤다.
열화패권과 충돌한 빙마소혼검무가 힘을 잃자 냉사하의 공세가 변했다.
어린아이 머리통만 한 크기로 커진 한빙검환이 화탄처럼 일직선으로 진무앙에게 날아갔다.
동시에 얼음덩어리들이 장벽처럼 일어나 진무앙이 움직일 수 없도록 가뒀다.
진무앙이 순수한 탄성을 토했다.
“한빙단월참! 드디어 북해빙궁에 전투의 별이 떴구나.”
냉사하가 이룬 경지는 북해빙궁의 개파 조사였던 현음신녀의 경지에 필적하는 것이었다.
“한가한 소리!”
냉혹한 일갈이 터지며 한빙단월참의 무시무시한 검세가 진무앙의 가슴으로 쇄도했다.
진무앙은 싱긋 웃으며 주먹을 들어올렸다.
가공할 열기가 해일처럼 일어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