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mortal RAW novel - Chapter 154
154 예감이 안 좋아
“무앙, 그새를 못 참고 사고를 쳤다며?”
자리에 앉은 유가흔이 가볍게 눈을 흘기며 물었다.
그녀는 여전히 면사가 챙처럼 달린 죽립을 쓰고 있었고, 죽립을 벗지 않은 건 진무앙과 유코도 마찬가지였다.
진무앙이 혀를 차며 되물었다.
“벌써 소문이 났어?”
“청양현 전체가 시끄러운데, 몰랐어?”
“여기서 너 오는 것만 기다리고 있었는데 그걸 어떻게 아냐?”
유가흔이 고개를 끄덕였다.
“하긴.”
“호기심이 많은 사람들이 사는 동네인가 보군.”
“당신이 친 사고는 없던 호기심도 불러일으킬 정도라는 거 몰라?”
“몰라.”
“호호호, 어차피 당신은 관심도 없겠지만 도갑으로 여무인을 인정사정없이 두들겨 패는 장면이 흔히 볼 수 있는 건 아니야, 무앙.”
“여자만 팬 거 아닌데?”
“남자의 존재감이 너무 떨어졌나 보지.”
유코가 끼어들었다.
“자기 아들이 당설의 존재감에 묻혔다는 이야기를 들으면 황보산이 많이 서운하겠네.”
유가흔이 미소 지으며 말을 받았다.
“사람들이 황보문보다 당설에게 호기심을 보이는 건, 그 아이의 부친인 사천당가주 당조동이 황보세가주 황보산보다 성격이 훨씬 독하다고 알려졌기 때문인 것 같아.”
“당조동이 가만있지 않을 거라고 생각해서 그렇다는 거야?”
“맞아.”
진무앙이 간단명료하게 두 여자의 대화에 종지부를 찍었다.
“칠푼이 자식이 독해봤자지.”
그가 연이어 유가흔에게 물었다.
“이 동네에 왜 무림인들이 몰려드는 거야?”
안색이 진지해진 유가흔이 대답했다.
“보름쯤 전부터 매일 밤 자시 중엽에 구화산 십왕봉에서 서기가 치솟고 있대.”
진무앙과 유코의 눈빛도 변했다.
구화산 십왕봉이라면 무저불회곡이 있다는 곳이 아닌가.
유가흔이 말을 이었다.
“그 서기는 일각 동안 유지되다가 사라지는데, 날이 갈수록 빛이 강해진다고 해. 그래서 사람들은 그 빛이 절세신병이나 영약이 출현하기 직전의 징조라고 생각하고 있어.”
“무림인들이 모여드는 건 그 소문 때문이라는 거야?”
“그래. 시간이 보름밖에 안 되었는데도 안휘 무림은 물론이고, 벌써 일천수백 리 떨어진 곳에서 활동하는 무림인들까지 이곳에 모습을 보이고 있다고 해.”
무림인들의 속성상 무가지보급의 보물이 나타날 징조를 보이는 지역에 몰려드는 건 당연한 현상이다.
유코가 물었다.
“누군가 목적을 갖고 조작하고 있을 가능성은 없어?”
유가흔이 고개를 저으며 대답했다.
“가능성을 완전히 배제할 수는 없지만, 지금까지는 그렇게 보이지 않아. 누군가 어떤 목적을 위해 무림인을 모으려 조작한 거라면 사천이나 운남, 감숙처럼 먼거리의 무인들도 이미 도착해야 하는데, 그쪽 사람들은 안 보이거든.”
진무앙이 입을 열었다.
“조작이든 아니든 무저불회곡과 직접 관련이 없다면 신경 끄자. 정말로 보물이 나타난다 해도 관심 없어.”
유코와 유가흔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들은 세상이 알지 못하는 진무앙의 가치를 누구보다 잘 아는 여인들이었다.
세상의 그 어떤 보물도 진무앙보다 더 가치 있을 수는 없었다.
그의 마음을 얻을 수만 있다면 천하제일고수가 되는 것도, 절대적인 부와 권력을 얻는 것도 가능했기 때문이다.
게다가 여자라면 죽을 때까지 젊음을 유지할 수도 있었다.
유코가 물었다.
“그곳과 관련이 있다면?”
진무앙은 싱긋 웃으며 대답했다.
“그건 그걸 알게 된 후에 생각해도 늦지 않아.”
그때 그들의 탁자로 누군가가 다가왔다.
진무앙과 두 여자의 시선이 자연스럽게 그를 향했다.
그곳엔 눈이 휘둥그레질 정도로 수려하고 훤칠한 스물대여섯쯤의 청년과 흰 면사로 눈 아래를 가린 일남일녀가 서 있었다.
진무앙은 스치듯 본 것이라도 잊지 않는 절대기억력의 소유자.
이들은 그가 당설 일행과 충돌했을 때 이층에서 구경하고 있던 사람들이었다.
허리춤에 삼 척 장검을 찬 청년이 진무앙 일행에게 포권을 했다.
“세 분의 환담을 방해해서 미안합니다.”
그가 말을 이으려 할 때 진무앙이 심드렁한 한마디로 그것을 끊었다.
“미안한 줄 알면 하지 말죠?”
청년의 얼굴에 당황한 기색이 떠올랐지만 그것은 바로 사라졌다.
그가 더욱 정중한 어조로 말을 받았다.
“미안한 줄 알지만, 안휘에서 본가와 관련이 있는 사람들에게 불쾌한 일을 겪었는데 이대로 있을 수는 없습니다.”
청년의 말에 느껴지는 것이 있어 진무앙과 두 여자는 눈을 마주쳤다.
유가흔이 말했다.
“남궁세가 분들인가요?”
“그렇습니다. 저는 남궁진이라 하고, 이 아이는 제 여동생인 남궁화라고 합니다.”
진무앙과 유코는 그 이름을 듣고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그들이 누군지 몰랐으니까.
하지만 하오밀문의 문주인 유가흔까지 그들의 신분을 모를 수는 없었다.
그녀가 눈을 반짝이며 진무앙의 귀에 속삭였다.
“이분들은 남궁세가주 제왕검신 남궁록 대협의 자제들이야. 무애검룡 남궁진 소협은 소가주이고. 옆의 옥소선 남궁화 소저는 수선화라는 화명을 가진 당대 천상십화의 일인이야.”
두 남녀의 정체를 들은 진무앙의 얼굴에 언뜻 흐뭇한 미소가 떠올랐다.
남궁진이 자신을 알아본 유가흔에게 포권을 하며 말했다.
“당설 소저와 황보 소제는 본가와 관련이 깊은 사람들입니다. 남이라 할 수 없는 그들의 무례를 우리라도 대신 사과하고 싶습니다.”
사천당가와 황보세가는 남궁세가와 더불어 천하팔대세가에 속하고 그들의 유대관계는 수백 년 역사를 갖고 있다.
진무앙이 물었다.
“대신 사과라… 그럴 필요가 있습니까?”
“세 분이 안휘 땅에서 나쁜 기억을 갖고 돌아가는 걸 보고 싶지 않은 게 우리의 작은 바람입니다. 사과를 받아주셨으면 감사하겠습니다.”
진무앙의 눈가에 드리워진 미소가 더 진해졌다.
남궁세가의 소가주가 이렇게 정중한 모습에 기분이 좋아진 것이다.
‘역시 가정교육이 중요하다니까.’
물론 남궁진은 그와 유코의 무공 실력을 보았기에 정중한 것일 수도 있었다.
누가 뭐라 해도 무림은 무력이 우선하고, 강자가 존중받는 세상이 아닌가.
하지만 정중한 것과 사과를 하는 건 문제가 달랐다.
누가 그들에게 사과를 하라고 강요한 것도 아닌데, 남궁 남매가 이렇게 찾아온 걸 보면 평소 남궁록이 자식들을 어떻게 가르쳤는지 알 수 있었다.
그렇다고 흐뭇하기만 한 건 아니었다.
진무앙의 뇌리에 남궁록과 남궁경의 모습이 떠올랐다.
‘록아하고 경이 그 자식들도 어렸을 때부터 애늙은이처럼 점잖고 예의가 발랐지. 그래서 재수도 없고, 재미도 없었는데 이 녀석들도 비슷한 것 같네. 재수없고 재미없는 꼬맹이는 소소 하나로 족해.’
그가 덤덤한 어투로 말했다.
“그 사과 받아주겠습니다. 됐죠? 더 볼일 없을 테니 가봐요.”
남궁진의 얼굴에 다시 당황한 표정이 떠올랐다.
남궁세가의 소가주라는 걸 알면서도 바로 축객령이라니.
그가 어디에서 이런 홀대를 받아보았겠는가.
그때 옆의 남궁화가 나섰다.
“실례가 되지 않는다면 세 분께 식사를 대접하고 싶어요.”
그녀의 시선은 유가흔을 향하고 있었다.
몇 마디 대화를 듣는 것만으로도 그녀는 진무앙 일행의 관계를 파악할 수 있었다.
그녀가 봤을 때 주도권을 쥔 사람은 진무앙이었지만, 그는 여인들의 의견을 무시하지 않는 성향이었다.
특히 키가 큰 여인(유가흔)의 발언권이 상당히 강한 것처럼 보였다.
진무앙이 미간을 찡그리며 거절하려 할 때 유가흔이 그를 보며 고개를 저었다.
“무앙, 남궁 소저가 저렇게까지 예의를 갖춰서 초대하는데 거절할 필요는 없지 않을까?”
진무앙이 퉁명스러운 어조로 대꾸했다.
“귀찮아.”
유가흔이 눈을 흘기며 말했다.
“공짜와 외상이라면 양잿물도 마다하지 않는 당신이 웬일이래?”
“이들의 성이 남궁이니까 그렇지.”
유가흔의 눈가에 묘한 미소가 떠올랐다.
“난 그래서 이 초대를 더 받아들이고 싶은데?”
유코도 거들었다.
“나도 가흔의 의견에 찬성. 무앙, 오면서 계속 건량과 만두만 먹었잖아. 간만에 맛있는 거 먹자. 설마 남궁세가의 소가주가 대접을 한다는데 만두와 소채만 나오지는 않을 거 아냐.”
“내가 최고급 술과 고기 사줄게. 나 돈 많은 거 알잖아.”
진무앙의 전낭엔 아르다반에게서 갈취한(?) 돈이 아직 충분히 남아 있었다.
유코가 고개를 저었다.
“무앙, 돈은 나도 있어. 난 저 남궁세가 분들이 사주는 음식이 먹고 싶은 거라고.”
유가흔도 거들었다.
“무앙, 우리는 의견 일치를 본 것 같은데, 당신은 계속 고집부릴 거야?”
“고집부리…… 면?”
진무앙의 말은 뒤로 갈수록 작아졌다.
유가흔과 유코의 눈빛이 사나워졌기 때문이다.
진무앙이 말을 잇지 못하고 어물거리자 유가흔이 남궁화에게 말했다.
“소저의 초청, 고마워요. 기쁘게 받아들일게요.”
남궁화의 눈가에 환한 미소가 떠올랐다.
“제가 고맙습니다.”
그들을 보며 진무앙이 중얼거렸다.
“예감이 안 좋아…….”
그리고 그의 나쁜 예감은 언제나 그렇듯이 틀리지 않았다.
남궁 남매가 진무앙 일행을 데리고 간 곳은 청양현 중심가에 있는 작은 장원이었다.
이곳은 남궁세가에서 이번 구화산의 서기 출현 사건에 대응하기 위해 구입한 곳으로 임시 거점 역할을 하고 있었다.
그리고 이곳에서 진무앙 일행을 맞은 사람은 창궁일학 남궁경이었다.
장원의 문이 열리자마자 뒤에 서 있던 남궁경이 진무앙을 향해 포권을 하며 허리를 숙였다.
“아경이 진 대가를 뵙습니다.”
그를 본 진무앙이 투덜거렸다.
“어쩐지, 예감이 좋지 않더라니.”
남궁경은 사람들의 눈을 의식해 진무앙을 매형이 아니라 대가라고 불렀다.
이곳엔 그가 진무앙을 매형이라고 부른다면 뒤집어질 사람이 너무 많은 것이다.
그럼에도 남궁 남매는 아연실색할 지경으로 놀라고 있었다.
대체 이름도 들어본 적이 없는 진무앙의 신분이 무엇이기에 안휘 무림 오대고수 중 일인인 남궁경이 ‘대가’라 높이 부르면서 자신을 ‘아경’으로 낮춘단 말인가.
남궁경이 부드러운 미소를 지으며 남궁 남매에게 말했다.
“진아, 화아야, 저분을 모시고 오느라 수고했다.”
진무앙이 퉁명스러운 어조로 그에게 물었다.
“쟤들이 말 걸었을 때부터 느낌이 싸했는데, 네가 전음으로 시킨 거냐?”
“죄송합니다.”
“쳇…….”
진무앙이 혀를 차며 유가흔과 유코를 째려보았다.
“너희, 이럴 줄 알고 초대를 받아들인 거지?”
유코는 고개를 저었다.
“난 정말 몰랐어.”
유가흔은 반대로 고개를 끄덕였다.
“난 알고 있었어. 남궁 대협이 나한테도 전음을 했거든.”
진무앙이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너, 나한테 너무한 거 아니냐고!”
“내게 한 짓에 비하면 이건 애교 수준인데?”
야반도주의 죄는 태산보다 높은지라 진무앙은 본전도 건지지 못하고 말문이 막혔다.
대신 남궁경에게 짜증을 부렸다.
“너, 가흔하고 아는 사이냐?”
“예전에 강호 행도할 때 안면이 있었습니다.”
“염병…….”
“저를 타박하는 건 들어가서 하시죠, 준비한 음식이 식습니다.”
“그래그래, 들어가자. 먹고 죽은 귀신이 때깔도 좋다는데, 먹어보자고!”
진무앙이 자포자기한 목소리로 소리치며 안으로 들어갔다.
유코와 유가흔, 남궁경이 미소를 지으며 그의 뒤를 따랐다.
주눅이 팍 든 남궁 남매도 졸졸 따랐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