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mortal RAW novel - Chapter 167
167 너, 지금 나 무시하냐?
끄끄끄끄끄-
진무앙이 손에 힘을 주자 거대한 철문의 가운데가 벌어지며 활짝 열렸다.
눈앞에 펼쳐진 광경을 본 사람들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우와!”
“아……!”
“별천지가 따로 없네!”
“와, 이게 다 뭐야?”
“보물 광장이잖아!”
철문의 안쪽은 마수들과 싸운 광장의 절반쯤 되는 규모였다. 그런데 풍광은 완전히 달랐다.
천장엔 야명주가 은하수를 이루고 있었고, 바닥에 오색이 영롱한 보석들이 돌멩이처럼 굴러다녔다.
빼곡하게 숲을 이룬 아름드리나무들의 나무줄기는 보석, 나뭇잎은 은, 열매는 금덩이였다.
이런 비현실적인 광경을 보고 어느 누가 놀라지 않을 수 있겠나.
진무앙만이 유일하게 심드렁한 표정일 뿐이었다.
그가 퉁명스럽게 소리쳤다.
“정신들 차려! 여기 있는 것들 전부 실제가 아니라 환상이야.”
그의 말에 움찔한 일행은 믿기 어렵다는 얼굴로 금은보화로 이루어진 정원을 보았다.
남궁화가 조심스럽게 진무앙에게 물었다.
“진 대협, 이것들도 만지면 안 되는 거죠?”
진무앙의 대답은 뜻밖이었다.
“만져도 괜찮다. 여기 있는 것들은 마기가 없는 것들이라 중독될 위험이 없으니까.”
남궁화가 바닥의 보석을 집었다. 그런데 환상이라던 보석은 아무런 변화가 없었다.
사라지기는커녕 평범한 돌로도 변하지 않았다.
남궁화의 행동을 보고 유코가 나무에서 어린아이 주먹만 한 금덩이 열매를 떼어냈다. 그리고 진무앙을 돌아보며 물었다.
“이게 환상이라는 거야?”
진무앙은 고개를 끄덕였다.
유코가 금덩이를 이로 살짝 깨물더니 다시 물었다.
“진짜 금인데?”
“여기서는 진짜지. 하지만 혼돈성흔의 영역 밖으로 가지고 나가면 바로 한 줌 먼지가 될 것들이야. 그러니 어떻게 실제라고 할 수 있겠냐.”
“아!”
진무앙이 말을 이었다.
“지금 그것들에 홀려 있을 때가 아니야. 우리가 여기 온 건 신의와 괴의를 찾기 위해서라는 걸 잊지 마.”
그의 말에 정신이 번쩍 든 사람들의 안색이 굳어졌다.
유코가 아쉬운 듯 금덩이를 바닥에 던지며 말했다.
“방에 한 그루 가져다 놓으면 참 예쁠 텐데, 아쉽네.”
진무앙이 그녀의 어깨에 손을 얹으며 말했다.
“네 방에 저런 건 필요 없어. 네가 그곳에 있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아름다우니까.”
유코의 눈이 반짝였다.
“거짓말이라는 걸 아는데도 당신이 그렇게 말해주니까 정말 듣기 좋네.”
옆에 있던 유가흔이 소리를 질렀다.
“무앙하고 너, 이 분위기에 그런 말이 나와? 여기 너희 둘만 있어? 사람들이 느끼해서 토할 것 같은 표정 짓는 거 안 보여? 어떻게 된 게 너희는 잘 나가다가 꼭 샛길로 빠지는 거야!”
까치발을 한 유코가 진무앙의 귀에 입술을 바짝 대고 속삭였다.
“무앙, 가흔이 분명 질투하는 거 맞지?”
“응, 맞는 거 같아.”
유가흔이 손으로 이마를 짚으며 한숨을 길게 내쉬었다.
그녀가 말했다.
“하아… 소귀에 경 읽기라더니… 너희 같은 사람들 때문에 그 말이 생겨난 게 틀림없어.”
유코가 입술을 삐죽거렸다.
그대로 놔두었다가는 두 여자가 말싸움을 벌일 게 뻔해서 진무앙이 재빨리 끼어들었다.
“신의하고 괴의가 어디에 있을까나…….”
그의 한마디에 사람들의 분위기는 다시 진지해졌다.
유가흔이 그에게 물었다.
“무앙, 그들이 이곳에 있을 거라고 생각하는 거야?”
“응.”
“왜 그렇게 생각해?”
“그들이 이곳의 마기를 정화시킨 것처럼 보이니까.”
그의 말뜻을 단숨에 알아들은 유가흔이 놀란 표정으로 되물었다.
“저것들이 원래 마기가 없던 게 아니라, 그들이 정화를 시켰다는 거야?”
“혼돈성흔의 영역 내에 있는 다른 세계의 것들은 예외 없이 무조건 마기를 품고 있어. 그게 없다는 건 누군가 정화시켰다는 말이야. 신의와 괴의가 한 게 아니라면 여기에 들어온 제삼자가 있다는 거고.”
유가흔의 질문에 담담하게 대꾸하며 진무앙은 앞으로 걸음을 옮겼다.
나무들이 빽빽하긴 했지만 걷지 못할 정도는 아니어서 일행은 곧 보물 광장의 끝에 도착할 수 있었다.
그곳엔 두 개의 크고 작은 폭포와 커다란 연못이 있었다.
그것을 본 사람들의 입이 다시 한번 더 벌어졌다.
폭포는 바닥에서 삼 장 정도 올라간 벽에 뚫린 동굴에서 쏟아지고 있었다.
그런데 기이하게도 쏟아지고 있는 건 물이 아니라 은하수를 닮은 빛의 무리였다.
직경이 넉 자가량 되는 왼쪽 동굴에서는 진한 회색빛, 그리고 두 자 직경의 오른쪽 동굴에서는 눈부신 흰빛의 무리가 은하수처럼 흘러나왔다.
동굴의 크기만큼이나 회색 빛무리의 양이 흰색보다 두 배는 더 많았다.
그렇게 흘러나온 빛의 무리는 아래 연못으로 떨어졌다.
그렇게 연못에 고인 두 빛의 무리는 중앙에서 분수처럼 천장을 향해 솟구쳤다.
뒤엉키며 솟구치는 그 형상은 마치 두 마리의 용이 서로의 몸을 휘감은 것처럼 보였다.
그렇게 천장에 닿은 빛기둥은 안개가 되어 사방으로 퍼져 나갔다.
그런데 빛기둥은 백색이 더 강했다.
빛무리의 양이 역전되어 흰색이 육 할에 가까웠고, 회색은 오 할이 되지 못했다.
신비롭고 장엄한 광경이었다.
사람들은 첫 번째로 기이하고 아름다운 빛의 폭포에 놀랐다.
그리고 연못의 빛기둥이 솟구치는 중앙 좌우의 연꽃 모양 좌대에 앉아있는 두 사람 때문에 두 번째로 놀랐다.
마지막 세 번째로는 왼쪽 좌대에 앉아 있는 사람이 산 사람이 아니라 해골이어서 놀랐다.
해골의 전신은 그의 머리 위로 쏟아지는 빛줄기와 마찬가지로 진한 회색으로 물들어 있었다.
반면 우측 좌대엔 눈처럼 깨끗한 백의를 입은 이십대 중후반의 청년이 앉아 있었다.
그런데 옆의 해골과 달리 그는 많이 마르긴 했어도 아직 살아 있었다.
그를 남궁경이 떨리는 목소리로 그를 불렀다.
“사공 형님!”
백의청년, 나이를 거꾸로 먹은 듯한 외모의 귀수신의 사공춘이 남궁경을 보며 힘없이 말을 받았다.
“아경, 네가 왔구나. 오지 않기를 바랐거늘. 이미 늦었다. 어서 이곳을 빠져나가라. 나는 반 시진도 버티지 못한다.”
선해 보이는 인상만큼이나 맑은 음성. 하지만 그 안에 어린 건 깊은 절망이었다.
남궁경이 뭐라고 말을 받으려 했지만 사공춘이 한발 빨랐다.
“너와 한가롭게 이야기를 나눌 시간이 없다. 여기서 지체하면 너희도 괴물이 된다. 그러니 어서 떠나거라.”
남궁경은 답답하다는 표정으로 말을 받으려 했다.
하지만 이번에도 그가 말할 틈은 없었다.
진무앙이 불쑥 끼어들었기 때문이다.
“사공춘, 아직 칠십도 안 된 놈이 벌써 눈이 맛이 갔냐? 네 눈에는 아경만 보이고 나는 안 보여?”
그의 말에 사람들은 멍해졌다.
그가 귀수신의를 알고 있는 것만 해도 뜻밖이었다.
그런데 거기에 더해서 아무렇지도 않게 하대를 하리라고는 아무도 생각지 못한 것이다.
하지만 놀람은 별로 크지 않았다.
그와 동행을 한 시간은 짧았지만 사람들은 이제 그가 무엇을 해도 놀라지 않을 정도로 단련이 된 것이다.
유가흔이 물었다.
“무앙, 귀수신의 사공춘과 아는 사이였어?”
진무앙은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제야 남궁경에게서 시선을 떼고 그를 돌아본 사공춘의 얼굴에 의혹이 떠올랐다.
하지만 헝클어진 머리카락 사이로 드러난 진무앙의 조각처럼 수려한 얼굴을 보자마자 의혹은 찰나지간 사라졌다.
단 한 번이라도 사람 같지 않은 진무앙의 진면목을 본 사람은 절대 그를 잊지 못한다.
왕방울처럼 커진 사공춘의 눈이 금방이라도 툭 튀어나올 것처럼 불거졌다.
그가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설마… 무… ㅈ.”
“입 닥쳐라. 한 마디만 더하면 입을 꿰매 버릴 테니까. 내 성질 아직 기억하지?”
“딸꾹.”
얼마나 놀랐는지 사공춘이 딸꾹질을 하며 말을 받았다.
“록제에게서 개벽대전 이후 변방 어딘가에 은거하셨단 이야기를 들었는데 어떻게 여기까지 오신 겁니까?”
사공춘이 록제라고 부른 사람은 남궁세가주 제왕검신 남궁록이다.
“방금 시시콜콜하게 그런 이야기를 할 시간이 없다고 한 건 너 아니었냐?”
진무앙의 말에 삽시간에 안색이 굳어진 사공춘이 급하게 말했다.
“아… 당장 이곳을 떠나셔야 합니다. 곧 혼돈성흔의 마력이 저를 집어삼킬 것입니다. 그때는 무저불회곡 전체가 마기로 가득차 숨만 쉬어도 괴물이 됩니다.”
진무앙은 심드렁하게 대꾸했다.
“알아, 임마.”
“아… 아신다고요?”
“너, 지금 나 무시하냐? 내가 해골이 된 괴의나 너처럼 그런 시시한 것도 모르고 여기 들어왔겠냐고.”
“아… 그럴 리가 있겠습니까……. 물론 알고… 계시겠지요…….”
말은 그렇게 하지만 더듬거리는 신의의 얼굴엔 긴가민가한 기색이 떠올라 있었다.
진무앙이 퉁명스럽게 중얼거렸다.
“하여튼 이놈이나 저놈이나 이년이나 저년이나 왜 다들 내가 말을 하면 일단 안 믿고 보는 거야.”
남궁경은 물론이고 가슴이 뜨끔한 유코와 유가흔이 고개를 돌려 먼산을 보는 척했다.
진무앙이 훌쩍 신형을 날렸다.
얼음 위를 미끄러지듯 연못을 가로지른 그는 단숨에 사공춘의 앞에 도착했다.
물론 그는 물에 빠지지 않고 수면을 평지처럼 밟고 섰다.
코앞에서 진무앙을 본 신의의 볼살이 가늘게 떨렸다.
“무… 조…….”
“닥치라고 했다.”
“흡.”
진무앙은 신의와 해골이 된 괴의를 번갈아보며 혀를 찼다.
“쯧, 능력도 미치지 못하는 놈들이 개고생을 찾아서 하고 있었네.”
그의 말에 신의가 힘없이 고개를 떨구며 대꾸했다.
“죄송합니다…….”
“나한테 죄송할 게 뭐 있어. 너희가 선택할 길에 최선을 다하다 그 꼴이 된 건데. 선택의 결과를 받아들일 마음의 준비가 되어 있어 보이니 그것으로 된 거다. 이제부터 뒷일은 나한테 맡겨.”
신의의 눈빛이 밝아졌다.
“방법이 있으신 겁니까? 무… ㅈ…….”
진무앙이 버럭 소리를 질렀다.
“닥쳐! 후우, 이 말귀 못 알아 처먹는 바보 자식아!”
사공춘은 귀신의 손을 가졌다는 말을 들을 만큼 의술이 뛰어나지만 성격은 전형적인 골방 샌님에 가까워서 임기응변에 약했다.
그러니 단시간에 진무앙을 부를 마땅한 호칭을 찾지 못하고 헤매다가 욕을 얻어먹은 것이고.
보다 못한 남궁경이 조심스럽게 끼어들었다.
“사공 형님, 그 호칭 말고 진 대가라고 부르시면 될 겁니다.”
사공춘이 그에게 고맙다는 눈길을 듬뿍 보냈다.
그걸 본 진무앙이 또 혀를 찼다.
“가지가지들 한다.”
그가 사공춘에게 물었다.
“괴의는 언제 죽은 거냐?”
“칠 년쯤 되었습니다.”
“오래 버텼네. 혼돈성흔의 마력을 정화시키는 데 따르는 고통이 극심했을 텐데.”
그의 시선이 사공춘의 팔을 향했다.
사공춘은 뼈만 남은 괴의의 손을 맞잡고 있었다. 그런데 그의 팔은 괴의에게서 감염이 된 것처럼 어깨까지 진한 회색으로 물든 상태였다.
진무앙은 괴의에게 다가갔다.
해골이 되었음에도 괴의는 고개만 숙이고 있을 뿐, 가부좌를 튼 자세는 전혀 흐트러지지 않았다.
진무앙은 그런 그의 손에서 낡은 청동거울 하나를 집어 들었다.
그것은 또 다른 환우지약의 파편, 환무경이었다.
진무앙의 눈이 깊어졌다.
‘칠마병만 해도 머리 아픈데 혼돈성흔, 거기에 삼신기의 환우지약까지… 진짜 세상이 망하기라도 하려는 건가.’