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mortal RAW novel - Chapter 149
149 임무 완료!
간이 침상에 팔베개하고 누운 진무앙이 잠이 들락 말락 할 때였다.
호위무사 대기실의 문이 열리며 어린 동기 하나가 얼굴을 빼꼼히 들이밀었다.
목일석은 고개도 돌리지 않았다.
이제 그도 경험으로 아는 것이다.
이런 경우 동기가 찾는 사람은 자신이 아니라 진무앙이라는 걸.
그의 예상대로였다.
“진 호위님!”
동기는 진무앙을 찾았다.
진무앙이 실눈을 뜨고 동기를 째려보며 물었다.
“왜?”
“진상부리는 손님이 있어요.”
“그런데?”
“진 호위님이 처리를 하게 하라는 루주님의 지시예요.”
진무앙이 와락 짜증을 냈다.
“호위무사가 나만 있는 것도 아닌데, 왜 맨날 나만 찾아? 그놈이 수향칠화 중 누구한테 진상을 부리고 있는 건데?”
동기가 고개를 저으며 대답했다.
“칠화님들하고는 상관없어요.”
“그럼?”
“그 진상은 포대 아저씨를 나오라고 하면서 난리를 치고 있어요. 얼마나 진상이 심한지 손님들이 정문에서 들어오지 못할 지경이에요.”
“석초를 찾는다고? 찾으면 별채로 안내하면 되지, 왜 난리를 치게 놔둬?”
진무앙은 고개를 갸웃하며 일어나 앉았다.
수향루 사람들이 포대라고 부르는 사람은 강석초다.
그의 생김새가 포대화상하고 똑같이 생겼다고 그런 별명이 붙은 것이다.
동기가 대답했다.
“포대 아저씨는 자기 없다고 하라면서 방에 숨어계세요. 나와서 해결하라고 말을 하려고 했는데 문도 열어주지 않아요.”
“뭐? 숨어? 그놈이?”
의혹이 뭉게구름처럼 일어났다.
그만큼 강석초의 행동은 평소와 크게 달랐다.
“아무튼 저는 루주님의 지시를 전했으니 갈게요. 빨리 처리하지 않으면 집무실로 부를 거라는 말씀도 전하라고 하셨어요.”
동기는 시원하게 말을 하고는 발걸음도 가볍게 가버렸다.
“맨날 협박이야…….”
진무앙은 구시렁거리며 빠른 걸음으로 정문으로 나갔다.
난향이 시킨 일이기도 했지만 대체 무슨 영문인가 궁금해서 호기심이 동한 것이다.
“흑흑흑… 강 가가! 강 가가! 흑흑흑… 왜 내게 돌아오지 않는 건가요?”
정문에 가까워지자 가슴이 미어지는 울음소리와 함께 한탄 섞인 남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진무앙은 눈살을 찌푸리며 중얼거렸다.
“응? 이게 무슨 소리야?”
그때 예의 그 울음 섞인 진상남(?)의 목소리가 악을 써대는 것으로 바뀌었다.
“강석초! 너 이 개자식, 네가 어떻게 나한테 이럴 수 있어! 만리장성을 수백 번도 더 쌓은 날 버리고 딴 놈과 살림을 차려? 당장 튀어나와! 안 나오면 수향루를 불태워서 널 통구이로 만들어 버릴 거야!”
진무앙이 정문에 도착했을 때 또 진상남의 어투가 바뀌었다.
“흑흑흑… 강 가가… 제발 나를 버리지 말아요. 나는 당신 없이 살 수 없어요.”
그제야 진무앙은 대충 어떤 상황인지 짐작이 갔다.
정문 앞에는 상당히 화려한 장삼을 입고 얼굴에 옅은 분칠까지 한 남자가 큰대자로 누워 발버둥을 치며 울부짖고 있었다.
하급 기녀와 식솔들, 그리고 손님들까지 나와서 그런 그를 둘러싸고 구경하는 중이었다.
진상남을 본 진무앙이 혀를 찼다.
“쯧, 눈물 없이는 볼 수 없는 광경이네.”
휘적휘적 걸어간 그는 진상남의 옆에 쪼그리고 앉았다.
가까이 가서 보니 진상남의 얼굴은 눈물과 콧물로 범벅이 되어 있었다. 하지만 그는 이목구비의 선이 가늘면서도 또렷한, 보기 드문 미남이었다.
진무앙이 중얼거렸다.
“자식, 꼴에 눈은 높아가지고.”
그와 눈이 마주친 진상남이 손에 든 단검을 자신의 목에 들이대며 울부짖었다.
“흑흑흑, 당장 강 가가를 불러주지 않으면 이 자리에서 죽어버릴 거예요.”
겁이 많은 성격인 듯 단검을 쥔 손이 벌벌 떨렸다.
진무앙은 한숨을 푹하고 내쉬며 말했다.
“후우, 내 팔자야… 네가 죽든 말든 상관하고 싶은 생각은 없는데, 나는 여기 호위무사라 네가 자결을 하면 피곤해져. 그러니까 그런 생각은 버려라. 그리고 얌전히 일어나 내 말을 따르면 석초를 만나게 해주마.”
강제로 제압을 할 거라는 예상과 너무 동떨어진 그의 말에 진상남의 눈이 커졌다.
“저… 정말이에요?”
진무앙이 말을 이었다.
“나는 거짓말이라는 건 꿈에서도 할 줄 모르는 남자야.”
진상남이 주춤거리며 일어섰다.
진무앙이 손을 내밀었다.
“칼 내놔. 수향루 내에서 무기 휴대는 금지다.”
잠시 망설이던 진상남이 그에게 단검을 넘겼다.
칼을 받아 든 진무앙이 별채 방향으로 걸음을 옮기며 말했다.
“따라와.”
그가 진상남에게 물었다.
“이름이 뭐냐?”
“왕정화라고 해요.”
“석초하고는 언제부터 사귀었는데?”
“일 년 정도 되었어요.”
“그놈 어디가 좋아서 이렇게 죽네 사네 하는 거냐?”
“강 가가는 자상하고 상냥해요.”
진무앙은 어이가 없어 헛웃음을 흘리지도 못했다.
“자상? 상냥? 그놈이?”
그는 입을 다물었다.
눈에 콩깍지가 씐 사람에게 무슨 말을 더 하겠나.
진무앙은 왕정화를 데리고 별채의 이층으로 올라갔다.
입술에 손가락을 세워 왕정화에게 조용히 하라는 신호를 보낸 그는 강석초의 방 앞에서 걸음을 멈췄다.
똑똑-
문을 두드린 그가 소리쳤다.
“나다, 문 열어.”
안에서 강석초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웬일이냐? 네가 예의를 다 지키고.”
말과 함께 문이 열리며 강석초가 모습을 드러냈다.
그리고 왕정화를 본 그의 얼굴이 사색이 되었다.
“저… 정화…….”
“강 가가!”
왕정화가 떨리는 목소리로 강석초를 부를 때 그의 등 뒤에서 소혜가 얼굴을 디밀며 어리둥절한 얼굴로 물었다.
“강 가가, 누구예요?”
강석초가 시체처럼 창백한 얼굴로 진무앙을 보며 소리쳤다.
“나한테 어떻게 이럴 수가 있어!”
“나니까 이러지, 자식아!”
진무앙이 마주 버럭 소리를 지르며 왕정화의 등을 확 밀었다.
“어어어어!”
왕정화가 힘없이 강석초의 품으로 쓰러졌다.
얼결에 강석초가 그를 품에 안았고, 그걸 본 소혜의 눈이 왕방울만 하게 커졌다.
그때 진무앙이 강석초의 이마를 손으로 확 밀어 방안으로 집어넣으며 말했다.
“난향한테 울고불고 해서 나한테 떠넘기지 말고, 네가 저지른 일이니 네가 해결해, 새끼야!”
그러고는 방문을 세차게 닫아버렸다.
쾅!
“어, 간만에 속이 다 시원하네!”
진무앙은 손을 탁탁 털며 중얼거렸다.
닫힌 문 안쪽에서 요란한 고함과 뭔가 부서지는 듯한 굉음이 터져 나오기 시작한 것도 그때였다.
쾅쾅쾅!
“이 사람 누구예요?”
이건 진소혜.
“그… 그게…….”
이건 강석초.
“강 가가, 이 여우는 누군데 가가와 함께 있는 거죠?”
이건 왕정화.
“여우라니! 이 살쾡이같이 생긴 인간이 여기가 어디라고!”
이건 다시 진소혜.
그녀는 내성적이고 수줍음이 많은 성격이었지만 강석초의 전 애인이 등장하자 성격이 포악하게(?) 돌변했다.
마치 다른 사람이라도 된 것 같은 기세였다.
그리고 뒤를 잇는 건 어지러운 비명소리.
“아악, 이 못생긴 살쾡이가 누굴 할퀴어!”
“꺄악, 이 여우가! 머리 놓지 못해!”
“컥, 윽. 싸우지 마! 싸우지 마!”
우당탕쿠당탕!
갑작스러운 소란에 여기저기 문이 열리며 소소와 타라, 아르다반이 어안이 벙벙한 얼굴을 하고 밖으로 나왔다.
하지만 진무앙이 고개를 저으며 손을 휘젓는 것을 보고는 다시 자신들의 방으로 들어갔다.
진무앙도 몸을 돌리려고 할 때 방문이 벌컥 열리며 강석초가 뛰쳐나왔다.
얼마 지나지 않았는데도 그의 옷은 갈기갈기 찢어져 있었고, 얼굴엔 할퀴고 쥐어뜯긴 상처가 가득했다.
그가 진무앙에게 비명처럼 소리쳤다.
“살려줘!”
진무앙이 피식 웃었다. 그러고는 발을 들어 강석초의 출렁거리는 배에 대고 힘차게 안으로 밀어 넣으며 말했다.
“그래 가지고 죽겠냐?”
강석초가 안으로 굴러들어 갔다.
우당탕쿠당탕-
문을 닫은 진무앙이 크게 기지개를 켜며 중얼거렸다.
“임무 완료.”
다음 날 아침 수향루 후원.
매일 하던 대로 무술 수련을 마친 소소가 송골송골 땀이 난 얼굴로 진무앙에게 다가왔다.
바위에 걸터앉아 소소를 지켜보던 진무앙이 싱긋 웃으며 땀을 닦으라고 수건을 내밀었다.
“많이 늘었구나.”
소소가 땀을 닦으며 환한 얼굴로 고개를 꾸벅 숙였다.
“감사합니다, 숙부님.”
“애늙은이 같은 모습만 고치면 더 바랄 게 없을 텐데 말이다. 흐흐흐.”
진무앙이 낮게 웃자 소소도 함께 미소를 지었다.
이 타박은 하루이틀 된 것도 아니어서 이제는 소소도 만성이 되었다.
“손 줘봐라.”
진무앙은 소소의 손을 잡은 채 일다경 정도를 보냈다.
내력으로 아이의 몸 상태를 살펴본 것이다.
그의 눈이 가라앉았다.
‘보약을 퍼붓고 있는데도 생기가 빠져나가는 건 여전하네. 그걸로 상태가 악화되는 건 막고 있지만 이대로라면 몇 년 버티지 못한다. 가흔이 도착하는 대로 괴의의 행방을 알아봐야겠다.’
그의 표정에서 무언가를 느낀 듯 소소가 가라앉은 목소리로 물었다.
“숙부님, 제 몸이 안 좋아졌나요?”
진무앙은 속으로 혀를 찼다.
얼마나 무방비 상태면 애한테 속마음을 들킨단 말인가.
“그런 거 아니다. 잠시 생각할 게 있었을 뿐이다.”
그는 화제를 재빨리 바꾸었다.
“그런데 석초 자식이 안 보이는데, 어디 간 거냐?”
“강 소숙은 어제 숙부님이 대기실로 가시고 나서 반 시진쯤 후에 나가셨는데, 어디로 가셨는지 지금까지 돌아오지 않고 계세요.”
“소혜는?”
“소혜 언니하고 싸운 다른 분도 강 소숙을 뒤쫓아 나갔는데 아직 안 왔고요.”
“훗, 새끼, 도망갔네, 도망갔어. 맨날 나한테 싸지르고 다닌다고 구박하더니 꼴 좋다. 음하하하하하하!”
진무앙이 목젖이 보일 정도로 입을 크게 벌리고 앙천광소를 터트렸다.
그에게서 흔하게 볼 수 없는 모습이라 소소의 눈이 동그래졌다.
아이가 걱정스러운 기색으로 물었다.
“숙부님, 소혜 언니라도 찾아야 하지 않을까요?”
“신경쓰지 마라. 석초 자식이 못 나긴 했어도 자기 사람 잘못되게 놔둘 놈은 아니니까.”
진무앙과 소소는 별채로 들어갔다.
아주 간만에 한가하고 평화롭고 유쾌하기까지 한 아침이었다.
하지만 그 분위기는 일각도 가지 못했다.
난향이 동기를 보내 진무앙을 호출했기 때문이다.
난향의 거처.
“당신, 너무한 거 아니야? 사태를 해결하라고 보냈더니 일을 더 키우면 어쩌자는 거야?”
난향이 진무앙을 노려보며 말했다.
진무앙은 어깨를 으쓱하며 말을 받았다.
“내가 뭘 어쨌다고?”
“석초 얼굴에 줄도랑이 파인 거 당신도 봤잖아.”
“파일 만하니까 파인 거겠지. 헤어질 때 마무리가 깔끔하지 못하니까 그런 일이 벌어지는 거잖아.”
어이를 상실한 난향의 입이 딱 벌어졌다.
그녀가 말했다.
“허구한 날 야반도주하는 당신이 석초한테 그런 말을 할 자격이 있다고 생각하는 거야?”
“말할 때 이것저것 자격 따지다가는 평생 한마디도 못하고 살아야 돼.”
“진짜 말이나 못하면…….”
“난향, 네가 그렇게 귀엽다고 마냥 싸고 도니까 애가 저 꼬라지잖아. 일 터지면 수습해 주는 것도 정도가 있어야지. 석초 나이가 몇인데 아직도 오냐오냐해 주고 있어.”
“걔는 백 살이 되어도 나한테는 애야.”
“졌다, 졌어.”
진무앙이 고개를 휘휘 저으며 말을 이었다.
“나한테 할 말이 그거뿐이면 간다.”
난향이 등을 돌리는 그에게 말했다.
“소소를 치료하는 의원이 당신을 만나고 싶어 하니까 그 사람한테 한 번 들러봐.”
“의원이? 왜?”
“소소의 치료와 관련되어서 할 말이 있나 봐.”
“그래? 알았어. 딱히 할 일도 없으니 오늘 가볼게.”
진무앙은 난향의 거처를 나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