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mortal RAW novel - Chapter 161
161 궁금하면 입맞춤
진무앙이 경공으로 붉은 깃털을 피하는 건 쉬운 일이었다. 하지만 그것은 그의 선택지에 들어 있지 않았다.
그렇게 그가 피해 버리면 뒤에 있는 후기지수들은 붉은 깃털에 몰살당할 수밖에 없으니까.
무엇보다도 그는 혼돈성흔으로 만들어진 괴물의 공격을 피할 마음이 눈곱만치도 없었다.
‘개새끼의 농간으로 만들어진 놈들을 피하는 건 말도 안 되지.’
그는 암월도로 중단세를 취했다.
암월도의 끝이 버들가지처럼 파르르 떨리며 막대한 흡인력이 일어났다.
그에게 유성처럼 날아들던 붉은 깃털들이 소용돌이에 휘말린 것처럼 도의 끝으로 빨려들었다.
그가 펼친 건 혈우팔법 중 하나인 흡룡와류폭이었다.
찰나지간 암월도의 끝이 둥근 공처럼 모인 붉은 깃털의 표면을 밀 듯이 가볍게 톡 쳤다.
다음 순간,
쑤와와아앙-
공간이 찢어지는 듯한 굉음과 함께 붉은 공이 날개가 달린 괴물을 향해 날아갔다.
그 속도는 날아올 때보다 몇 배는 빨라서 날개 괴물은 피하지도 못한 채 그대로 붉은 공에 가슴을 강타당했다.
바로 그 충돌의 순간, 공처럼 모여 있던 수천 개의 붉은 깃털이 확 퍼지며 날개 괴물의 전신을 꿰뚫었다.
푸푸푸푸푸푹-
끼아아아악!
엄청난 수의 붉은 깃털에 관통당한 날개 괴물이 처참한 비명을 질렀다.
그의 전신이 갈기갈기 찢겨 나가며 회색 안개가 섬뜩한 핏빛으로 물들었다.
하지만 진무앙은 그 광경을 보지 못했다.
날개 괴물의 뒤를 이어 펼쳐진 나머지 둘의 공격이 이미 그에게 이르고 있었기 때문이다.
피윳- 피윳- 피윳-!
손가락이 송곳처럼 뾰족한 괴물이 진무앙의 가슴을 향해 두 팔을 쭉 뻗었다.
환상처럼 괴물의 열 손가락이 확 늘어났다.
장창처럼 길어진 손가락들이 진무앙의 가슴을 그대로 꿰뚫어 버리는 듯했다.
동시에 머리가 뱀처럼 변한 괴물의 이빨 가득한 커다란 입이 진무앙의 머리를 와락 물어왔다.
누가 보아도 그 자리에서 버티기 어려운 공격들.
하지만 진무앙은 피하기는커녕 여전한 보폭으로 앞으로 나아갈 뿐이었다.
암월도의 끝에서 흘러나온 칠흑처럼 검은 빛의 도강이 그의 전면에 도벽을 만들어냈다.
그와 함께 진무앙은 위에서 날아오는 이빨 괴물의 쫙 벌린 입에 오른 주먹을 찔러 넣었다.
와작!
이빨 괴물은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그의 팔을 팔꿈치까지 집어삼켰다.
그 순간 열 개의 손가락 창이 암월도벽과 충돌했다.
그때 암월도에서 일어난 막대한 반탄지력이 열 개의 창끝을 맹렬하게 두드렸다.
콰드드드드득-
기괴한 소리와 함께 열 개의 손가락 창이 철벽에 부딪친 수수깡처럼 으스러졌다.
동시에 이빨 괴물에게 먹힌 진무앙의 오른손에서 혼돈암혼장의 제일초 패왕쇄가 펼쳐졌다.
콰쾅!
벼락치는 듯한 굉음과 함께 이 장여에 달하던 이빨 괴물의 뱀처럼 긴 머리가 폭발하며 산산조각이 났다.
그리고 열 개의 손가락 창이 망가뜨린 암월도벽이 사라지며 나타난 삭월의 도강이 괴물을 정수리부터 사타구니까지 양단했다.
설명은 길었지만, 싸움은 시작과 거의 동시에 끝이 났다.
그리고 진무앙의 앞은 으스러진 괴물들의 잔해와 붉은색으로 꿈틀거리는 안개로 가득했다.
암월도를 든 채 걸음을 옮기며 진무앙이 소리쳤다.
“따라와!”
후기지수들은 허겁지겁 그의 뒤를 따랐다.
괴인과 괴물들은 쉴 새 없이 나타났다.
시간이 갈수록 괴인들보다 괴물들의 수가 빠르게 늘어났다.
그럼에도 진무앙의 전진은 멈춤이 없었다.
앞을 막는 게 하나든 열이든, 그리고 그것이 괴인이든 괴물이든, 단 한 순간도 그의 발길을 멈추게 하지 못했다.
그런 그의 뒤를 따르는 사람들의 뇌리엔 ‘일인무적 만부부당’이라는 말이 저절로 떠올랐다.
그 외의 어떤 말로도 표현할 수 없는 장엄한 전투가 계속해서 이어졌다.
북으로 칠 리를 전진한 진무앙은 서남쪽으로 구 리를 진행했고, 다음으로 동쪽으로 방향을 바꾸어 사 리를 더 갔다.
하지만 일행 중 진무앙이 방향을 바꾸며 자신들을 이끌고 있다는 것을 알아차린 사람은 유코와 유가흔밖에 없었다.
회색 안개로 뒤덮인 환경의 변화가 전혀 없었던 데다가 공격해 오는 괴인과 괴물들을 상대하는데 온 정신을 쏟아야만 했기 때문이다.
진무앙이 걸음을 멈춘 곳은 안개가 없는 공터였다.
그곳은 십여 장 너비였고, 중앙엔 낡은 우물이 하나 있었다.
신기하게도 회색의 안개는 마치 경계선이라도 있는 것처럼 공터를 에워싼 채 안으로 넘어 들어오지 못했다.
그래서 공터의 너머는 끝도 없이 치솟은 회색 안개로 벽을 이룬 것처럼 보였다.
그 외에도 이상한 현상은 또 있었다.
크르르르르-
과우우- 과우우-
안개 속에서 괴물들의 으르렁거림이 계속 들려왔다. 하지만 공터로 쳐들어오는 놈은 하나도 없었다.
안개가 밀려오지 않고 괴물들의 공격도 이어지지 않자 다리가 풀린 후기지수들이 너 나 할 것 없이 거친 숨을 몰아쉬며 한꺼번에 주저앉았다.
“허억… 허억…….”
“컥컥…….”
“하아… 하아…….”
털썩- 털썩-
그제야 진무앙이 뒤를 돌아보았다.
그의 눈길은 먼저 유코와 유가흔을 훑었다.
그와 눈이 마주친 두 여인이 힘없이 미소를 지었다.
붉은 피를 뒤집어쓴 그녀들의 옷은 여기저기 찢어졌고, 면사도 어디로 갔는지 보이지 않았다.
팔과 다리에 상처들이 보였지만 다행히 큰 건 아니었다.
그녀들에 비하면 다른 사람들의 상태는 심각했다.
남궁경의 오른쪽 허벅지는 뼈가 드러날 정도로 깊게 파여 피가 철철 흘렀다.
그리고 황보평은 아예 왼팔이 통째로 뜯겨 나가 있었다.
그에 비하면 피를 뒤집어쓰긴 했어도 후기지수들의 상태는 괜찮은 편이라고 할 수 있었다.
그들도 크고 작은 상처를 입었지만, 치명상을 입은 사람은 없었던 것이다.
“숙부님…….”
남궁진과 남궁화가 남궁경의 상처를 보살폈고, 황보문도 자신의 옷을 찢어 황보평의 상처를 싸매고 있었다.
진무앙이 사람들에게 말했다.
“여기서 휴식을 취하겠다. 반 시진 주마. 상처도 치료하고 소지한 영단이 있으면 다 먹어라. 운기조식으로 기력도 회복해. 앞으로 갈 길은 더 험할 거다. 그러니 최대한 빨리 최상의 몸 상태를 만들어야 한다.”
남궁진이 놀라 눈을 크게 뜨며 물었다.
“진 대협, 여기가 끝이 아니었습니까?”
“당연히 아니지. 여기엔 신의와 괴의가 없잖냐.”
남궁진은 성이 남궁이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뇌가 장식이냐는 타박은 받지 않을 수 있었다.
그건 다 진무앙의 편파적인 성격 덕분이었다.
사람들은 모두 가부좌를 틀고 눈을 감았다. 유가흔까지도 운공조식에 들었다.
공터에 숨 막힐 듯한 정적이 흘렀다. 하지만 그 정적은 유코가 내는 인기척으로 깨졌다.
부스럭- 부스럭-
그녀는 운기조식을 하지 않고 오히려 우물의 벽에 기대어 앉은 진무앙의 옆으로 다가왔다.
진무앙이 퉁명스럽게 말했다.
“하라는 운기는 안 하고 왜 와?”
“그런 거 안 해도 기운은 남아돌아.”
“노익장이냐?”
진무앙의 구박에 유코가 코웃음을 쳤다.
“흥! 진정한 노익장은 당신이지. 괴물들 죽이는 거 보니까 예전보다 오히려 더 기운이 넘치는 거 같던데?”
“한마디를 안 져요.”
“내가 져준다고 당신이 죽어줄 것도 아니잖아.”
“마음에 없는 말 좀 하지 마라. 내가 죽은 줄 알고 따라 죽으려 한 지가 얼마나 지났다고 그런 말을 하냐.”
유코가 어깨를 으쓱하며 말을 받았다.
“나는 당신 같은 천재가 아니라서 그런 흑역사는 기억에 없네요.”
“발뺌할 걸 해라.”
“내 맘이야.”
“강적이네.”
“이제 알았어?”
“알기야 예전부터 알았지. 널 만나지 못한 세월이 너무 길어서 잊고 있었을 뿐.”
“무앙, 입은 삐뚤어졌어도 말은 바로 해야지. 날 만나지 못해서 잊은 게 아니라, 다른 여자들 뒤꽁무니 쫓아다니느라 잊은 거잖아.”
말로는 투닥거리고 있었지만, 서로를 향한 두 사람의 눈길은 부드러웠다.
유코가 그를 똑바로 보며 불쑥 말했다.
“무앙, 난 당신이 진지해지는 게 싫어.”
진무앙이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물었다.
“왜?”
“무서워서.”
“내가?”
“응.”
“유코, 가슴에 손을 얹고 다시 생각해 봐, 네가 언제 날 무서워한 적이 한 번이라도 있기는 한가.”
진무앙이 농담조로 분위기를 바꾸려 시도했지만 유코에게는 씨알도 먹히지 않았다.
“구렁이 담 넘어가듯 하려 하지 마. 내 말은 진심이니까.”
혀를 찬 진무앙이 물었다.
“쩝, 내가 진지해지는 게 대체 왜 무섭다는 거야?”
“당신이 몰래 야반도주하면 욕하면서 쫓아다닐 수라도 있지, 하지만 진지한 표정으로 이별을 선언하고 날 떠나 버리면… 그러면 난 너무 무서워서 당신을 쫓아다니기는커녕, 작은 원망조차도 못할 거 같아.”
진무앙이 손을 들어 유코의 머리카락을 헝클어뜨리며 말했다.
“쓸데없는 소리를 이렇게 진지하게도 할 수 있구나.”
유코가 잔뜩 눈을 흘기며 말을 받았다.
“한칼 먹여줄까?”
“이래야 유코답지.”
진무앙이 싱긋 웃으며 말을 이었다.
“내가 너한테 이별을 선언하고 떠날 일 없으니까 그런 쓰잘데기없는 염려 따위는 버려.”
“야반도주는?”
움찔한 진무앙이 먼 하늘로 시선을 돌리며 말했다.
“그건 대답 못하지.”
“정말 죽여 버리고 싶다니까.”
그때 옆에서 유가흔의 목소리가 들렸다.
“동감이야, 유코.”
어느새 운기조식을 마친 유가흔이 눈을 뜨고 있었다.
진무앙이 그녀에게 물었다.
“몸은 어때?”
“구성의 공력을 쓸 수 있어. 이 정도로 만족해야 할 것 같아. 십이 성을 회복하려면 반나절은 걸리니까.”
그녀가 연이어 진무앙에게 물었다.
“앞으로 더 험해질 거라고 했잖아. 난이도가 어느 정도야?”
“궁금해?”
“응.”
진무앙이 유가흔에게 상체를 기울이며 말했다.
“궁금하면 입맞춤 한번, 어때?”
눈에서 불길이 확 솟은 유가흔이 손바닥으로 진무앙의 입술을 세차게 때렸다.
찰싹!
“지금 이 상황에 그런 말이 나와? 사람이 좀 진지해지면 안 돼?”
“아으으! 아파! 아프다고!”
상체를 확 뒤로 젖히고 입술을 매만진 진무앙이 말을 이었다.
“유코는 진지해지지 말라 하고, 너는 진지해지라고 하고. 대체 나는 어느 장단에 맞춰서 춤을 춰야 하는 거야.”
유코가 나섰다.
“가흔, 무앙에게 어떤 말을 하든 상관은 없는데, 손은 대지 마. 그건 내가 못 참아.”
마주친 두 여자의 눈에서 불똥이 튀었다.
진무앙이 한숨을 푹 내쉬며 두 여자의 눈 사이에 손바닥을 내밀어 불똥을 막았다.
“둘 다 참아. 후우, 이게 다 내 탓이다.”
유코와 유가흔이 동시에 진무앙을 돌아보며 외쳤다.
“당신 탓 맞아.”
이건 유가흔.
“무앙, 그걸 이제 알았단 말이야?”
이건 유코.
본전도 못 건진 진무앙은 어쩔 수 없이 화제를 바꿀 수밖에 없었다.
그가 기대고 있는 우물을 손가락으로 짚으며 말했다.
“다들 깨어나면 이 안으로 들어갈 건데, 이 안에 있는 것들은 최소한 변이를 완전히 마친 괴물들이거나…….”
그가 말끝을 흐리자 유코가 궁금하다는 눈빛을 하고 물었다.
“괴물들이거나? 그놈들 말고 또 다른 뭔가가 있다는 거야?”
진무앙이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그런 일이 벌어지지 않기를 바라지만, 최악의 경우… 마수를 만나게 될지도 몰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