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mortal RAW novel - Chapter 159
159 준비해! 온다!
숲에 내려앉은 회색의 안개는 점점 더 짙어져서 이제는 이삼 장 앞의 사물을 분별하기 어려울 정도였다.
하지만 시야가 제한되었는데도 일행은 혼란에 빠지지 않았다.
그건 모두 진무앙 덕분이었다.
그가 전진하면 안개가 좌우로 스르르 밀려나며 길이 생겨났다.
그리고 밀려났던 안개가 다시 모여드는 건 열 정도를 세고 난 후였다.
마치 안개가 살아 있는 것처럼 보이는 이 기이한 현상은 그가 숲에 들어섰을 때부터 지금까지 계속되고 있었다.
그러니 진무앙의 뒤를 따르는 사람들이 그를 놓칠 일도 없었고, 혼란에 빠질 일도 없었던 것이다.
일행은 이 신비로운 현상을 비롯해서 그에게 묻고 싶은 것들이 산처럼 많았다. 하지만 묻지는 못했다.
지금은 한가롭게 의문이나 풀 시간은 아니었으니까.
백여 장을 전진한 진무앙이 갑자기 걸음을 멈췄다.
그는 잠시 귀를 기울이는 듯하다가 고개를 돌리며 입을 열었다.
“아경, 황보평.”
“예, 진 대가.”
“예.”
남궁경과 황보평의 시선이 그에게 쏟아졌다.
그들과 마주친 진무앙의 눈에서 강렬한 신광이 흘러나왔다.
“곧 공격이 있을 거다. 너희는 대열의 후미를 맡아라.”
“유코, 가흔.”
“응.”
“왜?”
“너희는 대열의 좌우를 맡아. 나는 정면을 맡는다.”
그리고 그는 남궁 남매와 용봉회의 남녀 십여 명을 향해 말을 이었다.
“최대한 밀착해라. 앞사람을 놓치지 말고 자신을 지키는 데 집중해라. 그리고 싸움에 끼어들거나 누군가를 돕겠다는 망상 따위는 하지도 마라. 너희 실력으로는 도움은커녕 진형만 흐트러뜨릴 뿐이니까.”
듣는 사람이 자괴감을 느끼게 할 정도로 냉정한 말이었다.
하지만 진무앙의 말은 아직 끝난 게 아니었다.
“아까 경고했듯이 아무것도 만지지 마라. 그리고 대열에서 이탈하지도 마라. 이탈하는 자가 나오면 그가 누구든 버리고 간다. 마지막으로 목적지에 도착할 때까지 휴식은 없다. 명심하도록.”
그의 말을 들은 후기지수들의 안색이 해쓱해졌다.
후미로 자리를 옮긴 남궁경과 황보평의 안색도 무거워졌다.
그들은 진무앙이 짠 진형의 의미를 어렵지 않게 알아차렸다.
이 진형은 적이 사방에서 몰려들 것이라는 전제가 깔려 있었다.
그런 적들 속에서 그들은 세가의 미래를 짊어질 후기지수들을 보호하는 중대한 역할을 맡은 것이다.
남궁경은 애병인 청명검을 빼 들었다.
황보평도 주먹에 공력을 모았다.
둘 다 언제든 최고의 실력을 발휘할 수 있는 준비를 마친 것이다.
유가흔이 진무앙에게 물었다.
“달려갈 거야?”
진무앙은 고개를 저었다.
“아니. 그렇게 하려고 해도 할 수가 없어. 달렸다가는 나도 길을 잃는다. 여길 무시하지 마. 절대로 만만한 곳이 아니야.”
“아……!”
십여 장을 더 전진했을 때였다.
주변을 훑어보는 진무앙의 눈에서 신광이 번득였다.
그가 소리쳤다.
“준비해! 온다!”
동시에,
크르르르르-
과우우우우-
사방에서 맹수의 으르렁거림과도 같은, 절로 온몸에 소름이 쭉 돋는 기괴한 소리가 들려왔다.
그리고 긴 싸움이 시작되었다.
가장 먼저 공격을 받은 사람은 후미에 있는 황보평이었다.
쐐애액-
공기가 찢어지는 듯한 파공음이 났다.
그의 우측 회색 안개 속에서 세 치는 됨직한 긴 손톱이 달린 두 손이 튀어나와 황보평의 가슴을 찍어갔다.
군더더기라고는 하나도 없는 신속하고 맹렬한 일격.
하지만 이미 준비하고 있었던 황보평의 대응도 즉각적으로 이루어졌다.
그는 침착하게 육중한 일권을 내질렀다.
팔성 공력이 담긴 천왕권의 절초 천왕복호였다.
휘우우우웅-
공기가 압축되는 듯 기이한 휘파람 소리와 함께 천왕복호의 막강한 권풍이 손을 강타했다.
쾅!
굉음과 함께 회색 안개가 파도처럼 출렁였다.
하지만 그뿐이었다.
놀랍게도 충돌로 인해 손해를 본 건 상대가 아니라 황보평이었다.
그는 주춤하며 반보를 뒤로 물러났다.
반면 손의 주인은 귀신처럼 풀어헤친 긴 머리를 휘날리며 안개 속에서 튀어나왔다.
그리고 외마디 비명과도 같은 괴성을 지르며 손톱을 세우고 황보평에게 달려들었다.
“끼아아아악!”
피가 찬 것처럼 붉은 눈동자를 가진 여인은 일정한 초식을 펼치지도 않고 손톱만 세운 채 무작정 그에게 달려들고 있었다.
삼류무인이라 해도 당하지 않을 것 같은 단순한 공격.
하지만 여인의 운신 속도가 눈으로 보기 어려울 정도로 빠른 데다, 손톱에 담긴 힘이 엄청나서 일류고수인 황보평조차 긴장을 풀지 못했다.
황보평은 그런 여인을 향해 다시 한번 천왕권을 내질렀다.
휘우우웅-
산악처럼 일어난 권풍이 여인을 휩쓸어갔다.
천왕거정이라는 천왕권의 절초였다.
쾅!
여인은 무방비 상태로 가슴에 일권을 얻어맞았다. 하지만 이번에도 안색이 변한 건 그녀가 아니라 황보평이었다.
“헛!”
얼마나 놀랐는지 그의 입술 사이로 신음이 터져 나왔다.
일권을 맞은 여인은 뒤로 물러나기는커녕 오히려 더 빠른 속도로 그와의 거리를 좁혔다.
그러고는 그의 가슴으로 바짝 파고들어 그의 양어깨에 손톱을 내리찍고 있었다.
쐐애액-
그녀의 공격이 얼마나 빠른지 손이 지나가고 난 다음에 파공성이 났다.
위기임을 직감한 황보평의 주먹에서 아지랑이처럼 뭉친 권경이 불쑥 튀어나와 여인의 복부를 후려쳤다.
천왕탄의 권경이었다.
쾅!
“꺄아아악!”
그제야 소름 끼치는 비명과 함께 여인이 일 장가량 뒤로 튕겨 나갔다.
황보평의 이마에 식은땀이 송골송골 솟았다.
한숨 돌릴 여유를 찾은 그는 빠르게 일행을 훑었다.
다른 사람들도 이미 싸움에 돌입한 상태였다.
남궁경은 두 명의 남녀와 드잡이질 중이었고, 유코와 유가흔은 각기 다섯 명씩의 적과 싸우고 있었다.
다행스럽게도 그들은 밀리지 않고 있었다. 그렇다고 단숨에 적을 제압할 것처럼 보이지도 않았다.
그건 그들이 약해서가 아니었다.
적이 너무 강했다.
적들은 금강불괴라도 되는 것처럼 남궁경의 청명검에 맞아도 붉은 선만 그어졌다가 사라지는 상처밖에 입지 않았다.
권과 장을 쓰는 유코와 유가흔은 압도적인 실력으로 쉴 새 없이 적을 쓰러뜨리고 있었다.
하지만 쓰러졌던 적은 눈 한 번 깜박이기도 전에 다시 벌떡 일어나 그녀들에게 달려들었다.
그러는 동안 몰려드는 적의 숫자는 빠르게 불어나고 있었다.
언뜻 보아도 벌써 삼십 명이 넘는 듯했다.
그리고 늘어나는 속도로 볼 때 곧 수를 세는 게 무의미해질 정도로 많아질 게 분명했다.
황보평의 시선이 선두에 있는 진무앙을 향했다. 그리고 그의 눈이 찢어질 듯 커졌다.
“크르르-”
피에 젖은 이를 드러내며 괴성을 토한 사내가 진무앙에게 구환도를 휘두르며 달려들었다.
쉬잇 쐐액- 쉿!
일정한 형식을 갖추지 못한 마구잡이 휘두름이었지만 그 안에 담긴 힘은 바위도 쪼개 버릴 정도로 강력했다.
하지만 무심하게 가라앉은 진무앙의 눈빛을 변하게 만들지는 못했다.
턱!
그는 왼손으로 수직으로 어깨에 떨어지는 도의 날을 태연하게 잡아챘다.
그리고 성큼 한 걸음 내디뎌 사내와의 거리를 좁히며 오른손으로 그의 머리를 움켜쥐었다.
진무앙의 손에서 구겁천뢰탄의 막대한 경력이 쏟아져 나와 사내의 머리를 인정사정없이 두드렸다.
쿵쿵쿵쿵쿵쾅!
사내는 다섯 번을 버텼지만 그게 한계였다.
육겁탄을 견디지 못한 사내의 머리가 폭발하며 붉은 피보라가 안개를 적셨다.
그사이 붉은 눈을 번뜩이며 바람처럼 진무앙에게 접근한 여인이 그의 목에 낭창낭창한 연검을 푹 찔러넣었다.
쩡!
쇠와 살이 부딪쳤는데 금속음이 났다.
진무앙의 목을 찌른 연검은 안으로 파고들지 못하고 칼날이 반원을 그리며 둥글게 휘어졌다.
진무앙이 여인에게 심드렁한 어투로 말했다.
“너만 금강불괴인 줄 아냐?”
말이 끝나기도 전에 그의 손가락 끝에서 튀어나온 반투명한 혈검의 날이 여인의 머리를 반으로 쪼개 버렸다.
그의 손톱 위를 덮고 있는 환상혈조가 혈검으로 변해 여인을 벤 것이다.
사용할 때 막대한 공력이 필요하다는 단점이 있긴 하지만, 환상혈조의 경이로운 날카로움은 만년한철을 종잇장처럼 잘라 버릴 정도다.
진무앙은 환상혈검으로 여인의 옆에서 함께 달려들던 사내의 목까지 잘라 버렸다.
사이한 수법에 의해 얻은 가짜 금강불괴지신으로는 그것의 예기를 막을 수 없는 것이다.
진무앙은 양손의 다섯 손가락을 송곳처럼 모았다. 그 끝에 검고 투명한 기운이 어렸다.
그의 손끝이 번개처럼 두 사내의 가슴을 찍었다.
퍼퍽!
둔중한 소리와 함께 검고 투명한 기운이 그들의 가슴에 커다란 구멍을 내며 등 뒤로 빠져나갔다.
진무앙이 펼친 건 혈우팔법 중 관통력에 있어서는 첫손 꼽히는 폭뢰경혼추였다.
백발이 성성한 노인이 붉은 눈을 희번덕이며 진무앙에게 창을 찔렀다.
피윳! 피윳! 피윳!
날카로운 파공성과 함께 무시무시한 힘이 실린 창끝이 진무앙의 상체의 요혈 아홉 곳으로 날아들었다.
비스듬히 상체를 틀며 창날을 가슴 앞으로 흘린 진무앙의 손이 창대를 잡았다.
덥석!
다음 순간 창대를 잡은 채 미끄러지듯 노인과의 거리를 좁힌 그가 팔꿈치를 수평으로 휘둘렀다.
쐐애애액-
박투술의 정점인 야차회륜박의 기법이었다.
쾅!
팔꿈치에 관자놀이를 얻어맞은 노인의 머리가 폭발하듯 터져 나갔다.
성큼.
진무앙은 무너지는 노인의 시신을 뒤로하고 앞으로 나아갔다.
괴물로 변한 자들을 죽이는 건 간단했다.
머리와 몸을 분리시키거나 심장이나 머리를 부수면 된다.
하지만 그건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었다.
괴물들의 움직임이 일류고수보다 빠른 데다 몸은 금강불괴에 가까울 정도로 단단하기 때문이었다.
그런데도 진무앙의 손에 쓰러진 적의 수는 벌써 열을 훌쩍 넘기고 있었다.
다른 사람들과 달리 그는 적을 아주 간단하게 처리하는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실상은 겉보기와 많이 달랐다.
‘이들의 몸은 시간이 갈수록 단단해지고, 익혔던 무공도 쓸 수 있게 돼. 당연히 공격력도 강해진다. 지금도 한 명을 쓰러뜨릴 때 소모되는 공력이 장난 아닌데, 그때가 되면 더 힘들어질 거다.’
진무앙은 매초를 펼칠 때마다 전력을 다하고 있었다.
괴물들의 단단한 육체를 파괴하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었다.
그의 눈빛이 깊어졌다.
‘곡에 들어온 사람들이 모조리 괴물이 된다면 그 수는 천 단위가 넘을 거다. 그들이 다 몰려든다면 목적지에 도착하기 전에 내가 먼저 탈진해 쓰러질 수도 있다. 그러면 다 죽는다, 유코와 가흔까지도……. 그 꼴을 볼 수는 없지. 그러니 최대한 빨리 처리해야 해.’
결심이 선 그의 손이 암월도의 손잡이를 잡았다.
찰나지간 그에게 달려드는 적의 수가 스물을 넘었다.
“크르르르-”
“그어어-”
“끼아아아-”
온갖 괴성과 함께 그의 모습이 적들에 의해 가려졌다.
그들을 보는 진무앙의 눈에서 무시무시한 빛이 뿜어져 나왔다.
그는 크게 오른발을 내밀며 암월도를 뽑았다.
쭈와아아악-
머리끝을 쭈뼛 곤두서게 만드는 기이한 소리와 함께 밤하늘에 뜬 초승달을 연상시키는 한 줄기 검은 도강이 일어나 천지를 갈랐다.
혼돈사절기 중 유일한 무기술, 혼돈암월도법의 제일초 삭월(朔月)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