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mortal RAW novel - Chapter 148
148 너도 궁금하냐?
수향루 난향의 거처.
방은 난향이 쉴 새 없이 뿜어내는 연초 연기로 가득차서 너구리라도 잡을 수 있을 것 같았다.
벌컥 문을 열고 기세도 당당하게 방으로 들어서던 진무앙은 까치발로 발소리를 죽였다. 그리고 슬금슬금 그녀의 눈치를 보며 조심스럽게 다가갔다.
어째 목이 서늘해지는 게 분위기가 싸했다.
분위기에 걸맞은 얼음처럼 차가운 난향의 눈동자가 똑바로 그에게 날아왔다.
그가 어물어물 말문을 열었다.
“아… 하… 하… 하…… 표정이 왜 그래? 점심때 먹고 체한 거야? 내가 배를 쓸어서 풀어줄까? 예전에도 내 손이 약손이라고 좋아했잖아.”
돌아오는 난향의 대답은 매몰찼다.
“헛소리하지 말고 앉아, 인간아!”
휘리릭-
번개처럼 신형을 날린 진무앙은 난향의 맞은편 의자에 얌전히 앉았다.
진무앙은 고개를 모로 기울여 그녀의 시선을 비끼며 말했다.
“눈에 힘 좀 빼주면 안 될까? 내 머리에 구멍나겠다.”
“일언반구 말 한 마디 없이 기어나가더니 그새 소림사까지 갔다 왔다며?”
“기어나간 건 아니고… 걸어나갔…….”
“그걸 말이라고!”
부웅-
진무앙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장죽이 무서운 기세로 그의 입술을 향해 날아들었다.
질겁한 그가 튕기듯이 의자를 뒤로 누이며 상체를 확 젖혔다.
스팟!
종이 한 장 차이로 장죽이 그의 입술을 스치며 지나갔다.
다행히 두 번째 공격이 이어지지는 않았다.
진무앙은 상체를 벌떡 일으켜 앉으며 말했다.
“미안, 미안. 소뢰음사의 마녀를 쫓는 게 급해서 연락을 하지 못했어.”
“타라와 아르다반을 부르러 유코를 보냈을 때 나한테도 사정을 설명하라고 했으면 내가 이렇게 화를 내겠어?”
진무앙은 속으로 혀를 찼지만 유코를 원망할 순 없었다.
난향을 챙기지 못한 건 온전히 그의 잘못이었다.
유코는 그가 시킨 일만 했을 뿐이니까.
그래도 이렇게 몰리기만 할 수는 없는 일.
그는 진지한 얼굴로 말했다.
“두 개 마을의 주민이 몰살당했다는 말을 들었을 때 내 마음이 얼마나 급했을지를 고려해 줘. 빨리 범인을 잡지 않으면 얼마나 많은 희생자가 날지 알 수 없는 상황이었다구.”
“당신이 다른 마을 사람들의 희생을 막기 위해 급하게 움직였다는 말이지?”
진무앙은 세차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그럼.”
“입술에 침 발라.”
진무앙은 반사적으로 혀를 내밀어 입술에 침을 발랐다.
그 뒤에 자신이 무슨 짓을 했는지 자각한 그의 어깨가 축 늘어졌다.
난향이 말을 이었다.
“내가 당신이 어떤 남자인지 아무것도 모르는 여자야? 거짓말을 하려면 좀 더 그럴듯하게 해봐. 그래야 눈곱만치라도 믿어줄 거 아냐?”
“그냥 좀 믿어주면 안 되냐…….”
“나한테 한 마디의 말도 없이 결근까지 한 당신이 그런 말을 할 자격이나 있어? 당신한테 양심은 바라지도 않아. 그냥 얼굴 가죽이라도 좀 얇아지면 안 돼?”
“인피면구 벗을까? 그럼 좀 얇아질 텐…….”
“아으으으으으으…….”
앓는 듯한 신음과 함께 장죽을 쥔 난향의 손이 파르르 떨렸다.
말을 끝내면 바로 장죽이 날아들고도 남을 분위기라 진무앙은 급하게 입을 다물었다.
‘선물이라도 하나 사올 걸. 예전엔 들꽃 하나만 꺾어다 줘도 무척 좋아했었는데, 다음에는 꼭 잊지 말고 선물을 사 와야겠다. 그럼 덜 구박하겠지?’
그가 속으로 반성은커녕 철없는 생각을 하고 있을 때 난향이 말했다.
“애들한테 가봐. 당신이 말도 없이 사라져서 걱정 많이 하고 있어. 특히 소소가.”
“알았어.”
“또 말없이 사라지면 그때는 나도 정말 가만 안 있을 거야.”
“응. 흐흐흐.”
진무앙은 어색한 웃음으로 분위기를 얼버무리며 방을 나갔다.
혼자 남은 난향이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저 사람, 뭔가 엉뚱한 짓을 하고 다니는 거 같은데 알 수가 없어서 더 걱정스럽네……. 가끔은 나한테 기대도 괜찮잖아……. 무앙, 당신 눈에는 내가 아직도 보호해 줘야 하는 어린 소녀로만 보이는 거야? 하아…….”
한숨이 깊어지는 밤이었다.
별채 진무앙의 방.
“흑흑흑… 엉엉엉… 아앙아앙아앙… 숙부님… 흑흑흑… 엉엉엉…….”
소소는 의자에 앉아 있는 진무앙의 허벅지에 얼굴을 묻고 닭똥 같은 눈물을 뚝뚝 흘리며 울고 있었다.
“소소야, 저기 말이다. 너무 서럽게 우는 거 아니냐? 누가 네 울음소리를 들으면 내가 죽어서 시체로 돌아오기라도 한 줄 알겠다.”
진무앙은 소소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어색하게 아이를 달랬다.
그런 두 사람의 주변엔 강석초와 진소혜, 타라와 아르다반이 빙 둘러서 있었다.
강석초가 말했다.
“네가 말도 없이 사라지고 난 후에 타라 낭자와 아르다반이 반쯤 죽은 여자를 데리고 나타났어. 그걸 보고 소소가 엄청 겁을 집어먹었다고.”
“쩝…….”
진무앙은 혀를 찼다.
난향과 소소의 표현 방식은 극과 극처럼 달랐다. 하지만 그를 걱정하는 마음은 다르지 않았다.
그는 자신에 대한 이런 사람들의 관심과 반응을 달가워했던 적이 없었다.
그런데 이번에는 난향과 소소의 반응을 보는 느낌이 예전과는 조금 달랐다.
귀찮음은 여전했다. 하지만 그 와중에 아주 약간은 미안하기도 하고 편안하기도 했다.
그로서는 드물게 느껴보는 감정이었다.
그는 소소를 안아 허벅지 위에 앉히며 말했다.
“소소야, 숙부는 이렇게 건강하게 돌아왔으니까 이제 그만 울어라. 다음부터는 어디 다녀올 때 너한테 꼭 말을 할게.”
더럭더럭 울던 소소가 소맷자락으로 눈가를 훔치며 물었다.
“정말이에요, 숙부님?”
“그래.”
소소의 얼굴이 환해졌다.
진무앙은 아이를 내려놓고 강석초에게 물었다.
“마녀는?”
“옆방에 뒀는데 아직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있다.”
“봐야겠다.”
소소는 소혜가 챙기도록 하고, 진무앙은 타라와 강석초, 아르다반과 함께 옆방으로 갔다.
침상 위에는 시체처럼 창백한 안색의 마야가 눈을 꼭 감고 누워 있었다.
진무앙은 아래로 흘러내린 긴 은발과 이국적이면서도 아름다운 이목구비를 보며 중얼거렸다.
“정말 닮았군…….”
강석초가 물었다.
“이 여자가 누굴 닮았다는 거야?”
“있어.”
“어디에 있는데?”
“있다구, 이 자식아!”
“그렇게 말하면 내가 어떻게 알아?”
“네가 알 필요 없는 거니까 묻지 마!”
“묻기만 하면 승질이야, 승질이!”
강석초가 성질을 버럭 내고는 방을 나가 버렸다.
타라가 진무앙에게 말했다.
“강 대협도 루드라 님을 많이 걱정했어요.”
“저 자식은 걱정해도 돼.”
“예?”
“저 자식이 저 나이가 될 때까지 사고를 얼마나 쳐댔는지 알아?”
알 리가 있나.
진무앙이 말을 이었다.
“저놈이 사고를 쳐서 목숨이 간당간당한 거 구하러 다닌 게 한두 번이 아냐. 그거 생각하면 지금 내가 저 자식 걱정시키는 건 애들 장난이다.”
아르다반이 불쑥 끼어들었다.
“그런데 이 여자가 누굴 닮았다는 겁니까?”
“너도 궁금하냐?”
아르다반이 뒷머리를 긁적이며 대답했다.
“예. 죄송합니다.”
“죄송할 거까지야…….”
혀를 찬 진무앙이 말을 이었다.
“너희, 우샤스를 기억하지?”
타라와 아르다반이 동시에 대답했다.
“물론이에요.”
“물론입니다.”
당연했다.
우샤스는 육백 년 전 진무앙이 구해준 루드리야 일족의 여족장이었고, 뇌정신궁의 초대 궁주니까.
진무앙이 재차 물었다.
“아샤라는 여자도 아냐?”
타라는 한순간의 망설임도 없이 대답했다.
“우샤스 님이 남긴 기록에 그녀는 소뢰음사 족장의 딸로 극악무도한 마녀였다고 적혀 있어요.”
진무앙이 쓰게 웃으며 말을 받았다.
“그거 열받은 우샤스가 악의적으로 왜곡한 거야.”
“예? 왜 우샤스 님이 그런 짓을……?”
진무앙은 대답을 하지 않고 마야를 내려다보며 중얼거렸다.
“이 여자, 아샤를 닮아도 너무 닮았다. 지하로 내려갈 때 평생 혼자 살 거처럼 굴더니 그곳에서 혼인을 한 것 같네.”
그의 말에서 뭔가를 느낀 타라가 물었다.
“루드라 님, 혹시 아샤라는 분과 어떤 인연이라도 있으셨던 건가요?”
진무앙은 고개를 끄덕였다.
타라와 아르다반은 그가 어떤 말을 해도 받아들이는 세상에 드는 사람들이었다.
그들에게 그는 신이니까.
그가 말했다.
“당시 상황이 묘하게 꼬여서 우샤스와 아샤는 모두 내 여자가 되어 있었다.”
꼬인 건 두 여자의 미모에 홀딱 반한 그 때문이었다.
하지만 굳이 그 말을 할 필요는 없었다.
“그래서 내가 두 부족의 중재도 했었지.”
어느 한쪽이 더 마음에 들어서 했던 중재는 아니었다.
그는 소뢰음사와 루드리야 일족이 양패구사로 멸족을 하더라도 두 여자가 관련되어 있지 않았다면 나서지 않았을 것이다.
그의 말이 이어졌다.
“하지만 소뢰음사 일족의 수뇌부는 마공이 골수에 박힌 놈들이라 말이 통하지 않았다. 중재가 불가능했지.”
“아! 그래서 루드라 님이 그들을 제거하게 된 거로군요.”
“응. 그러지 않고는 두 부족의 싸움을 끝낼 수 없었으니까. 그래도 아샤는 지상에 두려고 했지만 효심이 깊어서 족장인 아버지를 따라 지하로 내려갔었다.”
“저번에는 쫓는 게 귀찮아서 그냥 두었다고 하셨잖아요?”
“그때는 난향이 옆에 있었잖아. 그녀 앞에서 아샤와 우샤스 이야기를 어떻게 하냐.”
“그럼 아샤 님 때문에 추적을 포기하셨던 거예요?”
“그래.”
타라와 아르다반이 마야를 돌아보았다.
진무앙의 이야기는 짧았지만 당시 어떤 일이 있었는지를 이해하는 데는 전혀 무리가 없었다.
아르다반이 물었다.
“그럼 루드라 님은 이 여인이 아샤 님의 후손이라고 생각하시는 겁니까?”
진무앙은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아마도 그럴 거다.”
뇌정신궁의 비서에 극악무도한 마녀라고 기록되어 있는 아샤에 대한 아르다반의 호칭은 어느새 존칭으로 변했다.
진무앙이 자기 여자였다고 말함과 동시에 그녀도 존중받을 자격이 생긴 것이다.
진무앙은 마야의 백회혈에 장심을 얹었다.
이어서 그는 손가락을 세워 마야의 혈도 서른여섯 곳을 빠르게 점한 후 타라에게 말했다.
“봉혈대법으로 내상을 다스리도록 조치했지만 며칠은 지나야 정신을 차릴 거다. 네가 챙겨라.”
“예, 루드라 님.”
세 사람은 마야의 방에서 나왔다.
그런데 놀랍게도 마야의 눈꺼풀이 위로 올라가며 백안이 드러났다.
“루드라… 루드라… 조사 할머니의 말씀이 정말 사실이었어……. 불멸의 파괴신 루드라…….”
그녀는 진무앙이 들어오기 직전 정신을 차렸다. 그래서 그의 말을 들을 수 있었다.
“하아…….”
나직하게 숨을 몰아쉰 그녀는 눈을 감았다.
그녀의 숨소리가 가늘어졌다.
진무앙의 이야기로 받은 충격이 엄청났지만, 지금 급한 건 내상을 치료하는 것이었다.
저녁을 먹은 진무앙은 호위무사직을 수행하기 위해 본루로 출근했다.
늘 그렇듯 같은 자세로 앉아 있던 목일석이 눈을 뜨는 것으로 그를 맞았다.
“어젯밤 루주의 분위기가 살벌했는데 용케 불벼락을 피한 모양일세.”
“마음이 넓은 분이잖습니까.”
“그래도 너무 자주 그분의 심기를 어지럽히지는 말게. 진심으로 자네를 위해 하는 말일세.”
“그럴 생각 없으니까 염려 놓으시죠?”
진무앙의 퉁명스런 대꾸에 목일석은 싱긋 웃으며 눈을 감았다.
진무앙은 간이 침상에 벌렁 누웠다.
고작 이틀에 불과했지만 그동안 정말 많은 일이 있었다.
‘잘 가고 있으려나.’
북해빙궁은 아주 멀었다.
냉사하가 경공을 펼쳐 길을 재촉해도 족히 한 달은 걸리리라.
그녀를 생각하자 무아 대선사, 아니, 냉사룡의 모습도 떠올랐다.
대혼돈시대에 천무제는 천하에서 소림의 이름을 지워 버리겠다고 공언하며 숭산으로 십만대군을 보냈다.
소림은 초토화되었고, 수많은 무승이 목숨을 잃었다. 그리고 장경각도 불타며 모든 비전이 사라졌다.
진무앙은 그런 소림에 역근경과 칠십이종절기를 비롯한 비전을 전했다.
그건 그가 달마나 혜가와 함께했던 시절에 대한 추억 때문도, 소림의 재앙을 안타까워해서도, 무림의 장래를 걱정해서도 아니었다.
그건 순전히 북해빙궁 시절 인연을 맺은 냉사룡 때문이었다.
그만큼 북해빙궁과 진무앙의 인연은 특별했다.
그리고 그 인연은 냉 씨 남매보다 아득히 오래전 맺어진 것이었다.
하지만 냉 씨 남매는 그 인연이 무엇인지는 알지 못했다.
천장을 바라보는 진무앙의 눈이 깊게 가라앉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