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mortal RAW novel - Chapter 160
160 사람은 쉽게 변하지 않는다
“끼아아아악!”
“으아악!”
절로 소름을 돋게 만드는 처절한 비명이 합창하듯 터져 나왔다.
무참하게 잘려 나간 사지와 자욱한 피 보라가 회색 안개를 붉게 물들였다.
진무앙을 공격했던 괴인들은 단 한 명의 예외도 없이 사지가 잘린 시신이 되어 피 구덩이에 누워 있었다.
그의 뒤를 따르던 사람들은 자신도 모르게 가늘게 떨며 침을 꿀꺽꿀꺽 삼켰다.
괴인들은 남궁경과 황보평 같은 고수들조차 한 명을 상대로 결정적인 우세를 확보하지 못할 정도로 강했다.
그런 그들을 진무앙은 단 일도로 스무 명이나 두부처럼 썰어버린 것이다.
그의 공격은 그것으로 끝이 아니었다.
진무앙은 한 덩이 구름처럼 사람들의 머리 위로 떠오르며 암월도를 사선으로 그어 내렸다.
암월도의 끝에서 달무리처럼 원형을 이룬 도강이 폭발하듯 피어올랐다.
그리고 유코와 유가흔, 남궁경과 황보평을 공격하는 괴인들에게 날아갔다.
그 광경은 하늘에서 유성우가 쏟아져 내리는 것처럼 보일 정도로 일대 장관이었다.
그것은 혼돈암월도법의 제이초 노월(怒月)이었다.
분노한 달이라는 이름처럼 가공할 기세를 품고 날아간 노월은 괴인들의 몸을 무자비하게 강타했다.
“끄어억!”
“꾸와악!”
무참한 비명과 함께 괴인들이 거대한 철퇴에 얻어맞은 것처럼 뒤로 튕겨 나갔다.
그리고 날아가던 그들의 몸이 공중에서 분해라도 되는 것처럼 산산조각으로 흩어졌다.
혼돈암월도법, 암월구도라고 불리기도 하는 이 도법은 모두 아홉 초식으로 이루어져 있다.
암월구도를 비롯한 혼돈사절기는 진무앙이 ‘암혼’이라 부르는 미지의 힘을 사용했다.
내공을 사용하는 것도 가능하긴 하지만, 그러면 위력이 본래보다 엄청나게 약해진다. 바로 지금처럼.
그래서 혼돈사절기가 진정한 위력을 발휘하려면 ‘암혼’을 깨워야 했다.
진무앙의 무심한 음성이 사람들의 고막을 두드렸다.
“넋 놓고 있을 시간 없다. 앞으로 나타날 놈들도 이런 수준일 거라고 안심하지 마라. 감염은 진행된 시간이 길어지면 길수록 능력이 강화되는데, 이들은 초기 감염자들일 뿐이니까.”
그는 어느새 선두에서 뒷모습을 보이며 빠르게 걸음을 옮기고 있었다.
달리는 건 아니었지만 서두르지 않으면 쫓아가기 어려운 속도였다.
유코도 묘행보를 펼쳐 진무앙의 뒤를 따르며 그에게 물었다.
“무앙, 이 괴물들이 약한 놈들이라는 말이야?”
“그래. 이놈들은 초기 감염자라 능력이 일천해. 시간이 갈수록 점점 더 강한 놈들이 몰려올 거다. 그래서 놈들이 완전한 변이를 이루기 전에 안전지대를 찾아야 해.”
“완전한 변이? 그게 뭔데?”
“감염의 변이가 끝나면 사람은 사람의 형상이 아닌 ‘진짜 괴물’로 모습까지 변해. 그렇게 변이된 놈들은 엄청나게 강하다. 아마 너나 가흔도 한 놈을 상대하는 것조차 쉽지 않을 거다.”
남궁경과 황보평, 용봉회의 후기지수들의 안색이 어두워졌다.
그들은 방금 전 유코와 유가흔이 얼마나 강한 무인인지 똑똑히 보았다.
그녀들은 의심할 여지 없이 무림을 통틀어도 일백 위 안에 들 만한 초절정고수들이었다.
그런 그녀들이 상대하기 벅찰 능력이 있는 괴물이라면 그들은 십초도 버티지 못하고 저승 문턱을 밟을 게 뻔했다.
하지만 그들과 달리 유코와 유가흔은 별다른 표정 변화가 없었다.
유가흔이 호수처럼 깊은 눈으로 진무앙을 보며 말했다.
“난 당신을 믿어.”
“가흔, 어떤 쪽으로든 결론을 빨리 내야 한다는 생각이 들지 않냐? 날 죽이고 싶은 건지, 나와 함께 이곳에서 살아나가고 싶은 건지 말이야.”
“조급해할 게 뭐 있겠어. 이 길을 가다 보면 알고 싶지 않아도 저절로 알게 될 것 같은데.”
유가흔의 음성은 여전히 담담했다.
반면 대꾸하는 진무앙의 목소리에서는 퉁명스러움이 잔뜩 묻어났다.
“석 목주는 그래도 위기 상황에서는 긴장 좀 하던데. 어떻게 된 게 사부인 너는 그렇게 태평하냐.”
“당신을 알고 모르고의 차이가 아닐까?”
“너는 날 아니까 마음이 편안하다 이거냐?”
“응. 여자로서 당신은 세상에 둘도 없을 정도로 정말 나쁜 놈이지만, 싸울 때는 당신만큼 든든한 남자도 없으니까.”
“쳇. 화를 내야 할지, 고마워해야 할지 갈피를 잡을 수가 없네.”
두 사람의 대화는 상황에 어울리지 않는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가벼웠다.
두려움도, 긴장감도 느껴지지 않았다.
그 덕분에 듣는 사람들은 두려움을 많이 가라앉힐 수 있었다.
그사이 일행은 이십여 장을 전진했다.
진무앙의 바로 뒤에 붙어 있는 건 당설과 황보문을 비롯한 후기지수들이었다.
그들은 곧 진무앙의 걸음이 특이하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서로를 돌아보는 그들의 눈매가 파르르 떨렸다.
그들은 진무앙의 발이 지면과 두 치가량 떨어진 채 허공을 걷고 있는 것을 보았던 것이다.
만담꾼의 이야기 속에서나 등장하는 허공답보를 펼치는 절세고수가 그들의 코앞에서 걷고 있었다.
그러니 어떻게 놀라지 않을 수 있겠나.
진무앙이 허공에 떠서 걷고 있는 건 당연히 무공을 자랑하기 위해서가 아니었다.
이제 일류의 경지에 간신히 발을 디딘 후기지수들 따위에게 무공을 자랑해서 어디다 쓰겠나.
회색 안개 지대의 모든 것은 감각을 방해하는 기괴한 것들로 가득했다.
발바닥에 닿는 땅도 마찬가지였다.
접촉으로 인한 감각 방해를 최소화하기 위해서는 허공에 떠 있는 게 최선이었다. 그래서 그는 허공을 밟으며 걷고 있었던 것이다.
물론 그가 아니라면 꿈도 꿀 수 없는 방법이었다.
당설은 피가 배어날 정도로 입술을 잘근잘근 깨물었다.
진무앙의 무공은 볼수록 경이로웠다.
신룡객잔에서 그가 자신을 얼마나 같잖게 생각했을지가 눈에 선했다.
쥐구멍이라도 있으면 찾아 들어가고 싶을 지경으로 그녀의 마음은 참담함으로 가득찼다.
하지만 그녀가 수치심만 느낀 건 아니었다.
수치심이 커질수록 진무앙에 대한 그녀의 분노와 증오심도 더욱 강렬해졌다.
저런 절세무공의 소유자라면 얼마든지 자신의 실수를 웃으며 넘어가 줄 수도 있었지 않은가.
그런데 그는 그렇게 하지 않았다.
오히려 많은 사람 앞에서 자신의 뺨을 때리며 모욕을 주었다.
그것도 한 번도 아닌 두 번씩이나.
잊을 수 없는 치욕스러운 기억이 그녀의 분노와 증오심에 불을 붙이고 있었다.
그녀에게 자신의 잘못에 대한 반성이나 후회, 그리고 지금 자신의 목숨이 누구 덕분에 유지되고 있는지 따위는(?) 고려의 대상조차 되지 못했다.
이기적이고 자기중심적인 생각이었다.
하지만 그녀는 자신에게 문제가 있을지도 모른다는 반성이나 의문은 눈곱만치도 하지 않았다.
역시 사람은 쉽게 변하지 않는다는 말은 진리다.
다시 십여 장을 더 전진했을 때, 진무앙의 정면 회색 안개가 좌악 갈라지며 일 장에 달하는 붉고 거대한 도가 모습을 드러냈다.
그리고 거도는 크기에 맞지 않게 무서운 속도로 진무앙의 정수리를 노리며 수직으로 떨어졌다.
쐐애애액-
진무앙의 안색이 무표정해졌다.
그는 비어 있는 왼팔을 머리 위로 들어올렸다.
거도가 그대로 그의 팔뚝에 틀어박혔다.
쾅!
굉음이 터지며 충돌로 생겨난 경기의 여파로 회색 안개가 흩어졌다. 그리고 거도의 주인이 모습을 드러냈다.
“헉!”
“우욱!”
“컥!”
당설을 비롯한 후기지수들의 입에서 신음이 터져 나왔다.
그중에서도 여자들은 금방이라도 토할 것 같은 얼굴로 손을 들어 입을 막았다.
“크르르르- 크르르-”
넝마가 된 옷을 입고 풀어헤친 머리카락 사이로 시뻘건 눈동자를 희번덕이며 야수처럼 으르렁거리는 괴인.
끔찍하게도 그 괴인의 오른팔이 있던 자리는 일 장 길이의 거도가 차지하고 있었다.
거도의 표면엔 아직도 핏물과 힘줄, 그리고 너덜너덜 찢어진 근육과 살가죽이 붙어 덜렁거리고 있었다.
마치 도가 팔을 대체한 것 같은 기괴한 모습이었다.
왼 팔뚝으로 거도를 간단하게 막아낸 진무앙이 땅에 늘어뜨리고 있던 암월도를 사선으로 그어 올렸다.
스팟!
초승달 형태의 칠흑처럼 어두운 도강이 번개처럼 괴인에게 날아들었다.
암월구도의 제일초 삭월이 다시 펼쳐진 것이다.
“끄어어!!”
위험을 예감한 것일까.
괴인은 기합인지 비명인지 알 수 없는 소리와 함께 거도로 암월도강을 막아갔다.
하지만 아무리 금강불괴화된 육신이라 해도 암월도강을 막을 수는 없었다.
서걱!
“끼에엑!”
처참한 비명이 터져 나왔다.
그리고 두 동강 난 거도와 함께 상체가 허리부터 어깨까지 사선으로 양단된 괴인이 피를 뿌리며 쓰러졌다.
하지만 괴인들의 공격은 그것이 끝이 아니었다.
쓰러지는 괴인의 뒤에서 아직 변이되지 않은 두 명의 괴인이 튀어나왔다.
그들은 삼 척 장검으로 진무앙의 미간을 찌르고 유성추로 어깨를 내려쳤다.
스팟!
부우우웅-
하지만 이미 그들의 존재를 알고 있던 진무앙은 표정 변화 하나 없이 왼손으로 일장을 휘둘렀다.
용암처럼 뜨거운 열기가 두 괴인을 뒤덮었다.
장검과 유성추가 엿가락처럼 녹았고, 불길에 휩싸인 괴인들은 비명도 지르지 못한 채 단숨에 재로 화했다.
열화마종의 광염열화파멸강이었다.
진무앙이 손을 내리자 안색이 굳어진 유코가 물었다.
“팔이 도로 변한 괴물이 감염으로 변이된 거야?”
“맞아. 내 예상보다 감염 진행 속도가 빨라. 모두 괴물을 쓰러뜨리는 것보다 밀어내는 데 집중하며 따라와. 놈들의 몸이 금강석처럼 단단해서 쓰러뜨리려고 하면 발목이 잡힐 거다.”
“알았어.”
이건 유가흔.
“응.”
이건 유코.
“예, 진 대가.”
이건 남궁경.
“알겠습니다.”
정중한 이 대답은 황보평.
진무앙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사방의 회색 안개가 밀려나며 오십은 될 듯한 괴인들이 맹수처럼 울부짖으며 공격해 왔다.
“크르르-”
“과아아-”
“크크크-”
그들 중 대부분은 아직 사람의 형상이었지만, 개중 셋은 인체 변이가 일정 정도 진행된 상태였다.
그리고 변이된 자들은 약속이라도 한 것처럼 일제히 진무앙을 공격해 왔다.
본능만이 남은 그들은 그가 일행 중 가장 강한 사람이라는 것을 느끼고 있었다.
즉, 그를 쓰러뜨리면 일행을 몰살시킬 수 있다는 걸 알아차린 것이다.
변이된 자들은 사람이라 부를 수 없을 정도로 흉측한 몰골이었다.
머리 전체가 삼 장 길이의 뱀처럼 변하고 끝이 거대한 이빨이 가득찬 입으로 변한 자.
열 손가락이 창처럼 변한 자.
두 팔이 새의 날개처럼 변한 자.
핏물과 살가죽이 덜렁거리는 변이된 자들이 진무앙의 앞을 막아섰다.
사람의 형상을 유지하고 있는 괴인들과 달리 진정 괴물이라 불러도 어색하지 않을 모습이었다.
진무앙은 걸음을 멈추지 않았다.
그가 멈추는 순간, 일행은 완벽하게 포위될 것이다.
그리고 그와 유코, 유가흔을 제외한 나머지 사람들은 순식간에 괴인들에게 파도에 휩쓸린 모래성처럼 썰려 나갈 게 불을 보듯 뻔했다.
가장 먼저 그를 공격한 건 두 팔이 날개로 변한 괴물이었다.
괴물이 날개를 펼치자 핏물을 머금은 수백 개의 붉은 깃털이 튀어나와 진무앙의 전신을 노리고 날아들었다.
깃털 하나하나에 담긴 힘은 세 치 두께의 철판을 두부처럼 꿰뚫을 수 있을 정도였고, 그 속도는 눈에 보이지도 않을 만큼 빨랐다.
진무앙의 전면이 단숨에 깃털이 만든 붉은 파도로 뒤덮이는 듯했다.
죽립 아래, 진무앙의 입술이 벌어지며 가지런한 흰 이가 드러났다.
그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이 느낌, 정말 오랜만이군!”
그의 얼굴에 떠오른 미소는 냉혹 무정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